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신학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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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신학 문제


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0/09 조회 : 590

詳述1



첨부파일 : 신학위원회 소명서(1).hwp

순서대로 하자면
사건의 시작부터 말해야 하지만
newsjoy를 읽을 수 있으니까
최종 설명서만 보아도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9/22 사태
그 시덥잖은 사건은 설명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은 커녕 질문 한 번 없이 결론을 도출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파일로도 첨부하고자 한다. (첨부가 잘못되어 인식되지 않음을 양해바람)


소 명 서

2004. 8.2

수신: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신학위원장
참조: 신학위원
발신: 이성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제목: 이승미 교수의 총회 고소와 관련한 소명의 건


1. 이승미 교수가 인터넷 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근거로 본인에 관하여 제기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혀 드립니다.

2.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 우리 사회는 전 국민을 편가르기로 분열시키는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 대신 분열을 정치를 펴고 있음을 직시하면서도 우리 교단의 일부 인사들 역시 이러한 편가르기에 돌입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학위원회는 권력과 언론을 동원하여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 일어나는 어려운 한국적 상황에서, 올바른 가치를 상실하고 혼란에 빠진 세상을 향하여 생명과 자유의 복음을 전하고, 그 원색적 복음에 입각한 건강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통해 세상을 주께 굴복시켜 하나로 엮는 일에 우리 교단의 모든 지도자들이 함께 몰두할 수 있도록 선하게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려신학대학원 부교수 이 성 구


이승미 교수가 열거하는 주장에 대한 반론

1. 전제 1: ‘뉴스 앤 조이’라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에 대한 시비 자체의 문제

이승미교수는 인터넷 매체가 실은 짧고 요약된 기사를 두고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바, 신학적 논쟁은 분명한 저술 (책, 학술잡지에 게재된 논문, 일정 기준을 갖춘 일반잡지 등)을 근거로 하여 제기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내용을 아무리 잘 담고 있더라도 신문은 어디까지나 신문기자의 글일 뿐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같은 이슈를 두고서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은 그 다루는 논조가 정반대인 것은 사건자체 보다 기자의 입장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본인에 대한 신학을 비판하면서 정론지도 아닌 인터넷 신문을 근거로 사용한다는 자체가 센세이셔널리즘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신학사상을 문제 삼으려면 분명한 신학적 진술을 담은 저술을 근거로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향후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점에 관하여서는 본인의 입장을 여러 방법으로 발표할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기된 문제인만큼 의문에 대하여서는 간략하게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전제 2: 신대원 교수회의 결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는 두 번에 걸쳐 이승미교수에게 정확한 질문을 제기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에 불응하자 총회제소 취소를 권고하도록 결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승미 교수는 교수회에서도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였습니다.

2. 이승미 교수는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1) ‘한국장로교 안에는 자유주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본인의 주장에 대한 이의
2)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는 주장에 대한 이의
3) 사도신경 외의 ‘나머지 고백들은 사변적 신학이다’는 주장에 대한 이의

세 가지 이의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3. 위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1) ‘한국장로교 안에는 자유주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의 근거
먼저 기사내용을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간결하게 줄였지만 비교적 본인의 의사를 잘 옮겼다고 봅니다.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러면 왜 자신이 자유주의자로 몰리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1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유주의란 특정신학이나 고백에 종속되지 않고 시대에 맞게 적절하게 신학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인간중심적으로 흐르는 등 끝이 좋지 않았을 따름이다. *2 크게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거나 성경을 부정하는 자가 자유주의라고 해야 한다. *3 그런 맥락에서 나는 물론 한국장로교 안에는 *4 자유주의자가 없다고 할 수 있다.

① *1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확인해야 한다’고 한 것은 자유주의란 용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고, 제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확인해야 한다’는 말은 본인인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다시 정확한 의미 규정을 하자 것임에도 이승미교수는 본인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를 벗어난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② *2는 대부분의 고신 목회자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자유주의에 대한 기본적 정의(定義)입니다.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십자가, 부활, 재림, 성경 무오설 (기자는 일련의 설명을 간단하게 두가지로만 표현함)등을 부정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에 대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는 자유주의란 용어를 두고 광의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대부분 협의의 의미로 고착되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일단 내리고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다른 의미는 다룰 수 있는 상황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③ *3 이 중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라는 조건적 표현은 ‘위와 같은 정의에 동의하고 따른다면’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인양성, 성경 무오 사상과 같은 기본적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 자유주의라고 한다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definition)가 달라지면 뒤의 설명도 달라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④ 기본적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 자유주의라는 것을 전제하면 *4의 표현대로 한국장로교회에는 공적으로 (이 말을 빠뜨렸음) 자유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저의 생각입니다. 한국 장로교회 어느 교단도 공적으로 위의 기본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을 용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장로회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장로교회는 우리 교단도 가입하고 있고, 최해일 목사님이 대표회장직에 출마한 적도 있으며, 오성환목사님이 유사종교위원장, 박종수목사님이 일치위원장을 지내신 적이 있는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한기총)’의 회원교단입니다. 어느 교단도 자유주의 교단으로 지칭된 적이 없습니다.
한기총 산하의 "한국장로교연합회", "장로교정체성회복위원회’나 ‘장로교신학회’는 고신 합동 통합 기장 등 전통적인 장로교 4대 교단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승미 교수는 ‘기장(基長)’을 염두에 두고 자유주의 운운하는 것 같은데, 현재 과연 기장을 자유주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지 먼저 그것을 총회가 규정지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혹시 개인적으로 자유주의적 신학을 가진 학자들이 있을 것이고, 신앙의 색깔이 다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신학을 교단이 정통으로 인정하거나 공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소수일 뿐이고 그 교단은 그 소수 의견도 용납하고 있다는 정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단이 공적으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한 적이 있다면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제가 식견이 좁아 알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이 말은 잘못된 것으로 철회할 수 있습니다.

⑤ 결론/ 본인은 앞서 제가 명백하게 지적한 신학적 자유주의는 용납하지 않으며, 그렇게 용납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승미 교수가 글을 미쳐 정확하게 읽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 교수회는 이러한 사실 때문에 정확한 질문을 하도록 요구하였고, 결국 두 번씩이나 교수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총회 제소건을 철회하도록 권고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2003년 12월 - 2004년 6월 사이의 교수회의록을 참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는 주장의 근거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합과 일치의 전제조건으로 고백일치가 전제 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 나머지 고백들은 사변적 신학이다. 완전주의적 분파주의는 잘못이다. 교단신학자 중 그런 입장을 가진 이가 있는데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기자가 지나치게 줄여 오해를 사게 할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인이 진술한 정확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각 교파와 교단을 하나의 교리나 장정으로 묶는 일치에 관해서는 논의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일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의는 연합에 그치고 있다. 일치는 각 교파간 먼저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다음 같은 교파내의 교단들이 일치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연합이란 각 교파와 교단이 각자의 신학적 특색과 강조점을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하나로 나서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회를 대할 때라도 ‘하나의 기구’로 나설 수 있는 ‘연합기구’에 관한 논의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형편이다. 교계의 신문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박종수 목사님이 한기총 일치위원장 자격으로 이 논의에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18인 위원회’ 회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고, 나는 그 실무를 준비하는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실무9인 위원회‘ 서기를 맡고 있다. 이런 교회의 연합을 논하는 데는 세계교회의 대표적인 고백인 ‘사도신경’을 같이 고백할 수 있으면 고백공동체로서는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대충 이것이 본인이 발언한 전체 내용이었습니다만 긴 내용이니까 짧게 기자가 정리하다보니 조금 억양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최근의 교회연합에 관한 교계기사를 본 적이 있는 학자라면 오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사도신경에 관하여서는 우리 신대원에서 가르친 적이 있는 화란의 선교사교수 고재수 교수가 쓴 ‘교의학의 이론과 실제’에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사도신경을 확대 설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에는 교의학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속죄론, 육체부활, 영생)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관한 항목만 빠져 있는 느낌입니다. 성경에 관해서는 이미 인터넷 신문조차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이면 족하다는 본인의 견해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신학위원회가 지적해 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개체 교회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였습니다. 도대체 개체 교회가 교회회원을 받아들이거나 세례를 베풀면서 교리를 가르칠 때 사도신경 외에 무엇을 요구하고 가르치는지, 사도신경보다 더 우수하고 간결한 교리 교재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목회할 때 사도신경을 고백할 수 있으면 세례를 베풀었고, 교회회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교단의 교회들이 다른 어떤 고백을 회원의 조건으로 요구하는지, 제가 모르고 있는 어떤 헌법적 규정이 있는 알고 싶습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교리문답 (소교리, 대교리 등)은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메꾸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도대체 사도신경에서 어떤 것이 고백으로서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인지 이승미 교수는 분명히 해 주었으면 합니다. 자신이 문제를 제기했으니 신학위원회는 이교수에게 사도신경으로 부족한 고백이 무엇인지 설명을 받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3) 사도신경 외의 ‘나머지 고백들은 사변적 신학이다’가 의미하는 것
다시 기사를 봅시다.

- 연합과 일치의 전제조건으로 고백일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 나머지 고백들은 사변적 신학이다. 완전주의적 분파주의는 잘못이다. 교단신학자 중 그런 입장을 가진 이가 있는데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머지 고백이 사변적이라고 한 것은 ‘교회 연합’을 두고 말하고 있음을 기자의 질문자체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단순한 연합을 위해서는 사도신경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기자가 많이 생략하고 옮긴 것입니다.
“교회 일치에 관한 것이 아니고 앞서 말한 바 있는 ‘교회 연합’을 말하면서 사도신경 외에 다른 교리나 고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연합하지 않으려는 빌미를 찾기 위한 사변적인, 즉 순전히 이론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칼빈은 ‘완전주의적 분파주의는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신앙을 완전하도록 지키기 위하여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마귀적이라고 몰아부친 것이 칼빈이다. 그만큼 교회의 분열을 칼빈은 싫어하였다.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분열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교리와 고백을 들먹이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 한 것을 기자는 몇 자로 줄였다고 봅니다. 인터넷의 특성상 기왕의 기사도 이미 많이 길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싶습니다. 이런 본인의 주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말씀해 주시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할 것입니다.

이승미 교수는 본인의 이러한 표현을 칼빈주의 성경관 신론 인간론 기독론 종말론 교회론을 부정하는 증거라는 자의적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본인은 사도신경 속에 이 모든 칼빈주의 신학이 들어있고, 앞서 언급한 교의학을 가르쳤던 고재수 교수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승미교수는 또한 로마카톨릭교회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니 그들과도 연합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니 자유주의자 아니냐는 주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사 어느 곳에도 로마교회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추론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만약 로마교인 가운데서 사도신경을 정확하게 신실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기회가 주어지면 개신교로 개종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그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 개신교, 고려파에 속한 것이 구원의 절대조건일 수 없듯이, 로마교회에 소속되었다는 것이 멸망의 절대조건일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로마카톨릭교회 신학자인 ‘한스 큉’의 교회론을 정통한 것으로 자주 인용하는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공간의 제약으로 詳述 2에서 계속)



4. 그 외의 부수적인 질문들 (본인의 대답을 빌미잡은 질문들)
1) “(나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한국장로교회 분열의 시발점이 된 고신 교회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선봉에 서야한다고 믿고 있다.”고 한 말을 두고 “고신교단이 교단분열의 결자라는 말은 고신파가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뜻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문제

본인은 정확하게 이런 질문을 이승미 교수에게 던졌습니다.
“나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한국장로교회 분열의 시발점이 된 고신 교회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교회연합과 일치 운동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믿고 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신학은 언어로 행하는 학문 행위입니다. 따라서 용어가 정확해야 합니다. 먼저 다음 사실을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① ‘고신이 장로교 분열이 시발점’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고신이 세워지기 전까지 장로교는 하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② 이승미 교수가 인용에서 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라는 전제는 빼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 말은 분열의 이유를 우리와는 다르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어떻게 분열의 이유를 주장하더라도’ 장로교 분열의 시발점에 서 있는 것이 우리 고신이므로 우리가 새로운 역사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적극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③ 이승미 교수는 이어지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라는 말을 “고신교단이 교단분열의 결자(結者)라는 말은 고신파가 교회를 분열시켰다는 뜻이다”라고 마음대로 단정짓고 있습니다. 본인은 고신을 결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터넷기자가 썼어도 제대로 표현을 옮겨놓았는데, 신학교수가 곡해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자’와 ‘결자해지의 심정’은 뜻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맺은 자가 먼저 푼다는 심정으로’라는 말은 ‘우리가 맺지 않았지만 그와 같은 심정으로’ 접근하자는 말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옮기면 이런 뜻입니다.

‘다른 교단들이야 우리가 분열시켰다는 주장을 펴겠지만 그 이유는 다음에 따져 묻기로 하고 (그렇게 하면 싸움만 일어나고 효과가 없으므로), 지금은 교회의 연합 문제를 다루는 시점인 만큼 제대로 역사를 이해한다면 우리를 잘라낸 교단들은 차마 부끄러워 우리 더러 함께 하자고 하기가 어려운 일이니 오히려 당한 우리가 나서서 다른 교단들을 연합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이 일을 쉽게 푸는 방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이 말을 할 때의 제 심정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손해를 본 사람이 손을 털고 일어서 손을 먼저 내밀면 상대는 부끄러워서라도 거부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에는 그 동안 지나치게 모든 일에 소극적으로 나선 교단을 향하여 한국교회 역사의 전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른 교단은 ‘고신교단’에 대하여 막연하나마 빚진 자의 심정을 갖고 있음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연합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요, 자신을 내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거저 ‘하나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첫 걸음일 뿐입니다.

2) 교단의 결정에 대한 본인의 반응에 관한 주장
이승미 교수는 본인이 교단 총회가 자유주의자로 결판지었으니 그 결론에 순종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총회의 결정을 부정하니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아직 총회의 결정이 최종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지난 신학부의 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온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① 본인은 신대원 논문심사위원회 -> 인사위원회 -> 교수회 -> 이사회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임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53회 총회는 한 사람의 이의 제기를 받아 그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비정상적인 결론을 내렸으며,

② 51회 이후의 총회는 50회 총회가 이미 내린 결정 (“이성구교수는 3년 내에 아모스 주석을 써서 이해케 한다”)을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고 재론을 시작하였으며,

③ 헌법 권징조례는 범죄한 피고에 대해서도 ‘이의서를 제출할 수도 있고’(제21조), 변호인을 선임 할 수도 있어야(23조) 함에도 불구하고, 성경해석 방법론에 관한 이의가 제기된 본인의 논문에 관하여 단 한번도 이의서를 제출할 기회를 부여하거나 변호인을 선임하게 하거나 혹은 본인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범법한 경우보다 더 혹독하고 엄청난 결론을 내렸으며,

④ (목사회원들과 같은 수준의)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인 장로 총대가 절반을 차지하는 총회에서 신학적인 문제를 표결로 처리하는 것은 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성경해석 방법론에 관한 문제는 표결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⑤ 53회 총회의 결론은 논문을 검토케 한 두 교수의 결론 (물론 두 교수의 결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많이 담고 있음)과는 전혀 다른 제 3자, 즉 신학부 실행위원 중 일개인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점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일이며,

⑥ 제50회 총회 결론을 내릴 당시 49회 총회 당시 신학부에서 화란 자매교회와 또 다른 교회의 구약학자들로부터 소견서를 받고서도 내어 놓지 않은 정황이 포착되었고, 남아공 포체프스트롬의 구약학 교수는 전혀 문제가 없으므로 아예 소견서를 보내지 않았다는 증언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며 ( 부산노회 권경호 목사가 증인임),

⑦ 화란의 두 구약학자 역시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증언한 사실이 드러났고 (화란에서 수학중인 이세령 목사 증언),

⑧ 총회의 결론은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정치문답조례가 인정하는 사실이고, 실제로 신사참배를 결정한 1938년의 장로교 총회 결정, 고소가 성경적이라고 결정한 고신 총회의 결정 등은 잘못 되었음이 드러났고,

⑨ 본인은 논문의 영어 원본과 번역본, 그리고 주석서 등 3권의 책을 동시에 발간하여 지난 총회의 결정이 잘못 되었음을 밝힐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⑩ 지금이라도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본인의 논문에 관하여 토론을 요청하면 응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총회의 결정에 오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와 사실이 진실을 입증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5. 결론적 요약
이승미 교수가 인터넷 신문과 관련하여 직접 제기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한국교회 안에는 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십자가 구원, 육체적 부활, 영생, 성경의 무오 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교회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지식과 경험으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증거가 있다면 위의 말을 취소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자유주의에 대한 개념은 위와 같습니다.

2) 각 교파와 교단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사역을 함께 하는 ‘교회 연합’에 관한 논의를 함에 있어서는 사도신경 고백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함께 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교회 일치의 문제를 논의할 때는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사항들 - 정치구조, 의식(儀式), 직제(職制), 교제의 범위 등 -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위와 같은 교회 연합을 논하면서 사도신경의 고백 이외의 다른 신학적 이유를 거론하는 것은 교회연합을 방해하는 사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사실상 이미 전국 각 지역에서는 신학을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우리 교단을 포함한, 이단이 아닌 모든 교단간의 교회연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습니다.
]
수고하시는 신학위원장과 위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려신학대학원 부교수 이 성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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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0/11 조회 : 259

총회 결정과 추론의 한계1



제54회 총회의 결정에 대한 반론
주후 2004년 10월 11일
제출자/ 고려신학대학원 이성구 목사

1. 제54회 총회의 정확한 결정사항의 기독교보 보도를 통한 공개화
기독교보의 기사에 따르면 이성구 교수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신학적인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을 넓게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고신 교회가 공식적으로 받은 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을 부정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3)WCC적 교회 일치운동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교단의 존립 가치와 정당성을 부인한다고 볼 수 있다.

2. 입장 표명의 이유와 반론
이 기사는 개혁주의 신학의 본류에서 자라 지금까지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입각하여 학원과 국가와 세계의 복음화, 개혁주의 교회의 건설을 목표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본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므로 향후에 진행될 본격적인 논쟁과 법적 조치에 앞서 일차적으로 간략하게 본인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지난 날 필자가 제기되는 의혹에 침묵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한 편의 보도만 접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음을 수없이 목도해 왔다.

1) 우선 총회의 결정은 네 개 항목 중 세 개 항에 걸쳐 "볼 수 있다"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 자신들의 결정이 정확한 증거가 아니라 막연한 개연성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볼 수 있다’는 주장은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반대의 주장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그런 주장은 반드시 검정을 받아야 하고, 반대 논리를 부를 수 없음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의 말에 자신이 없고, 은연중에 자기주장에 대하여 최종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보고서를 작성한 신학위원회조차 반신반의하는 주장을 근거로 한 보고를 대하면서, 관련 당사자의 견해 한 번 청취하지 않고 보고를 받아들여, 한 신학자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명예를 실추시킨 신학교육부나 총회의 결정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정죄하고 단죄하려면 상상이나 추론, 혹은 작성자 자신(들)의 전제(前提)나 자기만의 관점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자기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신학위원회가 정확한 재판관 노릇을 하려면 객관적이고 증명 가능한 원리를 따라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일이지, 고신 역사상 가장 폐쇄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이제는 역사의 과거에 속하는 한 은퇴교수의 그야말로 사변적(思辨的 -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 순전히 이론에 의존한 논리 (쉽게 한컴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라) - 인 이론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정당성을 내세우기 어렵다.

2) 총회 신학위원회가 본인을 신학적 자유주의를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지은 것은 순전히 "자유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간과하고 있다.

신학위원회 내부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위원(혹 위원들)은 고신 외에는(혹 고신과 전통적으로 강단교류가 가능한 것으로 말해온 합동측 정도- 물론 지금 강단교류는 당회 소관으로 위임되어 있다) 모조리 자유주의 교회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에, 본인은 복음진리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것을 자유주의라고 간주하고 있다. 과연 50년 전이 아니라, 현재 한국 교회, 보편적인 신자들이 자유주의라고 말할 때, 그 개념의 보편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신학위원회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무엇이며,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그 주장의 보편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옛 시대에 속하거나, 혹은 오늘에 살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오늘의 문제를 논하는 현재의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고루한 사상에 젖어 있는 사람의 견해가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개념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두고 본인을 아예 자유주의자로 매도하거나 ‘넓게 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행위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악의성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허박사, 오박사 혹은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신학위원회가 말하는 자유주의 개념은 그들에게는 정답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보편성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 필자가 아는 한 이런 주제에 관하여 본 교단의 학자가 정확하게 논의를 진행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특히 이 분들은 5,60년대에 신학을 공부하고 고신과 여타 한국 교회의 중요한 분열 현장을 목도한 경험을 갖고 있어, 그 시대의 경험을 근거로 신학사상에 대한 인식의 틀을 만들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고, 본인과 같은 세대는 전혀 그러한 상처가 없는 시대를 살아 그들과는 다른 역사 인식의 틀을 갖고 있는 차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3) 신학위원회는 본인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경시내지 부정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단정하는 결정적인 우를 범하고 있다.

유일하게 네 개 항목 가운데 이것은 단정적 결론을 짓고 있다. 단언하건데 나는 사도신경 외에 다른 고백을 경시하거나 부정한 경우가 없다. 이 항목은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마치 결정적인 증거라고 되는 것처럼 독자를 호도하고 있다. 신학위원회와 총회는 이 결론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주장이 허위사실이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세속법정에라도 서야 한다. 주장에 확신이 있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섣부른 자기방식의 추론은 학문적 토론에서 금물이다. 본인이 인테뷰에서 사용한 ‘사변적’이라는 표현을 두고 내린 결론인 것으로 보이나, 본인이 사도신경외의 다른 고백을 "사변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남이 하지 않은 말을 함부로 지어내는 것은 죄다. 본인은 소명서를 통해 고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도 자신의 추론에 맞추기 위하여 남이 하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입에 집어넣고 있다. 소명서를 다시 보자.

“여기서 나머지 고백이 사변적이라고 한 것은 ‘교회 연합’을 두고 말하고 있음을 기자의 질문 자체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단순한 연합을 위해서는 사도신경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기자가 많이 생략하고 옮긴 것입니다.”

“교회 일치에 관한 것이 아니고 앞서 말한 바 있는 ‘교회 연합’을 말하면서 사도신경 외에 다른 교리나 고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연합하지 않으려는 빌미를 찾기 위한 사변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칼빈은 ‘완전주의적 분파주의는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신앙을 완전하도록 지키기 위하여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마귀적이라고 몰아부친 것이 칼빈이다. 그만큼 교회의 분열을 칼빈은 싫어하였다.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분열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교리와 고백을 들먹이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본인은 웨스터민스터고백을 입에 담은 적도 없고 부인한 적도 없고, 경시하거나 부인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신대원에 교수로 부임하기 전 목회를 할 때는 다른 목사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웨스트민스터 고백서를 교회에서 가르치며 살았다.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 교회 일치가 아니라 "교회연합" 정도를 말하면서 사도신경 외에 다른 고백을 빌미로 삼는 것은 순전히 사변적(思辨的 -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 순전히 이론에 의존한 논리(한컴 사전에서라도 금방 그 뜻을 다시 찾아보라) - 일 뿐이다. 연합의 현장에 한 번 가보라. 부활절 연합예배, 각 지역 성시화 운동, 각 지역의 초교파 기독교연합회의 기본적 연합의 근거, 나아가 각 교회의 새 신자, 새 가족들을 받아들이는 교리적 원칙을 생각해 보라.
구원을 확증하는 외부적 표식인 세례를 베풀 때까지 교회가 행하는 교육과정이 무엇인가? 우리 교단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가 새 신자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가? 타교단에 소속했던 새로운 교인을 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교회, 어느 목회자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회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가? 필자가 사변적이라고 함은, 신학교수들이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현실과 상관없이 순전히 탁상에서의 교리적 이론만 까다롭게 제기하여 공연히 교회 연합운동을 기피하거나 지연시키거나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승미 교수는 처음 본인에게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족하다고 말하는 것을 트집 잡았다. ‘그렇다면 사도신경 고백하는 어느 교회와도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인가?’ 라며 본인을 자유주의자로 몰아갔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사도신경 고백의 문제는 사라지고 이제는 본인이 언급해 본적도 없는 웨스트민스터 고백을 부인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말꼬리를 돌리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나는 사도신경이 교파를 달리하는 모든 신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고백의 표준으로 충분하다는 판단이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교의학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화란 31조파 교회의 선교사로 고신에서 가르쳤던 고재수 교수는 그의 "교의신학의 이론과 실제"라는 책 244-5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많은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신앙의 내용을 제시한다. 한 예를 들자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원형은 제1장에서 계시를 다룬 뒤 제 2장에서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론을 다룬다. ...물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사도신경이 언급하지 않는 주제도 나오고, 또 간단한 사도신경보다 기독교신앙의 내용이 더 폭넓게 설명되어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그 내용을 사도신경의 지시를 따라 설명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도신경은 교의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칼빈이 기독교 강요라는 그의 명저를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까지 개혁교회의 교의학은 바로 그 순서에 따라 신앙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화란 개혁주의 교의학자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의 지시를 따라 설명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칼빈의 강요가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썼다고 하지 않는가? 개혁교의학이라는 것이 바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랐다고 하지 않는가? 사도신경의 고백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배치(背馳)된다면 내릴 수 있는 판단을 나의 주장에 적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다음에 계속 - 앞서의 내용을 약간 개정하였음. 10.11)



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0/11 조회 : 158

총회 결정과 추론의 한계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관련하여 놀라운 사실 하나는 우리 교단이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70년대(72년?) 들어와서라는 사실이다. 그 이전까지는 인도 장로교회의 12신조를 사용하였다. 물론 지금 우리는 무슨 연유인지 인도 장로교회와 연합하고 교제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어쨌거나 그렇다면 우리 교단은 70년대 초반까지 우리 스스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경시하며 부정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 아닌가?

이와 관련하여 모 신대원의 교의학 교수는 "우리 교단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인 것은 외국교회의 원조를 받기 위함이었다"고 공개적으로 혹평하기까지 하였다. 과연 우리에게 17세기에 영국에서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우리 교단이 신학적으로 고백의 부족을 느끼고 고민하다 채택하여 우리의 고백으로 삼도록 노력하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고백인가? 말로만 절대적 표준이 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의 신학을 자유주의로 매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일생동안 그 고백서를 한 번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대부분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되는가?

도대체 사도신경을 연합운동의 기초적 근거로 충분하다는 나의 주장이 어떻게 다른 고백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단정 짓는 근거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정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학문은 논리성을 기본으로 한다. 논리는 합리성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허순길박사나 신학위원회가 자신들이 단정하는 결론이 함의하고 있는 바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허박사가 왜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는지는 허박사의 추론 방법보다는 훨씬 더 사실에 입각하여 다음에 좀 더 길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물론 오박사와 이박사의 논리상 문제점도 감히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도신경이 교회 연합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을 우리 교단이 역사적으로 이미 정리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1977년에 열린 제27회 총회는 "타 교단과의 연합집회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단과는 가지기로 가결하다"고 결의한 바 있다. 1977년에 이미 사도신경 고백 여부가 교단 연합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총회에 결의에 반(反)하는 이승미 교수의 문제제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신학위원회의 소견은 총회의 결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근원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신학위원회는 본인이 WCC적 교회일치 운동의 이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넘겨짚고 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교회 일치에 관하여 그 어디에서도 정식으로 논의를 하거나 준거를 제기한 적도 없고, 그 어느 기구에서도 교회일치의 정책을 제안한 적도 없다. 나는 교단이 공식적으로 관여하는 연합운동과 관련한 기구에 활동한 적도 없다. 나는 구약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WCC가 어떤 일치의 원칙을 세우고 있는지 공부를 해 본적이 없고 그를 기회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바를 주장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위의 신학위원회의 주장은 철저하게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인터넷 기사에 실린 것도 아니고 교수회의 논의 가운데 주고받은 말을 기록한, 전적으로 내부 토론용 페이퍼에 왜 우리 교단은 각국에서 제일 작은 교회들의 모임에만 참여하고 "세계개혁교회연맹" 같은 세계적인 단체와는 교류가 없는가를 물은 점을 두고 단정하는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외부 발표를 위한 다듬은 글이 아니라 내부 토론제안용의 문건 속에 개혁주의교회들의 세계적인 연맹에 우리가 붎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말하는 개혁주의와 다른 교회들이 말하는 개혁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 손으로 철저하게 살펴, 오늘 우리가 취할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수십년 전의 선배들이 내린 판단이 과연 오늘도 정당한 것인지를 따지고 살펴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다. 세계교회의 연합운동은 2차 대전후와 7,80년대에 벌어진 세계적인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는 것은 누구나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는 일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우리 교단이 언제까지 소위 화란 31조파 교회와 연관된 세계 몇 곳의 화란아류의 교단들과만 교제해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어왔다. 과연 세계교회와의 연대에 대한 교리적 실제적 기준은 무엇인가? 목사 안수 받은 지 21년이 되었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필자로서도 전혀 그 기준을 알 수가 없다. 배우고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교수회에서 ‘고신 제3세대에 해당되는 우리 세대로서 교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전제들에 대하여 교수회 내부에서 토론해 보기’를 제안하였고 이승미 교수가 본인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바로 그 교수회에서, 교단 정체성에 관한 토론을 본인과 최덕성교수의 발표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가지도록 정식 결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있은 직후에 이승미 교수는 교수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인터넷 기사를 근거로 본인을 자유주의자로 총회에 고발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런 과정 중에 있던 사안을 두고 내가 WCC의 일치운동에 관한 어떤 이론을 말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된지 21년이 되었고, 신학박사학위 과정을 공부하고 목회하고 가르친 지도 14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 번도 "에큐메닉스" 같은 과목을 공부해 본 적이 없다 (70년대 초반 잠간 그러한 과목이 개설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교단에서도 1977년 1CCC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된 것을 총회 회록에서 간략하게 확인할 수 있을 뿐, 세계교회와의 연합 문제를 (세계적 기구의 가입과 교회일치는 동일하지 않다) 진지하게 논의하거나 그 결과를 교회가 알 수 있도록 발표한 것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 2차 대전이후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다시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을 외쳤던 SFC 세대로서 세계교회에 관한 관심을 가지고, 신학교가 토론의 주체가 되기를 주장했던 것뿐이다. ‘세계개혁교회연맹’에 관한 언급은 심각한 의도로 제기했다기보다는 사도신경 고백을 연합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본인의 주장을 자유주의로 매도하기 때문에 평소에 가졌던 의문을 바탕으로 공세적으로 제기했던 주장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WCC적 일치를 주장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가? 도대체 WCC적 일치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부터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정죄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WCC는 최초에 스코틀란드에서 선교현장에서 교파선교의 폐해를 막고 함께 협력하여 선교하기 위한 논의를 위하여 열린 모임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알고 있는 정도이다. 시작당시의 의도는 지금도 동의할 수 있는 선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로디지아 독재 정권에 대항한 폭동사태가 일어났을 때 폭동을 지원하였다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은 것이 WCC에 대한 나의 지식의 전부이다. 우리 신학 출신들 대부분이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WCC나 세계교회 연합운동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는 논의에 접할 수 있는 경우가 있었을까?

아직 WCC 연합운동을 입에 올려본 적도 없고, 심지어 제대로 한 번 공부한 적이 없어 세계를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세계교회의 상황을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두고 WCC적 일치운동의 이념을 가졌다고 단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다음에 계속 - 약간 개정)



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0/11 조회 : 190

총회의 결정과 추론의 한계3



5) 신학위원회는 교단의 존립가치와 당위성을 부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무책임한 추론을 사실인양 호도하고 있다.

이런 추론이야 말로 정말 괴이한 발상이다. 이것은 필자가 변증하기 전에 신학위원회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이다. 허박사와 최덕성(그가 타인을 지칭하는 예를 따른다)이 주장하는 말을 근거로 이런 결론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데, 도대체 누가 그런 판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교단의 존립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 교단의 목사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자신마저 속이는 사람이라는 것인가? 교단의 존립 당위성을 부정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이 주장은 인터넷 기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며, 더구나 자유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다. 이 주장은 본인의 신학과도 전혀 무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 이러한 주장을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여기에 포함시키고 있는가? 극단적으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설사 내가 교단을 부정한다고 하면 자유주의자가 되는 것인가? 고려파의 ‘참여를 통한 교회 재건’ 주장을 거절하고 교재를 끊은 (우리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다!) 재건파 교회는 그렇다면 자유주의자들의 집단인가?
결국 이와 같은 본인에 대하여 교단 존립 가치 부정 운운하는 주장을 신학적 논의에 슬쩍 삽입하는 것은 한마디로 교단의 정서를 이용하여 본인을 규탄하는 지원군을 모으기 위한 치졸한 방책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위에 지목한 두 사람은 아마도 본인이 교단의 역사 가운데 1960년대 환원 사건을 두고 명분이 약하고 반성해야 할 역사라고 평소에 말하고 있는 것을 악의적으로 언급한 최덕성의 표현을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대로 2003년 12월 교수회는 나와 최덕성이 각각 이 주제에 관하여 발표하고 역사적 정당성에 관하여 토론하기로 결정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런 교수회 내부의 결의 사항을 바깥으로 표출하여, 아직 한 번 토론도 해 보기 전에, 이미 본인의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단정 짓고, 교수회 밖으로 발설하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허박사는 그 호도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 공개적인 비방거리로 삼고 있다.

1960년대 초 합동과의 환원사건은 토의가 불가피한 사건이다. 공교회가 공적으로 결정한 교회의 합동결정을 한상동 목사가 어떤 회의나 결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신학교 경건회 석상에서 환원을 선언한 행동은, 공교회의 정치원리상 변호하기 힘든 요소를 가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 문제를 두고 정확하게 진단하여 우리가 행한 실수가 있으면 반성하고 그러한 초법적이고 과격한 행동이 나오게 된 배경을 정확하게 밝혀 미래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면서 동시에 합동측으로 하여금 역사적 반성을 촉구하기도 하여, 다시는 동일한 과오을 저지르지 말도록 다짐하면서 신학과 신앙이 일치하는 교회들은 정말 하나의 교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계속된 나의 신학적 과제이다.

도대체 교단의 역사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우리가 반성할 것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존립가치를 부정한다는 결론으로 끌고 갈 수 있는가? 그런 억지 추론이 어디 있는가? 교단에 일어난 일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반교단인이고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말인가?

나는 고신교단 50주년 교회 설립을 위하여 "50주년 위원회" 위원장에게 천안지역에는 반드시 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요청하였고, 마산노회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천안 개발 중심지의 땅 600평을 구입한 바 있다. 나는 이렇게 세워진 천안 하나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하고 간판을 세울 때 "고신 50주년 기념교회"라는 말을 입간판에 넣도록 담임목사에게 건의하기도 하였다. 나는 누구 못지않게 교단 내에서, 그리고 교단 바깥에서 고신을 드러내도록 노력한 사람이다.

1999년 신학교에 처음 부임하여 한 학기를 보내고 난 다음, 강의평가를 실시하자, 학생 중 한 사람이 "교수님, 이제 교단 강조 하지 마세요"라는 건의를 받고 충격을 받은 경험을 갖고 있다. 설교 때 한 번, 강의 시간에 한 두번, "21세기는 개성대로 사는 고신의 세기가 될 것이다"는 말을 했다고 하여 그런 반응을 받았던 것이다!

신학의 꽃은 설교다. 목사의 신학은 설교에서 나타나고 나타나야 한다. 최근 나의 강의와 설교를 들은 어느 늦깎이 학생은 "이교수님의 설교는 쥐어짜면 예수님밖에 안나온다"고 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지 15년. 도처에서 행한 수많은 강의와 설교를 통해 내게 만약 신학적으로 잘못된 사상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강의와 설교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표현되어야 하고 표현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사상은 말과 글로 표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되지 않은 사상은 단순한 생각에 그칠 뿐이다. 내가 자유주의자인 증거를 설교와 강의에서 찾아 입증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15년간 나는 자신의 양심과 학생을 속인 사람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자유주의를 모르는 사람인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 고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정확한 자료를 손에 들고 진지하게 제기된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으로 한국교회 앞에 나서자고 하는 주장을 자유주의로 몰고 가는 것은 억울하다 못해 비겁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있으면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억지 추론이 아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당당하게 토론해 볼 것을 항상 요청하고 있다.

이 주장과 관련하여 참고로 고려해 보아야 할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인천 강화도에는 성공회 12개교회, 감리교 120교회가 거의 전부라고 하고, 전남 장성 무안 쪽은 "基長"교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강원도의 많은 지역, 충청도의 여러 지역에는 고려파 교회가 아예 없다. 고려파 교회가 전무한 그곳에서, 고려파 교인이 될 수 없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들은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할 종류의 사람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화란 31조파 성향의 개혁교회들이 가서 선교한 적이 없는, 세계 각 지역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단순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 초대교회 선교사들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최초의 선교사들인 장로교와 감리교, 같은 장로교 내의 미국 호주 캐나다, 남 장로교회, 북 장로교회가 각기 선교구역을 할당하여 서로 흩어져서 선교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교단의 많은 목사들이 강화도나 강원도 전남 무안 장성등지에서 태어났으면 감리교 목사가 되든지, 성공회 신부가 되든지, 아니면 기장 목사가 되었을 것 아닐까?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3. 결론
나는 자유주의에 관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주장과 주장에 따르는 행동으로 판명하여야 한다. 나의 인터넷 인터뷰를 보고 자유주의자가 된 자가 있거나 교회를 해친 증거가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고려파 교회를 떠나거나 하여 교회를 해친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나를 정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본인이 직접 집필한 책이나 논문이 아니라 단순히 인터넷 신문 기자가 쓴 글을 두고 본인의 모든 사상, 존재를 부정하려 하는 것은 보통 용기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떤 면에서도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번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나는 생래적으로 자유주의자일 수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문자 그대로 "처자를 버려두고 주님만 따르는", 따르고자 노력 하시던, 부친을 보며 자라났고, 함안읍교회를 섬기는 아버지의 아들로 마산중학교를 다닐 시절, 주일 오후에 자동차를 타고 마산가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신 다음 자전거에 나를 태우시고 5Km를 달려 함안역에서 통학 기차를 태우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신앙은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 배운 사람이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생활비 활동비에 별 대책이 없는 SFC 역사상 최초의 전담 간사직에 부친의 엄청난 반대를 무릎 쓰고, 그 분에게서 배운 정신을 따라, 겁없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대학시절, 데모에 앞장서다 숨어 지내기도 했고, 대학신문사 기자를 하면서 원리와 원칙을 떠난 정치, 사회, 문화와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체득하기도 하였다.
이런 청년시절을 보낸 나는 원리가 아닌 것에는 끝까지 저항하는 내성이 생겨났다고나 할까, 짧은 생을 위하여 비굴해지지 않고, 사적 감정 때문에 공적인 판단이 흐려지거나 불공정해지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나는 그리스도인은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자기 유익을 위하여 이런 저런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은 질색이다. 나는 신학생들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단순하지만 가장 심오한 고백이 교회를 낳았던 것처럼, 그 단순한 고백을 바탕으로, 단순하면서 가장 심오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나도 후대에 부끄럽지 않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짧은 인생, 곧 끝나버릴 인생을 살면서 비굴하게 사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교회를 빙자하여 세속적 이익을 취하려 하거나 높은 자리를 탐하거나, 교회를 통하여 권세를 누리고자 하거나, 소위 "자기만의 신학"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하는 자를 경멸한다. 내가 그런 태도를 취한다고 하여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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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0/11 조회 : 210

학위 논문에 관한 논의의 시작



그동안 일방적으로 매도되어 온 학위 논문에 관한 문제.

이제
미국 칼빈대학으로 연구년을 떠나
세권의 책을 동시에 끝낸 다음
논의를 시작하려 했으나
아예 이제부터 글을 써라는 요구가 있어
우선 중부산 노회 "이성구목사 논문대책 위원회"에 제출한 글과
지난해 총회 신학부에만 배포한 적이 있는 글을
차례로 실어 보고자 한다.

한풀이가 아니라
차분한 학문적 논의의 장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교단은 특히 신학적 논의를 할 제목이 많다.
복음병원을 과연 교회가 직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경영의 논리가 아니라 신학적 주제로 다루어야 한다.

총회 임원의 자격요건으로
예배당을 재단에 가입한 교회의 목사 장로로 제한하는 것이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채택할 정책일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평생 목회와 교회 섬김의 사역을 마친 분들을 두고
원로목사(장로) 공로목사 은퇴목사 등등으로 구분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 논의를 해야 한다.
은퇴 후에 돈을 얼마나 주느냐로
목사를 차별하는 것이 그냥 참아 넘길 수 있는 일인지
따져야 한다.

교회는 개혁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면서 우선 급한 일부터 논의를 시작해 보자.

답 변 서

수 신: 노회장 2004. 4. 12
참 조: 대책위원 및 노회원
제 목: 이성구 목사 논문 대책위원회 질의에 대한 답변서
발 신: 노회 기관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이성구

1. 중부산노회 논문 대책위원회가 제 53회 총회 신학부가 내린 평가에 대하여 본인의 견해를 밝히기를 요구하고 있는바, 아래와 같이 답변서를 보내드리오니 살펴보시고 기록으로나 신학으로나 근거가 없는 일방적 결론으로 본 노회 회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실에 대하여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노회가 제시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지난 총회의 결정이 얼마나 공회의 질서를 벗어나 있는가를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 교수회의 권위 무시
본인은 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만장일치로 채용을 결정하여 사직남교회 목회를 중단하고 신학대학원에 부임하였습니다. 신대원 교수회는 두 명의 교수로 하여금 논문을 읽고 평가서를 제출하게 하였으며, 인사위원들과의 토론을 거쳐 교수회의가 만장일치로 채용을 결의하였습니다. 신학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교수회가 결정한 사실을 두고 한 개인(박종칠)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여 교수회의 결정을 뒤집는 것은 이후에 심각한 문제를 파생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대원 교수회를 부정(否定)하고 나면 이후에 다른 신학적 문제가 발생할 때 누가 책임지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까? 신대원 교수회의 신학적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곧 총회를 무시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임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절차상 중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결정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변증 절차 무시
주후 1세기 바울의 재판 과정에서도 피고인의 자기 변증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에서 여러 차례 자신을 변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볼 수 있는 인권이 교회의 총회에서 무시되는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더구나 학문적인 토론이란 매우 섬세한 것인데, 어떻게 토론 없이 마음대로 학자의 학문적 입장을 결론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학부 실행위원회, (신학부 전체회의-거쳐야 하나 없었던 것으로 사료됨), 신학교육부 등 여러 번의 결의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찬반 토론조차 허용치 않는 총회 본회의에 상정할 헌의안을 만들면서, 단 한번도 당사자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계에서는 작은 논문을 발표할 때도 논평자가 3사람씩 세워지고 자유토론까지 벌이는 것이 상식입니다. 영국의 학계가 인정한 논문을 두고, 또한 한 사람의 신학적 입장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안을 다루면서, 논문 저자와 단 한번도 질의와 응답의 시간을 가지지 않고 마음대로 논문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비상식적인 과정을 통하여 결정한 사안은 반드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하여 논의되어야 합니다.
우리 헌법 권징조례는 일반적 사건도 반드시 본인이 출석하는 것이 원칙이고, 치리회의 결정에도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자신을 스스로 변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하여 변호 받을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권징건도 아닌 신학적 논의를 행함에 있어서 본인의 신학적 입장을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학부원들이 본인의 논문에 대하여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할 자신이 없거나, 본인의 논리를 반박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정상적인 논의 과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을 기대합니다.

3) 공인된 신학기구의 평가를 토대로 하지 않은 부적절한 결의
총회는 신학을 전공한 목사와 일반적 직업을 가진 장로가 반반씩 회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회원이 절반이나 된다는 것은, 총회의 자리가 철저한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신학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자리가 못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위원회가 적법한 절차를 따라 매우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총회는 앞서 말한 대로 전혀 그와 같은 절차를 밟은 적이 없으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신학대학원 내부에서 본인의 논문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는 한 다룰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신대원 교수회가 99년 교수 채용 과정을 통해 본인의 학위 논문을 공적으로 검토한 이후, 논문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었거나 문제 삼은 경우가 없으며, 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이전과 다른 결정을 한 것도 없으므로 원리상 총회가 재론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4) 결의안 작성 자체의 오류 - 신학부의 결론은 논문 평자들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랍게도 총회가 내린 결론, 곧 본 노회 대책위가 질의한 내용은 사실상 논문의 평가를 맡긴 교수들의 평가가 아니라 신학부원을 자청한 박종칠 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잘못된 일입니다. 총회 신학부는 고소인으로서 실행위원 자리를 차지한, 한 사람의 집요한 주장에 밀려 공식 평가자의 견해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총회의 결의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3. 노회의 질문과 대답
위와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필요 없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노회 대책위원회가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신학부의 평가보고서는 “전체적으로 아모스 예언의 배경을 그 이전의 어떤 전승에서 찾는데, 이것은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신적 영감성)가 부인되었다.”라고 단정하고 있는 바, 성경(모세오경, 아모스 등)의 영감성과 계시성에 대한 귀하의 견해와 신앙은 무엇입니까?

답: 1) 한마디로 위의 결정 문구 자체가 어불설성입니다. 논문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은 내용을 담은 적이 없습니다. 총회 신학부는 평자들의 판단을 넘어서서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아모스 예언의 배경을 이전의 전승에서 찾는 것이 예언이 ‘하나님의 계시’가 부인된 것으로 단정하는 총회 신학부의 견해는, 앞서 지적한 대로 신학부 실행위원회 이름으로 작성한 것으로써 본인의 논문을 평가한 신득일, 변종길 두 교수의 견해에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주장입니다. 공식 평가자가 아닌 사람이 억지로 끼워 넣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비정상적인 단정이라고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 예언의 배경을 아모스 선지자 이전의 전통에서 찾는다는 것을 계시를 부정하는 증거로 본다는 것이야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기록할 때 제2 저자인 인간 저자가 가진 지식, 경험, 신앙, 전통 등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혁주의 성경관이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저자가 기계적으로 받아쓰기를 한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장은 이 점을 명백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누가는 자기보다 앞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이루신 일들에 관하여 기록한 자들의 자료를 살펴 이방인인 데오빌로 각하를 위하여 예수에 관하여 자세히 조사하여 차례대로 쓴 것이 누가복음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눅1:2-3).
아모스 역시 자신이 자라온 배경, 경험, 지식, 지혜를 토대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 지식을 갖고 있었고 (2:11f), 이스라엘의 법적 전통을 잘 알고 있었으며 (2:6-8 등), 일곱 수를 이용한 선포, 언어유희 word-play를 구사하는 등 ( ??, ???의 사용)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과 경험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당시에 존재하던 전통을 통하여 선지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 의식의 진공상태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모스가 모세 율법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아브라함의 선택의 전통을 알았느냐 몰랐느냐는 질문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런 논의과정에 동참하여 올바른 견해를 찾아가는 구약학자가 하는 학문적 작업입니다. 그러한 작업을 두고 계시 부정 운운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라는 것은 이미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통하여(딤후3:16) 명확하게 하고 있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본인을 비롯한 모든 개혁주의 신앙인의 근간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경의 영감성은 곧 성경의 계시성을 담보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인의 논문은 바로 이 영감성과 계시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모스의 예언이 선지자가 처한 장소와 시대의 제한을 받는 것으로 간주하는 비평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2) 신학부의 평가보고서는 “본 논문은 여러 부분에서 독립된 다양한 전승이 하나의 단위로 결합해서 형성되는 과정을 언급하고 그리고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원인론적으로 허용의 여지를 주는 것은 성경의 역사를 뿌리 채 부인하다 ”라고 결론짓고 있는 바,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귀하의 견해와 신앙은 무엇입니까?

답: 1) 혼동/ 전승사 비평에 동조하는 것과 전승사학파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응하는 것과의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아모스 예언의 배경을 살피면서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스라엘의 전통 형성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학설들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결국 그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없다는 점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언약, 제의 전승이 북국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에서 각각 다르게 형성된 것으로 간주하고, 따라서 아모스는 남쪽 유다 사람이었으므로 북쪽에서 보존된 모세언약 전통은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응한 것이 필자의 진술방식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비평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사용한 것을 두고 전승사 비평에 동조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원인론(etiology) 허용 주장/ ‘원인론을 허용하는 듯한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 신득일 교수의 판단이었는데, 평자들이 얼마나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지 바로 이 지적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원인론적 etiological" 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66페이지를 보면 필자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However late the date of the final writing of the biblical books concerning early history may be, it is certainly impossible to prove that they are all merely imaginative, retrospective and etiological.”
- 이스라엘의 초기역사에 관한 성경의 최종 기록시기가 아무리 늦다고 할지라도 그 기록들이 전부 단순히 상상의 산물이거나, 회상적, 원인론적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비평학자들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가 기록된 오경의 시대를 늦게 잡으려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입증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당신들이 그렇게 늦은 연대를 주장해도 그 기록의 내용이 결코 상상의 산물이거나 원인론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단언하는 필자가 어떻게 원인론에 대한 허용의 여지를 주는 것이며, 그게 어떻게 성경의 역사를 뿌리 채 부인하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말입니까?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8페이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양보절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기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라고 여겨집니다. 거기서 필자는 왜 아모스가 굳이 에돔에 대하여 그렇게 적대적인가를 규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돔의 국가적 적대 관계를 야곱과 에서의 개인적 문제에서 발생한 것으로 표현하는 창세기 기사를 두고, 비평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원인론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논란에 빠져들 수 없는 상황에서 필자는

"그 이야기(야곱과 에서)의 원인론적 성격이 부인될 수 없다하더라도 질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이 하필이면 특별히 에돔과 이런 식으로 대비가 되어야 하는가?
“Even though the etiological nature of the story cannot be denied, the question remains: why did Israel have to be specifically contrasted to Edom in this way?...”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가 학위 논문에서 야곱-에서 이야기를 원인론으로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반증하는 작업을 할 수 없으니(필자의 논지 증명에 직접적 관계가 없으므로) 그렇게 인정된다고 치더라도, 유독 에돔만을 시비의 상대하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이야기가 결코 어떤 일을 후에 설명하기 위하여 채용한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원인론적인 기사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역사를 뿌리 채 흔드는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 단어 하나에 어떻게 성경의 역사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과장법으로 독자를 호도하려는 태도야말로 지극히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은 과거에 실제적이었을 뿐 아니라 오늘에도 그 의미가 여전한 현재적 역사라는 것이 본인의 입장입니다.

3) 신학부의 평가보고서는 “더 나아가 후대 기록에 대한 언급이나 오경의 단일 저작성을 부인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모세 오경의 저자에 대한 귀하의 견해와 신앙은 무엇인가?

답: 오경의 저작설에 대하여 본 논문은 한 번도 직접 언급한 적이 없으며, 오경의 저작문제가 본인의 논문에서 다루어질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본인은 오히려 오경 중 신명기를 다른 책과 분리하여, 신명기를 후대의 책이라고 주장하는 비평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명기가 오경의 다른 책보다 후대에 기록된 책이라는 주장은 비평학계에서 가장 일반화된 학설중의 하나입니다. 필자는 논문에서(62p) "신명기가 고대 전통을 중시하는 그룹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평학자들 가운데 일부가(Nicholson) 신명기의 북쪽 기원론을 주장하며 "왕정시대 이전 지파동맹 시대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인용하면서, 주전 7세기론 만이 신명기 기록의 시기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의 주전 7세기 저작론이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신명기 기록을 왕조 이전 시대로 끌고 올라가려는 힘든 시도의 일부분입니다. 도대체 누가 오경의 단일 저작성을 부인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본인은 평가자가 오경의 단일 저작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쉬운" 정도라고 표현하였는데 그게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만큼 비평학에 관대한 사람이라는 말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평자중의 한 사람인 신교수는 논문 170페이지의 기록을 두고 필자가 신명기가 후대 기록이라고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거기서 필자가 노예제도에 관한 법을 비교하면서 (출21:2-11, 레25:39-46, 신15:12-17) "오경의 법들은 자신의 몸을 이웃에게 파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사는 사람 자신이 노예매매 활동에 대하여 경고를 받은 흔적은 전혀 없다"고 하였고, 이어 "there is no indication at all in the laws, even later in Deuteronomy"라고 한 사실에 근거, 신명기를 후대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즉 신명기의 연구 상황을 전혀 모르는 일반 독자가 읽으면 오해할 여지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박사학위 논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것입니다. 앞서 밝힌 대로 신명기 7세기 설이 보편성을 띈 상황이라 오경의 다른 법과 신명기 법에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연구 역시 많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늦다고 말하는 신명기 (필자는 출애굽기나 레위기보다 신명기는 40년 가까이 늦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있다는 말이다)에서도 필자가 주장하는 논리에는 전혀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논문이 어떤 논지를 위한 주장인지를 제대로 검토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평가자가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라고 봅니다. 어떤 책이든 책읽기는 그저 비판거리를 찾아내려는 자세보다 이해하려는 자세로 읽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입니다.

오경의 모세 저작과 단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평학계조차 다양한 주장들로 인하여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변화하는 학문적 상황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를 둔 학자가 가변적인 신학적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 본인의 확신이며, 오경에 대한 본인의 입장입니다. 상식에 벗어나는 주장으로 학자를 임의대로 재단(裁斷)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결 론

본인의 학위 논문은 1985-1990년 사이에 작성된 것입니다. 이미 14년의 세월이 지나 책을 개정해야 할 시점이 넘었습니다. 논문이란 완벽한 것이 없으며 항상 비판과 새로운 주장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개 논문의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논문이 취하고 있는 기본적인 자세는 분명하게 변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정확한 논리적 체계 외에 다른 어떤 요소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영국에서 논문을 작성하였습니다. 항간에는 필자가 학위를 받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곡필을 한 것처럼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영국의 학계는 편가르기 식의 학문적 작업을 일절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 권에 속한 학자는 자기 제자의 글을 주로 비평학을 수용하는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논문의 평가를 맡기는 경향임을 볼 수 있습니다. 학문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인 셈입니다.

본인의 논문을 심사한 주심은 이미 1971년에 Cambridge Bible Commentary Series의 아모스 편 주석을 쓴 경험을 가졌고 당시 감리교 신학대학 학장이었던 Henry McKeating 박사였습니다. 2시간의 구두시험 끝에 그는 ‘당신의 논문이 의도하는 방향에 관하여서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논문을 치밀하게 작성하였으므로 학위를 주는 데는 동의한다’는 말을 제게 남겼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아야 학위를 주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그런 식의 폐쇄적인 태도가 영국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근거 없는 판단은, 제게 긍정적인 것 같으나 영국의 학문 풍토를 모르는 데서 나온 완전한 오해입니다.

본인은 논문을 집필하면서 후 논문의 창의적 성격과 완성도에 신경을 썼을 뿐 한 번도 논문의 방향이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과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필자의 지도교수인 Gordon McConville은 영국의 보수적인 학자들로 구성된 Tyndale Fellowship의 구약학회 회원이요 그 학회의 구심점이 되어 있는 성경신학 연구의 요람인 Tyndale House의 도서관장을 지냈으며 스코트란드 장로교 소속 학자입니다. 그에게서 배운 학생들이 6명 이상 박사학위를 받고 합동신학대학원(성주진 교수)을 비롯한 한국의 각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교인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근간으로 5년 동안 공부하였고 (M.Div, Th.M), John Stott에게서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구약학자로 소개받은 교수와 유럽에서 유일하게 주전 15세기 출애굽 설을 주장하는 John Bimson박사에게서 지도를 받았으며,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을 목표로 하는 학생신앙운동의 대표간사로 4년간 사역하였고, 두 교회를 개척하고, 수많은 교회에서 설교와 구약특강을 하면서 단 한번도 신학적 의혹을 받은 적이 없으며, 총회 부설 교사성경대학, 통신대학의 출석강의를 여러 차례 맡았고, 초교파 신학대학에서 3년간(1991-1994) 가르치는 동안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신학교수로 인정받으며 살아온 본인을 두고, 14년이 지난 논문을 이제 다시 끄집어내어 성경의 계시와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필자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과는 상관없이 교단에 큰 불명예를 안겨다 주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총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때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힘을 낭비하게 하고, 영육 간에 파괴적인 영향밖에 남길 것이 없는 소모적인 논쟁을 조속히 그칠 수 있도록 노회가 최고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인의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주신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이 성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