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진화론, 지적설계론, 창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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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진화론, 지적설계론, 창조과학



종교·과학, 객관적으로 사회 보는 두 거울









[인터뷰] <예수와 다윈의 동행> 저자 신재식 교수(2) "과학기술 상징하는 진화론, 기독교에 맞게 소화해야"


















데스크 승인 2013.09.07 02:09:08

김성민 ()

















<예수와 다윈의 동행> 저자 신재식 교수 인터뷰 두 번째 기사입니다. 인터뷰는 SFC 출판부 김성민 편집장이 진행했습니다(첫 번째 기사 바로 보기). -편집자 주


지적설계론, 이론이냐 운동이냐

- 종교와 과학의 제 역할을 강조하면서 환원주의를 상당히 경계하는 것 같은데.

생명 세계를 어느 하나로 환원해 설명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모든 생명 세계는 어느 수준에서 설명하느냐에 따라 일리가 있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그 수준에서 설명한 것을 전부 진리라고 이야기하면 큰 오류에 빠진다.

두 종류의 환원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하나는 과학적 환원주의다. 유전자 수준에서만 생명 현상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완벽하고 충분한 설명이라고 한다면 논쟁이 불가피하다. 과학자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유전자 수준의 설명도 가능하지만, 세포 기관의 수준이나 개체 수준의 설명 등이 가능하며, 전체 생태계 수준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정신 현상이나 마음의 현상을 두뇌의 시냅스 차원에서만 설명한다면 환원론이다. 과학적 환원론이 삶의 다양한 측면을 폐기한다면 경계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종교적 환원주의다. 기독교의 경우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으로 생명 세계를 판단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를 낳는다. 종교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무한한 존재인 하나님에 대한 특정한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과 해석들을 배제한다면 문제다. 유한한 인간이 해석하는 특정 경험이나 기준과 논의를 하나님에 대해 논하는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신성모독이자 우상숭배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열린 태도를 가질수록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해 낼 가능성이 높다.

- 다시 다윈 이야기를 해 보자. 자연신학적 태도에서 다윈으로 넘어왔을 때, 다윈의 어떤 점이 근대과학을 대변하는가.

오래전부터 자연신학이 있었지만 가장 활발했던 게 18세기 후반~19세기 초다. 사람들이 과학혁명 이후 새롭게 발견된 생물학적 현상, 자연에 대한 기계적 현상을 보고 나서 현상의 근원에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관찰할 수 있는 사례들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니고 지적인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생물학적이고 기계론적 지식을 받아들여서 설명을 했다. 자연신학 자체는 새로 변화하는 과학이나 기술에 의한 지식들을 신학에 수용해서 신학적으로 응답하려는 시도 중 하나였다. 다윈은 그것을 지적인 존재자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연적으로, 우연적으로 나온 결과물이라고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굉장히 많은 실증적인 데이터를 모았다. 다윈은 자연선택의 결과물과 메커니즘을 이야기했다.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도 어떤 점에서는 자연신학 전통에 서 있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를 통해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와 같은 종류의 자연신학은 19세기 자연신학보다 퇴보된 자연신학이다. 19세기에 나온 자연신학은 자연 사물이 우연히 생기지 않았다는 것을 쭉 설명하고, 이 지적설계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지적설계자가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어떻게 아느냐, 하나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 지적설계자가 알라신인지 힌두교의 비슈누인지 기독교의 하나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 지적설계자가 전능한지 약간 무능한지 등에 대해 증명하는 문제들이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지적설계론에는 이런 게 없다. 종교가 아니고 과학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지적설계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설계자가 어느 신인지 증명할 길이 없다. 이 점에서 퇴행된 자연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설계론은 일종의 종교운동이다.











▲ 신재식 교수는 종교와 과학이 우리를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두 개의 거울이라며, 이 두 개가 적절하게 작동할 때 두 날개로 적절하게 비상할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보수화될수록 진화론 수용 어려워

- 다윈의 진화론을 당시 사회적 정황과 관련하여 설명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상황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영국 사회에서 산업혁명 이후 새로 등장한 중산층, 귀족 계층, 고위 종교 사제들이 다른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을 때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했다. 더불어 영국 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경쟁"이 중요한 이슈였다. 영국 성공회를 중심으로 귀족 계층은 사회 변화를 바라지 않았다. 이들의 입장에서 진화론을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중산층 즉 산업혁명의 주역들은 영국을 변화시키는 데 진화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신학적 입장 차이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수용 여부도 조금 달랐다.

한국적 상황도 유사하다고 본다.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가진 게 많아서 그것을 지키고 싶어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많다. 진화는 바뀐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으며 변혁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진보적인 계층에서는 진화를 받아들이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고 이 진리를 자신들이 담지하고 있다고 믿는 보수적 기득권자들은 진화론을 수용하기가 불편할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가 보수화될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목사들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진화론에 대한 태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진화에 대한 기독교적 수용 여부가 기독교의 생명 평화 사상을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신학과 과학의 주제, 기독교와 과학의 주제가 조직신학자들에게 핵심적인 이슈가 된 게 1990년대 후반이다. 최근 서구 신학 전통 속에 신학과 과학이 굉장히 뜨거운 주제다. 생태계 문제가 일어나면서 생태신학이 나왔다. 생태신학을 제대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생태학 전문가나 생명현상에 대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신학자들이 생명 평화 문제에 기독교적인 응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게 이 생명 현상과 환경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가이다. 생태신학을 하면서 생물학자들과 대화하고 천체물리학자와 대화하면서, 정말 기독교가 과학을 받아들이는 신학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논의가 나오게 된 것이다. 생명, 정의, 평화, 생태 문제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을 당연히 들어야 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우리 안에서 신학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신학과 과학의 주제가 현대신학의 이슈였다가 지금은 생태경제신학이 이슈가 되고 있다. 생태와 경제 문제가 처음부터 나뉜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