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중국교회 관련 자료 [교계현실]
이단공격에 흔들리는 중국교회
함 태 경
“이단을 뛰어넘어야 중국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중국교회의 사역자 부족과 경건서적·훈련교재 공급 미흡 등 특수한 종교상황으로 인해 이단에 미혹되는 신도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기독교 이단은 성경 이외의 권위,지나친 행위의 강조,개인숭배,왜곡된 종말론 등을 주장하면서 건전한 교회를 파괴하고 있다.이단문제로 특히 가정교회안에 갈등 대립 반목이 생기고 복음주의적 교회가 와해되거나 변질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또 이단은 중국 정부의 교회탄압 빌미를 제공하기 십상이다.
◇복잡한 유입경로를 갖는 기독교 이단
현재 중국내 주요 이단은 ‘호함파(呼喊派)’‘동방번개(東方閃電)’‘중생파(重生派)’‘삼반복인(三班僕人)’‘육신성도(肉身成道)’‘문도회(門徒會)’‘사도신심회(使徒信心會)’‘령령교(靈靈敎)’‘토론토의복(多倫多之福)’ 등.여기에 한국의 일부 이단계열도 중국조선족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이단의 성립 요인은 매우 복잡하다.△중국에서 파생된 것 △해외에서 유입된 것 △중국에서만 이단으로 판정되고 해외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중국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것 △해외에서는 왕성했으나 중국으로 유입된 후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개인의 기독교교리에 대한 편향에 따라 생겨난 것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단들은 성경을 배제하고 ‘하나님’‘예수’ 등 몇가지 성경내의 명사와 문장을 빌려와 작위적 해석을 하며 교주의 지위와 영향력을 높여 교주가 곧 ‘하나님’이라고 믿게 한다.극단적인 영적 은사를 강조하며 잘못된 종말론으로 신도들의 돈을 갈취하고 있다.특히 농촌 가정교회를 파고들어가고 있다.노방전도 등 공개적인 종교활동이 제한되는 환경 속에서 이들은 은폐 또는 비공개적인 활동의 틈새를 노리고 있다.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빚는 교회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구별됨을 강조,신도들을 현혹시킨다.
이단들은 또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 저소득층에게 신비주의와 기복주의를 심어주기도 한다.중국기독인의 80%가 농촌 배경 호적을 갖고 있어 교육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점도 이단에 무작정 노출될 수 있는 위험요소다.
◇가정교회 분열과 질서 파괴를 초래하는 이단
이단의 창궐은 교회의 분열과 질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다.어떤 교회의 신도들은 중생파에 의해 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교회의 세례를 거부했다.어떤 교회는 령령교에 의해 모임이 와해돼 단지 2명만이 교회를 지키고 있다.일부 교회 사역자는 1개월에 두번은 정통교회에,두번은 중생파 집회에 참석하는 등 심각한 상태다.
령령교는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롭게 됨)’를 믿지 않으며 영적인 춤을 추고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중생파 조직내 생명회는 매번 3∼7일의 집회기간을 갖는데 참석자들은 중도에 자리를 뜰 수 없다.집회때 신도들은 눈이 붓고 목이 쉴 때까지 울기도 하며 무릎이 다 벗겨져 피가 나기도 한다.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때려가며 기도를 한다.삼반복인은 결혼을 금지하며 부부는 별거할 것을 주장한다.
일부 이단의 반중국 선전활동으로 인해 순수한 정통교회 지도자들이 수난을 겪기도 했다.호함파는 “중국인민의 정권은 리창서우(李常受·호함파 교주)에게 주어야 한다”고 선포했다.사도신심회의 대표 쭤쿤(左坤)은 스스로 사도라고 지칭하며 사도의 직분자는 반드시 정권 인민 토지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과거 중국정부에 의한 ‘옌따(嚴打:집중단속 및 타파)’기간 중 호함파가 주요 타깃이 됐지만 이 과정중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죄를 덮어쓰기도 했다.이단이 성행하는 지역의 당국자는 교회의 정상적인 활동까지 제한하고 있다.
이단퇴치를 위해 중국교회는 자체 홍보활동과 교회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단 전파의 광범위성과 확산력에 비해 그 대처가 미약한 실정이다.해외의 중국선교기관들도 중국내 이단폐해에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관련서적과 자료들을 출간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중국 현지의 K선교사는 “신도들의 신앙기초가 연약한데다 목회자들도 매우 부족해 목자없는 양과 같은 상태의 신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말하고 “해외에서 유입되는 이단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현지교회에 알려 사전에 예방하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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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가정교회의 기원과 원류
인보라
1. 1949년 이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한 교회 정치화에 대한 순수신앙의 조직화
1949년 중국의 공산화로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었고 이로서 「전체주의」적 통치가 시작되었다. 당과 정부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관리와 통제로 교회는 정치화되었고, 이 결과 중국교회의 분리와 분열이 초래되었다. 중국교회가 분리되고 분열된 가장 중요한 이유로 많은 교회지도자와 평신도들이 삼자애국운동이 기독교 운동이 아니라 정치운동이기에 교회가 이런 정치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기독교와 교회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교회가 정부에 의해 관리되어 지는 것을 본직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하기에 위험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전체주의」적 관리 아래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교회형태를 형성하고 조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2. 평신도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신앙조직
1950년대 중반부터 기존교회의 목회자들이 삼자애국운동과 정부의 정치, 사회운동에 강압적으로 참여가 되어 신도에 대한 목양과 교회 관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게 되었다. 또 기독교내의 삼자애국운동이 당과 정부의 지도와 감독, 관리아래 기독교의 정치화를 초래하여 교회의 순수신앙적 노선에서 이탈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평신도들에 의한 신앙적 이유에서 자발적인 가정교회가 나타나게 되었다.
3. 1949년 이전의 중국의 토착교회의 영향을 받아 교회성격과 형태가 형성되어짐
1949년 이전의 중국교회의 토착화적인 신앙전통이 1949년 이후의 중국 가정교회가 존재와 형성, 전개, 발전에 원류적 모델이 되었다. 우선 가정에서 집회를 유지하는 것은 정치환경적인 이유와 비공개적 존재의 요청에서도 있지만 이전 워치만 니 계영의 「기독교인 집회처(?)」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반드시 십자가를 내걸어야 하고, 예배당 건축문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둘째로 가정을 중심으로 교회사역을 시작하고 전개하는 것은 「예수가정」에서도 기인한다. 가정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시작하며, 전개하는 것 등은
「예수가정」에서 이미 좋은 모델을 제사하였다. 셋째, 고난을 당연시하는 정신과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으면 예수의 길이 아니라 하는 것은 「예수가정」의 신앙적 전통을 계승하였다. 교회의 지도자 발굴과 훈련도 정규적인 신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위치만 니, 왕명도, 경전영, 등의 도제식 전통에 따랐다. 넷째, 가정교회의 신앙 및 성서, 신학관에 있어 강한 보수성과 성서적 문자주의(文字主義), 영해(領解), 구원절대주의적 특징도 워치만 니와 왕명도, 또 가옥명 드의 양향을 받았다. 다섯째, 교회 목양과 운영에 있어 가부장적 특징도 토착화 운동 지도자들의 전통을 게승하고 있다.
Ⅱ. 가정교회의 특징
중국의 가정교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규정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기독교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러하기에 항상 신앙의 순수성과 정체성을 강조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면서 존재와 발전을 애 나가고 있다.
둘째, 서양의 제도적인 교회의 영향과 관계가 미약한 상황에서 중국의 정치, 전통, 종교환경에서 독특하게 교회가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기에 탈 서양적 교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한 이후 해외와 서양교회의 영향력과 관계성이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셋째, 가정이 교회의 중심이 되고 있다. 즉 가정교회의 활동중심은 항상 가정이 되었으며, 교회를 개척하고 발전해 나가는 데에도 항상 가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넷째, 중국의 가정교회는 비공인, 불법적인 종교조직이기에 가정교회의 존재와 전개, 발전은 항상정부와 공인된 교회로부터 제재와 금지를 당하게 되었고 은밀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섯째, 중국의 가정교회는 삼자교회의 조직처럼 어떤 하나늬 통일적인 형태나 조직체로 존재와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전역에 무작위적이며,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면서 존재하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
Ⅲ. 가정교회의 종류
1. 공개적 가정교회
공개적 가정교회란 교회가 공개적으로 존재하고, 활동도 대담하게 전개해 나가는 가정교회를 가리킨다. 보통 공개적 가정교회의 존재형태를 취하는 교회는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비교적 추명한 인물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공개된 인물이다. 또 공개성을 갖고 존재하는 부분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로 구성된 교회들이다. 이런 가정교회는 지역의 「양회」와 삼자교회, 통전부, 종교국, 공안국 뿐만 아니라 지역적, 전국적, 국제적으로 알려진 교회들이다. 정부는 이런 가정교회가 중국의 종교정책과 법규 등을 위배하였기에 언제든지 통제와 규제를 할 수 있지만 통제와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여 공개적으로 존재토록 묵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언제든지 이들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할 수 가 있다. 이들을 주로 대 도시에 존재하며, 해외와의 교류도 빈번하며, 정기집회와 여러 활동들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외부인들이나 심지어 해외에서 온 사람들도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교회가 광주의 임헌고 교회이다.
2. 반(半)공개적 가정교회
반공개적 가정교회는 교회의 존재가 주변사람이나 정부에서도 알고 있지만 별다른 제재와 탄압을 받지 않으면서 교회의 정기모임은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한편 기타 활동은 비밀적으로 또는 은밀한 장소에서 진행되고 잇는 형태의 가정교회이다. 반공개적 가정교회는 공개적 가정교회처럼 널리 알려지거나 지도자들이 유명한 것도 아니며, 단지 지역에서 공인된 삼자교회에 등록이 되거나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면서 정부와 「양회」호부터 어떤 통제와 규제를 받지 않은 교회들이다. 통제와 규제를 받지 않은 이유는 정부와 「양회」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 할 수도 있고, 방관하거나 무관심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교회들은 비록 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모임을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지만 그들역시 지역에서 존재하고 활동을 할 때 여전히 비공개적으로 하길 원한다. 반공개적 가정교회의 공개적인 모임은 주로 소형으로 진행되며, 노인들의 모임, 장애인들의 집회, 이웃들과의 회합 등으로 표출시키면서도 기타의 지도자 훈련이나 세례식, 특별모임들은 비밀적으로 비밀적인 장소에서 개최된다. 반공개적인 가정교회는 대도시와 농촌 모두 널리 존재하고 있다.
3. 비(非)공개적 가정교회
비공개적인 가정교회는 비밀적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가정교회로 대부분의 중국가정교회는 이런 종류에 속해 있다. 비공개적 가정교회는 비공개적으로 존재하면서 정부나 「양회」또는 지역주민, 지역신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교회이다. 이들 교회의 집회와 활동들은 모두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진행이 되며, 구성원들은 서로 잘 알고 외부사람이 비공개적 가정교회를 참여할 때에는 구성원들의 소개와 안내를 받아야 나 한다. 이들은 외부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노출되고 발각되는 것을 위험한 일 또는 위기적인 일로 간주하기에 존재와 활동에 대한 보안을 매우 신경 쓰고 있다. 비공개적 가정교회는 정부와 공인된 삼자교회에 대해 위협을 느끼며, 외부에서 온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고정적인 출석자와 참석을 허락 받은 자를 제외하고는 모임과 활동에 참여가 불가능하다. 도시의 비공개적 가정교회는 소규모가 적어 보통 20명 내외이며, 많을 때 70명까지 있다. 반면에 농촌의 비공개적 가정교회는 규모가 커서 20명에서 100명 이상이 되기도 한다.
Ⅳ. 가정교회의 형태
1.비(非)조직, 정체적 가정교회
단순하게 예배, 기도,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는 교회를 가리킨다. 이 가정교회는 전문적으로 목양을 책임지는 전임사역자가 없으며, 조직적으로 체계화되어 교회를 운영하고 또 발전적 양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 교회이다. 집회장소로 사용되는 장소는 보통 인도 자급으로 있는 신도나 비교적 집회처소로서 여유있는 공간이 있는 신도들이 집을 이용하고 있다. 주로 집회와 교제가 활동의 주 내용이 되며,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전도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며 현상 유지적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 신도들은 보통 적게는 5-10명이고, 많게는 30~40명까지도 있다. 중국에 있어 대부분의 가정교회는 이런 비조직적, 정체적 가정교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2. 반(半)조직, 반(半)발전적 가정교회
단순하게 예배, 기도, 성도의 교제 뿐 만 아니라 교회 내에 사역에 대한 분업과 책임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전임 또는 책임적 위치에 있는 사역자가 있는 교회형태이다. 특히 교회내의 초보적인 양육과 전도, 목양의 프로그램이 있어 신도들에 대한 관리와 목양이 일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지역 뿐 만 아니라 다른 현, 성까지도 전도와 설교, 양육, 순회 목양을 부정기적으로 시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교회들은 자체적인 제약성 즉 인재적, 물질적 제약성 등으로 인해 발전 속도와 양상이 느리며 늘 여러 상황으로 인해 사역들이 정체되거나 지속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3. 조직적, 발전적 가정교회
교회 내에 전문적인 전임사역자가 있어 계획적인 양육과 목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또 체계적인 교회운영과 관리가 되어 있는 자립적인 교회이다. 그리고 자체적인 사역자 훈련과정과 배출체계를 갖추고 있어, 본지역 뿐 만 아니라 다른 현, 성까지 지속적인 개척정도 사역을 실시하고 개척된 곳에서는 새롭게 목양이 전개된다. 이런 가정교회는 조직적으로 교회사역이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와 「양회」, 지역 기타 교회조직들로 부터의 압력과 위협도 일정적으로 받고 있다. 또 지역적, 전국적인 연락망이 형성되어 있으며, 해외 교회 조직과도 협력체계를 갖고있다.
Ⅴ. 가정교회의 분포와 운영
1. 숫자의 통계와 파악문제
가정교회와 가정교회 신도들에 대한 숫자통계와 존재, 활동의 파악은 중국의 기독교적인 상황에서 볼 때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정교회가 비공개적으로 존재를 하기에 어디에 누가 있는 지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생자멸 하기에 오늘의 상황과 내일의 상황이 다를 수 있어 정확하게 말하기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기존의 여러 숫자통계와 파악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는 중국교회의 지역상황과 전국 각 지역을 다니며 사역하는 자들이 대략적으로 파악한 통계와 추산들이라 할 수 있다. 즉 큰 계열의 가정교회와 그들의 활동영역 내에서 파악한 통계숫자를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숫자도 있기에 모든 통계는 실제존재 숫자보다 항상 적을 수밖에 없다.
2. 분포상황
중국정체에 있어 가정교회가 많이 분포된 지역은 다음과 같다. 하남성, 안휘성, 복건성, 절강성, 산동성, 하북성, 광동성, 흑룡강성 등이며 적게 분포된 지역으로 서장, 청해, 감숙, 귀주, 광서, 운남, 등이다. 이것은 주로 해당지역의 기종 기독교인의 상황과 기독교 전통, 새로운 사역자들에 의한 개척활동의 전개사황, 지역 사람들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받아 드리는 정도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3. 가정교회의 탄생과 운영
1) 탄생과 시작
기독교 신자의 탄생은 복음을 듣고 믿음에서 비롯되며, 교회는 기독교 신자들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이다. 가정교회의 탄생도 기독교인들의 결합으로 시작되며, 신도들 자박성에 의해 형성되어 졌다. 특히 가정교회의 경우 기독교 신앙을 갖은 이들이 현지에서 기존 삼자교회가 없을 경우 자연스럽게 신앙의 인도자 중심으로 가정교회가 이루어지며, 혹 지역에 삼자교회가 있다 할지라도 복음전도자가 삼자교회의 배경이 아니고 또 기피할 때는 더욱 가정교회를 결성하여 가정교회가 시작된다.
2) 운영과 전개
가정교회는 신도들의 집회와 서로의 교제, 사귐 그리고 신앙적 관계의 강화 등의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운영되고 있다. 가정교회에 있어 중요한 것은 책임적 역할을 하는 지도자와 교역자의 상황과 지역의 환경적 상황, 또 신도들의 상황 등에 의해 운영과 전개가 좌우되기도 한다. 비조직, 정체적 가정교회의 경우 주로 집회처소로 제공되고 있는 인도자의 인도에 따라 운영을 하며, 집회시간, 횟수, 강사선정, 집회내용을 관장한다. 경제부분도 특별히 지출되는 비용이 거의 없기에 헌금활동도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특별활동과 지출부분에 있어 보통 신도 구성원들이 같이 협력을 하면서 운영을 해나간다.
Ⅵ. 가정교회의 발전양상
1. 은밀성과 음성적 발전양상
중국의 가정교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전개에 이르기까지 은밀하고 비공개적으로 발저하였다. 지금도 공개적 가정교회를 제외하면 중국의 가정교회는 여전히 중국의 현실과 보안문제로 말미암아 은밀적이며, 음성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고 또 은밀하게 발전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노출은 곧 시한부인 것이다.」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지배적이다.
2. 신앙적 보수주의와 폐쇄성적 발전양상
중국의 가정교회는 항상 제약받고 고난의 현실과 외부와의 교류의 단절 등의 이유로인해 보수적인 신앙적 양성과 폐쇄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 발전하여왔다. 특히 이들이 농촌을 주무대로 식자층보다는 지식수준이 낮은 층을 대상으로 전도와 활동을 전개하였기에 전통적인 소농민적 폐쇄성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 성서해석도 「문자주의」나 「영해」,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선호하며,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나 위배되는 사항은 극렬하게 반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3. 양성화의 시도 및 활동 대두
1) 공개적으로 존재, 활동
중국 가정교회의 한 종류인 공개적 가정교회는 정부와 공인된교회의 경고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존재하여 가정교회 양성화의 모델이 되고있으며, 가정교회가 양성화되는데 효시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공개적 가정교회는 단순한 예배뿐만 아니라 어린이 및 청소년 등 각종모임, 성경공부와 지도자훈련, 전도활동과 대외교류 등을 활발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중국의 공개적 가정교회는 광주, 하문(厦문), 북경, 온주(溫州) 등지에 있다.
2) 전도활동의 대담성 확대 - 대담하고 다양한 전도활동의 시도
(1) 공공장소에서의 전도집회 : 극장, 대학의 소강당과 공간, 공원, 호텔의 장소를 임대하여 기독교의 절기와 기타 공휴일에 전도집회를 개최한다.
(2) 기차역 프레트폼에서 정차하는 기차에 들어가서 전도지를 나누면서 전도 : 훈련된 복음전도자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전도지를 사용하여 프레트폼 입장권을 구입하여, 정차하고 있는 기차에 들어가 승객들에게 복음전도를 한다.
(3) 병원과 기타 공공장소에서 전도행위 : 기독교 의인들이나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병원의 병실에서 전도와 심방사역을 진행한다.
(4) 한적한 거리와 길가에서의 전도집회 : 단순한 복음설교에서 조직적인 선도팀에 의한 전도집회의 개최 그리고 새로운 신자들을 교회로 흡수하여 양육 활동의 전개와 교회생활을
시작하게 한다.
3) 정부와 공인된 교회에 대한 항의표시
(1) 공개적 항의 편지와 활동 : 1988년 3월 24일 가정교회 지도자인 장성재(張성才)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와 전국정치협상회의에 신앙자유 문제에 대해 항의편지를 보냈으며, 같은해 4월 3일 당시의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주석인 정광훈(丁光훈)에게 삼자회가 교회에 대해 핍박하는 일을 참을 수 없다고 해서 항의 편지를 보냈다.(1988년 4월 9일 정광훈의 답변이 있었고, 1988년 4월 16일 장성재의 재회답이 있었다.)
(2) 선언문과 성명 : 1998년 8월 22일 12명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하남성(河南省)에서 정부를 향해 성명을 발표9하였다. 성명서는 정부에게 삼자교회이외에도 가정교회를 합법적인 교회로 인정하고, 복음으로 투옥된 자들을 무조건 석방할 것이며, 가정교회의 활동과 제한을 완화시킬 것을 요구하였다.(《일본 크리스챤 신문》, 1998년 10월 18일자, 〈중국교회와선교〉제5호 참고)
4) 가정교회의 존재와 현황을 공개 또는 비공적으로 해외의 소식통에 보고와 전달
중국의 가정교회는 자신들의 존재와 그들이 정부와 공인된 교회들로부터 핍박과 제재, 금지를 당하고 있는 일을 공개, 비공개적으로 해외의 영향력 있는 개인, 단체, 언론매체에 알리고 있다. 1988년 4월 미국의 빌리 그레함 목사가 중국을 방문할 때 하남성의 가정교회 지도자인 서영택(徐永擇)은 그를 만나 중국의 가정교회 상황과 실태를 알리려 하였다. 서영택의 계획에 대해 정보를 입수한 정부의 공안기관은 4월 16일 서영택을 체포하였다. 그후 서영택은 3년여 동안 옥고를 겪었다.
1997년 10월 중국의 국가주석 강택민(江澤民)이 미국을 방문하기 앞서 중국의 가정교회에서는 팩스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해외의 교회와 선교단체에게 강택민이 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 정부와 정부관리로 하여금 중국에서 종교탄압의 심각성 문제를 항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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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의 심각한 신학적 현실
강 선교사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인 정 광훈(팅주교)는 근래에 와서 더욱 심하게 "신앙갱생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그 분위기가 마치 1950년대 초 모택동 정권 아래에서 불었던 삼자애국운동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는 중국교회가 스스로 목사와 전도사를 양육하여 교회를 확장하고 서구 신학에서 벗어나서 고유의 신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팅 주교는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먼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 교리가 중국에 정치적인 위협을 준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이 교리가 도덕적인 요소를 저해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에 맞는 공산주의적 기독교를 확립하기 위해 는 꿈꾸어 왔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지지를 받고 팅 주교는 현재의 성경 교리는 중국 사회가 수용할 수 없기에 이를 수정하기 위해 교회를 재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를 착 한일을 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국가에 충성하는 그런 도덕적 기독교로 만들고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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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회유
강 선교사
00신학교를 나온 어느 전도사님에게 들은 말이다. 그가 졸업을 얼마 앞두었을 때, 교무실로 불려가서 학교에서 지정해준 장소에서 삼자애국위원회에서 지도해 주는 대로만 사역을 하면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런 제의에 의외로 많은 신학생들이 넘어간다고 한다.
신학교의 졸업식장에 불교와 라마교의 중이 오고 카톨릭 신부가 오고 이러는 것은 "중국 당국이 모든 종교는 같다"라는 정책의 표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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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학교의 실태
넓은 중국에 신학교는 고작 13개 정도이며 교수들은 거의 삼십대 초반의 남경신학교 출신이 많은데 남경신학교는 해방신학에 바탕을 둔 삼자신학의 중심지이다.
가르치는 교수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감각 없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성령으로 불이 붙은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별로 배울 것이 없으니 기숙사에서 서로 은혜를 받는 것과 선교사들에게 비밀리에 배운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은혜의 바다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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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는 교파가 없다.
강 선교사
그러므로 중국에는 장로교도 없고 감리교도 없고 성결교나 침례교, 등도 없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에는 교파들이 있었으나 공산화 된 후에는 중국의 교회는 교파가 없어졌고 문화혁명 때에는 교회 자체가 아주 마을 회관이나 다른 용도로 변하고 목회자는 감옥으로 또는 공장 노동자로 보내졌다. 지금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나 오직 중국 공산당 문화부 종교국의 통제를 받는 삼자애국위원회 산하의 단일 교파인 삼자교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복음주의의 장로교나 감리교의 교리나 신조가 아닌 삼자교회의 신학을 만들려고 한다.
삼자교회는 정부가 지도하는 종교 조직으로서 그 신학 체계가 반드시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과 불신앙((不信仰)의 차이를 크게 강조할 수 없고 국가를 위한 하나의 단체로서 인민의 단결과 국가건설에 참여하여 국가를 중심 하는 차원에 따르는 신학이 되고 있다.
삼자교회 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을 중심으로 하여 삼자신학을 확립하였다.
그러므로 삼자신학의 핵심은 성경대로의 복음과 내세의 구원을 가르치지 않고 공산주의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신학이 되고 말았다.
인간론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임으로 불신자라도 하나님은 아가페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멸망을 시키지 않으신다는 주장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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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신학 강의
강 선교사
현재 중국에는 일 천만에서 일천 오백만명의 교인들이 공산당에 의해 통제를 받는 삼자교회에 출석하지만 그 인원의 5배에 달하는 지하 성도들은 가정교회에서 은밀히 모이고 있습니다.
중구정부는 농촌에서의 일반예배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중국정부가 염려하는 것은 지도자 훈련입니다. 지도자들이 훈련 받은 후 각지로 파송되면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국 전역에는 핍박과 감시 가운데서 많은 지하 교회와 지하신학교들의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역들을 위하여 부족하나마 본 회는 중국 지도자를 위한 지하 신학과 목회 자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의 체계와 신앙을 더욱 굳게하는 조직신학이 없고 기독교만이 참된 구원의 종교임을 증명하는 변증론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하는 로마서와 세상 곧 악한 용의 실체가 무엇인지 계시하는 계시록을 신학교 공부 과정에서 없애버린 중국의 신학생들에게 그들이 배우지 못하는 부분을 가르쳐 주어서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의 균형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을 바로 배워야 성경을 바로 알 수 있고, 이래야 성경대로 바로 전할 수 있고, 환란이 와도 이겨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회의 지하신학과 문서사역은 중요한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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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교회의 실상
인보라
삼자 교회, 가정 교회, 독립 교회가 중국 교회를 구성하고 있다. 종래에는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만 있었으나 근래에 삼자 교회도 가정 교회도 아닌 독립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1. 삼자 교회.
삼자 교회를 이단이라거나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삼자 교회가 중국의 현실 교회임에는 틀림없다. 교세도 800만내지 1,000만울 헤아리고 있다. 곳곳에 예배당을 갖고 있고 13개의 신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삼자 교회에도 사람들이 가득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설교가 정치 일변도로 가지 않고 때로는 복음적이고 성경적 인 내용으로 갈 때도 있다. 어떤 때 그들의 설교만 듣고는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를 분별 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특히 조선족 교회의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삼자 교회의 특성 을 살펴보면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교회이고,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교회이며, 외면 애 드러난 교회이다.
그리하여 삼자 교회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을 추 종한다. 정부의 지도를 주님의 말씀과 동일시 하거나 우위에 두는 경우도 있다. 물론 특 정한 경우 삼자 교회가 복음적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지 드러 내놓고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삼자 교회는 지상 명령 수행에 대한 의지가 없거 나 희박하다. 그러므로 삼자 교회를 중국의 현실 교회로 인정한다고 해도 삼자 교회 만을 교류와 협력의 주 대상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2. 가정 교회.
중국에 지하 교회는 없다. 가정 교회가 있을 뿐이다. 가정 교회를 지하 교 회라고 부르면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겠지만 가정 교회는 지하 교회는 아니다. 가정 교회는 주님의 진정한 교회이지만 완전하고, 진선진미한 교회는 아니다. 가정 교회는 여러 모양으로 설립되었고,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토착 교회에 근원을 둔 교회도 있고, 삼자 교회가 등장할 때 지하로 숨어서 가정 교회를 이룬 경우도 있고, 문화 혁명을 거치면서 가정 교회로 된 것도 있고, 문화 혁명을 거친 후 개혁 개방과 함 께 가정 교회를 이룬 곳도 있다.
가정 교회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교회는 결 코 반정부의 입장을 취하거나, 반공을 모토로 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 정부의 통제를 거부 하는 것 뿐이다.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교회는 영적으로 중국 교회 의 주류이며 교세도 약 7,000만 내지 8,000만으로 추정된다. 가정 교회는 연약함에도 불 구하고 세계 교회가 상실했던 초대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였고, 지상명령의 성취에 대 한 소명과 비젼을 갖고 있다. 실제로 가정 교회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국내 전도에 힘쓴다. 뿐만 아니라 해외 선교 에 대한 환상을 보며 실제로 해외 선교를 준비하는 교회도 소수이지만 있다. 그러므로 중국 교회가 마지막 남은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된다면 그것은 삼자 교회가 아니라 가정 교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3. 독립 교회.
독립 교회는 1980년대 해외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이 주류를 이 루고 있다. 이 교회들은 삼자 교회에 속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가정 교회를 표방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독립 교회는 삼자 교회가 아니며 그렇다고 가정 교회라고 하기도 어렵다. 독립 교회는 언뜻 보면 가정 교회와 유사하지만 선교사들이 교 회 설립을 주도하였거나 선교사가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자생 교회도 독립 교회인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삼자 교회는 물론 가정 교회에도 속하기를 원하지 않는 제 3의 교회일 것이다.
4. 소수민족 교회.
소수민족은 인구의 규모가 적기 때문에 교회가 거의 다 외부에 노출 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소수민족 교회들은 삼자 교회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소수민족 사회에 가정 교회를 세우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소수민족 중에도 가정 교회 교인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처소 정도의 규모에 지나지 않 으며 한족 가정 교회와 같은 조직의 가정 교회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소수민족 사회에 선교사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독립 교회를 만들 수는 있으나 역시 한족보다 노출의 위험이 크다는 부담이 항상 따르기 때문이다.
5. 조선족 교회.
소수민족 중에 조선족은 예외이다. 조선족 사회에도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가 있다. 조선족 가정 교회의 경우 엄밀히 말한다면 가정 교회라기 보다는 독립 교 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족 가정 교회는 한족 가정 교회와 같은 역사도 없고, 조직도, 영성도, 지도력도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족의 경우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 또는 독립 교회 간에 그렇게 큰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한족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의 차이를 조선족 교회에 적용하는 것 또한 무리이다.
중국 교회에의 접근방법
어떻게 중국 교회에 접근할 것인가? 복잡다단한 중국 교회와 같이 교통하고 동역하여 중국 선교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중국 교회에 접근할 것인가?
1. 삼자 교회, 가정 교회, 독립 교회와 더불어 교류와 협력을 할 때 역할을 분 담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교회들과 교류하고 동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중국 교회와 관시(관계,關係)를 맺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관시는 하루아침 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세월을 지내며 깊은 신뢰가 이루어질 때 관시망 안 에 들어갈 수 있다. 관시망 안에 들어가지 않고 깊이 교류하고 동역할 수는 없다.
3. 중국 교회를 주장하려하지 말고 섬겨야 한다. 한국 교회는 조선족 교회를 섬 기지 않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조선족 교회를 훼파하였다. 한족 교회는 한국 교회 가 주장하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4. 가정 교회와의 교류와 협력을 함으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삼자 교회 일 변도의 교류와 협력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5. 하나의 중국 교회를 이루도록 섬겨야 한다. 삼자 교회, 가정 교회, 독립 교회 가 지금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지만 중국이 개방되고 세월이 지나간 후에는 앙금 을 씻고 하나의 중국 교회가 되도록 배려하면서 섬겨야 한다. 결코 한국에서 선교사들이 범했던 우를 또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6. 중국 교회로 하여금 명실상부한 중국 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중국에는 중국 교회가 있어야 한다. 서구 교회나 한국 교회가 결코 중국 교회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중국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고, 중국 특색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7. 어떤 교회든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가정 교회나 독립 교회는 물론 삼자 교회까지도 은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삼자 교회도 공개적으로는 예배당을 지어주 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길 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그러나 은밀하게 아 주 은밀하게 접근하면 사역자 육성과 평신도 사역자 육성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 이 있다. 중국 교회가 보이면 중국 선교도 보인다. 중국 교회와 교류하고 동역하는 길만이 중국 선교의 대로이다. 발상의 전환만 한다면 중국 선교의 대로는 한국 교회에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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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교회를 보는 관점
인보라
삼자교회에 대한 이해가 크게 엇갈려 중국선교 헌신자들을 헛갈리게 한다. 삼자교회의 실체는 무엇인가? 삼자교회의 모습이 다양하게 비쳐지기 때문에 삼자교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삼자교회를 바르게 볼 때 중국교회와 중국선교를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알 수 있고 중국선교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자교회는 중국이 1949년 공산화된 이후 형성된 교회이다. 삼자교회는 일원화된 중국 공산당의 지도를 실행하기 위한 대중운동의 일환인 삼자혁신운동(三自革新運動)을 통해 생겨났다. 삼자교회는 삼자애국운동위원회(약칭 삼자회,TSPM)와 중국기독교협회(약칭 기협)로 구성되어 있다. 삼자회는 1950년 중국 공산당이 설립한 애국종교조직이며 그 기능은 정부에 협력하여 종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다.
중국기독교협회(CCC)는 1980년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조직된 삼자회의 자매조직으로서 중국기독교회의 교무업무를 처리한다. 삼자회와 기협으로 구성된 양회는 통전부와 종교사무국의 지도를 받으며, 그 업무 목적은 당의 총노선을 따르도록 성도들을 교육하고 지도하며, 종교계에 대한 당의 지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양회는 애국공약 속에서 반복적으로 당의 지도를 받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사상을 견지할 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양회가 충성할 대상은 첫째가 정부이고, 둘째가 하나님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따라서 양회의 실상은 정부의 위임기구로 중국교회의 자주적인 단체는 아니다. 삼자교회는 합법적 종교활동인 주일 에배, 신학교육, 성경과 종교서적 발행, 해외교회와의 합법적인 교류 등을 통해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일부 감당하고 있다.
즉 가정 등에서 은밀하게 예배하는 것을 원치 않는 신자에게 합법적인 예배 장소를 제공하였고, 비신자와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삼자신학원은 삼자교회에서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공했고 문서와 출판업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해외교회와 중국교회와 합법적인 교류의 길을 열어 주었다
1. 교회론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교회는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일하도록 부름을 받은 무리이다. 삼자교회는 중국정부에서 기독교 신도들을 사회주의 중국 건설에 동참하고 적극적인 힘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인교회 조직을 허락하여 기독교 신자들이 그곳에서만 종교활동을 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교회는 교인들이 만나는 장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교인들은 예배당, 가정집, 천막, 나무 밑 등 어디에서나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자교회는 교인들이 모이는 예배당을 중시한다. 삼자교회가 내세우는 것은 전국 곳곳에 웅장하게 세워진 예배당과 그곳에 모여드는 수많은 집회인원들이다. 삼자교회 예배당이 처음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교육받을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삼자교회 예배당이 교회는 아니다.
사회의 조직체로서의 삼자교회는 정부의 입장과 노선을 옹호 실천한다. 사회주의 중국의 통치체제와 질서 속에서 사회조직인 삼자교회는 정부의 중요 시책과 입장, 노선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과거 정부의 사회, 군중운동과 여러 시책을 잘 따랐다. 그러기에 삼자교회는 정부의 입장과 노선에 문제점이 많고 심지어 비성경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는 제약과 종속성이 있다.
2. 구조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삼자교회의 실상을 구조적으로 접근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삼자교회의 실제적 구조를 모른다면 삼자교회의 실상을 알 수 없다. 삼자교회, 특히 조선족 삼자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보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삼자교회에 대한 그동안의 선입견을 버리고 삼자교회를 가정교회와 같이 보거나 해외교회와 동질적으로 보게된다.
적어도 외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다. 삼자교회 신자들이 그저 주일에 예배나 드리고 만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예배가 귀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배만이 신앙생활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래서 신자들이 예배 외에 주님께 헌신하고 봉사하려고 할 때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교회의 법규와 규칙, 그리고 지도부가 봉사와 헌신을 막는다.
물론 교회 지도부가 지향하는 대로 순응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성경대로 봉사하고 헌신하려한다면 벽에 부딪친다. 아니 성경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해도 벽에 부딪칠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교인들이 신앙에 열심히 나서 교회생활에 깊숙이 개입하게되는데서 오는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국교회에서 부딪히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요, 개 교회적인 문제이지만 삼자교회에서 당면하게 되는 것은 삼자교회의 구조에 기인하는 문제들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머리와 초석으로 한다(엡1:22-3,2;20).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치함을 의미한다. 삼자교회의 강령은 애국이며 애교는 장식용일 뿐이다. 애국은 교회의 지도권을 정부에 넘긴 것이다.
그래서 당이 교회의 모든 것을 지도하고 개조한다. 당과 정부의 삼자교회에 대한 통제는 직접적인 지도와 간접적인 내부 대리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과 정부는 중앙에서 현급까지 당의 각급 통전부서, 정부의 각급 종교사무부서와 각급 공안부서를 통해 삼자회와 기협의 지도자 인선과 교역자, 장로, 집사 등 사무인원을 선정하고 교회 지도자, 교역자와 기타 인원의 확정 변동에 대한 선택과 비준을 할 뿐 아니라 설교 내용, 성직 안수와 장립, 교류활동의 심사, 비준을 관리할 권리를 갖고 있다.
교회 내부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정기 및 수시로 관련부서에 보고해야 한다. 당과 정부의 종교관련 관리들은 교회내부의 상황에 때때로 익숙하지 못하며 거의 문외한이기에 교회를 직접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국, 성, 시, 현 등 양회 지도자 가운데 당과 정부가 교회 내부에 대리인을 배정해 놓는다. 당과 정부에 충성하며 당의 신임을 받고 교회 사무에도 익숙하며 교회에서 비교적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명망이 있으며 적극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삼는다. 이들이 당의 의도대로 교회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구체적으로 집행한다.
3. 사역적 관점에서 본 삼자교회
교회의 목적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양육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의 유익을 얻도록 하는데 있다.
주님은 자신의 권세로 교회에게 가서 세례를 주어 가르침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마28:18-20). 제자삼는 것은 전심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나가는 과정이다.
제자를 삼는 것은 전도(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옴-행14;21)와 양육(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세워 가는 것-행14:22 -23,28, 15:35))이 포함된다. 삼자교회는 공개적으로 전도를 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유이나 전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또한 18세 이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교회에 나오는 18세 이상의 성인들에게만 세례를 주고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어떻게 신자들을 양육하며 제자를 삼을 수 있겠는가? 삼자교회는 전도에 힘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교에 대한 비젼도 의지도 없다. 삼자교회는 구조적으로 교회의 제일 되는 목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제자로서의 신자 양육에는 영적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말씀선포(골1:25,28)가 우선해야 한다. 삼자교회는 성경을 설교하나 주님의 재림 등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선포하기를 터부시한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 설교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공급을 받거나 성도들 사이의 영적인 교제가 부족하여 심령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성도로 드려야 한다(골1;28).
이를 위해 상담, 경고, 충고, 책망, 바로잡음, 수정 등으로 신자들을 권해야 하며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 신자들을 가르쳐야 한다. 삼자교회는 교역자가 부족하여 말씀에 선 신자들이 너무 부족하다. 설교와 형식적인 심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꾼들을 키워 그들이 평신도 사역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런 사역에 주력하는 교회가 적고, 또 학습반을 지도할 교역자가 부족하다. 교회는 사역을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해야 한다(골1:29). 삼자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보다는 교회의 규칙과 제도에 얽매여 사역을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며 신자들이 심령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골1:27, 벧전2;12, 마5:14-16, 고후4:5-7). 일부 삼자교회의 목사와 장로, 교역자들이 동료 교역자를 다스리는 대상으로, 또는 주종관계로 생각해 불화를 낳아 서로 미워하고 공격하여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못한다. 삼자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의 능력을 잃고 사람들을 넘어뜨리며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키고 있다.
제 6차 전국회의에서 개정한 교회 규정에서 교역자의 권징 내용 부분이 강화된 것도 삼자교회 내 교역자의 윤리 도덕의 경시와 타락이 심각해진 것을 반영하고 있다. 삼자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주의와 배금주의는 교회 내의 교권쟁탈, 자기 명예를 내세우는 일, 개인의 권위를 수립하는 일, 타인에 대한 중상 모략으로 분출되고 있다. 또 돈과 명예로 생겨난 분쟁과 질투, 교권의 쟁패, 해외교회의 물질지원을 받기 위한 변태적인 구걸행위 등이 심각하다. 삼자교회의 배금주의는 성직에 대한 직업화와 상업화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자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배만 드릴 뿐 양육이나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삼자교회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고가지만 그들이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목양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다"고 하였다. 필요한 목회인 치유, 지탱, 인도, 화해를 충분히 수행하려면 목사등 교역자가 충분해도 부족하다. 하물며 삼자교회와 같이 목사와 교역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목회가 충분히 수행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필요한 목회를 충분히 수행하려면 평신도의 목회자화가 되어야 하는데 삼자교회는 당회 모델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 목회자가 설자리가 없다.
* 개별 삼자교회의 차이점 이해
중국 삼자교회는 모두가 같지 않고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삼자교회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삼자교회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정치적인 교회도 있고, 아주 복음적인 교회도 있고, 어정쩡한 교회도 있다. 가정교회를 대적하며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고발하는 삼자교회가 있는가 하면 은밀하게 가정교회와 교통하고 동역하며 가정교회를 돕는 삼자교회도 있다.
개별적 삼자교회의 특징과 상황은 각 지역의 상황과 종교 간부, 교역자로 인해 결정된다. 각 지역 삼자교회의 상황은 각 지역의 상황 즉 각 지역의 종교 상황, 경제 환경, 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갈망, 지역의 종교 관계 간부 - 즉 통전부, 종교국, 공안국 간부들의 교회에 대한 권력행사, 월권 행위, 교회 내부업무에 대한 세부적인 간섭 등과 지역 양회의 기독교 간부와 해당 삼자교회 교역자의 교회 건설에 대한 적극성, 참여도, 교회의 자양 상황, 신자들의 봉사와 헌신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중앙에는 정책이 있고, 지방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도 각 지역 삼자교회의 운신의 폭을 나타내 준다. 이상의 요인들로 인해 삼자교회의 활동 영역과 내용이 다르게 전개될 수 있으며, 해외교회와의 관계와 교류 정도에 따라 활성화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목회자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냐가 지역삼자교회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삼자교회에는 세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첫째,
정치지향성이 강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극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삼자회와 기협에 포진하고 있으며 삼자교회의 최고지도자 그룹을 구성하고 있다. 대도시 교회에 이런 부류가 꽤 있고, 지역교회에도 이런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신앙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고 오직 정치 논리와 자기 이권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가정교회에 적대적이고 가정교회에 대한 고발과 핍박에 앞장선다.
둘째,
신앙이 있긴 하지만 정치를 지향하는 성향이 있고 야망이 큰 부류이다. 이들은 중도 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려고는 하지만 이권을 밝히며 이권에 따라 움직인다.
셋째,
복음주의적인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중도 우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많지는 않지만 상당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오바댜와 같이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려하고 말씀대로 살고 사역하려 한다. 이들 중에는 가정교회와 교류하며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사역자들도 있다.
삼자교회 목사는 대도시냐 지방이냐에 따라 삼자신학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대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은 거의 대부분 삼자신학에 충실하다. 그러나 지방에 갈수록 삼자신학에 대한 집착은 엷어진다. 이는 삼자신학에 충실하는 것이 이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삼자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삼자신학에 충실하고 삼자회의 정책을 준수한다. 그러나 지방에 내려갈수록 지켜야 할 기득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삼자교회 목사이지만 삼자정책을 성실히 따르지 않고 자의로 사역을 한다.
삼자교회 목회자의 성향은 그가 공부한 신학교와도 관련이 있다. 남경금릉협화신학원 출신은 대부분 자유주의적이고, 연경신학원출신은 대부분 복음주의적이었다. 지금 삼자신학교들에서는 복음주의적인 교수들을 금릉협화신학원 연구원 출신들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98년 제남에서 열렸던 삼자회의에서 정광훈 주교가 말한 바대로 삼자신학을 신학교에서 철저히 가르치려고 힘쓸 것이다. 삼자신학을 학습시키기 위해 교수진들을 삼자신학에 철저한 금릉협화신학원 출신들로 교체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신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해서 정치적 기득권이 별로 없는 지방 삼자교회 목회자들이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삼자교회 목회자는 삼자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을 했는가, 아니면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거나 선교사들에게 양육을 받았는지의 여부에 신앙과 신학의 성향이 좌우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복잡다단한 요인들로 인하여 같은 삼자교회이지만 지역에 따라, 목회자에 따라, 해 지방정부의 교회에 대한 태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 삼자교회에 대한 현실적인 선교 접근 방안
삼자교회와 협력하려면 두 가지 길이 있다. 공개적으로 삼자교회와 협력하는 길과 비공개적으로 은밀하게 협력하고 섬기는 길이다. 프로젝트 선교를 하려면 공개적인 접근을 추구해야 하고, 삼자교회에서 사역자를 훈련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려면 은밀한 비공개적인 접근을 해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성 선교를 하려면 상당한 액수의 선교비가 필요하다. 양회를 비롯한 종교담당 정부 기관들은 프로젝트성 협력을 원한다. 그래야 자기들에게 이권이 있고 통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주의적인 믿음의 사람들은 은밀한 협력을 원한다. 영적인 필요를 채움받기 원하기 때문이다.
삼자교회와 협력하려면 지역삼자교회와 그 목회자의 성향을 잘 간파해야 하며, 그 지역 종교담당 정부기관 관리들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관계를 맺으면 삼자교회에서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거래를 좋은 관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역자들이 삼자교회와 맺고있는 것은 대부분 좋은 관계가 아니라 거래인 것이다.
1) 삼자신학교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이 있다. 신학교를 건축하는데 후원하거나 성급 성경학교를 세우는데 후원할 수 있다. 삼자신학교에 도서관을 건축해주거나 도서들을 구입해 줄 수 있다. W선교회는 C성에서 성급성경학원을 설립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현지 삼자교회 목사를 앞세워 성 양회로 부터 성경학원을 설립하도록 허락을 받고 성경학교 건축을 위해 모금중이다. 이 경우 후원하는 목사들이 가끔 방문하여 특강은 할 수 있지만 정기적인 강의를 할 수는 없다. 관계가 더 발전하며 이보다 더 깊은 사역도 가능하기는 하다.
2) 신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할 수 있다. 신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 신학교졸업생들을 상대로 상급의 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 고 주관준 목사님은 중국신학교 출신이어서 삼자신학교와 연결될 수 있었다. 근 10년간 300명 이상의 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불하였고, 연길에서 동북신학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월 1회 1주간씩 집중적으로 신학대학원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삼자신학원 학생들의 학비를 대 주는 일은 돈만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이 마련된다고 해서 신학생들을 후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국정부는 삼자신학교가 커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 지역삼자교회의 영적인 필요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 삼자교회의 예배당을 건축해 줄 수 있다. 삼자교회의 비품들을 후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선호해 온 선교형태이다. 삼자교회를 건축해줄 경우 경비가 실제보다 상당히 허비된다. 실제 건축비와 관계된 사람들이 착복하는 경비가 30-40% 정도가 된다. 그 선교비를 가지면 중국교회를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삼자교회의 배훈반에서 강의할 수 있다.
이 사역은 지역삼자교회 목회자와 깊은 관계가 형성되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다. 단 기간 삼자교회에 가서 집회를 할 수도 있다. 삼자교회에 가서 집회를 하는 것이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성공적인 경우도 있다. 어느 목사님은 하얼빈 양회의 초청을 받아 1주간 몇 교회에서 은혜로운 집회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흑룡강성에 있는 삼자교회의 목회자들을 재교육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4) 선교사들이 전도하여 제자훈련을 시켜 양육한 지체를 삼자신학교에 보내어 삼자교회의 목회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먼저 복음과 말씀으로 철저히 세워졌기 때문에 삼자신학의 영향을 덜 받고 합법적인 신분으로 삼자교회에 복음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삼자신학교에 재학중인 신학생을 개인적으로 양육하여 말씀과 진리로 세워서 삼자교회에서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5) 삼자교회의 보호아래 있으면서 사역을 할 수도 있다. 삼자교회 목회자들은 지방정부의 종교관계 관리들과 친하기 때문에 그들의 비호를 받으면 다른 사역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어느 선교사는 긍휼사역을 하면서 삼자교회에 다님으로 위험으로부터 대비하였다. 그가 다니는 삼자교회 목사는 어려움이 닥칠 때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6) 삼자교회 지도자의 요청을 받아 그들이 준비한 배훈반에서 강의를 할 수 있다. 이 사여은 비거주로 치고 빠지는 식의 사역이다. 이 때 초청받은 선교사나 사역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강의 중에서라도 말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귀국해서나 선교보고시 등 어떤 자리에서든지 보고하거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비밀은 없기 때문이다. 비밀을 지키고 은밀하게 하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삼자교회하고 협력을 하더라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을 때 삼자교회와의 협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묵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묵인은 묵인이지 허가가 아니다. 묵인은 언제든지 변한다. 어떤 경우든지 가정교회를 해하는 일이나 말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삼자교회와 협력하는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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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교회 안개 걷기
인보라
1. 서언
삼자교회에 대한 견해가 천차만별이다. "삼자교회에는 구원이 없다"부터 "삼자교회가 진정한 교회이다"까지 이해의 진폭이 너무나 크다. 삼자교회가 중국의 현실 교회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자교회에 구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삼자교회가 진정한 교회도 아니다.
삼자교회에 대한 견해가 이렇게 천차만별인 것은 삼자교회에 짙은 안개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이 안개는 삼자측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도 있고, 삼자교회가 태생적으로 품어내는 안개도 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으면 앞을 바로 볼 수 없다. 본 다 해도 짐작할 뿐 정확하게 볼 수 없다. 삼자교회의 안개가 해외교회를 눈멀게 만들고 선교사들까지도 헷갈리게 한다. 삼자교회의 안개를 걷기 전에는 삼자교회를 정확히 볼 수 없다.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려든, 삼자교회를 기피하고 비삼자가정교회와 교통하고 동역하려든지 삼자교회를 가리우고 있는 안개를 걷우어 내고 삼자교회를 바로 보아야 한다. 본 고는 삼자교회를 덮고있는 안개를 걷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삼자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인가?
삼자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애국종교사회조직이다. 그럼에도 삼자교회라는 교회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교회라고 생각한다. 삼자교회에 신도들이 상당수 있고, 목사와 전도사, 장로들이 있고, 웅장한 예배당이 있으며 예배와 성례가 있으니 해외교회의 눈으로 볼 때 삼자교회를 교회로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삼자교회가 조직이냐 공동체이냐가 규명되어야 한다. 삼자교회가 애국종교사회조직이라면 교회일 수 없고, 신앙공동체라면 교회일 것이다.
2.1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통일전선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조직된 것이다.
주은래가 오요종 등의 친공적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몇 번에 걸쳐 설득하고 공작함으로 삼자교회가 시작되었다. 삼자교회는 공산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된 것이지 당시 교회의 새로워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대응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삼자교회는 결코 삼자교회 신도들과 지도자들의 사회주의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나 상황화 작업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신앙공동체는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으로 형성된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성도들이 모여 신앙공동체를 이루었고, 초대교회가 되었다. 어느 교회나 진정한 교회는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으로 세워진다. 삼자교회가 중국에 시작된 것은 결코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하나님이 모택동을 통하여 중국 선교를 위한 정지작업을 하신 차원에서라면 하나님이 삼자교회의 설립도 허락하셨을 것이다.
2.2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정부의 법규에 따라 행동한다.
삼자교회는 말끝마다 당의 영도를 앞세운다. 중국공산당은 하나님이 만드신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무신론자들이 만든 애국종교사회조직이다. 물론 요즈음 중국기독교에 대한 문건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삼자교회가 당의 지도에 순응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성경 말씀을 모든 결정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한다.
출애굽 당시 광야교회는 불기둥과 기룸기둥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따라 진행하고 정지하였으며(민9:17-23) 신약시대 안디옥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였다.(행13:1-3)
물론 삼자교회 내에 오바댜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삼자교회의 교역자나 신도들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고, 받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삼자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 성령의 인도가 당의 영도를 대체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2.3 삼자교회는 당과 정부가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역에 따라, 교역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정부의 부적절한 지시와 현지 정부기관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할 힘이 삼자교회에는 없다. 신앙공동체는 사람의 말을 우선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생 명을 건다.(행4:17-20) 하나님을 대적하며 무신론을 강요하는 당과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집행하는 교회는 애국종교사회조직일 수는 있어도 신앙공동체인 교회일 수는 없다.
2.4 삼자교회는 예배는 드리고 종교적 행위는 있으나 성도의 교제는 없거나 약하다.
삼자교회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간의 종교행위는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해도 허용된 지역 밖의 신도들이 신앙을 목적으로 교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성도의 교제는 같은 지역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과의 교제가 되어야 한다. 신앙공동체는 성도의 교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성도의 교제는 성도간에 이루어지는데 명백한 불신자들이거나 그들의 조종을 받는 자들에 의해 구성된 삼자교회에서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진실 일 수 없다.
삼자교회에서 신도간에 교제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신도의 관리를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하기 위한 성도의 교제는 아니다. 이와 같은 근거를 통해 볼 때 삼자교회는 중국정부의 의도대로 중국에 있는 기독교신도들에게 제한된 종교행위를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면서 통일전선전략을 수행해 나가는 애국종교사회조직이지 결코 신앙공동체는 아닌 것이다.
3. 삼자교회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삼자교회에 나타나는 현상들만을 볼 때 삼자교회가 제한된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교회로 인식되기 쉽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삼자교회를 가정교회와 다름없는 교회로 인정하고 어떻게 하든 교류와 협력을 모색하려고 한다. 과연 삼자교회는 지금 우리가 교류하고 협력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형제 교회인가? 그렇지 않다.
삼자교회의 변화는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변신일 뿐이다. 삼자교회는 문화혁명 이전과 개혁개방 이후에 추구하는 바가 확실히 다르다. 50년대와 문혁이전에 삼자교회는 집요하게 기독교의 소멸을 추구하였다. 그 당시 삼자교회가 한 일이라곤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박해하고 교회를 페쇄하며 명목상의 교회만 있게하여 기독교가 스스로 소멸하도록 하는데 치중하였다.
그러나 문화혁명이후 기독교를 소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개혁개방과 함께 삼자교회를 재건하도록 허락하였을 때 삼자교회는 기독교 소멸의 목표를 버리고 신도의 관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모든 법규와 내규, 삼자교회의 모든 역량을 신도의 관리에 두었다. 신도 관리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동안 삼자교회가 금기시 하던 것까지도 허용하였다. 그래서 해외 교회들과 선교사들이 기대밖의 삼자교회의 사역을 보면서 삼자교회가 변하였고 변화가 가능하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3.1 삼자교회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들도 상당수 있다.
이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지 않으면 교인들이 가정교회로 가는 등 신도 관리에 누수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고육책으로 종교국이나 통전부 등 삼자교회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이 묵인하거나 종용에 의한 것이다. 정부의 묵인을 활용하는 삼자교회 교역자도 있고, 정부의 신도관리를 위한 종용에 따라 복음적이고 성서적인 설교를 하는 교역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자생적이거나 본질적인 변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갖게 된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종용을 받을 수 있고, 그 종용을 마냥 거부만 할 수 없다는데 한계가 있다. 모 선교사에 의하면 2000년 6월 1일에 종교국에서 각 지역의 삼자교회에 다음과 같은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1) 구원에 대해 전하지 말 것.
2) 예수의 죽으심, 부활, 재림에 대해 전하지 말 것.
3) 세례, 성찬식을 할 때는 허락을 받아서 할 것.
4) 선행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할 것.
5) 18세 이하는 절대 종교를 가질 수 없고, 복음을 전하지도 말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자교회에 아주 복음적이고 헌신적인 교역자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개별적인 면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삼자교회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3.2 어떻게 삼자교회에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있는가?
필자는 건전한 신학적인 지식과 탁월한 지도력을 갖춘 삼자교회 교역자를 만나 본 적이 있고, 탁월한 조선족 삼자교회 지도자를 만나본 적도 있다. 필자는 그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한다. 삼자교회에 복음적인 교역자들이 있는 것은 그들이 삼자신학의 영향을 받기 전에 복음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거나, 삼자신학을 졸업한 후 어떤 획기적인 사건을 통하여 변화되었거나, 복음적인 선교사를 만나 제자훈련을 받는 등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적인 믿음이 있는 교역자들이 삼자교회에 남아 사역을 하는가?
1) 영적인 분별력이 약해서 그럴 수 있다. 특히 개혁 개방 이후에 주님을 영접하고 교역자가 된 사람들 가운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2) 삼자교회에서 나오면 당장 직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육신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의식주 문제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3) 삼자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비삼자가정교회가 곧바로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사역의 장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도들의 경우 그저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제한이 없고, 신앙이 깊이 장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별 애로가 없다. 영적 분별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성경에 있는 내용을 설교하는 삼자교회의 실체를 간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삼자교회에 다니면서 그 안에서 맺어진 인간관계도 작용을 할 것이다.
3.3 삼자교회가 자체내에서 교회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가?
필자가 만났던 삼자교회 교역자는 삼자교회 안에서 삼자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삼자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삼자교회는 과연 개혁될 수 있는가? 삼자교회가 개혁될 수 있다면 귀한 일이다. 그러나 삼자교회는 자체적으로 개혁될 수 없다.
삼자교회의 개혁은 삼자교회 자력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자교회가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은 성령의 권능이 아닌 외부의 힘, 즉 정부가 실어주는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력으로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삼자교회의 개혁은 중국의 정치 개혁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의 정치가 개혁된다면 개혁된 만큼 삼자교회도 개혁될 것이다.
중국이 개혁을 추구하였지만 그것은 경제방면의 개혁이었지 정치의 근본적인 개혁은 아니었다. 삼자교회가 신앙공동체라면 개혁될 수 있고, 개혁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삼자교회는 애국종교사회조직이기 때문에 자력으로 개혁될 수 없고, 앞으로도 개혁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삼자교회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다. 중국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이 특별 섭리로 삼자교회를 다루실 때에 삼자교회는 본래의 교회됨을 회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3.4 삼자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삼자교회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삼자교회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복음적인 교역자들을 보면서 삼자교회의 가능성을 확신하거나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삼자교회가 갖고있는 문제의 핵심이다.
삼자교회에 다양한 문제들이 있지만 그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구조의 문제가 있다. 삼자교회가 갖고있는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삼자교회는 개혁될 수도 없고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마음껏 사역과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제한된 범위에서(신도관리의 차원에서) 삼자교회 교역자들은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소신껏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을 하려 할 때 구조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 구조의 장벽 앞에 그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교역자들이 개인적으로 지혜롭게 사역을 하고, 설교를 하며 사역자 배훈을 할 수는 있다. 은밀하게 해외 교역자들과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협력할 수도 있다.
실제로 화교들이나 한국교회 교역자들 가운데는 은밀하게 삼자교회에 가서 의공 배훈에 참여하고 이모 저모로 돕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삼자교회의 구조가 정부의 관리에서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치리로 회복되지 않는 한 삼자교회는 교회의 교회됨과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님이 특별 섭리로 삼자교회를 다루실 때에 삼자교회는 본래의 교회됨을 회복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3.5 삼자교회의 전망은 어떠한가?
삼자교회의 장래에 대한 전망은 몇 가지로 예측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각지의 삼자교회들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중국이 정치적으로 완전한 개방이 이루어질 때 삼자교회는 와해될 것이다. 왜냐하면 삼자교회는 자체의 응집력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조직체이기에 삼자교회를 지탱해주던 외부의 힘이 와해될 때 삼자교회도 와해될 것이다. 중국이 완전히 개방될 때 삼자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유형은 다음과 같이 예측된다.
1) 삼자애국운동에 앞장섰던 교역자들은 중국기독교회로 존립을 모색할 것이다. 다른 이름을 사용할지라도 지금의 중국기독교협회(CCC)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2) 중도적인 입장에 섰던 교역자들은 중화기독교회(공산화 이전의 연합된 중국교회)의 이름으로 나아갈 것이다.
3) 상당수의 교역자들은 공산화 이전에 연계되었던 해외 교파교회를 재건하려 할 것이고, 현재 교류하고 있는 해외교파교회들과 연계하여 교파교회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4) 상당수의 복음주의적인 교역자들은 비삼자가정교회로 들어갈 가서 그들의 일원이 될 것이다.
3.6 조선족삼자교회는 삼자교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가?
한국교회에서 삼자교회를 접한 것은 대부분 조선족교회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조선족교회가 법적으로, 행정적으로는 중국교회이지만 삼자교회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인 조선족교회에는 한족삼자교회를 엄격히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갖도록 느슨함을 허용하는 특별관리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한국교회의 선교비를 챙기려는 의도도 있고, 한국교회의 선교를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숨어 있다.
2) 조선족 삼자교회는 한국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정서적으로 한국교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심지어 조선족교회는 한국교회의 연장이라고 말하는 선교사도 있다. 그래서 조선족 삼자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어도 한국교회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3) 조선족삼자교회에 소속된 처소들을 비삼자가정교회로 오해할 수 있다. 조선족삼자교회와 교통하고 협력하는 처소는 모두 삼자교회이지 가정교회가 아니다. 다만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여 비준을 받지 못하여서 처소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기회만 주어지면 비준을 받으려 할 것이다. 또한 조선족삼자교회와 교통하는 비삼자가정교회들이 있다면 그들은 진정한 비삼자가정교회라고 볼 수 없다. 비삼자가정교회는 성경 등을 삼자교회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는 있어도 삼자교회와 교통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
4.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국선교의 기회를 활용하는 것인가?
날이 갈수록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해외 교회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정부의 해외 교회에 대한 종교분야의 통일전선전략의 성공적인 공작의 결과요 삼자교회의 해외교회에 대한 수많은 기회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선전공작을 잘하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가정교회는 해외 교회에 공식적으로 자신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가정교회의 결연한 의지를 천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데도 기인한다. 그래서 일부 중국선교지도자들은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을 유도하고,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에 이중 교류와 협력을 하는 것을 장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어진 기회와 열린 문을 따라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국선교에 헌신하는 지혜로운 처신인가?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을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통전전략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의 실상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다.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삼자교회와 협력하여 성경과 신앙서적을 출판하는 애덕기금회의 역할도 필요하고, 배훈과 신학교육, 신앙생활에 필요한 서적을 출판하는 홍콩복음증주협회 등의 사역도 가치가 있다.
그런 기회를 삼자교회와의 협력이라하여 거부한다면 그를 통하여 삼자교회는 물론 가정교회에 성경과 신앙, 신학서적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삼자교회에 예배당을 지어주고, 삼자신학교 건축과 운영을 후원하고 신학생들의 장학금을 후원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삼자교회와 공개적인 교류를 하는 것도 약간의 유익은 있다.
삼자교회를 방문하여 인사말을 통해 설교를 하고, 삼자신학교를 방문하여 장시간에 걸친 특강을 할 수도 있다.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특강을 통하여 신학의 핵심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류하는 복음주의적인 교역자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은밀하게 진행하는 배훈반 등에서 강의를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 삼자교회 사역자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이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삼자교회와 협력하여 성경과 신학, 신앙서적을 출판하여 공급함으로 보람을 누리고 있을 때 통전부는 그로 인한 해외교회에서의 중국의 종교자유에 대한 홍보를 충분히 하게 되어서 싱긋이 웃는다. 해외 교회가 삼자교회와 공개적인 교류를 할 때 해외 교회는 그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삼자교회에 영향을 미쳤다고 좋아할 때
통전부는 그로 인한 삼자교회에 대한 해외 교회의 친밀감 조성과 이미지 향상에 쾌재를 부른다. 삼자교회와 삼자신학교에 주어지는 건축비와 운영비의 후원을 받고 설교와 특강의 기회를 주는 것을 묵인하고는 그로 인한 수입에 기분 좋고, 또한 삼자교회가 중국의 대표하는 교회인 것처럼 해외 교회에 각인되는 소득을 올리며 축배의 잔을 들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고 필요한 일이고 권장할만한 일인가? 누가 누구를 이용하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주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간의 교통이고 동역인가?
5. 결언
삼자교회가 중국의 현실 교회임을 인정한다. 삼자교회에도 구원받은 신도들이 있고, 복음주의적인 교역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자교회는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통제와 관리를 받는 애국종교사회조직일 뿐이다.
그러므로 삼자교회는 외형적인 변신을 할 수는 있어도 본질적인 변화, 개혁, 교회됨의 회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자교회의 복음주의적인 교역자들과 은밀하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삼자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 삼자교회 안에서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믿음으로 살고 주님께 충성하고 있는 교역자들과 신도들을 섬기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삼자교회의 안개를 거두어 내어 삼자교회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삼자교회에 있는 남은 자들을 섬기는 것이 요청된다. 삼자교회와 공개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때 통일전선전략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비삼자가정교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선교자원이 삼자교회에 편중되어 가정교회에 가야할 선교비까지 삼자교회와의 협력에 소진하는 과오를 범치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삼자교회에 선교비를 융단폭격하듯 퍼부은 것만으로도 족하다.
이제는 삼자교회와의 교류와 협력이 인재 양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프로젝트성 협력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제한된 선교자원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삼자교회가 변혁될 때를 대비해 준비하도록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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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자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인보라
삼자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인가,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주님의 교회인가, 구원받은 신자와 복음적인 교역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 특색의 애국종교사회조직체인가?
1. 삼자교회의 실상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이 뛰어나고 은밀한 계획이 있기 때문에 삼자교회의 잘못된 것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1) 삼자교회는 중국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교회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2) 삼자교회는 대량의 성경, 찬송가와 복음주의 저자들이 저술한 영적인 서적들을 출판하고 있다.
3) 삼자교회 내에 신앙이 순전한 많은 목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4) 상당히 많은 해외교회들과 유명한 목사들이 삼자교회를 인정하고 있다.
1.1 삼자교회의 내부 구조. 제 1계층은 당중앙(黨中央), 제 2계층은 신학원 교수들, 제 3계층은 목회자들, 제 4계층은 일반신도들이다.
1.2 삼자교회의 머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요 무신론자들이다.
19호 문서는 “우리나라 종교정책의 기본 목적은 각 종교인사들을 연합하여 종교정치연맹을 조직하여 신자들에게 애국주의사상을 교육하고 당의 영도 아래 사회주의 대국을 건립하는 것이다.”라고 언급.
1.3 삼자교회는 19호 문서를 상황과 필요에 따라 온건하게 시행하거나 강경하게 시행한다.
1.4 삼자교회는 제 2계층인 자유주의가 주류인 신학원을 이용하여 애국적 삼자교회 후계자들을 양성한다.
1.5 교권을 잡은 자들은 삼자교회 중의 제 3계층의 주류인 복음파를 교회의 목회자로 세워 무식한 평신도들을 삼자교회로 이끌어 드린다.
1.6 복음주의적인 목사들이 퇴직하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유주의 신학생들이 삼자교회로 들어가 이리가 목양하듯 내부에서부터 신자들의 신앙을 점점 부패시킬 것이다.
삼자교회의 머리는 무신론자요, 삼자교회의 신학은 사탄의 진리를 지키는 자유주의 신학이며, 삼자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순전한 신앙을 부패시키려는 것이다. 가정교회는 이런 것들과 화합할 수 없다.
만약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싸움이 교회 내부의 싸움이라면 왕명도 선생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워 순교한 진리의 열사가 아니고 마음이 좁은 종파주의자이며 분쟁하고 당파를 짓는 사람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의 피 흘림은 헛되고, 고생도 헛된 것이며 몇 년간의 투옥도 헛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싸움이 진리의 싸움이라면 오늘날 양다리 전략의 길을 선택한 선교사와 해외 성도들은 중국 순교자들의 피를 짓밟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는 선교사와 해외 사역자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2. 삼자교회 안개 걷기
2.1 삼자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인가?
1)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통일전선전략상의 필요에 의해 조직된 것이다.
2) 삼자교회는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정부의 법규에 따라 행동한다.
3) 삼자교회는 당과 정부가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항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4)삼자교회는 예배는 드리고 종교적 행위는 있으나 성도의 교제는 없거나 약하다.
2.2 삼자교회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으로 변화하고 있는가?
삼자교회에는 복음적인 설교를 하는 교회들도 상당수 있다.
1) 어떻게 삼자교회에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있는가?
① 영적인 분별력이 약해서 그럴 수 있다.
② 삼자교회에서 나오면 당장 직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③ 삼자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비삼자가정교회가 곧바로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사역의 장을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④ 신도들의 경우 그저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제한이 없고, 신앙이 깊이 장성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별 애로가 없다. 삼자교회에 다니면서 그 안에서 맺어진 인간관계도 작용을 할 것이다.
2) 삼자교회가 자체 내에서 교회 개혁을 추구할 수 있는가?
2.3 삼자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핵심은 무엇인가?
삼자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구조의 문제다.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삼자교회는 개혁될 수도 없고 복음적인 교역자들과 신도들이 마음껏 사역과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제한된 범위에서 삼자교회 교역자들은 사역을 할 수 있으나 정작 소신껏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을 하려 할 때 구조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이 구조의 장벽 앞에 그들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2.4 삼자교회의 전망은 어떠한가?
1) 삼자애국운동에 앞장섰던 교역자들은 중국기독교회로 존립을 모색할 것이다. 다른 이름을 사용할지라도 지금의 중국기독교협회(CCC)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2) 중도적인 입장에 섰던 교역자들은 중화기독교회(공산화 이전의 연합된 중국교회)의 이름으로 나아갈 것이다.
3) 상당수의 교역자들은 공산화 이전에 연계되었던 해외 교파교회를 재건하려 할 것이고, 현재 교류하고 있는 해외교파교회들과 연계하여 교파교회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4) 상당수의 복음주의적인 교역자들은 비삼자가정교회로 들어가서 그들의 일원이 될 것이다.
2.5 조선족삼자교회는 삼자교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가?
조선족교회가 삼자교회의 실체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
1)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인 조선족교회에는 한족삼자교회를 엄격히 관리하는 것과는 달리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갖도록 느슨함을 허용하는 특별관리정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조선족 삼자교회는 한국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정서적으로 한국교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6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국선교의 기회를 활용하는 것인가?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을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들의 통전전략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삼자교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의 실상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또한 협력하려는 삼자교회 교역자의 노선을 정확하게 간파해야 한다.
3. 신앙개조 운동
3.1 3가지 큰 주장
1) 삼자애국운동의 전면 재교육을 강조하며 삼자애국운동의 성과를 견고히 하며 발전시킨다.
2) 자유주의 신학을 널리 펴며. 복음파의 힘을 분산하며 철저히 약화시키고
3) 신앙개조를 빨리 실시하여 기독교 신앙 중 사회주의에 불합당한 것을 제거하고, 사회주의 신종교를 만든다.
즉 삼자 원로의 사상건설의 주장은 교회 안에서 삼자애국 운동을 재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그들은 삼자는 중국교회의 하나의 정치 방향이며 중국교회는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애국을 하며, 해외의 기독교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신앙개조운동의 발단은 바로 일차 삼자 애국운동의 재교육에서 출발하며, 교회의 위 아래로 삼자의 합리성과 필요성을 잘 알게 하고, 삼자 애국운동의 성과를 보호하는 것이다.
자유주의파의 주장은 ‘사상건설로 정치상 낙후된 복음파의 신학을 자유주의의 발전한 사상으로 정치를 바꾼다’는 것이다. 중국기독교는 복음파가 자유주의신학을 받아들여야하며, 신학사상 건설의 목적은 복음파를 또 하나의 자유주의로 개조하거나 자유주의로 만드는 것이다. 진택민은 학생대회에서 공개적으로 “금릉신학원의 교수와 학생중에 신학사상건설에 적극적이 아닌 자가 있다. 교수와 학생은 전투에 참가해야하는데, 바로 새로운 신학사상과 옛 신학사상의 싸움이다. 만약 전투에 참가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고 전투를 통하지 않고는 새로운 신학사상개조운동을 널리 전할 수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3.2 진택민의 신사상의 목적
1) 모든 종교와 모든 민족의 신은 같은 하나님이다. 다만 다르게 이름을 부르고 있을 뿐이다.
2)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함은 정치상의 반동이며 신학상의 잘못된 관념이다.
3) 종교 신앙의 전부는 믿음이 아니고 도덕이다.
4) 믿지 않는 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3.3 정광훈의 사상건설은 바로 철저한 신앙개조이며 사회주의에 부적합한 신앙을 버리는 것이다.
정광훈의 신사상은
1) 하나님의 최고의 속성은 공의가 아니고 사랑이다.
2) 하나님의 최고의 일은 창조이지 구원이 아니다.
3) 성도가 부활을 믿는 것은 신앙의 세계관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문제는 더 사고할 필요가 없다.
4) 성경의 일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먹어 보지 못한 것을 먹는 것이며,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해보지 못한 많은 것을 해보는 것이다.
5)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죄가 없다. 유일한 하나님을 승인하는 것, 피안의 세계가 있다는 것,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것들은 무능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이 아니다.
6) 예수가 와서 하신 말씀 중에 말세의 소식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군중을 기만하고 우롱한 것이기에 사회주의는 친근감이 없다. 그는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이 묻는 것이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가 아니고 약하고 굶주린 자에 대한 태도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7) 교회의 사명은 전도나 간증이 아니고 윤리도덕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강조하고 간증해서 사람이 많아지면 소질만 점점 낙후될 뿐이다.
8)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의는 도덕의 무용론을 부축이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애청의(以愛稱義)로 바꿔야 한다.
9) 기독교는 회개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각종 종교와 중국의 민간종교도 같은 내용이다. 그것을 배워보면 천당지옥, 신선, 귀신 등이 없고 인간을 인도할 피안의 세계가 없으며 믿고 안 믿는 것을 논하지 않으며 귀신이 병마를 준다고 하지 않는다.
10) 기독교는 믿음을 높일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널리 강의 해야한다.
신앙개조 운동은 삼자교회에서만 가속화 될 것이고, 진정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분별하여 나올 것이다.
4. 삼자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삼자교회 안에서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믿음으로 살고 주님께 충성하고 있는 교역자들과 신도들을 섬기는 일도 필요하다. 삼자교회에 있는 남은 자들을 섬기는 것이 요청된다. 삼자교회와 공개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때 통일전선전략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비삼자가정교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선교자원이 삼자교회에 편중되어 가정교회에 가야할 선교비까지 삼자교회와의 협력에 소진하는 과오를 범치 않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제는 삼자교회와의 교류와 협력이 인재 양성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프로젝트성 협력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제한된 선교자원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삼자교회가 변혁될 때를 대비해 준비하도록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4.1 삼자교회를 다음과 같이 섬길 수 있다.
1) 삼자신학교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법이 있다.
2) 신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할 수 있다.
3) 지역삼자교회의 영적인 필요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
4) 선교사들이 전도하여 제자훈련을 시켜 양육한 지체를 삼자신학교에 보내어 삼자교회의 목회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
5) 삼자교회의 보호아래 있으면서 사역을 할 수도 있다.
6) 삼자교회 지도자의 요청을 받아 그들이 준비한 평신도 사역자 훈련반에서 강의를 할 수 있다.
4.2. 삼자교회와 협력할 때 그 삼자교회의 교역자의 신앙노선에 대한 분별이 있어야 한다.
삼자교회의 교역자의 노선은
1) 가룟 유다의 노선 - 삼자교회 지도자가 교회와 동료들을 옳지 않게 팔아넘긴다.
2) 사울의 노선 -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을 원치 않고 독립왕국을 세우려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이 없다.
3) 바나바 - 다른 교회의 사람도 데리다가 훈련을 시킨다. 삼자에서 바나바 노선을 만나면 행운이다.
4.3 최종적인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1)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 바나바 노선이 어떤 종파로 변화될 것이냐를 기대.
2) 조건이 없는 결과. 나중에 도와준 결과가 없었을 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우리의 사역이 개방된 다음에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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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교회의 기원과 구성원
인보라
가정 교회의 뿌리는 중국이 공산화되기 이전의 토착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전 가정 교회와 토착화 운동은 서로 연관지어지는 관계에 있었다. 가정 교회는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와는 조금 다른 그들 나름대로의 토착화된 교회, 즉 소군(小群)교회, 진야소(眞耶蘇)교회, 야소가정 등의 형태로 단체끼리 가정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오늘날의 가정 교회의 많은 사람들은 취회소(聚會所)에 속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중국에 가정 교회가 출현한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병길은 가정 교회의 기원을 삼자운동 시기로 보고 있다. 교회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정치적 간섭과 영향 속에서 삼자의 신학 관점에 반대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가정예배를 시작한 것이 가정교회의 기원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60년 11월 상해에서 개최된 제 2차 중국기독교전국회의 종료 후 회장인 오요종이 “지금까지의 삼자 운동을 통해 교회내의 반혁명 세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그들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다.”고 말한데서도 보이지 않는 기독교의 활동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L. T. Lyall은 문혁의 박해로 인해 제도화된 교회가 문을 닫게 되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로 잠입해 들어감으로 해서 발생된 것이 가정 교회의 기원이라고 본다.
가정 교회는 문화혁명 이후 교회가 문을 닫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본래의 교회가 삼자 교회로 되면서 교회의 기능이 왜곡되자 신자들이 지하로 모이게 되었다.
조천은도 “문화혁명 이후 4인방 통치 기간 동안 중국은 기구적인 종교 차원에서는 종교없는 사회가 되었지만, 이 기간 동안 교회당 없는 기독교는 적극적인 지방 크리스챤 공동체로 나타났다.”고 하여 가정 교회가 문혁 이후에 출현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서 지하로 잠입해 들어갔으며 이를 계기로 중국적 상황에 맞는 토착화된 가정 교회가 출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 교회는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이전 가정교회운동에서
기원하였으며 삼자운동기의 반대 세력들의 모임에서 등장하게 되었고 문혁기의 탄압을 통해 제도 교회가 사라져가는 것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의 가정 교회는 문혁기와 그 이후에 조성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가정 교회에 참여하는 성원들은 대체로 중국의 관리와 당원 같이 합법적으로 종교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과 1950년대 삼자 교회에 참여했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들, 종교인이라는 이름이 붙게되면 지위를 박탈당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비밀히 신앙을 유지하려는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의 가정 교회의 성원과 1960년대의 성원은 다르다. 문혁 이후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가정 교회에 새로 가입했다. 즉 1966년 이전에 삼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던 목사와 신자들, 그리고 삼자활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신자들이다. 여기에 문혁 이전에 가정 교회에 다니던 신자들까지 포함하면 세 종류의 성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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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의 유형과 조직
가정 교회는 농촌 가정 교회와 도시 가정 교회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 인구의 80%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가정 교회 신자들도 농촌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촌 교회는 연장자가 많지만 청년들과 어린이들도 참석한다. 대체로 나이 많은 연장자가 지도자로 있지만 근래 들어 청년들이 훈련되어 설교나 전도 활동을 담당하고 다른 지역으로 파송되기도 한다.
도시 교회는 농촌처럼 연령의 구분 없이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연장자들 모임과 젊은 지식인들과 고중이상 학력의 직장인들, 대학생들의 모임이 구분되어 있다. 도시 가정 교회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완전히 비밀리에 행해지는 교회로서 공안국의 감시를 피해 조용히 예배를 드리며 신자는 5명에서 35명으로 제한하고 서로 번갈아 방문하면서 신자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다.
2) 반 공개형식으로 신자수가 많은 지역에서 조금 크게 모임을 갖고 헌금을 모아 교회를 짓도록 하는 보다 활동적인 가정 교회의 형태이다.
3) 집밖에서의 모임이다.
중국에는 조직적인 가정 교회와 비조직적인 가정 교회가 있다. 조직적인 가정 교회는 화중지역의 사역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조직은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최고 사역자회의, 지구별 사역자회의, 지역별 사역자회의이다.
최고 사역자회의 밑에는 5-6개의 지구별 사역자회의가 있고, 하나의 지구별 사역자회의 밑에는 10여개의 지역별 사역자회의가 있으며, 한 개의 지역별 사역자회의 밑에는 30-50개의 가정 집회처소가 있다.
1980년 이런 조직을 처음 시작할 때는 100개의 집회소가 있었지만 1987년이 되었을 때는 2,500개 이상의 집회소와 20만명 이상의 신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런 조직의 모형은 기독교인이 많은 화중 지역을 예로 든 것이지만 중국 여러 지역에 이와 유사한 조직을 갖춘 가정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비조직적인 가정 교회들도 전국 각지에서 성장하고 있고, 또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나이 많은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청년들의 신앙 추구열에 의해 소그룹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록 전국적인 또는 성 단위별 조직은 없을지라도 그 지역의 도시나 마을에서는 서로 연계가 있고, 서로 돕는 교제권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삼자측이나 공안국에서도 알고 있고, 삼자 교회에 참석하는 신자들도 많다. 특히 삼자 교회의 성경공부나 청년집회 등에는 많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