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배도의 시대, 배도의 길』을 읽고...
분류: 교단-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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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석 날짜 : 2003/11/25 조회 : 196
저는 이번의 일들과 관련하여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고신 교단의 한 성도입니다. 특별히, 그 추이를 살피던 중 중부산노회 동래언약교회 "최성림" 목사님의 글(본 게시판 1294번글, 2003/11/15)에서 나타난 요청의 내용을 보고 난 이후로, 저는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의 교사"이신 분들과 및 "목회자"이신 분들의 의견과 평가를 간절히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떤 어르신도 한 마디 말씀은커녕 아무런 언급조차 없으셔서, 솔직히 저의 마음은 적잖게 아픕니다.
이러한 중에, "이광호" 목사님의 『배도의 시대, 배도의 길』(본 게시판 1331번글, 2003/11/24)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고, 또 읽으면서 우리 교회의 연약함과 악함에 대한 지적들에 깊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우리 교회의 현실를 놓고서 계속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 글에서 지적된 내용들이 정말로 피부에 많이 와 닿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이제 그 글을 읽고서 제 나름대로 느낀 점들 몇 가지를 적고자 합니다. 바라옵기는, 이에 대한 논의들이 계속적으로 좀 진행되어서 우리 교회 안에 "교회"와 "성도의 교제"에 관한 올바른 인식들이 선하게 자리잡아 가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저는 『배도의 시대, 배도의 길』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이 간 것이 사실입니다만,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이러한 부분을 좀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 글에서는 이번의 일들을 가리켜 "배도 논쟁"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의 일들이 아직 "논쟁"의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 글로 말미암아 비로소 논의가 가능해졌다고 봅니다. 여기에서, 이번의 일들은 그 처음에 있어 "논쟁"이 아닌 "질의"에서 비롯되었으며(본 게시판 1286번글, 2003/11/11), 또한 "논쟁"이 실제로 이루어진 적도 아직은 없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만 현재 "신대원 교수회와 총회의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 있을 뿐이지요(본 게시판 1294번글, 2003/11/15). 추측컨데, 만일 처음부터 "논쟁"을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사실 지금의 모습과는 현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글들이 올라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논쟁"이라고 명하시면서 적으신 "이광호" 목사님의 글에는 "상반된 입장"으로 제시된 두 부류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자칫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이와 관련된 사람들을 그렇게 언급하신 "두 부류"의 틀 안에서만 파악하도록 만들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의 의도가 그러하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읽는 이의 차원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논쟁"이라고 할 때에는 당연 서로를 논박하는 "양 편"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분명 읽는 이들은 목사님께서 언급하신 사람들을 바로 그 "양 편"에다 두고서 쉽게 파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이러합니다. 분명, 한 편(김영환 목사님)에서는 우리 교회와 관련하여 "이러이러한 교회는 거짓교회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다른 한 편은 "우리 교회는 배도한 적이 없다"고 응수했느냐?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파악될 여지가 없지는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즉, 그 글에서는 우리 교회의 연약함과 악함을 지적하면서 우리 교회가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지만, 상기 나머지 다른 한 편은 마치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교회의 위기 앞에서 ‘평화’를 외치는 자들"로 오인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는 "이광호" 목사님께서 정말로 이러한 것을 의도하셨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혹시라도 모를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에 이러한 부분에 관하여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저는 그 글에서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라는 주장과 "배도한 교회이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 좀 더 충분하게 지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와 관련한 애매한 뉘앙스를 이유로 해서라도, 저는 좀 더 "표현"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교회는 얼마든지 배도할 수 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XXV, v). 또한, 만일 그러한 상태를 가리켜서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라면, 저는 충분히 가능한 표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에 있는 교회가 곧 "배도한 교회"는 아니라는 지적이 적극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 글에서와 같이 "배도"라는 용어를 "거짓교회"와 통하는 말이라 전제하고 있다면 말이지요.
이와 관련한 저의 생각을 첨언하자면, "거짓교회"라는 말은 사실 엄밀하게 따져서 "교회가 아니다"라는 뜻의 명사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 교회를 가리켜 막바로 "교회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느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글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충분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기에 굳이 지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은 바로 다음 단락에서부터 생각해 볼 문제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만일 앞으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위와 같은 이유로, "배도 논쟁"보다는 "거짓교회 판단 논쟁"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적절하리라고 봅니다.)
셋째로, 그렇다면 "거짓교회"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하는 부분도 함께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사실 이 부분은 현재 가장 중요하게 부각된 부분이기도 하기에 조금은 길게 적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배도" 여부와 관련하여, 그 글에서는 "교회의 세 가지 표지"(설교, 성례, 권징)를 그 근거로써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개혁주의 신앙이 고백하는 바이기도 합니다(『벨직 신앙고백』, XXIX). 하지만, 여기에는 "순수성의 정도"라는 문제가 반드시 함께 고려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순수성의 정도"와 관련하여 우리 교회의 신앙 고백은 "교회의 세 가지 표지" 그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XXV, iv). 즉, 훨씬 더 엄격하다는 뜻이지요.
이 즈음에서, 현재 "거짓교회"를 논하고 계시는 "김영환" 목사님의 주장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명과 나의 입장2"(본 게시판 1293번글, 2003/11/15)이라는 글의 "4.3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부분에서 "김영환"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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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이 번에 두 분께서 저에게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이미 말했고, 계속 말하렵니다. 고신에 속한 모든 교회들이여, 저에게 정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한 신앙의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직분자들과 신자들이 일치된 신앙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는지요? 고신에 속한 모든 목사님, 목사님들의 설교와 가르침은 이 표준문서에 기초하고 있는지요? 어른들에게 대교리문답을, 아이들에게 소교리문답을 가르치고 있는지요? 진실로 이 신앙표준을 파수하면서 다른 교파의 가르침을 배격함으로 참된 교회 건설에 노력하고 있는지요? 만약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신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참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단 대답이 "아니오"라면, - 오! 저를 용서하십시오 - 여러분의 교회는 덜 순수한 교회가 아니라 단지 거짓 교회입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정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순수한 복음의 교리를 선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집행하고 있으며, 기독교 권징을 합당하게 집행하고 있는지요?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의 교회는 모든 것이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영되고 또 이와 반대되는 것은 거부하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참된 교회이며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교회 자체나 교회 규정들에 더 큰 힘과 권세를 돌리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려하지 않거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를 집행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따라 가감하거나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더 의존하거나 범죄한 신자들을 권징하지 않는다면, - 오 형제들이여, 다시 한번 저의 말을 너그럽게 들어주십시오 - 그렇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거짓교회입니다!!
다시 한 번 더 저에게 정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들은 이미 다른 교파 교회들에게 교회의 문을 열어놓지 않았는지요? 장로교회의 강단에, 우리와 신앙과 생활을 달리하는 교회의 강사를 세우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이미 온갖 잡동사니 신앙의 온상인 기도원과 오순절 은사 운동을 하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지 않으신지요? 만약 이 질문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신다면, 여러분의 교회는 참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만약 불행하게도 긍정의 대답을 하신다면, - 오 형제들이여! 세 번째 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의 교회는 이미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편 교회는 사도적 신앙의 일치로 거룩한 성도의 교통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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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럽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좀 묻고 싶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시면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들께서는 과연 여기에서 지적된 부분들이 "거짓교회"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위에서 지적된 부분들은 단지 "덜 순수한 교회"(아니면, "아주 많이 덜 순수한 교회")라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거짓교회"라는 판단의 근거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필자는 대다수 한국교회가 위의 세가지 교회의 표지를 모두 버렸으며 그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과 실천이 이미 사라졌다고 판단한다"라는 "이광호" 목사님의 말씀은 재고의 여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한국교회"를 논하는 것은 저에게 무리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와 관련하여서 생각해 볼 때, 정말로 우리 교회가 "교회의 표지"를 모두 버렸을까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우리 교회에는 "설교"와 "성찬"과 "권징"이 있습니다(참고로, "J. Calvin"은 "설교"와 "성찬"만을 표지로 삼았습니다). 다만 그 "실천"에 있어서는 상당히 미약하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적어도 우리 교회는 그것들을 공적으로 거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또한 우리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그 예배를 통하여서 "악행"을 저지르도록 강요받는 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방금 말씀드린 부분은 "J. Calvin"이 "거짓교회"를 논하면서 언급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기왕에 언급한 김에,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에게 기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라는 생각도 들기에, 이제 그의 가르침에 귀를 좀 기울이고자 합니다. 참고로, 개혁주의 교회의 두 진영인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에 동일한 뿌리가 있다면 그것은 곧 "J. Calvi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인용한 『기독교강요』(1559년)의 번역본은 "김충호" 역입니다(한국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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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IV, i, 14.
그러나 그들("IV, i. 13"에서 언급된 그들, 즉 "거짓교회"라고 단정하는 자들)은 죄악이 두루 창궐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외친다. 여기서도 사도의 의견으로 그들에게 대답할까 한다. 고린도 신자들 가운데는 타락한 사람이 적지 않았으며, 사실 거의 회중 전체가 감염되었다.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아주 많았으며, 그것도 경미한 과실 정도가 아닌 무서운 비행이었다. 도덕적인 것과 교리적인 면에까지 부패가 있었다. 성령의 도구요 그의 증거에 의해서 교회의 존망이 결정될 저 거룩한 사도 바울은 이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그는 이런 교회에서는 손을 떼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들을 몰아내는가? 최종적인 저주의 벼락으로 그들을 때려부수는가?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의 공동체라고 인정하며 선언한다(고전 1: 2). 고린도 신자들 사이에는 분쟁과 분열과 시기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며(고전 1:11; 3: 3; 5: 1; 6: 7; 9: 1이하) 언쟁과 탐욕이 함께 싹트고 있었고 이교도들조차 미워할 악행을 버젓이 시인하고 있었다(고전 5: 1). 아버지처럼 존경해야 할 바울의 명예를 무례하게 깎아 내리고 있었으며 어떤 자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조롱하여 복음 전체까지 부수려고 하였다(고전15: 12).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재능은 야심에 이용되었고 사람을 돕지 못했다(고전13: 5 참조). 여러 가지 일을 예절이나 질서 없이 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포와 성례 집행은 반대 없이 계속했으므로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교회가 존속했다. 그러면 누가 감히 이런 비행의 십분지 일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교회"라는 명칭을 빼앗을 것인가? 현대 교회들을 반대해서 야비하게 날뛰는 사람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어떻게 대접했겠는가? 그들은 거의 복음을 버린 자들이었지만 바울은 그들 사이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갈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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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목사님께서는 자신의 글에서 "필자가, 한국교회가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단순한 윤리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이며 교리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J. Calvin" 역시도 고린도 교회가 "한 가지 죄가 아니라 아주 많았으며, 그것도 경미한 과실 정도가 아닌 무서운 비행이었다. 도덕적인 것과 교리적인 면에까지 부패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음에 주의해 봅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누가 감히 이런 비행의 십분지 일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교회"라는 명칭을 빼앗을 것인가?" 하고 반문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선포와 성례 집행은 반대 없이 계속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분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록 우리 교회가 그 시행에 있어서 "순수성"을 많이 상실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가 "설교"와 "성례" 자체를 반대한 적은 없지 않습니까? 더 더군다나, "고린도 교회"에 비한다면 우리 교회는 그나마 더 순수한 교회에 속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에게서 "교회"라는 명칭을 함부로 빼앗는 것이 과연 합당한 처사인지 정말로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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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IV, i, 18.
...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요엘과 하박국이 기술한 예루살렘 교회의 참상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다. 백성과 관리와 제사장들이 모두 심하게 부패하자 이사야는 주저치 않고 예루살렘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고 했다(사 1:10). 종교는 멸시를 당하며 정말로 부패하기도 했다. 도덕적으로는 절도, 강도, 배신, 살육, 기타 악행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었을지라도 예언자들은 자기들의 교회를 새로 세우지도 않았고 새로운 제단을 쌓고 따로 제물을 바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사이에 말씀을 두시고 그들 사이에 의식을 제정하셔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셨다고 예언자들은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악인들이 모인 한 가운데서 깨끗한 두 손을 들어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이런 의식들에 의해서 자기가 더렵혀진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그런 곳에 끌려가기 보다는 차라리 백 번 죽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분파를 만들지 않은 것은 오직 연합을 열망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크고 많은 비행을 저질렀어도 거룩한 예언자들이 교회에서 자신들을 분리하는 것을 불가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일부 사람들의 도덕 생활이 우리의 표준에 맞지 않거나 심지어 기독교 신앙고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이유만으로 우리가 감히 교회의 교통에서 즉시 탈퇴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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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Calvin"은 말합니다. "이런 의식들에 의해서 자기가 더렵혀진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그런 곳에 끌려가기 보다는 차라리 백 번 죽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교회"에 관하여는 "『기독교강요』IV, ii, 9"에서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교황주의자들-에게는 어디에 유사점이 있는가? 그들과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거의 명백한 우상 숭배로 더렵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통의 중심 유대는 미사인데 이것을 우리는 가장 큰 신성 모독으로 혐오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 어디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까요? 저는 우리 교회가 전자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 성도님들께서 비록 그 예배의 풍성함을 맛보고 있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 예배를 통하여서 우리가 더렵혀지는 지경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저는 "김영환" 목사님의 "해명과 나의 입장3"(본 게시판 1302번글, 2003/11/19)에서 지적된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환" 목사님께서는 그 글에서 "호주자유개혁교회들"과 "캐나다개혁교회들"의 일례를 들어, 마치 우리 교회가 그들과의 "교회의 교통에서 탈퇴"해야만 될 것처럼 주장하셨지만, 사실 그 일례들은 오히려 논점에 있어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개혁교회들"의 입장과 "김영환" 목사님의 입장은 특별히 그 방향성에 있어서 크게 상반되는데, 전자는 "공적으로 배도하여서 자신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증거를 드러내지 않은 이상은" 연합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후자는 "순수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연합을 파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서, 양자는 전혀 상반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이러한 말씀은 죄송합니다만, 드러나 있는 글을 볼 때 "김영환" 목사님의 이러한 입장은 개혁주의라기 보다 "완전주의"적 교회관에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개혁교회들의 입장은 "J. Calvin"의 견해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한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이 크고 많은 비행을 저질렀어도 거룩한 예언자들이 교회에서 자신들을 분리하는 것을 불가한 것으로 생각했다면 일부 사람들의 도덕 생활이 우리의 표준에 맞지 않거나 심지어 기독교 신앙고백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이유만으로 우리가 감히 교회의 교통에서 즉시 탈퇴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이제 저의 생각들을 정리할까 합니다.
정리하면서 한 가지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저는 지금 이 글을 "자존심이 심하게 상"하여서 적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지금 저의 심장은 "연약한 성도님들"에 대한 염려와 사랑으로 인해 찢어져 죽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분명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러한 글들을 보며 엄청난 고민과 방황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성도님들이 계실 것이고, 저의 제일된 관심은 바로 이 분들에게 있습니다. "거짓교회"라는 말을 내뱉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자신이 속한 교회를 놓고 "이 교회가 정녕 거짓교회란 말인가!" 하며 괴로워할 성도님들의 고통과 한숨은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역시도, "이광호" 목사님의 글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지금 우리 교회는 "배도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교회"라고까지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가 "이광호"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우려점들을 감히 이렇게 장황하게까지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분 역시도 우리 교회를 "거짓교회"라 판단하고 계신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 글에서는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면서 내린 다음과 같은 우려가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논쟁의 흐름을 볼 때, 따지고 보면 같은 편에 서있는 목회자들 상호간에 불신의 감정이 키워져 반목하게 될까 우려된다. 그러므로 논쟁에 나서는 분들이 보편교회의 입장에 서서 좀 더 냉철해지기를 원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위한 관심이어야 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합리화하거나 강화하는 방편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광호" 목사님께서는 "따지고 보면 같은 편에 서 있는 목회자들"이라고 이미 잠정적인 평가를 갖고 계신 듯 합니다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과도 관련이 있고, 따라서 "같은 편"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유보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말씀을 오해하지는 마셨으면 하는 것이, 저 역시도 "상호간에 불신의 감정이 키워져 반목하게" 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미 드러나 있는 일들에 대한 엄정한 논의와 평가를 요청하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적어도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를 위한 관심이어야 하며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합리화하거나 강화하는 방편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일치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한 관심"이라고 할 때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만 할 것은 고통 중에서 고민하고 있을 우리의 성도님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더군다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성도님들로 하여금 "엘리멜렉"의 우(룻 1: 1-5)를 범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말들은 저의 수준을 벗어나는 것 같아,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은 "이광호" 목사님의 글과 관련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선한 논의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성도로서, 또한 계속해서 이러한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성도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본 것입니다.
야웨님의 샬롬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주후 2003년 11월 25일,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는 시간에...
김 주 석 올림.
추신) "교회의 교사"이신 분들과 및 "목회자"이신 여러 분들께...
저는 "이광호" 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에 관한 좋은 "논의"를 제안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제가 마땅히 존경해야 할 분으로 알고 있고, 또 매일의 기도 제목에서 빠트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교회의 교사"이신 분들과 및 "목회자"이신 여러 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깊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는 여러 성도님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희가 과연 무엇을 좇아 살아야 할는지를 보여주시기를 머리 깊히 조아리며 부탁드립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 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