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의 반미주의 신학자 논쟁(?)
글쓴이 : 길성남 날짜 : 2004/10/20 조회 : 61
사상 논란 유감(길성남)
저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약을 가르치고 있는 조교수 길성남입니다. 최근에
교단의 일각에서 저를 가리켜 좌익, 용공, 친북, 반미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부산 노회에서는 공적으로 저의 사상을 문제 삼는 발
언이 나오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총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저의 사
상을 문의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교단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의 한 사람으
로서 ‘예수의 사람’ ‘복음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입에 담기에
도 끔찍한 소리를 듣게 되어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분과 교단의 모든 지도자들, 그리고 성도님들께 분명히 말
씀드립니다. 저는 결코 좌익, 용공, 친북 사상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반미주의
자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의 사상을 문제 삼는 말들이 나온 데는 두 가지 정도
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2003년 2월에 신학대학원에서 헬라어 계절학기 수업
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쓴 장편소설 ‘손님’을 읽혔기 때문
입니다. 이것을 문제 삼는 분들은 황석영씨가 친북 반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고 간주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작가가 쓴 소설을 학생들에게 읽힌 당사자도 친
북 반미주의 사상을 가졌으리라고 단정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학생들에게 친북
반미사상을 주입시키려고 그런 작가의 책을 읽혔다고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지
금은 아예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
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결코 친북 반미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
며, 또 그런 사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고 책을 읽힌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신문에 난 도서 소개를 보고 ‘손님’이라는 소설에 흥미를 느껴서 읽게 되
었습니다. 작품의 중심 소재는 한국전쟁 당시에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기독교
인들과 비기독교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입니다. 한국전쟁 전에 그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많은 핍박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국군이 황해도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핍
박하고 못살게 굴었던 좌익 사상을 가진 주민들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사람들을
색출하여 보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마귀의 세력으로 간주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단하였습니다. 합법적인 재판 과정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
앗았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을 통해서 황
해도 신천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공정하게 그 사건을 다루었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
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했다고 해
서 기독교인들이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마구잡이로 보복을 하는 것이 과연 옳
은 일인가? 사상이 다른 주민들을 마귀의 세력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이름으
로 처단하는 것이 과연 기독교 정신과 부합하는 일인가? 이런 의문과 함께, 저
는 분단된 우리 조국에게 기독교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
다. 비록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반기독교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체제 아래 있
는 북한의 주민들은 우리의 동족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겠습니까? 저
는 장차 기독교 지도자들이 될 신학도들이 이 소설을 읽고 한국전쟁 당시의 일
부 기독교인들의 과오를 인정할 뿐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을 가
슴에 품고 기도하며, 저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저들이 굶주리고 목마를 때 기꺼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누어 주는 기독교적
인 사랑을 실천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제가 학생들에
게 손님을 읽힌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조 정래씨의 ‘태백산맥’은 이적표현물로 분류되어 있으나, 제가 아는 한
‘손님’은 이적 표현물이나 출판물로 판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소설
을 읽힌 것을 문제 삼아 저를 친북 좌익 용공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세월 한국사회에서 사상범으로 몰린 사람
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아시는 분들이 어찌하여 그다
지 문제가 되지 않는 책 한권을 읽힌 것을 빌미로 삼아 무고한 사람을 좌익 용
공 친북사상을 가진 자로 몰아붙이는지요.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힌 지 벌써 1
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그 뒤로 이 책-혹은 이와 유사한 책-을 학생들에게 추천
하거나 읽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직접 저를 찾아
오시거나 전화를 하신 분은 한, 두 분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
정도 알아보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인생을 결단내고도 남을 만한 말씀들을 하고
다니시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도 맞지 않고, 상식
이나 세상 법에 비추어보아도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
시는 아무 근거 없이 저를 좌익 용공 친북 사상을 가진 자로 매도하지 마십시
오.
둘째, 지난 해 3월에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저는 그 전쟁이 국제사회의 동
의 없이, 그리고 분명한 명분이 없이 일어났으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
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국에게 부여하신 국력을 부시정부가 국제사회의 평화
를 신장시키는 목적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에 사용한 것이 잘
못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앞에서 부시정부의 정책을 비판했습
니다. 그런데 이것이 학교 밖으로 알려지면서 저를 ‘반미주의자’라고 말하는 사
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7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기간동안에 미국의 좋은
점을 많이 보았고, 미국 교수님들에게도 상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
는 미국에 우호적인 사람입니다. 적어도 저는 자국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점
과 시민들의 준법정신이 투철한 점,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신중하고 철저하
게 하는 점에서 한국사회가 미국사회를 본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미국
에 우호적이라고 해서 미국의 모든 정책에 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
어도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는 잘못된 전쟁입니다. 후세인이 9.11 테
러를 지원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거나 개발
했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부
시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이름 없
는 교수 한 사람이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를 반미주의자
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또 말이 사람을 잡기도 합니다. 잠언서 기자는 “죽
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
라”고 하였습니다(잠 18:21). 또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
로운 자는 양약과 같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잠 12:18).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앞 뒤 사정을 알아보지 않은 채, 처음에 누구의 입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른
채 들은 말씀을 마구 전달하지 마십시오. 사정을 충분히 알아보신 뒤에 지혜롭
게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들이 드리는 기도와 입술의 찬양
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