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증도리교회, 문준경 전도사님 간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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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증도리교회, 문준경 전도사님 간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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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서 (2) 순교자 문준경전도사 작성일 2017-02-17
기독교헤럴드에 연재된 기사(2)

순교자 문준경전도사

(증도 증동리교회. 1891~1950 )

문준경순교기념관 관장 김헌곤목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에게 놀라는 것은 그 열매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문전도사가 사역했던 증도에는 2000명이 거주하는데 목회자 159명, 장로 81명을 배출됐고, 자은도에는 2400명이 거주하는데 목회자 119명, 장로 84명을 배출됐다. 신안군의 14개 읍면에서 1400여명의 목회자와 장로를 배출한 배경에는 문 전도사의 절대적인 헌신이 있었다.

문 전도사를 통해서 예수를 영접하고 영향을 받은 자가 누구인가? 이인재, 이봉성, 김준곤, 이만신, 이만성, 정태기 목사와 조인정, 김상열, 박성철 장로 등등이다. C.C.C. 대표였던 고 김준곤 목사는 2006년 8월 15일 문준경 전도사 순교현장에서 눈물로 고백했다. “내 신앙의 원초적 뿌리는 문 전도사님입니다. 전도사님은 내 인생에 최초, 최대의 임펙트를 주신 분으로 나의 영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시인인 고훈 목사는 ”저들이 울면 당신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저들이 헐벗으면 당신은 한 벌 옷이 되어 입히고, 저들이 배고프면 당신은 밥이 되는 바보 목자, 저들이 병들면 당신은 몸으로 약이 되신 성녀여!“ 이렇게 증언하였다. 문준경을 통해 열매가 많은 것은, 예수님의 진하디 진한 사랑을 체험하고 실천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36세(1927년)에 시어머니 소천 후 목포로 나와 목포북교동교회에 입교하여 그곳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남편에게 받아야 할 사랑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큰 사랑을 체험한 후 남편을 용서했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신안군 91개 섬, 논두렁 밭두렁 노두길을 열심히 다니면서 전도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좋았던지 박복엽, 이말례, 임동례 권사는 “오메, 오메, 문 전도사님은 친정 부모보다 더 좋았지라!” 증언한다.

또한 신자,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아픈 자가 있으면 찾아가 환부를 쓰다듬으며 “하나님! 이 사람은 돈도 없고 약도 없고 여기는 병원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직접 고쳐주시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병이 낳았더란다.

증도에 염병(장티푸스)이 퍼져 환자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 가족들조차 속수무책일 때, 문준경이 뛰어 들어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천국과 재림에 대한 소망이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 전도사가 가는 곳마다 육신의 병, 마음의 병, 영적인 병을 치료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자격증은 없지만 산파보다 애기를 잘 받아 산모들이 줄지어 부탁하기도 했다. 도박꾼, 싸움꾼, 불효자식에게 호통 치면 그 영적 권위와 도덕적 권위 앞에 굴복하는, 능력이 나타난 복음의 실천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