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고신대나 고신 노회 지도부 '음주' '도박장'... -> 총공회 내일 모습
천주교의 죄는 기장의 내일의 죄, 기장의 죄는 통합의 내일의 죄, 통합의 죄는 합동의 내일의 죄, 고신의 죄는 총공회의 내일 지을 죄라고 보면 거의 맞습니다. 동시 발생도 하지만 그래도 신앙의 넓고 좁은 면이 분명하게 있으므로 시차는 있는 편입니다.
고신이 설립한 고신대학교 지도부가 일본 연수회를 가면서 한국에서부터 "소주"를 사 가지고 가서 음주를 했다는 보도, 그리고 고신의 기관들이 예산 청구를 하면서 세상 기관들처럼 유흥비 등을 과다 청구해서 사용하는 등의 내부 제보가 잇 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총공회 상황에서는 포도주 정도는 몰래 마셔도 막걸리나 소주를 들이 대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고 나면 공회 내에서 발견 될 소리입니다. 물론 마시기 시작할 때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막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궁이에 불을 땐 이상 굴뚝에 연기를 끝까지 감추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총공회의 내일을 염려하며 오늘 우리를 조심하자는 뜻으로 이 내용을 올려 보았습니다. - 관리자
=================================================================================
고신에 희망이 있는가?
천헌옥 목사
고신에 희망이 있는가? 20년 전쯤이던가 교단의 여러 가지 일로 소리를 돋우어 내던 한 사람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자조하면서 한 말이 “고신에 희망이 있는가?”였다. 그러자 누군가가 "마틴 루터도 한 사람이었지만 개혁을 해냈다. 우리라고 못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우리가 개혁주의자이니 개혁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렇게 개혁을 독려하던 그마저도 “고신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왜냐고 반문하자 풀죽은 목소리로 “고신의 다음 세대에 희망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부정과 부패, 잘못된 일에 대해 싸우는 것은 그래도 고칠 수 있는 희망이 있지만 사람에 대해, 그것도 팔팔한 젊은 피가 끓어오르는 세대에서 바름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을 때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음을 실감한 말일 것이다.
19일 자 기독교보에 “복음병원 집행부 행동 파문 일파만파”라는 박스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의하면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이 지난 9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일본 후쿠오카 벳푸에서 교수 연수회를 가졌는데 29일 공식행사 이후 원로, 신임 교수 15여 명이 소통의 자리로 모여 한국에서 가지고 간 소주를 의무부총장 겸 병원장이 참여한 가운데 음주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조사위원의 보고를 받고 서면경고와 출석교회의 당회에 통보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은 모양이다. 그런데 H모 신문에는 지난 이사회 때, 이 문제와 관련해 모 장로 이사가 B노회원들의 해외여행 때에 있었던 음주사건을 거론했다고 하는 기사가 실렸다. 노회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 음주를 했으니 누가 누구를 치리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뼈아픈 발언이었다.
음주가 지옥 갈만한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는 감독은 술을 즐기지 않는 자를, 집사는 술에 인 박이지 않은 자를 세우라고 했으니 지도자의 직분에서, 그리고 집사의 직분 이상의 자에게는 말씀에 해당하다고 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헌법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명시된 성경 말씀에 해당된다면 이는 분명한 범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술을 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 일반교인들에게는 엄격히 단속을 하고, 자기들은 뒤돌아서서 그 짓을 한다는 것은 분명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이중인격과 다름이 아니다.
숨어서 음주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음주는 죄가 아니니 음주를 허용하자고 총회에서 결의부터 하면 모든 양심 앞에 떳떳하지나 않겠는가?
노회의 예산에 임원회 경비를 부풀려 잡고 일 년에 기천만 원의 돈을 해외여행으로 써버리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고, 기관이나 개인이나 여행을 가서는 도박장, 음주, 골프에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들이 들리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 나가면 거기는 하나님이 보실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 정도는 수고한 종들에게는 눈감아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체면을 걸었는지 모른다.
아는 사람이 없다고 제멋대로 행동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이 계시다고 가르치는 지 의구심이 든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래 날 잡아가소’ 하고 강심장으로 대드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세상 법정에서는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해도 지도자가 성적추행을 했다면 노회가 엄격히 다스려야 하는데도 어물쩍 넘어가는 일들이 일어나는 형편이고 보면 누가 그 집단을 보면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른들의 과욕 때문에 일어나는 교단의 문제들을 두고 젊은이들이 목소리를 돋우었는데, 그 젊은이가 어느덧 노년이 되었다. 그러면 다시 젊은 세대가 노년의 과욕을 신랄히 비판하는 일이 있어야 교회는 썩지 않고 늘 개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다음 세대는 어떠한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럴 수도 있다고 적당히 희석하면서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혼자 외친다고 개혁이 되겠느냐고 자기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면서 정의감은 상실되고 먹고 살기 위한 직업으로 목사의 자리를 보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히려 선배들의 신앙을 비웃기나 하는 듯 한발 짝 앞서 세상과 타협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과연 고신에 희망이 있는가를 물어보고 싶은 오늘이다.
2011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