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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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한다


한국교회 세속화의 극치

 

이00 목사

 

다음 주일이 부활절이라 대다수 한국의 교회들은 매우 분주하다. 교회 안의 부패한 모습들은 절기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완전히 묻혀버렸다. 교회의 순결은 무엇이며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말 자기 자녀들로 부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해 볼 겨를이 없다. 단지 인간들의 자기 기분에 따라 절기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 따름이다.

기독교 계통의 모든 신문들에는 얼마전부터 절기에 관련된 소식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그런 가운데 복음을 아는 성도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이제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극치에 이르렀는가?" 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의 한국교회는 세속과 완전히 손을 맞잡고 있는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의 모든 지역들에서는 부활절 예배를 연합으로 드린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를 알리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서까지 각 교회에 우송되었다. 그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하다. 부활주일 특정시간에는 개교회에서 별도로 예배를 드리지 말고 모든 교인들은 지정된 장소에 모이라는 내용이다. 필자는 지금 그것 자체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금년 서울의 부활절 연합예배에는 대통령 축사가 들어있다. 부활절 행사에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인가? 성경은 어떠한 권력자이든 재력가이든 지식인이든 간에 복음을 알지 못한다면 불쌍한 사람들이라 가르치고 있다. 주님 당시에도 많은 정치적 권력자들이 있었으며 부자와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복음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불쌍한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지방의 여러 도시들에서는 부활절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 군악대가 동원 되며 시립합창단이 동원 된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 세속화의 절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참된 기독교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기독교는 부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정부 고위권력자의 축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군악대나 시립합창단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노래할 수 없다. 기독교 가운데서 그런 유치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이야 자기 기만에 빠졌다고 치더라도 전체교회가 아무런 생각없이 그들을 따른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신자들의 악대와 부활절 노래에 여러 교회의 연합성가대의 가락을 첨가시킨다는데 이는 세속화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오해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2천년 전 주님께서 무덤으로부터 부활하셨을 때 그 자리는 그렇게 떠들썩하지 않았다. 그때 로마제국의 웅장한 군악대가 동원이 되었더라면 하나님께 더욱 영광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인 우리가 기념해야할 부활의 중요한 의미는 거창해야 함에 있지 않으며 올바름에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드려지는 예배는 그 부활의 참 의미를 체험하고 깨달은 성도들의 고백 위에서 거룩하고 성결하게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가능한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거창하고 화려한 행사를 준비하고 엄청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해도 그것 자체가 곧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모욕일 따름이다. 혹자는 기독교가 위력 있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방법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결코 성경을 통해 그런 교훈을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아침과 그 후에 복음이 증거되어 가는 과정들을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소망을 주시기 위해 부활의 모든 역사를 잠잠히 성취하셨으며 그 주님을 찾아 무덤으로 갔던 성도들의 인격과 작은 입술들을 통해 그의 부활이 세상에 선포되며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의 부활이 확증된 것은 인간들의 떠들썩한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에 관한 모든 의미는 성경말씀의 교훈들과 올바르게 조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절 행사가 불신자들과 어우러져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교회 가운데서 주의 살과 피를 나눔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복음과 부활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과 교섭하여 그들을 예배에 참여시켜 자리를 빛나게(?) 하려는 것은 기독교 진리에 대한 분별없는 평가절하일 뿐 아니라 역겨운 굴욕을 자처하는 모독임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간의 자기 행위일 따름이다. 악기를 잘다루고 노래를 잘부르는 불신자들에게 부활에 관련된 악보를 넘겨주어 연습하여 연주하게 하면 인간들이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멜로디야 나오겠지만 그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그 음악적 기교에 감탄하여 만족하며 자축할지 모르지만 정작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께는 도리어 욕이 될 따름이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이러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말씀을 떠난 잘못된 기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다수의 어린 성도들을 아무렇게나 끌고 다니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성숙한 성도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잘 확인함으로써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겸손하게 상고해 보아야만 하는 때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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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박사, 명예박사

 

이00 목사

 

몇 년 전, 고신대학에 신학박사학위과정이 설립되었다. 당시 박사학위과정 개설시기를 전후로 고신교단내의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진심으로 우려했었다. 과연 고신대학이 신학박사과정을 개설할 만큼 성숙했느냐, 그리고 박사학위과정의 학생들을 지도할만한 교수들은 충분히 확보가 되었느냐는 등 상당한 염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결국 신학박사학위 과정은 개설되었다. 그 동안 상당수 학생들이 지원해 이미 학위과정을 수료한 이들도 있고 논문을 준비 중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현재 과정 중에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 단 한 명의 학술 신학박사도 배출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중에 고신대학은 지난해에 이어 금년에도 두명의 명예신학박사 학위자를 배출했다.

고신대학이 이에 대한 명백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과거 박사학위과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던 분들이 역시 옳았음을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고신 교단에 속한 목사의 한사람으로서 이즈음 현재 고신대학의 박사학위 수여 방침에 대해서 무언가 언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모두가 말하기를 주저하니까 본인이 그 말을 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난해와 금년 고신대학은 명예 신학박사학위자를 세명이나 배출했다. 그것을 고신대학은 크게 영예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교단 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그렇게 받아들일지 모르나 또 다른 한편의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학술 신학박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예신학박사를 세명이나 배출해 낸다는 것이 그저 보통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대학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 대학들 가운데 박사학위과정 개설 몇 년만에 그것도 학술학위 수여자가 없는 상태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미리 수여한 예는 없을 것으로 안다. 우리 한국의 대학들만 해도 해당전공 박사학위과정을 개설하여 수십년에 걸쳐 수많은 학술 박사학위자를 배출하고도 명예박사학위자를 한사람도 배출하지 않은 학교 학과도 많이 있으며, 혹 있다 해도 그 수는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지극히 소수이다. 고신대학보다 훨씬 오래전에 신학박사학위과정을 개설하고 이미 수명의 학술 신학박사학위자를 배출하고도 명예 박사학위자를 한명도 배출하지 않은 신학대학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 형편들을 고려해 볼때 고신대학에서의 명예신학박사학위 수여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고신대학 당국자들은 나름대로 할말이 있을 것이다. 학술 신학박사학위자가 배출되지 않았어도 명예 신학박사를 배출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든지, 고신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은 모두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분들이라든지 할말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금 학위 수여자들의 자격여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다른 대학들에서도 얼마든지 동일한 논리를 펼 수 있다. 수많은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조인 가운데는 나름대로 국가나 사회, 법조계에 끼친 좋은 영향과 업적이 있으므로 수십, 수백명에게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박사학위를 가지지 아니한 의사들 가운데서 명예 의학박사학위를 수여 받을 만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속학교에서 조차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

필자는, 고신대학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낼지 자못 궁금하다. 지금껏 명예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 못지 않은 공로자들이 교단내에 많이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필자가 고신 교단에 소속된 목사로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교단신학교의 미래를 위해서이다. 누군가 이 시점에서 이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면 고신대학은 학술 신학자 양성 보다 명예신학박사를 대량 남발 양성하는 곳이란 오명을 쓰게될까 염려해서이다.

필자는 고신대학 당국자들에게 진언한다. 대학의 본연의 임무는 학술연구이며 명예가 아니다. 대학의 참다운 명예는 학술연구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올 따름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대학교의 박사학위 과정의 설립의 목적이 훌륭한 학자들의 양성이라 믿는다. 더구나 신학박사학위 과정은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올바른 신학자들의 양성이다. 고신대학이 학문이나 진리탐구에 대한 관심 보다 명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학교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점 고신대학교와 당국자들은 잘 새겨주기를 바란다. 혹 필자의 생각이 지나치다거나 다른 생각이 있는 분들은 지면을 통해 토론해 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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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코람데오(神前) 사상(1)



이00 목사



해마다 9월이 되면 한국의 여러 교단들에서는 총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동안 한국의 여러 교단들에서는 총회임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난무했다. 법으로 금지한 사전 선거운동은 물론이요 금품수수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올해도 각 교단에서는 총회임원선거에 많은 관심들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감시단을 구성해두고 있는 교단들이 많다.

우리 고신 교단에서도 선거감시단을 구성해 두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부정선거를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부정선거를 막아보자는 기본적인 의도에 대해서는 굳이 비판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한국교회의 현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 교단 총회에서 선거감시단을 두어야 할 정도라면 우리의 신앙의 수준은 이미 그 본질을 떠나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총회에서 조차 부정선거감시단을 두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실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기독교 총회가 초등학교 어린이회 보다도 못한가? 초등학교 어린이회에서도 어린이 회장 및 임원 선거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지도 않을 것이며 금품을 돌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 장로들이 모인 기독교 총회의 수준이 초등학교 어린이회 보다도 훨씬 낮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을 교단의 기본적인 신앙자세로 취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의 근간은 코람데오 사상, 즉 신전사상(神前思想)이다.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하나님 앞에서 신실히 사고하며 행동한다는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코람데오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교단의 지도자들이 모인 총회에 코람데오 사상이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실종이라기 보다 차라리 박제된 상태이다. 입으로 코람데오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코람데오 사상의 껍질만 남아있을 뿐 알맹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선거감시단이 없으면 안될 만큼 우리 교단이 타락해 버린 것인가? 날마다 기도하고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한 우리의 고백은 거짓이란 말인가?

오늘 우리는 기독교 총회에 선거감시단이 발족되어 활동하는 것을 보고 자연스러운 눈으로 바라볼지 모르지만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보면 있을 수 없는 한심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가 심히 부패했던 과거 어느 시기에 부정선거감시단 같은 것이 있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뿐만아니다. 그것을 합리화 시키거나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도 않느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더 한다. 오늘 전 세계의 건전한 기독교 교단 가운데 부정선거감시단을 두어 운영하는 교단은 없다. 우리의 자매교단인 화란 개혁교단에 그런 기구가 있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미국 등 본 교단과 자매 혹은 우호관계에 있는 교단들 가운데 어디에 부정선거감시단이 있는가? 본인은 그들의 형편을 조사해 본적이 없지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상식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 우리 교단의 이러한 현실을 자매 교단에게 알려 보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만일 우리의 이러한 형편을 그들이 정확하게 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우리를 개혁신학을 바탕으로 한 개혁신앙의 소유자로 인정하지 않을것이다. 어떻게 목사, 장로들이 모여 총회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임원선출에 참여해야 할 자리에서 세상 사람들도 악하다고 하는 그런 평상적인 부정선거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총회 지도자들에게 고언(苦言)을 고한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임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과연 복음을 아는 자인지 의심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들의 잔재주에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임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총회장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이 자랑할 일이 못되며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목사와 장로들이 모인 총회가 초등학교 어린이회 보다는 나아야 할 것 아닌가! 선거감시단이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줄 아는 총회가 되기를 바란다.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사들이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 총회를 자기 욕심을 채워나가는 도구로 삼으려 하는 현실을 심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입으로만 "코람데오"를 외치는 가식에 빠지지 말고, 실제로 코람데오 사상이 우리의 신앙적 삶을 지배하여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200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