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교리주의 신앙노선과 독일의 감정적 신비주의 신앙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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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교리주의 신앙노선과 독일의 감정적 신비주의 신앙노선


지난 500여년 기독교사의 큰 흐름을 2가지 면으로 비교 관찰한 글입니다. 사실 여부에 일부 문제는 있지만 대략 큰 흐름은 잡았다고 보입니다. 이렇게 몇 글자로 요약하여 기억하는 것이 몇 권의 책을 읽고 그 내용에 혼동하고 있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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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칼럼] 청교도와 경건주의자의 차이

1517년 루터에 의해, 1527년 쯔빙글리에 의해, 1536년 깔뱅에 의해 당겨진 종교개혁의 불길은 대중적 이해를 얻기 위해 신조시대를 연다. 그중 깔뱅 측의 노력이 벨기에신앙고백서(1561),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서(1563), 돌트신경(1619),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였다. 곧이어 교회는 신앙의 생활화 내지 표면화 시대에 접어든다. 그것이 17∼18세기의 청교도운동이요 경건주의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영미의 청교도들과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은 다소 차이를 보여주었다. 청교도들은 "법전의 종교"에 더 비중을 두었고 경건주의자들은 "마음의 종교"를 더 강조했다. 전자는 신앙의 객관적 기준에 철저하고자 노력했으며, 후자는 신앙의 주관적 체험에 더 마음을 썼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전력을 투구했고 경건주의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온힘을 쏟았다.

청교도들의 경건이 화란인 히스베르트 푸치우스의 경건론과 상통한다면, 경건주의자들은 독일인 필립 슈페너의 경건론을 추종했다. 원칙에 충실한 삶으로서의 경건을 주장한 푸치우스는 깔뱅주의자였고, 심령의 변화를 주목한 슈페너는 루터주의자였다. 후일 청교도들은 무미건조한 윤리주의(교리주의)로 전락함으로써 위선적인 칼빈주의자로 비쳤고, 경건주의자들은 반지성적 감정주의자(신비주의자)로 변모하면서 무식한 루터주의로 낙인 찍혔다. 그 결과 미국은 세속주의로, 독일은 자유주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21세기의 신앙각성, 신앙부흥을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겠다고 피력한 것이나(행 6:4)) 바울 사도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일러준 것처럼(딤전 4:5),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하나님 말씀과 주관적 체험으로서의 우리의 기도, 말씀의 지성과 기도의 감성, 말씀의 선로(rail)와 기도의 화력(energy)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주필 기자 등록일 2004-02-24 print this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