복과 상에 관한 논란에 대한 결론의 글(파일첨부)
복과 상에 관한 논란에 대한 결론의 글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상에 관하여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을 논란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이 논란의 끝 지점에 도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에 관계없이 복과 상을 주시는 것인가?
즉 인간이 지나치게 범죄하여도 복과 상을 주시는 것인가?
과연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큰복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다면 그 사람이 반드시 큰복을 받도록 강제로 인도하셔서 복을 주시는가?(저는 구원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김영규 교수님을 비롯하여 조병수 교수님과 문종철 목사님, 김동수 목사님의 주장은 "그렇다"는 것이고 저의 주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두 주장이 다 진리일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중의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결정해 줄 심판관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저의 주장을 반대하는 분들이 내세우는 성경은 포도원 품군비유, 달란트비유, 아브라함의 일생이 주종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미 품군비유와 달란트비유는 이분들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천국의 상급에는 층계가 있다"는 글에서 제시한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것은 아브라함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몇 가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인도하셔서 결국 큰 복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력이나 범죄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누구나 강제로 인도하셔서 똑같이 큰 복을 주신다"
만일 이것이 진리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든지 세상을 편하게 살수가 있을 테니까요.
내가 아무리 마귀의 유혹에 빠져서 엉터리로 살아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강제로 아브라함과 같은 복과 상을 주실 테니 얼마나 편하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분들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편하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이 징계하거나 책망하면 반드시 신속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회개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한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이스마엘을 내보내라는 시험,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 등)을 자발적으로 잘 통과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제로 시험을 통과하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헌신을 했다는 말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자발적으로 신속하게 회개하지 않았거나, 계속해서 더 큰 죄를 지었거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어그러진 길로 갔거나, 하나님의 시험을 자발적으로 통과하지 못했더라면 아브라함은 결코 하나님이 약속한 큰복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보는 성경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성경을 봅니까?
성경을 자세히 보니까 하나님은 한결같이 인간에게 일반적인 복과 상을 줄 때는 언제나 "인간의 노력과 신앙생활과 충성의 정도에 따라서 주시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아무리 큰 복과 큰 상을 약속하셨어도 그 사람이 큰 복과 큰 상을 받을 만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신앙수준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불충성을 많이 하면 이미 약속하신 큰 복과 큰 상을 취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근거성경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사무엘 상 2장 30절이 그 근거성경입니다.
삼상 2:30
(30)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나님은 분명히 엘리의 조상 아론(레위지파)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후손들이 내 앞에서 영영히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에는 "만일 너의 후손들이 신앙생활을 잘 한다면"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크게 범죄하고 지속적으로 범죄하고 고집스럽게 회개하기를 거부하자 "아론에게 한 약속은 취소되었다. 아론의 후손인 너희 집안에는 결단코 그 약속을 이루어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하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는 것이 불변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이 어떤 짓을 하든지 강제로 인도하셔서 큰 복을 주시는 것이 원칙이라면" 하나님은 엘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어야 옳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강제로 너와 네 아들들을 회개시키지 못해서 큰 재앙을 당하게 해서 미안하다. 이제라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너희를 강제적으로 회개시켜서 큰 복을 받게 해주마."
또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옳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너를 차별해서 미안하다. 내 잘못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안 그러마."
하나님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복을 주시는 것이 원칙이라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강제적으로 인도하셔서 큰 복을 주시고 엘리는 범죄하도록 내버려두어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하신 것은 원칙이 없는 것이고 일관성을 잃은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엘리만 비교를 해 봐도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복을 주시고 똑같은 상을 주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성경적임을 확연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 "아브라함은 택자(구원받은 사람)이고 엘리는 불택자(지옥에 갈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차별대우하셨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으시겠지요?
거듭 강조합니다.
일반적인 복과 상에 관한 한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하시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신앙에 따라서 차별하시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런 원칙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큰 복을 약속받은 사람이라도 도에 지나치게 범죄하거나 고집스럽게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반드시 그 약속이 취소된다는 것을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구절을 좀더 제시하면 첫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들 수 있습니다.
민 14:22 - 민 14:23
(22)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만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두세 번 정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복을 주셨을 것인데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회개시키지 않고 멸망시킨다는 뜻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둘째 증거구절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창 26:4 - 창 26:5
(4)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혹은 하나님의 평가기준에 비해서 비교적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와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에 아브라함 자신은 물론 그의 후손들도 크게 복을 받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구원의 복에 관하여는 예수님이 충성스러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게 해 주시고 악한 므낫세 왕의 후손으로도 오게 해 주시는 것처럼 인간의 행위와 노력에 관계없이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이 절대주권과 일반적 복에 관한 상대주권을 구분할 줄 모르면 성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결론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오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 증거구절로는 예레미야 25장3절 이하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렘 25:3 - 렘 25:9
(3)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삼년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4)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5)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6)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7)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8)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9)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솟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범죄하는 사람을 강제로 돌이켜서 복을 받게 하시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증거해줍니다.
하나님은 범죄하는 이스라엘에게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재앙을 내려서 징계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고집을 부리고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제로 이스라엘을 회개시켜서 복을 주시지 않고 나라를 멸망시켜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야긴 왕 같이 비교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 남기셔서 이스라엘의 명맥을 잊게 해 주셨습니다.
강제로 회개시켜서 구원은 받게 해주셔도 강제로 회개시켜 복을 받게 해주시지는 않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일반적인 복도 받게 해 주시고 상도 받게 해주시는 분이시라면 바리새인들도 모두 강제로 회개시켜서 큰 복과 하늘의 큰 상을 받게 해 주셔야 옳은 것입니다.
사울왕에게도 그렇게 하셨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그렇게 하셨어야 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에게도 그렇게 하셨어야 합니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를 책망하면, 혹은 죄를 징계하면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자발적으로 즉시 깨닫고 회개하고 자발적으로 충성할 때만 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나처럼 징계를 받고 회개할 때만 다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나 사울 왕이나 출애굽한 이스라엘처럼 고집스럽게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큰 복을 주셨다가도 모두 거두어 가실 뿐만 아니라 큰 재앙까지 내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원칙이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상의 설명으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김영규 교수님 같은 분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상은 사람이 어떻게 믿든지 상관없이 모두, 그리고 반드시 받는다. 아브라함을 보니 그렇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범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인도하셔서 복을 주셨지 않은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 깨닫지 못하고 하시는 주장인 것입니다.
그릇된 주장을 하시는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누구든지 성경에서 도에 지나치게 범죄를 해도 하나님이 강제로 회개시키고 인도하셔서 큰 복을 받게 해 주신다고 가르치는 분명한 성경구절이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믿든지 모두 같은 복과 상을 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한 성경구절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매우 죄송한 말씀이겠으나 저는 성경을 약 100번 정도밖에 못 읽어서 그런지 그런 구절을 단 한군데도 찾을 수가 없군요.
저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사람이 많은 죄를 짓고 고집스럽게 회개를 거부해도 하나님이 강제로 예수님을 믿게 해서 구원을 받게 해주신다고 가르치는 구절은 있어도, 사람이 많은 죄를 짓고 고집스럽게 회개를 거부해도 하나님이 강제로 회개시켜서 큰 복을 받게 해주시고 큰 상도 받게 해주신다고 가르치는 구절은 한군데도 찾을 수가 없군요.
제발 좀 그런 구절이 있으면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잠잠하겠습니다.
혹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을 증거로 제시하실 지 몰라서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쓴 강권이라는 말은 "강력하게 요구한다"는 뜻이지 강제로 한다는 뜻은 아닌 것이므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큰복을 받은 것은 그가 죄를 짓기는 지었으되 크고 많이 짓지 않고 작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며 죄를 짓고 책망받고 징계를 받을 때 즉시 회개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스마엘을 버리고 이삭을 바치는 등 크게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크고 많이 그리고 고집스럽게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아브라함 역시 사울 왕이나 엘리 제사장이나 솔로몬 왕 같은 전철을 밟았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만일 다윗이 밧세바의 일 외에 다른 많은 죄를 지었고 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다윗도 큰 복을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오해가 있을까봐 다시 강조하거니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크고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범죄하고 결국은 회개를 하지 않고 큰 재앙을 받아서 일생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후손으로 메시아(예수)가 오시는 일은 취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일은 솔로몬이 그렇게 많은 범죄를 지속적으로 했어도 솔로몬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므낫세나 시드기야가 그렇게 많은 범죄를 지속적으로 했어도 그들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구원역사는 인간의 행위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절대주권을 가지고 강제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분명한 구절을 무시하고 모호한 구절만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거나 성경을 전체로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 보게 되면 이분들같이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로 성경보다 신학을 많이 연구한 분들이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신학이 성경을 보는 눈을 가릴 수도 있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분들이 신학의 잠에서 깨어나서 성경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이 미몽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보고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고 신조들을 읽으라고 권면한 목사님이 계셔서 한 말씀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싶습니다.
부디 성경 좀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박윤선 목사님을 인용하니까 어떤 목사님은 저를 성경보다 박윤선 목사님의 글을 더 높이는 합신의 정체성을 잃은 사람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님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씀이지만 제가 이 글을 쓸 때는 일부러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은 물론 어떤 주석도 보지 않고 썼습니다.
그 때문에 그분들의 글을 인용도 할 수 없었구요.
논리가 밀리니까 별 것을 다 가지고 트집을 잡기에 할 수 없이 드리는 말씀임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