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최바울 인터콥 - 합신 박형택 비판과 최바울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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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 박형택 목사의 최바울의 이단성 조사 보고서에 대한 해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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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15 06:17:35
이 글은 합신 박형택 목사의 최바울 (인터콥 대표)의 이단성 조사 보고서에 대한 최바울 선교사의 해명입니다. 서경노회가 최바울 선교사에 대해 총회에 질의하고 있어 참고가 될 것입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 한 페이지에 다 올라가지 못해 두 편으로 나누었음을 양해바랍니다. 참고로 =>라고 표시된 부분이 최바울 선교사의 해명, 혹은 답변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코닷-
Ⅰ.
△ 1982년 최바울 대표, 성락교회 CBA전국회장
=> CBA전국회장직을 한 적이 없습니다.
△ CBA파송 1호 선교사로 터키 행
=> 본인은 CBA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인터콥의 초기 멤버들이 베뢰아 출신들임을 인정했다.
=> 현재 인터콥 800여명의 선교사 중 베뢰아 출신은 없습니다.
△ 1993년 10월 최바울 대표, “서울 ‘영적전투를 통한 세계선교의 수행’ 세미나 개최”
=> 이런 제목의 세미나를 개최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 2007년 분당 샘물교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 왜 이 사건을 여기에 나열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본인은 2007년에 샘물교회 팀이 아프가니스탄에 단기선교 간 사실도 사전에 몰랐습니다.
Ⅱ.
1. 인간창조 전에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다는 비성경적 사상
=> 하나님의 사정 때문에 못했다"고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잘못된 부분을 삭제하였고 인터콥 홈피에 공개적으로 자아비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조장하시거나 지켜보며 방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허용된 작정'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범좌 전에 행위 언약을 주셨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인간의 범죄는 이전에 행위언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범죄행위인 것입니다.
2. 성경의 역사(세계사)를 신들의 전쟁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상
최바울의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사상은 결국 성경의 역사나 세계사를 인간계에서 벌어지는 신들의 영적전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세계경영과 사단의 세계경영의 대결구도라는 것이다.
=> 이러한 박형택 목사의 주장은 이원론과 이분법을 혼동한 것이라 사료됩니다.
이원론은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헬라철학의 이원론으로서 육체와 영을 분리하는 세계관입니다. 플라톤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 라고 하면서 육을 벗어나 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선의 모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핼라적 이원론입니다. 그러나 육체와 영이 분리되어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영지주의의 이원론으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헬라 철학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서 주후 150년 경에 퍼진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이것은 오류입니다. 요한1서 1:1절에서 "내가 손으로 만졌고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째는 로마 가톨릭의 이원론입니다. 성역과 세속의 구분이 철저합니다. 따라서 경직된 성직주의로 나타납니다. 성례에 사용되는 물건은 거룩한 것이라고 믿고, 드려진 성직자는 거룩하다고 믿습니다. 예배당 안은 거룩한 곳이며 강단은 성직자 외에 아무나 올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이러한 이원론적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일부 비판자들의 주장처럼 질병, 가난, 사고, 재앙의 원인이 모두(?) 마귀 때문이라고 가르치거나 주장한 적도 없습니다.
이분법(Dichotomy)은 대조법입니다. 대조적인 모든 것을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밤/낮, 하늘/땅, 빛과 어둠, 선과 악, 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사람 등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입니다. 특히 선과 악의 구분은 윤리적이며 동시에 성경적입니다.
또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로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적 관계는 헬라적 이원론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나 바울사도의 가르침으로 이어지는 성경적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저서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왕국>(나라)도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끝날까지 악의 왕국의 힘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후크마).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첫째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다는 주장이고 그 신중에 가장 세력을 가진 신이 이슬람 신이라는 것이다.
=> 세계에는 그 수를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23:13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
사 36:18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시 86: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시97:7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신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렘 10: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 11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세계 사람들은 다양한 신 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일본의 1억 2천만 인구는 8백만 개의 잡신을 섬긴다고 합 니다. 세계 대부분의 신들은 잡신이지만 더러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신들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지구촌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신들 중에 이슬람의 신 알라Allah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신이며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시며 구원자이시고 심판자이십니다.
둘째 사단이 인간계에 뱀의 육체를 가지고 침투하였고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와서 신들의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 이것은 잘못되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표현으로 삭제하였고 아직 삭제되지 않는 저술에서는 삭제할 예정입니다.
셋째 신들의 전쟁을 이삭과 이스마엘의 전쟁으로, 이슬람신과 기독교신의 전쟁으로 만들어 간다.
=> 역사적인 서구 기독교세계와 이슬람세계 간 전재와 갈등은 영적인 종교전쟁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단은 피조물인데 인간창조전에 해결되지 못한 사정으로 인간계에까지 와서 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주장한다.
=>이미 이와 유사한 내용은 2010년 초에 삭제되었습니다. <세계영적도해> 구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용어가 베뢰아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의 의도"와 우사하다는 지적, 그리고 관련 내용 중 최초 인간의 범죄와 범죄 이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접근방식에서 인간의 범죄가 마치 인간의 책임보다는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주도적 개입 하에 이루어진 것처럼 그리하여 인간의 범죄가 하나님의 책임인 것처럼 충분히 오해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서 이 부분 전체 20쪽 분량을 2010년 2월초에 책에서 삭제하였습니다.
(최바울의 글 인용)
“사단은 가장 간교한 육체적인 뱀의 모습을 입고 인간계에 들어왔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인간계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매우 근본적인 천국의 비밀과 이후 인간계에서 전개될 신들의 전쟁 즉 지구의 영적 전쟁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세계영적도해 p.19)(왕의 군대 21)
=>삭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창조는 이전의 영적 대결상황에서”(세계영적도해 p.38)
=>삭제되었습니다.
“세계제국 애굽의 중심에서 신들이 충돌”(세계영적도해 p.26)
=> 삭제되었습니다.
“세계역사는 영적 전쟁의 역사, 에덴에서 시작된 영적 전쟁은 인류역사속에 부단히 계속, 이 지구의 영적전쟁의 중심에 음녀가 있다.음녀는 메타신화, 문명의 이데올로기와 연계, 짐승은 문명의 글로벌 시스템과 연계,
=> 음녀와 적그리스도, 사탄은 인류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해왔고, 이 사악한 양적 세력들은 공조하며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회를 공격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개혁주의 후크마의 저서에도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왕국>(나라)도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끝날까지 악의 왕국의 힘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후크마).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또한 개혁주의 신학자 게할더스 보스의 저서에도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전쟁하는 당사자이시고 사람이 거기에 가담하여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이다"(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하나님도 육체로 이 땅에 오셨고 사단도 육체의 모습으로 이 땅에 왔다. 육체를 가진 존재 즉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간다. 하나님과 사단이 육체를 가진 인간계에서 가히 신들의 전쟁을 전개한다(왕의 나라 21)
=> 삭제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사단도 자신의 사악한 제자들을 통해서 사악한 역사(왕의 나라.11)
=>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사단 역시 자신의 사람들을 통해 미혹함으로 역사합니다.(마24:3-4, 눅22:3, 엡2:2, 계2:9, 계3:9 등)
고후11: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3. 이단적인 양태론적 신론사상
=> 본인은 양태론자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본인은 한결같이 삼위일체론을 믿어 왔으며, 이미 코람데오닷컴에 글을 통해서 수년 전에 다음과 같이 공표한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는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세례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에 성령 하나님께 비둘기처럼 나타나시고 성부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위의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하시고 역사하신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각자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 하신다.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신 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기도가 아닌 것이다. 또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눅23:46)라고 하신 것은 삼위의 독립되고 자율적인 인격 되심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오직 성령께서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8:26).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은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부 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가 되시는 가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으로 신비스러운 영역이다.”
본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니케아신경(325년), 콘스탄티노플신경(381년), 칼세돈신경(451년)에 기록된 대로 정통기독교신앙을 분명히 고백하며 다시 한 번 더 밝힙니다.
삼위일체 이단으로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양태론이고, 다른 하나는 삼신론입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때로는 성부로, 때로는 아들로, 때로는 성령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양태론의 본질입니다. 양태론은 그 중에서도 물이 본질은 하나이되 액체로, 고체로, 기체로 변질되어진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이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각각 필요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의 기초가 3세기에 사벨리우스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단인 종속설은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에 이어서 아리우스가 주장한 바로, 존재론적으로 성부에 비해서 성자가 열등하고, 성자에 대해서 성령이 열등하다는 사상입니다.
본인은 이런 오류를 잘 파악하고 있으며, 동시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이 존재하시고, 사역하시는 것을 성경대로 믿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과 요한일서 5장 7-8절,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하는 말씀을 고백합니다.
박형택 목사는 상대방의 말과 글에 이단이라는 흠집을 내기 위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을 내세워 본인을 이단으로 몰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국제신학대학원 Th.M.과정에서 삼위일체 전공교수로부터 '삼위일체론'이라는 과목을 이수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는 개혁주의 신론(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이승구 번역,p.421)에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면서 A.D.2 세기에 노에투스, 프락세우스,에피고누스 등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부 자신이 태어나셨고, 고난 당하셨으며, 죽으셨다고 했으며, 성부와 성자 자신이 태어나셨고, 고난 당하셨으며, 죽으셨다고 했으며, 성부와 성자란 이름들은 서로 다른 관계들 중에 계신, 같은 분을 지시한다고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부이고, 그의 인성은 성자라고 가르쳤습니다. 3세기에 이 군주론, 성부 수난설(patripassianism), 또는 양태론(modalism)이 사벨리우스에 의해 옹호되고 발전되었습니다. 성부, 성자, 성신은 같은 하나님, 하나이고 같은 존재에 대한 세가지 이름이다.”라고 밝혔다.
신학자 밀라드 에릭스의 <복음주의 조직신학>에서 보면 양태론에 대하여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한 사람이 아버지, 아들, 목사 등으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양태론이다. 또한 삼위일체를 설명하면서 비유컨대 본질은 하나이지만 기체, 액체, 고체 등으로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구별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양태론적 해석이 된다.
본인은 삼위일체를 양태론으로 이해하거나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박형택 목사는 본인의 몇 권의 책에서 글을 부분적으로 골라내어 자신의 논리로 각색하여 양태론 덧씌우기를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텍스트를 공정하게 분석하려면 공시적인(synchronic) 방식으로 접근하여 책 전체에서 그 문장과 단락이 의미하는 것을 해석해야 공정한 해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고, 객관성을 잃지 않은 전문 학자의 태도라고 비로소 인정될 수 있습니다.
만약 박형택목사가 본인을 양태론으로 공격하는 대표적인 저서 <세계영적도해>(2004년판) 하나만을 갖고 분석해도 그의 주장의 주관성과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1). 박형택목사의 주장
박형택 목사는 <세계영적도해> 구판을 가지고 본인을 양태론자라고 비판합니다. 박목사가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완벽하게 증명하셨습니다."(세계영적도해 p.30)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친히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당신이 전능하시며 선한 하나님이신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셨습니다"(세계영적도해 p.31)
=>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깨닫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수준에서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을 완전하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세계영적도해 p.32)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시었고 사단도 육체(뱀)의 모습으로 와서 하나님과 사단이 육체를 가진 인간계에서 가히 신들의 전쟁을 전개하고 있다”(세계영적도해 p.284)
=> 성자 하나님깨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입니다.(요이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육체를 입고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하셨고 예수 승천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해진 성도들의 육체가운데 임하셔서 천국복음을 증거”(왕의 대로 75)
=>성자 하나님께서 이땅에 육체로 오셨습니다.
“영은 육체를 통해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낸다. 육체가 없은 영은 인간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귀신들이 육체를 그렇게 사모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에덴에서 사단은 간교한 뱀의 육체로 이 땅에 왔다.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왕의 대로 75)
=>박형택 목사 연구 전에 삭제되었습니다. (2010년 2월초 삭제)
"성육신의 영이 권능으로 임하신 것이 오순절의 임하신 성령이다. 이것이 오순절의 프락시스이다” “성경적 영적 리더십은 성육신에 기초해야 하고 사역 역시 성육신의 사역이 되어야 한다. 영적 리더쉽을 성육신과 연계하고 성육신의 사역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종교기술자가 된다(왕의 나라 187)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영이십니다.(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오순절의 프락시스> 책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최바울의 책에는 양태론적 단일신론 사상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의 글들은 보면 분명한 사상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왔고 마귀도 육체의 모습으로 와서 인간계에서 신들의 전쟁을 한다는 주장이요
둘째는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신 방법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라는 주장이요
셋째 육체가 없는 영은 인간계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주장이요
넷째 성육신의 영이 오순절의 성령이라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셔서 복음을 전하셨고 예수 승천후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해진 성도들의 육체가운데 임하셔서 천국복음을 증거하셨다는 것이다.
=> 관련 내용 일부는 박형택목사 연구 이전에 삭제된 것이며 다른 내용은 전체 문맥을 뵈지않고 사실을 왜곡한 극히 자의적인 해석들입니다.
(2). 박형택 목사의 사실 왜곡과 곡해
1) 통일성으로서의 ‘하나님’
박형택목사의 주장대로 본인이 양태론자가 되기 위해선,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당신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완벽하게 당신 자신을 증명하셨습니다.”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가장 고귀한 육체를 입고 들어왔다는 사실이”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가장 고귀한 육체를 입고 들어왔다는 사실이”라고,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이 아니라 “놀라운 사실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다름아닌 성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라고 했어야 썼어야 한다.
한편, 헤르만 바빙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통일성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즉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통일성이 강조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엘로힘','데오스'란 말은 한 존재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요17:3,고전8:4). 그런데 이 한 하나님이 자신을 성부, 성자, 성신으로 계시하신다"(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이승구 번역,p.386)라고 바빙크는 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나 성자나 성신도 하나님이신 것이다"(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이승구 번역)라고 했습니다. 즉, 쟁점이 되는 최바울 선교사의 글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적 통일성 통칭하는 것이지 성부 하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이 본인의 저서 <세계영적도해>는 삼위일체론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텍스트를 정확히 분석하려면 원작자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그 집필 목적에 비추어 해석해야 하는데 박형택목사는 삼위일체론에 대한 혐의점을 잡아내고자 짜집기식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양태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다루어야 하고, 성부와 성자가 구별이 되지 않는 동일 본질의 다른 양태들(modes)이라는 점이 나타나야 하는데, 본인의 글에서는 성부니 성자니 하는 구분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박형택목사가 문제 삼는 단락들은 본인이 양태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가 "성부와의 독특한 관계 때문에 이 이름을 가지시는 아들(성자)은”(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이승구 번역,p.386)이라고 했듯이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의 육체를 입고 왔다고 하지 않은 이상 본인이 양태론자라 할 수 없습니다.
2) 수사적 강조 용법
“하나님께서는 직접”,” 다름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표현을 갖고 박형택목사는 “성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성육신 했다”는 식으로 본인을 양태론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분석하면 이러한 해석이 자의적이라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사전적 의미로, ‘직접’,’자신’은 ‘중간에 아무것도 끼거나 거치지 않고 바로’(다움사전)을 의미하지만, 본인 최바울의 표현을 문맥상으로 보면 ‘직접’,’자신’은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즉, "할머니께서 직접 자신이 만드신 쌀과자의 맛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이다"라는 문장에서 ‘직접’,’자신이’는 존재론적인(ontological) 차원에서 할머니가 ‘직접’,’자신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주어인 할머니를 높이기 위한 수사적(rhetoric) 강조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따라서 본인이 하나님이 ‘직접’,’자신이’라고 한 것은 존재론적 의미가 아니라 주어인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수사적 강조 용법입니다.
3) <세계영적도해>에 나타난 반증
만일 본인이 양태론적 삼위일체론 사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책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심정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p.36),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예수님이 가신 것이나 하나님이 부르셔서 아브라함이 간 것이나 주도권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볼 수 있습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p.70) 등에 나타나는 것처럼, 본인은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에 이끌려 예수님이 가신 것이나”라고 하여, 결코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전혀 양태론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4) 본인 최바울 선교사의 해명
본인은 2011년 4월 7일, [코람데오닷컴]에 '베뢰아 이단성 문제에 대한 소고' 제하로 투고한 글에서, 양태론과는 정반대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창세 이전부터 존재하시고, 인류역사 속에 역사하시며 또 천국에서도 영원히 삼위로 존재하실 것이다. 성경에는 성자 예수께서 창세 이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증거하고 있으며, 승천 이후에도 성부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기록되어 있다."라고 본인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피력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베뢰아 이단성 문제에 대한 소고>에서 본인은 보다 구체적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본인의 이해를 설명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는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세례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에 성령 하나님께 비둘기처럼 나타나시고 성부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위의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하시고 역사하신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은 각자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 하신다.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신 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기도가 아닌 것이다. 또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나이다.”(눅23:46)라고 하신 것은 삼위의 독립되고 자율적인 인격 되심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오직 성령께서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롬8:26).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은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독립된 인격으로 존재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가 되시는 가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것으로 신비스러운 영역이다.”
또한 본인은 본인의 저서와 공개된 설교에서 지난 15년 동안 수십 차례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기록하고 설교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민족을 말씀하시고 성자 예수께서 지상명령으로 모든 민족을 말씀하시고 성령 하니님께서 오순절에 모든 민족의 언어와 방언으로 말씀케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모든 민족 all nations을 말씀하신 것은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본인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박형택 목사는 본인을 양태론자로 규정하기 위해 짜집기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3). 결론
이상에 살펴본 바와 같이 박형택목사는 본인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텍스트 분석의 기초인 Exegesis를 따르지 않고 Eisegesis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저서에서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통일적 표현으로 본인 최바울 선교사가 사용하고 있고, ‘직접’, ’자신이’라는 표현은 존재론적 의미가 아니라 수사학적 강조 용법으로 주어인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높이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박형택목사가 주장하는 양태론적 삼위일체라는 공격은 해석학적 기본을 망각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텍스트 해석에 따른 심각한 오류임이 분명합니다.
(참고문헌: 최바울,세계영적도해, 2004년 초판 1쇄; 최바울, [코람데오닷컴],2011년 4월 7일; 오영석,신앙과 이해,서울:대학기독교서회,1999;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이승구 번역 등)
4.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왜곡된 사상
최바울의 글 가운데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성육신을 주로 주장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이 없다.
첫째 그의 사상은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 하신 성부성육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성자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에 표현된 그 하나님은 본인은 당연히 성자 하나님을 뜻하며 기술했습니다. 한편, "양태론적" 단일신론 혹은 성부수난설이란 "성부가 친히 또 다른 형태(성자)로 성육신하여 고통을 당했다고"(최신 조직신학,Reymond, Robert L.,기독교문서선교회,p.758) 해야 성립이 되며 ‘하나님’이 성육신 했다고 하여 양태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양태론적 삼위일체를 주장한 사벨리우스도 성육신 하신 신적 단일체(Monad)를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성자의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양태론적 단일신론으로 정죄 받은 것이다"(최신 조직신학,Reymond, Robert L.,기독교문서선교회,p.758).
반면에 신약성경에서도 통상적으로 성부에게 붙여지는 호칭인 '하나님'(테오스)을 그리스도에게 실제로 붙이는 것은 전혀 놀라운 것이 없습니다(최신 조직신학,Reymond, Robert L.,기독교문서선교회,p.407). 예를 들면, 예수가 부활한 후 정확히 일주일 되던 날, 다른 열명의 제자들 앞에서 도마는 크게 외쳐,"(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니다"(요20:28)하며 그를 경배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보낸 그의 서신에서 예수에 대하여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롬9:5)이라 말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딛2:13)라고 말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작별인사에서 부탁하기를,"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그의 교회의 목자가 되라"(행20:28)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두번째 서신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하나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벧후1:1)라고 칭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는 하나님 자신이 아들을 ‘하나님’으로 칭하여 준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히1:8). 요한복음에서는 "본래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그의 유일하신 하나님이 그를 나타내셨느니라"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5장 20절에서,"우리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니라"고 요한은 기술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서도 성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표현하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으며, 만일 그것이 양태론이라면 베드로, 요한, 바울 등 사도들도 성부수난설 주창자가 됩니다. 반면 하나님이 성육신 하였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신봉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성육신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요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육신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자신을 즘영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사랑을 확실히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증명했다는 표현은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에게 확증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증명에 대한 표현은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표현이 저의 책에 등장하는 맥락을 살펴야 그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박형택 목사께서 인용하여 문제 삼은 그 단락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난다. “당신이 하나님께 나오기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뭐가 더 부족한 것이 있는지 프로포즈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더 검증해 주셔야 그분을 믿겠습니까?”(세계영적도해,2005년 초판3쇄,p.27-28)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증명에 대한 주제는 신 존재 증명의 불가피성을 하나님이 갖고 계셨다는 취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 나온 변증학적 성격이 강한 표현입니다.
셋째 성육신의 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 성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마귀의 일(the Devil's work)"을 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박형택 목사는 성육신의 목적이 또한 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케하는 것이고 사망권세를 가진 마귀를 없이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결국 오리겐이나 마니교에서 주장했던 사단배상설로 나아가게 되고 구원론도 마귀에게서 자유케 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편협한 구원론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2:14-15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하나님이 마귀와 대결해서 싸워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사망의 두려움으로 매여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망의 권세잡은 자를 멸망시킨다는 뜻으로서 창세기 3:15의 성취임을 말씀하는 것이다.”라고 올바른 관점을 나타내주었습니다. 본인이 책에서 표현한 내용도 박형택 목사님의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다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선 대제상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이며(히7:26-27,9:11-14), 둘째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사역이며(요1:29,계5:8-9), 셋째로 희생으로서의 사역이며(엡5:2,히9:23,9:26,10:12), 넷째로 제물로서의 사역이고(히7:27), 또한 다섯째로 화해로서의 사역이면서(롬3:25,히2:17,요일2:1-2,요일4:10),여섯째로 화목으로서의 사역(롬5:10-11,고후5:17-21,골1:19-22)과 일곱째로 구속으로서의 십자가 사역이며(마20:28,막10:45,벧전 1:18-19,계5:9,롬3:24-27), 끝으로 사단을 정복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나라 사역입니다. 박형택 목사는 본인이 이러한 다면적인 십자가 사역의 의미를 책에서 언급하지 않고 사단에 대해서만 기술했다고 문제 삼는 것같습니다. 본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단순히 사단를 멸하거나(히2:14-15)거나 사단의 일을 멸하는(요한1서 3:8) 것으로만 축소하여 보지 않습니다. 다만 책의 전체적인 주제가 세계영적전쟁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의 차원을 집중해서 기술했던 것이며, 본인의 책이 결코 조직신학 관련 저술이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오리겐의 사단 배상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는데 본인은 구속의 교리를 이해함에 사단에게 배상한다는 주장을 절대 배격합니다. 본인은 구속의 교리를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하여 율법의 저주와 정죄로부터의 구속(갈3:13),구약의 의식주의에 내재된 몽학선생적 속박으로부터의 구원(갈3:23,4:2-5),스스로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획득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의 구속(롬10:4)을 믿으며,또한 죄와 관련하여 죄책으로부터의 구속(마26:28,엡1:7,골1:14),죄의 권세와 헛됨으로부터의 구속(롬6:12-22,딛2:14,벧전1:18019)을 따를 뿐, 사단에게 배상금을 주어 구출한다는 사단배상설에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넷째는 성육신 하신 목적이 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원시 복음이라는 것이다.
=>성육신 하신 것이 천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지 그 의도가 매우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비판자는 매우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본인의 저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여실히 나타납니다. 성자 하나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 즉 죄와 악과 죽음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다음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케 하기 위하여다(왕의 군대 21)
창세기 3장 15절 말씀(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탄을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나타내는 복음적 메세지입니다.
비 판
최바울의 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선교내용이 별로 없다.
=> 본인 최바울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인간을 구원하려 오셨다고 무수히 가르치고 설교하였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라는 말을 본인이 안하는데 어떻게 800여명의 선교사들이 인터콥에서 교육받고 이슬람권에서 목숨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있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만약 본인이 박형택 목사에 대해 "이것 이단이다"라고 평생 비판만 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데는 별로 관심도 없는 목사라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또한 더불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본인이 사탄의 역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요한일서 3장 8절("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말씀을 참조로 언급한 것은 "마귀의 일"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대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사단 마귀의 일을 멸하시며 또한 마침내 사단을 멸하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구속사역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것은 분리하여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탄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 접근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래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분명 "죄와 사탄"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고, 따라서 이 싸움의 최종 결과는 결코 의심할 수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적들> 사이의 대립은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후크마, 종말론)
"주님은 나라의 관념을 정치적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복이란 사단과 귀신들에 대한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한 정복인 것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최바울의 글 인용)
"하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완벽하게 증명하셨습니다."(세계영적도해 p.30)
"이 땅에 친히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당신이 전능하시며 선한 하나님이신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셨습니다"(세계영적도해 p.31)
=>본인의 책 전후 맥락을 보면 두가지, 즉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시며 또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확증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완벽하게 증명하겠다"는 것은 완벽하게 확증하셨다는 표현일 뿐입니나.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나나내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함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로 구원에 이르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본인이 이러한 뜻으로 "증명하셨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음 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이 깨닫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수준에서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을 완전하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세계영적도해 p.32)
여기서 본인은 "창조주 하나님이 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라며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필자가 "증명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신 것은"이라는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심과 우리를 사랑하심을 나타내셨다 또는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되심 증명하는 것이다“(세계영적도해 30-32)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본인이 "증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있으니 전체 맥락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밝혀드립니다. 본인이 사용한 "증명하다"는 "확증하다" 또는 "나타내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케 하기 위하여다(왕의 군대 21)
=> 성자 하나님이 성육신 하신 것, 즉 인간의 모습으로 육체 가운데 이땅에 오신 것은 천사들을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히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망권세 잡은 자 마귀를 없이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원시복음이다. (왕의 군대 21)
=>성자 하나님이 이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하시고 구원하시며 죽음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멸하기 위함입니다. (히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이러한 이러한 사실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저서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5. 우주창조, 인간창조의 목적에 대한 왜곡된 사상
하나님의 우주창조, 인간창조에 관한 최바울의 사상도 하나님의 사정이라는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
첫 번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정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아담과 하와의 고소로 합법적으로 마귀를 정죄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고
세 번째는 육체가 없는 영은 인간에게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에덴에 침투한 사단을 정죄하기 위하여 혈육을 가진 인간을 창조한 것이다.
네 번째는 하나님은 아담에게 범죄하게 한 배후를 지목하여 입술로 고백하기 원하시며 사악한 자를 분명하기 고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범죄의 배후를 찾고 있다고 한다.
(최바울의 글 인용)
“하나님의 인간창조는 인간 창조이전의 영적 대결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합법적으로 마귀를 정죄하기 위하여서이다”(세계영적도해 p.38)
"하나님이 인간을 육체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신 데는 아주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인간과 신들과의 관계가 얽히고설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혈육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 이유는 사망권세를 잡은 마귀를 없이하기 위함이다. 즉 천사가 아닌 인간을 자유하게 하기 위해서다"(왕의 군대 21)
“사단이 뱀의 육체를 입고 에덴에 잠입-아담을 자기 소유로 삼다(왕의 나라 머리말),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자유를 원해서 그 멍에를 없애려고 범죄(세계영적도해 p.199)
“아담과 하와의 사단고소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사단을 정죄하였다”(세계영적도해 pp.34-43)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사단을 정죄하셨으며 마침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정죄된 사단의 정사와 권세를 꺾으셨다”(영적도해 38)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타락시킨 배후를 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의 배후를 찾고 있다는 사실, 물론 하나님은 그 배후를 알고 계시지만 아담에게 배후를 지목하여 입술로 고백하기 원하신다. 사악한 자를 분명하게 고발하기를 원하신다(영적도해.41)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마지막 그 멍에를 없애려고 범죄한 것이 아닌가?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자유를 원했다”(영적도해.199)
=>위 내용은 박형택목사가 연구하기 훨씬 이전에 본인의 책에서 삭제된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 자아비판 글을 인터콥 홈피에 올렸습니다.
“사단이 뱀의 육체를 입고 하나님도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등장 하나님과 사단이 인간계에서 마치 신들의 전쟁전개하고 있다”(왕의 나라 p.10, 21)
=>이 내용은 수정되고 삭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왕국의 영적 대립은 성경적 및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을 영원히 멸하십니다.
박형택 목사가 2013년 현재 제기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본인은 KWMA 인터콥 지도위원회의 지도를 받으면서 여러 차에 걸쳐서 자아비판을 했었고, 지금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4.1)에 나타난 바대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히1:2; 요1:2,3; 창1:2; 욥26:13; 33:4) 태초에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인자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롬1:20; 렘10:12; 시104:24; 33:5,6), 무(無)에서부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6일 동안에 창조하셨고 또한 기뻐하시고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창1:1-31; 히11:3; 골1:16; 행17:24).”라고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그분에게 무슨 결핍이 있었거나 힘의 유출로 인한 것이 아님을 철저히 믿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세계영적전쟁을 주제로하여 책을 집필했으며,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영적 대립은 개혁주의 후크마의 저서에도 자주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하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왕국>(나라)도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끝날까지 악의 왕국의 힘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후크마).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또한 개혁주의 신학자 게할더스 보스의 저서에도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전쟁하는 당사자이시고 사람이 거기에 가담하여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이다"(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주님은 나라의 관념을 정치적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복이란 사단과 귀신들에 대한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한 정복인 것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6. 왜곡된 사단론(마귀론) 사상
첫째는 사단을 마치 하나님과 대등한 대결자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 이전의 하나님과 사단의 전쟁이 결국 인간계에서도 신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들의 전쟁이라고 본인이 표현한 것은 다소 오해될 수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이 동등하게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사탄과 영적 전쟁하는 당사자라는 사실은 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전쟁하는 당사자이시고 사람이 거기에 가담하여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이다"(게할더스 보스, 성경신학).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왕국>(나라)도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끝날까지 악의 왕국의 힘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후크마).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왕국의 영적 전쟁을 무시하고 관가한 것은 어거스틴 이후이다. 어거스틴은 예수님이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이요 사탄을 멸하셨기 때문에 영적 전쟁은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전통은 이후 계속되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랄프 윈터, 기독교문명사)
"신학은 시각에 따라 구속신학과 왕국신학이 있다. 구속신학 중심에서 접근으로 인간 타락과 구속이 강조된다. 왕국신학은 하나님의 나라 중심에서 접근으로 영적전투도 부각된다."고신대 신경규교수 KWMA특강 2012년)
"WCC에는 구속신학은 형식뿐이지만, 특히 영적 싸움과 재림론이 없다고 비판받는다. 영적전투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또 하나의 좌파신학의 특성이다".(아신대 이동주 교수).
한편 박형택 목사는 “에덴의 사건과 이후의 일관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처음부터 원수가 있었다는 것. 원수 사단이 존재하고 역사한다는 것”(영적도해.50)이라는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창조의 이전의 영적 전쟁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그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창1:31). 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들의 세계에서도 그 때에는 악한 천사나 마귀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는 뱀의 형태를 한 사단이 하와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유혹하는 것을 봅니다(창3:1-5). 그래서 미국의 청교도적 개혁신학을 충실하게 이어받는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은 창세기 1:31과 3:1의 사건 사이의 한 때에 천사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사들이 일어나 하나님께 범죄 했음이 틀림이 없다고 했습니다(조직신학 (상),웨인 그루뎀, Volume 1,p.622). 더 나아가 웨인 그룬뎀은 그의 <조직신학>에서 사단은 죄의 근원으로서 죄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한다고(창3:1-6,고후11:3) 했고,마귀들은 모든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고 대적한다(마4:1-11)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즉 온갖 종류의 파괴적인 활동을 사영하여 사람들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조직신학 (상),웨인 그루뎀, Volume 1,p.625).
그렇지만 박형택 목사가 제기하는 바처럼 본인은 사단이 마치 하나님과 대등한 대결자라고 결코 보지 않는다. 본인은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하시고 억제하시기 때문에 사단이 완전히 제 마음대로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한다고 믿고(욥1:12,2:6,마12:29,계20:2-3),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서 결코 다른 주장을 갖고있지 않습니다.
둘째는 사단이 에덴에 침입한 이유는 인간타락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해서라는 것과
=>사탄이 에덴에 침입한 이유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의도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창3:4-5)라며 유혹하는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인간의 타락에 뱀의 형태로 등장한 사단이 첫 사람들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불순종하도록 유혹했습니다. 그 결과 타락이 초래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한 사단의 활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박형택 목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본인은 사단의 능력을 하나님과 대등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제한과 허용 속에 사단은 활동한다는 성경적 진리를 믿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교리를 믿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주권 밖에서 하나님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는 추호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사단에게서 해방하는 것으로”만 믿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 사역의 구속이 갖는 다면적인 의미 중에 하나로만 사단의 문제를 보고 있고 다만 책의 전체적인 주제가 영적전쟁이기 때문에 초점이 편중되었다고 봅니다. 마귀들은 하나님의 통제에 의해 제한되어 있고 그들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마침내 영원한 멸망에 이를 존재입니다.
셋째는 아담과 하와를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는 것이며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H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요일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넷째는 사단이 사람에게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이는 방법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 사단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 즉 선악에 관한 또는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어라라고 유혹함으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도록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 지식과 지혜로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선악과 열매를 "먹어라"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먹다"는 표현처럼 "따른다, 받아들인다"는 은유적인 뜻입니다. 이 정도는 정상적인 성도라면 누구나 아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다섯째 사단은 가인을 최초의 살인자로 만든 장본이라는 것이다.
=> 본인은 가인을 최초의 살인자로 만든 장본인이 사단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본인의 글을 박형택목사가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범죄한 것은 자신이 아우를 시기함으로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범죄 전에 안색이 변한 것을 보시고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죄가 가인을 다스린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 마귀에 속하여 범죄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하여 범죄한 것입니다(요일3:8).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요일 3:12)
한편 창세기에선 가인의 아벨 살해 장면에 사단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신약 성경은 다릅니다. 요한 사도는 기록하기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요일3:12)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악행의 배후에 사단의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섯째 사단은 세계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새로운 갈등으로 소용돌이 치게하고 사회 공산주의와 자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갈등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며 또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 즉 주님의 재림을 막기 위해 활동합니다. 공산주의도 그 중 하나이며 자본주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몰론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다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 높아져 사람들을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여기서 모든 "이론"은 헬라어λογισμός (log-is-mos') "사상적 논리"ㄹㄹ 의미하며, 또한 여기서 "모든 생각"은 핼라어 νόημα(no'-ay-mah)로서 "목적있는 생각 및 사상"을 의마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저다 사람들 가운데 높아진 모든 사상과 생각은 궁극적으로 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 역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웃즈 바르트>는 서구 기독교사회의 근본적 잘못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궁극적인 사회적 선으로 삼은 것이다".(니콜라스 얼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모던 클래식스)
"사실 칼빈은 그의 사역지 제네바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Andre Bieler는 칼빈의 경제사상을 오히려 사회주의와 가까운 "인격주의적 사회주의(Personalist Socialism)라고 부른다.(Andre Bieler, The Social Humanism of Calvin, trans. by Paul T. Fuhrmann).
"프리드 그레이엄(W. Fred Graham)은 칼빈의 제네바를 기독교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했다".(Graham))
비판
특히 사단은 주님의 재림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세계를 갈등으로 몰아 넣었다는 주장도 비성경적 사상이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이 어떤 장애물로 인하여 늦춰지거나 어떤 조건 때문에 당겨진다는 사상을 말씀하지 않는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단에 의해서 주님의 재림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적정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다 아루어지기 때문에 사탄의 방해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방해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나타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1-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눅22:3).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26:24)
(최바울의 글 인용)
“에덴의 사건과 이후의 일관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게된 것은 처음부터 원수가 있었다는 것. 원수 사단이 존재하고 역사한다는 것”(영적도해.50)
=>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사단이 에덴에 침입한 이유는 인간타락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한 목적(세계영적도해 p.39) 아담을 자기 소유로 만들다(왕의 나라 머리말)
=> 사탄이 에덴에 침입한 이유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의도는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창3:4-5)라며 유혹하는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He who does what is sinful is of the devil)
“사단도 육체로 인간계에 들어오고 하나님도 육체로 인간계에 임하셨다. 사단도 육체를 입고 인간계 곧 에덴에 진격하고 하나님도 결국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왕의 군대 21)
=> 매우 은유적인 표현으로 설명했으나 과도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여 수정하였습니다.
"사악한 사단이 뱀의 육체를 입고 에덴에 잠입 아담을 자기 소유로 만듬"(왕의 나라. 머리말)
=>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인간을 유혹하여 범죄케 함으로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합니다(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사단은 사람에게 지식의 나무의 열매는 먹이는 방법으로 역사(왕의 나라.11)
=> 사단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 즉 선악에 관한 또는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어라라고 유혹함으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도록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 지식과 지혜로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선악과 열매를 "먹어라"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먹다"는 표현처럼 "따른다, 받아들인다"는 은유적인 뜻입니다. 이 정도는 정상적인 성도라면 누구나 아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은유적인 표현은 성경 기자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의 설교나 저서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타락시킨 배후를 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의 배후를 찾고 있다는 사실, 물론 하나님은 그 배후를 알고 계시지만 아담에게 배후를 지목하여 입술로 고백하기 원하신다. 사악한 자를 분명하게 고발하기를 원하신다(영적도해.41)
=> 배후 지목, 고발 등의 부분에 대해 문제를 인정하고 박형택목사 연구 훨씬 전 2010년초에 책에서 삭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해를 구합니다.
“가인을 최초의 살인자로 만든 사단의 수법은 늘 동일하다...가인은 아벨이 미워서 살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서 아벨을 죽인 것이다.(세계영적도해. 61)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했으나 이는 하나님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입니다. "하나님이 미워서"라는 것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인의 반항심과 불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단의 세계경영은 다음과 같다.
“ 사단-아담과 하와(선악과)-최초의 살인자 가인을 통한 도시 즉 원초적 문명-가인의 후예들-니므롯-바벨론 문명(음녀 고대 바벨론 신 에에게 신/시벨로 신:자유와 풍요의 신)-이집트 문명(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고대 헬레니즘(아르테미 여신)-로마제국(다이아나 여신)-기독교 침투(마리아 여신)-프랑스 혁명(프리메이슨/계몽주의)-미국 팍스 아케리카(자유의 여신/음녀)-WTO를 중심한 신세계질서-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세계통폐합-적그리스도 등장으로 666 매매권력을 통한 글로벌전산통제시스템-적그리도가 통제체제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화해 세계평화구축-적그리스도의 성도의 권세 꺽는 핍박-왕의 군재 출현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왕의 대로 구축-그리스도의 재림.”
=> 본인의 책 참고문헌을 참조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아래 저서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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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S. Lindemann, A History of European Socialism, Yale University Press, 1983.
Andre Bieler, The Social Humanism of Calvin, trans. Paul T. Fuhrman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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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Goudzwaard, Globalization and Kingdom of God, 2006.
Bob Goudzwaard, Capitalism and Progress, a Diagnosis of Western Society, Trans. By Josina van Nuis-Zylistra, 1979.
Bob Goudzwaard, Idols of Our Time, Trans. By Mark Vander Vennen,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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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세계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새로운 갈들으로 소용돌이 치게 하고 사회 공산주의와 자유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일으켰다”(백투예살렘. 94)
=> 모세 당시 이스라엘이 거짓 신들을 섬겼던 것에 대해서 성경은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신32:16-17)라고 했고, 바울 또한 지중해 연안의 거짓 종교들에 관해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닐"라고 말했습니다(고전10:20). 따라서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마귀를 섬겼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이방 나라들을 대적한 이스라엘의 전쟁은 마귀의 세력과 악한 자의 능력(요일 5:19)의 지배를 받던 나라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전쟁은 물질적인 전쟁이었던 만큼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유물론 사상으로서 분명히 성경의 하나님의 계시를 정면으로 도전하고 종교를 아편이라고 선전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한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경우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은총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들이 분명히 있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으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는 갈수록 사람들을 약육강식의 무한 경쟁과 탐욕의 우상으로 빠져 들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며 또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 즉 주님의 재림을 막기 위해 활동합니다. 공산주의도 그 중 하나이며 자본주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몰론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 다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 높아져 사람들을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여기서 모든 "이론"은 헬라어λογισμός (log-is-mos') "사상적 논리"ㄹㄹ 의미하며, 또한 여기서 "모든 생각"은 핼라어 νόημα(no'-ay-mah)로서 "목적있는 생각 및 사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저다 사람들 가운데 높아진 모든 사상과 생각은 궁극적으로 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 역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웃즈 바르트>는 서구 기독교사회의 근본적 잘못은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궁극적인 사회적 선으로 삼은 것이다".(니콜라스 얼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모던 클래식스)
"사실 칼빈은 그의 사역지 제네바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Andre Bieler는 칼빈의 경제사상을 오히려 사회주의와 가까운 "인격주의적 사회주의(Personalist Socialism)라고 부른다.(Andre Bieler, The Social Humanism of Calvin, trans. by Paul T. Fuhrmann).
"프리드 그레이엄(W. Fred Graham)은 칼빈의 제네바를 기독교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했다".(Graham))
7. 에덴의 선악과와 왜곡된 타락론
최바울의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대한 사상과 인간타락론은 비성경적인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첫째는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를 “지식의 나무”로 보고 인간이 발전시킨 지식과 문명이 음녀와 적그리스도의 도구가 된다는 주장이고
=> 대부분의 개혁주의신학자들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선악의 나무' 또는 '선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로 이해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나무의 이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며 영어 표현으로는 선악의 지식의 나무 (tree of knowledge of good-and-evil)입니다. 게할더스 보스의 견해처럼 선악을 아는 나무가 선악을 아는 마술적 힘이거나 동물 상태에서 이성적 존재로 상승하는 묘약으로 보는 것은 이교적인 견해입니다. 이 나무에 대해서 바빙크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통찰력과 판단으로 선과 악을 알게 됨".."선악을 아는 지식은 자기 발로 독립하여 스스로 그 길을 찾는 기술", "사람에게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가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대적하여 사람이 독자적이며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보고 선택에 초점을 두는 해석을 주장합니다. 반면에 게할더스 보스 선택의 관점보다 시험의 시각에서 해석합니다. 즉 게할더스 보스는 먹음을 즉 경험으로 선악의 지식에 이름을 강조하고, "시험probation을 통해 인간을 최고의 복락이 보장되는 종교적.도덕적 상승의 상태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서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지칭되는 성숙의 상태”,“시험을 통과하면 선한 방식으로 선악을 아는 지식에 이르고 타락하면 악한 방식으로 그런 일이 일어남" 등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tree of knowledge of good-and-evil에서 선-악을 히브리적인 레토릭에서 모든 것이라고 보는 견해 또한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둔 나무들의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서 있었지만, 사단은 이것을 유혹의 수단으로 사람을 하나님보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길을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그후로 인류는 사단의 거짓말, 즉 결코 죽지 않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는 사단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더 순종하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안점식 교수의 <세계관을 분별하라>에서는 세계종교의 세계관을 기원을 이러한 4가지 거짓말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학과 지식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며 가치중립적인 것이고 또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서 선한 것일 수 있으며,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세상 주권과 통치하심은 변함없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지만,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많습니다. 본인은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기술과 문명, 그리고 인본주의적 지식의 문제를 분석하려고 하였습니다. 본인은 바빙크 견해에 따라 지식을 '인간 스스로 모든 것을 아는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인본주의적 지식과 바벨문명, 즉 원형문명(Proto-Civilization)은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말텐스의 <새로운 구약신학-하나님의 계획>의 다음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의 서두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사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 데 있어서 그 둘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사단의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악이란 말은 물론 유혹의 도덕적 국면들을 명시해 주기도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개념들을 조화시켜서 모든 것이라는 뜻을 가진 일종의 히브리어 숙어를 또한 가리키고 있다. 그 유혹자는 사람이 어떤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을 알도록 하는데 있었다. 신성한 것을 체험하려는 욕망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체험을 추구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었다"
"세상을 그 죄의 상태로부터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파괴적인 영향이 미치는 두 영역에 상응하여 두 가지 과정을 따라 행하셨다. 이 두 영역은 <존재의 영역>the sphere of being과 <지식의 영역>the sphere of knowledge이다. 존재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구속의 과정이 채용되며, 지식의 영역에서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계시(말씀)의 과정이 사용된다."(게할더스 보스)
게할더스 보스는 지식에서 성경말씀의 계시로의 전환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며 과학문명보다 더 탁월한 기적은 일으키섰으나 과학문명의 개발을 시도하신 적은 없습니다.
둘째는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자유를 원해서 그 멍에를 없애려고 범죄했다는 것이고
=> 개혁주의 조직신학자 Reymond, Robert는 원죄 사건을 분석하면서 뱀은 간교하게도 과장된 표현("모든 나무의")을 사용함으로써 하와로 하여금 자신의 신분을 속박하고 있는 제삼자의 신분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거부감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뱀의 과장된 표현은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의 금지 명령에 마음을 쓰게 만들고, 또 그가 제삼자에 의하여 속받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최신 조직신학,Reymond, Robert L.). 이에 대해 게할더스 보스는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는 하와의 말에서 그가 마치 하나님의 조처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처럼 자신의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주장합니다(Vos,Biblical Theology). 이렇게 본다면 분명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당한 속박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며, 사단의 말대로 하나님이 그들이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려고 선악과에 대한 금지명령이 내렸다고 보고, 사단의 말대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다는 데서 그들의 선택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으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즉 누구나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유를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사탄의 유횩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지고 주께 순종해야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아담을 타락시킨 배후를 물으시고 마귀를 정죄하셨다는 것이며
=> 창세기 3장 15절은 신학적으로 원복음에 해당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 말씀에 기초하여 구속의 역사가 성경 전체에 전개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마귀의 머리를 부서진다는 사실, 메시아의 피흘림의 순종과 대속을 통해서 마귀의 권세는 부서진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습니까?. 따라서 본인은 아담의 타락이 전적으로 사단의 조종이라고 보지 않고, 분명 1차적인 책임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최초 사람에게 있다고 믿지만, 사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 자연이 정죄를 받은 것처럼 사단도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조처를 통해서 사단의 책임도 있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후에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3:11)"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범죄를 하였느냐? 먹지 말라했는데 왜 불순종했느냐?"는 뜻인데 마치 배후를 추궁한 것처럼 본인 강조함으로 잘못되어 그 오류를 인정하고 본인이 스스로 박형택목사가 연구하기 휠씬 전에 이미 이 부분을 삭제하였습니다,
넷째 인간타락 이후에야 하나님은 마귀를 정죄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최초 범죄한 후에 마귀를 정죄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의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14절(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은 단순히 동물 뱀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여가서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또한 창세기 3장15절(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은 구속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행위언약을 주셨으며 타락이후 구속언약, 즉 은혜언약을 주셨습니다.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구속언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비 판
이러한 내용은 비성경적 위험스런 이단사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의 첫 번째 행위계약을 체결하신 방편이었지 그 나무 자체가 인간의 죄악의 문명을 이루는 지식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본인은 나무 자체가 인간의 죄악의 문명을 이루는 지식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본인의 글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 일부만 보고 오래한 것입니다. 본인은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인본주의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또 말씀을 버리고 그러한 지식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입니다.
범죄가 되는 것은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말씀을 불순종한 것 때문이다. 최바울 선교사는 그의 설교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말씀을 거부하고 지식을 택한 것이 범죄요 비극이라고 말한다. 말씀이냐 지식이냐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관하여 말씀하는 것(롬5:19)이지 말씀과 지식의 선택을 말씀하지 않는다. 타라서 인간의 타락론에 있어 최바울의 사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며, 더불어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주된 원인으로 말씀보다 인본주의적 지식을 추구하는 행태로 보고 이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최바울은 아담과 하와가 완전한 자유를 원해서 그 멍에를 없애려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선택하여 범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악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했기 때문에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따먹음으로 계명을 어긴 것이지 자유를 원해서가 아니다. 이것도 성경에는 없는 잘못된 사상이다.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유가 단순히 "충동을 이기지 못해 범죄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유혹을 이기지 못해" 범죄했으며 이미 하나님께서 먹지말라고 하셨는데도 먹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했습니다. 하와가 보안직도하고 먹음직도 하여 유혹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박형택목사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범죄했다"고 하고 있으나 것은 이것은 오감을 통한 충동만을 범죄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것으로써 아담과 하와가 "지정의"의 전인격적인 범죄을 항한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오감을 통한 충동적 범죄가 아닙니다. 전인격적인 범죄입니다. 박형택 목사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충동을 못이겨 범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씀에 불순종한 전인격적인 범죄의 사실을 사실상 부인한 것으로 매우 위험한 이단적 사상이라 할 수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마귀의 정죄를 위해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상도 하나님의 사정에 대한 논리에 맞춘 이단적인 사상이며 인간의 타락 직후에 하나님은 사단에게 저주를 선포하시고 인간에게는 구원을 선포하심으로 인간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고 대응이라는 주장도 잘못된 사상이다.
=>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조장하시거나 지켜보며 방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허용된 작정'으로 보아야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범좌 전에 행위 언약을 주셨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인간의 범죄는 이전에 행위언약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범죄행위인 것입니다.
인간창조전에 하나님의 사정 때문에 못하다가 인간의 범죄가 사단을 고소한 것이 되어 저주를 선포하셨다는 주장은 성경에 없는 사상이며 하나님은 바로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의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한 것이다(창3:15) 이 모든 사상이 하나님의 사정과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성육신 하신 것과 하나님의 사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신 것과 에덴에서 하나님의 사정을 해결했다는 이단적인 사상의 합리화인 셈이다.
=>"하나님의 사정 때문에 못했다"고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잘못된 부분을 삭제하였습니다. 구원을 선포했다는 것은 구속언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속언약은 은혜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메시야가 오시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살 것, 즉 은혜언약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일종의 원시복음입니다.
(최바울의 글 인용)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살라고 하셨으나 사단은 지식으로 살라고 도전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다. 그들은 말씀을 거부하고 지식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지식권력으로 말씀의 권세를 무력화하려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따라서 교회사역 및 선교사역에 있어서 영적 대결의 중심에는 말씀이냐? 지식이냐? 바로 이 선택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최바울 설교 / 지식의 나무 창2:16-17)
=>사단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 즉 선악에 관한 또는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어라라고 유혹함으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하도록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세상 지식과 지혜로 살아가도록 유혹합니다. 선악과 열매를 "먹어라"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먹다"는 표현처럼 "따른다, 받아들인다"는 은유적인 뜻입니다. 이 정도는 정상적인 성도라면 누구나 아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은유적인 표현은 성경 기자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의 설교나 저서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학적 기법입니다.
대부분의 개혁주의신학자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악의 나무' 또는 '선악에 관한 지식의 나무'로 이해합니다. 바빙크 견해에 의하면 지식은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지식과 바벨 문명, 즉 원형문명(Proto-Civilization)은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을 먹지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인본주의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또 말씀을 버리고 그러한 지식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비판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 스스로 만든 인본주의적인 지식과 지혜을 따라 사느냐 선택해야합니다. 영적전투에서 귀신을 좇아내고 마귀를 추성적으로 대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느냐 불순종하고 스스로의 지식과 지혜로 사려고 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사단은 광야에서 먹고사는 경제의 문제로 시험했으나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시면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자유를 원해서 그 멍에를 없애려고 범죄(세계영적도해 p.199)
=>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으나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즉 누구나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유를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사탄의 유횩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주시는 멍에를 지고 주께 순종해야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사단고소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사단을 정죄하였다”. (세계영적도해 pp.34-43)
=>박형택 목사 연구 수년 전에 삭제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 자아비판 글을 인터콥 홈피에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타락시킨 배후를 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의 배후를 찾고 있다는 사실, 물론 하나님은 그 배후를 알고 계시지만 아담에게 배후를 지목하여 입술로 고백하기 원하신다. 사악한 자를 분명하게 고발하기를 원하신다”(영적도해.41)
=>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후에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창3:11)"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를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왜 범죄를 하였느냐? 먹지 말라했는데 왜 불순종했느냐?"는 뜻인데 마치 배후를 추궁한 것처럼 본인 강조함으로 잘못되어 그 오류를 인정하고 본인이 스스로 박형택목사가 연구하기 휠씬 전에 이미 이 부분을 삭제하였습니다,
“인간 타락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는 저주를 선포하시고 인간에게는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것이 바로 인간타락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고 대응이다”(세계영적도해.432)
=>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최초 범죄한 후에 마귀를 정죄하시고 인간에게 구원의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14절(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은 단순히 동물 뱀을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여가서 뱀은 사탄을 의미합니다.(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또한 창세기3장15절(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은 구속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행위언약을 주셨으며 타락이후 구속언약, 즉 은혜언약을 주셨습니다.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것은 구속언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15절의 구속언약을 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타락 이후에 구원의 길을 보이시며 은혜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합신 박형택 목사의 최바울의 이단성 조사 보고서에 대한 해명(2)
8. 비성경적인 복음의 서진과 백투예루살렘 사상
최바울의 사상가운데 백투예루살렘 사상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사상이 복음의 서진운동이라는 사상과 맞물려 절묘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 사상에는 세대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1)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된다는 전제와 2) 예루살렘의 평화가 세계평화의 평화요 3) 아브라함의 가정 곧 이삭과 이스마엘에게서 시작된 갈등이 이슬람과 유대교의 갈등이요 이 갈등이 이슬람 57개국과 서방 세계자유주의 국가와 갈등으로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적그리스도에 의해 해결된다는 주장이다.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첫째가 복음은 계속 서진한다는 것이고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사방팔방 육대양오대주 전세계 모든 민족을 향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복음운동 선교운동의 중심은 계속 서진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지난 가독교선교역사에서 나타나는 거시적 및 통시적인 패턴입니다. 복음운동 선교운동의 중심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 영국 미국을 지나 지금은 동아시아교회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편 <복음의 서진운동>은 2006년 1월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이사장 통합 박종순목사, 회장 합동 강승삼목사, 사무총장 합신 한정국 목사; 한국최대 선교단체연합회로서 160여개의 한국 대부분의 교단 및 선교단체가 개입되어 있음)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세계선교비전> 문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의 대부분의 교단 선교부가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본인은 종말에는 복음의 서진보다는 이방종족 선교과 이후 세계 사방에서 세계교회가 유대인을 행해 선교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땅끝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요
=>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결국 유대인들이 집단 거하는 예루살렘으로 전파되어간다는 것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한국 장로교회 목사 성도들이 대체로 믿어온 내용입니다. 성경말씀도 이런 맥락을 포함합니다: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롬11:25-27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즉,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터인데, 이방민족들에게 전파되고 이후 유대인에게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선교운동이 유대인이 집단 거주하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로 향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선교학적 해석이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선교정책 추진을 선교신학적으로 문제시 하는 것은 과잉 반응이라고 봅니다.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이러한 신학을 주장해왔습니다:
"모든 민족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적그리스도가 정복되면 주님의 일은 완성된다".(Oliver Heywood's DiRies, edited by J. Horsfall Turner; 조나단 에드워드, 청교도소망)
셋째 인류역사의 영적전쟁의 중심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며
=>역사적으로 특히 이스라엘 건국 이래 중동은 세계 최고의 분쟁지역으로 계속남아있습니다. 에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근본핵심은 "동예루살렘 문제"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지금 세계의 영적 전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적 해석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분석적 이해입니다. 한국동란을 여러가지 관점에서 영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듯 그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문제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이방인의 따가 차기까지 고통하고 갈등을 할 것이다"고 언급하셨습니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21:24).
여기서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는 롬11장 25절 말씀으로 보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기까지 이며 마태복음24장 14절에 비추어보면 모든 이방 민족에 복음이 전파될 때 까지입니다. 따라서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유대인들이 주께 돌아오기까지 예루살렘을 밟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의 책에 역사적 및 현상적으로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넷째 백투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세계경영 영적전쟁의 글로벌 프로젝트이며
=> 백투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것은 복음의 서진운동이 세계 여러 교회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교회나 단체든지 세계 어느 특정 지역을 비전으로 선교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 지역은 이슬람이 집중 포진된 곳으로 이러한 선교비전 또는 모토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합니다. 선교영적전쟁은 복음의 서진운동이 곧 이슬람선교인 만큼 그만큼 영적으로 어려운 선교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집중적인 기도가 요청된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이해시키고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본래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선교하자는 것으로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대부분 이슬람권임을 고려할 때 이슬람선교하자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특정 자역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백투예루살렘은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to Jerusalem)" 선교하자는 이슬람선교운동이며 구호입니다. 이슬람을 불팔요허게 자극하는 식으로 "이슬람선교하자!"는 선교적 용어를 공공연하 하는 것보다 은유적인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9.11 사태이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선교하는 단체나 교회들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사료됩니다. 이것에 극단적 세대주의 등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비판하는 것은 오하려 이슬람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섯째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세계를 통치한다는 것이요
=>본인은 마태복음 24장15절에서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리라"는 말씀에서 가증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종말론적으로 적그리스도적 존재 또는 적그리스도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거룩한 곳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최근 예루살렘을 세계수도로 하려는 국제정치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를 고려한 것입니다.
여섯째 마지막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본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재림하신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그렇게 확신하지도 않습니다. 재림의 때와 시 뿐만 아니라 재림의 장소는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번개가 하늘 이편저편 번쩍이듯 홀연히 공중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비 판
복음의 서진이나 동진이나 북진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지 않는다. 복음의 확산을 말씀한다. 예루살렘과 온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루살렘에서부터 (행1:8)확산된다는 말씀이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눅24:47)전파된다고 말씀한다. 복음의 서진운동은 백투예루살렘을 주장하기 위한 방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복음의 동진보다는 서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서방의 로마를 통해서 복음이 확산된 것을 우리는 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백투 예루살렘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하는 잘못된 사상이다. 본래 이러한 사상은 홀린 세이의 “대유성지구의 종말”이나 살렘 키르반의 “인류의 종말” 팀 라하이의 “요한계시록 해설”이나 “세계의 화약고 중동사태”등에서 나온 사상으로서 땅 끝을 예루살렘으로 보고 유럽의 공동체에서 적그리스도가 출현한다는 발상아래 나온 것이다.
=> "중국부터 예루살렘까지 선교하자"는 선교구호로서 백투예루살렘은 1930년대 중국교회에서 시작한 선교운동입니다. 박형택 목사가 언급한, 홀린 세이의 “대유성지구의 종말”이나 살렘 키르반의 “인류의 종말” 팀 라하이의 “요한계시록 해설”이나 “세계의 화약고 중동사태” 등 착들이 언제 출판 된 것인지 모르나 중국교회의 백투예루살렘은 그 이전에 나온 선교운동입니다. 이러한 책들과 관계없습니다. 더군다나 중국교회 지도자들이나 중국성도들은 이러한 책에 대해 문외한입니다.
중국 밖에 해외에서는 2003년에 미국의 세계선교지도자 토마스왕과 루이스부시에 의해서 샌프란시스코 <백투예루살렘국제컨퍼런스>에서 맨처음 소개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극히 일부에서 토마스왕과 루이스부시를 세대주의자라고 하면서 흠집 내지만 이 두분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교회에 가장 잘 알려진 세계선교 지도자로서 선교한국 및 KWMA 등 국내 교단 및 선교단체 연합회에서 주최한 선교대회 주강사로 수차례 초빙된 분들입니다. 인터콥은 이러한 세계선교지도자들이 소개하고 제시한 선교비전을 따라서 2003년 이후부터 이와 맥락을 같이하고 선교운동과 선교사역 해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본인이 개혁교단 공청회 및 합신교단 공청회를 비롯하여 수차례 공개적으로 해명한 바 있습니다.
2008년경 합동교단에서는 본인 최바울선교사에게 "백투예루살렘 용어를 사용하되 세대주의로 오해되지 않도록 잘 설명하면서 사용하라"고 결정하고 권면했습니다.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합동교단의 결정과 권면을 따라 사역했으며 2011년 말에 KWMA지도위원들이 백투예루살렘 용어사용을 자제하라고 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KWMA지도위원들에게 '백투예루살렘 또는 복음의 서진운동이 선교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전문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수차례 구두 청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가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알려진 어느 선교신학자도 이슬람선교운동 모토로서 백투예루살렘 선교운동이 문제라고 연구발표를 통해 밝힌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신교단의 저명한 선교신학자는 중동 모국가에서 개최된 해외한국선교사 집회 주강사로 초빙되어 가서 '백투예루살렘선교운동은 세대주의가 아니면 선교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땅끝이 아니며 천국복음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사상은 이방인의 때가 차면 유대의 남은 자들이 주께 돌아와 구원받는다는 사상이지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영적 중심이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는 성경구절이 없다.
=>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예루살렘이 땅끝이다고 믿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나중에 복음을 받을 유대인을 말씀하는 로마서 11장에 기인된 것입니다. 박형택목사가 이것을 비판하기를 원한다면 로마서 본문에 대해 "종말론적 및 선교적 관점에서" 김목사 자신의 해석을 내놓아야할 것입니다. 자신의 해석을 내놓거나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비판만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으며 지상의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내용이 없다. 또한 적그리스도에 대하여도 주님은 다수의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지 한 사람을 말하고 있지 않다((마24:24) 요한은 많은 적그리도에 대하여 말하고 이미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말씀한다(요일2:18)
=>성경은 지상의 예루살렘(팔레스타인)과 영원한 하늘나라 예루살렘을 다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지상의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통치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럴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누구도 단정할 수없는 난해주제입니다. 만약 누군가 박형택 목사에게 "그러면 적그리스도가 어디에 있겠느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모른다"고 대답하겠지요. 그렇다면 모른다면 "아니다"라고도 주장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이것은 논리학뿐만 아니라 윤리학의 기본개념입니다.
따라서 최바울 선교사가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사상을 주장하면서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갈등을 세대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재건과 미국의 9.11 테러사건과 연결시켜 인터콥 선교회의 위치를 드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된다.
복음의 서진운동과 백투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세계경영이요 글로벌프로젝트라는 사상은 성경에는 없은 위험한 사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백투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것은 복음의 서진운동이 세계 여러 교회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교회나 단체든지 세계 어느 특정 지역을 비전으로 선교할 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 지역은 이슬람이 집중 포진된 곳으로 이러한 선교비전 또는 모토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합니다. 선교영적전쟁은 복음의 서진운동이 곧 이슬람선교인 만큼 그만큼 영적으로 어려운 선교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집중적인 기도가 요청된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이해시키고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본래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선교하자는 것으로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대부분 이슬람권임을 고려할 때 이슬람선교하자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특정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백투예루살렘은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to Jerusalem)" 선교하자는 이슬람선교운동이며 구호입니다. 이슬람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식으로 "이슬람선교하자!"는 선교적 용어를 공공연하 하는 것보다 은유적인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9.11 사태이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선교하는 단체나 교회들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사료됩니다. 이것에 극단적 세대주의 등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비판하는 것은 오하려 이슬람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인터콥은 인터콥선교회의 위치를 드높이려는 의도에서 백투예루살렘 선교운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드높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백투예루살렘 선교운동이 한국교회에 알려지기 이전 1992년부터 인터콥은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이슬람권 선교를 감당하려는 동일한 비전으로 사역해왔습니다. 그러나 9.11이후 국제정세의 민감성을 고려하여 "이슬람 선교하자"는 용어보다 백투예루살렘 용어를 차용하여 사용해왔습니다. 이 용어 사용이 인터콥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터콥은 이 지역의 모든 민족에 복음이 전해지고 유대인까지, 즉 예루살렘까지 복음이 전해지면 주님이 오신다는 믿음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는 말씀이 인터콥선교회의 선교기반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복음의 서진운동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2006년 1월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이사장 통합 박종순 목사, 회장 합동 강승삼 목사, 사무총장 합신 한정국 목사; 한국최대 선교단체연합회로서 160여개의 한국 대부분의 교단 및 선교단체가 가입되어 있음)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세계선교비전> 문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합신교단 선교부를 포함하여 한국의 대부분의 교단 선교부가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위험한 사상이라고 한다면 2006년 한국 내 모든 주요교단 선교부는 위험한 사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후 합신교단 선교부를 포함하여 어느 교단 선교부도 복음의 서진운동을 부정하는 공개 자아비판을 한 적이 없으니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위험한 사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피상적으로 선교운동을 이해함으로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막무가내 비판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와 한국교회를 위해 옳은 태도는 아닐 겁니다.
(최바울의 글 인용)
"예루살렘에 시작된 복음의 서진운동에 저항한 모든 국가와 민족은 무너졌고 복음의 서진 운동은 한국,중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고 강력한 짐승의 권세로 다가오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앞에 교회와 성도들이 세속화되고 무너지고 있다(왕의 군대.12)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지속된 복음운동에 저항하는 국가와 민족은 복을 받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천박한 자본주의 행태를 노출하면서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이러한 풍조가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만연하면서 최근 세계교회는 급속화 새속화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는 박투예루살렘의 천국운동이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의 성취되고 있다. 천국 복음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마지막 복음의 서진운동을 통하여 행진을 하고 있다”. 왕의 대로 256)
=> 백투예루살렘 선교운동, 즉 이슬람선교를 성취하는 것은 모든 민족에 천국복음이 증거되면 끝이 오리라는 말씀을 성취하는 주요한 선교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중심 이스라엘에 거하는 유대인들은 다른 이방민족들이 목음을 받고 그리고 이후 마지막에 복음을 받게될 민족입니다.
"인류 역사를 관통하며 지속된 영적전쟁 지구 영적전쟁의 중심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인류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지속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적 맥락에서 영적으로 볼때 예루살렘이 가장 치열한 영적전쟁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백투 예루살렘하고 있다”(왕의 군대.136-137)
=>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역사, 즉 "천국복음 전파의 역사"는 모든 이방민족으로 그리고 종래는 유대인에게로 향하여 갈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글로벌 프로젝트, 세계경영, 영적전쟁전략이다”(백트예루살렘.142)
=>모든 만족에 복음이 증거되고 이제 얼마남지 않는 이 사대에-세계복음화 통계자료들 참조- 이제 이슬람선교와 유대인 선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고 행하실 사역이며, 이슬람선교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 사역은 치열한 영적 전투가 있을 것을 각오해야합니다.
“하나님의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 예루살렘은 세계의 영적 전쟁의 중심, 세계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세계경영의 역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 예루살렘에서 세계의 영적전쟁은 구체화, 역사적으로 증폭되고 팽창한 형제갈등”(왕의 군대 머리말)
=>인류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지속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적 맥락에서 영적으로 볼때 예루살렘이 가장 치열한 영적전쟁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역사, 즉 "천국복음 전파의 역사"는 모든 이방민족으로 그리고 종래는 유대인에게로 향하여 갈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 복음이 증거되고 이제 얼마남지 않는 이 사대에-세계복음화 통계자료들 참조- 이제 이슬람선교와 유대인 선교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고 행하실 사역이며, 이슬람선교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 사역은 치열한 영적 전투가 있을 것을 각오해야합니다.
기독교/유대교 및 이슬람교 사이의 오래된 역사적 갈등과 분쟁은 다른 표현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이와 관련 개혁주의신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시대의 표적들이 있다. 시대의 표적은 선교적 복음전파의 완성, 이스라엘의 회심, 큰 배교,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등장 등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베르카우어, 안토니 후크마)
"모든 민족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적그리스도가 정복되면 주님의 일은 완성된다".(올리버 헤이우드)
“적그리스도와 세계평화 그리고 예루살렘-사악한 세력은 100년 동안 매매권력 장악, 인간통제기술 집중 개발 짐승의 출현준비-신세계질서 구축하며 적그리스도체제 구축-적그리스도 즉 가증한 짐승이 거룩한 곳에 등장-이것 때문에 예루살렘이 세계의 수도로 선포되고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전에 앉아 세계를 호령-사악한 세력은 예루살렘을 세계의 수도로 만드는 작업-예루살렘이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이 끝나고 유대고 기독교 이슬람교 등 예루살렘 평화정착 적그리스도 세계지배- 적그리스도는 매매권력과 666인간 통제시스템을 가동 모든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 666글로벌 전산통제 시스템의 가동으로 범죄와 테러등 모든 위험이 지구촌에서 사라지고 평화 (왕의 나라.36)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에서 유대교와 이슬람의 화해-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 - 신 자유주의와 군사적 패권주의 - 서구 물질문명과 이슬람 종교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 사회공산주의와 자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갈등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서방제국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57개 이슬람 국가의 갈등”.(왕의 대로.113-115, 127)
=>
=> 역사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과 사탄,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넘을 수없는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K.E. Skydsgaard 1951)
종말이 다가올수록 표적들은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고 어떤 절정을 향해 움직여 가게 될 것이다. 배교는 훨씬 더 광범위해질 것이며 박해와 고난은 대환란이 될 것이며 적그리스도적인 세력은 불법의 사람에서 절정에 이를 것이다. (안토니 후크마, 종말론)
"세계사 속에 지속되어온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긴장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역사에는 그런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관통할 대립,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의 적의를 예고하였다. 이 대립관계는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후크마, 개혁주의종말론).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사탄의 왕국>(나라)도 계속해서 존재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세상 끝날까지 악의 왕국의 힘이 지속될 것을 암시한다".(후크마).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후쿠마).
"그리스도는 분명 "죄와 사탄"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고, 따라서 이 싸움의 최종 결과는 결코 의심할 수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적들> 사이의 대립은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후크마, 종말론)
"주님은 나라의 관념을 정치적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복이란 사단과 귀신들에 대한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한 정복인 것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근대과학 기슬의 광장한 업적을 고려할 때 우리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있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과 안전은 이전보다 더욱 멀리 우리를 떠난 것 같다. 물질구조에 있어서 새로운 발견이 놀라운 것이나 악한 사람의 수중에 들어갈 때에는 지구상에 있는 인간사회를 쓸어 가 버릴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 145-146)
"문명을 비판해야하며 문명을 비평함에 있어서 철저히 그리스도적이며 역사적이어야 한다." (게할더스 보스)
"세상을 그 죄의 상태로부터 다시 찾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파괴적인 영향이 미치는 두 영역에 상응하여 두 가지 과정을 따라 행하셨다. 이 두 영역은 <존재의 영역>the sphere of being과 <지식의 영역>the sphere of knowledge이다. 존재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구속의 과정이 채용되며, 지식의 영역에서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계시(말씀)의 과정이 사용된다".(게할더스 보스)
게할더스 보스는 지식에서 성경말씀의 계시로의 전환시켜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며 과학문명보다 더 탁월한 기적은 일으키섰으나 과학문명의 개발을 시도하신 적은 없다.
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주장 이외에 아래 참고문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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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년 전에 시작된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1948년 이스라엘의 복귀이후 마지막 시대 인류공동체가 감당하지 못할 과제로 우뚝, 예루살렘의 평화는 인류역사상 가장 풀기 어려운 공동체의 과제요 아킬레스 건이다”(왕의 대로. 127)
=>인류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은 세계 어느 지역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지속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적 맥락에서 영적으로 볼때 예루살렘이 가장 치열한 영적전쟁의 중심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지속된 기독교/유대교 및 이슬람교 사이의 오래된 역사적 갈등과 분쟁은 다른 표현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2차대전 이후 지난 80년간은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이러한 갈등과 분쟁은 인류공동체의 평화를 어렵게 해왔으며 지금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의 평화"를 주제로 눈물로 우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눅19:41-42).
“왕의 군대와 예수님의 재림-적그리스도가 성도의 권세를 꺽는 짐승의 횡포가 시작될 때 거룩한 왕의 군대가 홀연히 일어나 셰루살렘을 향한 왕의 대로를 수축하며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 마지막 시대 왕의 군대가 지구의 영적전쟁을 전개하는지 알게 된다”(왕의 군대. 13)
=>장차 적그리스도은 등장할 것입니다. 성도들을 박해할 것입니다. 마지막 대환란이 올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 복음이 전파되는 즈음 마지막 때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나 충성된 선교사들이 땅끝 예루살렘까지 복음의 행진을 하며 우리 주님이 오시는 왕의 대로를 수축할 것입니다.(시68:4,
9. 왜곡된 종말론과 적그리스도론
비 판
최바울의 종말론은 이미 세대주의자들이나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종말론과 거의 같다. 그가 책에 종말론을 기록한 내용은 이미 홀린세이(대유성지구의 종말)나 살렘 키르반이(인류의 종말)나 팀라하이(요한계시록 해설, 세계의 화약고 중동사태)나 요즈음의 데이비드 차(마지막 신호)의 마지막 신호에 나타난 사상이나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성경의 종말론과 같은가? 한마디로 아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예수님의 재림외에는 전혀 성경의 사상과 무관하며 그가 주장하는 시나리오도 성경의 사상과 무관하며 그가 인용하는 성경구절도 모두 가져다 붙인 것이지 전혀 그러한 내용이 아니다. 성경을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만 말하자면 예루살렘이 세계영적전쟁의 중심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세계의 수도가 되고 적그리스도가 세계정부를 통치한다는 언급이 있는가?
성경이 이슬람문명과 서구 자본주의 문명의 충돌이나 예루살렘에서 이슬람과 이스라엘이 화해한다는 언급이 있고 적그리스도가 세계의 평화를 이룬다는 언급이 있는가?
인용된 성경구절 가운데 마태복음 24:14-15의 주님께서 언급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적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하나 하나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종말론은 비성경적인 잘못된 종말론임이 분명하다.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은 단수로 말하지 않고 많은 수를 말씀하고 있다. 또한 초대교회이 이미 나타났다고 표현한다.
마태2:24은 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그리스도를 말하고 요일 2:18에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며 초대교회 당시는 마지막 때로 표현하고 이미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박형택목사는 개혁주의신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도 부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목사는 종말론에 대한 견해는 어떤 신학노선인지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박목사는 종말적 현성으로 적그리스도의 등장도 부인하고 있다. 아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언급은 임박한 종말 때 등장할 적그리스도와 대환란을 주장하고 있다:
"시대의 표적들이 있다. 시대의 표적은 선교적 복음전파의 완성, 이스라엘의 회심, 큰 배교,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등장 등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들을 가르키는 말이다"(베르카우어, 안토니 후크마)
"모든 민족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적그리스도가 정복되면 주님의 일은 완성된다"(올리버 헤이우드)
박형택목사는 과거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적 세력을 인정하나 인류 마지막 때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안토니 후크마는 다음과 같이 과거에 나타난 적그리스도를 말하면서 또 종말에 나타난 적그리스도 인정한다:
"그리스도는 분명 죄와 사탄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고, 따라서 이 싸움의 최종 결과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적들> 사이의 대립은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적그리스도들과 적그리스도적인 가르침 및 관행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안토니 후크마 )
"시대의 표적들이 있다. 시대의 표적은 선교적 복음전파의 완성, 이스라엘의 회심, 큰 배교,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등장 등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들을 가르키는 말이다"(안토니 후크마). 여기서 후크마는 세계복음화 완성과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연계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박형택목사는 초대교회 때 언급된 적그리스도적 세력에 대해 인정하지만 세계선교의 완성 및 유대인들의 회심과 더불어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최바울의 글 인용)
“사단-아담과 하와(선악과)-최초의 살인자 가인을 통한 도시 즉 원초적 문명-가인의 후예들-니므롯-바벨론 문명(음녀 고대 바벨론 신 에에게 신/시벨로 신:자유와 풍요의 신)-이집트 문명(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고대 헬레니즘(아르테미 여신)-로마제국(다이아나 여신)-기독교 침투(마리아 여신)-프랑스 혁명(프리메이슨/계몽주의)-미국 팍스 아케리카(자유의 여신/음녀)-WTO를 중심한 신세계질서-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세계통폐합-적그리스도 등장으로 666 매매권력을 통한 글로벌전산통제시스템-적그리도가 통제체제를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화해 세계평화구축-적그리스도의 성도의 권세 꺽는 핍박-왕의 군재 출현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왕의 대로 구축-그리스도의 재림”.
1)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정체(이사야 60:1-2을 적그리스도의 출현으로(왕의대로 181)
“미국은 이 음녀의 명령을 따라 물질문명의 혼 즉 자본주의 및 자유주의를 세계에 전파-이것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지구를 강제적으로 하나로 통합”(세계영적도해222) “자본주의 문명의 세계화를 주도해 온 음녀의 시대는 끝나고 어둠의 권세가 적그리스도에게 넘어감”(영적도해 338)
"1995년 WTO 출범이후 하나의 세계경제체제로, 세계의 지도자들은 위기의 대안으로 초국가적 권한을 가진 지구중앙통제본부 건설(왕의 군대 11) 세계 통제시스템을 장악한 중앙통제본부는 막강한 권한 행사 바로 이것이 적그리스도 짐승의 출현"(왕의 군대.12)
“마지막 시대 사악한 적그리스도 등장, 그 자는 세계통합제국을 지배하는 짐승 곧 문명과 제국의 힘, 지금세계는 마지막 시대를 달리고 있으며 사악한 세력은 적그리스도 세계체제를 출범 ,세계의 중심 예루살렘을 장악하기 위하여 마지막 프로젝트 가동”(왕의 나라. 13)
"이사야 60장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 예언, 어두움이 세계를 뒤덮을 것, 마지막 시대에는 엄청난 어둠이 땅을 덮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왕의 대로 181)
“이러한 어두움은 적그리스도 등장의 길을 여는 것, 적그리스도가 와서 모든 테러리슴과 혼란 갈등 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의 사도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여 위용을 드러낼 것”(왕의 대로 182)
2) 적그리스도의 체제
“2009년 11월 유럽연합지도자 선출 G20 정상들은 초국가적 중앙통제본부(Super Control Tower)를 논의 세계국가들의 권한을 중앙통제본부에 넘겨주어서 세계위기를 관리하는데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왕의 군대.70)
3) 적그리스도의 역할
"적그리스도는 초국가적 세계권력을 장악하여 글로벌 신용시스템 즉 매매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통제하여 인류가 그렇게 염원하던 세계평화를 이룰 것이다. 세계통제의 가장 완벽한 기제는 글로벌 신용전자통제시스템이다"(왕의 대로.6)
4) 적그리스도가 세계평화 성취 : " 적그리스도 짐승은 세계신용시스템을 장악한 매매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통제, 적그리스도는 세상 권력을 움켜쥐고 세계를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함으로 세계평화를 이룰 것이요 적그리스도는 매매권력 즉 글로벌 신용시스템 중앙통제소를 장악하고 세계 모든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왕의 대로.102)
"적그리스도는 세계신용통제시스템 즉 매매권력을 가지고 성도의 권세를 꺾으며 자신의 위용을 과시할 것이고 예루살렘에 앉아 자신을 인류구원의 정치적 메시야로 선포할 것이다(왕의 대로.102)
"9.11 사태이후 갈수록 증폭되어 온지구적 종교갈등과 이슬람 테러리즘도 적그리스도의 절대 통제체제앞에 금속히 소멸될 것, 그리고 인류역사가운데 계속되어온 각종 테러나 강도, 강간등 모든 범죄행위도 글로벌 GPS 전자통제시스템 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요 마지막으로 세계의 평화가 도래, 세계제국의 지도자들은 제국의 평화를 만들어 낸 절재적인 짖를 받는 지도자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며 바로 이자가 적그리스도이다(왕의 대로.128)
10. 최바울의 비 성경적 변방신학
최바울의 문명에 대한 사상은 문명을 중심한 도시는 죄악된 곳이며 가난하고 문명이 덜한 곳은 변방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변방신학은 세상 사람들이 문명의 중심 곧 죄악의 도성으로 나아가지만 신자들은 문명의 중심이 아니라 문명의 변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변방에서 시작하셨고 주님도 변방에서 시작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주장하는 변방신학과 문명에 대한 이해가 옳은 것인가? 판단할 때 성경적 사상과는 다비성경적인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변방신학은
첫째 문명이 있는 곳에는 죄악의 넘치지만 가난하고 문명이 덜한 곳은 변방으로서 죄악도 덜하다는 것이다.
둘째 문명의 중심에는 항상 경제권력, 정치권력, 종교권력이 있다는 것이고
셋째 문명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문명의 독을 빼내야 하며 변방으로 갈 때 중심이 변화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이다.
냇째 하나님도 예수님도 바울도 모세도 변방에서 시작하셨다는 논리이다.
=> 변방은 지리적 시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낮은 곳을 항하여"라고 할 때 이것이 지하 낮은 땅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문학적 비유적 표현을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설교나 가르침에서 동일하게 이러한 표현기법이 사용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상권력이 작동하는 문명의 중심을 향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성육신의 선교의 정신을 본받아서 세상 영광 추구하지 말고 낮은 곳을 지향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비 판
최바울 선교사의 의도는 짐작하지만 성경은 문명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죄악의 경중을 말하는 흔적이 없다. 문명의 중심에는 항상 세가지 권력이 있어서 그 권력이 없는 변방으로 신자들이 나아가야 한다는 논리도 성경에서 가르치지 않는 사상이다. 그렇다면 모든 신자들은 문명이 없는 시골로 다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기독교인들이 권력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맞다. 그러나 그 권력이 있는 도성에서 피하라는 말이 성경에는 없다.
모세가 애굽에서 문명의 독을 빼내기 위해서 40년이 걸렸다고 예를 드는데 과연 광야에서 문명의 독을 빼내기 위해서였는가? 문명의 독을 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서 하나님이 훈련하신 기간이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바울도 모세도 변방에서 시작하였는가? 이는 가져다 붙인 것이지 그러한 사상은 성경에 찾아볼 수 없다. 최바울의 변방신학은 성경에는 없는 자신의 만든 신학일 뿐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훈련하기 위해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거기서 제국의 교만과 지식을 버리고 겸손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후 사용되었습니다. 문명의 독은 문학적 기법입니다.
(최바울의 글 인용)
1) “변방 프론티어는 “세상 사람들은 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지만 우리는 문명의 변방으로, 문명의 중심이 아니라 문명의 변방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영적도해 78)
2) “문명의 중심에는 경제권력, 정치권력, 종교권력이 있다”(영적도해 86,87,88) “한국교회 상당히 종교문명이 지배, 권력의 중심부에 많은 성직자들과 장로들”(영적도해 92)
3) 하나님도 변방에서 시작 “주님도 변방의 낮은 곳 갈릴리에서 시작(영걱도해 94) 사도바울도 변방에서 역사, 당시 세계중심인 로마제국의 엘리트들에 비하면 바울은 변방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서 열심”(영적도해 94.95)
“문명의 독이 있다. 변방을 향해 갈 때 중심이 변화-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다”(영적도해 95)
“모세도 문명의 중심 애굽에서 몸에 밴 문명의 독을 빼기 위해 40년이 걸렸다”(영적도해 96)
“하나님도 이집트 제국의 변방 팔레스틴에서 시작”(영적도해 96)
“모세의 눈으로 제국의 신과 비교할 때 변방에 등장한 신은 신비하지만 초라하게 보였을 것, 하나님도 변방에서 시작,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다”(영적도해 96,97)
“문명의 중심,역사의 중심은 문명의 변방으로 이동한다. 미래의 대안은 항상 변방에 있다(영적도해 99)
“문명의 중심과 역사의 중심은 공존하지 않는다. 역사의중심은 항상 문명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앞서 이동한다. 새로운 역사는 항상 문명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영적도해 99)
“전문인 선교사들이 지구촌 변방을 향해 헌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변방으로 가야한다. 낮은 곳으로, 변방에서 유유히 자유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변방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영적도해 101)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상권력이 작동하는 문명의 중심을 향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성육신의 선교의 정신을 본받아서 세상 영광 추구하지 말고 낮은 곳을 지향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예루살렘 교회의 12사도는 유대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와 민족 공동체의 비젼을 분리하지 못함(왕의 군대. 98)
=>예루살렘의 열두제자들은 초기에 유대전통과 유대민족주의의 한계 안에 갖혀서 선교명령을 적극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11. 자의적 성경해석과 성경 짜깁기
최바울의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보면 전혀 본문에 대한 이해가 없이 자신의 논리에 가져다 붙인 것이고 자신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구절을 짜깁기 한 것이다.
창세기 3:5 선악과를 지식의 나무로-지식정보 과학적 지식으로 발전-계몽주의로 (영적도해.285, 왕의 나라.11)
=>위에서 부족한대로 해명 드렸습니다.
다니엘 12장과 계시록 12장을 마지막 시대의 하늘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으로
=> 마지막 시대 하늘의 전쟁으로 단정한 적 없습니다. 영적전쟁 상황의 성경사례로 들었습니다.
다니엘 12:7과 계시록 13:7-10을 성도들의 권세를 꺾는 세계제국의 등장으로
=>세계제국이 아니라 성도들의 권세를 꺾는 짐승 적그리스도로 설명했습니다.
다니엘 12:4의 지식이 더하리라를 세계화 시대 지식 정보화 시대로 해석(세계영적도해. 108)
=> '지식이 더하리라'를 지식정보시대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제기된 바 "하나님의 지식이 더하리라"는 근거는 불확실합니다.
계시록 17:3-7의 음녀를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으로 (세계영적도해.189)
=> 계시록 3-7절을 미국의 자유의 여신으로 동일시한 적이 없습니다. 자유의 여신이 미국에 증정된 이후 미국내 자유주의 사상이 번창했으며 이는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볼때 기독교 국가 미국의 세속화의 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인은 음녀를 물질주의적 문명화 및 세속화와 관련된 영적 현상으로 비평합니다.
계시록 13장의 666을 매매권력과 GPS 글로벌 전산통제시스템으로 (세계영적도해.294,365, 왕의나라.29 스가래 4장 인용)
=>666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본인은 이것을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이며 또 성도와 교회를 박해하는 세계체제의 일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인은 그 체제를 "수의 지배체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계시록 13장 16-18의 짐승의 표는 전산 칩이요 인간 생체 바코드화로(영적도해 341-342, 377-378)
=>짐승의 표가 전산칩으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과거 한때 이것이 모종의 생체 바코드화라고 표현한 적이 있으며 그것이 생체바코드화는 모종의 생체의 표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럼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될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예측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알수 없다고 보고 이런 저런 형태를 예측할 뿐입니다.
계시록 14:1-6을 마지막 시대 복음의 서진을 따라 한국과 중국의 시님의 군대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백투예루살렘.머리말)
=>위에서 나름대로 설명 드렸습니다.
이사야 19:23-25을 이삭과 이스마엘의 화해로 해석(백투예루살렘.95)
=>위에서 나름대로 설명 드렸습니다.
이사야 49:11-12의 시님땅을 예로 들어 마지막 시대에 중국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100만 군대로 해석한다.(왕의 대로.263)
=>신학자에 따라 시님을 중국으로 또는 중동의 모지역으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본인은 시님의 고대 어원적 분석 등을 고려하여 중국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24:15의 해석 멸망의 가증한 것을 마지막 주님의 재림직전의 적그리스도로(영적도해. 105)
=> 일부에서는 다니엘서7장 8절에 나오는 작은 뿔을 안티오커스 왕으로 그리고 이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단12:11; 마24:15)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작은뿔이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래과 같은 모순점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작은 뿔(단7:8)은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연계할 수없습니다:
다니엘서는 기본구조인 사중 평행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중의 예언들은 모구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이 나라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다니엘 8장에도 다른 장의 경우처럼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정한 때 끝에 관한 일"(단8:17, 19)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단8:17은 작은 뿔이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리아의 8대 왕 에피파네스 안티오쿠스 4세는 마지막 때까지는 커녕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분립한 네 장군 가운데 하나인 셀류쿠스가 세운 시리아의 왕으로 잠시 존재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작은 뿔이 안티오쿠스 4세가 될 수 없습니다.
다니엘 8장을 더욱 상세하게 반복 해설하고 있는 11장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네 장군 가운데 셀류쿠스가 세운 시리아를 북방왕으로, 프톨레미 장군이 차지한 이집트를 남방왕으로 (단11:5-15)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로마제국이 등장하고(단11:16) "동맹한 왕"(단11"22)이신 그리스도가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죽임당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다니엘 8장의 작은 뿔이 성소훼방과 제사를 폐하는 일 하나님 백성을 핍박하는 일이 예언되어 있으므로(단 11:31). 그것이 결코 기원전 2세기의 사건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안티오쿠스 4세가 작은 뿔이 될 수 없읍니다.
다니엘서에 나타나는 상징적인 뿔은 왕국을 상징하거나 새로운 왕조를 시작할 왕을 상징했지 안티오커스 왕처럼 한 대(代)로 끝날 개인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작은 뿔이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 군대에 미칠만큼 커"(단8:10)졌다고 했는데 에피파네스 안티오쿠스 4세는 오히려 남방왕 이집트를 쳐내려갔다가 로마제국의 철수 명령을 받고 황급히 물러섰던 인물로 "심히커지기"는 커녕 아주 작은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죽을 때도 쇠퇴한 중에 죽었습니다. 따라서 안티오쿠스 4세는 작은 뿔이 될 수 없습니다.
작은 뿔이 일어날 때, 즉 시기에 관하여 성경은 "이 네나라 마지막 때"(단8:23)에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쿠스 4세가 속한 시리아의 셀류쿠스 왕조는 기원전 311년부터 존속하다가 기원전 65년에 로마에게 멸망당했는데 안티오쿠스 4세는 (175-164 BC)는 20여명의 왕들 가운데 마지막에 속하는 왕이 아니라 8번째에 속하는 전반기 왕이 었습니다. 즉 작은 뿔은 이 네나라 마지막 때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안티오쿠스 4세는 마지막 부분의 왕이 아니라 셀류쿠스 왕조의 전반기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안티오쿠스 4세는 작은 뿔이 될 수 없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2천년 전 특정 로마황제라는 견해는 잘못되었다고 할 수없으나 정확하다고도 말할 수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세상 끝"에 대해 질문한 것에,대해 예수님이 대답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내용 역시 세상 끝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24장 21-22절("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에서 창세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는 환란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이것이 마지막 대환란이며 이는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다 증거될 마지막 무렵에 이어서 등장할 가증한 것, 적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 22:17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는 말씀을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로 해석(예수님이 동일한 말씀하셨다고)(세계영적도해.83)
=>이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엉터리입니다.
창세기 22:1의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시험과 누가복음 4:1의 마귀에게 시험을 동일한 험으로(test와 tempt) 예수님의 3가지 시험 1) 경제권력에 대한 시험 2) 정치사회권력 3) 종교권력으로(세계영적도해.86-88)
=>동일한 시험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시험하셨는데, 예수님도 시험받으셨다. 주의 종이 종종 이런 시험을 통과하고 공적 사역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설명함.
창세기 4:1-7을 옛뱀 사단의 인생경영으로(영적도해.57)
=>옛뱀 사단의 인생경영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엉터리입니다.
비 판
창세기 3장 5절의 선악과를 지식의 나무로 이해하고 이것을 과학지식의 발달로 그리고 계몽주의로 만들어 가는 것은 그의 문명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여준다.
=>위에서 나름대로 설명 드렸습니다.
다니엘 12:4의 말씀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씀을 세계화 시대 정보화 시대로 자의적 해석을 하여 자신의 논리에 가져다 붙인다. 그러나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의 봉함된 말씀 때문에 더 이상 계시가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리 저리 방황하고 동분서주한다는 뜻이다.
=>부정할수도 긍정할수도 없는 하나의 견해입니다.
계시록 17:3-7의 음녀를 미국의 자유의 여신이라고 해석하는데 이 음녀는 로마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다. 짐승은 당시 로마를 말하는 것이고 음녀는 황제숭배와 우상숭배를 강요하던 로마의 종교로서 많은 나라를 미혹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음녀는 로마의 종교, 짐승은 당시의 로마로 보는 것은 하나의 견해일 뿐입니다. 이것을 박형택목사처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짐승은 적그리스도이고 인격적 전재이지 국가로서 로마처럼 비인격체가 아닙니다. 음녀가 종교라고 말한 부분이 성경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계시록 13:16-18의 666를 매매권력, GPS전산통제시스템으로 해석을 하는데 666은 당시 유대묵시문학의 하나로서 숫자를 가지고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표현했던 게마트리아 용법이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를 로마로 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이나 짐승으로 표기하고 당시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숭배하게 했던 로마황제 네로를 네로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게마트리아 용법을 통해서 숫자적으로 그 이름을 표시한 것이다.
=>이것은 부정할수도 긍정할수도 없는 하나의 견해일뿐입니다.
12. 이단성 짙은 신사도개혁운동과의 연계성
최바울은 피터 와그너가 세운 신사도개혁운동과 마이크 비클이 세운 IHOP연계를 하고 있으며 그의 책에는 이러한 사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피터 와그너 및 마이클 비클과 본인 또는 인터콥이 연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6년 전쯤 수도권 모 교회에서 아이홉 사역자들이 와서 찬양과 예배 기도를 주제로 대형집회를 하였습니다. 당시 여러 교회와 국내 20여개 선교단체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찬양사역과 기도사역에 대해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다소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교루하였으나 해외선교하는 단체로서 아이홉의 신학적 차이와 문제를 발견하고 우리 스스로 더 이상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세계는 지역마다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귀신들이 있는데 그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선교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대적기도, 땅밟기 기도, 선포기도를 해야 한다고 한다.
-=> 사탄의 세력에 대적하여 기도해야합니다. 땅밟기 기도가 뭔지 모르나 "땅밟기 기도"를 해야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대부분이 땅밟기 기도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선포기도가 모릅니다.
둘째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요엘의 예언이 일부 성취된 것이며 마지막 종말에 완전히 성취된다고 믿는다.
=>이런 주장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바 없습니다.
셋째 IHOP이 주장하는 “다윗의 장막의 예배”를 그대로 채용하여 24/7(24시간 7일) 끊임없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영적 전쟁이라고 한다.
=>그런 주장을 본인이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형식이 어떠하던 기도를 많이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기도를 모르는 자들의 행태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넷째 신사도운동의 동일시 기도나 부의 이동 등의 잘못된 사상을 전파한다.
=>동일시 기도를 주장한 적도 없고 이런 용어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정을 하나님이 물질적으로도 축복하십니다.(마24:45-46). 물질적 부를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부의 이동이라는 말은 마태복음24장 45-47절 말씀("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을 설명하면서, 오래 전부터 국내 크리스천 비지니스맨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부의 축복을 의미하는 말로 편리한 용어라 생각하여 한 두번 사용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용어는 한국 내 크리스천 비지니스맨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최바울의 글 인용)
“다윗이 .....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장막 예배 팀에 대해 다윗이 직접 주도권과 리더쉽을 발휘한 것입니다. 다윗은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과 예배 가운데 주님이 임재하십니다. 예배는 가장 강력한 영적전쟁입니다. 한편 1절의 “신령한 노래를 하였으나”는 영어로 prophecy 즉 “예언하였으니”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하프와 악기들을 가지고 예언을 하였으니”라는 뜻입니다, 2절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에서도 동일하게 예언한다는 뜻입니다. 3절 “감사하며 찬양하며 신령한 노래를 하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신령한 노래를 하였으니”는 “예언적 선포를 하였으니”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예언적 선포’는 미래를 향한 선포입니다. 찬양과 예배를 통한 예언적 선포를 하며 전진하는 것이 바로 다윗의 장막의 모습이요, 다윗군대의 영적 전쟁입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강력한 영적전쟁입니다. 성도가 군대로 모여 함께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신령한 찬송을 드리며 믿음으로 선포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어둠의 권세는 떠나가며 대적의 군대는 무너지는 것이다(왕의 군대, 140-141쪽)
“다윗의 장막은 시간이 흐르면서 강력한 군대로 발전합니다. 시대를 분별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아는 지도자들이 세워집니다. 군대에는 이처럼 시대를 분별하며 전략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는 전략가들이 필요합니다”.(왕의 군대, 147쪽)
=> 다윗의 장막은 신사도운동가들의 개념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했습니다. 신사도운동에서는 '다윗의 장막'이라는 표현이 다윗의 왕국의 재건, 즉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의 회복이 곧 주님의 재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헙니다. 이러한 견해는 전천년설을 신봉하는 세대주의 기독교인들의 사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이러한 내용을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의 장막의 회복이라는 표현은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교회 찬양모임에서 자주 언급되어온 용어로서 '다윗과 그의 군대가 다윗의 장막교회에서 주의 나라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나가서 찬양과 예배로 항상 예배했듯이 그렇게 다윗처럼 주님을 찬양하며 예배하자'는 뜻에서 한국교회 청년들 가운데 널리 사용되어 온 것입니다. 찬양과 예배 부흥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가 신사도운동과 관련있다는 KWMA지도위원들의 권면에 따라 용어사용을 자제하며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있습니다. 혹 불가분 사용해야할 경우 오해가 없도록 잘 설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의 역사가 드디어 2천년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행2:19-21 인용)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순절의 멧세지가 마지막 선교운동인 백투예루살렘 비젼성취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는 마감될 것입니다”(최바울, 세계영적도해, 81쪽)
=>모든 이방민족 복음 전해지고 유대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주님이 오십니다.(마24:14; 롬11:25)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순절의 멧세지가 마지막 선교운동인 ‘백투예루살렘’ 비전성취를 위해 전방위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는 마감될 것입니다.” (최바울, 왕의 대로, 81쪽)
“그래서 세계영적전쟁에서 세계영적도해가 필요합니다. 선교지 사역현장을 놓고 지역연구가 필요합니다. 세계교회와 우리 한국교회의 실태와 영적 기류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분석적이고 날카로운 영적도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모든 중보기도자들이 어떻게 이런 사역을 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왕의 군대, 39쪽)
=>본인은 특정 영역을 지역신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신을 특정 지역에서 물리쳐야 복음적 선교가 흥왕해진다는 식으로 '영적 도해'를 이해하지 않습니다.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땅밝기기도를 가르치거나 그 용어를 그의 저서나 강의 중에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2011년 11월 국민일보 기사는 해당 신문사가 다른 목적으로 변형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과 다르다. 불교 전당에 기독청년들이 들어가 기도하였다고 하는데, 이 청년들은 지역교회 소속으로 인터콥과는 전혀 무관한 형제들입니다.
영적도해spiritual mapping이라는 용어를 신사도운동가들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신사도운동가들은 각 지역에 있는 ‘지역의 영’과의 영적 대결을 위해 영적도해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사도운동가들의 개념은 본인 최바울선교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본인 최바울선교사의 영적도해(영적지도그리기)에 대한 이해는 지역의 영에 대결하자는 동기나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고,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나온 것으로 지역연구를 위한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세계 지역연구 학계에서는 역사지도그리기 historical mapping, 문화지도그리기 cultural mapping, 사회지도그리기 social mapping,, 정치지도그리기 political mapping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지도그리기는 대상과 현상을 거시적으로 개념화함으로 전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지역연구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2차로잔대회 이전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 지역연구 전문학자로서 영적지도그리기 spiritual mapping를 착안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도해는 기도와 영감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지도그리기, 문화지도그리기, 정치 사회 지도그리기를 기반으로 하여 성경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결과로서 영적지도그리기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를 거시적으로 –통시적 및 동시적으로-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며, 또한 선교지 교회개척 접근전략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 내용은 본인 최바울선교사 저서 <전문인선교와 세계선교운동>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연구 방법론에서 나온 영적도해를 신사도운동과 연계시키는 것은 제대로 관찰하지 않고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용어만보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가 신사도운동으로 오해될 수있다는 KWMA지도위원들의 지적에 따라 인터콥에서는 이 용어 사용을 자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우상 그 지역들을 장악하고 있는 신들에 대항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을 지배하는 어둠의 영적세력들이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강력한 영적진을 형성해 왔습니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70쪽)
=>우상 또는 오랜 세월 강력한 진을 형성하고 있는 영적세력은 이슬람을 의미합니다. 인터콥은 이슬람 선교하는 단체입니다. 이슬람신에 대항하여 기도하지 않고 이슬람선교 되지 않습니다. 복음전도와 기도-말씀과 기도로-사역해야합니다.
“여호수아 14:9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가서 밟고 취하면 땅을 다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땅을 밟고 취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곳의 기득권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세력은 저항하며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곳에 적이 있는 것입니다. 대적이 거기서 호심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저항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둠의 권세가 저항하는 것입니다. 전쟁입니다“ (왕의 군대, 24쪽)
=>이슬람신은 오랜 세월 어둠의 영으로 이슬람세계 영혼들을 영적으로 지배해 왔습니다. 헌장에가서 기도하며 현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민족을 자유케하고 예수 이름으로 악한세력을 몰아내고 현지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라의 관념을 정치적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복이란 사단과 귀신들에 대한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한 정복인 것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그 해 겨울 중국 위구르의 카스라는 지역에 갔던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그곳에 큰 심판을 하실 것 같다는 이상한 말을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지역의 죄를 회개하고 묶여 있는 영적진을 향해 기도하며 축복했었다. 한 아이가 꿈을 꾸게 되었는데 조그만 접시 위에서 예수님의 보혈이 담겨지더니 점점 많아져 보혈의 강이 흘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역에 있는 한 외국인 사역자가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역을 용서하시고 주님의 보혈의 강이 덮이도록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 지역에 지진이 일어났다. 창문이 흔들리고 큰 진동을 느끼는 지진이었지만 피해는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이들의 기도를 들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최바울, 백투예루살렘. 58-59쪽)
=>본인이 체험하거나 참여한 것이 아니고 이런 이야기를 간접 전해 듣고 아이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믿음이 당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이들의 기도도 들으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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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재물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장에도 마지막 시대에 임박하여 도적처럼 오실 예수님을 언급하면서 지혜 있는 자가 그 재물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신실한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많은 크리스천 예언자들이 ‘부의 이동’에 대해서 예언을 많이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크리스천 비즈니스맨들에게 놀랍게 부를 이동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선교사역을 완성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최바울, 왕의 대로 182쪽)
=> 충성되고 지혜로운 정을 하나님이 물질적으로도 축복하십니다.(마24:45-46). 믈질적 부를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세계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이런 충성된 주의 종의 물질적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비 판
최바울 선교사는 신사도운동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책을 기록하였다. 자연스럽게 사용한 신사도운동의 용어들은 그의 사상을 나타내는데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한국교회에 다윗의 장막 등 용어는 대부분의 청년 사역에서 사용되고 있으나 피터와그너의 개념은 전혀 아닙니다.
6) 최한우 학생 학력조회 - 세이연. 연합신학대학원(ACTS).
=> 타인의 학력을 당사자 동의 없이 세이연이 조회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의하면 법적으로 심각한 불법행위입니다.
사랑하는 자
(183.104.61.67) 비판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정당한 비판, 성경적인 비판은 항상 계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만을 위하여 죽어야 하기때문입니다. 인터콥을 나쁜 의도에서 비판하시는 분들은 이슬람 세계에 들어가서 한 달 혹은 반 년이라도 선교를 해보고 그 다음에 비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013-08-16 14:41:56) 삭제 신고
사랑하는 자
(183.104.61.67) 박형택목사라는 분이 누구신지는 잘 모르지만 사실을 사실로 확인한 뒤 철저한 성경적 근거위에서 비판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확인도 없이 비판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존경받을 수가 없습니다. 위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의 말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더 깊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이슬람 세계 속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인터콥에 대해 돕지는 못할망정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2013-08-16 14:3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