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이단대처 - 유사기독교상담소
(인사말)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저희 상담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고신) 유사기독교 연구위원회에서 1995년에 개설한 상담소입니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로부터 본 교단 및 한국교회 성도들을 보호하고 이단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연구를 하며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이단연구 및 상담기관들과 유대 를 강화하며 협력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역자님들의 깊은 관심과 교육이 절실합니다. 일단 성도들이 이단으로 넘어 간 후에는 좀처럼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저희 홈페이지는 특성상 구체적인 글들이나 자료들을 개제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저희 연구위원회 위원들 중심으로 집필했던 주제들만 제시해 놓았습니다. 필요한 경우 말씀하시면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본 상담소의 상담 및 연구활동들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해주시고 협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최병규 목사 올림
상담소장 최병규 목사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서기
현대종교 편집위원
Th. D.(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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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단과 적그리스도를 경계합시다 예수님께서 종말론을 강론하시면서 마지막 대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하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신약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있어 왔습니다. 역사의 종말에 처한 지금은 적그리스도와 기독교 이단들이 우후죽순 처럼, 독버석과 같이 돋아나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단이란 말은 헬라어로 "하이레시스"인데 논쟁, 불화, 이단이란 뜻으로 거짓선지자(마7:15), 흉악한 이리와 노략질하는 이리(행20:29), 적그리스도(요1서 2:28), 거짓 사도와 궤휼의 역군(고후11:13-14), 암초(유다서 12절), 삯군 목자(요10:13, 슥11:16-17), 미혹케 하는 자들(요1서2:26)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복음을 왜곡시키거나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이며, 교회의 정회원들에게 속하지 않고 이탈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요1서2:18-22), 그리고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이단의 무리들은 교회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으므로 교회는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며, 교회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사단도 때로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려고 하기 때문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단들을 구분한다면 초대교회에 나타난 이단들과, 서양에서 유입된 이단들과 동양에서 발생한 유사 종교들과 한국에서 발생하거나 분파된 이단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이단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그릇된 열심은 기성교회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이단의 출현은 말세의 현상으로 영계(靈界)의 침체와 무지에서 나오며, 사단의 역사로 봅니다. 이단들의 폐해는 예상보다 많고 심각합니다. 선량하고 순진한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영과 육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 이단에 발목을 잡히게 되면 그들의 교리에 세뇌를 당하게 되고 이성을 잃어버리며 광신도가 되고 맙니다. 저는 1992년 시한부종말론에 빠져 학업을 포기하고 가출한 어떤 고등학생의 일기장을 본 일이 있는데 그의 하루 하루 생활이 소상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의 열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한번 이단에 걸려들면 좀처럼 그 집단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이단들의 출현과 이단에 빠지는 교인들에 대해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물양주의, 세속화로 인한 영적인 충족을 주지 못한 것과 교권과 교회의 집단 이기주의, 인본주의, 개교회주의, 교회의 영적 교만과 현실에 안주할려는 안일주의에 빠진 것이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무지와 성경에 대한 무지, 그리고 기성교회에 대한 회의와 실망, 사랑의 실천 없음이 교회를 이탈하여 이단에 빠지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단들로부터 선량한 양떼들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교회로 하여금 이단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이는 개교회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노회단위로 하거나 지역별로 연합집회를 하여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단의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하여 가기 때문에 안일하게 개체 교회로서는 대처하기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이단의 무리들은 끈질기게 교회를 괴롭히기 때문에 공동으로 대처함이 가장 바람직 합니다. 그리고 개교회적으로는 기도운동, 말씀운동, 영적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양떼들을 흉악한 이리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영적 권위를 회복하고, 교회에서 복음 외적인 요소들을 과감하게 개혁하고 제거하여 교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교인들의 신앙성숙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결속하여 재림신앙으로 무장시켜 신앙공동체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교인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2002. 11. 6
서 창 수 목사
유사기독교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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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직책 성명 노회 시무교회
위원장 서창수 목사 중부산 미남
서기 정우진 목사 부산 제3영도
회계 정재택 목사 남마산 마산성막
연구위원 박성복 목사 남서울 서울시민
연구위원 추광민 목사 전남동부 영주
연구위원 안주모 목사 대전 대전신일
연구위원 권동화 목사 울산남 언양
연구위원 임종운 목사 동서울 한빛
연구위원 심상훈 목사 경안 안동중앙
전문위원 김득진 목사 남마산 신광
전문위원 황규애 목사 경안 운산
전문위원 임진웅 목사 여순 순천은평
전문위원 최한주 목사 동서울 서울시민
전문위원 장희종 목사 경북 명덕
전문위원 이종관 목사 울산 울산시민
전문위원 조서구 목사 동부산 부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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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료)
2004. 3.
분류 제목 자료 집필자
가계저주론 가계저주론의 성경적 비판 바른신앙4집 이용호
공개죄자백사상 이유빈의 공개 죄 자백사상 바른신앙4집 이경열
구원파 구원파 비판 유사종교연구1집 박정덕
구원파 구원파를 바로 알자 유사종교연구2집 정재기
구원파 새로운 구원의 확신의 길(?) 바른신앙 6집 김경수
구원파 박옥수(구원파)의 이단성 바른신앙5집 임진웅
귀신론 비교 귀신론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귀신론 마귀란? 바른신앙2집 신영신
귀신론 미혹의 영이란? 바른신앙2집 김낙춘
귀신론 귀신이란? 바른신앙2집 정수생
귀신론 김기동 목사 귀신론 비판 유사종교연구2집 오성환
기도원 운동 기도원 운동의 문제점 바른신앙1집 오성환
기도원 운동 기도원 운동의 윤리성 바른신앙1집 김철봉
기도원 운동 불건전 기도원이 끼치는 사회 문제 바른신앙1집 전용복
기도원 운동 바람직한 기도원 운동 바른신앙1집 이용호
남묘호랑게교 남묘호랑게교 바른신앙4집 김진학
뉴에이지 뉴에이지 운동의 위험성 바른신앙2집 윤현주
뉴에이지 뉴에이지 운동에 빠진 아들 때문에 바른신앙2집 전용복
뉴에이지 뉴에이지 운동 경계령 바른신앙4집 윤현주
뉴에이지 뉴에이지의 종교적, 문화적 접근 바른신앙 6집 윤현주
다락방 다락방 이단성 연구 보고 바른신앙2집 고신교수회
다락방 다락방 운동의 근황 바른신앙5집 윤희구
다미선교회 이장림과 다미 선교회 유사종교연구2집 곽삼찬
다미선교회 종말론적 이단 (다미선교회) 유사종교연구3집 박정덕
단군 단군상 문제에 대한 소고 바른신앙7집 김대건
단군 단군상 건립에 대한 신학적 조명 바른신앙4집 전태
단군 기. 단. 선. 기공 바른신앙3집 윤현주
단군 단학선원의 실체 바른신앙 6집 박문철
대방주 대방주 교회 유사종교연구3집 정재기
대순진리 대순진리회 유사종교연구3집 박기민
대순진리 대순진리회의 개론적 고찰 바른신앙2집 주준태
대학가 대학내의 민족 종교 및 불건전 단체 유사종교연구4집 김철봉
대학가 학원선교단체 현황 바른신앙1집 김재성
라엘리안 무브먼트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허구성 바른신앙7집 황규애
로고스선교회 로고스선교회 바른신앙7집 박문철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씨의 이단성은 무엇인가 바른신앙3집 최삼경
만민중앙교회 이재록(만민중앙)씨에 대한 연구 바른신앙3집 이용호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씨에 대한 연구보고서 바른신앙3집 한기총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그는 누구인가? 바른신앙3집 김재성
말씀보존학회 말씀보존학회 바른신앙4집 윤희구
몰몬교 몰몬교란 어떤 종교인가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몰몬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 (몰몬교) 바른신앙5집 주준태
박무수 박무수 목사의 4단계 회개 비판 바른신앙4집 황규애
부활의 교회 부활의 교회 유사종교연구1집 황삼수
부활의 교회 산해원 부활의 교회 이태화 목사의 이단성 바른신앙5집 황규애
불교 불교의 허구성 유사종교연구2집 박기민
빈야드운동 빈야드 운동의 개관적 고찰 바른신앙1집 오성환
사탄숭배 사탄 숭배의 실상과 경계 바른신앙2집 전태
상담사례 상담사례와 교훈 바른신앙1집 이용호
상담사례 상담사례 심층 연구 바른신앙2집 이용호
새들백 교회 새들백 교회 성장 세미나의 역기능과 순기능 바른신앙2집 박광석
새빛등대중앙교회 김풍일의 비성경적인 주장에 대한 비판 바른신앙7집 김경수
새빛등대중앙교회 김풍일 새빛등대중앙교회 바른신앙4집 김경수
서평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 (서평) 바른신앙4집 송경호
서평 교회사 안에 나타난 이단과 정통(H. O. J. Brown) 바른신앙7집 김득진
서평 사이비 종교 (서평) 바른신앙4집 김득진
시온기독교신학원 무료성경신학원의 또 다른 정체 바른신앙3집 문재섭
시온기독교신학원 대한기독교 장막성전 (무료성경신학원) 바른신앙5집 전은표
시온기독교신학원 시온기독교 신학원 바른신앙 6집 최병규
신유 치유사역에 대한 고찰 바른신앙1집 황삼수
안수, 안찰 안수에 대한 성경적 고찰 유사종교연구4집 정재기
안식교 안식교의 문제성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안식교 안식교(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바른신앙4집 임진웅
안식교 제칠일 안식교에 관한 소고 바른신앙 6집 서창수
엘리야 복음 엘리야 복음 선교회 비판 유사종교연구3집 박정덕
여호와 증인 여호와 증인 비판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여호와 증인 알고보니 여호와 증인이더군요 바른신앙2집 조태윤
여호와 증인 여호와의 증인 바른신앙5집 김경수
여호와 증인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비판적 고찰 바른신앙 6집 윤희구
영생교 영생교에 대한 비판 유사종교연구4집 오성환
영성훈련 박철수 목사의 영성훈련의 실체 바른신앙4집 배굉호
영성훈련 박철수 목사와 그의 영성훈련 비판 바른신앙 6집 황규애
예수전도단 예수전도단 연구 바른신앙1집 배굉호
오컬트 오컬트적 체면술 비판 유사종교연구3집 전용복
이글레시아니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 유사종교연구2집 황삼수
이단 각종 전도 단체 협회 및 실체 분석 바른신앙1집 김철봉
이단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는 이단들 바른신앙4집 주준태
이단 영적 전투에서 살아 남을 것인가 바른신앙1집 정성구
이단 열린 시대와 영적 전투 바른신앙2집 김재성
이단 인간의 종교성과 숭배의 대상 바른신앙4집 김재성
이단
반 기독교적인 서적들유사종교연구4집
전용복
이단 주변 신학과 그 대책 바른신앙2집 김의환
이단 이단과 엘렝틱스적 대응 바른신앙3집 이신철
이단 이단. 사이비 대책과 연합 운동 바른신앙2집 오성환
이단 신 우상숭배론 바른신앙2집 이용호
이단 영적 침체와 사이비와의 관계 바른신앙2집 김경수
이단 이단.사이비 분별, 구약적 원리 바른신앙4집 김진섭
이단 이단에 대한 교회의 대응 바른신앙4집 윤진구
이단 사이비.이단 문제 곧 교회의 문제이다 바른신앙5집 최삼경
이단 이단을 분별하는 방법 바른신앙5집 김득진
이단 지구촌의 신흥종교와 이단들의 도전 바른신앙7집 전호
이단 현 시대에 나타나는 이단과 기초적인 대처방안 바른신앙7집
탁지원
이단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이단 바른신앙7집 최병규
이슬람 이슬람교란 무엇인가? 유사종교연구3집 김철봉
이슬람 이슬람: 이단인가 이데올로기인가? 바른신앙 6집 전호진
이초석 이초석의 이단성 바른신앙7집 임종운
종말론 시한부 종말론을 경계하며 바른신앙3집 김낙춘
지방교회 워치만 니와 "형제"용어 유사종교연구1집 이병길
지방교회 지방교회의 정체 유사종교연구2집 전용복
천국간증 쏟아져 나오는 천국 간증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천국복음전도회 다시 일어나는 천국복음전도회 바른신앙7집 임진웅
천부교 박태선과 그의 천부교 유사종교연구1집 박기민
천주교 천주교 비판 유사종교연구2집 진종복
천주교 천주교에 대한 이해와 경계 바른신앙2집 배굉호
통일교 통일교 비판 유사종교연구1집 권재기
통일교 통일교의 교리와 최근 동향 유사종교연구4집 황삼수
통일교 통일교의 오늘과 위장된 모습 바른신앙7집 최한주
통일교 탈종교 앞세운 통일교 참가정 운동 실상 바른신앙2집 심영식
통일교 통일교 가정의 집안은 평안한가 바른신앙3집 오윤표
통일교 참가정실천운동의 정체 바른신앙5집 전 태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바른신앙3집 김경수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증인회 바른신앙 6집 임진웅
할렐루야기도원 할렐루야 기도원 유사종교연구2집 박정덕
할렐루야기도원 할렐루야 기도원 연구 보고 유사종교연구3집 오성환
할렐루야기도원 할렐루야 기도원 (김계화) 바른신앙5집 윤현주
JMS 애천교 (젊은 세대와 대학가) 유사종교연구3집 황삼수
JMS 정명석 집단의 애천교회 바른신앙3집 정수생
JMS 정명석 - 문화,스포츠,사회봉사 영역 침투 바른신앙7집 윤현주
JMS 국제 크리스챤 연합 바른신앙 6집 윤진구
TD 뜨레스디아스(Tres-Dias) 무엇이 문제인가? 바른신앙5집전 태
UBF UBF란 어떤 단체인가? 바른신앙3집 전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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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 연재 >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3/09/05 09:44
조회수 : 246
파 일 : 이단이란 (월간고신 연재 01, 최병규).hwp (22K)
본고는 월간고신 (2003)에 게재된 필자의 글입니다.
이단 ? 사이비 단체 경계
최병규 목사
총회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상임위원
Th.D. (교회사)
1. 이단들은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의이단 사이비 단체들의 활동은 활발하다 못해 이제는 기성교회들에 대항하여 정면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포교전략들은 점점 더 다양성을 띠고 있다. 과거 이단사이비 단체들은 전통적으로성경공부나 설교를 통하여 직접적으로그릇된 교리(異說)를 가르쳐 왔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들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아주 다양한 은폐적이고도 우회적인 포교전략들"을 펼치고 있다. 최근들어 미국 공군에서는 적군의 미사일을 수초만에 완전 파괴할 수 있는 새로운 레이저 무기 시스템을 개발하여 2012년까지 실전 배치한다는 목표를 수립하기도 한 것처럼, 이단 사이비 단체들 역시 전술 전략 공격방법 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사회문화적인 흐름을 타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택하여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그러한 위장전술 가운데 일례는 바로 "문화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그들은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스포츠 댄싱이나 재즈 댄싱을 가르쳐준다. 그런 접근은 청소년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보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연극, 토론회, 영어교육 등의 미끼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만약에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면 기성교회에 다니는 상당수의 학생들은 발길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은 사이비이단 단체들이 처음부터 드러나게 자신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적절한 시기가 지난 다음에 즉 그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주면서 기초적인 이단교리 성경공부를 시켜놓은 다음에야 밝히기 때문에 때는 늦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단의 접근은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그곳에 연루된 이들은 당장에는 이상한 증세를 느끼지 못하지만 적절한 시기가 지나서 증세를 느낄 즈음에는 이미 심각하게 감염되어 있어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건강을 생각하게 만드는 접근들’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이단사이비 단체들은 "비종교적 혹은 비신학적 색체"를 띠고 기성 교인들에게 접근하는데, 그들이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전략 하나는 "건강을 생각하게 만드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길을 가다가 보면 전신주에 직장인같이 보이는 젊은이들이 명상을 하며 시원함을 느끼고 있는듯한 포스트들을 볼 수 있다. "기"를 현대인의 스트레스나 건강 문제와 연관하여 소개함으로써 자신들의 단체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그리고 실제적으로상당 수가 그러한 수련원에 가서 건강지도를받는다. 심지어는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모르고 가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믿음이 깊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점점 수련의 도가 지나칠수록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건강문제"로 접근해 온 그 단체들은 바로 "종교성"을 띤 활동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가정방문’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단사이비 단체들은 종종 "가정방문"을 통하여 기존 성도들에게 접근한다. 길거리에서만 외치지 않고, 학교 주변이나 캠퍼스에서만 전하지 않고, 그들은 과감하게 그러나 가장하여 성도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그들은 "신학생"으로 위장하여 교패가 붙은 성도들의 집 벨을 누른다. 집 안에서 누구시냐고물으면 그들은 "네, 저는 신학생입니다"라고 응대하면서 "설문조사"를 나왔는데 간단하게 좀 알려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에 신학생들이 자기교회도 아닌 다른 교인들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다. 성도들의 마음은 신학생이라고 하는 말에 쉽게 움직여 질 수 있도록 복음전파자들을 향하여 순진하다. 그러나, 일단 그들을 들여놓고 나면, 그들은 성도들의 가족과 신앙생활이나 연락처 등을 적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이 유리한 방법으로 이용해 올 것이다. "우는 사자와 같이" 그러나 "양처럼 온순하게" 그들은 다가와서 성도들과 성도들의 가족들을 현혹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기독교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단사이비 단체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최후의 양상은 바로 "기독교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다. 이제 이단들은 한 두 경우들을 통하여 자신들이 예전처럼 정죄받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하여 뒤로만 이단교리를 전파하는데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명예훼손" 등의 명목을 붙여서 자신들을 공격하는 건전한 기독교 단체나 이단대책위원회들에 대하여 "정면 도전"하기를 일삼는다. 이것은 한국교회 전체가 당면한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된다. 실로 한국기독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건전한 장로교 내에서도 예전에 중대한 신학적인 문제로 제명당한 이를 별문제가 없는 것처럼 희석시키려 하는가 하면, 이단혐의를 받고 있던 이를 비호하는 이들이 평생을 이단연구에 종사해온 사역자를 구속되게 하는 등등 정말 혼미스런 시대, 즉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의 할 일
물론,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위에서 대표적으로 열거한 전략들 외에 폭넓고도 다양하게 성도들과 불신자들을 공략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평온하기만 한 것같은 우리 주변의 환경 속에서도 이단들의 활동이 이렇게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세워가야 하겠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의 예배시간들 마다 외쳐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더욱 진지하게 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개교회에서 개설하고 있는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말씀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단 사설이 제아무리 극성을 부린다고 해도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는 성도들을 쓰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다. 타 교단 타 교회의 저명한 교역자들의 명설교도들도 귀하지만,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교역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지혜롭다. 이렇게 말씀으로 무장되어 가고 자신이 기도생활을 계속할 때에 성령께서는 이단사이비 단체들에 물들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섬기는 훌륭한 청지기들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번호부터 연재되는 일련의 글들을 숙지하고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의 성도들을 일깨우고, 나아가서 이단 사이비에 빠진 이들을 구출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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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사이비단체 경계 (2)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3/09/05 09:45 (2003/09/05 09:45)
조회수 : 126
파 일 : 이단이란 (월간고신 연재 02, 최병규).hwp (22K)
< 연재 >
이단 ? 사이비 단체 경계
최병규 목사
총회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상임위원
Th.D. (교회사)
2. 이단들의 특징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이단 사이비단체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들은 직접적인 전도 외에도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고, 건강을 생각하게 만드는 접근방법들을 사용하며, 나아가서 가정방문을 통하여 다가오며, 급기야는 기독교에 정면도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단이란 무엇이며 이단의 특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단이란 그리이스어의 "하이레시스"(hairesis)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뜻은 본래 "자의적 선택"을 의미했으나 차츰 기존 기독교의 교리에 대하여 그릇된 입장을 취하는 무리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단이란 현대에 와서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성경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으며 (갈 1:7-10),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한2서 1:10). 그만큼 이단이란 파괴적이며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단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이단은 ‘삼위일체론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양태론(Modalism)이다. 주후 200년 경 사벨리우스(Sabellius)에 의해 주장된 이 교리는 성부, 성자, 성령을 단지 한 하나님의 세 존재 양태 혹은 현현으로 이해했다. 즉 하나님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자신을 각기 다른 "형태" 혹은 "양식"(Modes)으로 계시하셨다는 학설이다. 이러한 양태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은 받아들이면서도 창조부터 영원까지 성부와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또한 성령의 인격성를 부인하며, 한 하나님 안에서 세 인격들이 상호동등한 권위와 경륜을 하고 계심을 인정치 않는다.
다음으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기독론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혹은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에비온파(Ebionites)나 알로기파(Alogi) 같은 이단들이 일어났다. 알로기파는 예수를 단순히 인간으로 보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 그의 위에 강림하여 초자연적인 권능을 부여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인성을 부인한 첫째 이단은 사도시대에 나타난 그노시스파(Gnosticism)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교회 역사에 최초로 나타난 신학적 이단들 중 하나로서 예수는 인간으로 보여진 것일 뿐 실제적으로 육신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들은 물질을 고유적으로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보는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악한 물질인 육신을 입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아리안주의는 그리스도를 신적 이성인 로고스와 구별하고, 하나님은 아니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시간 이전적이고 초인적인 피조물로 보았다.
세번째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성령론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즉 그들은 성령의 신성 즉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령의 신성은 교회의 중요한 교리였다. 교회역사에는 성령이 하나님의 피조된 능력 내지 도구라고 주장하는 이단들이 등장했다. 4세기 경의 아리안파나 종교개혁시대의 소시니안파들은 성령을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함으로서 신성을 부인해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하나님 안에는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을 가진 삼위가 통일을 이루고 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자존하셔서 나시거나 영원히 나오셨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오신 분이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 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령론에 잘못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한국교회적 상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인간인 자기자신을 보혜사로 내세우려고도 한다.
네 번째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계시의 완전성’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개인적으로 받았다고 하는 계시를 성경과 같은 수준으로 여기려 한다. 그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이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적인 부분들에 대하여 ‘바른 풀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성경은 세세하게 설명해놓고 있지 않은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받고 성장해가기에 충분한 지식을 주고 있다. 인간이 성경을 억지로 풀려고 할 때 대부분 오류에 빠지게 된다. 신자는 성경이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하여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는 주관에 치우쳐 자칫 잘못하면 이설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다음으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그릇된 영성훈련을 절대시’한다. 즉 그들은 오도된 ‘영적 엘리트 의식’을 가지곤 한다. 초대교회 직후 156년 경부터 소아시아 지역에서 예언활동을 하면서 당시 교회의 세속화 및 제도화에 강력한 반발운동을 하던 단체가 있었는데, 그것은 몬타누스가 이끌던 운동인 몬타니즘(Montanism)이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Pneumatics)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몬타누스는 자신이 ‘특별한 예언적 은사’를 받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려 했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소개하면서, 막시밀라와 브리스가라는 두 여제자들을 포함한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게 영적 엘리트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이원론적 성향’이 강하다. 그들은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극렬하게 대조시킨다. 카타리파(Cathari)는 극단적으로 금욕적이었으며 그들 자신만이 진정한 교회라고 믿었다. 그 결과 그들은 로마교의 종교재판으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다가 1300년 경 그 세력이 약화되었는데, 그들은 물질과 정신의 기원을 서로 다른 두 존재에 두었다. 보고밀파(Bogomils) 역시 아주 금욕적이었으며 이원론적인 성향이 뚜렷했다. 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식의 이원론적인 성향은 이단 사이비 단체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배타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만이 ‘선민’이라고 하는 의식을 강조한다. 그들은 기존교회의 신자들을 마치 악마의 추종자처럼 규정한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여자적인 14만 4천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통교회에서는 그 숫자를 구원얻을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끝으로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그릇된 재림론’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만 오신다고 하든지, 아무도 모르게 이미 재림했다든지, 직접오지 않고 대리인을 보낼 것이라고 한다면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들만 재림의 날짜를 예고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이단이다.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행1:7).
그러므로 주의 신실한 성도들은 깨어 있어서 이단들의 그릇된 교리들로부터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야 하겠다.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성도들을 돌봐줘야 할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성도들 개개인이 바른 교리의 기초 위에 굳게 서 있을 때에 주님의 교회는 든든히 서 가게 될 것이고, 이단 사이비 세력들은 성도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단 사이비를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개개인이 바른 교리 위에 굳게 서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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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사이비단체 경계 (3)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3/09/05 09:46
조회수 : 161
파 일 : 이단이란 (월간고신 연재 03, 최병규).hwp (26K)
< 연재 >
이단 ? 사이비 단체 경계
최병규 목사
총회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상임위원
Th.D. (교회사)
3. 이단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이단 사이비 단체들이 삼위일체론, 기독론, 성령론 등을 비롯해서 계시관, 구원관, 재림론 등등 역사적 기독교회와는 이질적인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이번호에서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이단 사이비단체에 빠지기 쉬운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가 여기에서 제시하는 경우들은 이단에 빠지고 있는 이들을 포함하여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는데도 유익할 것이다. 이미 이단에 빠진 이들 보다는 오히려 우리들 혹은 주위에 있는 성도들의 성향을 미리 알고 대처한다면 그릇된 단체들의 미끼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성향을 지닌 이들이 이단 사이비단체에 빠지기 쉬울까?
무엇보다도 먼저 초신자들의 경우이다.
초신자들은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처음 사랑에 감격해 한다. 그들의 믿음은 순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고, 기도하기를 원하며, 교회 활동들에 개입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통교리를 따르는 기성교회가 아닌 교회 밖의 어떤 모임에 잘 못 개입되면 그들은 이설을 주장하는 자들의 모임으로 유입되게 된다. 그러므로 초신자들 주변에는 항상 신실한 성도들이 있어줘야 한다. 그들을 보호해주고 그들이 바른 신앙지식으로 굳건하게 자라가도록 기도와 교육과 모범으로 지도해줘야 한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경우에도 이단 사이비단체의 포획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구원파 여신도가 여의도 어느 교회에 다니는 여집사님께 접근해서, 구원받았느냐고 물어온다. 그때 여집사님은 자신의 행위들을 생각하면 언뜻 구원받았다고 확정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러면, 이단 추종자는 성도들의 바로 그 점 즉 ‘구원의 확신이 없는 그 점’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 필자는 그러한 경우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집사님의 경우에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임을 굳게 붙들었다. 자신이 구원받은 날과 시는 모르더라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라고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것이다 (참조. 요 3:16, 5:24; 행 16:31; 롬 10:9, 13; 고전 12:3).
정보가 부족할 경우이다.
얼마 전 어느 지역 병원에 입원한 성도로부터 상담전화를 받았다. 그렇지만 본 상담소에도 그 단체에 대한 자료가 없었고, 초교파 기관들의 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정보가 부죽했던 것이다. 연구하기에는 시간 및 여러 제약들이 따르는 경우였다. 그러나, 내담자가 설명하고 있는 정황을 들어보니 그 성경공부 인도자는 분명히 최근들어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한 이단이 가지고 있는 성향과 비슷했다. 그런데 상담자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부족할 경우에도 그렇지만, 내담자 (혹은 성도들) 자신이 그 단체(성경공부, 혹은 기도회 등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곤란하다. 만약 지금 나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있다면, 내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의 성격부터 정확하게 그러나 비밀리에 파악해보는 기회를 가지자.
종종 정서적 욕구가 채워지지 못한 경우에 이단 사이비단체로 간다.
기성교회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이단교파로 갔더니 그곳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객지에 나가서 직장을 다니는 누나는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때문에 고민이 많다. 왜냐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자기 남동생이 이단에 빠졌있다는 것을 알면 큰 일 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은가? 누나가 타 일러도 동생은 말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동생은 이단진영으로부터 돌봄과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리가 문제가 아니라, 이단측의 신자들의 사랑이 그 청년의 마음 속에 기성교회에서 채워주지 못한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진정한 용서와 사랑의 복음을 깨닫고, 또 성도들의 순수하며 가슴뭉클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체험하게 해줘야 할 것이다. 인간은 지정의를 다 갖추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교회가 지적인 전달에만 그친다면, 냉랭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인적인 교회활동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며, 성도들도 서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주관적으로 푸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에게 찾아 올 수 있는 위험 중의 하나는 일순간 그 자신이 넘어서는 안 될 ‘지식적인 경계’를 넘어버리는 데 있다. 성경의 각 구절마다 보편적이며 보수적인 해석이 있다. 그러한 해석들은 때로는 선명한 지식을 전달해주지만 때로는 미흡한 듯할 때가 있다. 바로 그럴 때 신앙인은 자신의 주관에 치우쳐서 ‘주관적으로’ 성경을 풀이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경험한다. 만약 성경의 각 구절들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의 편의를 따라서 해석해버리기 일쑤라면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사역이 불완전하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문선명 목사와 그의 부인을 사랑했다. 그것은 마치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결별하고, 사랑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문목사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문목사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나는 1936년 부활주일에 그리스도가 그에게 말하기를 ‘나의 미완성된 사명을 수행하라’고 말했다고 한 것을 정말 믿었다. 나는 하늘로부터 ‘문 목사가 인간구원의 완성자가 될 것이요 그리스도의 재림이 될 것 것이라고 들었던 음성을 믿었던 것이다. 나는 낙원에서 예수와 다른 성인들이 문목사에게 원리강론(Divine Principle)을 계시해주었다는 것을 믿었다. 예수님은 실패했기 때문에 문목사가 거룩한 가족을 양육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믿었다.” 이 이야기는 ‘이단에서 교회로’(Out of the Cults and Into the Church)라는 책을 낸 재니스 허친슨(Janis Hutchinson)이 통일교 이탈자였던 엘리자벳과의 면담내용을 소개한 글이다. 우리가 여기에서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의 구원’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경우이다. 주님 자신의 입으로부터 우리가 듣게 되는 사실은 ‘다 이루었다’고 하신 분명한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마치 우리 주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불완전하니, 그것을 완전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보냄을 받았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엘리자벳의 경우는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성도들은 그러한 이설 주장자들의 혹하는 소리를 거절해야 할 것이다. 안토니 후커마(Antholy A. Hoekema) 교수가 ‘4대 주요 이단’(The Four Major Cult)에서 잘 지적한 바와 같이, 이처럼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평가절하하고 유일한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축소화한다.
신비주의적 성향을 가진 이들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자체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자의 신앙생활이 ‘신비주의’로 기울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있다. 하나님의 많은 뜻들은 성경 속에 이미 제시되어 계시다. 신자의 삶에 대한 많은 방향들과 지시들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비스런 응답들(?)을 통하여 매사를 결정해가려고 하는 것은 건전하지 못하다. 그러한 성향을 가진 이들은 ‘신비주의적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는 그릇된 이단 사이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로 연결된 가능성이 높다.
기성교회에 불만이 많은 경우이다.
이단의 대부분은 기성교회 목사나 지도자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측면들’을 공격해 댐으로써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을 현혹한다. 이단 사이비 추종자들이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찾아와서 거의 빠뜨리지 않고 지적하는 것이 바로 ‘기성교회의 비리’에 관한 것이다. 물론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종종 교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조금 더 솔직히 말해서 부정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우리의 순수했던 신앙이 거짓으로 인해 오염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기성교회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인간이나 교회제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신앙의 표준과 목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야 말로 우리 믿음의 시작자요 완성자이시기 때문이다 (히 12:2).
이상에서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이 이단 사이비 단체들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경우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들 자신, 나아가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주의 성도들이 그러한 성향들을 통제받아야 할 것이다. 신자의 지정의는 성령의 인격적인 지배와 통제력에 의하여 다스림 받을 수 있다. 신앙생활이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방종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생활이다. 건전한 교리에 기초해 있고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때에는 이단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이단에 빠진 후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성도 개개인이 이단의 현혹에 넘어가기에 쉬운 성향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통제받고 스스로 무장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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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3/27 11:28 (2004/06/29 15:21)
조회수 : 56
* 이 글은 고 탁명환 소장의 10주기에 즈음하여 상담소장이 국민일보에 기고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이단연구에 대한 전망
- 고 탁명환 소장 10주기에 즈음하여-
최병규 목사
예장고신 이단상담소장
신학박사 (교회사)
우리는 저명한 이단 연구가이자 한국교회 이단연구의 초석을 놓았던 고 탁명환 소장의 10주기를 맞이했다. 진리파수와 이단대응을 위한 탁소장의 희생적인 헌신은 오늘날에도 한국교회 성도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이러한 뜻 깊은 시기에 우리 한국교회는 이단연구에 대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탁소장의 순교 후에도 몇몇 이단들에 대한 규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단 사이비 단체들의 활동은 감소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활기를 띤다. 그들의 전략은 더욱 치밀해져서 심지어는 기성교회 내부에까지 침투해 오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인간 교주를 보혜사로 혹은 하나님으로 추종하는 세력들에 의하여 위협당하고 있으며, 그릇된 신비주의적 이단자들 및 영성훈련가들에 의하여 혼란을 겪고 있다. 대학가에서의 이단활동은 더욱 현저하다. 이단들은 각종 서클활동들을 통하여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전도 서클만이 아닌 문화, 봉사, 교육부 등등의 다양한 서클들을 통하여 크리스천 대학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국교계가 잠잠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 앞에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주님의 경책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한국교회는 이단 사이비 단체들에 대항하여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그동안 필자가 여러 지면을 통해 강조해 왔던 몇 가지 대안들을 제시해본다.
먼저, 목회자들부터 이단의 심각성 인식해야 한다. 평신도들을 이단 사이비 단체들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목회자들 자신부터 경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는 이제 이단의 도전에 응전하기 위한 대응에너지들을 집약해야 한다. 환언하자면 교계 연합기관들과 협력체제 구축해야 한다. 현재 각 교단과 이단전문 연구기관들의 영적 잠재력은 아주 탁월하다. 그처럼 훌륭한 전문적 연구기관들과 각 교단의 이단대책위원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지엽적인 대응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엽적 대응은 영적 물리적 에너지들을 쉽게 소진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가령 한기총 이대위같은 연합기관을 중심으로 한 총체적인 연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대응에너지를 결집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로,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에게 교리교육을 시켜야 한다. 교리교육은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목회자 자신들부터 교리문답서들 및 신앙고백서들을 다시 연구하여 평신도들의 수준에 맞추어 교육시켜야만 평신도들이 성경과 삶에 대하여 체계적인 지식을 갖게 된다. 이 부분을 무시했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이단들에 의하여 잠식당했던 것이다. 최근 수도권 지역의 어느 대형교회가 이단비판 서적을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나눠줘 숙독하도록 하고 있으며, 담임목사가 직접 조직신학을 강의하는 등 실제적인 교리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제자화운동과 부흥운동을 주도해온 ‘대형교회들의 차례’가 되었다.
넷째, 각 교단은 이단대책위원회를 더욱 강화시키고, 신학교 교수들을 적극 개입시켜야 하며, 교단별 이단상담소를 개설하여 전문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교에서도 이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계는 범교파적인 ‘이단경계주일’ 지켜야 한다. 이단세력으로부터 자신의 교회 성도들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범교단적인 경계주일을 선포하고 지켜야 하겠다.
바라기는 필자의 소박한 제언들이 한국교계에 수용되어 주님의 교회가 든든하게 보호되고 한국교회는 더욱 부흥해 가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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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4/02 11:59
조회수 : 95
* 이 목록은 한기총 이대위의 이단 사이비 종합자료 2004에 게재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1. 구원파(권신찬?유병언?이요한?박옥수)
기성(1985/40/이단사이비집단), 고신(1991/41/이단), 통합(1992/77/이단), 합신, 합동
2. 김계화(할렐루야기도원)
한기총(2000/이단), 통합(1993/78/비성경적, 비기독교적) 합동(1996/81/이단성), 고신
3. 김기동(귀신론?베뢰아아카데미?서울성락교회)
고신(1991/41/이단), 합동(1991/76/이단), 통합(1992/77/이단), 합신, 기성, 기침(1987/이단), 기감
4. 나운몽(용문산기도원)
통합(1955, 1956, 1998년 이단), 고신,
5. 뜨레스 디아스
고신(1992/42/불건전), 통합(1994/80, 2002/87/목회자 추천 받도록)
6. 이명범(레마복음선교회?TD)
고신(1992/42/불건전한 단체), 통합(1992/77/이단), 합신, 기성
7. 류광수(다락방전도운동?예장전도총회)
고신(1995/45, 1997/47/이단), 통합(1995/81/사이비성), 합동(1996/81/이단), 기성(1997/52/사이비운동), 기감(1998/23/이단), 기침(1997/이단성), 고려, 합신
8. 이송오(말씀보존학회)
합동(1998/83/이단), 통합(2002/87/반기독교적 주장)
9. 몰몬교(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합신, 고신, 기성, 기장
10. 박무수(부산제일교회?4단계 회개)
기성(1999/54/이단), 통합(1999/84/비성경적, 사이비적)
11. 박윤식(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
통합(1991/76/이단)
12. 박철수(새생활영성훈련원, 아시아교회)
합동(2000/85/비성경적인 영성사상, 교류금지), 합신(2001/86/위험한 신비주의, 참석금지), 통합(2002/87/연장연구)
13. 밝은빛종말론
기성(1988/43/사이비성)
14. 밤빌리아추수꾼
통합(1990/75/이단), 고신, 기성(이단)
15. 빈야드운동
고신(1996/46/참여금지), 기성(1998/53/사이비성), 통합(1995/81/도입금지), 합동(1997/82/참여자 동조자 징계)
16. 서달석(강서중앙교회?서울중앙교회)
통합(1993/78/이단)
17. 시한부 종말론(이장림)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합신
18. 안증회(안상홍 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한기총(2000/이단), 통합(2002/87/이단)
19.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예장총회(1915/4/면직제명), 통합(1994/80/이단), 합신, 고신, 기성, 합동
20. 엄명숙(명인교회)
통합(2001/86/이단)
22. 박명호(엘리야복음선교원?한농복구회)
통합(1991/76/이단), 고신, 합동
23. 여호와새일파(이뢰자?새일교회)
기성, 합동
24. 여호와의 증인(왕국회관)
고신, 기성, 기장, 합신
25. 조희성(영생교)
고신, 합신
26. 예태해
합동(1994/79/이단성 혐의), 기장(1996/81/단호대처), 통합(1999/84/예의주시)
27. 이만희(무료성경신학원?시온성경신학원?신천지교회)
통합(1994/80/이단), 합동(1995/80/신학적 비판 가치 없음), 기성(1999/54/이단), 고신, 합신
28. 이옥희(태백기도원)
통합(1993/78/비성경적)
29. 이유빈(예수전도협회)
합동(1999/84/참여금지), 기성(1999/54/경계집단), 합신(2000/참여금지), 통합(2001/86/참여금지)
30. 이윤호(가계저주론)
합신(2001/86/비성경적사상, 참여금지)
31. 이재록(만민중앙교회)
예성(1990/84/이단), 한기총(1999/이단), 통합(1999/84/이단), 합신(2000/85/이단)
32. 이초석(한국예루살렘교회)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기성(1994/49/이단), 합신, 합동
33. 정명석(JMS)
고신(1991/41/이단), 합신, 기성
34. 지방교회
고신(1991/41/이단), 통합(1991/76/이단), 합신, 합동
35. 크리스천 싸이언스
기성, 고신, 합동
36. 문선명(통일교?가정교회?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고신, 통합, 기성, 기장, 합신
37. 황판금(대복기도원)
통합(1993/78/사이비집단)
38. 크리스챤신문
한기총(2003/이단옹호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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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이단과 서클 활동
최병규 목사
총회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서기
현대종교 편집위원
Th. D. (교회사)
이단들의 공략방법들은 다양하다는 점을 누누이 언급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그들은 기성교회들 속에 자신들의 추종자들을 위장등록(僞裝登錄)시키고 있으며, 이미 침투한 이들이 다른 멤버들을 새신자인 양 인도하도록 하고 있다. 이단 단체들이 기성교회를 향하여 이러한 전략을 구사함과 동시에 또 다른 주된 목표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캠퍼스’이다. 이단들은 캠퍼스에서 전혀 타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접근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경우에는 신자의 자녀들을 포함한 ‘기존 크리스천 대학생들’이다. 이단은 내일 교회의 주역이 될 신자의 자녀들을 캠퍼스에서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자들의 자녀들 중 적지 않은 대학생들은 이미 그들에게 노출되었으며, 현재 이단들의 집회에 참여하거나 성경공부 혹은 Q.T.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이단 단체에 성도의 자녀들이 노출되기 시작하면, 그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지만 일정한 단계가 지나고 나면 자신들의 정체를 알린 후에 반응을 쳐다본다. 신자의 자녀들이 일단 이단에 연루되어 그들의 교육을 받게 되면 영적 정신적 혼동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위기를 겪게 되어 있다. 그 결과 그동안 주입되어진 이단 사상에 의하여 그릇된 자아관을 형성하게 되며, 자신의 삶 속에서 최대의 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단은 교회 밖 특히 ‘캠퍼스’에서 포섭 대상자들을 찾는다. 꿈과 낭만, 지성과 진리를 향한 탐구가 있어야 할 캠퍼스들이 이제 이단 단체 출신의 학생들에 의하여 잠식당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단들의 캠퍼스 공략 방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국내외적으로 계속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단 사이비단체들이 입시학원들에서 공부하고 있는 재수생들까지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는 캠퍼스 이단 문제를 재고할 때에 대학생은 물론이며 입시 준비생들과 고등학교 이하의 학생들에게까지도 폭을 넓혀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학가나 학원에서의 이단 사이비단체들의 활동은 점점 더 조직화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기성교회의 학원복음화 전략에 못지않게 그들의 시스템을 정비하고 심화시키고 발전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학원가를 점령하려고 한다. 벌써 일부 대학교에서는 그러한 사례가 드러났다. 그들은 더욱 더 조직적인 방법으로 기성교회들의 대학복음화 동아리들 혹은 동아리 연합을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분간 그러한 전략을 계속 고수할 것이다. 그것은 영적 대결(spiritual confrontation)이다. 그렇다. 대학가는 영적인 대결 속에 있는 것이다. 중생한 신자들인 대학생들과 이단자들 간에 영적 대결의 장소라고 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캠퍼스이다. 그것은 어거스틴적인 도식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 간의 대결이며 투쟁(struggle)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한 학문과 진리 탐구의 도장에 대하여 우리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친 행위일까?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성 안에서 우리의 학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 할 때는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단 사이비단체들은 학원가를 점령하기 위하여 중장기적(中長期的)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또한 아주 지엽적이며 전체적인 전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들은 최소한 그러한 시스템을 가지고 신자이거나 불신자인 학생들에게 접근해 오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전도전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적어도 그들은 기성교회 성도들이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큼 다양한 부서들을 가지고 있다. 전도에 집중하는 부서가 있는가 하면, 전도와는 직접적 연관이 전혀 없는 문화부, 그리고 섭외부나 봉사부, 교육부 그리고 그 외 특별한 부서들까지도 두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다양한 부서들을 이용하여 기성교회 신자들의 자녀들이나 크리스천 대학생들에게 ‘총체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단 사이비 단체들은 이제 고루하고 단순한 방법으로만 포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래의 전통적인 문서전도를 통한 포교방식의 틀에서 벗어났다. 즉 그들은 그들의 ‘포교방식의 유형’에 변화를 가져왔다. 패러다임 쉬프트를 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재래적인 방법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상이 만연해가는 현대 사상의 조류 속에서 포교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계속해서 기성교회의 공격을 받으면서 그들이 자생할 수 있고 생존해 갈 수 있는 포교방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것이다. 그들은 기성교회가 상상치도 못한 다양한 방법과 매체들을 가지고 신자의 자녀들에게 접근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은 문화매체 혹은 문화매체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서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쳐주는 서클이나 수화를 가르쳐주는 서클 등이 있으며, 수화 찬양을 가르쳐주는 서클, 아트 풍선 만들기 클럽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기타나 악기를 가르쳐주는 서클, CCM을 지도하는 서클 등 다양한 서클들을 통하여 기성교회 출신의 학생들에게 접근해오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의 자녀들도 캠퍼스 내의 다양한 ‘서클 활동’을 통하여 자기 개발을 해 가야 한다. 그러나 서클 가입을 앞두고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서클을 이용한 이단의 접근’이다. 대부분의 서클들이 건전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단 사이비 단체들이 포교의 목적으로 교모하게 위장하여 만들어놓은 서클들이 많기 때문에 크리스천 부모들 및 학생들인 자녀들은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자녀들이 자율적으로 서클을 선택하지만, 그래도 크리스천 부모는 자녀들이 서클에 가입함에 있어서 기도해 주면서,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권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녀를 맡기신 주님의 요구에 응하는 하나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 줄 때에 자녀들 쪽에서도 부모의 권유에 대하여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내 서클 활동들에 대하여 영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은 학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의 ‘서클 가입 및 활동’에 대하여 타당한 견해를 가지고 자녀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 교회는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헌신적인 사역자들에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그들이 캠퍼스에서 크리스천 학생들을 위하여 사역할 때에 더욱 안정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교회는 기도하는 일과 물질적으로 충분하게 지원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대학가에서 복음전하는 사명과 방어하는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한다면 내일 한국교회의 전망은 밝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학원 사역자들을 경시하고 캠퍼스를 방치한다면 내일 우리는 ‘캠퍼스에서 강화된 이단’에 의하여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주님 앞에서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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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안찰에 대한 제언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4/29 12:34 (2004/06/29 15:20)
조회수 : 40
파 일 : 안수, 안찰에 대한 제언 (2004.3. 최병규).hwp (36K)
안수 안찰 문제에 대한 제언입니다. 월간고신, 현대종교, 교회와 신앙 등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안수, 안찰 행위에 대한 재언
최병규 목사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신학박사(교회사)
물론 오래 전부터 있어온 일이긴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도 한국교회 내에는 안수나 안찰 등의 잘못된 실습으로 말미암아 인명을 상해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되어 왔다. ‘안수’는 타인의 머리나 다른 부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안찰’이라는 것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기 힘든 것으로서 1950년대 중반 모 수도원에서 행해지기도 했으며 박태선 계열에서도 행해져 왔다. 그것은 기도받는 자의 신체의 일부분을 치거나 두들기면서 하는 기도행위를 지칭하고 있다. 신비주의적 영향을 받은 일부 신자들이 안찰을 시행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안수 행위는 구약과 신약에 나타나고 있으며 특별히 환자를 치료할 때에 행하는 기도 방법으로서 그리고 직분을 임명하며 장립할 때에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안수방법을 통하여 기도하다가 환자를 때려 숨지게 하는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러한 경우는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신앙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위배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몇 해 전 서울 마포경찰서 관내에서는 통증을 치료해준다고 속이고 안수기도를 해주다 환자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찾아온 환자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면 나을 수 있다고 속이고 환자를 치료한다면서 환자의 몸을 10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안수를 행한 사람은 환자의 팔을 몇 차례 손바닥으로 때렸을 뿐이라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환자의 왼팔과 오른쪽 어깨에 있는 심한 멍자국이 구타당한 흔적이라고 간주했다. 해외에서도 한국인에 의하여 행해진 안수기도 때문에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다. 미연방 이민국 판사는 안수기도 도중 한 한국인 여성을 숨지게 해 과실치사죄로 2년간 복역하고 석방된 한국인 어느 목사에게 추방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 목사와 신도들은 귀신을 내쫓는다며 하씨의 머리와 배를 최소한 백 여 차례 구타했다고 당국은 설명한 바 있다. 이러한 안수기도 사고는 최근에도 경남지역의 보수교단 소속의 교회에서도 발생했다. 교회에서 심야기도 중 발작증세를 보인 신도 모 여성도에게 몸에 악령이 들었다며 부교역자와 함께 장시간에 걸쳐 안수기도를 하며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무릎으로 가슴을 짓눌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은 사건으로서 부검결과 좌우측 늑골이 심하게 부러지고 심장출혈과 함께 압착성 질식사의 증거가 드러났다.
물론 안수기도의 의도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상식적인 수준을 지나쳤다는 것을 누구나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안수기도로 말미암은 부덕스런 문제점들이 발견될 때 한국교회가 재고해봐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먼저 우리들은 안수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을 재차 확인해야 하겠다는 것이며, 안수 특히 ‘안찰’행위가 법률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먼저, ‘안수’에 대해서는 1978년도 예장 고신측의 제28회 총회시에 부산노회에서 보고한 내용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 저명한 신학자 이근삼 박사를 비롯한 몇몇 연구위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안수로 말미암은 폐단을 상기시키면서 ‘안수에서 여러 가지 부덕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임직에 대한 안수 외에 안수를 하지 않음이 교회의 건덕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인 줄로 사료됩니다’라고 되어 있다. 그 연구는 ‘교회의 건덕’과 연관하여 안수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고신교단은 근래에 들어와 50회 총회(2000)에서는 “안수 기도는 성경대로 하되 건덕을 세우는 범위 내에서 한다”고 결의했다. 고신교단 총회에서 공유된 대체적인 견해는 ‘건덕’을 염두에 둔 차원에서의 결정이었으며, 최근의 결정은 ‘안수를 허용하지만 덕을 세우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총회가 ‘안찰행위’에 대하여 다룬 바는 없다. 그렇지만 안찰행위는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신비주의적 성향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우리가 생각해봐 할 것은 동기는 선했지만 결과가 엄청난 불의의 사고를 초래하게 될 때 법률에서는 ‘지나친 안수(혹은 안찰)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판례들 중의 한 경우를 통하여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1989. 10. 13 대법원 판례(선고 89도556호)에서는 모 목사가 피해자의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이유로 안수기도를 하면서 피해자의 가슴과 배를 반복하여 누르거나 때려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이었다. 그에 대하여 대법원은, “안수기도는 환자의 환부나 머리에 손을 얹거나 약간 누르면서 환자를 위해 병을 낫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병의 치유함을 받는다는 일종의 종교적 행위이고 그 목적 또한 정당하다고 하겠으나, 기도행위에 수반하는 신체적 행위가 단순히 손을 얹거나 약간 누르는 정도가 아니고 그것이 지나쳐서 가슴과 배를 반복하여 누르거나 때린 것과 같은 정도의 것이라면 이는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의 개념에 속하는 행위라고 할 것이고, 비록 그것이 안수기도의 방법으로 행하여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체에 대하여 유형력을 행사한다는 인식과 의사가 있으면 폭행에 대한 인식과 의사 즉 고의가 있는 것이고, 비록 그것을 적법한 행위라고 오인했다고 하더라도 그 오인에 정당성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이를 폭행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폭행치사죄’의 성립을 인정한 경우이다. 이외같이 법적인 차원에서 보면 ‘환자의 환부나 머리 등을 정도를 넘어 ‘반복하여 누르거나 때린 것과 같은 정도’는 유형력을 행사한 즉 범죄행위로까지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안수사고로 사람을 상해했을 때에는 ’상해치사‘의 혐의가 적용되었고, 상해치사에 대한 형벌은 형법 제259조 1항에 의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이 ‘안수’에 대한 분명한 개념 이해를 위해서는 차후에 선명한 신학적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연구함에 있어서 현하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조성되어 있는 목회적 임상적 분위기를 무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바른신앙과 정통적인 신학에 근거하여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안수 특히 안찰행위를 통하여 부정적인 측면들이 부각되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개혁주의적인 신학사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한국적인 특별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실천신학적인 측면들을 더욱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모든 교단 교회들과 각 교회 당회들은 특히 외부강사를 초빙할 때 신앙사상을 잘 검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교단은 범교단적으로 특히 ‘안찰행위’를 비롯한 불건전한 신비주의적 실습들에 대하여 엄격히 규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정통적인 신학사상을 가진 보수적인 교단들의 신학에서는 수용되지 못하기도 할 것이며 나아가서 법적인 문제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면서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 사실은 한국 기독교계가 안수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이고도 심도있는 신학화 작업에 착수해야 하겠고, 나아가서 ‘안찰행위’에 대하여 경계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인간 사역자들의 봉사와 수고도 귀하다. 특히 목회자들이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안수 행위를 시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수나 안찰 보다 더욱 본질적이며 궁극적인 것은 인간의 매개행위가 없더라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은총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권위에 호소하지 말고, 긍휼과 은총의 샘이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기도해야 하겠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순간 휘장이 갈라져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원한 길을 열어놓으신 것처럼 은혜의 보좌로 직접 나아가서 간청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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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 안찰 행위의 심리적 측면 이해와 반성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4/29 12:35 (2004/06/29 15:20)
조회수 : 41
파 일 : 안수 안찰 행위의 심리적 측면 이해와 반성 (최병규).hwp (35K)
안수 안찰 행위에 대한 심리적인 측면을 간략하게 살펴본 글입니다. 특히 기독교보에서 설문조사한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예장고신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설문의 내용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고찰한 글입니다. 이 분야에 대하여 타교단의 목회자들도 거의 유사한 견해를 가지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월간고신, 현대종교, 교회와 신앙 등에 게재된 글입니다.
안수, 안찰 행위의 심리적 측면에 대한 이해와 반성
최병규 목사
총회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서기
현대종교 편집위원
Th. D. (교회사)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될 때, 특히 극심한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게 될 때 주의 종들을 통하여 안수기도를 받기 원하는 심정은 일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띤 교단들에서는 안수기도를 교역자나 장로 혹은 장립집사 등을 안수할 경우에만 국한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의 일선에 있는 교역자들은 임상적 필요에 의하여 특히 환자들을 위하여 안수 기도를 행하고 있다. 그리고 불건전한 경우에는 안수에서 안찰행위로 발전하기도 한다. 건전한 형태의 안수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서 병자들이나 귀신들린 이들을 향하여 두드리거나 치거나 눈을 찌르는 등의 형태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안수에 관하여 논할 때 불가피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바로 ‘안찰’행위이다. 흔히들 안찰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안찰기도’라고 하는 의미에서의 안찰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성경에는 ‘안찰’이라고 하는 낱말이 등장한다. 왕하 13:14-20에 보면 엘리사가 왕의 손을 “안찰하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즉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엘리사를 방문했을 때, 엘리사는 활을 잡은 요아스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안찰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성경구절을 들어 안찰기도의 근거로 제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안찰’이라고 하는 용어는 ‘안찰기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찰하고’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 본문에서는 ‘와야셈’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리고”라는 뜻을 지닌 접속사 ‘와’라는 말과 ‘수-ㅁ’이라는 동사의 칼(Qal)형태 미완료 시제의 ‘야셈’이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단어는 바로 이 ‘수-ㅁ"이라는 말이다. 이 뜻을 한국어 번역 ’안찰‘이라는 말을 연상시켜 볼 때에는 그 말이 ‘두드리다’는 뜻인 것 같지만, 히브리어 단어 그 자체가 미완료형태의 동사시제에서 의미하는 바는 ‘~을 놓다, 얹다, 두다’는 뜻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자신의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했다는 말은 왕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 권위있는 주석인 카일 델리취(Keil-Delitzsch) 주석의 영역본에서도 이 낱말은 ‘~을 얹다, 두다’(to place)의 의미로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절을 안찰기도의 근거로 삼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겠다.
그러면 왜 어떤 경우에 성도들은 안수를 받기 원하며 또 교역자들은 안수를 하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그 심리적인 동기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최근 예장고신의 교단신문인 기독교보는 교단내 목회자들의 안수안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설문조사를 시행했다(2004.2). 이 설문은 지역별 연령층을 안배하여 전국 34개 노회 96명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화통화로 이뤄진 것이다. 과거 고신교단은 1978년경부터 안수문제를 임직관련 외에는 제한해오다가 최근 들어 일선 목회자들의 고충을 헤아려 안수는 성경대로 하되 건덕을 세우는 입장에서 가능하다고 결의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들을 고려할 때 개혁주의 보수교단 내의 목회자들의 안수(안찰)에 대한 견해들을 다소 균형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기독교보의 분석에 의하면 고신교단 목회자들은 대체적으로 안수기도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지만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들의 66%는 목회현장에서 안수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답을 한 반면 실제로 안수를 행하는 목회자는 47%였고, 과반수를 넘는 54%는 행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목회자들은 어떠한 요인에 의하여 어떠한 경우에 안수를 행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곧 일반 성도들은 어떠한 심리적 요인에 의하여 안수를 받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금번 설문을 통하여 발견하게 된 사실들 중에는 먼저 목회자들 중에는 갓 태어난 성도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안수기도를 한다고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 가정에 갓 태어난 자녀를 축복하기 위하여 안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 아이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하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다음으로 드러난 앙케트의 결과는 목회자들은 병상에 있는 환우들을 방문하게 될 때 안수 기도한다는 것이다. 병상에 있는 교우들은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고, 또 그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과정 속에서도 종종 자신들의 삶과 신앙생활에 대하여 반성하는 기회를 가진다. 그러한 성도들에게 위로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도록 도와주는 방편으로서 안수기도를 행한다고 한다. 특히 ‘축복’을 기대하며 안수함으로써 간구해 주는 경우는 갓난아이들의 경우만 아닌, 송구영신 예배나 특별 집회 때에도 행한다고 조사되었다. 이처럼 ‘축복과 위로 지향적인 목회자와 성도들의 현실’ 속에서 목회자로서 안수기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낮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아님을 고려할 때 안수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안수행위로 인해 초래되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염두에 두면서도 동시에 안수를 행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계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것은 보수교단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수를 시행하다가 간혹 안찰행위로 발전하게 되는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령 목 부위를 주무르는 형식의 안찰행위를 통하여 인명을 살해하게 되는가 하면 복부 부위를 계속해서 떼리다가 늑골이 부러져 죽게 하는 경우 등등의 구타형식의 안수가 바로 그러한 실례이다. 귀신을 쫓아낸다며 발로 밟아서 초등생을 사망하게 한 경우도 있으며, 남편을 허리띠 등으로 묶은 후에 목을 눌러 숨지게 하는 경우 등 불건전한 안수행위 즉 안찰행위로써 인명의 손상을 가져온 경우는 이 외에도 허다하다. 그리고 일명 엘리사 안수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성추행 형식의 안수와 밀가루 같은 특별한 매체를 이용하는 안수 등등의 불건전한 안수형태들도 그 예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목회 임상현장에서도 교인들로부터 요구되어지는 ‘안수기도’에 대하여 더욱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꼭 안수를 해야 할 어떤 공적인 경우라면 환자의 환부에 직접 손을 얹거나 주무르거나 두드리는 행위를 지양하고 머리에 가볍게 손을 얹고 안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한 목회자 가운데는 “방법이 공개적, 합리적이어야 하며, 물리적 신체접촉에 힘을 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성의 경우에는 손을 살짝 떼어서 안수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무분별하게 하는 안수는 금해야 하며, 개방된 곳에서 안수를 해야 한다. 질서 있게 안수하는 것은 성경적이다”라고 대답한 이도 있다. 적어도 고신측의 경우 “안수는 성경대로 하되 건덕을 세우는 범위 내에서 한다”라는 말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립을 위한 안수 이외에 목회현장 속에서 교인들에 의하여 혹은 목회자 자신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하여 안수행위를 통해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하지 않는 이들의 견해도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목회자들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인간의 어떤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시점에서 종합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수기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신앙사상을 존중함과 동시에, 축복과 위로가 필요한 경우에도 공개적이며 상식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안수를 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하겠다. 현실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고 보편적인 정서가 안수기도를 요청해온다고 할지라도, 목회자가 늘 확신해야 할 사실은 바로 진정한 위로와 축복과 치유는 전능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임을 확신하는 일이며, 또 그것을 성도들에게 주지시켜서 그들도 인간의 매개체 혹은 매개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작은 영광들이 사라지는 곳에 창조주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와 축복과 치유의 빛이 광휘롭게 비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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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상동 목사님의 설교, "이단의 정체"
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5/20 17:15 (2004/07/0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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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일 : 고 한상동 목사의 이단경계론.hwp (3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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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정체
故 한상동 목사
신사참배반대운동가, 출옥성도
예장고신 초기 지도자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설립자
옛날 사도시대로부터 성경을 말하면서 실상은 성경을 떠나 일생 자기를 나타내며 자랑하는 이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서도 외면에는 자기를 자랑하여 예수를 믿으며 예수를 따르게 함보다 자기(自己)를 따르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단은 시대시대마다 모양을 달리 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오늘에는 지난 어느 때보다 많은 이단들이 나타나서 양떼들을 유혹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몇 가지 이단의 성격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째로, 이단의 특징은 미혹하는 자입니다.
요한이서 7절을 보면,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臨)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迷惑)하는 자요 적(敵) 그리스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실상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비단 이단들 뿐 아니라 기독교권 내에 있는 다수의 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미혹하는 자가 있음을 봅니다. 즉 처녀탄생(處女誕生)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우리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 등입니다. 이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이사야서 7장 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여 처녀탄생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진보적인 학자들은 처녀라는 글자를 가지고 부인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인정하려하면서도 실상은 성경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를 칭하는 히브리어의 어의(語義)가 문제라면 예수님의 탄생 시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분명해집니다.
누가복음 1장 26,27절을 보면 “여섯째 달에 천사가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리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하였고 마태복음 1장 18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聖靈)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하여 내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처녀의 몸에서 성령을 통한 잉태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4절에서 마리아는 처녀임을 증언하고 있고, 마태복음 1장 19절에서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자임을 증거해 줍니다. 이렇게 볼 때 이사야 7장 14절의 ‘처녀’는 젊은 여자를 의미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성적 경험이 없는 여자를 칭함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처녀탄생을 부인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미혹하는 것이 이단의 정체입니다. 이러한 자는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고 하십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은 우리에게 경고해 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是認)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둘째로, 이단의 성격은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7,8절에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傳)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경고해주고 있습니다. 계시의 종교인 기독교 외의 어떠한 종교도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공자는 인생의 윤리, 사상이나 양심면, 도덕면, 선행면 등을 강조했습니다만 인생 정도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에 본받을 바 많지만, 천래지성(天來之聲)은 아닌 것입니다. 불교(佛敎)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인간의 내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하나 역시 인간계 내에 허덕이며 천래지 진리는 아닙니다.
셋째로, 이단의 특징은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점에 있어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적(異蹟)을 행함이 다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병을 지적하면 이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들도 이적을 행하며 표적을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사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4장 12jf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3장 13절을 보면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을 종합해서 보면 이적이라 하여 다 성령의 역사라고 볼 수 없으니 그러면 성령의 역사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요? 분명히 알기는 사람의 마음에 감화를 주는 것인데 자신이 죄임됨을 깨달아 구주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사죄 받을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역하는 자는 사(赦)할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넷째로, 이단은 자기를 신격화(神格化)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큰 교만입니다. 심령(心靈)이 어두운 악한 정치가들이 흔히 자기를 신격화(神格化)하는 모습도 봅니다. 이단은 자기를 신격화하며, 자기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이나 도전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14장 14절을 보면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라고 말씀한 바와 같이 바로 이 같은 자들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에스겔 28장 2절에 “인자(人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림이요 신이 아니어늘...”이라고 하신 말씀은 정확한 판단입니다. 이단들은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임재하셨다 하여 자기가 곧 그리스도라는 거짓으로 성도들을 유혹하려 합니다. 이들은 유다서 4절의 말씀처럼 “가만히 들어와서” 유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설 때 이단을 판단할 수 있고, 이단의 잘못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이 글은 저희 상담소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고는 예장고신 ‘교회문제연구소’에서 펴낸 고 한상동 목사의 설교집 『고난과 승리』에 실린 글입니다. 필요하신 분들께는 자유롭게 전달해주셔도 될 것이며, 여러분들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리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하면서 진리문제로 고민했던 고 한목사님의 이 한편의 설교는 오늘 우리가 왜 이단 사이비단체들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며 또 경계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통찰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교회의 이단대응을 위하여 늘 기도해주시고,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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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상담소 (bkc1202@hanmail.net) http://eusakidok.kosin.org
작성일 : 2004/06/02 16:32 (2004/06/02 16:33)
조회수 : 58
파 일 : 가족이 이단에 빠져 있을 때 (최병규).hwp (34K)
월간고신, 현대종교 등에 수록된 글입니다.
가족이 이단에 빠졌을 때
최병규 목사
예장고신 유사기독교 상담소장
한기총 이대위 전문위원
한장연 이대위 서기
현대종교 편집위원
이단에 빠진 가족이 있을 때 그 가족은 전체가 다 혼란에 빠지게 된다.
물론 가족전체가 혼동에 빠져있겠지만,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일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단에 빠진 가족 본인이다. 몰몬교를 탈퇴한 저명한 이단 상담가인 허친슨(Janis Hutchinson)이 『이단에서 교회로』(Out of the Cults and Into the Church)에서 소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단에 빠진 당사자 역시 영혼의 고충(conflict of the soul)을 겪게 되고, 감정의 폭발(explosion of emotion)을 경험하게 된다. 이단에 빠진 가족 자신이 거기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은 그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황폐하게 되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를 가능한 한 빨리 그곳에서 나오도록 해야 하지만, 당사자 자신도 아주 복잡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들에게는 정신 신체 증후들(psychosomatic symptoms), 가령 두통, 등결림, 천식, 피부 문제 등이 수반될 수도 있으며, 결단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심리적인 능력이 저하 혹은 상실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죄책감이나 두려움, 수면부족이나 악몽, 식사 장애, 성적인 장애 등 여러 문제점들을 가지고 고민할 수도 있다.
이단상담가이며 특히 마인드컨트롤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스티븐 하산(Steven Allan Hassan)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단에 빠졌던 그들은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극도의 정체성 혼동’(extreme identity confusion)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부인의 딸인 린다(Linda)는 몰몬교를 떠나올 때 자신이 겪고 있는 심경을 그녀의 어머니에게 흐느끼면서 토로했다: “그건 죽음보다도 더 심해! 그건 단순히 어떤 사람이 죽을 때 느끼는 그런 것과는 다르단 말이야. 그건 일순간에 여러 번의 죽음(multiple deaths)이 닥쳐오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단에 빠진 가족 문제로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 어느 남매의 경우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드러났는데, 이단에 빠진 그의 여동생은 극도로 혼동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있는 가족들은 자신들의 친애하는 가족이 이단에 빠져있거나 나오려고 할 때 이 모든 점들을 잘 고려하면서 진지하게 구출작업의 과정들을 밟아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단에 빠진 이를 둔 가족은 영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이것은 극히 상식적인 요소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상황을 봉착하게 되면 가족들은 당황하게 되며, 또 논리적 비판과 이론적 설명들만으로 그들이 좀처럼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의 감정이 대립되어 신경적으로 예민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돌변해가기 때문에 자칫 간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위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주님 자신이 늘 기도하셨던 분이시며 특히 위기들 혹은 전환기를 맞이하실 때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다. 그러므로 이단에 빠진 가족들을 끌어내어오기 위해서는 가족 자신들의 영적 충만 혹은 영적 쇄신이 우선적이어야 한다. 필자가 상담해온 몇 몇 경우들을 보아서도 이러한 점은 여실히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가족들은 수고를 다하며 애정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노력한다. 이곳저곳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또 그들을 자신의 목회자와도 만나게 해보고, 입수된 정보들을 가지고 비판적인 설명을 가해보기도 하는 등 갖가지 노력들을 다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이 길어지다 보면 때로는 체념의 상태에 빠져버리기도 하고, 급기야는 단념 혹은 포기해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가족이 있는 가정에서는 더욱 더 깨어서 기도하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힘과 능력을 공급받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시 18:1) 그분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음으로써 영육간 소성함을 입어야 한다 (시 23:3). 그렇게 함으로써 가족 구출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영적 공급을 위하여 애써야 하겠다.
그리고 가족들은 ‘이단에 빠진 가족을 향한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가족이 이단에 빠진 초창기 혹은 이단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대다수의 가족들은 그들을 적극 만류하여 기성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상상 외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일부는 그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도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마치 타인을 대하듯이 대하게 되고, 또 미움의 감정이 자리 잡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마음을 넓게 열어 그 가족을 언제까지나 ‘친애하는 가족의 일원’으로 대해야 한다. 그들은 현재적으로 이단 단체에 연루되어 있고, 또 이단 사이비에서 주입시켜놓은 교리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가족들과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성도들이 깊이 인식하여야 하는 점은 바로 가장 친밀한 공동체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인간이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가장 친근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가족들로부터’이다. 비록 이단들이 그 가족의 끈까지 단절시켜버리려고 하지만, 그러한 때에도 주 안에 있는 기존의 가족들은 그들을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대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족들은 자신의 가족이 빠져 있는 이단 사이비단체에 대하여 정보를 획득하고 전달해줘야 한다.
가족이 빠진 단체가 이단이라고 판명되었거나 혹시 이단은 아닌 것으로 알지만 그래도 의심이 갈 때에는 가족들은 자신의 가족이 목회자나 이단상담가의 상담을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물론 가족이 그쪽으로 간 지 1, 2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상태라면 문제의 해결을 그만큼 더 쉬울 수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오래 되었든지 안 되었든지 간에 상담을 받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일단 한 번 주입된 그릇된 교리나 사상 혹은 행위들은 쉽사리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들도 때때로 조리있게 잘 설명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목회자들이나 이단상담가들이 상담을 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의 상담 결과를 통해서 보더라도 가족들은 아주 구체적이고도 논리적으로 그리고 특히 ‘신학적으로’ 설명해 주기에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가족들은 그들에게 이단 비판에 대한 자료들을 구해서 전달해 줄 수도 있다. 그들이 읽어보면서 스스로 점검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한계가 있기는 하다. 그러면 가족들은 어디로부터 어떤 기관을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이단비판자료’ 즉 상담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 손쉬운 방법으로는 교회의 담임교역자들에게 부탁할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특히 요구되는 것은 목회자들이 가장 갱신된 자료를 구해서 전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아주 오래된 자료들을 가지고 비판설명을 가하다보면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단들도 지속적으로 수정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통한 자료 획득에 대하여 살펴보자. 필자가 종종 강조해 온 바와 같이 인터넷은 더없는 정보수집의 채널이 되었다. 그것은 선용된다는 것을 가정하는 한 더없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이단과 관련하여 인터넷상에는 ‘그릇된 정보들’이 올라오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상에 올라온 자료들을 전적으로 신뢰해서는 곤란하며, 담임교역자나 이단상담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그 자료들을 검색 분석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바른 자료들을 구했을 때 그것을 본인이 충분히 숙지한 다음에 ‘구두로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 자료를 가족에게 건네주면서 읽어보고 생각해보라고 하면 그 가족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그 자료를 곧장 이단 지도자에게 전달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불필요한 절차들을 밟게도 된다.
마지막으로 이단에 빠진 가족을 구출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친애하는 가족을 위한 기도’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가족이 이단에 빠진 가족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먼저 영적으로 충만함을 입어야 한다. 영적 충만과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서 성도는 기도해야 한다. 자신들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님께 솔직히 내어놓고 도움을 구하며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히 4:16). 사실 영적인 대결과 같은 이단구출작업에 있어서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또 기도 없이는 결코 그 일을 해 낼 수가 없다. 필자가 이단상담가로서 가장 고심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의 가족들은 상당히 많은 수고를 했지만 흡족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주로 상담을 요청해온다. 그러한 내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바로 ‘기도’이다. 물론 그분들은 상담가로부터 기도하라고 하는 말을 결론적 제언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상담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그분들께 진솔하게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이단에 빠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면서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그럴게 할 때 그들의 친애하는 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주님의 사랑하시는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