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 [교계실상]
분류: 소식- 교계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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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시위때마다 「장외」서 교사
대학가와 노동현장의 좌경화를 조종해온 소위 「민주화 추진위원회」를 배
후에서 고무.격려해온 인물은 재야불순단체로 규정된 「민주화 청년운동연
합」(약칭 민청련)의 전의장 김근태씨(38)로 29일 밝혀졌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이 고향인 그는 지난 72년 2월 서울대 경제
학과를 졸업한뒤 8년동안 일신산업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인천도시 산업선교
회의 노동상담 업무를 맡아왔다.
그가 평소 급진적인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빠져 근로자등 사회하부 계층의
민중이 주체가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몰두해온 것은 그의 성장환경에
영향을 받았다는게 검찰의 분석이다.
김씨는 세형과 숙부.숙모.외숙모.외사촌형등 가까운 가족과 친척들이 월북
하거나 처형된 가정에서 태어났다.
김씨의 가족친척중 월북한 사람을 보면 ▲큰형 김흥태(62)가 일본에서 대
학을 졸업한후 귀국, 해방후 좌익활동을 하다 월북했고 ▲둘째형 성태(57)
는 서울문리대 재학중 좌익활동을 하다 6.25발발후 월북했으며 ▲세째형 영
태(52)도 양정중 5년재학중 의용군에 입대, 월북했다.
또 김씨의 숙부 김진항(59)은 서울대 재학중 국대안 반대투쟁을 주동, 49
년10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중 6.25때 탈옥,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하는등 극렬한 좌익운동을 벌이다 9.28수복때 처 윤경희와 함께 월북했
다.
이밖에 외사촌형 이재창(55)은 6.25당시 영등포 내무서 대방동 분주소에서
강제모병등 부역중 월북했고 외사촌형 이재욱(52)은 6.25당시 경기도 화성
군 마도면 당연락책 등으로 부역중 월북했다.
김씨의 외숙모 유영열(75)은 6.25당시 여성동맹에 가입, 활동하다 9.28수
복때 수원 팔달산에서 처형됐고 장인은 6.25당시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인
민위원장으로 부역했으며 처이모부 나병래(65)도 교동면에서 부역하다 월북
했다.
이런 가정환경속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국가와 사회에 대한 혐오감과
저항의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고3때부터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가햇으며 대학시절엔 줄곧 과격한
학생운동에 앞장서 제적.복학을 거듭했던 것도 성장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수사관들의 풀이다.
김시는 그의 이상인 사회주의 혁명의 실천을 위해 지난 75년이후 가정교사
번역등 자유업에 종사하면서 과격한 사회노동운동 투쟁을 본격화 해왔다.
그가 만든 서기 2천년까지의 「평생노동계획표」는 81년에 노동자 농민의
정당인 사회주의 정당을 주도한다는 허황된 꿈이 기록되어 있다.
김씨가 민추위의 대부가 된것도 그의 헛된 꿈의 실현을 위해 「노.학연계
투쟁」의 하나로 서울대생이 주축이 된 민추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용공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꾀하는 방편이었다는게 당국자들의 지적이다.
김씨는 대학4학년때인 71년 친구의 부모가 「수상하니 조사해달라」고 경
찰에 탄원서를 보냈고 이웃주민도 「빨갱이같다」고 성북서장에게 진정했으
며 졸업직전에는 대학교무과 직원이 「김의 사상을 조사해달라」며 경찰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는 사실은 그의 성향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