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일본 선교를 위한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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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일본 선교를 위한 상식


일본은 우리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세계 최저의 교회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우리에게는 항상 선교의 주요 대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와 함께 우리에게 육상으로 이어 진 이웃이어서 이 역시 중요하기는 마찬 가지입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두 이웃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 양 쪽 옆에 있는데 그 사이에 끼인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현재 양 국 사이의 상황이나 한국 교회의 위상으로 볼 때, 거시적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일본과 중국에 대한 선교의 사명은 대단히 시급하며 지급합니다. 중국 선교 자료는 넘치고 있으나 일본 선교 자료는 읽을 만한 것이 별로 없던 차에 좋은 자료가 있어 소개합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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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출처: 코닷 - 고신 언론
제목: <특별기고>일본 한인교회 목회와 선교
저자: 이청길 선교사


인류 문명의 일몰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는 어느 한 종교도 다른 종교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일본불교는 신도(神道)와 무교(Shamanism)와 일본사상과 혼합되어 실질적으로 일본인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흔히들 신도(神道)는 일본인의 종교라고 말하고 일본인만 가지는 민족종교라고 자부한다. 불교와 기독교는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종교이지만 신도(神道)는 일본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일본인 종교라고 한다. 이것은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일본 종교이며 일본인 이외는 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싫던 좋던 간에 신도(神道)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단지 종교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도(神道)는 조상숭배와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신도(神道)를 거절할 경우에는 지연관계, 혈연적인 대(代)를 상실하고, 고향과 친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금도 일본 기독교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일 것이다.

조상숭배란 조상들의 죽은 영(靈)들을 숭배하는 것이다. 조상숭배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었던 자연 발생적인 원시 토착종교이다. 신도(神道)는 그것을 의식화했고 형식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는 표현이 신도(神道)의 제사 제도로 발전한다. 죽음을 두려워함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죽은 자를 모심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조상숭배의 가치관이 되었다. 죽음과 환생이라는 영혼 순환설이 조상숭배의 근본 원리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대부분의 가정에는 불단이나 신단을 만들어 놓고 죽은 영(靈)들을 공양하고 죽은 영(靈)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일본인들은 모든 사물에 영(靈)이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靈)이라는 생명의 에네르기는 때가 지나면 점점 쇠약해 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일 년의 계절을 따라 마쯔리(祭)를 행하여 신(神)의 위력을 갱신하고 인간의 혼(魂)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년 중 마쯔리(祭)의 행사를 행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삼라만상에 신(神)의 영(靈)이 깃들고 있으며 신(神)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이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산이 폭발하게 되면 불(火)의 신(神)이 진노하는 현상으로, 홍수는 물의 신(神)이 진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신(神)의 진노를 막기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 마쯔리(祭)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신(神)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 신(神)의 노여움을 사고, 모든 재앙이 내리고 신(神)의 뜻을 따르게 되면 오곡의 풍요와 평화, 번영과 신(神)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성(心性)을 바로 이해하지 않고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바로 전한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일본은 복음의 황금어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후 67년간 세계 최강의 선교사들이 교육, 의료, 복지사업을 통하여 전력을 다하였지만 일본인구의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99%라는 황금어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 사역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불가능함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과 해답을 얻었기에 이제부터 일본선교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일본교회 목회자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교회 목회자 때문에 일본교회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주시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더욱 막중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선교가 어려운 것은 사회학적이나, 신학적인 문제도 있지만 일본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외부 지향적이 아니라 내향적인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1887년에 창립된 일본의 한 교회는 현재 교인들의 출석이 10여명 정도이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면 오고 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사고(思考)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교회는 20-30명의 성도만 있으면 재정적으로 교회가 유지되기 때문에 오히려 목회자는 성도의 숫자가 그 이상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본교회의 목회자들은 전통적인 사고(思考)를 고수(固守)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일본교회의 특징은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교회, 교인들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일본교회의 가정적인 분위기는 좋지만 외부의 변화를 받아드리지 않는 폐쇠성이 교회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일본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문제이기 보다는 교회 자체적인 내부의 문제가 더욱 심각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 어느 교회의 게시판에 ‘새신자도 환영한다’는 게시물을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왜냐하면 ‘새신자를’ 아니고 ‘새신자도’ 환영한다는 의미는 새로운 사람도 받아 주겠다는 뜻이다. 즉 이 말은 교회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아닌 자신들만의 모임이라는 사고(思考)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뜻한다.

일본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하여 올지라도 이명증서가 없이는 함부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한인교회에는 벌써부터 사라진 이명제도가 일본교회에서 그대로 살아있음을 생각하면 일본교회가 약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일본교회는 교회간의 질서 체계가 분명하고 목회 윤리가 건전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치리(治理)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바로 서고 혼란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한인교회들은 수평이동으로 다른 교회의 집사나 장로가 오면 무조건 영입하여 바로 직분을 주기 때문에 교회간의 질서와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목회 윤리의 부재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한인교회 목회자들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떠벌리는 경향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종종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한인교회 목회를 위한 대안들이 너무 많지만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1) 강력한 기도와 영성훈련
2) 체계적인 성경교육
3) 은사개발과 치유사역
4) 개인전도훈련
5) 교파, 교단을 초월한 협력과 연합사업

일본 기독교계의 지도자이며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미네노 타츠히로 목사(峯野龍弘 牧師:淀橋??主管牧師)는 한국선교사들에게 일본선교를 위하여 마음에 유념할 것을 이렇게 충언하고 있다.

1) 과거와 현대의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정신구조, 기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2) 파송된 지역의 고유문화와 정신구조,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
3) 일본 예절을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 예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4) 지역 사회의 필요를 파악, 주민의 불만과 반감을 사지 않아야 한다.
5)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6) 한국과 일본의 생활습관의 차이를 잘 이해해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
7) 기도 및 선교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신앙훈련 등 한국의 좋은 영적 풍토가 일본 기독교계를 더 많이 자극해주기 바란다.
8) 영성과 지성과 더불어 사랑으로 균형 잡힌 전인적 복음 전도가 필요하다.
단순한 열성은 경원되고 때로는 무시당할 수 있다.
9) 모든 연령층과 계층에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10) 명망있는 일본 목회자나 건전 교단, 교회들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선교는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다시 과거와 같은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훈련과 영성회복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 선교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작년 3.11 동북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하여 전 국민이 생존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해변의 마을들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로 인한 농산물, 수산물과 더불어 식수마저 오염되어 더욱 불안을 가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4년 이내에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70% 이상 가능성이 있음을 공식 표명하면서 대지진에 대한 방비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지진 이후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유증은 국가의 경제에 위협을 줄 만큼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국민정서의 불안과 우울증환자의 급증과 자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의 새로운 기회임을 확신한다. 이와 같은 때에 한인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과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고 성령의 역사를 행사할 수 있는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전진한다면 일본은 반드시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다.

2012년 07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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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일본 한인교회 목회와 선교







이청길 선교사






1. 들어가는 말



▲ 이청길 선교사

일본선교사

지금 세계는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석유자원 고갈에 이어 식수마저 고갈되고 있으며, 해수오염, 대기오염, 지구온난화 등에 국제금융위기까지 겹쳐 날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식량부족으로 인해 매년 1,500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해온 아마존 강 유역의 거대한 밀림 지역마저 빠른 속도로 사막화 되고 있으며, 남극과 북극의 빙벽이 해마다 더 빠르게 녹아내려 해수면이 급상승하고 있다. 그로 인해 허리케인, 대지진, 쓰나미 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지질학자, 기상학자, 해양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이런 재앙으로 인해 앞으로 20년 내에 인류의 1/3 이상이 희생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일부 국가들은 핵개발 경쟁에 몰두하거나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치열한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자살사이트가 확산되는 등 위태롭고 부끄러운 일들이 빈발하고 있으며, 흉악한 범죄들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마침 인류 문명의 일몰이 우리들의 역사 속에 점점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때에 해외한인교회 목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목회의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해외한인목회란 대상의 다양성과 시대적인 긴박감과 경제적인 압박 때문에 생각같이 단순하지 않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목회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인내하고 정직과 성실함으로 열매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소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일본한인교회 목회는 과거의 아픈 역사로 인한 민족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상호간의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2. 일본 사회와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




1)한일역사에 대한 이해

일본한인교회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전제로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교회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목회로 인한 부작용을 막고 상호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의 역할이란 일본교회를 돕고 일본 목회자들이 바른 목화를 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좋은 프로그램을 함께 공유하므로 동반성장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본문화와 일본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 위한 무한한 연구와 노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한국의 전후세대는 일본문화에 대한 정확하고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편협된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668년에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기까지 고구려와 백제간에 심한 내전이 있었다. 이 내전에 패한 많은 고구려인과 백제인이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그 전에 백제의 왕인(王仁)은 일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285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학자로서 크게 활동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간 많은 한국인은 8세기경까지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4세기부터 일본에는 화란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많은 무역선이 왕래하면서 서양문물을 전달하였다. 도구가와막부(德川幕府) 중엽부터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통신사(通信使)들이 왕래하면서 문화적 교류가 있었으나 1854년에 페리(M.D. Perry)제독이 일본과 화친조약을 맺은 후부터 일본은 서양각국과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 그때까지 한국을 거쳐 중국문명을 받아들이던 관례는 급격히 약화되고 말았다.




1858년 7월에 일미수호통신조약(一米修好通信條約)을 체결하므로써 일본은 오래 동안 계속되었던 쇄국정책을 파기하고 급속하게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은 한국과 중국을 친린국(親隣國)으로서가 아니라 침략의 상대국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노일전쟁을 승리로 끝낸 일본은 동북아세아의 명주적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1910년에 한일합방을 성사시키고 한국을 총독정치 아래 두게 되었다. 1945년에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남북으로 양단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총독부시대에 받은 일본문화의 영향이 잔존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본한인목회는 한일간의 역사와 일본문화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2) 일본 종교에 대한 이해

일본한인교회 목회를 위해서는 일본종교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의 심성(心性)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유종교는 생산과 생활의 공동체에 의하여 형성된 농경사회의 의례를 주체로 하여 물활론과 자연숭배와 조상들의 영혼에 대한 숭배와 주술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다신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고유의 종교에 아세아 대륙에서 전달된 무교가 합세하여 일본종교를 주술적인 종교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6세기경에 중국과 한국을 거쳐 불교와 유교와 도교가 전래되어 기존의 토속종교와 혼합되었으나 불교를 중심한 종교생활이 주축을 이루었다. 중세기에 있어서는 일본불교가 더욱 발전하여 일본을 불교국으로 만들었다.




중국으로부터 보편적 구원을 신봉하는 천태종(天台宗)과 인간의 평등과 모든 사람이 그 안에 불성(佛性)과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치는 진언종(眞言宗)이 전래된 후 그것들이 일본고유의 종교와 접목되어 주술적이고 밀교(密敎)적인 방향으로 크게 발전되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한 종교도 다른 종교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로 발전하지 못한 것과는 달리 일본불교는 신도(神道)와 무교(Shamanism)와 일본사상과 혼합되어 실질적으로 일본인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일련(日蓮)이 창립한(1253) 일련종의 신자였던 마끼노(牧野常三郞,1871-1944)와 도다(戶田城聖,1900-1958)에 의하여 만들어진 창가교육학회가 모체가 되어 발전한 신흥종교인 창가학회가 있다. 창가학회는 현세의 이익취득과 현세의 불리한 제도를 타파하는 기본정책으로 패전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 대중을 흡인했다. 그리고 일본민족의 구원과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는 구호로 정계에 진출하여 공명당이란 정치단체를 만들었다. 창가학회는 현재 일본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정책과 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종교가 되었다.




3) 일본인과 신도(神道)에 대한 이해

신도(神道)란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이지만 대개 5개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민간신도, 신사신도, 황실신도(궁중제사), 학파신도, 교파신도(천리고, 대본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816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과 더불어 일본에선 천황(天皇)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현인신(現人神)의 개념이 제도화되기 시작되었다.




일본의 천황은 신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고 이에 반항하는 자들은 불경죄로 다스리게 되었다. 불경죄란 황실과 신궁의 존엄을 무시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자를 형법상의 불경죄로 엄하게 다스리는 악법이었다. 불경죄는 1947년에 폐지될 때까지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과 함께 종교탄압을 위한 수단으로 악하게 이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인에게 “당신은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하고 질문한다면 아마도 “나는 일본 사람이기 때문이다”고 대답할 것이다. 즉 일본인은 일본인만의 독특한 종교가 있다는 말이기도 한다.




흔히들 신도(神道)는 일본인의 종교라고 말하고 일본인만 가지는 민족종교라고 자부한다. 불교와 기독교는 민족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종교이지만 신도(神道)는 일본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일본인 종교라고 한다. 이것은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일본 종교이며 일본인 이외는 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싫던 좋던 간에 신도(神道)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단지 종교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도(神道)는 조상숭배와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신도(神道)를 거절할 경우에는 지연관계, 혈연적인 대(代)를 상실하고, 고향과 친족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금도 일본 기독교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일 것이다.




신도(神道)는 조상숭배를 이용하여 민족종교로서 뿌리를 내리고 일본인들의 구심력을 형성하여 결집하고 있다. 일본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행사는 신도(神道)와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년 정초에 신사참배로 시작하여 모든 행사가 알게 모르게 신도의 행사로 일관되어 있다. 만일 기독교인이 이와 같은 행사를 거부하면 반드시 비국민(非國民)이요, 비일본인(非日本人)이라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외톨이(仲間外れ)가 될 것이다. 일본인에게 전도하려고 하면 “일본인에게는 일본인의 전통과 문화가 있다. 가문을 지키고, 조상을 지키는 것이 일본인의 의무이다”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한인교회 목회는 뱀같이 지혜롭게 비둘기같이 순결함으로 성실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4) 일본인과 조상숭배에 대한 이해

일본인들에게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은 조상숭배에 대한 사상이다. 조상숭배는 일본인들의 원시종교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밀착된 종교형태이다. 이와 같은 종교형태는 모든 삶의 영역 속에 정착되어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조상숭배의 개념은 신도와 불교 등에 혼합되어 민중들의 삶속에 정착되었기 때문에 일본선교의 가장 큰 장벽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진정한 일본선교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조상숭배에 대한 잘못된 종교성을 바로 깨우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조상숭배라는 강력한 장벽을 넘지 않고는 진정한 일본선교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선교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일본인들의 문화와 종교성을 이해하는데 더욱 노력할 뿐만 아니라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조상숭배란 무엇인가? 조상들의 죽은 영(靈)들을 숭배하는 것이다. 조상숭배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었던 자연 발생적인 원시 토착종교이다. 신도(神道)는 그것을 의식화했고 형식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는 표현이 신도(神道)의 제사 제도로 발전한다. 죽음을 두려워함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를 죽은 자를 모심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조상숭배의 가치관이 되었다. 죽음과 환생이라는 영혼 순환설이 조상숭배의 근본 원리라고 한다. 일본인들의 대부분의 가정에는 불단이나 신단을 만들어 놓고 죽은 영(靈)들을 공양하고 죽은 영(靈)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일본인들은 모든 사물에 영(靈)이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靈)이라는 생명의 에네르기는 때가 지나면 점점 쇠약해 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일 년의 계절을 따라 마쯔리(祭)를 행하여 신(神)의 위력을 갱신하고 인간의 혼(魂)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년 중 마쯔리(祭)의 행사를 행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일본인들은 삼라만상에 신(神)의 영(靈)이 깃들고 있으며 신(神)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이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산이 폭발하게 되면 불(火)의 신(神)이 진노하는 현상으로, 홍수는 물의 신(神)이 진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신(神)의 진노를 막기 위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 마쯔리(祭)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신(神)의 뜻을 거역하게 되면 신(神)의 노여움을 사고, 모든 재앙이 내리고 신(神)의 뜻을 따르게 되면 오곡의 풍요와 평화, 번영과 신(神)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성(心性)을 바로 이해하지 않고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바로 전한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3. 일본 기독교에 대한 이해

명치정부(明治政府)는 도구가와 막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를 사교로 인정하여 계속적인 금지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드리기 위한 수단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인들의 출입을 자유롭게 하였다.




오래 동안 쇄국장책을 일관하여오던 명치정부는 서서히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였고, 1858년 7월에는 일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조약문의 8조에는 일본에 있는 미국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전념할 수 있으며 거유지에 예배당을 건립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또한 거유지내의 그리스도교의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였고 선교사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도록 규정하였고, 이 조약의 발효는 일 년 후인 1859년 7월에 성립되었다. 이에 앞서 5월에는 미국 성공회의 선교사인 J.리긴스와 그의 동역자인 C.M.윌리암스가 나가사키(長崎)에 개신교의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상육하게 되었다. 그 뒤를 이어서 10월에는 미국장로교회 계통의 선교사인 J.L.헤본 의학박사와 11월에 미국의 개혁파 교회의 선교사인 S.R. 브라운 등이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 상육하게 되었다. 그 후에 계속해서 대부분 미국의 선교사들이 태평양의 파도를 넘어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1859년에 로마 카토릭 선교사들이 일본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고, 또한 개신교와 동방정교회의 선교사들도 들어오게 되었다.







선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전도했지만 일반 국민들은 적개심을 가지고 대할 뿐이었다. 초기에 개종한 기독교인들은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했으며 선교사들에 의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였다. 그 후 1865년에 베루나-루 프친 챤 신부가 나가사키(長崎)에 박해수난자 기념회당을 건립하였다. 이때에 숨어있던 많은 신자들이 나타나 부활절 예배에는 1500여명이 함께 모여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1873년(明治6年)에 명치정부(明治政府)가 파송한 이와쿠라(岩倉具視) 일행이 유롭을 시찰 중에 있었는데 이 때에 나가사키(長崎)의 우라가미(浦上)에서 외국인 기독교인 박해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알게 된 외국의 공사들이 일본정부에 몰려와 항의를 하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외국의 비위를 거스릴 수 없어서 마지못해 천주교 금지령을 철회하게 되었다. 1873년 2월에 그리스단 금제의 법령이 철거되기 전까지 약60여명의 선교사들이 일본 각처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들은 동경과 요코하마(橫浜)을 중심으로 각종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일본 정부에서는 “마을마다 배우지 않는 집이 없고, 집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한다”는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전국적으로 교육을 보급하였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일본성서협회를 설립하여 일본어 성서를 발간하게 되었고, 1872년에 일본에 최초로 개신교 교회인 요코하마교회(現:海岸敎會)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의 중심은 학교 교육과 의료사업을 중심으로 엄밀하게 선교활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아도 좀처럼 믿으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도구가와막부 때에는 불교에 의하여, 명치정부이후에는 신도(神道)에 의하여 사람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전원 불교 신자인 동시에 진자(神社)의 씨자(氏子)라고 하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는 기독교는 일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복음의 황금어장임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후 67년간 세계 최강의 선교사들이 교육, 의료, 복지사업을 통하여 전력을 다하였지만 일본인구의 1%의 벽을 넘지 못하고 99%라는 황금어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 사역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불가능함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기에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과 해답을 얻었기에 이제부터 일본선교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4. 일본한인교회 목회와 선교

일본한인교회 목회란 한일간의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담대한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민족적인 기질이 있기에 목회자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보다 강력한 목회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일본교회 목회자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교회 목회자 때문에 일본교회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주시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 더욱 막중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선교가 어려운 것은 사회학적이나, 신학적인 문제도 있지만 일본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외부 지향적이 아니라 내향적인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1887년에 창립된 일본의 한 교회는 현재 교인들의 출석이 10여명 정도이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면 오고 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사고(思考)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교회는 20-30명의 성도만 있으면 재정적으로 교회가 유지되기 때문에 오히려 목회자는 성도의 숫자가 그 이상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일본교회의 목회자들은 전통적인 사고(思考)를 고수(固守)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일본교회의 특징은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교회, 교인들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일본교회의 가정적인 분위기는 좋지만 외부의 변화를 받아드리지 않는 폐쇠성이 교회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일본교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문제이기 보다는 교회 자체적인 내부의 문제가 더욱 심각함을 느끼게 된다. 일본 어느 교회의 게시판에 ‘새신자도 환영한다’는 게시물을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다. 왜냐하면 ‘새신자를’ 아니고 ‘새신자도’ 환영한다는 의미는 새로운 사람도 받아 주겠다는 뜻이다. 즉 이 말은 교회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아닌 자신들만의 모임이라는 사고(思考)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뜻한다.




일본교회는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하여 올지라도 이명증서가 없이는 함부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한인교회에는 벌써부터 사라진 이명제도가 일본교회에서 그대로 살아있음을 생각하면 일본교회가 약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일본교회는 교회간의 질서 체계가 분명하고 목회 윤리가 건전할 뿐만 아니라 엄격한 치리(治理)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바로 서고 혼란스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와 반대로 한인교회들은 수평이동으로 다른 교회의 집사나 장로가 오면 무조건 영입하여 바로 직분을 주기 때문에 교회간의 질서와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목회 윤리의 부재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한인교회 목회자들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떠벌리는 경향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종종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한인교회 목회를 위한 대안들이 너무 많지만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1) 강력한 기도와 영성훈련

2) 체계적인 성경교육

3) 은사개발과 치유사역

4) 개인전도훈련

5) 교파, 교단을 초월한 협력과 연합사업




일본선교는 한일간의 좋은 장점들을 잘 개발하여 서로 협력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의 목회는 어디까지나 일본교회를 살리고 일본 목회자들의 잘못된 교회관과 목회의 방향성을 바로 잡아주고 그들 스스로 성장의 길을 모색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본 기독교계의 지도자이며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미네노 타츠히로 목사(峯野龍弘 牧師:淀橋??主管牧師)는 한국선교사들에게 일본선교를 위하여 마음에 유념할 것을 이렇게 충언하고 있다.

1) 과거와 현대의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정신구조, 기질에 대해 알아야 한다.

2) 파송된 지역의 고유문화와 정신구조,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

3) 일본 예절을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그 예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4) 지역 사회의 필요를 파악, 주민의 불만과 반감을 사지 않아야 한다.

5)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6) 한국과 일본의 생활습관의 차이를 잘 이해해서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야 한다.

7) 기도 및 선교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신앙훈련 등 한국의 좋은 영적 풍토가 일본 기독교계를 더 많이 자극해주기 바란다.

8) 영성과 지성과 더불어 사랑으로 균형 잡힌 전인적 복음 전도가 필요하다.

단순한 열성은 경원되고 때로는 무시당할 수 있다.

9) 모든 연령층과 계층에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10) 명망있는 일본 목회자나 건전 교단, 교회들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은 일본선교를 위한 귀한 충언으로 받아들이고 잘 실천하여 한일교회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5. 나가는 말

일본은 1945년 종전(終戰)후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지만 패전 당시 0,9%이었던 기독교 인구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0,9% 수준을 넘어가지 못하는 참으로 신기한 나라이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강력한 선교사들이 일본선교에 도전하였지만 실패하고 돌아간 현장이다. 우리는 이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선교전락을 수립하고, 재도전을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일본선교는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번 다시 과거와 같은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훈련과 영성회복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 선교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작년 3.11 동북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하여 전 국민이 생존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해변의 마을들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로 인한 농산물, 수산물과 더불어 식수마저 오염되어 더욱 불안을 가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4년 이내에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70% 이상 가능성이 있음을 공식 표명하면서 대지진에 대한 방비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지진 이후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유증은 국가의 경제에 위협을 줄 만큼 엄청난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국민정서의 불안과 우울증환자의 급증과 자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적 요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의 새로운 기회임을 확신한다. 이와 같은 때에 한인교회의 목회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과 강력한 복음을 선포하고 성령의 역사를 행사할 수 있는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전진한다면 일본은 반드시 우리의 밥이 될 것이다.



2012년 07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