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예배 - 세대 별로 분리할 것인가, 통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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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예배 - 세대 별로 분리할 것인가, 통합할 것인가


공회 교회는 상식적으로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일반 교회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모양입니다. 다음 글에서 글 쓴 분이 공회 교회를 한 번만 들여다 보았다면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모델을 가지고 더 힘 있게 말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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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별로 격리된 그들만의 예배, 이대로 좋은가?
“한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임경근 목사

▲ 임경건 목사
고신대(B. A.)
고려신학대학원(M. Div.),
깜뻔(Kampen) 개혁교회신학대학원(Drs.),
아뻘도우른기독개혁교회신학대학원(Th. D.)
현재 분당 샘물교회 교육목사와
샘물기독학교(유.초) 교목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외래교수





1. 좋은 추억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예배에 참석했다. 주로 주일 저녁예배에 부모님과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어른예배라고 불렀던 주일 오전예배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예배처럼 여겨졌고 왠지 나 같은 어린 아이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일 오전 9시 주일학교를 마치고 나면 어른들이 오전예배를 드리는 동안 교회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성경을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이제는 나도 아버지, 어머니처럼 두꺼운 신구약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어른예배에 당당하게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했다. 그 후 참석한 어른예배는 지루하다거나 설교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이 커서 혹 설교 중 어려운 단어가 나오면 내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딱딱한 마룻바닥에 엎드려 설교를 공책에 요약해 적었던 경험은 지금도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 아이들을 제외시킨 요즘의 예배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사라졌다. 영유아들은 아예 본당에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고 격리된(?) 유아부 혹은 영아부실로 안내된다. 아이들이 예배를 방해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영유아 본당 접근 금지령’은 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강력하다.

혹자는 영아부, 유아부실이 어린 아이와 부모를 배려(?)한 특별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곳이 예배공간인지 놀이터인지 혼란스럽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어머니들은 간간히 잡담을 나누는 분위기 속에서 오늘은 예배에 집중하리라 맘먹은 어머니가 오히려 시험 드는 환경이다. 어린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은 아이가 자라 혼자 유치부에 가는 날을 그래서 부모가 영,유아실을 벗어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예배드려야 하는 날이 다시 오지 않기를 기도한다. 성도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 중에 영,유아실 분위기 탓도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특별 공간인 영,유아실을 졸업한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나이의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중학생이 되면서 어른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예배 참석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였고 중학생에게는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뿌듯한 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중고등학생들이 주일 공식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 많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학생들은 따로 모여 자기들만의 예배를 드린다. 현재 우리의 주일 예배는 각 세대별로 단절되었고 주일 공식 예배는 어른들만 참석하는 ‘어른을 위한, 어른에 의한, 어른만의 예배’가 되고 말았다.



3. 분리의 역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아이들을 제외시키고 어른들만 예배드리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교회는 그 동안 어떻게 예배를 드려왔을까? 아이들은 언제부터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되었는가? 대체로 주일학교가 생기기 전에는 온 가족, 곧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특별히 칼빈의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언약신앙 안에서 유아세례를 통해 성도의 자녀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어릴 때부터 어른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도록 했다. 그것은 장로교회 예배지침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고신교회의 예배지침 9장 34조 1항에 보면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한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이 선언에 의하면 온 가족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할 수 없었다. 부모님도 함께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셨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중고등부, 심지어 청년들까지 주일 오전예배를 어른들과 따로 드리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 위 선언에 이어지는 예배지침을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유년 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반드시 당회원이 출석하여 인도하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초등학생들을 위한 주일학교가 생겨났고 점차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주일학교가 생겨났다. 주일학교는 18세기 영국의 로버트 레이크스(R. Raikes)가 문맹퇴치와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시작하여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한국에도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주일학교는 본래 불신자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일에 있는 학교였는데 지금은 성도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예배로 발전했다. 주일학교가 발전하면서 유년부 아이들이 어른과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당회원이 출석해 인도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이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될 때 생겨날 영적인 문제를 감독하고 지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 최소한의 장치마저 제대로 지키는 교회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예배보다 더 큰 문제는 중고등학생들까지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 교육의 효율성을 근거로 중고등부 아이들도 독자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대부분의 교회가 따라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까지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고착시키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배지침에는 이렇게 선언되어 있다.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를 제외한 주일학교의 별도 예배는 허용되지 않으며 중등부 학생 이상은 반드시 일반 공식 예배에 참석하여야 한다.”(예배지침 9장 34조 2항)

우리가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교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다음세대를 신앙으로 양육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배제, 격리시킨 예배가 바람직한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면 안 되는 근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하겠다.



4. 분리모델 vs. 통합모델.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않는 경우를 ‘분리모델’이라 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통합모델’이라고 명명하겠다. 이후에는 분리모델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통합모델의 유익에 대해 정리해 보려한다.

1) 아이의 한계 vs. 훈련의 기회
분리모델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긴 예배 시간을 참아낼 수 없다는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이들의 집중시간이 어른보다 짧다는 것은 대체로 사실이지만 이점은 부단한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하고 자녀들이 예배를 방해하지 않고 집중하여 앉아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부모는 이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예배 시간동안 떠들거나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집중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만을 위한 예배를 두었다. 그러나 이는 당장 조용한 예배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효과가 있었지만 부모가 자녀들에게 예배를 훈련시킬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버렸다. 교회가 부모대신 주일학교에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그들만의 예배를 통해 나쁜 쪽으로 강화되었고 결국 공 예배와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게 된다.

2) 예배 방해 vs. 교회의 미래
거룩한 예배가 아이들로 인해 방해받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어른이 있다. 약간은 이해가 가나 예배 가운데 아이들로 인해 생기는 약간의 소란과 움직임은 어른들이 받아주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소음과 소란은 교회에 생명이 있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없는 교회는 조용하긴 하겠지만 미래는 없다. 어린이는 교회의 미래다. 예배의 통합모델은 현재뿐만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3) 해득력 부족 vs. 공예배의 유익
아이들이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설교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맞는 언어로 쉽게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 차원에서는 맞는 말이다. 아이들의 수준은 나이에 따라 차이가 많다. 설교자가 모든 연령대에 맞는 설교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어른과 같은 설교를 들을 수 없을까?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어른들이 참석하는 부흥회에 따라다녔고 설교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없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설교를 이해하고 그만큼 은혜를 받을 것이다. 통합모델에서 비록 설교가 어려울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성령님께 맡기고 부모는 자기 책임을 다하는 자세도 유익이 크다. 부모는 자녀를 교회로 인도하는 책임을 다하며 성령님께서 그때 자녀들에게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예배를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설교를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지만, 교회 공 예배를 통해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분리모델에서는 배울 수 없다. 사실 아이들은 설교에서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파악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4) 교육의 실리 vs. 세대의 통합
아이들의 성장 단계에 따라 나눠 어른과 분리해 예배를 드리면 교육의 실리를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분리모델에서 원치 않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친구들을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통합모델에서 아이는 부모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통해 교육 받는다. 부모 역시 자녀가 지켜보고 있음을 의식하여 더욱 바른 신앙의 본을 보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분리되어 예배를 드리면 신앙의 내용과 문화에 있어 세대별로 분리, 단절되는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며 신앙의 전수 또한 구조적으로 어려워진다. 예배를 분리해 드림으로 부모들의 신앙문화와 자녀들의 신앙문화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신앙은 지식을 넘어 삶으로 통합되는데, 신앙교육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예배를 따로 드림으로 신앙전수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통합모델에서는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같은 설교를 듣고 예배 후 집에서 설교에 대해 토론을 할 수도 있다. 부모는 자녀들이 이해한 바를 확인하여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신앙교육을 할 수 있다.



5.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를 바라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통합모델을 다시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아이들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회중의 일원임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어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동시에 어린 아이들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멀리하시고 어른들만 가까이 하시는 분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공 예배에 참석하면 부모를 포함한 주위 어른들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어른들이 만나고 믿는 하나님을 아이들도 배우고 만나게 될 것이다. 어른들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서 아이들도 배운다. 이렇게 세대를 통합하는 예배 모델이 경건한 가정을 세우고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필자의 가족은 네 명의 자녀와 함께 주일 공 예배를 드린다. 지금 네 살 된 막내가 1-2살 이었을 때 소리를 내기도해 눈치도 봐야했지만, 꾸준한 훈련으로 이제 한 시간 반 정도는 거뜬히 견딘다. 예배 때 반복해서 부르는 찬송을 아이들도 좋아한다. 유치원 나이의 셋째 아들도 담임목사님의 주일설교가 좋다면서 유년 주일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해프닝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 엄마와 형제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 교회도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다시 회복하면 좋겠다. 특별히 세대 간의 단절로 인해 신앙교육의 위기가 점점 커져가는 이때에 모든 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통합모델은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믿는다.



2010년 10월 04일







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천헌옥
[2010-10-05]

예배에 대한 제의..


이렇게 제안을 해 봅니다.

주일 11시 예배는 가족이 모두 함께 드리는 예배로
주일 오후(저녁) 예배는 열린예배로 찬양과 연극을 곁들여 장년(청년) 전도를 위한 예배로

수요일 저녁은 교리를 공부하는 것이 주가된 예배로
금요기도회는 기도를 위한 모임으로
토요일 오후는 청소년 열린 예배로 초중고 학생들의 전도를 위한 열린예배로 드리고 전도된 학생이 주일 11시 예배에 참석하기를 원한다면 전도한 학생의 가족과 함께 앉아 예배를 드리게 한다면 어떨지 제안을 해 봅니다.





하만종
[2010-10-05]

삶이 예배입니다.


세대별 격리된 예배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예배의 본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일학교와 청소년, 청년예배가 ‘세대별로 격리된 그들만의 예배’로 폄하된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어쩌면 유교적인 제사문화에서 비롯되었을수 있는 엄숙한 어른들의 예배가 거룩하게 포장되어서도 안되고, 질풍노도의 청소년들과 감성이 풍부한 청년들의 열정적이고 찬양예배가 산만하고 정신없는 것으로 폄하되어서도 안됩니다.

바쁜 현대 생활속에 하루종일 전문적인 예배와 공예배를 함께 드릴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전 세대에 맞는 예배를 추천합니다.

다양한 계층과 문화속에 오히려 여러종류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학교 예배는 당연히 합니다. 어른들은 11시 예배만 드리고, 아이들은 9시예배도 드리고 11시 어른예배도 드려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믿는 가정에서 나온 아이들이 부모의 시간에 희생되어 제대로 믿는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희생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아이들도 주일만이라도 늦잠을 조금 더 자고 엄마 아빠는 공예배에 아이는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주일학교 예배에 어린이 삶속에서 드려지는 참된 예배를 살려야 합니다.
중고등부 학생들도 그들이 만들어가는 진정한 예배를 살려야 합니다.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노인들도, 외국인도 그들속에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위해 예배가 있어야 한다면 참된 예배를 드려질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과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개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있지않습니다.
모든 공동체가 같은 자리에 있지만 생각이 딴 곳에 있어서도 안되구요. 한교회안에 여러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함께 그들의 언어와 표현으로 드려진다면 하나가 되어 드려지는 예배가 될수 있을것입니다.

중고등부SFC 시절 제일 보기 싫었던 것이 자기 자식만 믿음안에서 교육시킨답시고, 주일학교를 무시하는 장로가정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장로님이 손자를 옆에 끼고 어른예배만 거룩하게 참여시키고, 학생예배는 무시하였습니다. 결국 그친구들을 지금보면 신앙의 친구들은 없고, 세상친구들만 있는 사회인으로 부모들이 그렇게 만들었고, 지금은 후회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유대인처럼 학교에서 토라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칩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세상적인 지식을 가르칩니다.
중고등부 아이들도 부모의 이혼과 왕따 등 복잡한 문제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노인들도 수명은 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또 외국인은 어떠합니까 ?

주일대예배(소그룹모임과 다른 전체큰모임이라는 뜻에서 대예배)에 공예배로 하나가 되어 드리는 것도 한생명공동체로서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아이가 주일학교예배와 어른공예배 둘중하나를 드려야 한다면 당연히 주일학교 예배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일드려지는 예배는 세상으로 나가는 시작인 첫날이기때문입니다.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그 삶속에 맞는 예배로 시작해야 합니다.

고신예배지침에 한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하나님의 집은 본당만 아닐겁니다. 한가족이 함께라는 개념역시 아빠,엄마,형,동생의 가족만을 의미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한생명공동체로서의 개념이어야 할것입니다.

유년예배를 따로 드리게 되었을 경우 당회원인도는 얼마나 고신예배지침이 시대를 무시한 것인지 잘 알수 있습니다. 전문사역자를 무시한 개념입니다. 그들이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어떤 죄를 짓고 사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과연 유년아이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수 있을까요 ?

중고등부 이상 공예배에 참석시켜야 한다면 교회는 중고등부 이상들이 예배드리게 하고 그들에게 맞는 예배에 어른들이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청년들이 어떻게 자라고 예배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예전의 어른들 예배만 정답이 아니기에 중고등부 이상이면 공예배를 주도할수 있습니다. 그들속에서 어른들이 참여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긴말씀에 집중할수 있는 시간이 짧은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이 정말 뜨겁게 열정적으로 춤추며 찬양하는 긴시간을 어른들이 집중할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과연 아이들의 찬양을 어른들의 말씀과 비교하여 폄하할까요?

오히려 청소년과 청년예배가 어른예배보다 훨씬 나은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배에는 실질적인 뜨거움이 있구요. 말씀도 적용이 가능한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체계적인 훈련도 있습니다. 각종 프로그램을 통한 풍성한 교제도 있습니다.

예배는 삶입니다. 진짜 예배는 월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세대별 격리예배가 아닙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한주간 삶으로 드려질 예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많은 세상에 전부 일반목회자만 되려 하지 말고 전문목회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는 평생 주일학교만, 청소년만, 청년만 케어하는 목회자가 나와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서 교회안에서가 아닌 세상의 빛과소금으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월요일부터 삶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다듬어져야 합니다.

저도 믿음의 1세대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신앙교육을 하면서 제가 어렸을때의 주일학교보다 못한 지금의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안타까울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예배를 폄하하면 안됩니다. 그들속에도 삶속에서 묻어나는 회개가 있고, 현실에 맞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일부 목사님들이 격리된 예배를 비판하면서 오히려 주일학교 아이들과 학생들과 청년들을 동원하는 동원예배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담임목회자가 전체를 담임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역자에게 위임목회를 하고, 충분한 권한을 준다면 우리교회에 가장 알맞은 예배가 될수 있을겁니다.

또한 교회를 세분화하여 300-500명이하의 규모로 만든다면 통합예배는 자연스레 이루어질것입니다. 중대형교회 이상에서는 위임목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예배는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믿은 가정에서 모범되어야 하고,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내야 하고, 혼자신앙생활하게 만들지 말고, 다니엘과 세친구들로 만들수있어야 합니다.




남후수
[2010-10-05]

통합예배 - 신앙의 세대차이 극복위한 지름길


임경근 목사님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통합에배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미국 죤 두이의 교육이론이 퍼지면서 교회도 이 영향을 받아 나타난 것 중에 하나가 분리예배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교육도 그렇고 교회도 세대를 분리시키니 한국은 세상에서 세대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국가라고도 합니다. 농담이지만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세대차이는 차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단절이 되어 우리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은 물론이고 신앙에도 달절이 일어납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가족이 모두 함께 일하므로 세대차이 없이 문화가 전수되었는데 현대 산업사회 이후부터는 너무 세분화되어서 사람사이에 간격이 너무 커졌습니다. 모든 것을 세분하는 사회의 영향으로 교회도 그렇게 되었는데 특별히 재외 한인교회들에서 더 심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언어가 달라서 예배도 다른 언어로 드림으로 세대단절이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쉐마에서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세대차이 내지는 세대단절이 일어나서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전수되지 않아 자녀들이 이방화 되고 있습니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하여 주일학교를 시작했지만 한국교회가 120여년 지나면서 줄어든다고 합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의 자녀들도 주일에 학원가는데 바빠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4천여년 동안 세대차이 없이 신앙을 이어온다고 합니다. 아미쉬들은 종교개혁시대부터 지금까지 500여년간 동일한 문화와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대차이 극복을 위해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제도를 유지하며 3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회당에는 교육관이 따로 없고 아미쉬들도 주일학교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할아버지/할머니부터 손자/손녀까지 함께 합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보면서 역할을 배우고 익히므로 어느날 어른이 없는 상황이 되어도 당황하지 않고 어른 역할을 해 내는 능력이 배양된다고 합니다.

10월의 주제인 예배의 첫 글에서 통합예배를 통해 신앙의 세대차이와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논의를 통하여 다음 세대의 예배회복을 위한 방향이 설정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세령
[2010-10-05]

주일학교가 가진 전도의 측면을 고려하면...


주안에서 임경근 목사님,
귀한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세대별 예배에 대한 논의 제기와 관련해서 한가지 짚지 못한 측면을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입니다.

제가 네덜란드에 와서 개혁교회를 경험하면서 가정이 중심된 교회 생활이란 중요한 측면을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예배를 중심한 교회 생활, 그리고 부모의 신앙적 이념에 의한 학교 생활, 그리고 가정의 식탁에서의 말씀에 의한 교제, 이런 소위 거룩한 삼각형(holy triangle)이라는 요소가 개혁교회를 받치는 기둥과 같이 역할을 함을 배우게 되고 이것이 건강하고 세대를 이어가는 교회를 세워가는 틀로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점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도입니다.
한국 교회의 모든 현실을 평가할 때 아직 갈길이 먼 교회이기는 하지만 내가 믿는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는 성도와 교회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0년을 경험해 보아도 성인 세례 한 사람 베풀지 못하는 개혁교회들과 비교할 때 한국 교회의 역동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 주일학교나 중고등부의 예배가 전도를 이루어내는 축으로서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두 중심된 다음 세대의 축이 점점 무너져 간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윤택해진 가정들이 자녀들을 가정이란 틀에서 관심을 더 기울이고 사회와 교통하는 측면이 약해진 현실들은 교회로 인도하는 아이들이 적어진다는 판단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세대별로 드리는 예배를 극복하자는 취지가 전도와 아이들 자신의 역동적인 교회적 섬김과 사고등을 어떻게 담아내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좋은 나눔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