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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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과 안식일


(관리자 안내문)
/초기화면/연구실/문의답변/4117번 '주일과 안식일'/ 내용은 질문은 전혀 없고 단순히 '안식교인'이 '안식교교리'를 올린 것이어서 이곳 '주일 관련 자료' 밑에 참고로 올립니다. 이단설은 될 수 있으면 쳐다보지도 않지만 이곳까지 찾아와서 올린 것이고 또 그 내용이 앞으로 안식교 비판에 참고할 내용이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문의답변/ Article Number:4117, 인도자 Lines:2250 200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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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과 안식일


iii 안식일 제도와 일요일 준수

1. 안식일 준수의 성경적 근거.

비평 박영관 "안식교는 한마디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고수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잘못에서 왔고 더욱이 환상적인 신비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 교의 토요일 예배는 역사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해설 비평에 의하면 안식일 교회가 이단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반 신. 구약에서 성일로 준수하는 일요일 대신에 오늘날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성별 하여 지키는 것이다. 박영관 씨에 의하면 이와 같은 안식일 준수는 성경에 근거도 없고, 역사적 근거도 없는 황당무게(荒唐無稽) 한 것으로, 안식일 교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므로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라는 것이다. 안식일에 관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공식적인 신앙은 아래와 같다.

"은혜로우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제칠일에 안식하 셨으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창조의 기념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율법의 넷째 계명은 제칠일 안식일 휴식과 예배와 안식일의 주가 되시는 예수 님의 가르침과 실천에 일치하는 봉사의 날로 준수하도록 요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인간 피차의 즐거운 교제를 위한 날이다. 이날은 그리스 도안에 있는 우리의 구속 (救贖)의 상징이요. 성화의 표징이요 우리의 충성됨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왕국에서 경험할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영원한 언약의 영속적인 표징(sign)이다. 일몰로 시작되는 저녁부터 저녁까지 이 거룩한 시간을 즐거움으로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사역을 축하하는 것이 다."
안식일에 관한 이러한 성서적 신앙이 참으로 정죄 받아야 할 이단의 신조인가? 그리고 안식일에 관한 박영관씨의 비평은 성경에 일치하는 정통 신앙의 신조가 될 만한 것인가?
변증 성경을 단 한번만이라도 차분히 읽고 나면 자명해지는 대답이다. 우선 신, 구약, 성경을 기초로 안식일의 기원과 역사 및 의의(意義)를 간단히 밝힌 후에 항목별로 비평에 답하고자 한다.

창조의 이상-행복의 시간과 공간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히3"8)이시다. 집마다 준공일 이 있고 제품마다 제조일 이 있듯이 지구도 창조가 마쳐진 날이 있음에 틀림없다.
"천지와 만물이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시니라.(창2:1-3)"더할 나의 없이 분명한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이며 성경 적인 근거이다.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결혼 제도와 더불어 청조와 동시에 분명한 목적과 필요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바로 결혼시켜서 .생명이 태어나는 요람이요 행복을 경험하는 안식의 공간(空間) 인 가정이라는 안식처(安息處) 를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여섯째 날 해가 지면서 시작된 제칠일을 안식의 시간(時間) 으로 성별 하심으로써, 거룩한 시간과 행복의 공간이 서로 만나 이루어지는 숭고한 창조의 기념관에서 인류 창조의 영원한 이상을 실현하려 하셨다. 그러므로 창조의 처음 안식은 아담과 하와에게 허니문(密月) 이었으며 동시에 인간의 역사는 안식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주권과 예배의 근거인 창조.

부모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자식을 낳았다(出産) 는데 있고 자녀들로부터 합당한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한 권리도 역시 그들을 낳았다는데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되실 수 있는 자격은 창조(創造)에 있고 인간을 다스리시는 주권의 근거도 인간에게서 합당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마땅한 까닭도 창조에 있다.

"우리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 을 지은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4:;11)
그러므로 창조하지 아니한 신은 하나님이 아니며, 창조하지 않았으면서도 경배를 받으려는 것은 거짓 신이요 우상인 것이다. (사40:18-25) 그러므로 창조를 기념하는 안식일 통하여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만이, 창조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신 것이다. (출31:13; 겔20:12)그것이 넷째 계명에 명시된바 사람이 안식일을 기념해야 할 이유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지키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제2의 창조인 구속
그러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이상(理想)은 깨어지고, 주권은 침해를 당하였고 인간은 불행과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 자식에 대한 드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 짓밟힌 주권을 회복하고 빼앗긴 인간의 행복을 되찾아 주시려는 열렬한 소원으로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셨다.(창3:15)이 계획이 구약의 역사에서 실증(實證)된 것이 출애굽 사건이요. 신약에서 성취된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그것이 제2의 창조인 구속(救贖)인 것임을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였느니라" (신5:15)
창조와 구 속의 기념일.
이리하여 본래는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이, 출애굽을 통하여 해방을 경험한 이스라엘에게는 구원(救援)의 기념일로서 새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것은 마치 광복절로 기념되는 해방이 없이는 개천절로 기념되는 개국(開國)도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즉 본래의 지구 창조의 기념일[개천절]이였던 안식일이 동시에 구 속의 기념일[광복절] 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창조 당시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2:1)는 창조 선언이 있듯이 "안식일이 거의되었"(눅23:54)던 같은 시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킨 후, "다 이루었다"(요19:30)는 구속의 선언을 통하여 확인하고 있다. 또한 구약의 역사적인 구속인 출애굽은 성력 1월14일인 유월절, 곧 무교절 안식일이 시작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양을 죽여 피를 바름으로 이루어졌다.(출12:1-11) 그후 신약에서 같은 유월절이며, 동시에 제칠일 안식일이 시작되는 같은 시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심으로서 (요19:31)안식일이 창조와 구속을 함께 성취시킨 역사적인 기념일임을 확증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주일에.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더라"(눅23:56)는 기록은 십자가 때문에 안식일이 결코 단절(斷絶)되지 않았음을 확신시키려는 복음서의 의도인 것이다.

순종의 시금석 (試金石)
출애굽의 목적은 구속(救贖)곧 죄로부터의 해방이 있었으며 해방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본분인 예배에 있었다.(출4:22,23, 5:1, 3, 8:27, 10:8, 9, 25, 26)이 목적은 출애굽과 동시에 실현되었다. 그리스도를 상징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속량(贖良) 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즉시 사람의 본분인 예배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시내산 에서 십계명도 받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를 내리실 때 제6일에는 두 배를 거두게 하시고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으심으로서, 안식일에는 애굽에서처럼 먹고사는데 얽매인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임을 가르치셨다.(출16:23-26)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도 육신의 양식을 거두러 나간 백성들을 견책하시며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겠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 (출16:28.29)임을 밝히셨다.
이와 같이 십계명이 있기 전부터,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순종심을 시험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되었다. 그리고 십계명이 주어진 후에도, 안식일 준수의 의미는 더욱 강화되어,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출31:13) 고 재확인하셨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안식일 준수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
이러한 안식일 제도의 중요성은 그 후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단히 강조되었다.(사56:6,7, 58:1,3.14, 66:23; 렘17:19-27)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은 했어도 포로 되어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안식일을 무시하고 고의로 더럽힘 때문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겔20:20-23, 16-24; 렘17:27; 느9:13-17).

예수그리스도와 안식일

약속된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심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 제도에 어떠한 변화나 새로운 의의(意義)를 가져왔는가? 예수께서는 친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막2:28; 마12:8)곧 "안식일의 주(主)"라고 선언하심으로써, 구약에서 거듭거듭 "여호와의 안식일" "나의 안식일"(출20:10; 신5:14; 사58:13)이라고 선언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안식일의 주(lord)" 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관한 당신의 주권을 강조하심으로서, 당신의 권위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신 것이다. 이에 대한 반응을 주목해 보자.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同等)으로 삼으심 이러라"(요5:18)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다고 고발된 것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까지도 정죄한 바리새인들의 전통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약 학자인 전경연씨도 이 사실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고 잇다.

"예수는 안식일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 사회에서 안식일을 까다 롭게 만든 율법 학자들의 궤변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최고 주권자로서 안식일의 본래 목적대로 인간을 죄의 속박에서 풀어, 주시고, 행복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좇아 내시는 등 재창조의 능력을 주로 안식일에 드러내셨다. (마12:11~13; 눅13:10-17, 14;1-6) 이와 같이 예수께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안식일에 대한 당신의 주권(主權)을 주장하시고,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라고 선언하심으로 창조주로서의 신분을 밝히신 것 이상으로, 안식일의 중요성을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까?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오해하여, 마치 예수께서 안식일을 무시하여 고의로 범하신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그 당시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곡해(曲解)를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일요일을 주일로 옹호하고 있는 현대 신학자인 주이트(Paul k. jewett)도, "예수님은 안식일 제도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고 단지 안식일을 지키는데 대한 장로들의 유전을 거부한 것뿐이였다." "예수님은 결코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으셨다" 고 시인하고 있다.

증 언 주이트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그러했던 것 같이 예수는 구약을 성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구약성서에는 안식일을 최고의 윤리 법전인 십계명에다 두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전통에 짓밟혀 본래의 의의를 상실한 안식일을 회복하시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불사(不辭) 하셨다. 참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 누가 생명을 거는 어리석은 일을 하겠는가? 또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사 성경을 읽으"(눅4:16)시는 등 어린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안식일을 준수하셨음을 뚜렷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안식일의 존속(存續)을 결코 단절(斷切) 시키지 않았음을 확인시키기 위해 이방인을 위해 쓰인 복음서인 누가복음에는 무덤에 장사되셨던 그 안식일도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눅23:56)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예언과 안식일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로 안식일 제도가 약화되는 대신 더욱 강화되었음은 그것이 창조의 기념에서 구속(救贖)의 기념으로 증폭(增幅)되었음과 더불어 확고해졌음이 다음의 사실로도 확인된다. 서기 31년 십자가에 달리시던 마지막 주간에 감람산에서 행하신 고별설교에서, 당신을 거절한 예루살렘의 운명을 미리 내다보시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피할 길을 가르쳐 주시면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란이 있겠음이라"(마 24:20,21) 고 예언하셨다. 예고된 예루살렘의 멸망은 불가피할지라도 (단9:26), 그리스도인들이 찬비가 내리는 음산한 팔례스틴의 겨울에 불어난 요당강을 건너 피난하는 어려움과 함께, 거룩한 안식일에 피난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기도 드리라는 간곡한 말씀이다.
과연 예언 그대로 서기 70년 9월 로마군에 의한 오랜 포위 끝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어 100여 만명이 기근과 칼로 죽임을 당하는 대 파멸을 겪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경고하신 말씀을 따라 사전에 요단강을 건너 펠라(Pella)지방으로 파난하여 대 파멸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할 안식일임이 주님에 의하여 확인되었다면 그 이상의 논증이 필요 없지 않은가?
사도 시대의 안식일
서기 49년경에 열렸던 그리스도교 제1차 세게 총회 격인 예루살렘 회의에서는 사도들의 전도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야기된 교리 적인 문제들이 다루어 졌다. 그 때에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문제는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행15;7) 폐지하기로 결의하였다(행15:19-21)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안식일 준수 여부는 거론도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지 여부가 거론되지 아니한 이유와 같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정(旣定)사실은 아예 취급하려 하지도 않은 것이다.
(행15:5-11)
이와 같이 사도 시대 동안도 제칠일 안식일이 변함없이 준수되었음을 이방인 사도인 바울의 행적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주님의 본을 따라 이방 땅에서도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 (행17:2) 하였고 또 "안식일마다" 그렇게 하여(행18:1-4, 11, 13:14, 42-44, 16:12, 13), 사도행전에만 84회의 안식일 준수가 함축되어 있다.
만약 안식일이 이방인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의식적인 율법이었다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그리스도인 안식일이 제칠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어진 사실을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다"(행20:27)고 고백한 바울은, 의식적인 율법인 할례는 한사코 반대했으면서도 안식일은 자신이 먼저 준수하여 솔선 수범했다.(행21:20-24)
마지막 때와 안식일
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요, 탄원인 요한계시록의 세천사의 기별에는 안식일과 직접 관련된 중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경외 혀며 그에게 큰 영광을 돌리라 이 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 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14:6.7)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창조주로서 합당한 경배를 받으신다.(사43:7)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고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일은 사람의 본분이요, 이에 대하여 각 사람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안식일의 목적이 바로,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출20:11)셨음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본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마지막 시대의 성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로 특징 지워져 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때의 심판과 안식일이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할 것이다.(사56:1.2)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안식일
이사야 선지자는 계시록에도 나타난 회복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서,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66:23) 고 기록했다. 또한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 귀히 여기"는 사람들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뿐만 아니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야곱의 업(業)으로 기르리라"(사58:13, 14)는 영원한 축복을, "여호와의 입의 말"(사58:14)임을 단서로 약속하였다. 이리하여 죄로 잃어버린 실낙원(失樂圓)에서 다시 구속으로 회복될 복난원(復樂圓)까지 이어지는 안식일 역사적 일관성(一貫性)은 아래와 같이 성경 전체에 일목요연하게 드러나 있다.







이제까지 복습을 겸하여, 신, 구약 성경을 기초로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과 성경 적인 근거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토록 분명한 상경의 증거를 확인하면서, 제칠일 안식일 곧 오늘날의 "토요일을 안식일로 고수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잘못에서 왔고... 안식교의 토요일 예배는 역사적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라고 비평한 박영관 씨의 비평이야말로 참으로 역사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근거도 없는 허구(虛構)한 논증임을 안타까움을 느끼며 지적 할 수밖에 없다.

2.안식일 준수와 율법주의

비 평 박영관 안식교는 한마디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고수하는 것은 성경 해석의 잘못에서 왔다.

안식일의 역사적 기원과 성경적 근거는 앞서 밝혔거니와, 안식일 준수하는 것은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따르는 것이라는 비평을 따로 떼어 변증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을 위한 안식일

변 증 이상과 같은 비평은 안식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이고, 일요일은 그리스도인의 성일 이라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와 동시에 제정되어, 아담 때부터 존속된 제도이므로, 범죄와 상관없고, 유대인과도 상관이 없고, 의식적인 율법이나 십계명과도 시대적으로 상관이 없어, 안식일을 어느 시대에나 어느 민족에 국한시키려는 시도는 비 성서적이다.
"안식일에도 주인"(막2:28) 이신 예수께서 도, 안식일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7)이라고 천명하셨다. 창조와 동시에 안식일과 함께 제정된 결혼 제도가(창2:21-24) 유대인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것과 같다. 결혼 제도가 안식의 공간(空間)인 가정을, 제칠일이 안식의 시간(時間)인 안식일을 제공하므로 이 시간과 공간의 만남 속에서 인간이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나님께 의존하며, 사람 끼리 함께 사는 행복을 경험하게 하신 창조의 기본 질서인 것이다.(출20:8-11) 이미 구약 성경에도 안식일을 유대인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만민의 안식일, 이방인의 안식일, 심지어 육신 적인 미래가 없는 불구자(鼓子)의 안식일 등으로 규정하여 안식일의 시대성이나 민족적 제한을 철폐하셨다. (사56:3-7)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56:2)
그리하여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유대인만을 위한 의식법(儀式法)인 할례는 폐지시켜 결코 요구되지 않았지만, 안식일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이의 없이 공유했음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율법주의 에 대한 오해
박영관 씨의 비평이 사실이라면,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킨 사람은 모두 율법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그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까지 평생을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예수님(눅4:16)을 비롯하여, 역시 유대교 모태 교인으로 "자기의 규례대로"(행17:2)평생 안식일을 지킨 사도 바울도 율법주의자이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강조한 모든 노독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율법주의자가 된다는 빗나간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단정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추리 논법인 삼단논법을 잘못 적용한 착각의 결과 일수 있다. 즉,대전제: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주의 자였 다.
소전제 : 바리새인들은 모두 철저한 안식일 준수 자였다결론 :그러므로 오늘날도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하는 사람들은 바리새인들 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만약 이와 같은 잘못된 논리 전개가 사실이라면 걷잡을 수 없는 엉뚱한 결론들이 속출하게 된다. 복음서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이외에도 십일조, 헌금, 구제, 금식 기도 등에도 철저한 사람들이었다.(눅18:11.12)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될 수 있을까?

대전제 : 그리스도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 자였다.
소전제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십일조와 헌금 구제 금식 기도를 실천했다.
결론 : 그러므로 오늘날도 십일조와 헌금 구제 및 금식 기도를 하는 사람들 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이다.
십일조와 헌금, 구제와 기도는 참된 그리스 도인들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가? 추리의 착각이다. 안식일이나 십일조, 헌금, 구제가 사람을 율법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 대답이 있다. 곧,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23:23)
진상이 뚜렷해졌다. 십일조와 헌금, 안식일 등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를 삼을 때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의를 거절하게 됨으로 결국 행함으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을 준수하되 율법의 정신에 어긋나게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가 되지만, 의의 표준인 율법을 무시하고 고의로 범하는 사람들은 "무법한 자"(벧후2:7, 3:17), 혹은 "불법을 행하는 자"(마7:23, 13:41; 딤전1:8,9)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 편견 때문에 판단의 논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비 평 탁명환"안식교는 토요 안식일 성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개신교가 주일을 안식 일로 지킨 것은 예수의 부활 사건과 관련지어 율법적인 토요 안식일 대신에 안식 후 첫 날 예수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여 지키게 된 것이다."
탁명환 씨는 오늘날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성경 상의 제칠일 안식일을 율법주의 적인 안식일로 규정하고, 안식일 교회가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고 비평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리스도 인의 주일로 옹호하고 있다.

율법주의와 무법 주의
변 증 "앞에서 밝힌 대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율법주의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섯째 계명에 따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 여덟째 계명대로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 둘째 계명을 범하지 않으려고 신사 참배를 거절함으로 목숨까지 빼앗긴 순교자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비평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넷째 계명에 따라 성경 적인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만 율법주의자가 되는가?
율법주의자란 율법을 지킨 자신의 선행을 의로 삼아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무법한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율법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다(마7:23 ; 벧후3:17 ; 살후2:3,7,8).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나,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행위도 결국 율법을 준수하려는 일임에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안식일 준수와 구원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는 비평 역시 옳지 않다.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가? 이러한 질문을 구태여 안식일에만 국한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구원을 얻는가?" "도적질을 하지 말아야 구원을 얻는가?" 모두 같을 성질의 질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우리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도적질을 하지 않았어도 구원받지 못할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망설인다. 마찬가지로 무법한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갈5:19~21 ; 딤후3:2~5)임을 명시한 성경 말씀을 기억할 때, 우리는 "아니라"고 대답하기도 꺼린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고 대답은 무엇인가?
앞에서 밝힌 대로 안식일은 창조와 구 속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서 개천절과 광복절의 의미가 포개진 경우이다(신5:12~15).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광복절을 지켜야 해방되는가?"라는 질문과 같아진다.
논리적으로 틀린 질문에는 바른 대답이 있을 수가 없다. 태어난 사람에게는 생일이 있고, 해방된 민족에게는 광복절이 있듯이 창조와 구속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에게는 안식일의 존재와 필요가 절실해진다.
창조 때부터 존재한 안식일이 실제로 도덕의 법칙인 십계명 함께 성문화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후인 시내 산에서였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이 구원의 근거가 아닌 것은 틀림없다. 구원의 근거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곧 십자가이다(고전5:7). 하나님께서도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로라"(출20:2)고 전제하신 후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을 지키도록 명하셨다. 안식일의 경우는 이 사실이 더욱 강조되었다(신5:15).

구원의 결과인 안식일

분명해 졌듯이, 십계명이나 안식일 준수는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명시되었다. 그것은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받은 구원을 보존하고 경험하는 방편이다. 한국에 살면서 미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독립 기념일을 철저히 지켰다고 미국에 영주 이민을 허락 받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런 것들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 않았어도 미국이 호의로 발급한 사증(査證.비자)을 근거로 이민 자격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시민(市民)의 자격과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영주권 자나 시민권 자가 되고도 고의로 법을 범하거나 무시하면 추방되거나 시민의 권리를 법에 따라 제한 당한다. 천국 시민의 특성과 자격을 선포한 산상설교에서 예수께서도 십계명의 중요성과 의의를 확대하였음을 주목할 것이다.(마5:7-40, 7:12-27).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성실한 그리스도인 이였으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허다하지 않은가? 그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구약성서에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비롯한 노독들이 일부다처(一夫多妻)의 관습을 따랐음을 본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들에게도 축첩(蓄妾)이 죄가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이혼등 이러한 도덕적 표준들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그 세대의 완악함과 어두움을 지적하신 후에 성경의 원칙을 제시하시고,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19:3-10) 고 단언하셨다.
성경은 각 시대의 각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받은 빛이나 특권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였다.(마11:20-24, 25:24-28; 요9:39-41; 룸2:12-23). 사도 바울도 "알지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이제는 어디든지"라는 표현을 통하여 심판의 시의성(時宜性)을 강조했다(행17:30.31). 그것은 또한 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며 (계14:6-12), 로마서에 제시된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을 강조한 심판의 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롬2:1-12)

심판의 표준인 십계명
여하튼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은혜로 거저 베푸신 구원에 대한 인간의 반응인 믿음의 진실한 여부를 드러내는 열매, 곧 행실(마7:16-21)을 심판하는 표준임에는 틀림없다.(약2:8-13) 십계명의 기능은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롬3:20), 십자가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을 죄로부터 보존하여 거룩하게 하는 성화(聖化) 의 방편이요, 표준이 된다.(롬7:7,13). 특별히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즐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겔20:12)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심판에서 (계14;6-11), 의롭게 서게될 참다운 그리스도 인의 특성이,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14:12)라고 명시된 것도 그 까닭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심판은 믿음의 결과인 행실(行實)을 판별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마16:27; 계22:12)
그러므로 안식일을 비롯한 십계명을 비평하려 할 때는, "자유의 율법(십계명) 대로 심판받을자 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2:12)는 권면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약2:9)는 기능과 불변의 권위를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롬3:31)운다는 사실을 복음의 구조에서 이해해야 한다.

부활의 기념과 안식일
비평에 나타난 대로, 오늘날 일반 교회들이 제칠일 안식일 대신 첫째날인 일요일을 준수하는 이유로 부활의 기념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으로 지키는데 대한 성경 적인 근거는 있는가?

가. 실제의 날짜는 아니지만,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지키고, 부활절은 부활을 기념하여 지킨다. 일년에 한 번씩 부활절로 부활을 지킨다면 왜 또 일요일을 지켜 부활을 이중으로 기념하는가? 창조는 엿새동안에 이루어 졌음으로 칠일마다 안식일을 지켜 창조를 기념하는 것은 기념일로서의 논리가 서지만, 부활이 일요일에 있었다고 매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일로 삼는 것은 논리가 부당하다. 만약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이 월요일이라 해서, 성탄절과 함께 매 월요일을 탄생 기념일로 지킨다면 얼마나 이상한 기념 방법이 되겠는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나. 첫째날인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날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킨다면,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도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닌가? 실제로 십자가와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사실(史實)이므로 기념해야 할 가치가 있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두 사건을 기념하는 특별한 방법을 친히 제정하시고 준수하도록 명령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재림 때까지 기념하라고 제정하신 의식이 성만찬 예식이다(고전11:23.24; 마26:26-29) 돌아가신 여섯째 날인 금요일이나, 성력 1월 14일 유월절을 날짜로 기념하라고 아니하시고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고 하셨다(고전11:25.26) 십자가에 죽으심을 언제나 어디서나 성만찬 예식을 행함으로 기념하게 된다.

다 부활은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할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침레)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1)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 사 되었나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 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 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 한 자가 되리라" (롬6:4.5)
예수께서 친히 받으심으로 모본을 보이신 침례가(마3:13-17)곧 부활을 기념하는 예식이 된 것이다.

라 .그런데 중생과 부활의 기념인 침례를 성만찬처럼 자주 기념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예수께서 성만찬을 집전 하시기전 이미 침례를 받으므로 "중생의 씻음"(딛3:5; 행22:16; 히10:22)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13: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침례를 반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洗足)예식으로 대신하신 후, "내가 주와 성령으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려 하여 본을 보였느니라"(요13:14.15)고 하셨다. 이처럼 세족 예식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할 뿐더러 행하도록 모본까지 보이시며 명하셨는데 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예식을 등한히 하면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요일 준수로 중생과 부활을 기념하려고 하는가? 이처럼 십자가에 죽으심을 성만찬으로, 부활의 중생과 침례를 세족 예식으로 기념하도록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또 준수하도록 명하셨다. 이리하여 세족 예식을 겸한 성만찬과 침례는 그리스도교 기초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두 성례전(聖禮典)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부활의 기념으로 일요일을 성수(聖洙) 하는 것은 성경에 아무 근거가 없을뿐더러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시간 곧 날짜와 연관시켜 기념하도록 명하신 것은 창조와 구 속의 기념일인 제칠일 안식일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3.안식일과 칠일 중 하루

비 평 박영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모든 세대에 걸쳐, 모 든 사람과 관련하여, 적극적이며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계명으로서 하나님은 특별히 칠일중 하를 안식일로 정하시고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셨다'(출20:8, 10, 11; 사56:2, 4, 7).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때까지 는 한 주일의 마지막날로 되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일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

박영관 씨는 17세기(1646~47)에 채택된 장로교의 기본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근거하여, 안식일은 굳이 일곱째 날일 필요가 없고, 칠일중 아무 날이나 하루일 수 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하루가 그리스도의 부화 전까지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이었으나, 부활 이후에는 첫째 날인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거듭 강조한다.

제칠일과 칠일 중 하루
변 증 고정된 제칠일이 아니라, 칠일 중 아무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지키도록 명하셨다는 말은 성경에 아무 데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궤변이다. 그것은 1643년 영국의 의회가 소집한 웨스트민스터 종교 회가 제정하고 1648년 의회가 이를 인준한 장로교의 신앙고백에 근거하고 있다.
종교회의의 결의를 성경의 권위보다 더 존중하면,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마15:7, 9) 것으로 간주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장에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즉 "사도시대 이후 소집된 모든 대회나 총회는 세계적이든 지역적이든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많은 회의들이 이 오류를 범해 왔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신앙이나 실천의 규준이 될 수 없으며, 다만 보조적인 것으로 이용될 수 있다. 여하한 종교회의 결의사항이라도 성경을 대신하여 신앙의 규범으로 삼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의 조직 신학자로 자신이 주일 성수론 자인 쥬이트도 박영관 씨가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 인용한 상기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아래와 같이 노골적으로 비평하고 있다.

증 언 주이트 "이 고백 문에 대하여 원칙적으로는 비판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나 그 안에는 거짓된 신학 적 기교가 들어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항구적인 계명으로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하여' 라고 한 이 부분을 분석하면 그러한 점이 똑바로 드러나게 된다. 이 부분의 논증은 유지될 수 없다. 칠일 중 한 날을 택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항구적인 계명이란 없기 때문이다. 제 4계명은 명백히 칠일 중 하루를 지정한 것이 아니라 '이레 되는 날'을 지정하였을 뿐이다."

아무 날이나 될 수 없는 기념일
위에 인용된 비평에 적힌 안식일 계명 조항인 출애굽기 20장 8절의 문맥을 자세히 읽어만 보아도 비평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된다. 8절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후에 세칙을 설명하는 9절에서는, 다른 "엿세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라고 부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10절에서는, 8절의 "안식일"(히브리어 욤 하. 솨바트)에 덧붙여, "제칠일은 안식일이니"(욤 하. 쉐이비 솨바트- 영문으로는, the seventh day is a sabbath)라고 문법적으로 밝혀 놓았다. "제칠일"을 제외한 다른 여섯 날은 안식일이 될 수 없는 힘써 일해야 하는 날들임을 강조했음도 주목해야 한다.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명시된 창세기 2장2, 3절에서는 안식일이라는 명칭 대신, "일곱째 날에 안식하" 셨다고 밝히도,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거듭 확인하고 있어 칠일 중 아무 한 날이 안식일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하필 일곱째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창 2: 1)신 것이다.
본래 기념일이란 그 날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시간적인 의미를 가진다. 누가 광복절을 8월 15일이 아닌 일년 365일 중 하루를 정하여 지키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부부가 자신들의 결혼 기념일을 일년 중 아무 날로 정하여 기념하겠는가?칼빈주의 개
혁 교회도 받아들인 헬베티아 신앙고백(Helvetic Confession)에도 일요일은 안식일을 대신하여 지키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인정했다. 기념일을 옮기거나, 아무 날이나 기념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식에도 어긋난다. 지구가 존속하는 한 창조가 기념될 것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창조에 근거한 경배를 받으실 것이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권위로 그것을 속되게 할 수 없다. 안식일을 속되게 하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분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것임을 아래의 말씀에서 확인하자.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 22:26)
신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을 무시하고 유린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두려운 불경(不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교회들이 받아들인 헬베티아 신앙고백(Helvetic Confes-sion)에는 안식일의 기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비 평 신 조 "우리는 한날이 모든 날보다 더 거룩하다거나 그날에 휴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일이 아닌 우리 주의 부활일인 일요일을 준수한다.

앞에서의 성경 말씀에 전적으로 위배되는 말이다. 남의 것을 주인의 승낙 없이 가져가거나 없애 버리면 잘못이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막2:28) 신데, 예수님의 명령이나 승낙 없이 안식일을 없애 버리거나 다른 날로 바꾸는 일은 분명히 크게 잘못된 일이다. 누가 안식일을 마음대로 바꾸거나 없앨 권리가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통치권에 대한 두려운 도전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인간의 전통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 수도의 허락 없이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성일로 준수하면 어떠한 모순에 빠지는가? 영국 회중교회 지도자 데일(R. W. Dale) 의 논증이다
증언 데일
"우리가 아무리 엄격하거나 경건하게 일요일을 지킨다 해도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안식일은 특별히 주어진 거룩한 명령에 기초한 것이다. 우리는 일요일을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여 그러한 명령에 호소할 수가 없다. ...신약 성경에는 일요일의 거룩함을 범할 때 어떤 책벌이 이른다는 것을 제안하는 하나의 구절도 없다."
칼빈도 그의 [그리스도 강요]에서 넷째 계명인 안식일이 지니고 있는 권위나 준수 의무를 일요일과 같은 특정 일에 적용시키는 사람들을 오히려 율법주의자라고 책망하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에 모이는 까닭도, "믿음이 시들거나 쇠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모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돕는 외적인 방편" 정도로 규정하고 있어 일요일을 성일로 준수해야 할 성경 상의 근거나 이유를 일체 제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주일 옹호자인 쥬이트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헌들을 인용하고 있다.
증언 쥬이트
"그러므로 주일 첫날을 어느 날보다 더 잘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나 그날이 가진 무슨 거룩함에 대하여 넷째 계명이나 기타 다른 성경을 통해 알고 잇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날은 어느 날이나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매주 마다 이 의무를 위해 모일 수 있는 어느 한날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일에 모이는 관습은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
결국 위의 모든 진술은, 제칠일 안식일과는 달리 일요일은,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하게 된 날도 아니고, 축복이 약속된 날도 아니며, 따라서 준수해야 할 성경 적인 근거나 의무가 전혀 없는 또 하나의 인간 전통(傳統)에 불과한 날임을 자인한 셈이다. 이런 정도의 의의라면, 굳이 일요일을 주일로 주장할 까닭도 없고, 준수를 요구해 야할 근거도 없음이 자명해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한 예수님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처신에 불과한 것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 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마15:3, 8, 9)


4. 일요일에 관한 성경의 진술
비평 박영관
"더욱이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안식일이 예수 님의 부활 후에 첫째 날로 지킨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 복음 20:1은 예수 님께서 일주일 중 첫날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이 첫날을 안식일로 지켜야할 것을 말씀 하셨다."
변 증
박영관 씨는 부활이후 제칠일 안식일이 첫째날인 일요일로 바뀐 증거가 요한 복음 20장1절을 비롯하여 신약성경 여러 곳에 있다고 말한다. 신약성경 여러 곳이란 다음에 인용되는 여덟 군데인데 일일이 찾아보며 그 말이 참된지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 첫째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주장은, 성경어디에서나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찾을 길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을 부연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8장 1절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 식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안식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처음으로 무덤에 온 이 여인들은, "계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눅23:55.56)었던 바로 그 여인들이다. 그들은 다음날 새벽 예수께서 부활하신 줄도 모르고 시신(屍身)에 바르기 위해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막16:1.2)무덤에 갔을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마가복음16장 1,2절
역시 마태복음의 기사처럼 " 안식일이 지나매," 위에 언급한 여인들이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두었다가, 안식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는 때에 무덤으로 간" 이야기이다.

마가복음 16장 9절
"안 식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섰다는 앞 이야기의 반복에 불과하다.

누가복음 24장 1절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을 가지고 무덤에" 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같은 누가복음 23장55,56 절에 언급된 대로,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온 여자들인데, 예비일인 금요일에 "향품과 향유를 예비" 한 후 "개명을 쫓아 안식일에 쉬"었 던 여인들이다. 안식일을 지켰다는 증거이지 첫째날인 일요일을 성별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한 복음 20장 1절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에" 역시 위에 언급된 여인들이 무덤에 왔다가 비여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제자들에게 보고했다는 기사이다. 요한 복음은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뒤늦은 서기 90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부활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도, 안식일은 여전히 안식일로, 일요일은 여전히 "안 식후 첫날"로 부르고 있어, 1세기가 다 할 무렵까지 일요일을 주일이라거나, 부활을 기념하는 성일 의 의미가 일체 부어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 복음 20장 19절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셨다는 기사이다. 이곳의 저녁은 헬라어 "오프시오스"(opsios)로 "늦은"(late)이란 뜻인데 해가 지기 전인지 후인 지인지는 문맥을 통해 결정하게 된다.그러나 위의 성경 본문에 비추어 볼 때에 제자들이 모인 것은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부활하신 줄도 모르고 그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데 모여있었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일요일 성수(聖守)와는 상관없는 기록이다.

사도행전 20장 7절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 하였다는 내용인데 사도 바울의 마지막 전도 여행중 드로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사실을 들어 박영관 씨는 아래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비평 박영관
"드로아 시에 사는 기독교인 들 중 첫날에 예배하기 위해 모였고,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였다,...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먹고 기념하는 정기적인 모임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변 증
가. 정확한 역사가로 정평을 받고있는 이방인 누가는 부활 후 30여 년이 지난 서기 63년경까지의 사도교회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적어도 84회 이상 안식일이 준수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행17:3, 18:4,11) 반면, 첫째날인 일요일에 관한 언급은 이곳 한군데 박에 없다.
그것은 예수 님처럼, "자기의 규례대로"(행17:3)드로아에서 안식일을 보내고 난 "안 식후 첫날" 그 것도 낮에 열린 정규집회가 아니라, 밤 시간에 모였다. 그 까닭은,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특별히 모인 성만찬을 겸한 송별을 위한 집회였다.
나.
그런데 이 집회가, "안식후 첫날" 로 밝혀져 안식일이 지났음을 분명히 했으나. 앞서의 요한 복음20장의 기사와는 달리 시작된 시간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그저 한 밤중까지 계속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 밤중(Midnight) 집회가 실제로 어느 날에 속한 집회인가? 표현이 불분명할 때는 문맥을 통하여 결정해야한다. 유대인의 날짜계산 법으로는 오늘날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가 안식일이고(레23"32), 토요일 해질 때부터 일요일 해질 때까지가 첫째 날이다. 그러나 로마인의 계산법으로는 금요일 자정부터 토요일 자정까지가 안식일이고, 토요일 자정부터 일요일 자정까지가 첫째 날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표현은 토요일 밤이 될 수도 있고 일요일 밤이 될 수도 있다.
다.
그런데 박 영관 씨는 사도행전의 기자인 누가는 로마인의 계산을 따랐으므로 그것은 일요일 밤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그러나 그러한 단정(斷定)에는 무리(無理)가 있음을 알게된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인 금요일 오후 해질 무렵을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4)는 표현을 씀으로서 자신이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의 계산법을 썼음을 드러냈다.
또한 사도행전 2장15절에서도"때가 제3시" 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오늘날의 오전 9시로 유대인의 계산법이다.
그러므로 누가가 로마의 계산법을 따랐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다. 우리말 새번역 성경에는 아예 "토요일밤" 으로 번역한 까닭도 문맥이 요구하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설사 그 시간이 일요일 밤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첫째 날의 성수(聖守)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성경 어디에 그러한 방법으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있는가? 그것도 한 밤중에...........
라"떡을 떼려 하여 모였" 다는 것이 꼭 정기적인 예배와 연관된 성만찬이 아님을 같은 사도행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실제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 썼는데, 초기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먹" 었다(행2:46) 이것이 대개의 경우 교제의 식사인 애찬(愛粲. love feast)을 겸한 성만찬 이였다. (고전11:20-22),이러한 모임이 꼭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첫째 날에만 행해졌다는 근거를 성경에는 한 곳도 찾을 수가 없다. 성만찬과 침례는 처음부터 시간에 관련하여 주신 예식이 아니다. (고전11:23-26).
마. 사도 바울은 당시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계획에 따라 급히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안식후" 곧 토요일 밤에 다시 모여 성만찬을 겸한 애찬을 나누며, 사도의 말씀을 자정(子正)이 넘도록 들었는데, 이렇게 밤늦게 까지 모인 까닭은 이튿날 날이 새면 바울이 떠나기 때문에 특별집회로 모인 것이었다.(행20:7.8)
그 다음날 사도는 육로로 80리 길을 걸어서 앗소로 가서, 뱃길로 먼저 가 기다리던 누가 일행을 만나 여행을 계속하여, 미둘레네→사모→밀례도에 수요일에나 목요일쯤에 이르렀다.
거기서 사도는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특별집회를 가져 심금을 울리는 설교를 했다.(행20:14-38).
바. 이와 같은 문맥을 이해할 때, 급한 여행길의 사도는 안식일에는 결코 길을 떠나지 않고, 자기 규례대로 신자들과 함께 예배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곧 "안 식후... 이튿날 떠나고자하여 "(20:7)밤중까지 특별집회를 가졌고, 밀레도 에서는 주중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인데도 다시 에베소의 장로들을 위해 특별 집회를 가진 것이다. 이두 집회가 모두 그렇게 촉박하고 간절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행으로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임 을 알았기 때문 이였다.(행20:37.38), 그러므로, 문맥에서 분명해진 대로, 사도 바울이 여행 중에도 철저히 지킨 날은 안식일이며, "안 식후 첫날" 인 일요일은 여행을 떠나는 평범한 날 이였음이 분명해진다.
자신이 일요일을 준수하는 탁월한 교회사가인 네안더(Augustus Neander)도 위에 적은 사도행전 20장의 사건이 일요일을 성수 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아래와 같이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증언 네안더 "이 성경 구절은 전적인 확증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의 촉박한 출발이 이 작은 교회로 하여금 형제애가 넘치는 송별식사를 위해 모이게 했을 것이고, 이 경우 일 요일의 특별한 축제가 아니었을 지라도 사도는 이때에 그의 마지막 말씀을 전달하였을 것이다."

고린 도전서 16장 2절
비평 박영관
" 사도바울의 서신에 단 한 번 나오는 첫째 날에 관한 기사이다. 박영관 씨는 이 기사를 근거로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여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 한 바울의 지시를 따라 '그들은 안 식후 첫날에 헌금을 드린 것" 임으로 이것이 일요일을 준수한 증거라고 한다.

변증
가 위의 표현은 자칫 곡해(曲解)하여 "헌금은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에 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본문에 크게 어긋난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 라고 하였지, 어디에, 헌금을 교회로 가지와 드리라고 했는가? 헬라어 본문에 충실한 여러번역서도 분명해지는 내용이다.
현대어신약: "각 사람은 자기 집에서 한쪽에 따로 두어 저축하게 하라"새 아메리카 성경:"각 사람은 저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따로 떼어놓느라"'시라아-페시토역: " 각 사람으로 따로 떼어 저축하게 하라"
본문의 뜻이 분명하다. 요사이처럼 매 일요일 교회에 가서 헌금하라는 뜻이 전혀 없다. 명목도 일명 정규헌금이 아니다. 당시 이방 교회들이 대거 참여했던 예루살렘 모교회(母校會)를위한 기근 구제 의연금(義捐金)이였다.(롬15:25-27, 행24:17)나. 왜 매주일 첫날에 따로 저축하라고 했을까? 이 특별헌금 계획은 "일년 전에"(고후8:10)이미 시작 한 것이었다. 바울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 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고후9:5)했는데, 이유는 자신이 갈 때 한꺼번에 힘겨운 헌금을 하려고 하지 말고, 매 주일의 수입에서 얼마씩 정기적으로 따로 떼어 집에 저축하므로 넉넉하고 성의 있는 연보를 드리게 한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했던 사도시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한 주일의 수입을 대개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에 정리한 배경을 엿볼 수 있다.성공회 성직자들이 편찬하여 캠프 리지 대학이 출판한 성경주석도,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첫날에 모였다는 증거를 "이 구절로부터 끌어낼 수 없다"고 지적한 후, 참뜻은 "스스로 저축하라. 즉 공중집회에서 가 아니라...집에 쌓아 두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체증언들
이상으로 신약성경에 언급된 첫째 날에 관한 여덟 곳의 기사를 모두 살펴보았지만, 단 한군데도 일요일을 부활의 기념으로 성수(聖守)하거나 그렇게 했다는 일체의 증거가 없다. 그런 까닭으로 리뎀토리스트 대학(Rede-Mptorist College) 학장을 역임한 엔 라이트(T. Enright)신부는 "누구든지 성경만을 가지고 일요일이 우리가 꼭 지켜아할 구속력을 지닌 날임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1000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그 상금을 찾아가는 이가 없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십만 불이나 백만 불의 상금을 건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자신도 일요일을 지키는 루터교 신자인 교회사의 대가 네안더(Augustus Neander)도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증언 네안더
"일요일 출제도 다른 축제일과 마찬가지로 인간 제정한 의식이며, 사도들이나 초대교회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켜 거룩한 계명을 삼으로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교부들의 신앙의]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추기경 기본(Gibbon)도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썼다.

증언 기본
"당신이 성경을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어볼지라도, 일요일을 거룩하다고 인정한 단 한 구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토요일을 성실히 준수하도록 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한 적이 없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어느 종교 지도자라도 신자들에게 일요일을 주일로 거룩히 지키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명령을 인간의 전통을 따라 하는 것이다. 루터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선임교수 카알스타트(Carls-tadt)도, "일요일은 사람이 만든 제도임을 염두에 두게되면 불안해진다."고 썼다. 참으로 불안해 질 수밖에 없는 신앙의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준수를 합리화하려는 계속적인 노력을 아래의 몇 비평들에서 다시 일별 하게 된다.

"요한계시록 1장10절 - 주의날"
비평 박영관
"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10절에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라고 했다. 여기의 주의날(en be kamikaze hemmers)은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한다. ...초대 기독교회는 안식후 첫날에 예배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였다."

변 증 사도행전등 신약성경에 나타난 초대 그리스도교회가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에 예배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인 적이 없음은 이미 앞에서 확인되었으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요한계시록 1장10절의 "주의날"이 박영관 씨의 말대로 정말 오늘날 관습에 따라 주일로 통용하는 일요일인지를 확인하려 한다.

가. 비평에서처럼 서기 96년경에 기록된 요한계시록의 "주의날"이 일요일 이였다면 거의 같은 때 기록된 요한 복음에는 왜 "주의날"이란 표현을 한 번도 쓰지 않고 여전히 "안 식후 첫날" 이라는 본래의 표현을 썼을까?(요20:1, 19). 게다가 요한계시록은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에게 보내는 회람편지인데 (계1:11) 요한 이 그 당시 신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새로운 용어를 씀으로 혼란을 일으키려 했을까?
용어는 공인을 요하는 일종의 문화 계약인데 요한은 혼자만 아는 용어를 썼을 리가 없다.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부른 기록은 요한 계시록보다. 훨씬 나중인 2세기 후반에 그것마저도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도용(盜用)하여 쓴 신약 위경인 "베드로의 복음"(GospelAccor-ding to Peter)에 처음 나타난다.그후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였던 클레멘트(clement . 160-215)와 라틴교부 터툴리안(Tertullint. 155-225) 도 쓴 기록이 있다.그러므로 요한이 자신의 규례를 깨고 남들이 모르는 용어를 써서 일요일을 주일로 불렀을 리가 없다.
나. 요한 자신은 물론 독자에게도 익숙했을 "주의날" 의 개념은 무엇인가? 구약 성경에서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로 불렸는데 바벨론 포로 이후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성호를 직접 쓰거나 부르지 않이하려는 보다 경외(敬畏)하는 방편으로 "아도나이(Adonai) 즉 "주.lord) " 라는 칭호를 대신하여 썼다. 그리하여 구약의 안식일은 실제로 "주의 성일(the holy day of the lord혹은Sabbath to the Lord) 주의 성일(the holy day of the Lord)이였으며 (출20:10; 사58:13) 대부분의 경우는 "나의 안식일" 로 불렸다.(출31:13; 겔20:20 ;사56:4)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 자신을 "안식일의 주"(Lord of the Sabbath. kurios tou sabbatou)라고 자칭((自稱) 하심으로써 (마12:8;막2:28) 구약의 "여호와의 안식일"과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라. 요한이 계시록에서 "주의날" 이란 표현을 쓴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의 로마 황제 도미시안 (Domician)은 자신을 신격화하여 황제 예배를 강요하였으며 이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요한처럼 유배를 당하였다. 도미시안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주와 하나님(Lord and god)으로 칭하도록 했다. 그리고 황제가 어떤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그날은 공휴일이 되었으며 동시에 황제 예배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주의날"(imperial day) 에 맞서는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마. 이러한 배경에서 요한은 창조와 구속으로 자신의 주(Lord)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안식일에 ,당시에 통용되었던 그러한 표현을 빌어 황제 예배가 아닌 창조주 예배를 강조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이러한 가능성은 그가 요한 계시록을 써 내려가면서, 우상 숭배를 단호히 거절하고 (14:9-11)"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14:7)는 단도직입적인 호소를 출애굽기에 기록된 안식일 계명에서 직접 인용한 사실과 연관짓게 된다.(출20:11) 그리고 마지막 성도의 두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거듭 강조한 데서 엿 볼 수 잇다.(12:14; 14:12) 이곳의 하나님의 계명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여전히 자리잡은 언약궤 속의 옛 십계명을 계시로 확인한 요한 이(11:19) 느닷없이 넷째 계명 안식일을 제쳐놓고 일요일을 주일로 불렀을 리는 만무하다. 저명한 주석 학자 밀리건 도 그 당시 "주일 중 첫째 날이 주의날 이라는 명칭을 아직 받았었는지에 증거가 결핍돼 있다.
고 시인하고 있다.

5. 안식일과 초기 교부 문서
비 평 박 영관 "그러나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 1장 10절 "주의 날"은 주후 95년경에 기록하였고, 주후 107.년에 기록된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서신 '마그네시아인 들에게' 제9항[장]에서, '그러면 만일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소망에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주님을 통하여 새로워진 것이다'라고 했다."
해 설 박 영관 씨는 요한계시록 1장 10절의 "주의 날"이 일요일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보다 15년쯤 뒤인 서기 115년경안디옥 교회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 당하기 위하여 로마로 잡혀가는 길에 서머나 에서 마그네시아 교회 선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증거로 인용하고 있다. 참으로 이러한 성경 밖의 기록들이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요일 준수를 정당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변 증. 가,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 . A.D. 98~117) 당시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를 앞두고 쓴 것으로 알려진 일곱 개의 편지가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되는 여러 개의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이 바르게 보존된 것을 확인할 수가 없고 대부분 4세기 이후에 가필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가짜 편지도 여럿이 있어, 상당수의 학자들은 아예 모든 편지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편지들의 골자는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여 분열을 막으라는 것과 예수께서 육식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당시의 이단인 가현설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또한 골로새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처럼,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자신이 율법을 지킴으로 이룬 선행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대 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논박했다.
나. 이러한 배경에서 비평에 인용된 구절의 참 뜻을 보다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앞뒤의 문맥을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바로 앞의 문장인 8장의 내용이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유대교 신앙을 따라 살고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거룩한 선지자들은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 역시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장인 9장에서는 이토록 구약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계시된 말씀의 빛을 따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옛 선지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이그나티우스 당시의 유대 주의자들처럼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율법의 영적인 원칙에 따라 살았음을 상기키 시고, 그들을 본받도록 마그네시아 교회 신자들을 권면하는 내용이 9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박 영관 씨가 인용한 [마그네시아인들에게]보낸 편지서의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 이란 다름 아닌 예수그리스도와 일치하게 거룩한 생애를 살았던 구약의 선지자들인 것이다.
다. 비평에 인용된 9장의 다음 장인 10장에서도 이그나티우스는,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복음을 저버리고 육신적인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내세우는 유대 주의적 신앙을 아래와 같이 계속 논박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유대 주의적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괴이한 일이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유대교 신앙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신앙이 그리스도교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평에 인용된 편지의 앞 뒤 문맥을 이해할 때,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
라. 그런데 박 영관 씨가 인용한 것과 같이 "주의 날"에서 "날"이란 말이 가장 근본적이고 잘 보존된 헬라어 원문 사본들에는 없다. 그것이 일요일을 가리키는 "주님의 날"이 되자면, 여성 명사인 "날"의 대역을 삽입해야 하거나, 그것이 문법에서 동족목적어 구문에 함축돼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그나티우스의 모든 편지들에는 이런 구문을 쓴 예가 한 번도 없다.가장 믿을 수 있는 사본들의 모체가 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 등에는"주님의 생명"이라고 쓰여 있어, 여성 명사를 필요로 하는 문법에도 맞고, 같은 문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대조시킨 문맥에도 적절히 어울린다.
마, 또한 비평에서 인용된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에서도 안식일은 명사가 아니고 헬라어 원문에는 현재분사를 써서 뜻을 달리하고 있다. 영어로는 " no longer sabbatizing"으로 번역되는데, 이 뜻은 실제로 문맥에도 나타났듯이 유대교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빗나간 율법주의를 경계한 것임이 다음의 문헌에서도 분명해진다. 즉, 같은 편지를 4세기에 가필하여 확대 설명한 사본의 같은 9장에 아래와 같은 해설이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유대인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나태한 날들을 즐기 지 말자. 왜냐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모 두는 영적인 방식을 따라 안식일을 지킬 젓이니, 곧 육체를 느슨하게 하지 말고 율법을 명상하는 일을 즐기고,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찬양하며, 전 날에 준비한 것들을 먹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시는 일들을 하지 말 것이며, 제한된 지역만 걷거나 아무 뜻도 없는 춤 박수 갈채에서 기쁨을 찾으려 하지 말라."
바. 마지막으로, 박 영관 씨의 비평이 결정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단서가 있다. 즉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게 된 것으로 표현된, 그 "구습을 따르던 사람들"이란 앞에서 본문 문맥을 가지고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거룩한[구약의] 선지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언제 안식일 준수를 그만 두고 주일 중 첫날인 일요일을 지킨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문맥을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고, 주어로 쓰인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그나티우스는 당시의 마그네시아교회 신자들에게, 율법주의에 빠져 안식일의 영적 의미는 상실한채, 전 날에 준비한 음식이나 먹으면서 게으름으로 안식일을 보내는 역겨운 유대교 방식의 안식일 준수를 논박하고, 구약의 옛 선지자들을 본받아 말씀을 통하여 미리 깨달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적인 교훈을 따라 영적인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일 중 첫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준수한 것을 확 실히 알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대조는 [일곱째 날과 첫째 날과 같은] 그러한 날들에 관한 것 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형식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같은 방식의 생활과 그리스 도인에 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상징된 새로운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그러므로 비평에서 인용된 [마그네시아 인들에게] 보낸 이그나티우스 감독의 편지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이유가 될 만한 아무 근거가 될 수 없음이 편지 사본의 원문만 편견 없이 읽어보아도 자명해진다. 원문에는 없는 "날"을 삽입하여 편지의 본 뜻을 크게 왜곡시킨 신학적 편견은 위험한 것이다. 문장을 문법과 문맥에 맞추어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본 뜻을 바르게 깨닫는데 필수적인 것이다.

6. 안식일과 장래일 의 그림자.

비평 칼빈 의식적(意識的)인 속성을 가진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하여 의심 없이 폐지되었다. 그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로 써 모든 상징들이 사라졌다....그는 안식일의 참된 성취라고 나는 말한다...."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고 사도는 말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미신적으로 날들을 준수하는 모든 일에서 떠나야 한다.

해 설 칼빈은 [그리스도 강요]에서 골로새서 2장16 17절을 인용하여, 안식일은 장래일의 그림자와 같은 의식적인 법이므로 초림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강조하고, 넷째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을 미신적(迷信的)인 행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칼빈의 이러한 성경 해석은 옳은 것인가? 도덕의 법칙인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만이 유독(惟獨) 의식적인 법인가? 예수 님과 사도들의 본을 따라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이 미신적인 행위인가? 아래에 기록된 본문을 다시 읽으며 대답을 찾아보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래일 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위의 본문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이러한 권면이 하필이면 골로새 교회에 주어졌는지 그 배경과 앞뒤 문맥을 아는 일이 필수적이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쓸 당시(A. D.62년경). 소아시아의 골로새 교회는 "골로새 이단"(The Colossian Heresy)으로 알려진 특별한 이단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골로새서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표현들 즉 "철학과 헛된 속임수"(2:8)"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2:8.20)"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2:18)"자아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2:23)함 등은 그 이단의 내용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헬라와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기초를 두고 동양의 신비 사상을 혼합한 일종의 종교 철학으로 "영지주의" 로 불린다. 이 거짓된 가르침이 일찍이 유대교에 침투했음을 사해 사본을 통해서도 학인 하게 되었고 후에는 그리스도교로 파고들어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의 하나인 "골로새 이단"으로 나타나는 등 강력한 영향력 을 행사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 이 외에도 각급 천사들을 높은 하나님과 낮은 사람을 연결하는 창조와 구원의 중보자로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또한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무시하고 자기 학대와 엄격한 금욕(禁慾)을 실천하여 충만(充滿)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한편, 할례등 구약의 의식을 구원의 방편으로 소개하고 자신들이 물려받은 은밀한 영적 지식(gnosis)에 의한 구원을 전파했다.
이러한 이단에 맞서 바울은 예수께서 창조주 시요, 교회의 머리 시며, 유일한 증보이심을 확신시키고 있다. [골1:16.18.20]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고 (2:9)십자가로 말미암는 속죄의 완전함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칼빈이 안식일 폐지의 근거로 인용한 본문(2:16,17)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바로 앞의 문맥을 살펴보자.

의문에 쓴 증서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 에 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슬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3.14]
위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 영지주의 종교철학이 아니요 할례와 같은 의식적인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할레인 침례와 의문에 쓴 증서를 실례로 들고 있다.(2:11-14).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의문에 쓴 증서는 무엇인가? 의문(疑問)은 헬라어로 "도그마"인데 고시된 일반 법규나 종교적인 제도나 규정으로 모두 법적인 책임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스스로 만든 여러 가지 의식적인 법규를 가리킬 때도 이 말이 쓰였다[엡2:15] 그런데 "증서"라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 한 번 박에 쓰여지지 않은 특별한 용어인데 고대 문서의 연구를 통해 근년에야 그 참뜻이 밝혀졌다. 이 "증서"가 헬라어로 "카이로그라폰"인데 손으로 쓴 것을. 뜻하고 실제로 쓰일 때는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고 직접 날인한 "비문서"를 가리키는 전문용어 옜다.
그러므로 14절의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 하시고"....의 참뜻은 흔히 하는 대로 "모세의 율법을 페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은 뜻이 아니고 .모든 개정역 성경에서 바로 번역했듯이 "법적인 요구를 가지고 우리를 맞섰던 법적인 [죄의]채무 증서를 끄집어 내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폐기하셨다."는 "본뜻이 나온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죄의 빚을 갑아 주셨기 때문에 죄의 채무 증서가 폐기된 것이다.

불의한 율법이 아니라면 율법을 없애므로 죄인을 무죄하게 만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의이다. 예수께서 그런 불의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리 없다. (롬3:25.26)오히려 죄인을 대신하여 율법의 정당한 요구를 채우시기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죄의 빚진 기록을 말소하신 것이다.[롬3:23.벧전 2:24] 14절의 이와 같은 설명이 맞는 것은 13절의 끝말이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로 되어 있어 14절에서는 빚 문서를 예증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죄의 완전한 용서를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서 복음이 나오면 논법상 의례히 등장하는 율법이란 말이 골로새서 에는 한마디도 없어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취급하고 있는 주제가 율법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2장 20절에 쓰여진 "의문에 순종하느냐" 라는 참뜻도 21절의 이하의 내용을 보면 쉽사리 알게 된다. 동사형으로 쓰여진 20절의 의문(疑問)이란, 곧 "붙잡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금욕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 유대교의 가르침을 경계한 것이다[2"22.23]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러한 문맥의 흐름을 볼 때 16절의 "그러므로" 로 연결되는 말씀의 내용이 분명해진다. 즉 십자가를 통하여 베풀어지는 용서로 죄의 빚을 청산함으로서 의롭게 되는 확실한 길이 마련되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다른 길을 제시하는 그릇된 가르침을 쫓음으로 왜 십자가의 의와 효력을 저상(沮喪)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의지에 근거한 노력을 내세우는 "자의적 숭배"(will worship.골2:23]와 금욕을 실천하는 영지주의 적인 유대주의 자들이 16절에 나오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그릇된 준수 방법을 부과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골2:23)가르침으로서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원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누구든지[거짖교사들] [16절에 언급돼 행사들에 관하여] 너희[골로새교회]를 [함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렇다 저렇다] 폄론[판단]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는 것이다.사도는 지금 절기 자체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기의 의미와 준수를 왜곡시키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경계시키고 있는 것이다.그런 다음에 이런 것들은 장내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는 말로 그러한 제고의 참뜻을 설명하고 있다.

장래일 의 그림자
그렇다면 장래 일의 그림자는 무엇이고 몸은 그리스도의것" 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같은 내용을 다룬 다른 곳의 평행 절을 찾아 그 대답을 찾는 것이 성경이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해석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와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이는 황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10:1.4.)
골로새서(2:17)의 "장래일의 그림자" 가 무엇임을 히브리서는 같은 헬라어인"그림자"(skia)와"장래일"(ton rnellonton)을써서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장래일 의 그림자인 율법은 어떤 율법인가? 문맥에 나타난 대로, 장차 오셔서 십자기에 돌아가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제사 제도인 것이다그것을 보통 구약(舊約.old covenant)이라고 부르는데, "첫 언약"(first co-venant. 히9:1)혹은 "첫것"(히10:9)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사가 성소의 규정에 따라 드려졌기 때문에 구약의 성소 제도와 같은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히8:9)그러므로 "장래일 의 그림자"(골2:17)는 구약에 나타난 표상적인 제사제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장래일"은 무엇이고 "그림자"의 실체가 되는 "몸"(soma)은 무엇인가? 같은 평행 절이 그 대답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 하셨도다. 전제로 번 제함과 속죄 제는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이 뜻을 쫓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5-10)

대답은 모두 주어졌다 예비된 "한몸"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며 "장래일"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구속과 그 결과인 것이다. 이리하여 예수그리스도를 표상(type)한 그림자(shadow)였던 구약의 제사제도는 그것의 원형(antitype)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몸 곧 실체를 만난 것이다. "그 첫 것을 폐하려 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10:9)위의 설명은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는 골로 새서2:17절의 확실한 뜻이다
먹고 마시는 것
히브리서 8. 9. 10. 장에 나타난 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표상 하는 그림자가 되는 구약의 제사 제도는 성소[제도와 현장] 와 제물[제물] 제사장[봉사]-절기[특정된 제물을 드리도록 지정된 때]로 이루어진다. 성소 자체도 성육신 하실 그리스도를 가리꼈고 (요2:21)제물은 물론 (히10:5)제사장도 그리스도를 가리켰다(히9:11.12)
그런데 골로새서에 언급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2:16)은 어떻게 몸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가 될 수 있는가?

먼저 먹고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소에 드린 제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피 흘림이 있는 희생 제물과 피 흘림이 없는 희생 제물[sacrifice)과 피 흘림이 없는 예물(otte-ring 이였다(단9:27)피 흘림이 없는 제사는 곡식(가루나 빵)을 기름과 소금 향과 함께 드린 소제가 포함되었다.(레2:2-7) 누룩이나 꿀을 섞지 않은 곡식 가루, 나 빵은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의 양식(요6:5)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부는 제사장이 먹었다.(레2:3,10)또한 소제처럼 번제와 함께 드린 예물은 포도주를 드린 전제인데 [민15:4-11] 이것은 성만찬의 포도즙과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였다.(마26:27.28) 골로새서에 먹고 마시는 것은 이 소제와 전제를 가리켰음이 같은 내용인 "예물과 제사를 "언급한 히브리서의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라.[히9:9.10.)는 말씀에서 확실해 진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골로새서의 말씀을 오해하여, 그리스도인은 구약 성경에 [레11.신14장]언급한 건강에 해로운 식품도 이제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월삭과 절기들
다음으로 "월삭과 절기와 안식일은 어떻게 구속의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드러내 "장래일의 그림자"가 되는가? 골로새서 2:16절의 절기는 레위기 23장에 준수하도록 명시된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오순절, 나팔절, 대속제일, 초막절등 일곱 절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절기들과 연관되어 제칠일 안식일이 아닐지라도 일하지 않고 성회로 모이는 국경일과 같은 일곱 번의 절기 안식일 이였다.(레23장).
이 절기에 의미를 준 것은 절기가 지켜지는 정한 시간에 예정된 구원의 계획을 정확히 성취시키는 예수그리스도를 그림자로 표상 하는 제물과 예물 이였다. 유월절인 1월14일 해질 때에 잡은 양은 그 시간에 돌아가신 흠 없는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냈고, 1월15일 무교절 안식일을 시작으로 한 주간 먹게 되는 누룩 없는 떡[무교병] 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려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1월16일 요제절에 바친 처음 익은 곡식 한 단은 유월절 이후 삼일만에 부활의 첫 열매로 살아나실 그리스도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표한 것이다.
제물이 없는 절기는 신랑이 없는 잔치처럼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의 "장래일 의 그림자" 였던 이러한 절기들이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구속의 핵심으로 가장 적절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 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 "의 참된 의미는, 이러한 상용구(常用句)의 기본이 되고있는 민수기28장과 29장에서 거기에 상응하는 제물과 예물을 자세히 언급함으로서 확실해 지고 있는 것이다.

골로 새서의 안식일
마지막으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 과 함께 "장래일 의 그림자" 가된 "안식일" 은 어떤 날인가? 그리고 그것은 칼빈의 주장처럼, 실체(몸)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그림자처럼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이곳의 안식일은 복수형(속격,sabbaton)이여서 제칠일 안식일이 아니고 구약의 일곱 절기의 안식일들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구어(口語)였던 아람어의 안식일(단수,shabbetha)을 헬라어로 음역 [音譯] 한 것이 (sabbata)공교롭게도 헬라어의 안식일 (sabba-ton)의 복수형(sabbata)과 같아지는 바람에 혼란이 생겼다. 즉 아람어의 단수 안식일이 헬라어의 복수 안식일과 같은 철자를 가지게 되어 단수 안식일을 잘못 변형시켜 쓸 수도 있다는가능성이다.
한편 골로새서 2:16절의 "절기"(horte)와 "월삭"(neomenia)이 실제의 내용은 모두 복수인데 표현은 단수로 하고 있어서,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이 비록 단수로 쓰여졌다 해도 실제로는 복수일수 있는 문법 상의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민수기(28:9-29:38)등 여러 곳에서 실제로 제칠일 안식일과 절기 안식일을 함께 언급하고 있어 골로새서의 안식일에도 제칠일 안식일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제칠일 안식일에도 절기 안식일의 경우처럼 지정된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제물 목록에 안식일이 포함된 것이다(민28:9.10; 대하8:13 ;레24:8)제물로 상징된 그리스도가 없이는 절기가 성립될 수 없듯이, 그리스도가 없는 안식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도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제물을 드린 것이다.

옜언약과 새언약
문제는 골로새서 2:16의 안식일이 제칠일 안식일인가. 절기 안식일인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장래일 의 그림자" [골2:17.히10:1]인 절기를 포함한 구약의 제사 제도가 몸이신 그리스도께서 초림 하심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가져 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짖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 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오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옛 언약[그림자] 새 언약[실체]
성 소: 지상 성소 → 하늘 성소 [히 8:5. 9:11]
제사장: 인간 제사장 → 대제사장인 그리스도 [히8:1.2]제 물: 짐승의 피 → 예수그리스도의 피[ 히9:12]
십계명: 돌비에 새김 → 마음에 기록함 [히8:8-11]

예시한 대로 "장래일 의 그림자" 인 구약의 제사 제도가 실체[몸] 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외형적인 그림자는 없어졌으나 실제로는 더욱 완전해 졌음을 알게 된다. 그림자인 옛 언약의 지상 성소 제도에서는 돌 판에 새겨져 법궤에 보관되었던 언약의 조문인 십계명이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신 후 어떻게 되었는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으로 새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8:8.10]
돌판 대신에 마음에 기록되고 법궤 대신에 생각 속에 보관된 인간의 표준 도덕법인 십계명 가운데 언약의 인(印)인 안식일만 (출31:16.17)그림자처럼 없어졌다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에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알게 함이라"(출31:13)는 선언이야말로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히8:10)새 언약의 진수인 것이다.

비평 주이트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논하지 못하게 하라,...(골2:16.17)... 아무도[절기를 지키는] 문제로 그[바울]를 판단할 수 없었다. 안식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의 완성이신 분을 예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 증
구속의 역사를 예표(豫表)하는 지정된 시간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을 드림으로서 성립되는 "장래일 의 그림자"인 절기는 실체(몸)이신 예수께서 오심으로 써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칼빈의 말처럼 '"의심 없이 폐지되어" 흔적도 업이 사라졌는가? 그리하여 안식일 준수조차도 미신적인 일이 되어서, 비평에 인용된 주이트 말처럼, 그리tm도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이" 되었는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동시에 없어져야 한다는 뜻인가?

십자가로 이루어진 일
실체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그림자인 절기에는 실제로 어떤 일이일어났는가? 앞에서 언급한 세 절기를 예증으로 하여 대답을 찾아보자.

유월절--[1월14일] 실체이신 예수 님께서 유월절 양을 잡는 같은 시간에 유월절 양처럼 뼈도 꺾이지 않은 채 [출12:5-8. 46]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서 그림자는 몸[실체]으로 바뀌었다 [마27;45~)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신 (고전5:7)당신의 이러한 희생을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하도록 성만찬 예식을 친히 제정하셨다.(마26;26-29, 고전11:23)뿐만 아니라 성만찬의 절정으로 "아버지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짜인(마26:29)하늘에서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 (계9:7)를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구원의 첫 단계인 십자가로 말미암는 칭의[稱義]를 드러내는, (롬3:23-26)이 사건은 유월절→십자가→ 성만찬→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절정에 이른다.

무교절 안식일-[1월15일] 유월절 양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은, 동시에 첫 번째 절기 안식일이기도 했다.(레23:6-8)이날부터 한 주간 먹게 된 누룩 없는 빵은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고전5:7.8)는 성화를 가능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였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된 [稱義] 사람은 다시 죄에 빠지지 않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할 요청을 받고 있다 (롬6:17-19; 벧전1:14-16)그런데 유월절을 통하여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 십자가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명령은 안식일 준수였다.[출16:23-29]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알게 하려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겔20:12)삼기 위해 출애굽 즉시 안식일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겔20:10)안식일은 죄인을 의롭게 하는 날이 아니라. 십자가로 의롭게 된 죄인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의 보증으로 주신 것이다.(출31:13)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유월절은 여섯째 날 곧 예비일 이였으며 .다음날인 무교절 절기 안식일은 동시에 제칠일 안식일 이여서 두 안식일 이 포개짐으로서 "그 안식은 큰날"[요19:31)이 된 것이다.
여섯째 날 오후3시경 "다 이루었다"(요19:30)는 선언과 함께 운명하심으로써 구속을 끝내시고 해가 지면서 안식일을 무덤에서 쉬신 것은 여섯째 날 오후 창조를 마치시고 "다 이루니라"(창2:1)는 기록과 함께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창2:2)신 창조의 완성과 일치하는 사건이다.
이리하여 유월절 십자가로 의롭게된 사람은 성화의 표상인 무교절을 대신한 안식일을 통하여 성별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토록 제칠일 안식일과 무교절의 일치한 관계는 안식일에 누룩 없는 빵[무교병]을 드린 성소 봉사에서 확인하게 된다."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빵]을 여호와 앞에 진설 할지니 이는 이스라엘을 위한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8)십자가를 상징한 번죄단이 있는 성소의 뜰은 칭의[稱義]의 상징 이였다. 그리고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상징한 촛대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 떡과 중보의 기도를 상징한 향단이 차려진 성소의 첫째간은 성화[聖火]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말씀을 상징한 [요6:51.63]누룩 없는 빵 열두 덩이가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구워져[대상9:32]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도록[레24:7] 상위에 진설 되었다 그리고 일주간 진설 되었던 무교병은 제사장들이 성소 뜰에서 먹음으로써 "지극히 거룩함"[레24:9]에 참여하게 하셨다 안식일의 목적과 일치하는 무교절의 영적 의미이다.
이 빵이 누룩 없는 것[무교병] 이였음은 그것이 화제(火祭)에 포함된 소제의 예물이기 때문이다(레2:5.11; 5:14-18)이와 같이 성화의 보증이 되는 두 번째 단계는 무교절 안식일→무덤에서 쉬신 안식일→제칠일 안식일→신천신지의 영원한 안식일 (사66:22.23)로 이어지는 극치를 보게 된다.

요제절 (1월16일)여섯째 날인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심으로 구속을 이루신 주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을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무교절 안식일 다음날인 1월16일 아침에는 처음 익은 보리 단을 흔들어 예물을 삼았는데 바로 이 "안식일 이튿날인" [레23:11] 1월16일 요제절 아침 곧"안 식후 첫날 이른 아침"(요20:1)에 예수께서 땅과 무덤을 힘있게 흔드신 후 부활의 첫 열매로 살아나심으로써(고전15:20)그림자는 실체를 만난 것이다.
이러한 부활은 예수께서 친히 참여하신 침례와 세족 예식에 의하여 기념되고 있으며 (롬6:5.벧전3:21.요13:9.10,딛3:5)마침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의인이 참여할 첫째 부활로 극치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전15:22.23.)이와 같이 썩을 몸이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고전15:42-44)영화의 경험은 칭의와 성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누릴 최고의 경험이다. 이리하여 요제절→부활→침례→세족→첫째 부활에 이르러 요제절의 표상은 극치에 이르게 된다.

없어진 것과 남아 있는 것.
이상과 같이 구속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세 절기의 실체를 일목요연하게 예시해 보자.

구 속의 그림자인 기본 절기와 십자가로 성취된 실상.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상징] 1월14일. 1월15일. 1월16일.
어린 양의피. 누룩 없는 빵. 처음 익은 열매
(출12:6.7). (레23:6.7). (레23:10.11)
[성취]여섯째날십 제칠일안식일 이튿날부활하심.
자가에 죽으심. 일치되어 안식하심.
(마26:2;눅23:54) (요19:31) (레23:11 눅24:1)
[기념]성만찬 안식일 침례[세족예식]
(고전11:23-26)(레24:8;눅23:56)(벧전3:21;요13:10-15)[의미]의롭게 하시는 거룩하게 하시는 영화롭게 하시는그리스도[칭의] 그리스도[성화] 그리스도[영화]
[극치]어린양의 혼인잔치 신천신지의 안식일 의인의 첫째 부할(계19:7)(사66:22.23;히4:3.4)(고전15:22.23)

이리하여 "장래일 의 그림자"(골2;17)였던 유월절은 실체(몸)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됨으로써 없어졌지만 성만찬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요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됨으로써 없어졌지만 침례로 기념되고 있다. 무교절은 십자가에서 찢겨진 그리스도의 몸이 안식일에 드려진 누룩 없는 빵이 되셔서 인류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심으로 성취되었지만 본래 창조의 기념일 이였던 제칠일 안식일은 성별의 체험과 함께 십자가로 이루어진 구속의 기념일로 확증된 것이다.(신5:15)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는 그것을 기념하는 두 성례인 성만찬과 침례로 확정되었고 한가운데는 안식일이 확립되어 창조와 구 속의 주체로서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를 안식일의 주인(마12:8 막2:28)으로,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으로 확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속(救贖)의 그림자인 유월절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기념하는 성만찬도 필요 없게 되었는가? 부활의 그림자인 요제절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경험하는 침례도 필요 없이 되었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안식을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그것을 기념하고 경험하는 안식일이 필요 없게 되었는가?
다른 절기나 절기 안식일은 제물과 연관되어 제물을 근거로 존재하게 되었지만, 제칠일 안식일의 경우는, 제물을 드리는 제사제도 때문에 안식일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구속의 그림자인 제사제도와 관계없이, 창조 당시에 제정되었고 십계명에 포함되어 도덕의 법칙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한, 사람이 도덕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한 안식일은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상식에 속하는 일로 자신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성경주석 학자인 감리교의 클라크(Adam Clarke)장로교의 반스(Albert Barnes)그리고 대중적인 개신교 성경 주석(Jamieson, Fausset, Brown)에도 다음 과같이 증언하고 있다.
"클라크 증언"
"(골로새서2장16)에는 그리스도교가 소개됨으로써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거나 안식일의 도덕적인 적용이 다른 것과 바뀌어졌다는 위협이 없다.
"반스의 증언"
"십계명 가운데 한 계명이 인간을 구속하는 일을 고쳤다고 사도바울이 가르쳤을 최소한의 이유도 없기 때문에 [골2:16절]에서 사도바울이 아무 거룩한 시간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고 가르친 증거가 없다....도덕률의 어떤 부분, 십계명의 어느 하나도 "장래일의 그림자로" 불리 울 수가 없다. 이 계명들은 도덕률의 속성에 따라 영원한 것이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주석의 증언"
제칠일 안식일은 엿새 동안 천지창조가 마쳐진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에덴낙원에서 제정된 것으로서 보다 영속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

지금까지 성경 적인 표상의 원칙에 서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그림자였던 제사 제도와 거기에 포함된 절기의 깊은 뜻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장래일 의 그림자"인 "월삭과 절기와 안식일"(골2:16)이 실체이신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폐지된 것은 없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와 형태를 입고 완전해지기 위함이었음을 확인했다. 더군다나 창조와 구속의 기념이요 성화의 보증인 안식일을 그 사라져 버린 그림자 속에 포함시켜 일소하려 한 것은 심대한 과오이다.
만약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2:16, 17)에서 뜻한바가, 칼빈의 생각처럼 그림자의 시효(時效)만기에 의한 안식일 무효선언 이였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났겠는가? 십계명에 포함되지도 안이한 의식인 할례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다고 가르친 것 때문에 일어났던 소동을 생각해 보라. 결국 예루살렘 총회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고(행15:1.2), 바울은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에의 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했다(행21:21, 30-34)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행21:20)였던 당대의 분위기에서, 만약 바울이 감히 안식일을 할례처럼 무효라고 가르쳤다면 어떤 반응이나 소동이 일어났겠는가? 바울에 대한 수만은 비난이나 고소가운데, 그가 안식일을 무시했다가거나 페한 것으로 가르쳤다는 내용은 일체 없다. 바울은 예루살렘 결의내용 안에서 가르치고 있었으며 안식일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기정 사실로 문제조차 되지 않았음을 기억할 것이다.


7. 안식일의 개인적 확정

비평 일반교회.
"안식일은 폐지되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에는 모든 날이 다 같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로마서 14장 5,6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해 설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부인하는 사람은, 안식일은 굳이 제칠일로 고정하여 지켜야 할 이유가 없고 주일 중 아무 날이나 하루를 구별하면 되는 것이므로 첫째 날인 일요일도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한 근거로 아래의 로마서를 인용하고 있다.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함이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5.6)
비평 주이트
주이트(Paul E. Jewett)는 이상의 성경 구절을 언급하면서,"...사도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이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 두는 것"이라고 결론을 짖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도 바울의 권면이 주이트의 말처럼, 참으로 십계명에 언급된 제칠일 안식일 준수가 십자가와 함께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인가? 신약 시대에는 성별(聖別) 된 하루가 일요일등 아무 날이나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말씀인가?
믿음이 강한 사람과 연약한 사람
변 증
비평의 본문이 속해 있는 로마서는 확연히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부분(1장~11장)에서는 구원의 기본 진리인 믿음으로 의롭게 됨, 인간의 죄됨,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등 교리 적인 면을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12장~16장)에서는 사도 바울의 서신들에서 그랬듯이 앞서 깨달은 진리를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하여 실천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이 속해 있는 14장의 성격은 어떠한 교리를 정립(定立)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진리의 실천 방안에 속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본문인 14장 5, 6절은 동떨어진 구절이 아니라 1절부터 시작된 문맥의 연속이기 때문에 올바른 성경 해석을 원칙에 따라 이를 확인하여야 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 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 런 받으셨음이라." (롬14:1-3)
이렇게 음식을 먹는 문제로 시작된 14장 5, 6절에서 어떤 날에 관한 문제를 잠시 언급한 후, 끝 절까지 계속하여 음식 문제로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주제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제가 된 음식에 관한 문제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날에 관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고 믿음이 강한 자는 고기와 포도주 등 (21절) 모든 것을 먹는다는 1절의 뜻은 무엇인가? 육식가(肉食家)와 음주 가는 믿음이 있고 채식가(菜食家)는 믿음이 없다는 뜻일까?
먼저 이 음식 문제가 구약 성경 (레11장; 신14장)에 기록된 식품위생에 관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레위기의 음식 법칙은 육식 가운데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했지.(레11:2,9 13, 29) 육식과 채소를 구분 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레위기에 자주 쓰여진 "부정"(不淨. impure)이 라는 말은 로마서(14:14)의 "속(俗) 되다" 는 뜻의 헬라어(koinos) 도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14:14) 는 말씀을 적용하여, 이제는 구약 성경에 명시된 식품위생법을 무시하고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다는 표현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로마서 14장의 육식과 채식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 교회에 말하고 있는 참뜻은 무엇인가?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한곳인 고린도에도(롬16:23. 1)비슷한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서보다 몇 개월 전 먼저 쓴 고린도전서 에도 바울은 같은 문제에 대해 같은 교훈을 같은 표현으로 취급하고 있다. 문제가 된 음식 곧 육식(肉食)은 "우상 제물"에 관한 것이었다. (고전 8:1) 당시 로마제국 전역에 편만 했던 이교적(異敎的)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거기에 드려졌던 제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서 시민들이 피할 수 없는 식품이 된 것이다.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요 제물도 음식이므로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믿음을 가진 개방적인 신자가 있는가 하면(고전8:4-6) "우상의 재물로 알고 먹음으로 그들의 양심은 약하여 지고 더러워지"(고전8:7)는 보수적인 신자들도 있어서 피차의 양심을 판단하는 경우가 된 것이다.(고전 10:29)이에 대한 대답으로, 사도 바울은 불신자의 집에 차려진 것이나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그것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인지 여부를 묻지 말고 먹으라는 권면을 한다(고전 10:25-27). 그것이 우상의 제물인 것이 밝혀지거든 피차의 양심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고전 10:28, 29; 8:9) 사도 바울은 약한 신앙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걸림이 된다면"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전8:13)라라고 입장을 밝힌다.
이러한 배경에서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는 로마서(14:21)의 권면과 "너희가 주의잔[포도주] 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포도주]과 귀신의 상[우상의 제물] 을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는 고린 도전서(10:21)의 권면은 같은 배경일 수 있다.
단지 로마서는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서, 그것이 당시에 이미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금욕적인 유대교 분파의 가르침(Essenism) 이 침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어느 경우이든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가르침도 아니고 정통적인 유대교의 가르침도 아닌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 날
이처럼 로마에 있던 초대 교회에 물의가 된 음식 문제에 곁들여 잠깐 스치고 지나간 "이날 저 날"(14:5.6)에 관한 참 뜻은 무엇인가? 로마서가 쓰여진 서기 57년경, 안식일 준수에 관한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확고한 분위기 속에서, 남의 판단에 따를 것 없이,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14:5)는 권면에 해당하는 날은 어떤 날일까? 그날에 대한 이해가 안식일처럼 공적인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개인적인 확신에 따라 개별적으로 처신하라는 권면을 받을 날이고 보면 개인 신앙에 연관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당시에 이러한 특성을 지닌 날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 1세기 전후에 초대 교회를 위한 교회 요람으로 알려진 디다케 (the didache)라는 문서를 살펴보면 어떤 단서를 찾을 만 하다. 유대교신앙에 기초를 두고서 복음서의 내용을 인용한 이 교훈 집에는 성만찬과 물에 잠기는 침례(浸禮)와 함께 금식과 기도에 관한 교훈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금식일을 유대인처럼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하지 말고 수요일과 금요일에 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 (눅18:11)했던 유대의 전통이 초대 교회에 전승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금식과 같은 개인적인 신앙 실천 문제에 대하여 외적인 규정보다는 개별적인 판단에 맡기는 일은 합당한 일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금식과 같은 신앙 관습을 부정하는 대신 각자가 자유를 가지고 처신하되 다른 견해를 가진 형제를 용납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금식 일과 연관되어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준수해 온 절기에 관한 날들이 이상의 문제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그러한 것들은 "장래일 의 그림자"(골2:16)로 선언했지만, 할례처럼" 정죄하는 대신 위의 경우와 같이,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2:16)고 권고한 바있다.
자신도 후에 이러한 절기 행사에 참여한 예가 있다. (행20:16). 이러한 절기들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는 민속(民俗)명절이기 때문에 표상은 십자가로 성취되었지만 그후에도 상당기간동안 존속된 것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그림자처럼 없어지게 될 이러한 문제로 형제를 판단하고 비평하는 일은 하지 말도록 권면할 수 있다.

상식과 침묵을 통한 확증
이상과 같은 로마서 14장의 현실을 종합해 볼 때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하라는 날이 안식일이나 일요일 날짜에 관한 것임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 당시 그러한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자신도 철저한 안식일 준수 자였던 바울이(행17:12) 당시의 분위기에서 할례 이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무시하고 아무 날이나 상관없으니 개의치 말고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하여" 준수하라는 원칙을 제시하였을 리는 만무하다.그것을 장차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고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신 예수 님의 말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마24:20)
사도 바울의 이러한 권면에 대해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그것이 안식일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침묵으로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금식이나 우상 제물 등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존중 해야하는 범주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취급하는 문맥에 넣어 간단히 언급한 데 불과하다,. 잘 아려진 개신교의 주석에는 로마서 14장 5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증언 주석
"안식일이 확실히 유대교 보다 더 오랜 제도라면, 안식일이 유대교 아래서도 십계명의 영원한 존엄 가운데 지켜졌던 것이려면, 유대교의 어떤 부분도 언급된 바 없는 시내 산의 두려움 속에서 안식일이 [하나님에 의하여]언급되었다면, 입법자 자신이 이 땅에 계실 때 친히,'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2:28)고 말씀하셨다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14장 5절에서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없어져 버린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안식일을 포함시키도록 했다는 사실을 보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8.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증언 주이트
"왜 그리스도인들이 첫날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가는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모든 학자들은 한가지 점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즉 첫날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의 기념일로 축하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부활사건에다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발생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란 용이하지 않다. 옛부터 인정되고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요일 예배와 같은 관습이 그 정확한 기원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인 쥬이트(Jewett) 자신이, 자신이 주일로 옹호하고 있는 일요일이 왜, 어떻게, 그리고 언제 주일(主日)이 되고 예배일이 되었는지 근거와 기원을 알 수 없다고 한 증언은 정직한 증언이다. 그러나 참으로 그의 말대로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모르면서 지키고, 모르면서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한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의 온 세상 사람이 일을 쉬거나 예배하는 일요일이 까닭 없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다. 다음에 그 이유와 과정을 성경과 역사에서 살펴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부당한 부활의 기념
쥬이트가 제시한 궁색한 이유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요일 예배의 근거라고 하지만 앞에서 언급 한대로 그것은 성경 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논증이다. 그 이유를 복습을 겸하여 아래와 같이 다시 요약해 본다.

가 신약 성경에는 매주[일요일] 혹은 매년[부활절] 단위로 부활을 기념하라는 말씀이 일체 없다. 새로운 제도인 성만찬, 침례, 세족예식에 관하여 명백한 명령이 있다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나. 신약성경에는 일요일을 "부활의 날"이라고 부른 적이 결코 없고, 언제나 "안 식후 첫날" 혹은 "매주일 첫날" (고전16:2)로 불렀다. 그리스도교 문서에서 일요일을 "부활의 날"로 명명(命名)된 것은 3세기 뒤의 일로서 매주 일요일을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정착시키는 일이 부자연스러웠음을 알려준다.

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를 끝낸 사건이 아니었다. 돌아가시기 적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요19:10) 는 선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의 끝을 알리셨다. 또한 하늘에서의 봉사 시작은 오순절로서 부활하신 당일이 아니었다. 성경은 부활을 날짜로 기념해야 할 아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라. 부할 하신 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와서 함께 예배하자" 는 말씀이 아니었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는 활동을 촉구하는 말씀으로 일체 예배나 거룩함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마. 부활을 성만찬과 연관하여 일요일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데,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할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이유도 없고,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마26:20-29 ; 고전11:18-23). 성만찬은 부활의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고전11:26)이다.

바. 부활절-일요일 발단이 된 유월절도 본래는 부활하신 일요일에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해 1월[Nisan]14일이 해당되는 어느 날이나 준수했다. 그것은 본래 그리스도의 수난(受難) 의 기념 이였지 부활을 기념한 것이 아니었다.

사. 일요일 준수에 관한 초기의 기록들인 서기 135년경의 바나바 서신이나 거시 150년경의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 의 기록에 보면, 일요일이 부활의 기념이기보다는, "여덟째 날"로 "또 다른 시작"을 대표한 창조의 첫날임에 의미를 두었음을 보게 된다.

아. 십자가에 죽으심은 성만찬으로 기념하듯 (고전11:26), 부활은 침례로 기념하도록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벧전3:21; 롬6:5).
이상의 몇 이유들을 보더라도 일요일 준수가 부활에 기초했다는 논증은 성경 적인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것도 아니며 논리적인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 그 기초와 근거가 있는가? 주지(周知)된 대로 성경에는 그 기원과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일요일 예배 외에도 성탄절로 일컬어지는 크리스마스나 부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서 기원(起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총회 (서기 49년경) 당시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로 야기된 교리 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집된 제1차 그리스도교 세게 총회 격인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 사항을 살펴보자. 이방인이 그리스도인 이 되는데 장애가 된 할례등 의식들은 폐지하기로 결의했어도 안식일 준수 여부는 처음부터 문제로도 거론되지 않았다.(행15장). 같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같은 안식일과 같은 성경(구약)을 사용하여 예배한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사이의 차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여부와 침례, 성만찬 등 의식 외에는 두드러진 것이 없었다.
안식일은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구별하는 조건이 결코 아니었다. 총회의 의장이었고 초대 교회 지도자인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훨씬 후인 서기 58년경, 사도 바울에게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유대인 중에 "수만 명이.........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행21:20)고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본부였던 예루살렘 교회가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준수에 앞장섰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예루살렘 멸망(서기70년)이후
구약(단9:26. 27)과 복음서 (마24:15. 16)에 다음과 같이 예언된 예루살렘의 대 파멸이 참으로 안식일을 폐지하고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계기가 되었는가? 예루살렘에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는 예수 님의 권고에 따라 유대 그리스도인 들은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요단 동편 펠라(Pella)지방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4세기 역사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315-430)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다. 그들은 "본래의 예루살렘 신앙 공동체의 직계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루살렘 멸망 이후 오랫동안 안식일을 비롯하여 할례까지 준수했음이 보아, 예루살렘 멸망이 안식일 준수에 특별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음을 확인 시켜 준다예루살렘 멸망 이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 (Vespasian . 69-79) 은 산헤드린 회의와 대제사장 제도는 폐지하고 성전에서 예배는 금했으나, 안식일 준수 자체를 법으로 금하지는 않았다.

바르-코게바 반란(A. D132-135)이후
예루살렘 멸망 이후로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회당에 참석하여 안식일에 예배한 사실과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저주하는 문구까지 첨가한 실 레가 있다.그러나 서기 13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 . A. D. 117-138)이 예루살렘에 로마의 주신인 주피터(Jupi-ter)의 신전을 건립하려는 계획에 항거하여, 자신을 메시아로 자처하는 지도자 바르-코게바(Simeon- Kokeba)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대 반란은 안식일 역사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개 군단의 전멸 등 로마 군단의 막심한 손실과 함께 유대인만도 58만명의 인명 피해를 내면서135년까지 3년간 계속된 이 반란으로 예루살렘은 다시 한번 폐허가 되었고 유대인 은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축출되어 출입조차 금해졌다.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는 극에 달하였으며 유대교를 불법화하고 그들의 종교의식 자체를 사형의 법칙으로94 엄금하였음을 유대인의 고전 [탈무드]에 서 찾을 수 있다.
"로마 정부는 칙령을 발하여 그들이 토라[모세 오경 등 구약 성경]를 연구하지 못하게 하였고,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 못하게 했고 안식일을 모독하도록 했다.
로마 정부는 서기 70년의 반란 이후 유대인들에게는 특별 과세를 부과했고,반 유대문서들이 쏟아져 나왔으며,특별히 유대인의 안식일 준수와 할례를 미신 행위로 간주하고 혹평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유대교의 한 분파로 알려져온 초기의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 오인되어, 무고한 증오와 핍박의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바르코케바 반란 사건으로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이러한 여건에서 그리스도교가 취할 수 있었던 자구책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을 변증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의식하고 나선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교 지식인들이 2세기에 대량으로 출현한 그리스도교 변증 교부들인 것이다. 그들은 로마제국에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변증 서를 써서 상신 하는 한편,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들의 신앙과 문화를 경멸하고, 안식일과 할례를 정죄하는 활발한 활동과 변론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다르다는 것일 강조하기 위하여, 이미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도들이 폐지한 할례는 물론, 사도들과 초대 교회가 의심 없이 준수해온 안식일까지도 유대교의 관습으로 돌려 거기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회당 참석을 금지했고, 그들을 모함하고 당국에 고발하는 등 적대 행위가 증가되었다.

로마 교회와 일요일의 기원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증오가 더욱 피부로 느껴진 곳은 역시 수도인 로마였다. 동시에 이방인 신자가 다수였던 로마의 그리스도교회는핍박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하여는 유대교에서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괄목할 만한 두 사람이 비슷한 때 로마 교회에 등장했다. 하나는 순교자로 알려진 교부 저스틴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영지 주의 이단자로 낙인찍힌 마르시온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과거 때문에 구약과 구약의 하나님, 유대인과 안식일을 증오하였다.
유대인을 미워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심각한 영향을 미쳤던 그의 이단적인 가르침 가운데는 "안식일에 관하여 하나님의 작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이날에 금식"하라는 강조도 있었다. 로마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출교 시키기는 했지만, 그의 가르침에 일치하게, 본래 즐겁게 잔치하던 안식일을 슬프게 금식하는 날로 정하여 역대의 감독[교황]들은 이를 법으로 강행했다.아무리 엄격한 유대 종파들도 안식일에는 절대 금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좋은 음식일 넉넉히 장만하여 잔치를 즐겼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안식일을 즐겁게 잔치하는 날로 보냈으며, 실제로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한 로마 교회의 처사에 대해 동방의 교회들과 암브로스감독, 당시의 밀라노 교회 등 서방의 중요한 교회들도 이를 적극 반대했다.안식일을 금식 일로 만든 로마 교회는 그 날에 행하던 성만찬이 금식을 깨뜨린다는 명목으로 그것마저 금함과 동시에 종교적인 모임도 제하기에 이르렀다.

"잔칫날이요 기쁨의 날이며, 종교적인 축제일이었던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슬퍼하는 날이요, 종교적인 아무 집회도 없는 날로 바꾸어 버린 것은 그리스도 인들로 하여금 안식일에 대한 숭경심 을 버리도록 강요하기 위해 로마 교회가 취한 구체적인 방편들을 드러내 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실천 사항은 안식일의 금식이 지난 후에 일요일을 기쁨과 축제 의 날로 드높여 지게 했다.
19세기 루터교의 교회사가인 네안더(Augustus Neander)는, "동방 교회에서는 안식일에 금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이었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교회의 여러 교회들 특히 로마 교회와 스페인 교회는 유대인과 유대 주의자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로 지키도록 이끌어 나갔다."로마 교회의 이러한 적극적일 노력으로 안식일은 점점 어두운 그늘 속에 가려지고 일요일은 각광을 받는 축제일로 부각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태양의 날
쥬이트(Jewett)의 말처럼 2세기의 교부 저스틴(Justin Martyr)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억지로라도 그의 군주인 황제(Antonius Pius)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로마제국이 혹성 신들 가운데 최고신으로 높이기 시작한 태양을 위해, "태양의 날"[일요일 . the day of Sun)이라는 명칭을 그의 변증 서에서제일 먼저 사용한 그리스도교의 저자가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작에서 안식일을 철저히 부정하고 경멸하는 한편 일요일을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격상(格上)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추진시킨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아래에 인용된 일요일 성수론자 주이트의 설명은, 그전까지 이교도의 숭배 대상 이였던 태양이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에 중심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일면을 보여주고 잇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Sunday)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자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 말이 빛을 상징하는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하였다. ... 창조 기사를 설명하는 데도 일요일이란 말을 가지고 하나님일 주일 첫날에 빛을 만들었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상징시켰던 것이다. 찬란한 영광 중에 승천한 후 그리스도는 지금 그의 진리로 우리를 비치고 있고 영원토록 우리의 빛이 되기 위해 재림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일요일에 재림한다는 전통이 세워지자, 그리스도인들은 그날에 서 서 기도를 하되 동쪽과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했다....기원 4세기이래 일요일이 란 명칭은 그리스도교의 용어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주이트의 설명은, "밤의 어두움을 쫓는 ...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려진다"는 2세기말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 A. D 150-215)의 진술로 뒷받침된다. 그리고 "해뜰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기도하고...해질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도할 것"을 권면한 3세기의 칼타고의 감독 키프리안(Cyprian .d A.
D.258)의 기록도 잘 어울린다. 일반 자연신교에서 태양을 숭배하게 된 과정과 흡사한 우상 숭배적인 예배 현상이다.

로마 교회와 부활절- 일요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력(聖曆)1월[니산. Nisan)14일 곧 유월절(諭越節. Passover) 을 그리스도의 수난 기념과 무교절의 영적 의미를 (고전5:6-8)새 언약에 연관시켜 오랫동안 준수해 왔다. (고전11:23-26). 그러나 유대인의 제1차 반란(A.
D70)과 제2차 반란(A.D. 132-135)이후 유대인에 대한 로마제국의 증오가 심각해지고 마침내는 유대교가 불법 종교가 되자. 안식일 준수와 함께 이와 같은 유월절 수난 개념도 그리스도인을 유대인으로 오해시키는 구실이 되어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안식일 대신 일요일 준수에 앞장선 것이 로마 교회였듯이, 유월절 수난 행사 대신 부활절을 확립시키는 일에도 로마 교회가 앞장을 섰다. 그리하여 2세기 중엽에 이르러 1월 14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에 유월절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일요일(Easter-Sunday) 로 날짜를 바꾸어 준수하려는 시도가 노골화되자 이를 반대하는 동방의 교회와 큰 충돌을 빚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 바 부활절-일요일 논쟁(Easter-Sunday Controversy) 이다.
부활절-일요일을 반대한 편은 주로 사도 요한이 죽기까지 봉사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로서 요한의 제자로 순교자가 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카프를 (Polycarp . A.D.155)를 비롯하여 에베소의 이름난 감독 폴리크라테스(Po-lycrates. A.D 130-196) 등이 있었다. 이에 맞선 로마 교회의 감독은 식스투스를(Sixtus . 116-126) 시작으로, 아니케투스(Ancietus. 154-165), 빅토르 1세 (Victor 1 . 189-199) 로이어졌다.
논쟁은 계속되었으나 유대인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심 때문에 시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 로마는 오랫동안 준수되어 온 안식일과 유월절 수난 기념일 대신 매주 일요일과 매년 부활절-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과 명절로 확립시키는 일을 쉽사리 수행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32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의 주재로 개최된 역사적인 니케아 종교회의(the Council of Nicaea) 칙령에 포함된 감독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하여 동방에 있는 교회들도 유대인과 함께 하지 말고, 로마 교회와 같은 날을 부활절로 기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오랜 부활절-일요일 논쟁에서 로마 교회가 승리했음을 공인했다.이러한 일련의 배경 때문에 부활절을, "로마 교회-부활절"이라고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부활절의 진상은 무엇인가? 영어로는 "이스터(Easter)", 독일어로는 "오스턴(Osterm)" 으로 불리는 이 명절은 그 근원을 전혀 성경에 두고 있지 않음을 교부들의 기록과 부활절-일요일 논쟁 역사를 살펴보면 당장에 알 수 있다.
다음은 5세기의 교회사가 소크라테스(Socrates . d 450)의 증언이다.
"이스터[부활절] 축제가 준수되었다는 지적이 신약 성경이나 사도 교부들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 주님이나 그의 제자들이 이것[부활절]이나 다른 축제를 명하신 적이 없다. 이스터[부활절]도 만은 다른 관습이 그렇게 수렵된 것처럼 교회가 [이교]의 옛 용어를 바꾸어 영구하게 한 것으로 돌려진다."
고대 앵글로 색슨족들이 봄의 여신으로 섬겨 온 "오스타라"[Ostara 혹은 Eostre)를 위하여 베풀어졌던 다산(多産)을 비는 붐의 축제(祝祭)가 "이스터" 이다. "동쪽(Ost) 에서 태어나 땅의 새 생명을 가져오는 봄의 태양"을 상징하기도 한 이 여신은 "부활절 달걀"이나 "부활절 토끼" 가 드러내듯 왕성한 생식(生殖) 과 다산(多産)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 봄의 여신 "오스타라"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고대 가나안의 다산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 과 흡사한 비교종교학 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삿2:13 ; 10:6 ; 삼상7:3.4; 왕상11:5,33)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은 고대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사랑과 다산의 여신인 "이슈타"(ishtar)와 같은 존재임이 밝혀졌다."여하튼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처럼, 고대 이교의 축제를 대신한 것임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로마 교회와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최대 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역시 앞서의 일요일이나 부활절-일요일처럼 태양숭배와 연관된 이교의 축제일이었음이 이교의 고대 문헌에서 확인된다. 크리스마스의 근원이 된 이교의 절기는 라틴어로 "디에스 나탈리스 솔 리스 인비크티"(dies natalis solis invicti) 였는데 그 뜻은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생일" 이였다.
"동지(冬至)가 지난 후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정복할 수 없는 항성[태양]이 다시 흑암을 이길 때인 '새로운 태양' 의 생일인 12월25일을 축하하도록 매우 일반적인 준수가 요청되었다."
다수의 학자들에 의하여 거듭 확인되듯이. 예수님의 탄생일을 "12월25일로 선택한 것은 이교의 행사였던 "정복할 수 없는 태양"의 축제가 그 당시 대단히 화려하게 축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이 점차적으로 확실해 졌다."그리하여 4세기의 달력[Philocalian . A.D 354]에는 12월 25일이 아예 "정복할 수 없는 자의 생일"로 명명(命名)되어 있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패르샤의 태양신 교인] 미드라 종교(Mithraism)와 겨룰 목적으로 12월 25일을 택한 것으로 믿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축하한 것이 로마 교회였음을 밝히는 달력도 발견되었고,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儀式) 학자에 의해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증언 카톨릭
"평화가 이룩된 후 로마 교회는 이교도들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이교의 축제에서 돌아서도록, 흑암의 정복자인 '무적(無敵)의 태양' 미드라(Mithras)를 영광스럽게 하는 같은 날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임시적인 생일로 제정하는 것이 편리한 것을 발견했다."

로마제국과 태양 숭배
일정한 종교가 없던 로마 사람들에게 태양은 자연숭배의 대상으로 걸맞았다. [옥스포드 교회사 사전]에 의하면, 로마에서 공식적인 태양숭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67년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드라가 소개되면서부터 였으며, 2세기말에는 콤모두스(Commodus . A.D.
180-192) 황제에 의하여 황실의 종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버지"(father)로 불리우는 제사장들에 의해 집행되는 태양신교(Sun Cult)의 의식이 그리스도교의 성례 전들과 너무도 흡사하여, 당시의 교부 터툴리안(Turtullian)은, 사단이 그리스도교의 성례 전을 그들이 모방하도록 미리 알려줬다고 할 정도였다.
이토록 2세기에 들어서면서, 특별히 황제들과 군인 및 고관들의 사적(私的)인 종교 가된 페르시아의 태양신은 "무적(無敵)의 태양"(Sol lnvictus Mithra)으로 불리우며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돋움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공적(公的)으로는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 218-222)황제가 국교의 대상으로 드높인 태양신 (Sol lnvictus Elagabal)을 장엄한 신전에서 숭배하고 있었다.
예수 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로마는 이미 혹성신(惑星神)의 이름을 딴 오늘날의 요일 명칭을 쓰고 있었음이 고대 문서들에 의해 밝혀졌다,2세기에 이르러 이 혹성 요일의 명칭은 더울 확신되었고 당시는 혹성에 포함되어토성일[토요일 . the day of Saturn] 다음인 둘째 날에 배정되었던 "태양의 날"곧 일요일(the dat of Sun) 이 2세기 초엽토성 일을 제치고 첫자리로 나오게 된 것은태양숭배가 고조되던 시대의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교도들은 일요일에 공식적인 태양숭배 의식은 행치 않았지만 목욕을 금하고 휴식하고 잔치하는 날로 보냈음을 2세기의 교부 터툴리안 (Tertullian . 160-225)의 기록에서 찾게 된다.
2세기 중엽에는 이미 태양의 날 (日曜日)을 첫째 날로 하는 오늘날과 같은 일[태양] 월[달] 화[화성]수[수성]목[목성] 금[금성] 토[토성]등 혹성 요일이 확립되어 있었다.그래서 로마의 초기 교부였던 저스틴(Justin Martyr)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과 다르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하여 서기 155년경 로마 황제 [Pius)에게 변증서를 올리면서, 세번씩이나 "태양의 날"을 거론하면서 이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한 데 모여 집회하는 습관에 관한 말을 하여 태양을 숭배하던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한 배경을 알게 된다.

로마 교회와 일요일 준수와 태양숭배

이상과 같은 역사적 증거를 통하여 확실하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서기135년에 끝난 바르-코게바(Bar-Kokeba)의 반란을 계기로 유대교가 하드리안 황제에 의하여 불법 종교가 되고 구약 성경 [토라]연구와 할례와 안식일 준수가 금지되자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했다. 특히 로마 교회는 이 일에 앞장서서.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일을 시작했다.

○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그 때까지 함께 준수해 오던 안식일을 로마 사람들이 선호(選好) 한 "태양의 날"인 첫째 날로 옮기기 위해 동방 교회들의 반대를 외면하고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하고 성만찬을 금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유월절 수난과 새 언약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켰던 1월[니산]14일 대신 날짜를 무시한 채. 유월절 이후 첫 "태양의 날"[일요일]을 부활절- 일요일로 제정하고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관철시켰다. 일요일과 함께 부활절 [이스터] 자체가 태양과 관련된 이교도의 축제였음이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에 이미 민족 신앙이 된 "무적의 태양"의 생일인 12월 25일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일컫는 크리스마스와 일치시켜 태양신이 누리고 있던 영광을 그리스도에게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삼았다.
이토록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일요일 준수가 이교의 태양숭배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는 아래와 같은 쥬이트의 변명은 어떤 면에서도 진실하지 않다.

증언 주이트
" 태양 숭배는 먼 태고로부터 있었던 일이며 그리스도교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유대인의 일주일 중 첫날이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의 어떤 특별한 관계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일요일에 예배 드릴 때 그들은 그날을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변증
실제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당시의 시대적 분이기에 편승하면서, 태양을 향해 기도하는 등 그리스도인의 각종 종교의식이 태양숭배와 직접 관련되자,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숭배자"(Sun-worshiper)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2세기말의 서방 라틴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이에 대해 변명을 해야 했으며5세기초의 로마 교황 레오1세(Leo 1 . d 461)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숭배를 하고 있는 것에 공격을 가하기에 이르렀다.또한 6세기초의 알렉산드리아 교부였던 유세비우스(Eusebius. c. 500)도 이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있다.

증언 교회사
"나는 태양을 숭배하고 그것을 향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해가 뜰 때 그들은 기도하면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태양숭배자들이나 이교도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을 떠나서 이교도들과 어울려 이 일을 한다".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A. D 321)
앞에서 언급한대로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인들의 태양숭배 열이 높아지고 혹성 요일의 둘째 자리에 있던 "태양의 날" [일요일 . dies Solis)이 "토성의 날"[ 토요일. dies Saturni)을 제치고 첫째 날이 되는 등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었다. 바로 같은 때에 유대인의 제2차 반란으로 로마제국에 의하여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던 그리스도교, 특히 로마 교회가 앞장선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마의 태양숭배 분위기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음을 확인했다.
때마침 동서로 나뉘었던 로마제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스탄틴(Constantine. d.337)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을 내려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잇달아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온갖 특전을 제공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더할 나위 없는 환심을 사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황제는 321년 3월7일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칙령을 내렸다.

"존경스러운 이 태양의 날에 모든 판사들과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휴업하도록 하라 그러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이 마련해 준 혜택을 상실하지 않도록 씨를 뿌리거나 포도나무를 재배함에 있어 그토록 적절한 때가 없는 수가 있으므로 적기(適期)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 날에 완전히 자유롭게 농경(農耕)에 종사하도록 하라".
큰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의 대상인 "존경스러운 태양"은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황제 자신을 포함한 로마 사람들이 섬겨 온 "무적의 태양" 곧 "미드라"(Mithras) 태양신이었다.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도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증언 대백과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에 로마 제국에서, 특히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동방 종교들 가운데 하나가 페르시아로부터 수입된 미드라 종교였다. 미드라는 태양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드라 종교는 일요일을 성일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교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이 이 날을 숭배한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일요일을 제국의 휴일로 선정하는 데 공헌하였다.

*[대영 백과사전]에도 일요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데 대해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증언 대백과
"유세비우스(Eusebius . 260-340)에 의하면 일요일을 합당하게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최초로 제정한 사람은 콘스탄틴인데, 그는 전 로마 제국이 일요일을 규칙적으로 축하하도록 명령하였다."
"서기 321년 그 [콘스탄틴]가 일요일을 일반적인 공휴일로 선포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과 이교도를 함께 마음에 두었다.""태양의 날은 이교도 추종자들에 의하여 숭배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았으므로, 이로써 이교와 그리스도교의 상충하는 관계를 연합시킨 것이 황제의 정책 이였다

"[콘스탄틴] 황제의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께 예배하고 이교도들 은 그들의 태양신을 섬기는데, 두 종교의 예배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콘스탄틴의 정책과 일요일 휴업령의 진상
콘스탄틴의 개종(改宗)은 명목적(名目的)이었으며, 그는 평생 태양숭배자였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고대 희랍과 로마의 태양신인 아폴로(Apollo)를 높이기 위해 주화(鑄貨)를 만들어 냈으며 죽기까지 이교[태양신]의 대제사장의 칭호[Pontifex Maximus]를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정책을 썼다.이러한 콘스탄틴 황제가 휴업하도록 명령한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그런 성일(聖日. holy day)이 아니라, 운동경기나 오락을 즐기는 세속적인 휴일(休日. holiday)에 불과했다.
태양의 이름으로 휴식을 명령한 이교 적인 정책을 교회 지도자들이 오히려 추진하고 환영한 까닭을 무엇인가? 처음에는 불법 종교가 된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하여, 로마 제국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저의(底意)였다. 그러나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고, 명목적인 개종을 거친 콘스탄틴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하고 사법상의 특혜, 하사금 지급 등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고, 교회의 사유재산과 유증(遺贈)까지도 허락하는 등 정치적 배려가 깊어지자 그리스도교는 금새 현실에 눈이 어두워진 퇴폐적인 정치 종교로 탈바꿈하고 말았다.성직 매매가 시작되고, 성직 쟁탈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 동원되어 366년 로마 교회 감독 다마수스(Da-masus)를 선출할 때는 폭력배들이 동원되었고, 415년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직에 나섰던 히파티아(Hypatia)가 폭력배에게 맞아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옹호하는 주이트(Jewett)도,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휴일로 지정한 것은 여기[일요일]에 대한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기술적으로 결합"시킨 것임을 인정하고, "그의 칙령은 주일(主日)성수의 발달 과정에서만 획기적인 사건이 되지 않고, 그의 정치적 영특성을 기념하는 기념비도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참으로 주일(主日) 성수(聖守)의 발달 과정인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는 하나님의 명령은 외면하고, 속(俗)된 휴일로 지정한 콘스탄틴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을 성수(聖守)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 인의 양심일 수 있을까?그리스도교 제1차 세계 총회인 니케아 종교회의(A.D.325)도 콘스탄틴 황제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화려하게 열렸고 황제 자신이 임석하여 개회사를 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동서 교회가 부활절-일요일의 날짜 문제로 이견을 보이자 황제는 즉시 로마 교회를 편들어, 모든 교회로 하여금,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의 고대 교회" 의 관습을 따르도록 명령하는 등세속의 황제가 교회 위에 군림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200년 이상 계속된 로마제국의 픽박 을 "죽도록 충성"(계2:10)함으로써 이긴 그리스도의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온갖 호의를 베풀면서 타협을 시도한 콘스탄틴 황제의 정책에 쉽사리 넘어간 것이다. 이것이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한 역사적 반증이다.

"콘스탄틴은 이 때에 옛 신앙과 새 신앙의 예배 자들을 한 종교로 연합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그의 모든 법령과 고안들은 두 종교의 혼합을 촉진시키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합법적이고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순화된 이교와 온건한 그리스도교를 함께 녹이려 했다.... '태양의 날' 이 일반적인 휴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명령은 그의 입장을 대표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이교를 뒤섞고 혼합한 그의 일을 가장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요일 휴업 령 인 것이다.

오늘날처럼 거의 온 세상이 일요일에 쉬게 된 것은 이상과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휴식하며 예배한 경위에 대하여 자신이 일요일 성수론 자인 주이트는, "일요일에 일을 하지 말고 쉴 것을 제일 처음으로 분명히 언급한 저자는 [2세기말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서기.200년경)이"라고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증언 주이트
"이야기는 이미 언급한바 있는 콘스탄틴의 칙령과 함께 시작된다. 그 칙령일 공포되자 많은 사람들은 주일날[일요일]의 꽤 많은 시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게으름이란 과중한 노동과 같이 정신적 수양에 해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식적인 행위만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대해 구약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금령들을 빙자하여 쉬라는 요구에다 종교적 열성과 의무를 지우려 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의 휴식에 대한 이 법은 시민법의 지지까지 호소하였다.

그리스도교회의 공식적인 일요일 준수

주이트의 솔직한 증언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공식적으로 쉬게 된것은 전적으로 콘스탄틴의 일요일 휴업령 때문이며, 쉬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하여 그 때 그 때 이런 저런 종교 행사들을 덧붙여 온 것이 오늘날의 일요일 예배의식인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부채질한 사람이 바로 가이샤랴의 감독으로 콘스탄틴 황제와도 가깝게 지낸 교회사의 비조(鼻租)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c.260-340)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유세비우스는 안식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음을 다음의 인용에서 보게 된다.
"우리[교회]는 안식일에 관한 모든 의무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주의날[主日]로 옮겼는데, 이는 이날이 유대인의 안식일보다 더 권위가 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순서에서도 첫번이고 더 영예롭기 때문이다.
이토록 참람하고 모독적인 뒷바침을 통하여 촉진되어 온 교회 내에서의 일요일 준수가 마침내 364년경에 열린 "라오디게아 종교회의"(Council of Laodi-cea)에서 공식적으로 인준되기에 이른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화하여 안식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며, 그날에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날[일요일]을 특별히 존중히 여겨,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능하면 이 날에 일하지 말라. 그런데도 만일 그들이 유대화한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1910년 1월 25일 교황 피우스10세(Pius x)로 부터 "사도적인 축복"(Apostolic Blessing)을 받은 [회심자를 위한 가톨릭교리 문답서]에서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우리는 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카톨릭 교회가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진상이 분명해졌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는 제국 내의 이교와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일을 위해 일요일을 활용하였고, 로마 교회는 정치적인 권익을 제공하는 일요일을 발판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入門)시켜 마침내 중세기를 지배하는 로마 카톨릭의 입지를 확보한 것이다.
이리하여 일요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제안한 최초의 교부인 터툴리안 (Tertu-llian . d. 225)의 말과,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쉬라고 결의한 최초의 회의인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의 결의와, "존경 스러운 태양의 날"에는 일하지 말라는 최초의 법인 콘스탄틴의 칙령을따르기 위해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니라" (출20:11)고 이유까지 밝혀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유린해도 되는가? 그것이야말로, "너희 유전(傳統)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마15:3)하는 경우가 아닌가? 이에 관한 로마 카톨릭의 직설적인 증언을 아래에 인용한다.

증언 카톨릭
"만약 당신이 성경만을 따른다면 당신은 토요일[안식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날이야말로 하나님께 거룩히 지키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서 비 가톨릭 신자들은 1800년간 성경의 제도가 아닌 카톨릭의 전통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신자들처럼 토요일[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점에서 그들의 덜미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성경만을 신앙의 유일한 지침으로 주장하고 있는 개신 교회는 일요일 준수에 대한 아무런 보증이 없다 이점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만이 일관성 있는 개신 교회이다.

9. 사도 시대 이후의 안식일 준수 역사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창조와 동시에 제정된 안식일은 기나긴 구약 시대를 통하여 단절 없이 기억되고 준수되어 왔음을 보았다. 애굽의 종살이와 바벨론의 포로 등 안식일 준수를 불가능하게 하는 극한 상황은 구속을 통하여 참 안식일을 주시는 안식일 주(主)가 되신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개입으로 극복되어 회복을 거듭하면서 신약 시대로 접어든다.
신약 시대 이후 현금(現今)까지의 안식일 준수 역사는 어떠한가? 앞서 살펴 본 일요일 준수의 역사적 기원이 불분명한 데 반하여 안식일의 기원과 준수의 역사는 이미 신, 구약에서 확인되고도 남았다. 이제는 아주 간단히 신약 성경을 벗어난 이후의 역사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다.

제1세기 예루살렘 멸망 전후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설교인 감람산 설교에서 서기 70년 있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게 기도하라"(마 24:20)는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 이후까지 계속될 철저한 안식일 준수를 확증하셨다. 마태가 서기 60년을 전후하여 마태복음을 쓸 당시까지 안식일이 지켜졌음이 논리적으로 분명하다. 십자가 직후에 안식일이 지켜진 기록과(눅 23:54, 55), 사도행전이 쓰여진 서기 61~63 년경까지 안식일이 철저히 지켜졌음은 사도바울의 행적에서 뚜렷해진다(행 17:2; 13:14; 17:2; 18:4 등).
예루살렘 멸망 이후인 1세기말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회당에서 안식일을 지켰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쉐모네 에스레"(She-moneh Esreh)라는 유대인 회당의 기도문 가운데, 회당에 참석한 그리스도인을 색출하는 저주가 들어있음을 보아 확실하다.
또한 4세기 팔레스틴 출신의 감독 에피파니우스는 예루살렘 멸망시 도망쳐 나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그 때까지 계속하여 안식일을 준수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제2세기 바르-코케바 반란 이후
서기 70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135년의 바르-코케바 반란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구별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던 때 쓰여진 교부들의 문서들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면서 일요일에도 모이는 습관이 있었음이 바나바의 서신(The Epistles of Barnabas), 저스틴 마터의 글, 도마의 복음서(The Gospel of Thomas), 폴르카프의 순교(Mart-yrdom of Polycarp) 등에 예시되어 있다.

제3세기 이후 제10세기까지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이 반포된 후에도 안식일 준수가 계속 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동방의 많은 교회들은 일요일처럼 안식일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서방교 회들은 유대인의 제도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그 날에 금식을 실시했다."364년경에 개최된 라오디게아 종교회의가 비록 안식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휴식하라는 반 성서적인 결의는 했어도[29항], "안식일에는 복음서와 다른 성경을 소리내어 읽어라"[16항]고 규정하고, "사순절 동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빵을 드리지 말라"[49항]고 한 것을 보아 안식일을 지키는 당시의 분위기를 신중히 고려했음을 알게 된다.
서기 386년과 387년에 동방의 교부 크리소스톰(John Chyrsostom)이 행한 설교 내용과,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다나시우스와 (Athanasius . d 373) 키릴등(Cyril) 여러 교부들이 계속하여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신자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5세기의 교회사가인 소크라테스(Socratrs Scholasticus . d450)와 소조멘(S. H.
Sozomen)179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습관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그 때까지 계속되고 있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교회가. 안식일에 그 거룩한 신비를 축하하고 있는데도,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고대의 관습 때문에 그런 일 하던 것을 그쳤다".
8세기의 마지막 동방 교부 다마스커스( John Damascus . d. 749)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들어오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경고하는 글을 남기고 있으며,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안식일을 준수한 고백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단속이 심했던 서방 교회에서도 안식일을 금하는 규제가 종교회의와 교황들에 의하여 계속 강화되었음을 볼 때, 안식일을 준수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교황 그레고리1세(Gregory the Great . 540-604)는 그의 교서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왜곡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가르침, 곧 안식일에는 모든 일을 중지해야 한다는 그런 하찮은 교리를 여러분들 가운데 유포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내게 접수되었다. 나로서는 그들을 적그리스도의 설교자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서기 796년 [혹은 797년]에 북아프리카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the Council of Friuli)의 결의 제 13항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농부들을 정죄하고 있다.10세기에는 방금 개종한 불가리아인들이 교황 니콜라스1세(Nicholas 1)에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여부를 묻고 있어, 안식일 준수의 관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제11세기 이후 제 15세기까지

서기 1054년 로마 가톨릭 교회와 희랍 정교가 갈라질 때 논쟁이 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에 금식을 강요하는 로마교회의 태도였다.교황 피우스 9세의 사절이었던 추기경 험버트(Humbert)는, "[안식일에 금식을 반대하는] 동방 교회 신자들은 유대인과 더불어 안식일을 준수하기로 선택했다."고 비난했다. 직후에 콘스탄틴 노플의 대주교 케루랄리우스(Mi-chael Cerualrius)는, "그래서 우리는 주일[일요일]과 꼭같이 안식일을 영화롭게 하고 지켜 그날에 일하지 말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썼다.
12세기쯤에는 일요일이 안식일을 거의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3)때 쯤 에는 일요일을 일몰부터 일몰까지 엄격히 준수될 것과 범할 경우 벌칙까지 부과되었다.그러나 이 깊은 중세기의 암흑 속에서도 진리의 등불은 아주 꺼진 것은 아니었다.
12세기를 전후하여 북 이태리와 남 프랑스 일대를 중심으로 알프스를 요람으로 삼고 열렬한 성서 위주의 개혁 운동을 전개한 왈덴스인들(the Waldenses)은 로마 교황권이 주도한 십자군과 종교재판의 표적이었다.그런데 이들이 활동한 지역에서는 놀랍게도 안식일 준수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북 이태리 지방에는 파사기니(Passgini)로 알려진 신앙 집단이 형성되어 안식일 준수를 계속했으며 북 프랑스 일대에도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처형된 역사적 기록들이 보존돼 있다.이 때쯤 저 멀리 스칸디나비아 일대에도 안식일 준수 운동이 일어나자 놀웨이 감독 볼트(Aslak Bolt)는 1453년 종교회의를 열어 이를 저지하기에 이르렀다.
제 16세기 종교개혁과 안식일 회복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루터의 선임교수요. 그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칼 스타트(Andreas Carlstadt)는 안식일에 관한 논제를 발표하고 루터에게도 안식일 준수를 강조했으나 종교개혁의 다른 주제에 여념이 없었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곳곳에서 로마 가톨릭의 학자들과 종교 개혁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일 벌어지곤 했는데, 이때에 일요일과 안식일의 준수의 정당성이 거론되었다.
1543년 칼빈의 동료 파렐(William Farel)은 솔본느 대학의 로마 가톨릭 학자인 퍼르비트(Guy Furbety)와 토론하는 자리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인간적인 제도들을 교회에 끌어들였다고 공박했다. 이에 대해 로마 가톨릭 교회를 대표는 "[가톨릭]교회는 그에게 주어진 권세로 주님의 부활 때문에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명령과 법규에 따라 일요일을 지킨다"고 전제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려거든 "토요일에 안식하여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에 대해 파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날이 다 거룩하기 때문에 한 날 일요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휴식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가톨릭 학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저마다 아무 날이나 휴식한다면 큰 혼난이 생기지 않느냐고 반박하고, 성경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시했으며, 일요일 준수는 오직 카톨릭교회의 권위에 근거했음을 강조했다. 인간의 모든 전통을 배격하고 "오직 성경" 만을 신앙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선언한 종교개혁의 원칙은 이렇듯 일요일 준수에 부딪혀 신학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재세례파 운동과 안식일 진리를 위한 최초의 순교

이와 같이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는 종교개혁은 마침내 칼빈에 앞서 스위스를 중심으로 열렬한 종교개혁을 추진하던 재세레파(Anabaptists) 개혁자들에 의하여 진리를 찿게 된다.
재세레파의 여러 분파 가운데 16세기 후기부터 안식일을 준수하는 독특한 그룹이 생겨났다
이들 가운데 본래 가톨릭 사제들이었다가 후에 루터교로 개종했던 글레이트(Oswald Glait)와 피숴(Andreas Fisccher)는 성경을 깊이 연구한 후에 재세레파로 개종했다. 그리고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한 끝에 안식일을 변경할 수 없는 십계명에 속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인간이 교회의 권위로 바꾸어 버린 것은 다니엘서(7:25)에 예언된 대로,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한 작은 뿔인 교황권의 역사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것은 콘스탄틴 황제와 교황 빅토르 라고 선언했다.
피숴는, "성경은 안식일에 대하여 그토록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만약 일요일에 관하여 그만큼 말한 구절들이 있다면 나는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논증을 폈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포함한 열 가지 조항의 언약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들과 신약 성경은 십계명의 준수를 명령하고 있으므로 안식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야고보나 바울에 의하여 율법이 언급되었을 때, 그 율법은 안식일을 포함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믿음은 율법을 세우기[롬 3:31]때문에 안식일도 세우는 것이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은 안식일에 모임을 가졌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 초대교회의 교부들도 모두 안식일을 거룩히 지켰다. [로마교회 감독] 교황 빅토르(Victor)와 콘스탄틴 황제는 일요일을 지키도록 명한 첫 번째 사람들이다. 십계명은 영원한 것이다."

피숴(Fisher)의 동료인 글레이트(Galit)의 논증도 반박할 수 없도록 조리 정연했음을 당대의 기록에서 찾게 된다.

"글레이트의 가장 강력한 논증은 십계명의 수(數)에 있었다...그는 하나님께서 여덟이나 아홉 계명이 아니라 열 가지 계명을 주셨으며[신 4:13 ; 10:4],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모두 지켜지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도록 고수했다... [그는]안식일도 함께 지켜지든지 아니면 다른 아홉 계명도 모두 거절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 교회나 일반 개신교 모두에 대한 일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피숴 부부는 1529년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부인은 그 당시 재 세례 파를 처형하던 방법대로 산채로 물에 빠뜨려 죽였고, 남편은 피신했다가 잡혀서 1539년 그의 집 성곽에서 떨어뜨려 죽게 했다.글레이트는 1545년 잡혀서 1년 이상 옥에서 갇혔다가 밤중에 끌어내어 손발이 묶인 채 다뉴브강에 던져졌다. 목숨과 바꾼 안식일의 진리였다이토록 국가와 교회의 가혹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비롯하여 지금의 루마니아 서북부인 트랜실바니아(Transylvania)를 비롯하여 보헤미아. 러시아,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스위스, 모라비아, 놀웨이, 스웨덴, 핀랜드,스페인 등 각처에 안식일 준수가 끈질기게 대두되었음이 역사에서 확인되고 있어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17세기 청교도 운동과 제칠일 침례교의 탄생

종교개혁이 성숙해 가던 16세기 말 영국에 뿌리를 내린 개혁교회 신자들 가운데 보다 철저한 성서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청교도(Puritans)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제도를 철저히 배격하고, 일요일도 십계명에 나오는 안식일처럼 거룩히 구별하여 지켰다.
17세기 들어서면서 이러한 영적 분위기가 더욱 고조된 가운데 이들 청교도 가운데 실제로 일요일 대신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이 나왔다. 1616년 런던의 밀 야드(Mill Yard) 교회에서 부흥 집회를 개최하던 청교도 목사 트래스크(John Traske . c. 1583-1636)와 교사였던 아내(Dorothy Traske)는 잭슨(Hamlet Jackson)의 도움으로 회중과 함께 성경적인 안식일을 깨닫게 되고 다음 해인 1617년에는 최초로 제칠일 안식일로 지키며 물에 잠기는 성인(成人)침례를 베푸는 제칠일 침례교(Seventh-day Baptist) 가 같은 곳에 세워졌다.
그들은 직전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트래스크는 해상 감옥에 갇혀 모진 고생을 겪다가 신념을 굽혔으나 그의 아내는 신앙을 굽히지 않고 16년간 옥에 갇혀 온갖 수난을 겪다가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그녀의 너무나 아름다웠던 옥중생활은 같은 때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시인 러브 레이스(Ri-chard Lovelace)로 하여금 불후의 시를 쓰게 했다.
이렇게 세워진 제칠일 침례교 밀야드 교회의 초기 목사 제임스(John James)는 1661년 10월 19일 안식일 설교하던 중 체포되어 같은 해 11월 26일 두 번이나 찰스 2세에게 애걸한 그의 아내의 탄원도 묵살된 채 교수형에 처해졌다. 당국은 그의 목을 잘라 장대에 꽂아서 그가 시무 하던 교회 뜰에 전시하여 안식일을 준수하는 결과가 무엇임을 신자들에게 경고했다.
같은 때인 1662년 국교의 목사였던 뱀필드(Francis Bamfield)는 신앙 문제로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개인적으로 성경 연구를 하던 끝에 안식일을 깨닫고 9년 형기(刑期)동안 부단히 안식일을 가르쳐 옥중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침례교 도르체스터 감옥 교회"를 세우기 이르렀다.출감 후 또 다른 제칠일 침례교를 세웠으나 안식일을 가르친 죄목으로 세 차례에 걸친 투옥 후에 70세 때인 1684년 2월 18일 춥고 습한 뉴게이트 감옥에서 안식일 진리의 고상한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진리를 위해 바쳐진 순교자의 생명은 씨앗이 되어 다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뱀필드 목사가 목숨을 바쳐 세운 "그의 교회로부터 지칠줄 모르는 신자였던 멈포드(Stephen Mumford) 가 안식일 진리를 심기 위하여 미국으로 갔다.그리고 멈포드에 의하여 미국에 전해진 안식일 진리는 초기의 재림 신자들에게 전달되어 마침내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뱀필드 목사는 생전에 안식일 준수를 옹호하는 두 편의 글을 남겼는데, 아래와 같은 대목도 있다.

"제칠일 안식일에 관한 율법은 시내 산에서 율법[십계명]이 선포되기 전, 창조당시 아담에게 주신 것이요,... 아담 안에서 온 세상에게 주신 것이다...주 그리스도께서 매주일 제칠일 안식일로 평생동안 준수하심으로써 넷째 계명에 순종하신 것은...온전한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완전한 의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신자들은 십계명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모든 행하심에 있어 그분과 일치해야 한다."

그의 형제 토마스 뱀필드(Thomas BampField)는 크롬웰 의회의 대변인으로 안식일을 옹호하는 글까지 썼다. 그러나 후에 그러한 그의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다.

엿새동안 일하고 다시 맞는 안식일
이토록 생명까지 요구하는 희생과 수난 속에서 시작된 제칠일 침례교는 중세기 동안 무참히 짓밟혔던 안식일의 회복을 위해 피와 고난의 비싼 값을 치르며 역사적인 사명을 수행해 나갔다. 영국의 세 국왕, 제임스1세, 찰스1세와 2세와 왕후들의 궁중 의사요, 수치료(水治療) 개발등 의학 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챔블린(Peter Chamberlin . d. 1638),은 주이트의 인용대로, "1651년부터 개인적으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하여" 죽기까지 32년간 안식일을 준수했다. "후에는 안식일에 예배하는 교회[밀야드 제칠일 침례교]에서 [두 번째] 목회 하였던 챔블린은 다니엘서 7장 25절이...참 안식일 예배가 일요일로 바뀌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해석을 지지하였다....
챔블린은 이 본문이 넷째 계명[안식일]을 뒤엎은...교황권에 대한"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안식일과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옹호하는 논문들을 썼다.
당시의 상황에서 그의 공공연한 안식일준수와 독립적인 신앙은 투옥등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는 행위였으나 왕실 주치 의사로서의 그의 독특한 지위와 러시아 황제까지도 그를 주치의로 초청한 대단한 명성은 그의 생명을 가까스로 보존시켰다.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안식일을 제창한 또 다른 명사는 죠셉 스테네트(Jo-seph Stennett . d. 1713)로 신학 박사였던 그는 뱀필드 목사가 몸숨을 바쳐 세운 제칠일 침례교 피너스 홀(Pinner.s Hall) 교회에서 목회하며 신학 논문과 찬송과 작사로 신앙을 북돋았다.
그의 손자인 사무엘 스테네트의 이름으로 잘못 소개되고 있는 아래의 안식일 찬송은 그가 작사한 것으로그의 마음에 사무친 안식일의 거룩함과 기쁨이 잘 드러내고 있다.

나 엿새 동안 일하고
1.나 엿새 동안 일하고 안식일 다시 맞으니
이 세상 생각 버리고 신령한 복을 누리네.

2.내기도 향기 같아서 주 앞에 올라갑니다
내주께 받는 안식을 못 받는 자는 모르네.

3.내맘을 주관하시니 겁날 것 아주 없도다
구주께 속한 사람은 다 안식복락 얻겠네.

4.이 날은 주에 날이니 일하지 말고 지키세
이같이 주일 지키면 영원한 안식 얻겠네

그의 손자인 사무엘 스테네터(Samuel Stennett . d. 1795)도 신학 박사 였는데 3대를 거처 제칠일 침례교 목사로 봉직하며 물에 잠기는 성인 침례를 옹호하는 책들을 저술하고,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등 여러 편의 찬송가를 써서 개혁을 밀고 나아갔다.

신대륙 미국에 옮겨진 안식일 진리

1664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한 제칠일 침례교인 멈포드(Stephen Mumford)는 안식일에 관한 진리를 전파한 결과로 1671년에는 로드아일랜드에 최초의 제칠일 침례교가 세워 졌다.그리고 1802년에는 9명의 목사와 1.130명의 신자로 구성된 총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으며, 후에는 80교회와 8천명의 신자로 불어났다.
1700년대 초반 펜실베니아주에 정착한 모라비아 형제회 신자들 가운데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곳을 방문했던 모라비아 형제 회 창시자인 진젠돌프(Zinzendorf) 백작도 그들의 영향으로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신대륙 미국에 안식일의 진리가 착실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1843년 제칠일 침례교 총회에서는 11월 1일을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당신의 거룩한 안식일을 위하여 역사 하시도록 금식하며 기도하는 날로 정했다. 이 간절한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었는가?

재림 운동과 연결된 안식일 진리
제칠일 침례교의 신실한 신자인 라헬 오우크스(Racher Oakes)부인은 뉴욕에서 뉴햄프셔 주의 와싱톤으로 이사했다.때마침 침례교 신자인 윌리암 밀러(Willimm Miller)가 주도한 초교파적인 재림 운동이 미주 전역에 고조되던 때여서 오우크스 부인은 쉽사리 재림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가 깨달은 안식일 진리를 자신이 출석하던 재림교회의 감리교 출신 휠러(Frederick Wheeler) 목사에게 전하였으며, 1844년에는 이 교회의 몇 신자가 별도로 안식일에 예배함으로서 최초로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교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이렇게 제칠일 침례교회를 떠나 안식일을 지키는 최초의 재림교회가 신대륙에 출현한 것이다. 이러한 기반을 통하여 안식일의 진리는 같은 해 재림 교회의 뉴햄퓨셔 침례교 출신 프레불(T.
M. Preble) 목사에게 전달되었다. 감격을 가지고 진리를 받아들인 프레불 목사는 다음 해인 1854년 2월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된 것은 그리스도나 사도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언된 대로(단7:25) 교황권의 배도(背道)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소책자를 써서 보급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즉각적이어서 안식일의 진리는 재림운동에 참여했던 침례교 신학자요 목사인 쿡(J. B. Cook)과 경건한 퇴역 선장 베이츠(Joseph Bates)에게 전달되었다.1846년에 베이츠 선장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계속하고 있는 성소 봉사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됨과 동시에(히4:14-16; 8:-10:), 성소의 정결에 관한 진리를(단8:14) 아울러 이해하게 됨으로서 1844년에 있은 대 실망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깊은 연구로 확신에 도달한 그는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 이란 소책자를 써서 보급하기 시작하여 수 많은 회심 자를 얻었다. 이 소책자는 재림운동의 유능한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던 화이트(James White) 목사 부부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같은 해 그들 역시 안식일을 준수하기 시작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형성과 안식일의 완전한 회복
침례교 지도자 윌리암 밀러가 주도했던 예수 재림의 대각성 운동은 1844년 실망으로 막을 고한 듯 했으나, 이 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발견된 성소와 안식일의 진리는 마침내 인류의 유일의 소망이요 구원의 완성인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되는 대단원(大團圓)에 이른다.
1848년 4월, 성소제도에 관한 심오한 진리와 안식일과 재림 신앙의 확신에 도달한 일단의 신자들이 코넥티컷 주의 록키 힐(Rocky Hill)에 모여 최초의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게 될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게 일찍이 약속하신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인 "대언의영"(the Spirit of Prophecy. 계19:10; 12:17; 엡4:7-13)이 감리교 출신의 엘렌 G.화잇(Ellen G. Whity) 여사를 통하여 주신 바 되었음을 모든 증거에 기초하여 확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상의 제칠일을 안식일로 준수하며, 임박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온 세상에 전파할 사명을 가진 무리가 1860년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Seventh-day Adventist)의 공식 명칭을 채택함으로써,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마무리짓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 12:17)로 마지막 구원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리하여 종교개혁의 주류를 타고 정통적인 성서적 신앙의 역사적으로 계승한 청교도적인 회중교회, 거기서 다시 진취(進取)한 침례고, 거기서 또 다시 진취한 제칠일 침례교를 통하여 회복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인 안식일(출 31:13, 17)이 중세기의 암흑을 벗어나 마침내 옛자리, 본래의 영광을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예언된 재림 운동을 통하여(계 10장) 소개된 구원의 완결이요 성경의 결론이며 예언적 신앙의 궁극인 예수 재림의 진리와 극적으로 만남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종결시킬 "성도"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의 역사적 출현을 실현시킨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리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 1, 2).

회복된 즐겁고 존귀한 날
창조의 기념일뿐만 아니라 영원한 구속(救贖)을 약속하는 참으로 복된 안식일의 복음이 아닌가? 이토록 축복된 안식일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범(犯)함으로써 축복을 상실했고(겔 20:10~14 ; 느 13:17,18 ; 렘 17:20~27), 신약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주인이신(마 12:8 ; 막 2:28)그리스도를 거절하고 형식만을 고집하는 율법주의에 빠짐으로써 축복은 저주로 바뀌었다(마 23:23, 12:1~13).
그리고 사도들이 모두 떠나간2세기 이후의 교회는 핍박을 모면하고 현실에 맞추어 살아남으려는 궁색한 방편으로 성경의 안식일을 이교 적인 일요일로 대치함으로써 중세기를 암흑으로 채운 배교(背敎)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 일에 앞장선 것이 신앙의 원칙보다는 정치에 몰두했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의 교회였으며, 그것은 교회들의 머리가 되기 위한 중세기 교황권(敎皇권) 확립의 계기가 되었다.
전술 한대로,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최초로 일요일 휴업령(Sundey Law)을 반포하던 당시의 로마 교회 감독[교황]은 실베스터(Sylvester . A.D.314-335)였는데 "일요일"의 명칭을 "주의 날"로 공식화하려는 집요한 노력과 함께, 어떻게 콘스탄틴의 정책을 내조(內助)했는지 다음과 같은 그의 선언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매주 일요일이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기쁨으로 준수되어야 한다면, 매주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장사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저주로 간주되어야 한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부활하신 날에 그들[사도들]과 함께 기뻐하려면, [안식일에는] 주님의 장사 때문에 슬퍼해야 한다. 사실, 유대인의 관습 때문에, [안식일에] 음식을 소모하고 유대인의 의식을 치르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교의 축제인 일요일에 "감사를 드리며 빵을 먹기 위하여"하나님의 안식일을 배고픔에 시달리는 우울하고 슬픈 날로 만드는데 성공한 로마교회의 상반(相反)된 시도에 맞서 안식일을 끝내 기쁨과 존귀한 날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임이 다음의 말씀에서 얼마나 분명해지는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修補 )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발을 금하여 내 성일 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 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 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으로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2-14)
10 일요일 준수와 진정한 예배

뿌리칠 수 없는 의문들
이상과 같이 안식일과 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를 확인하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어찌하여 이교에 근원을 둔 배도의 상징인 이러한 일요일이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의 거리낌없는 예배일이 될 수 있을까?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무 날이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도 그래도 상관이 없다고 하실까?예배는 드리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데 의미다 있는 것이다. 제사와 예배에 대하여 참으로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창4:3-5; 레10:1-3; 삼상13:8-14).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 하셨거니와 이제는"(행17:30) 모든 것을 밝혀 주신 때에 기대 하시는 바는 무엇인가?살펴본대도 오늘날처럼 일요일이 안식일을 대신할 무렵, 태양을 숭배하던 이교도들과 함께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기도들인 이교 적인 그리스도인 들의 처신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것을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태도인 것처럼 합리화한 당시의 교부들이나 현대 주일성수론자 들의 견해는합당한 것인가? 아무 날이나 하루 예배하면 된다는 통념(通念)으로 이 모든 역사적 현실을 간파(看過) 할 수 있을까?특별히, 이러한 혼합적인 예배의 개념은,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예배]하라(계14:7)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이자 경고인 세천사의 기별과 (계14:6-12) 상관이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과 심판과 연결된 예배의 시의성(時宜性)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이에 대한 대답으로 에스겔서에 소개된 다음의 기별을,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서 심사숙고 하고자 한다.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들을 네가 보았느냐...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기로 보니 거기서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 하더라,...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겔 8:12-17)

본래 태양신을 높이던 날인 일요일(Sunday)이 안식일을 제치고 그리스도인의 예배일로 소개되던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취했던 태도와 얼마나 흡사한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던 예루살렘 여인들이 위하여 눈물을 흘리던 담무스는 누구이며, 그들은 왜 울고 있었는가? 그리고 장로[제사장]들은 왜 낮을 동으로 향하고 태양을 향하여 경배하고 있었는가?전설에 의하면 최초로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반역했던 노아의 증손자인 니므롯(창10:8.9)의 부인 세미라미스(Semiramis)는 죽은 남편의 영이 태양으로 들어가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후에 세리미스는 니므롯의 영이 재 탄생한 것으로 믿게 된 사생아 담무스(Tammuz)를 낳았는데 그가 멧돼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후 그의 영은 지하 세계로 들어갔다는 신화가 생겨났다.이러한 유의 담무스 신화가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존재했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농축신(農蓄神)이 된 담무스는 바벨론 달력의 넷째 달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6월경 풀이 마르는 여름이 되면 매년 반복하여 죽기 때문에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넷째 달을 "두무지"(Dumuzi)로 불렸으며 바벨론에 포로 되어 갔던 유대인들도 이 관습을 배워서 그들 종교력의 넷째 달을 "담무스"(Tam-muz)로 불렀다. 담무스가 죽는 넷째 달이면 고대 앗시리아나 바벨론 사람들에게는 이슈타(lshtar)로 알려진, 담무스의 어머니도 되고 연인도 되는 사랑의 여신은 지하로 쫓아 내려가 슬피 우는데 이때 여인들도 함께 우는 가증한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봄이 되어 태양이 따뜻이 비칠대 담무스는 이슈타의 애도와 애정으로 다시 부활하여 농작물과 초장을 푸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때 그해의 다산(多産)을 위하여 담무스와 이슈타를위한 음란하고 난잡한 봄의 축제를 벌인 것이다.
고대 가나안에서는 아스다롯(Astarte), 헬라에서는 아프로티테(Aphrodite), 로마에서는 비너스(Venus)로 불렸던 이슈타 숭배가 예레미야 당시의 배도한 유대인 여자들에 의하여 계속되고 있었으며 (렘44:15-19), 에스겔에게 보여진 바 유대여자들이 행하던 "가증한 일"(겔8:13-16)도 여신 이슈타의 연인인 담무스의 부활을 위해 슬피 우는 이교의 의식인 것이다. 이토록 농경에 관계된 고대의 태양을 비롯한 천체 숭배가 얼마나 엄중히 경고되었는지 깨닫게 될 때 (신4:19; 17:3; 왕하23:5.11; 욥31:26).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여인들에 걸맞게 감히 하나님의 전에서,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을 경배"(겔8:16)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처신은 더 큰 "가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되풀이 된 배도의 역사
신, 구약 성경에 걸쳐서 일관되게 준수되어 온 예배일인 "여호와의 안식일"을 제쳐놓고 "무적의 태양신 "을 숭상하던 이교도의 날인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대치한 3, 4세기 교회 지도자들은 에스겔 당시의 지도자들의 배교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의 사학자 하이드(Walter W. Hyde)와 [카톨릭 세게](The Catholic World)에 게재된 이상의 역사를 확증해 보자.

증언 하이드
"제4세기의 그리스도교가 그의 적대 세력 이였던 [로마의 태양신교]에서 채용한 두기지 제도에서 투쟁의 잔재 물을 발견하게 된다. 즉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드라(Mithlas)의 두 성일 (聖日)인데,12월 25일은 "디에스 나탈리스 솔리스"(dies natalis solis)로 부르는 "태양의 생일"이였던 것을 예수의 생일로 삼은 것과, 서기 321년 콘스탄틴 황제가 그것을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 이라고 부른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삼은 것이다.

증언 카톨릭
"교회는 이교(異敎)의 일요일을 취하여 그리스도교 일요일로 만들었다. 교회는 이교(異敎)의 이스터(Easter)를 취하여 그 기간을 우리의 축제인 [부활절을] 만들었다. 일요일과 부활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것들은 서로 같은 것이다. 사실 모든 일요일들은 단지 부활절을 매 주일마다 부분적으로 되풀이하기 때문에 일요일들(Sundeys)인 것이다... 태양은 이교도들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신 이였다."

"[그리스도교에 끼친] 이교의 영향에 대한 적절한 한가지 예를 찾자면 그들이 기도를 드리는 동안 태양이 떠오르는 곳인 동쪽을 향하여 돌아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습관을 조사해 보면 된다."

간과 할 수 없는 배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고 지키는 일요일이나 서구의 민속(民俗)명절이 된 크리스마스. 부활절을 뜻 깊게 보내는 것을 결코 우상 숭배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까닭이 있는 역사를 깨닫게 될 때, 적어도 십계명에 명시된 성일 인 "여화와의 안식일"을 제쳐놓고 이교의 성일 이였음이 분명한 일요일에 예배하는 것은 문제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려는 신앙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 인에게는 간과(看過) 할 수 없는 큰 일이다.
하나님께서 질투와 분노를 가지고서 에스겔에게 진상을 공개한바, 하나님의 성전뜰 안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겔8:16)한 사실은 참으로 "적다 하겠느냐"(8:17)고 반문하셨다. 성전 안뜰에 가장 거룩한 곳에 있던 이들25명의 신분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 전체를 대표하는 24반열(班列) 의 제사장들과(대상24:1-19)대제사장을 포함한 숫자로 생각된다. 여하튼 이들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그들이 행한 의식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섬기던 페르시아의 태양숭배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이나 성소의 정문은, 범죄로 닫혀진 "에덴의 동편...생명 나무의 길" (창3:24)이 예수그리스도의 속죄로 다시 열리게 되었음을 표상 하여 언제나 동편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출27:13;민3:38;겔47:1)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성전을 정면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동편의 해를 등지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25명의 종교 지도자들은 반대로 동편 태양을 향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낮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한 것이다.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던 유대 여자들이나 동방 태양을 경배하던 25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이교의 의식을,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개념으로 행하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구태여 하나님의 전에서 경배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그러나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태양을 비롯한 "일월성신(日月星辰) 하늘위의 군상...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을 경배하며 섬길까"(신4:15.19)염려하신 하나님께 그것은, "투기와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하는 우상의 자리"(겔8:3)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신앙에 관한 한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지도자들을 따르기 마련이다. 신자들은 목사들을 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예배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별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겔22:26)음을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겔8:17)

정직한 부정 거래- 짧아진 자

여러 대를 이어 포목점을 경영하던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부인이 그 상점에서 십야드의 천을 사 가지고 가서 선택한 패턴에 맞춰 옷감을 재단하였는데 예상외로 천이 약간 모자랐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얼마 전에 새로 하온 자로 재어 보니 한치라 모자랐다. 부인은 즉시 옷감을 말아 쥐고서 다시 포목점 주인에게 가서 치수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몇 대째 정직한 상거래로 신용을 쌓아 왔는데요. 틀림없이 치수대로 드렸습니다. " 주인은 의아한 듯 언제나 사용해 온 대자를 집어들고 천을 펼친 후 자질을 했다. "보십시오. 정확히 십야드입니다" 어리둥절해진 부인은 급히 가서 집에 있는 새 자를 가져왔다. 다시 재어 보아도 틀림없이 한치라 모자랐다. 이번에는 부인이 가져온 새자 와 포목점 의 대자를 맞추어 보았다. "보십시오 쓰시는 자가 한치가 짧습니다." 참으로 한치가 짧았다. 그럴 수 없는 일 이였다.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가.? 규격(規格)미달의 불량(不良)자를 썼으니 얼마나 잘못된 상도덕(常道德)인가?그러나 사연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고조, 할아버지 등을 거슬러 대를 물린 이 포목점에서 써온자가 오랜 세월을 경과하는 동안 규격보다 조금씩 닳아서 결국 한치나 짧아진 것이다. 포목점 주인은 물론 선대의 어른들도 모두 정직하고 신용 있는 사람들 이였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동안 규격보다 조금씩 짧은 옷감을 재어 준 것이다.
잘못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것에 대해 하등의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일이다. 정직하게 몰랐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 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행17:30)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그 동안 모르고 짧은 자를 써 온 주인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한치나 짧은 자를 계속하여 쓴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명백한 도량형(度量衡)변조(變造)에 의한 불공정 거래가 될 것이다.

심판의 기별과 합당한 예배
위페(僞弊)가 아닌 진짜 돈을 진폐 (眞弊)라고 하듯이 위경(僞經)이나 외경(外經)이 섞이지 않은 참된 성경을 정경(正經)이라고 부른다. 정경을 영어로 "캐론"(canon)이라고 하는데 헬라어"카론"(kanon)에서 나온 말로 모두 매듭이 있는 "갈대"와 같은 "자 막대기"를 뜻하는 "규준"(規準), "규례(規例)(갈6:16)로 통용되고 있다.
그렇다. 성경은 그리스도인 신앙의 유일한 표준이요 옳고 그름을 가름하는 척도(尺度)이다.
더더구나 십계명이야말로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한 표준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판단하는 척도로 선언되었다.(약2:8-12;마19:16-19;롬13:8-10). 열 마디[節]로된 신앙의 척도인 십계명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본분인 예배를 명시한 척도 중의 척도인 안식일 계명이, 예언에 나타난 영적인 배후를 가진 세력에 의하여 변조된 채(단7:25;살후2:3-12), 중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일요일은 결코 안식일을 대신 할 수 없다. 어두움의 세력과 인간의 오랜 전통에 시달려, 달아서 거의 눈금마저 없어질 뻔한 넷째 계명이 지닌 영적 의미는 심각하다. 그것은 인간 역사가 마쳐지게 될 마지막 날의 심판에 결부되어 인간의 본분에 관한 순종의 시금석으로, 심판의 불가결한 척도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오랜 역사 동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배도 와 불순종으로 일관 해 온 땅위의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시는 복음이요. 경고인 요한 계시록의 세 천사의 기별에 불가피하게 포함된 것이다. 다음에 기록된 성경의 마지막 기별을 주시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분인 예배에 결부되어 안식일 계명에 포함되었는지 확인하기 바란다.

안식일 진리와 마지막 기별

*아래서 좌. 우편에 표시된 같은 기호는 동일한 의미 임을 나타냄


요약과 결론
이제까지 안식일 제도와 일요일 준수의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을 함께 살펴보았다. 이제는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는 의미에서, 아래에 이 두 날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고 있는 51개 사항을 대비(對比)하면서 이해와 판단을 분명히 하는데 도움을 사고자 한다.

성경일 말하는 제칠일 안식일과 첫째날 일요일에 관한 51개 사항 대비(對比)










잡초 밭을 지키는 근위병
이상에 열거한 51개 사항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제칠일 안식일과 첫째 날인 일요일을 대비(對比)하여 그 준수의 의의와 타당성을 살펴보며 다음과 같은 사화(史話)를 상기하게 된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한 젊은 황제가 어느 날 왕궁 밖의 정원을 거닐다가 볼품없는 들판에서 외롭게 보초를 서고 있는 근위병을 목도했다. 보잘것없는 가시 덩굴로 덮인 이 들판을 지키는 이유를 묻자 초병을 모른다고 대답했다. 젊은 황제는 궁중 사관(史觀)에게 그 이유를 찾도록 지시했다. 사유인즉 한 때 캐더린 황후가 이 곳에 널따란 장미 정원을 가꾸게 하고 이를 시민들에게도 공개했는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장미 넝쿨이 있는 한 지점에 근위병을 세워 지키게 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황후도 타계하고 장미 정원도 무관심 속에서 폐허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라온 왕실 근위대에서는 보초를 세워 이 장미 없는 잡초 밭을 뜻도 모르고 지키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위한 날로 친히 지정하시고 친수(親手)로 쓰신 불변의 도덕률인 십계명에 포함시키신 특유한 안식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이해(利害)관계에 얽매인 종교 지도자들의 고의적인 무관심과 냉대에 의하여 짓밟히고 쇠퇴된 십계명의 장미인 안식일을 대신한 잡초가 무성한 빈들을 뜻 없이 지키고 있는 러시아의 근위병과 무엇이 다른가? 계발된 신앙 양심과 냉철한 지성을 가진 그리스도인 들에게는 마음이 편한 수가 없는 일이다.

양심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
판 단 지금까지 진행된 안식일 제도와 일요일 준수에 관한 비평과 변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된 독자는 어떤 판단에 이르렀는가? 안식일 준수를 이단의 조건으로 삼아 비평한 분들을 비롯하여, 신분이 성직자이든, 장로, 집사 등 재직이든, 일반 신자이든 상관없이 지금은 "믿어 순종케"(롬 1:5, 15:26) 되어 구원에 이르러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여 할지 심사숙고해야 할 때이다.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마 15:3). 안타깝게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의미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어느 교파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보증이 성경에는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는 사도들의 담대한 신앙의 한층 마음에 사무치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인간의 본분이며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스스로 원하시는 방법에 의하여 예배를 받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레 10:1~3). 그러므로 예배에서 인간적인 모든 요소는 배제되어야 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요 4:23)고 계신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예배]하라"(계 14:7)는 기별은 진정한 예배를 요청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탄원이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예배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나의 구원이 가까웠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이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할 까닭도 더욱 분명해진 것이며,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사 56:1,2)는 보증은 확실한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참으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는 말씀은 진리이다. 진리 앞에서 괴로워하는 신앙 양심은 진리에 의해서만 영원히 자유롭게 될 수가 있음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