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 - 09.10.4.
kscoramdeo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
59주년 기념예배 드리고 활동재개
▲ 참석한 주요 인사들
故 손양원 목사는 1950년 9월 28일 여수시 둔덕동 한 과수원 골짜기에서 퇴각하는 북한군에게 순교를 당하기까지 여수애양원교회를 담임하면서 고려신학교 총무 직책(1948년부터)을 수행했었다.
이름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故 손양원 목사의 기념사업은 지지부진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보여 준 산 증인인 그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도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마당에 새로이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을 시작하고 순교일에 맞추어 59년前의 손양원 목사를 회고하는 기념예배와 함께 사업회 창립 감사예배가 9월 28일 오후 7시 30분 밀알학교 산돌홀(남서울은혜교회)에서 있었다.
▲ 사회 정주채 목사 ▲기도 이성구 목사 ▲성경봉독 임만호 장로
▲ 설교 홍정길 목사 ▲특강 이만열 장로 ▲광고 최수경 사무처장
이날 1부 예배는 회장 정주채 목사가 인도했다. 멀리 부산 구포제일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상경한 이성구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임만호 장로(남서울 은혜교회)가 성경 로마서 5:6-8절을 봉독하고 홍정길 목사(남서울 은혜교회)가 “한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 남서울은혜교회 중창단의 특송 순서
▲ 특별연주 김내리 교수 ▲축도 박은조 목사
이날 남서울은혜교회 중창단과 김내리 교수(이화여대)의 특순이 설교 전에 진행되어 한층 은혜로운 시간이 되었다. 예배가 끝난 후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었으며 이어 이만열 장로가 “산돌 손양원 목사의 신앙과 삶”이란 주제로 특강이 이어져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과 은혜가 되었다. 손양원 목사 기념 사업회 최수경 사무처장은 내년부터 <손양원목회자 賞>을 제정할 계획이라 한다.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 조직
▲ 사업회 이사들 좌로부터 김성열 장로, 박은조 목사, 홍정길 목사, 이만열 장로,
정주채 목사, 이성구 목사, 최수경 사무처장
이사장 이만열 장로(숙명여대 명예교수)
회 장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이 사
강경식(동부그룹 고문, 전 경제부총리),
김성수 박사(고신대학교 총장),
손봉호 장로(고신대 석좌교수),
박은조 목사(샘물교회),
이성구 목사(구포제일교회),
황우여 장로(국회의원),
홍정길 목사(서울은혜교회),
차종순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총장)
감 사 김성렬 장로(향상교회)
사무처장 김수경 집사
발기문 전문
오늘 우리는 위대한 신앙운동가이자 민족의 지도자였던 손양원 목사님의 얼을 기리며, 그분이 남기신 신앙적, 정신적 유산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손양원(본명 손연준) 목사님은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咸安軍 漆原面 九城里)에서 손종일(孫宗一) 장로님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손종일 장로님은 1908년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1919년 3?1운동 당시 향리인 경남 칠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민족 사랑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신 어른이자 칠원교회를 설립하신 신앙의 스승이였습니다. 특히 경남지방의 유지로서 하나님 사랑과 조국사랑을 실천하신 어른이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런 애국 애족의 삶을 사셨던 손종일 장로님을 따라 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접하게 되었고,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칠원 보통공립학교, 서울의 중동중학교, 일본의 스가모중학교를 거쳐 경남성경학교에 입학하였고, 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가 되신 분입니다. 울산방어진 교회 전도사로 일한바 있고, 남창교회, 양산읍교회, 원동교회 등을 개척하였고, 호주 선교사 메켄지(매견시)목사가 일하던 부산 나환자 보호병원에서 일하면서 밀양 수산교회을 개척하는 등 순회전도사로 일한 바 있습니다. 1939년 7월에는 여수 애양원(愛養院)의 교역자로 부임하여 나환자들을 위해 봉사하던 중 애양원의 ‘양원’을 따라 자신의 이름을 손양원(孫良源)으로 개명하였고, 그의 부인은 양순(良順)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가 강요되었을 때 손양원 목사님은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1940년 9월 25일 체포되었고, 여수 경찰서, 광주형무소, 청주 형무소에 투옥되는 등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켰던 분입니다. 만 5년간 투옥되었던 손양원 목사님은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다시 애양원에서 목회자로서 봉사하였습니다. 1948년 10월 19일에 있었던 여순(麗順) 14연대 반란사건 때는 좌익반란군에 의해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잃었으나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자로 삼아 원수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난을 권했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이를 거절하고 나병 환자들을 돌보던 중 1950년 9월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28일 밤 여수로 이동하던 중 미평(美坪)에서 총살되어 그 역시 순교자의 길을 갔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나환자들과 함께한 그의 목회적 삶(1940년 이전)과 신사참배 반대와 투옥 등에서 보여주신 신앙적 결단(1940~1945), 그리고 해방 이후 사랑의 실천과 순교(1945~1950)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고귀한 인간애와 하나님 사랑, 그리고 민족 사랑의 거룩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귀한 일생을 사셨으나 우리는 그 분의 삶의 여정과 신앙정신, 민족애의 유산을 기리지 못하고 오늘까지 지내왔습니다. 비록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발기인들은 그 분이 남긴 거룩한 신앙과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사업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념사업회를 통해 손양원목사님이 남기신 신앙유산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널리 알려 오늘과 내일의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를 섬기고자 합니다. 이 일에 적극적인 협력과 동참을 바라면서 발기의 뜻을 알리는 바입니다.
2009년 1월 17일
발기인 대표
‘손양원목사기념사업회’의 주요 추진예정 사업
1. 손양원 목사의 (3대) 새 評傳(傳記) 저술 출간 사업:
3.1독립운동을 펼쳤던 손종일 장로와 일제 신사참배반대 운동으로 종신형을 언도받은 손양원 목사, 여순사건으로 순교한 손동인? 동신 3대에 걸친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평전(전기)」을 출간하므로, 신앙인뿐만 아니라 일반 청소년들과 동서갈등이 심각한 영호남 및 남북, 나아가 세계를 향해 용서와 화해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펼칠 수 있게 될 것임.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기록 자료를 새로 수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생존하고 있는 분들을 향해 口述[스토리텔링]資料를 광범하게 수집해야 함. 이와 함께 체계적인 학술 조명이 필요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향후 교과서 등에 이를 수록하는 운동도 전개해야 할 것임
2. 미포상 신사참배 반대 성도와 애국지사 보훈처에 포상 신청(등급 재심) 요청건:
1) 손양원 목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5년을 옥중에 있었으나 현재 보훈처에는 1년6개월의 수형기록만 공식적으로 남아있음⇒ 향후 ‘애족장(5등급)’ 포상을 ‘애국장(4등급)’ 이상으로 재심 청원하는 일.
2) 한국 그리스도인 중 독립유공자로 아직 미포상된 채 남아있는 ‘한상동 이인재 이현속 방계성 손명복 조수옥’ 등 일제 신사참배 반대 출옥성도와 상해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활동을 하신 이창실 목사를 ‘애국지사(건국훈장 애국장 이상에 해당)’로 청원 신청하는 일 ⇒이를 위해서는 독립운동사 자료를 광범위하게 찾아야 할 것이며, 한국기독교 120년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애국운동을 다시 조명하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임.
3. 홍보사업:
그의 정신을 널리 기리기 위한‘신학세미나’등의 학술회의와 손양원 목사의 사랑 ? 순교 정신을 널리 조명하기 위한 다큐물 준비⇒ 손목사님의 순교 60주년에 즈음한 2010년 9월을 앞두고, 그의 雅號(산돌)를 딴 ‘산돌신학세미나’ 혹은‘산돌기념학술회의’등이 준비되어야 하며, 일반 공중파방송(예: KBS-TV창원총국을 통한「KBS네트워크 특집」으로 전국방영)과 CBS-TV(CTS, CGTV 등) 다큐용 손양원목사와 그 3대의 ‘하나님사랑, 나라사랑’ 정신을 조명하는 특집물 방송 등
5. 2012 여수 엑스포를 앞둔‘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을 중심한 기독교 지원 사업: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를 앞두고 여수에 위치한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을 중심으로 기독교 문화관광지 조성을 통해 각종 기독교순교관광 콘텐츠 개발과 여수시의 손양원목사순교기념관 리모델링 등 협력 지원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