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국의 유명 부흥사 소개
이성봉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 덴 허사라
‘인생모경가’에 나타난 복음의 은혜
탁월한 부흥사셨던 이성봉 목사는 ‘인생모경가(꿈결 같은 이 세상에)’를 작사하여 집회 때마다 스스로도 부르고 회중에게 전파했다. ‘모경’(暮境)이란 늙어서 노인이 된 처지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40리 떨어져 있는 교회까지 주일이면 새벽부터 걸어서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의 청년기는 극도로 타락한 시대였다. 어렵고 힘든 시대적 배경도 있었지만, 그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진리조차 부인했다. 주일 예배는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그 시절 그에게 골막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의사는 다리를 자르라고 했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머니는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개하라. 예수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려 세상에 오셨단다. 너는 예수를 믿으라. 그를 믿고 그를 의지하라." 그는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섭리를 전하겠나이다. 예수를 증거하겠나이다. 한번만 살려 주세요”라며 자복하고 회개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마음에 참 평안을 주셨다. 비로소 그는 성경을 받아들고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한국 교회 부흥운동의 커다란 경종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역사적 소명에 따랐다.
‘인생모경가’는 이러한 그의 인생을 바탕으로 영원한 생명이 없고, 영원한 생명이 없는 세상은 꿈결 같다고 표현하면서 시작된다. 1절부터 4절까지는 인생의 무상함과 그 무상한 시절을 따라 하릴없이 흘러가는 안타까움을 노래했다면, 5절부터는 고통 뒤에 찾아오는 기쁨을 노래한다.
* 인생모경가 - 꿈결 같은 이 세상에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인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모진 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 가느냐
이팔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가고
혈기방장 그 시절도 옛날이 되누나
성공실패 꿈꾸면서 울고 웃는 그 순간에
성치 않는 그 백발이 눈서리 휘날리누나
해와 달과 별같이도 총명하던 정신이
안개 구름 담뿍 끼어 캄캄해지누나
모든 정욕 다 패하고 아무 낙도 없어지니
땅에 있는 이 장막이 무너질 때가 되었네
인삼 녹용 좋다 해도 늙는 건 못막구요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 덴 허사라
인생 한 번 죽는 길을 누가 감히 피할쏘냐
분명하다 이 사실 너도 나도 다 당하네
꽃이 떨어진 후에 열매를 맺구요
엄동설한 지나가면 양춘계절이 오네
어두운 밤 지나가면 빛난 아침이 오리니
이 세상을 떠나간 후 영원한 왕국 오리라
근심 마라 너희들은 하나님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고 주 말씀하셨네
내 아버지 그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지요
기쁘도다 주님 함께 영원히 같이 살리라
저 건너편 종소리는 내 귀에 쟁쟁코
보석성의 그 광채는 눈앞에 찬란타
앞서 가신 성도들이 주님 함께 기다리네
어서 가자 내 본향에 할렐루야 아멘
여성 5걸
기도로 역사를 이룬 여성 5걸, 그 은혜의 여정
광복 전후 기도와 말씀을 통해 회개운동을 펼치며 교회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했던 여성 5걸의 여정을 살펴본다.
뜨거운 진리 소명자 박복달
박복달 권사는 일제 말기 신사참배 반대로 피해 다니던 최일출 목사의 부름을 받아 성경 공부를 시작, 그의 가르침에 은혜 받고 눈물로 회개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됐다. 광복 후 장년 주일학교 교사로서 성경 말씀을 가르쳤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가는 곳마다 증거되는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 큰 회개 운동을 주도하며 부흥회에 참석한 회중들은 가슴을 치면서 듣기에도 민망한 죄들을 서슴지 않고 토해냈다.
찬송 기도 말씀의 주부 부흥사 우태숙
평범한 주부였던 우태숙 선생은 6·25전쟁을 거친 시기에 여성 신앙 부흥사로 활동했다. 남편은 점점 눈이 어두워져 맹인이 된 가운데, 남편을 지성으로 섬기면서 부흥집회를 했다. 우 선생이 부흥집회에 나갈 때는 꼭 “여보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게 있나?” 하고 남편에게 묻고 철저하게 회개한 후 부흥집회에 나갔다고 한다.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그의 집회는 삽시간에 온 회중을 사로잡았다. 당시 그의 집회는 모이면 찬송이요, 기도요, 눈물이었다.
말씀 증거의 능력을 전파한 명향식
명향식 선생은 1910년 평양 출생으로, 우연히 옆집 할머니의 전도를 받고 만주 목단강 제일성결교회에 갔다가 이성봉 목사의 사경회에서 큰 은혜를 받고 신앙을 갖게 됐다. 서울로 건너 온 후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해 큰돈을 벌었지만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선 것이 잘못 되어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됐다. 삼각산에 들어가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던 중 지난 일을 회개하는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신유의 은사와 말씀 증거의 능력을 주시어 부흥사가 되어 전국을 순회했다. 그 후 무척산 기도원 원장이 되어 기도로써 많은 이들의 약한 육체와 심령을 치유하는 데 헌신을 다했다.
금식기도의 유익 실천한 표지현
표지현 전도사는 1927년 황해도 출신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통해 25세에 재건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기며 봉사하고 교회 부흥을 위해 묵묵히 헌신했다. 표 전도사는 무척산에 가서 금식기도를 함으로써 신앙적 연단과 고난을 이겨내는 계기로 변화했다. 표 전도사는 어려움 속에서 중심에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았고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기도를 함으로써 극복했다. 기도와 말씀을 전하여 은혜의 생활을 강조했고 특히 여성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쳐왔다.
치유의 은혜 헌신의 삶을 증거한 현신애 권사
현신애 권사는 받은 은사를 통해 치유 사역을 펼쳐 왔다. 그러던 중 천국에서 만난 예수님과의 일화를 전하면서 북한의 동포들을 위한 선교사업을 위해 전 재산을 기증하며 섬김으로 일생을 마쳤다. 큰 변화를 통해 그 증거 됨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을 변화시켜 교회를 부흥케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한 삶을 간직하고 있다.
눈물과 기도의 무릎으로 후대 살리다
복음만이 생명이기에 전한 외침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부흥의 역사 뒤에는 헌신과 섬김의 숨은 주인공들이 있었다. 민족과 교회의 위기 때마다 치유와 회복, 헌신과 기적의 현장이 되게 한 기도와 헌신, 그 흔적을 되새기며 다시금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로 이 민족을 보호하고 안보해 주심을 위해 우리는 기도의 제단을 쌓는다.
한국의 ‘무디’로 불린 이성봉 목사
이성봉 목사(1900∼65)는 신학을 공부한 뒤 순회 전도사로 활동했으며 만주지방 선교사로도 사역했다. 1961∼63년 사이에는 무려 408개 교회를 순회하며 ‘말로 못 하면 죽음으로’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생애를 마감하기 열흘 전까지도 1일 1교회 순회 집회를 여는 등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부흥사경회를 열어 수많은 생명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했다. 한국의 ‘무디’ 혹은 ‘빛의 사자’다운 열정으로 산골과 도서 곳곳까지 부흥의 소리가 꺼지지 않았다.
깡패에서 부흥사로 김익두 목사
김익두(1874~1950)라는 이름은 깡패로 먼저 알려졌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뜨거운 가슴으로 쪽복음과 전도지를 갖고 동네마다 다니며 전도했다. 깡패가 아닌 전도사로 장터로 나간 것이다. 그에게 욕을 하고, 심지어 와서 때려도 오히려 “나를 실컷 때려달라”며 눈물로 회개했다. 1920년 승동교회에서 부흥회를 이끌 당시 무려 1만여 명이 참석했다. 그는 만주·시베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766회의 부흥회를 이끌면서 나라를 잃고 고통당하는 동포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 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
한국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길선주 목사(1869~1935). 평양대부흥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연합남자사경회 때 설교하는 시간, 성령이 강림하여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곳곳에서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성령의 불길이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서 뜨겁게 일어났다. 새벽녘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앉아 눈물로 기도했던 한국 교회의 전통 새벽기도를 이끌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으로 참여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외친 최권능 목사
“이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이야.” 방탕한 시절의 옛 친구들이 놀려대는 소리에 최권능(1869~1944)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33세의 나이에 복음서를 읽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게 됐다. 다음 해인 34세 때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아 죽는 꿈을 꾼 뒤로 불 같은 열정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의 전도는 간단하고 단순했다.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12년 동안 복음을 전한 결과 28개의 교회를 세웠다.
취재/제작 : 사랑NEWS 우리
201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