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고려신학대학원과 고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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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고려신학대학원과 고신대학교




총회정책이슈 따라가기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인가?
2013.08.14 10:41 입력

▲이상규 부총장
오는 9월에 열릴 제63회 교단 총회를 앞두고 서서히 정책적인 이슈들이 교단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신학대학원과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최근 모 인터넷 언론에서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라는 기획기사가 수 차례 연재되었고, 총대들에게도 이와 관련한 문건이 배달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이와 관련한 고신대학교의 입장을 본지에 게재한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이나 다른 방향에서 의견이 있을 경우 본보에서는 언제든지 게재할 계획이다. 이런 건전한 지상토론을 통해 총회 정책에 대한 더 나은 발전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라는 코람데오 닷컴에 쓴 필자 미상의 5회에 걸친 논설을 읽으면서 주장하는 바가 좀 과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범사에 화의(和議)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가능하면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이 글이 오늘의 현실, 특히 고신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 행정을 일부 책임지고 있는 필자로서 ‘사실’과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몇 가지 이견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는 글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 글의 필자는 고신교회에 대한 사랑과 신학교육에 대한 애정으로 쓴 글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이 점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토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다소 주관적인 견해로 보일지라도 선의로 헤아려 주기 바랄 뿐이다.



1. 우선 이 글은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교의 우산 아래 있다는 점을 매우 애석하게 여기고 통분해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이 강요한 것도 아니고, 정부가 요구한 것도 아니라 우리가 속한 교회가 중의를 모아 결정하고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통석해 할 이유가 없다. 신학대학원 과정인 ‘본과’(本科)가 대학에 병설되게 한 것은 우리가 그처럼 떠받드는 한상동 목사가 동의하고, 그 체제 하에서 한상동 목사는 4년간 학장직을 수행했다. 어디 한상동 목사만인가?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등 동방박사 세 사람도 다 그 길을 순연한 마음으로 따라갔고 그런 체제하에서 학장도 하고 총장도 하지 않았던가?



고신대학은 1946년 무인가 사설 신학교로 출발해, 학력인가학교로, 그리고 정규대학으로의 발전을 ‘영예’로 여기며 받아들였고, ‘졸업식’이 아니라 ‘학위 수여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자랑하지 않았던가?



고려신학교가 고신대학이라는 정규대학으로 인가를 받았기에 ‘본과’는 1980년 11월 목회학 석사(M.Div)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신학대학원’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제도로 고신대학이 없었다면 고려신학대학원은 불가능했다. 대학에 속한 신학대학원으로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부가 강권했던 일이 아니었다.



학력을 인정받는 학위를 위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자의로 선택한 것이 고신대학 휘하에 ‘신학대학원’을 설치한 것이다. 인가를 얻게 되자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예배까지 드렸던 일이다. 우리가 원했다면 대학과 무관한 독립된 신학교로 존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중의는 대학 휘하의 신학대학원을 원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이자 현실이다. 그런데 고신대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이제 와서 통석지념을 토로하는 것은 지난 역사를 부정할 때 가능한 일이다.




2. 윗글의 필자는 신학대학원을 불투명한 고신대의 미래에 묶어둘 수 없다고 말한다. 고신대의 미래가 불투명한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 우산 아래 있는 것이 진정으로 문제라면 해결책은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고신대학으로부터 독립하는 일이다. 독립하여 단설신학교(신학대학원)로 출발하면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 동안 단설대학원 논의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부족했거나 롯의 아내처럼 두고 온 그 무엇에 대한 연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신대학교가 뒤돌아 볼 것 없는 장망성과 같은 것이라면 단설신학교로 출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의 합동신학대학원은 좋은 사례가 된다. 1980년 11월 총신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5명의 교수와 학생들은 교권의 횡포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재산과 기득권, 정규대학이 주는 학위를 마다하고 분연히 나와 남서울교회당 한 구석에서 무인가 신학교로 출발했다. 교수들은 ‘재임용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자취했다.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라는 기치가 호소력을 지녔다. 우리에게 이런 신념과 의지가 있다면 단설신학교는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윗글의 필자가 주장하듯이 ‘강도의 소굴’처럼 불의와 부정의 온상이 된 병원을 살리자고 불과 2년여 기간에 200억 원을 모금했는데, 교단의 심장부를 살리자는데 50억을 모금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하면 교단의 대학을 장망성처럼 취급할 이유도 없을 것이고, 불투명한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안해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주저할 것 없이 신학대학원이 독립하면 된다. 무인가 신학교로 출발하더라도 단설신학대학원으로의 길을 추구하면 그것 자체가 신학대학원의 중요성을 각인 시키는 효과가 있고, 그렇게 하면 굳이 신학대학원을 고신의 심장부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라는 글의 필자는 신학대학원이 고신대학교 휘하에 있는 것이 신학대학원의 위상과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신임 신학대학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의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과연 그런가? 신학대학원이 대학 휘하에 있어서 위상이 격하되고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는가? 그런 사례가 무엇인가? 그렇다면 대학이 신학대학원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말인가?



대학이 신대원의 신학에 대해 영향을 준 일이 있었는가? 신학대학원은 인사, 재정, 행정이 거의 독립적이다.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원인사는 신학대학원이 독자적으로 수행해 왔다. 지난 수년 동안 있어왔던 신학대학원 내의 내분, 불화, 모 교수의 입시 부정, 교수의 법정 구속, 해임, 정치적 처신이 고신대학의 우산 아래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가? 신학대학원의 위상이나 정체성의 혼란이 어떻게 대학의 책임인가? 신학적 논란이나 윗글의 필자가 말하는 ‘역사에 사무칠 부끄러움’이 신학대학원이 대학의 우산아래 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인가? 신학대학원의 위상이나 정체성이 대학의 우산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윗글의 필자는 고신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하면서 천안 신대원의 이전 주장은 역사의 역주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고신대만이 아니라 지방대학이 다 같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고신대의 미래가 밝다고만 할 수 없는 여러 난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에서도 교단 정치의 격랑 속에서 불투명한 60여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렇지만 고신대학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신학대학원이 대학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대학 휘하에 속한 것이 신학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라면 독립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지만,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는 죽더라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소위 니사아활(?死我活) 의식인데, 여기에는 혈육지정의 따뜻한 사랑이 없다. 이런 생각은 선대가 힘겹게 가꾸어 물려준 유산이자 교회의 학교에 대한 책임 있는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현재의 구조에서 대학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신학대학원이 솔선해 난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천안 신대원을 매각하더라도 대학을 살려야 신학대학원도 함께 살 수 있는 구조이다.



윗글의 논자가 인식하듯이 대학의 미래가 그처럼 불투명하다면, 신학대학원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데 대학에 대한 격안관화(隔岸觀火)는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가 불투명해 대학이 위기라면 공멸하기 보다는 차라리 대학을 살려서 신대원도 함께 사는 따뜻한 동행이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천안의 신대원 캠퍼스를 팔아 고신대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반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나는 천안 신학원 부지를 매각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런 주장 자체를 비신앙적이고 심지어는 우상숭배적인 형태로까지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대학과 신대원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따뜻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따름이다. 그런 공생과 동행의 의지가 없다면 신학대학원은 우선 무인가 신학교로 속히 독립해야 한다.





5. 윗 글은 제목부터 ‘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가 불확실한 대학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신대원 천안 캠퍼스 매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신대원의 독립을 반대하지 않고, 천안 캠퍼스의 매각을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심장부라고 말하는 신대원의 중요성은 조직이나 구조의 문제가 아니고 캠퍼스나 대지(垈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대원이 행정적으로 대학 휘하에 있다고 해서 심장부가 못될 이유가 없고, 천안 캠퍼스를 팔아 타지로 간다고 해서 심장부가 못될 이유도 없다.



교회나 교회 조직에서 심장부가 되는 것은 영적 권위나 영적 지도력일 것이다. 위의 글을 쓴 이가 말하듯이 “교회의 교사로서 성경해석의 표준을 제시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적 정황들을 분석하며, 예언자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인격과 신앙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본이 될 때” 신학대학원은 심장부로 인정받는 것이지,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자칭 심장부라고 주장한다면 조소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신학대학원이 신앙과 신학 생활에 있어서 영적 리더십을 회복하면 자연스럽게 심장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신대원의 위상은 신대원 스스로 정립해야 한다. 12세기의 버나드가 프랑스의 한적한 산골 클레르보에 은둔하고 살았지만 종교적 영향력과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무관의 황제’라고까지 불린 것은 영적 감화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대원이 교단의 심장부라고 떠들 필요가 없다. 고려신학대학원은 스스로가 자신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윗글 필자의 주장은 지당한 지적이다.




6. 고신대학이나 병원, 그리고 신학대학원은 하나님이 우리 교단에 주신 세 기관이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 어떠한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해 경영해 왔는가, 그리고 교회(교단)가 신학교 외의 대학이나 병원을 직영하는 것이 신학적으로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 교회가 신학교만 직영해야 한다는 오병세 허순길 교수의 주장과는 달리 한명동 이근삼 교수는 기독교대학의 이상을 가졌던 분들이고, 지난 역사에서 후자의 입장이 수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개혁파교회의 전통을 추수하거나 영역주권원리에 비추어 교회가 신학교만 직영해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도 고신대학의 장(長)이 되거나 장을 생각하지 않았던가! 비록 문제가 있더라도 선대의 합의로 이루어진 현실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따라서 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유익하게 이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신학대학원을 대학의 부속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의 학교인 신학교(신학대학원)에 대한 중요성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신학교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신학교는 교회의 일부라는 점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학교(신학대학원)만이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성역이고, 신학대학원의 구조조정을 말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반하는 것인 양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의 중요성은 그 위치나 행정구조에 있지 않다. 도리어 그 ‘중요성’은 교회가 만족할 만한 영적 지도자를 양성해 내는 일에 있다. 구조나 제도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교단 내외에서 영적 지도력을 보여주면 된다. 그렇게 될 때 가만 있어도 ‘신학대학원은 교단의 심장부’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파마(破魔)의 도검은 세상으로 향해야 하고, 신학대학원은 우선 무인가신학교로 독립해야 한다. 대학이 신학교의 위상과 정체성의 혼란의 주범이라고 여긴다면.




■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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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신은 자기 회개를 강력하게 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마치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이렇게 잘못을 알고 돌아 오는 운동이 벌어 지면 집을 나가는 둘째가 아니라 돌아 오려는 아들입니다. 고신은 집을 나간 후 돌아 오는 문제로 이렇게 보따리를 다시 싸고 있는데 공회는 이제야 줄줄이 보따리를 싸고 집을 나서려 하거나 집을 떠나 먼 나라를 향하고 있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어코 가 봐야 아는가? 형제 교회인 고신의 자기 성찰이 반갑고 부럽습니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니 어느 한 순간으로 최종 판단을 할 수는 없습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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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의 심장부다 (3)
: 위기와 시련은 갱신의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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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신학교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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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교회의 목회자를 기르는 신학교는 하나다. 학교는 그것이 기독교학교라도 교회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학교는 교회의 한 파트로서의 자격을 인정한다. 거기서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을 하지는 않지만 성찬을 통한 성도의 교제와 가르침을 통한 제자 삼는 일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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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는 12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훈련하셔서, 땅 끝까지 이르러 그의 증인이 되라며 파송하셨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고 큰 확신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여 각 곳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에는 성령의 은사를 따라 지도자들이 세워졌는데 그들은 교회를 목양하는 장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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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사도의 사명을 계승한 교회는 인재를 개발하고 훈련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복음사역자들로 세웠다. 아직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초대교회는 회중 가운데서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은사를 확인하고 그들을 따로 세워 파송하였던 것이다.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각 지역에 조직교회가 세워지면서 교회는 인재의 개발과 지도자 양성을 위해 교회 안에 신학교를 세웠다. 따라서 신학교 곧 교회지도자양성소는 본래부터 교회에 속했고 교회가 직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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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흐르면서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가 사회의 매조리티를 이루게 되면서 각 종 학교들을 세웠고 인문교육을 통해 전도를 하고 또 사회 여러 분야에서 봉사할 인재들을 양육하였다. 소위 미션 학교들의 설립이었다. 이런 학교들은 교회가 설립하고 운영하지만 교회의 한 부분은 아니었다. 개혁파 교회들에서는 교회가 세운 일반(미션) 학교를 영역주권의 원리를 따라 교회와 구별하였다. 그리고 직영이 아닌 간접적인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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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과 병원의 직영문제는 먼저 신학적으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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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고신대학교와 부속 복음병원을 교회가 직영하는 것이 합당하냐 하는 문제는 먼저 신학적으로 확실히 검토해서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고려신학교의 대학부를 고신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려고 할 때 거론되었던 문제이다. 그런데 당시는 “사조이사회”의 문제로 총회가 너무나 시끄러웠기 때문에 더 본질적이었던 이 문제는 오히려 뒤로 밀려버렸다. 그러다가 결국은 갈등을 정치적인 타협으로 적당히 풀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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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후 고신의 역사 속에서 이로 인해 교회가 받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복음병원은 고신교회 지도자들의 이권개입의 마당이 되었다. 학교법인 이사가 되려고 치열한 선거운동이 벌어졌고, 이사회도 계파로 갈라져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 학교나 병원의 설립이념의 실현이나 봉사정신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렸고, 경영상의 어려움도 가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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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노동조합과 바로 부딪쳐야 했고, 성총회의 자리에 노조의 데모와 회장석에는 쇠사슬로 몸을 묶은 사람이 등장하고, 회의장 밖에는 분뇨가 뿌려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특히 김해복음병원은 “강도의 소굴”처럼 되었고(부외부채가 100억원이 넘었다), 여파로 복음병원이 부도가 나서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바벨론 유수” 시대를 맞는 비참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200억원이나 되는 교회의 헌금이 부도를 메꾸는 일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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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고신대학교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신대학교나 직영하고 있는 총회가 잘못해서 생긴 위기가 아니라(잘못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시대적인 변화에서 오는 위기이다. 그러기에 돌파하기가 훨씬 더 힘든 위기이다. 더욱이 교회직영이라는 스스로 매인 한계 때문에 용신할 수 있는 여지도 매우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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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를 찾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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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든 정도를 걷지 않으면 결국에는 엄청난 시련과 위기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시련을 당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은 패망에 이르게 된다. 지금은 고신이 시련 중에 있다. 시련은 개혁을 위한 기회이며 우리를 향해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는(reform) 마음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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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나 병원이 조상들의 유업이니 무조건 이를 붙들고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일 수 있다. 교회의 유업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땅이나 건물이나 재산이 유업이 아니다. 유업은 그들이 남긴 믿음과 정신과 삶이다. 이것이 없으면 보이는 것은 우상이 돼버린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유대인들의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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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조상의 유업인 땅도 성전도 이방인들에 의해 정복되고 훼파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에게 준 기업이 이방인들에게 유린당할 때도 지켜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을 불러들여서 징계하셨다. 우리는 성경이 이런 역사를 통하여 계시하고 있는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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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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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닷) 님이 쓰신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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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용자료 - 81.03.27.금밤/ 81.06.06.토새/ 88.11.04.금밤/ 89.08.10.목후/
: : 상기 자료에 백영희 목사님은 생전에 신학교의 대학화, 신학대학의 종합대학화에 대한 우려를 시대의 예언으로 강하게 외쳤습니다. 당시 고신은 확장 일로였으나 당시에도 뜻 있는 고신 지도부 몇 명은 이 문제에 동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공론화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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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1)
: : “신대원의 미래를 불투명한 고신대의 미래에다 묶을 순 없다” - 20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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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5일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원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신임원장은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매우 의미심장은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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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대원은 고신총회산하 교단의 직영신학교입니다. 교단의 신학을 책임지는 신학의 심장부요 사령부입니다. 그런데 1980년 제30회 총회에서 고려신학대학원을 일반대학인 고신대학 소속으로 개편하면서 이후 교단 신학교로서의 위상과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신학교로서 신대원이 고유의 신학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속정부의 법 논리에 묶여 있는 오늘의 모순된 체제는 심각히 재고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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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대학이 고신이념에 충실하게 운영되어 좋은 대학으로 발전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하지만 신대원의 미래가 대학의 불투명한 미래에 묶여 있는 오늘의 모순된 체제는 심각히 재고되어야 합니다. 이 일에 대해 신대원을 총회직영신학교로 결의한 총회가 분명한 입장을 천명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고신교회의 미래가 보장됩니다. 신대원은 우리 홀로 운영될 기관이 아닙니다. 온 교회의 관심과 기도의 지원이 없이는 하루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신대원을 위해 전국교회가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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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심각하게 들리는 이유는 고신대의 구조조정을 논하면서 ‘신대원 천안캠퍼스를 팔아 고신대를 살려야 한다’라든가 심지어는 아주 엉뚱하게도 “신대원이 구조조정 제일순위”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까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산지역 목사 장로들 중 상당수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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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서 이런 엉뚱한 발상이 나온 것일까? 우리가 듣기로는 고신대의 구조조정을 위해 컨설팅을 했는데, 그 컨설팅을 맡은 회사가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존립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지방 대학교들 중 하나인 고신대의 생존전략을 찾아 제시해야 하는 컨설팅 회사로서는 제안할만한 아이디어였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는 영적인 공동체인 교회의 특성이나 우선순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경제논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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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답답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까지도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기보다 현실적인 필요 곧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쉽게 끌려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듣던 당시의 청중들에게 가장 절박한 필요는 뭘 먹고 마시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당장 목숨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배고픈 청중들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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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대학의 절박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곧 밀어닥칠 대학의 존립위기를 극복하려면 당장 특단의 대책을 세우고 이를 단행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천안 캠퍼스다. 이것을 팔아 그 돈으로 일단 재정적인 인프라를 구축한 뒤 구조조정을 해서 장기적인 발전을 꾀하자는 것이 대학 당국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런 경제논리에 일부 목사 장로들이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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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과연 대학의 구조조정이 잘 이루어지겠는가? 턱도 없는 일이다. 회사나 대학이나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피나는 전쟁이다. 특히 대학이 어떤 학과를 폐지하려 할 땐 엄청난 저항이 뒤따르게 된다. 첫째는 해당 학과 교수들이 목숨을 걸 듯 저항할 것이고, 다음은 재학생들이, 그 다음은 졸업생들과 학부모들까지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어느 총장이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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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통째로 다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하겠지만 일단 재정이 뒷받침되어 당장은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경우에서는 그 누구도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 없으며 또 하지도 않는다. 만약 고신대가 살아남으려면 지금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적기이다. 재정 때문에 절박한 어려움을 당하는 지금이 적기라는 말이다. 이 어려움을 공감하면서 함께 기도해야 하고, 또 구조조정을 위해 시급히 필요한 재정은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모아야 한다. 이래야 구조조정으로 학교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소나마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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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복음병원 문제로 부도가 났을 땐 부평신학교 부지를 덜렁 팔아서 사태를 수습한다고 했지만 대관절 뭐가 해결되었나? 부도가 나기 전에 김해복음병원을 팔자고 두 번이나 결정했었다. 그러나 당시 이사회는 사채 문제 때문에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때 어렵더라도 총회 결정대로 했더라면 2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재정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김해복음병원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소유권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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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그 일에도 실패한 우리가 이제 대학이 어려우니 신대원 부지를 팔자는 말인가? 고신 설립 이후 30여년 동안 총회가 숙원하던 신대원 수도권 이전을 이룬지 15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잔 말인가? 신임 원장의 말대로 교단의 심장부인 고려신학대학원의 미래를 불투명한 고신대의 미래에다 함께 묶어 어쩌겠다는 말인가?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역사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확인하고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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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신학대학원은 고신교단의 심장부다 (2)
: : 천안 신대원를 영도캠퍼스로 이전하자는 것은 역사를 역주행하자는 주장이다 - 20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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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신학대학원 수도권 이전운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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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순길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장로교회사》에서 “고려신학대학원의 수도권 이전 운동의 역사는 고려신학교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다”고 하였다. 한상동 목사가 평양에서 출옥한 후 서울에 왔을 때 보수적인 입장에 섰던 목사들이 서울에다 정통·개혁주의신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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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고려신학교 제1대 교장으로 취임했던 박형롱 박사가 취임한 지 겨우 6개월 만에 이탈하여 서울로 간 이유 중 하나가 고신의 서울 이전 문제였다. 그 후에도 이 문제는 이곳저곳에서 계속 제기되었고, 총회에 정식 안건으로도 수차례 제출되었다. 그러다가 근 40년 이 지나 1986년 제36회 총회는 드디어 “신학대학원”을 수도권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이듬해 열린 제37회 총회는 이 일을 적극 추진하자고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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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이런 거듭된 결의 후에도 신대원 이전은 쉽지 않았다. 제일 큰 난관은 대학과의 관계문제였다. 본래는 대학이 신대원의 예과로 시작되었으나 문교부의 인가를 받게 되면서부터 법적으로는 신대원이 대학에 종속기관이 된 것이다. 주객의 완전한 전도(顚到)였다. 그래서 교육부에 신대원만 따로 떼어 이전하는 인가를 받는 일이 아주 난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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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대원 단설대학원 설립시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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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기독교계의 끈질긴 청원에 의해 대학원대학교 설립에 대한 입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를 기회로 삼아 학교법인 이사회는 천안에다 3만2천여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차후 대학원대학교로 설립한다는 것을 목표로 교육부에 신대원 위치변경계획 승인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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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는 1994년에 이를 승인하였는데 1996년부터 캠퍼스 조성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8월에 준공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달 9월8일에 신대원은 천안 캠퍼스에서 드디어 감격적인 개강예배를 드림으로 천안 시대가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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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후 총회가 신대원을 대학원대학교로 설립하자는 결의를 하고 이를 추진해왔으나 고려신학대학원이 신설되는 학교가 아니라 이미 고신대학교에 소속된 기존 대학원이라는 것 때문에 이를 분리하여 독립된 학교로 설립인가를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당시는 임시처방으로 비록 신대원이 법적으로는 대학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인사, 행정, 재정, 커리쿨럼 등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결정을 하고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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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이렇게 지나오다보니 이런 일을 추진하고 결정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학교 당국자들도 세대교체가 되면서 신대원의 정체성과 위상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 심지어는 우선순위마저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이 주체가 되고 신대원은 그 종속체가 되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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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면서 이미 지난 사설에서 거듭 언급한 대로 신대원을 대학에 완전히 종속시키려는 아주 엉뚱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교회의 사명도, 고신의 역사도 신학도 모르고 그저 현실의 다급성만 생각하면서 도로를 역주행하려는 너무나 위험한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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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대의 설립과정과 그 정체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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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신학교는 처음부터 사실상 총회 직영신학교로 운영돼오다가 1964년도에는 정식으로 총회직영 신학교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감천 화력발전소 뒤에 한 때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자리에 한명동 목사 등이 운영하던 칼빈학원(일명 칼빈대학)이 있었는데, 그해에 이 학원도 고려신학교 예과과정으로 편입시켰다. 그 명칭은 고려신학교 대학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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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데 칼빈학원을 운영하며 대학설립의 꿈을 가졌던 몇몇 지도급 인사들이 신학교의 예과로 있는 대학부를 정식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총회유지재단을 교육재단으로 변경해달라는 청원을 총회에 제출하고 공적인 절차를 밟아 대학인가를 받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여러 가지 교단 내 정치적인 갈등과 생각들이 달라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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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그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유지재단이사회와는 별도로 대학인가를 위한 가(假)이사회(일명 私造이사회)를 만들어 학교재단설립인가를 받고 이어 고신대학 인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총회와 고려신학교에 관련된 지도급 인사들의 엄청난 갈등과 내홍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다가 대학부 교수들의 소위 ‘음주사건’까지 겹쳐서 학교전체가 큰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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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사조이사회 관련자들을 징계하려는 과정에서 대학부 교수들이 총사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는 등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거기다 신학적으로도 개혁주의 영역주권사상에 의해 일반대학을 교회가 직영할 수 없다는 논란이 일어나 사태는 파국 직전까지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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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결국 신학적인 논란은 뒷전으로 돌리고 아무런 체제정리를 하지 않은 채 현실을 인정하고 수습하는 방향으로 엉거주춤 매듭이 되었다. 고신역사에 남은 큰 그림자였다. 그리하여 신학교의 부속기관이었던 예과가 대학이 됨으로써 교단의 심장부였던 신학교가 법적으로는 대학의 부속기관이 되는 이변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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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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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대학이 신학교육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반 학과들을 계속 증설하게 되면서 초기의 설립이념이나 정체성은 점점 더 희미해지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신교단이 대학을 갖고 있고, 종합병원까지 갖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자랑이 고신을 세속화의 길로 견인하고 있다. 곧 구미의 유수한 신학교들이 일반대학으로 발전하면서 신학교육이 완전 뒷전이 되거나 폐지되고만 것처럼 고신이 지금 그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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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서 언급한 대로 고신대가 처음에는 “고신대학”으로 신학교의 예과 성격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반학과들을 증설하면서 일반대학으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고신대가 처음에는 신급 제한을 두어 크리스천 학생들을 받았으나 학생모집이 되지 않음으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현실타협이 이루어져 신급을 폐지하게 되었다. 완전히 일반대학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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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신급을 폐지하고서도 상당수 학과들은 여전히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감소로 여전히 학생 모집이 힘들어져서 다른 지방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존립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천안의 학교부지(신대원)를 팔아서 영도 캠퍼스와 합하고, 그 매각대금을 대학을 살리는데 사용하자는 희한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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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적으로만 보면 이런 생각이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신대원 부지를 팔아서라도 학교를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현실적인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말로 신앙원리를 따르는 일을 포기하고 경제논리에 끌려가는 우상숭배적인 행태와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왜 잘못된 것을 근본적으로 고쳐 새로운 출발을 하려하지 않고 계속 세속주의와 타협하며 현실만 무마하려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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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이 깨어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정말 심각한 상황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어나 역사의 오류를 바로 잡고, 우리의 이념 -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다시 찾고 구해야 할 때이다. 계속 현실타협을 하면서 이대로 나가면 캄캄함이 곧 고신을 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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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이미 복음병원으로 인해 바벨론 유수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런 경고의 역사를 경험하고서도 아무런 감각이 없단 말인가? 북쪽 이스라엘이 이방나라 앗수르에 정복되었을 때 남쪽 유다는 어찌했나? 돌이키지 않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지 않았던가. 일본 신사에 무릎을 꿇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고신이 이제는 위장한 세속주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 것인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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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부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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