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의 찬송가 사용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총공회의 찬송가 사용


No, 36 이름: 궁금이 2003/8/22(금) 조회: 45
---------------------------------------------------------------------


답답한 마음

총공회의 말씀 중심의 예배를 옳다고 보는 사람 중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서는 말씀의 은혜를 받기 위해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며 뜨겁게(박수,악기사용)찬양을 먼저 합니다. 박수를 치며 손을 드며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성경에서는 언급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공회에서는 대다수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를 추려서 200곡으로 좁혀서 사용하고 있으며
찬송이 너무 맥이 빠진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정작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어려운 내용으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졸고 있습니다.
왠지 총공회 교회의 예배시간에는 어둡고 답답한 마음이 짓누릅니다.
밝고 즐거운 잔치집 분위기가 아니고 초상집 분위기 같습니다.


총공회의 재부흥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


No, 35 이름: 운영자 2003/9/2(화) 조회: 43
---------------------------------------------------------------


Re..답답한 마음을 동정하며

답답한 마음에 관하여

궁금이 님의 글을 읽는 중에 참 그 답답한 마음이 전해져서 동정이 가고, 매우 안타깝게 느꼈습니다. 몇자 적어 위로 하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1. 찬송에 관하여
찬송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신앙행위 입니다. 은혜 받는 것이 찬송하는 자의 일차의 목적이나 가치가 아닙니다. 은혜는 결과적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도 인간적 감정의 감흥이 은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바른 은혜입니다.

찬송은 자기 주관에 은혜가 되느냐 안되느냐? 가 일차 기준이 아니고 그 내용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찬송하는 것이냐 아니냐? 그 내용이 얼마나 성경적, 영감적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기준하여 올바른 찬송을 부를 때에 은혜는 따라 오는 것입니다.

공회 찬송이 맥이 빠진다고 하는 것은 세상적 감정에 익숙한 우리의 감정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뜻에 다름 없습니다. 또 그것은 찬송을 가사의 뜻을 중심하여 부르지 아니하고, 곡과 소리를 중심하여 부르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회 찬송은 어느 찬송 보다도 성경진리적이고, 영감적이기 때문에 이 가사에 뜻을 새기고 찬송하다 보면 인간적 감정이 사라지면서 성령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 이치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조용히 실행해 보시면 궁금이 님도 경험할 것입니다.

악기 문제는 구약에는 많은 악기를 사용하였으나 신약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습니다. 대신 시와 찬미로 서로 화답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제 초대교회의 예배도 극히 단순하고 절제 되어 진행되었고, 말씀 중심의 예배였던 것은 성경과 교회사가 보여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경험해 보면 많은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 자연히 찬송이, 껍데기인 곡과 소리 위주로 진행되고, 알맹이인 가사는 상대적으로 파묻히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것이 바로 속화입니다.

행위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찬송행위를 계속하다 보면 거기에 심신이 익숙하게 되고, 익숙하니 그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점 껍데기가 되어져 가서, 나중에는 설교말씀도 자연히 깊은 진리보다는 가벼운 생활교훈 위주, 땅의 복음 위주로 하여 따라가게 되어져서, 결국은 쭉정이 신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만
현 찬송의 곡수를 늘리자! 하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면을 볼 때 이 또한 다시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이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
찬송가의 음과 곡은 그 가사를 우리가 알고 느끼는 데에 돕는 역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찬송의 제일 껍데기는 소리요, 그 알맹이는 곡이요, 그 알맹이는 찬송의 내용, 곧 가사이다. 우리는 껍데기 보다 알맹이를 더 귀중히 여겨야 한다.
또, 가사의 알맹이는 자기 주관이라는 심신의 모든 요소가 전부 합해져 가지고, 그 가사와 하나 되어 찬송을 부르는 것이 그 알맹이요, 그러는 가운데 성령의 빛을 받아서 자기도 모르게 주님과 일체가 되어져서 주님의 형상으로 변해지는 것이 최종 알맹이다. 여기까지 이루어지는 것이 올바른 찬송이다. (84/05/09/집회, 새벽 설교 중 찬송에 대한 말씀 요약)

2. 설교에 관하여
교인들이 조는 것이나 은혜에 고갈되어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설교자 책임입니다.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목회자의 뼈를 깎는 충성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교인들의 책임적인 면에서 보면, 대개 껍데기 설교나 땅의 복음에 익숙한 분들, 말씀 구경에 익숙한 분들이 많이 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예배 분위기에 관하여
교회는 殺人所(살인소)요 救人所(구인소)입니다. 올바른 설교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살리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이 어떠하든 하나님 뜻대로의 올바른 설교말씀은 듣는 자에게 그러한 역사를 불러 일으킵니다.

따라서 옛 사람으로 팔팔하고, 기뻐하고, 살아 있던 자는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점차로 죽어지고, 기분이 가라않고, 심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싫게 됩니다. 그러나 참고 계속 들으려고 해 보면 차차 새 사람이 소성되면서 새로운 기운과 기쁨과 소망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배 중에 기분이 가라 않는 것도 은혜요, 기분이 솟아 오르는 것도 은혜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성도들은 실 생활의 대 부분을 옛 사람으로 삽니다. 당연히 예배 올 때에도 거의 옛 사람이 전부가 되다시피 하여 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게 되면 당연히 자기 전체가 깨지고 죽어지고 그 기분이 가라않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초상집 분위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자기를 멸망시키는 자기 안의 원수를 죽여 주니 은혜 아닙니까?

그러나 대 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를 구별하지를 못하고, 옛 사람의 기분이 가라않고, 죽어지는 여기에 당황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고는, 그만 거기에 머물고 말지, 참고 계속 들어 새 사람이 소성하는 여기까지 가지를 않습니다. 그 결과 옛 사람이 죽고 깨지는 경험만 하니 예배가 기쁨이 없고, 맥이 빠지는 것으로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옛 사람이 죽는 거기서 자기를 발견하여 회개하고, 연 이어 새 사람으로 소생되는 경험을 하여 결과적으로 죽고, 사는 것을 다 은혜로 받아 새 사람이 되어 교회를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바로 가르쳐서, 교인들이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의 은혜가 무엇인지, 설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바로 알아, 예배에서 옛 사람이 죽는 동시에 새 사람이 살아나도록 노력을 하고, 그러한 경험을 갖도록 인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일반적인 설교에는 옛 사람을 북돋아 주는 설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서는 이제 말씀드린 노력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던대로의 자기를 북돋아 주니 기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옛 사람에 속한 기쁨이니 사망의 기쁨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 글도 서툴고, 또 말로 다 이해되고 알아지는 문제가 아니니, 많이 기도하셔서 영감을 받아 깨달음에 이르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No, 34 이름: 익명 ( 남 ) 2003/8/29(금) 조회: 39
---------------------------------------------------------------------

Re..답답한 마음

저또한 여기에 조금은 동감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손뼉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교회가 얼마나 좋은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흥에겨워 노래부르고 찬양하는것이...
제가 이런교회에서도 조금은 신앙생활을 해봤습니다만...
총공회내 대구공회나 서울공회에서는 예배전에 악기도..무용도 ...혼합하여 사용합니다
손뼉치고 찬양하다보면 그기에 지쳐 정작 설교시간에는 졸게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설교또한 깊이 있는 설교가 되지 않는것이 사실이구요.
제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총공회 예배형태가 경건한 신앙생활 하기에는 아주딱입니다.
누구나 알고있는 상식적 세상도덕교육정도...
이런분위기의 설교는 손뼉치지 않고 탭버린 악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졸리지 않고 귀를 즐겁게해 줍니다.
다만 저또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예배용 찬송가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생전에 일단 가장 많이 은혜롭게 부를 수 있는 찬송가 몇곡을 선정하여 예배용으로 활용하고 이후에 차즘 정식찬송하를 공회차원에서 개선하자고 한것이 이후에 개선할 수 없는 여건이 되어버려 지금의 주일학생들은 201곡 외에는 알지도 못할뿐드러 찬송이 아닌것으로 알고 있어 총공회가 한국의 조선예수교의 맥을 이어가기에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젊은 학생들은 변화가 심합니다.
이러다가 총공회의 부흥은 어디로 갈런지를 교역자님들께서 시급히 깨닳아 하루속히 지금의 찬송가를 기본으로 더많은 찬송가가 불려지기를 부탁드립니다.
통일찬송가의 가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것이 사실이나 이전에 우리총공회에서 사용하였든 새찬송가를 더많이 보충하여 새로운 찬송가가 나왔으면 정말정말 좋겠습니다.
총공회의 부흥과 자라나는 주일학생들의 앞날의 신앙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