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이단전문지 - 행위구원에 대한 반박
목회와 진리수호
기독교 이단사이비 연구 전문지
위치 : chpt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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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는 아버지의 뜻은 ?
마태복음7:21절은 은혜가 아닌 행위구원인가?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신다.
이는 마태복음7:21절의 천국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뜻을 믿음이다.
이 뜻은 ▲ 요한복음6:40.
▲ "내 아버지의 뜻은(텔레마 /주격중성단수)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어떤이들은 내 아버지의 뜻이 행위구원이라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주장은 구원의 복음을 오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구원을 폐하는 것으로 헛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는 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불신앙의 죄인이(요16:9)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의 내용은
▲ 로마서10:9-13이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원은 곧 거듭나는 기본구원이다.
이는 물과 성령으로 영이 거듭난 것으로 중생이요(요3:5,6).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영적인 상태이다(요1:12).
이들에 해당하는 분들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성도인바,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는(롬8:28-30)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성화구원을 점진적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는 행위의 법이 아닌 믿음의 법에 의한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엡2:8).
그 결과 하늘나라의 생명록에 기록되어 영원히 상실하지 않는다(롬8:35-39).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를 다시 말하면 한번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 요한복음10 : 28 .
내가 저희에게 영생(永生)을 주노니
영원(永遠)히 멸망(滅亡)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者)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萬有)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요한복음18:9 .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구원의 신앙이다.
어떤 이들은 구원이 상실할 수 있다는 전재 하에 불안하여 한다.
그 이유는
▲ 마태복음7:21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구원 상실 자기 합리화를 위한 임의해석에 이용할 뿐이다.
“나더러 주(主)여 주(主)여 하는 자(者)마다 천국(天國)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行)하는 자(者)라야 들어가리라”
“ Not every one that saith unto me, Lord, Lord,
shall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but he that doeth the will of my Father which is in heaven”.
위 말씀을 인용하여 구원 불안증에 사로잡힌 이들이 많음이 현실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선행만이 구원을 보장하는 것으로 믿는 이들이 많다.
이것은 성경을 오해한 임의 해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헛갈리게 만든다.
물론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지 않음이 성경이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주여 주여 하는 이들이 못 들어감은 당연하다(마7:22-23, 25:1-12).
사실인즉 양으로 거듭나지 않은 기독교형의 종교인은 천국에 못 간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아버지의 뜻인 성경 66권대로 살아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가 쉽지 않다는 것으로 구원이 불안한 이들이 많다.
이러한 영적인 상태는 임의해석의 주장으로 성경이 보장하지 않는다.
고로 천국에 들어가는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성경 66권의 뜻을 다 행하여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기본구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 행위구원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내 아버지의 뜻을 구분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 66권의 모든 뜻을 다 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뜻인가?
마태복음7:21절은 천국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뜻이다.
이는 천국에 가는 구원 관련 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따라서 구원은 에베소서 1:1-14에 의한 요한복음3:16에
독생자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래형이 아니라, 동사형 현재능동태가정법3인칭 단수이다.
믿는(피스튜오 : 믿다. 믿음을 갖다<영적인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맡끼다, 위탁하다/동-현재능동태분사주격남성단수)
멸망치(아풀뤼미 : 완전히 파괴하다. 죽다, 잃다, 손상시키다, 완전히 파괴시키다/동-과거중간태가정법3인칭단수)
얻게(에코 : 붙잡다, 소유, 연속, 능력, 관계, 동반하다, 보관하다 /동-현재능동태가정법3인칭단수).
마태복음7:21절에 천국에 들어가는 내 아버지의 "뜻"은‘텔레마’이다,
이 문장의 시제가 목적격 중성단수이다.
이 뜻은 결정, 선택, 경향, 교서, 열망, 기쁨이다.
이 뜻은 성경66권을 모두 준수하는 행위구원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내 아버지의 뜻은 구원받는 영생의 교훈이다.
이는 은혜만으로 한정되는 뜻으로 목적격중성단수이지,
행위들을 가르치는 목적격중성복수가 아니다.
따라서 성경 66권을 다 행하는 구원의 이해는
마태복음 7:21절에 “뜻”문장의 시재를 무시한 임의해석의 결과요.
행위의 법(율법주의)을 구원의 잣대로 삼은 자기 합리화이다.
고로 이를 추종하여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구원을 폐하는 행위를 주장하거나,
은혜 + 행위를 운운하는 구원은 어불성설이다.
이 분들은 아래 성경에 해당한다.
▲ 갈라디아서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갈라디아서 3: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기독교이단대책협회
2009-03-20 19:52:00
박형택 글, 변승우 반론에 반박
행위구원은 염소 상태, 유기받은 기독교형 종교인
본 기사는 박형택 목사가(이하 : 박 목사) 쓴“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에 대한 연구”에, 변승우목사(이하 : 변 목사)가 쓴 반론에, 기독교이단대책협회(이하 : 협회) 는 이의를 제기한 반박에 글임을 밝힌다.
●변 목사의 반론 제목.
【이단사냥꾼 박형택 목사가 쓴“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에 대한 연구”에 나타난 억지와 거짓말
▲ 협회 반박.
위 변 목사의 말과 같이 박 목사는 이단사냥꾼인가? 이에 대하여 변 목사는 구체적으로 입증을 해아 할 것이다. 변 목사의 카페에서, 아래의 글 인용은 한국 교회의 적, 이단사냥꾼 우리나라는 무분별한 이단시비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블로그 알리미 /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 :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들의 후예, 이단 사냥꾼들의 정체 /
글쓴이 : 겸손 08.01.18 02:09 cafe.daum.net/Bigchurch/mAk/13 로서, 그의 저술“주여?”서울, 큰 믿음출판사, 2008,1,10초판3쇄,pp.91-92 인용이다.
《“예 박사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사악하고 잔인한 이단사냥꾼들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담대하고 속 시원하게 폭로했습니다. 여기서는 제목만 밝히므로 여러분이 그 책을 사서 직접 읽어보시고 이에 대한 통찰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1) 이단사냥꾼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방해한다.
2) 이단사냥꾼은 정의의 투사로 교묘하게 가장하여 이권을 추구한다.
3) 이단사냥꾼은 인격살해를 서슴없이 자행한다.
4) 이단사냥꾼은 남의 약점을 교묘히 왜곡 과장하여 이용한다.
5) 이단사냥꾼은 지능적인 거짓말로 비방한다.
6) 이단사냥꾼은 상대방의 고통에 희열과 승리감을 느끼는 사이코이다.
7) 이단사냥꾼은‘지킬-하이디 증후군’에 속한 이중적인 인간성을 가진 자이다(왜냐하면 이단사냥꾼은 외관상 기독교계를 위하는 척 하면서 실은 기독교계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17) Ibid.,pp.115-129 : 예영수‘이단정죄와 역사의 아이러니’서울:국제크리스천학술원,2007”》
위 인용의 글은 변 목사가 이단의 시비에 따른 자기 변명에 의도가 담긴 예영수 목사의 글을 인용, 자신에 대하여 비판하는 박 목사를 이단사냥꾼으로 단정한 바, 아래 질문에 답변을 주셔야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증거가 없이 그저 이단사냥꾼이라면 누가 믿겠는가?
한편 사실증거로 답하지 못하면 중상모략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변 목사가 상대를 겨냥한 반론이 불발에 그치고 말 것이 아닌가? 고로 어떻게 박 목사가 이단사냥꾼인지 입증하여 주시기 바란다.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개인의 인격과 행복권의 침해와 모함은 물론 변 목사의 반론이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독자의 알 권리의 충족차원에서 변 목사는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단논쟁 시비 관련 변 목사의 말과 같이 박 목사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 이권추구, 인격살해, 지능적인 거짓말 비방, 정신적인 질환의 싸이코,이중성 인간‘지킬 하이디 증후군’인지 밝혀야 한다.
사실 이단사냥꾼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 같으나,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을 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 본다. 왜냐하면 변 목사는 포괄적으로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 변 목사는 박 목사에 대하여“1) 이단사냥꾼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방해한다.”라니, 박 목사가 하나님의 자리(보좌) 앉은 증거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 변 목사는“2) 이단사냥꾼은 정의의 투사로 교묘하게 가장하여 이권을 추구한다.”라니, 박 목사가 교묘히 가장하여 이권을 추구를 누구에게 한 것을 밝힐 수 있는가?
▲ 변 목사는“3) 이단사냥꾼은 인격살해를 서슴없이 자행한다.”라니, 어떻게 누구의 인격살해를 했는지 육가원칙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 변 목사는“4) 이단사냥꾼은 남의 약점을 교묘히 왜곡 과장하여 이용한다.”라니, 남의 약점을 교묘히 왜곡 과장을 했는지 제시할 수 있는가?
▲ 변 목사는“5) 이단사냥꾼은 지능적인 거짓말로 비방한다.”라니, 지능적인 거짓말을 제시할 수 있는가?
▲ 변 목사는“6) 이단사냥꾼은 상대방의 고통에 희열과 승리감을 느끼는 사이코이다.”라니, 어떻게“한 분야에 집착하여 평범한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 정신질환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인지 제시할 수 있는가?
▲ 변 목사는“7) 이단사냥꾼은‘지킬-하이디 증후군’에 속한 이중적인 인간성을 가진 자이다(왜냐하면 이단사냥꾼은 외관상 기독교계를 위하는 척 하면서 실은 기독교계를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니, 이중성의 인간‘지킬 하이디 증후군’인지 제시, 변 목사의 주장에 따른 독자의 의혹을 풀어야 할 것이다.
사실 위 1)-7)내용은 개인의 모욕과 명예훼손으로 사려가 되는 언급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럽다는 지적이다.
1.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이단적인 사상이다.”
●변 목사의 반론 : .
이것이 이단적인 사상이라면 존 웨슬리와 디 엘 무디도 이단인가? 그리고 존 비비어, 릭 조이너, 베니 힌, 마이크 비클, 이영훈, 나겸일, 김선도, 김홍도, 장경동, 김동호, 전광훈, 전태식 목사님도 이단인가? 그리고 감리교와 성결교가 이단이란 말인가? 그 외 순복음과 침례교 목사님들 심지어는 장로교 목사님들 중에도 적지 않은 수가 그렇게 믿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이단이란 말인가?
얼마나 지독한 오만과 독선이며 어처구니 없는 엉터리 주장인가? 이단시비를 하려면 정직하게 이단 사설을 가지고 하라. 이단 사설과 이설(교리적인 차이)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한장총이대위부위원장이며 합신이단상담소장인가? 한기총에서처럼 마땅히 그 직위를 박탈해야 할 것이다.
▲ 협회 반박.
일반적으로 구원이 상실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문제가 제기되면, 주로 변명하는 것이 잘 믿으라고 표현한 것이라면서, 행위구원이 아니라거나, 신학의 차이라고 교묘히 변명함이 그럴듯하나, 성경적인 교리에 의하면, 변 목사의 반론은 궤변에 불가한 것이라 본다.
한편 유명 인사들을 동원하여 구원의 상실에 주장이 옳은 것으로 편승한 것에 대하여, 변 목사가 주장하는 전반적인 사실을 안다면 과연 자신을 지지할 것인지는 의문일 것이라 본다.
변 목사가 알 것은, 자신이 믿는 구원이 상실한다는 것은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과 자신의 저술들이 입증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성경적인 것이 사실이기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변 목사의 반론에서 실명이 거론된 분들이 구원 상실의 주장에 동일한 흐름인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변 목사가 거론한 분들에 증거를 제시함이 없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다. 혹여 위 실명하신 분들이 변 목사와 같은 사상에 동의한다면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분들로 굴레를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변 목사가 알 것은 유명인사가 복음을 대변하는 잣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변 목사의 구원론 주장은 기본적으로 장로교 목사나, 개혁신학이나, 성경을 포기한 분으로 사려가 된다는 지적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변 목사의 배짱으로 보건데, 자신이 소속한 예장합동정통의 교단에서 불협화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 본다. 그리고 변 목사는 구원의 상실 주장은 아래 성경에 의하여, 구원론 이단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믿는다.
? 로마서8:31-39 /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변 목사는 박 목사에 대하여“이단 사설과 이설(교리적인 차이)의 차이도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무슨 한장총이대위부위원장이며 합신이단상담소장인가? 한기총에서처럼 마땅히 그 직위를 박탈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은 박 목사가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직위박탈을 촉구 운운한 것은 개인 모욕은 물론 한장총과 합신교단에서 변 목사를 향하여 곱지 않은 관계를 유발한 것이라는 지적이 이구동성이다.
2.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케네스 해긴이 받았다는 계시를 성경과 동일한 계시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 변 목사의 반론 :.
해긴 목사님의 체험이 성경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예화로 인용한 것뿐이지 해긴 목사님이 받은 계시를 성경과 동일한 계시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거짓 증거를 그치라!
▲협회 반박.
위 박 목사 글은 변 목사 저술“진짜 구원받은 사람도 진짜 버림받을 수 있다”은혜출판사, 2004. pp.4-10. 근거한 것이다.
성경계시(특별) 종료의 완전성 이후, 그 어떠한 성경계시와 동일한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체험이나 계시가 성경적인 진리를 말한다 하더라도, 주관적인 체험을 성경과 동일한 계시인 냥, 성경기록의 때에 임한 영감이라는 표현으로 편승하여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변 목사의 반론과 같이 케네스 해긴 목사의 계시를 성경과 동일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계시를 믿는 것이 사실임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그의 계시 체험이 성경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하더라도 지금도 계시의 존속을 주장한즉 비판의 대상이다.
변 목사의 경우는 자신에 대하여“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에 임했던 그런 영감을 준 사람은 이 종 하나뿐이다. 나는 그에게 단순히 말씀에 은사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가지고 있었던 그런 영감을 주었다. 오해하지 말아라.
이것은 그가 다시 성경을 기록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것이다.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 없을 것이며, 내가 직접 하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은사를 어찌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2 (각주2, 변승우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서울 : 은혜출판사, 2005,pp.18-22.)라고 하는바,
그렇다면 변 목사의 영감이 성경기록 당시 저자와 동일한 것으로 성경해석이 틀린 것이 없어 정확 무오한가? 이런 영감을 준 사람이 자신뿐이라면, 어찌 성경 전반에 기본적인 진리의 체계 해석에 문제가 발생하는가?
그리고 성경저술의 영감을 준 사람이 자기만이라니, 이것이 사단의 교만이 아니면 무엇인가? 물론 변 목사는 성경기록이 아닌 영감으로는 구분하나, 성경기록의 때에 영감으로 틀린 것이 없이 하나님이 직접 하는 말과 같다니 누가 이를 믿겠는가?
성경 계시와 계시의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부여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성경 계시의 종료 후에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성경기록 영감이 아닌, 성경 해석의 영감인즉, 자신에게만 성경 기록의 때에 주었던 영감을 주었다는 계시라는 발상은 차별화 군림에 도구로서 객관성이 없는 것이다.
변 목사는 위 간증에 대하여“어떤 분은 이 간증을 읽으면서 피식 웃을 것입니다. 그리고 못미더워 할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왜냐하면‘저 자신도 오랫동안 이 간증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제가 하는 성경 해석이 100% 맞다거나, 성경 저자에게 임했던 영감을 준 사람은 저 하나뿐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림줄, p. 26.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pp. 18-22). 라면 계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니, 변 목사는 상황에 따라 이 소리 저 소리를 하는 이중성을 피할 길이 없다. 결국은 상황에 따른 변명을 위한 기만 문장수법이 아닌가?
3.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지금도 계시가 계속 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단이라 한다.”
● 변 목사의 반론 :.
그런가? 우리는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는 사람을 이단사냥꾼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완성되었으나 그렇다고 계시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믿는 잘못된 교리이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고 성경에 무엇인가를 가감하는 계시는 당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엘이 예언한대로 성령시대가 도래했고 꿈과 환상과 예언은 지금도 존재한다.
바울은 성령을“지혜와 계시의 영(정신)”(엡 1:17)이라고 불렀다. 성령은 지혜뿐 아니라 계시를 주시는 영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변하셨는가? 성령이 지금은 단지 지혜의 영으로 바뀌었는가? 성령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구시대적인 어리석은 기준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대다수 이단사냥꾼들이 가소롭고 가련할 뿐이다.
만약 박형택 목사의 주장대로 계시를 받는다고 이단이라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 성 프랜시스, 성 안토니, 썬다 싱,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햄, 오랄 로버츠 목사, 신디 제이콥스, 작고한 이중표 목사, 조용기 목사, 나겸일 목사, 홍성건 목사 등 유명한 수많은 목사님들이 계시를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인데
이 분들이 모두 이단이란 말인가? 그 외에도 교파를 초월하여 영적인 꿈과 환상과 예언을 경험한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그분들이 다 이단이란 말인가? 억지 그만 부리고 정신 차려라. 지금이라도 성경을 통해 바르게 깨닫고 잘못된 기준을 고쳐라.
▲ 협회 반박.
변 목사는 위 반론에서 수많은 유명한 목사들을 거명, 지금도 계시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합리화시켜서 인정을 받으려고, 다양한 경험이 마치 성경이 보장하는 것인 냥,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이들의 경험이 성경에 우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변 목사는 꿈, 환상, 예언과 계시를 구분하기 바란다. 그리고 성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신 것은 외부로부터 직통계시를 현재도 주신다는 것으로 적용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임을 표현, 너희에게“주사”는(엡1:17) 오늘도 직통 계시를 지속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일어난다는 표시로서 현재형 문장의 시제(時制)가 아니라,
“주사”는 동사-과거능동태가정법3인칭단수로서, 성부께서 단회적으로 성도 누구에게나 과거 마음에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직통계시를 주신다가 아니라, 과거 단수형으로 너희에게 지혜와 계시의 속성을 지니신 정신 곧 성령님을 주신 것이다.
▲ 고후1:21,22 /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堅固)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印)치시고 보증(保證)으로 성령(聖靈)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인치시고 (습호드로스 : 보전하다, 증명하다, 찍다, 인봉하다 /동-과거중간태분사주격남성단수)
보증으로 (할흐라본 : 보증금, 재물 / 명-목적격남성단수)
성령 (프뉴마 : 바람,영,영혼, 인간의 이성적인 영 / 명-소유격중성단수)
우리 (헤몬 : 우리의 / 인칭대명사-소유격복수)
마음-(칼디아 : 마음, 사고,감각,중심부 / 명-여격여성복수)
주셨느니라 (디도미 : 주다, 모함하다,발생하다,위탁하다,넘겨주자,허락하다,방해하다,만들다,때리다,겪다,취하다 / 동-과거능동태분사주격남성단수)
▲ 요14:16-17(행1:8, 2:1-4) /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저는-거하심이요(메노 : 머룰다,거하다,계속하다,거주하다,참다,출석하다,남아있다,체재하다,묵다,남다,오래지속하다,잔존하다/ 동-현재능동태직설법3인칭단수)
계시겠음이라(에소마이 : 일 것이다 /동-미래중간태직설법3인칭단수)
▲ 에베소서 1:17에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신 것은 곧 성령을 주신 것이지, 오늘날도 직통계시를 주신다는 것이거나, 성경 계시의 종료 후에도 계시를 주시는 것으로 착각하여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 에베소서 1:17-19 /17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榮光)의 아버지께서 지혜(智慧)와 계시(啓示)의 정신(精神)[注1]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 (솝히야 : 지혜 / 명-소유격여성단수)
계시의 (아포칼륌시스 : 드러냄, 나타나는, 오는, 빛나는, 명시, 나타내다, 계시, 폭로 /명-소유격여성단수)
정신 (프뉴마 : 바람, 영, 인간의 이성적인 영 / 명-목적격중성단수)
너희에게 (휘민 : 당신에게, 너희들, 당신 / 인칭대명사-여격복수)
주사 (디도미 : 주다, 모함하다, 발생하다, 위탁하다, 넘겨주다, 하락하다, 방해하다, 만들다, 때리다, 겪다, 취하다 / 동-과거능동태가정법3인칭단수)
하나님을(하우르 : 자신 /인칭대명사-소유격남성단수)
알게 (에피그노시스:인식, 완전식별,인정, 승인 /명-여격여성단수)
하시고 (엔 : 위치, 수단, 정지,-안에,-에,-에서,가운데,-동안,-중에/전치사)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所望)이 무엇이며 성도(聖徒) 안에서 그 기업(基業)의 영광(榮光)의 풍성(豊盛)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能力)의 지극(至極)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求)하노라
왜 에베소1:17에 성령님을 과거에 단수형으로 성도들에게 주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1: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所望)이 무엇이며 성도(聖徒) 안에서 그 기업(基業)의 영광(榮光)의 풍성(豊盛)이 무엇이며 /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能力)의 지극(至極)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求)하노라, 를 위하여 과거에 성령님을 단회적으로 주신 것이다.
성경의 형성 이후 오늘날에 성도들은 성경의 내용을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딤후3:16,17, 요14:26).
변 목사는 성경 66권 계시의존이 아니라, 직통계시 의존형이다. 사실 이러한 계시에 빠진 이들은 일반적으로 계시의 진정성이 없이 성도를 미혹하는 신비주의를 추종한다. 이것이 성경을 이탈한 사단의 기만술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혹세무민한 성도들은 계시의 감언이설에 노출이 되어서 마음을 빼앗기므로 하나님이 금지한 신접 자, 무당, 마술사, 최면술, 심리학 및 심령과학, 직관의 느낌을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은 성령은사, 성령운동이라는 신비주의 가면을 쓰고 휩쓸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사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단의 거짓교리로 미혹한다.
변 목사를 향한 선지자 샨 볼츠의 예언에서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천사 중 직위가 높고 강력한 한 천사가 변승우 목사님 곁에 와 있습니다.
바울이 서신서들을 저술할 때에 바울과 함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입니다.”
“그 천사들은 하늘나라에서 계시와 메시지를 가져와
책을 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목사님 곁에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 목사의 글이나 말은 틀린 것이 없어야 함에도, 자신은 100%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다. 따라서 그의 결과물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나 선한 천사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성경계시 종료 이후는 성경해석의 영감시대이다.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시대이다. 변 목사와 같이 하늘나라의 비밀인 메시지를 천사가 가져와 변 목사에게 기록케 하는 예언을 동의하는 것은 성경 66권의 계시를 의존하는 사람이 아닌 자로 성경을 보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직통계시를 (성령이 가라사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현실적으로 성경의 권위 이상이거나 동등하게 여기는 행각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라 본다.
사실 변 목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것이라는 것은, 에베소서 1:17에 문장을 사실오인 적용한 직통계시로서 미혹하는 전략일 뿐이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가 알 것은 성경해석에서 앞과 뒤가 맞지 아니하는 성경 66권의 계시 이외에 직통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비주의 계시는 비성경적인 것을 진짜 같이 보이려는 위장 행각으로서, 입신, 꿈, 환상, 예언, 직통계시 등을 부추기는 교회나 운동단체는 경계해야 한다. 이에 빠지면 성도와 교회들의 영적인 부패는 물론 기독교형의 무당이나 박수를 양산하는 몽사에 빠지게 한다. 이미 이단 및 사이비에 입문한 것이다.
4.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구원이 사람의 행위나 선택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행위 구원을 강조한다.”
● 변 목사의 반론 : .
이것은 철저한 음해요 거짓말이다.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믿으며, 단지 그 믿음이 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회개가 동반된 믿음이며 행함을 산출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 협회 반박.
변 목사의 구원론이 행위구원이라는 비판은 피할 길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은 크리스찬이라도 지옥에 간다는 주장 관련에 출판물들이나, 설교들, 인터넷 등에 수많은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변 목사의 반론에서 자신이 행위구원을 면하려고, 교묘히“행함을 산출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 뿐”이라지만, 그는 믿음+행위로서, 구원론은 성경을 이탈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구원은 행함을 산출하는 카드라인 기준에 한계를 제시한 근거가 없은즉 이러한 표현에 강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
변 목사의 이런 궁색한 변명은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이해에 오인으로 이를 행위 구원론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이 행함이 없어서 상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삶이 성별되게 살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경성케 함과 기본구원 이후 올바른 성도의 믿음은 성경을 따라 행함으로 온전케 된다는 메시지로서, 선을 행할 줄 알면서 행치 아니함이 죄인 것을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가르친 것이다.
5.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그는 구원 얻는 믿음이란 행위를 자동적으로 동반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믿음과 행위를 분리한다.”
● 변 목사의 반론 :.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른다는 사실을 강조해왔으며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성경에서 야고보가 말 한대로 거짓 믿음이라고 경고해왔다. 그것을 이단 사냥꾼들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다고 주장한다고 매도해왔을 뿐이다.
▲ 협회 반박.
야고보가 말한 거짓 믿음은 구원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하고, 도를 실행하지 않아서 자신을 속이는 삶이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으로 이웃에게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못하고,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삶에 모습을 경성케 하는 것이다.
이는 기본 구원이 행함으로 된다는 것을 강조함이 아니다. 따라서 변 목사가 야고보서를 인용하여 구원 관련에서 행함이 따른 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행함의 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고로 자신을 행위구원으로 박 목사가 매도를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어불성설이다.
? 약2:2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 롬4:1-3/1 그런즉 육신(肉身)으로 우리 조상(祖上)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萬一) 아브라함이 행위(行爲)로써 의(義)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聖經)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義)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6.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그의 책‘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한번 보자. 그는 한 여전도사가 변승우 목사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께 받았다는 계시를 기록하였다. 그는 이 말이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계시 내용을 자신의 책에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계시의 수여자요 사도와 같은 자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 내용이 분명하다.
“네 말이 옳다. 나는 이 시대의 많은 나의 종들에게 말씀의 은사를 주었다. 그러나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에 임했던 그런 영감을 준 사람은 이 종 하나 뿐이다. 나는 그에게 단순히 말씀의 은사가 아니라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쓸 때 가지고 있었던 그런 영감을 주었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라. 이것은 그가 다시 성경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것이다. 그가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틀린 것이 없을 것이며, 내가 직접 하는 말과 같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은사를 어찌 다른 은사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변승우 목사는 1) 사도들과 똑같은 영감을 받았으며 2) 그의 성경해석은 전혀 틀리지 않고 완전하며 3) 그의 말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자신을 계시의 수여자로 자신의 성경해석이 전혀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데 정말 위험한 수준의 사상이 아닐 수 없다.”(변승우.[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은혜출판사 2008, pp.20-22)
● 변 목사의 반론 :.
이 말만 들으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박형택 목사가 나의 책에서 인용한 대목의 바로 뒤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아는가?“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응답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말씀의 은사를 주셨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다. 박 목사의 눈에는 이 글이 안 보이는 것일까? 왜 앞부분만 기술적으로 인용하여 나를 몰아붙이고 매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단 사낭꾼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형제를 참소하는 자” 사탄의 하수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협회 반박.
변 목사가 판단하여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을 자신의 저술“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혜출판사, 2008, pp.20-22에 기록하는가? 이렇게 문제가 되니까“나는 이 응답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습니다.”라고 변명을 하는 것은 치고 빠지는 효과를 위한 궤변용에 문장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자신의 글에서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이, 이어지는 문장의 결과론적으로는 믿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증거는 자신의 저술“다림줄”25,26쪽에 기록이 사실이고, 이에 따른 변 목사의 반론에서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응답을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말씀의 은사를 주셨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다.
박 목사의 눈에는 이 글이 안 보이는 것일까? 왜 앞부분만 기술적으로 인용하여 나를 몰아붙이고 매도하려고 하는 것일까?>라고 하는 문장에“ ”로 인용한 글은 다람줄 26쪽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닌 것으로‘ ’표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문장에 이여서 다림줄에 기록한 내용을 살피건데, 박 목사의 지적이 변 목사를 매도함이 아님이 다림줄 28쪽에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다림줄 26,27쪽에“최근에 하나님께서 제가 상상할 수도 없었고 기대하지도 못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다시 한번 제게 말씀의 은사에 대한 확증을 주셨습니다...우리나라 영성운동의 대모격인 김혜자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영동제일교회 집회 때 저의 친구이며 세계적인 선지자 샨 볼츠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을 보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예언을 했습니다.
“이 시간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천사 중 직위가 높고 강력한 한 천사가 변승우 목사님 곁에 와 있습니다. 바울이 서신서들을 저술할 때에 바울과 함께 있었던 바로 그 천사입니다...이제 이 천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변 목사님에게 밝히 보여서 그러한 종류의 것들(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밝히는 책들)쓰도록 할 것입니다...”
28쪽에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신학생 때 성경 저자들에게 주셨던 영감을 제게도 주셨다는 그 여전도사님이 받은 응답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다림줄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혹여 변 목사를 향한 여전도사의 응답을, 자신이 100% 믿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론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기록은 반신반의가 아닌 긍정이다. 따라서 자신을 박 목사가 매도를 했다는 표현은 오히려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 목사의 반론에“이단 사낭꾼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형제를 참소하는 자”사탄의 하수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은 상대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과할 대목이 아닌가?
그리고 사탄의 하수인이라는 표현은 삼가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수인(下手人)이라는 용어는‘남의 밑에서 졸개 노릇을 하는 사람으로서 손을 대어 직접 사람을 죽인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7.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변승우 목사는 밥 존스 목사를‘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우는 이 시대 최고의 선지자’라고 칭하고 있는데, 밥 존스 목사는 변승우 목사에 대해 예언해 줄 때 전도사인지 목사인지 분별을 못했으며 변 목사와 여동생을 부부간인지 남매간인지 분간하지도 못했다고 한다.”(김삼. 변승우 최고의 선지자? 신사도 예언의 주소. 2008/6/28자 칼럼,p 1)
● 변 목사의 반론 :.
목사가 왜 이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어리석은 말장난을 하는가? 그것은 예언이 아니다. 그냥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목사인 것을 몰라 본 것이 아니라 남가주 사랑의 교회 부 목사였던 우리 교회 청년부 담당 서순형 목사님에게 목사인지 아닌지 물은 것이다. 예언자가 일반적인 대화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언자가 하나님처럼 전지한가? 일반적인 대화에서 주고 간 얘기를 왜 예언이 틀린 것처럼 조작하고 매도하는가? 목사가 이런 일을 하다니 한심한 일이다.
▲ 협회 반박.
위 변 목사의 반론에서 생각할 것은 선지자나 예언가들의 말들이 성경에 부당하다는 점에서, 이를 변별력이 없이 맹종함이 문제로 지적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선지자ㆍ예언자의 학교를 설립하여 예언을 배우는 행각은 성경에 없는 짓을 하는 것으로, 이러한 예언을 의도하는 것은 기독교형의 무당이나 박수를 만드는 생산소가 아니면 무엇인가?
8.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 받는다는 것은 본래 이단이다.”
(변승우 설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2006.5.26)
● 변 목사의 반론 : .
이것은 로이드 존즈 책에 나오는 것으로, 로마서 10장 9-10절의 실제 내용이 아니라 문자에 근거한 산데만주의라는 이단에 대해서 한 말이다. 로이드 존즈는 로마서 강해 씨리즈에서 3번에 걸쳐 이런 이단이 존재했음을 밝히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문맥과 상관없이 한 문장만 딱 떼어내서 내가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박형택 목사의 글에는 이런 왜곡으로 가득차 있다. 시간 관계상 일일이 다 답변하지는 않겠다. 이런 것은 거짓말과 진배없는 것이고 악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불신자들도 부끄러워서 이런 일은 잘 하지 않는다. 속히 회개하라.
▲ 협회 반박.
변 목사는 로마서10:9-10에 대한 기존교회의 신앙에 반응이 부정적인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점을 부인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박 목사가 한 문장만 딱 떼여 내어서 이상한 주장으로 매도나, 왜곡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지만 말고, 변 목사는 수고스러우나 구제적인 제시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위 박 목사의 글 내용은 문맥에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다. 따라서 단장취의(斷章取義)로 매도니, 거짓말이니, 왜곡이라는 것 또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증거가 2006/05/26 설교“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메시지, 은혜가 아닌 행위구원은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라”서울, 은혜출판사, 2008,06,10, 4쇄, p.71. 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받는다는 사상은 본래 이단사설이다”
“이 이단사상이 이제는 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내려서 거짓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해 번지고, 번지다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인 줄 알고 있다”“그저 예수를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받는다는 이것은 본래 이단 사설입니다.
이 이단사상이 이제는 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들어와 가지고 거짓선지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번지고 번지고 번지다 보니까 교회 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인 줄 알고 있어요. 그것이 진리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거짓입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믿음이라고 했던 야고보는 거짓사도입니까?”
“거짓선지자들은 말씀에 관한 진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영혼들을 미혹케 한다”며 “이것이 오늘날 3단 논법에 의해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는 걸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많은 설교자들과 복음전도자들이‘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면…’이라는 로마서 9장 10절 말씀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심어줍니다. 이걸 읽고 난 다음에 당신 예수님이 구주라는 걸 믿느냐 물어봐요. 믿는다 그럽니다. 그럼 믿는다는 걸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느냐면서 입으로 시인하게 만들어요.
그 다음 성경구절 보여주고 난 다음에 당신은 이제 구원받았으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져라. 이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방법입니다.”
변 목사의 글에“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하라”서울, 은혜출판사, 2008,06,10, 4쇄, p.71에 모 여전도회연합회 회장이 입신한 간증에서 “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갑니다.”
이 간증을 하면서 “목사님 말씀이 꼭 맞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 말이 맞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설교는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말씀한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예수 믿고 입으로 고백이 이단으로 귀결이 되는 증거로서, 매도라는 변 목사의 주장은 억지이다..
9. 박형택 목사의 글 내용.
“인간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과 몸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 (변승우, 보이지 않는 적 귀신, pp.104-105)
● 변 목사의 반론 :.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인데 이게 뭐가 이상한가? 전에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이 권사가 이런 글을 써서 아무리 권사라지만 너무나도 무식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목사가 이런 것이 이단성이라고 지적하다니 도대체 신학교에서 뭘 배웠는가? 잘 읽고 배워라. 그리고 다시는 허튼 소리 하지 말아라!
“우리는 거듭날 때 혼이나 육이 아니라 오직 영이 구원 받는다.
요 3:5-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 이후 말씀과 기도로 신앙이 성장하면서 혼이 구원받는 과정 즉 성화의 과정을 밟는다.
빌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벧전 2: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약 1:19-2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육이 구원 받는다.
롬 8:22-23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빌 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모르면 잠잠하고 겸손히 더 배우고 무지에서 벗어나라!!!】
▲ 협회 반박.
변 목사의 행위구원에 의하면 영이 행위로 거듭난다거나, 성화구원에 적용이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없다. 따라서 변 목사가 반론에서 나열한 성경구절은 성경이로되 변 목사 행위 구원의 신앙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영이 거듭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영ㆍ육간에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 목사는 인간론이 3분설로“영의 구원과 혼의 구원과 몸의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 또한 성경해석의 유일한 다림줄을 받으신 분이 이런 소리를 하는지, 사실 변 목사는 인간론에서 2분설(창2:7)아니고, 구원을 셋으로 나누는 3분설로 신비주의 경향의 사람들이 주장하여 적용함이 일반이다. 이 주장은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
변 목사는 인간 3분설과 구원을 셋으로 구분하는 고로, 영과 혼의 존재가 분리인가? 같은 존재인가? 혼이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면 언재 생겼는가? 인간 창조시 육에 생기를 불어 넣을 때에 반응으로 생겼다면 사람이 죽으면 혼이 분해되어서 없어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혼의 구원을 말 할 수가 있는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죄인의 구원은 주님이 부활하신 살과 뼈가 있는(눅24:37-43)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는(빌3:21),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롬8:23), 영ㆍ육간에 구원이다.
이 구원에 견인은 영원불변하고, 맏아들의 형상을 본 받아야 하는 성화의 대상이다(롬8:29,30,레20:8,딤전4:5,벧전1:16,마5:48,고후7:1).
? 히브리서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프쉬케≠프뉴마 아님)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야고보서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프쉬케)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 베드로전서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프쉬케) 받음이라(코미조 : 마련하다, 위하여 공급하다, 벗어나다, 가져오다, 받다/동-현재중간태분사주격남성단수)
? 로마서6:8,9 /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世上)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者)마다 멸망(滅亡)치 않고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변 목사의 행위구원론에 그가 인용한 요한복음3:5,6은 행위로 영이 거듭나는 것을 보장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변 목사는“천국에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산 사람만 들어갑니다.”를 믿는다. 이 행위구원은 결과론적으로 거듭나는 것이 가 봐야 아는 것인즉, 영생을 얻음은 현재형인데, 행위구원은 미래형으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상태는 거듭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염소의 상태로 왼편에 속한 것이다. 이를 추종하는 집단은 염소들의 대행진일 뿐이다. 사실 염소와 양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종자가 틀리다. 불신자 상징인 염소는 마귀의 자녀일 뿐이다. 이러한 유기받은 영적인 상태에서 어떻게 말씀과 기도로 혼의 구원과 성화구원의 과정을 밟는다고 하는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 누구도 행위의 구원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말씀과 기도로 성화가 된다는 인식은 기독교형의 샤만 종교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 염소는 결국에 바리세인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이들이 마태복음7:22,23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언전문, 축사전문, 권능전문으로 자기를 과시하지만, 주님이 도무지 모르는 불법을 행하는 자로서 주님에게로부터 떠나가라는 추방의 명령을 받는 것이다.
이들의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 사단의 역사로서, 이에 속한 자는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는 것이다.
? 디모데후서 3:12-15 /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기독교이단대책협회
2009-05-13 18:43:07
변승우의 구원은 행위조건 전제
변씨 구원상실론 = 예수 믿음 + 행함(구원조건)
작금 변승우 목사가 비판을 받자, 자신은 행위구원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저술을 종합 정리하면,“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것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주장은곧 구원이 상실할 수 있다는 은혜구원에서 이탈이다. 이는 곧 믿음 + 행위(구원조건 : 율법) = 행위구원론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 구원은 한번구원은 영원불변의 진리로서“예수 믿음>칭의, 거듭남(구원)이다. 이후 성도로서 말씀을 순종하는 삶은, 기본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화를 위한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롬8:29)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신행이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2009/05/14/ 즉흥설교에서 자신의 구원관의 설명에 대한 뉴스 파워 / 김철영 / 기사입력: 2009/05/23 [13:08]최종편집의 글 내용에 대한 댓글 중에 익명의“미혹되지 않기 위하여 나의 열정 09/05/24 [19:32]”과“진리사랑”2009/05/25 [20:26]글로서, 변 목사 구원론의 이탈과 성경적인 구원론 이해를 위한 인용임을 밝힌다(편집자 주).
1. 2009/05/23 (13:08) 댓글.
【변승우 목사의 말을 들으면 왠지 맞는 것 같으면서도 무엇인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이 분이 맞다면 왜 이렇게 교계 안에 문제가 일어날까라는 것부터 시작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으로 인해 흔들리고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런 맘이 큽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바른 신앙을 길을 흔들림 없이 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적어봅니다. 조금 길지만 성도님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참되게 역사하심으로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면 이 사람은 그 안에 본질적인 영적 변화가 일어나 이전에는 전혀 나에게 거리낌이 없었던 일들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 생기고 이제는 하나님 쪽으로 그 영혼의 방향성이 설정될 뿐만 아니라 또한 지난 날에 대한 극심한 후회와 반성으로 말미암아 앞으로는 그러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영혼의 본질 자체가 변화되어 하나님 쪽으로 그 방향성이 설정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완전한 형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구원받은 후에는 영혼의 모든 기능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 쪽이 아닌 내 쪽으로 향하고자 하는 본성의 작용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는“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자꾸 나를 위해서 살고자 하는 욕구들을 느끼게 됩니다.
구원받은 신자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오기까지는 계속해서 자신을 위해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고 해서 구원이 가짜 구원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 얻으면 인간이 죄에서 완전히 자유하고 죄에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이 되면 우리는 완전히 죄와 상관없는 영화의 단계에 들어갈 것이지만 이것은 구원받은 신자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것이지 지금 당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8장 30절의 약속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저희 교회는 아직까지 개역한글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법적 선언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라고 칭해 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럼 우리를 의인이라고 칭해주신 하나님의 법적 선언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구원을 얻은 자이고 거룩한 자입니다. 그러나 아직 영화의 몸을 입지 못한 우리는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있고 죄를 향하여 달려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고 부르셨기 때문에 그런 우리를 계속해서 의로운 삶으로 이끄시고 결국에는 영화의 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신자들에게 주시는 위대한 약속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럼으로 구원받은 신자는 그 약속을 믿고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죄의 욕구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억누르고 하나님 쪽으로 우리의 모든 본성이 향하도록 영적이고 도덕적인 싸움을 평생 동안 해나갈 책임 있는 삶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성화의 삶, 다시 말하면 삶 속에서 죄와 싸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이런 싸움은 구원받은 신자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이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싸워가려는 투쟁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은 구원받은 신자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그것에 대한 영적 감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구원이 가짜다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죄와 싸우려는 투쟁이 없는 사람은 어떠할까요? 이 사람을 보고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우리는 잘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구원받은 신자라고 자처 하면서도 죄에 대한 영적 감각이 전혀 없이 죄에 대해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고 거룩을 위한 삶의 추구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그의 구원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가짜 믿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구원 받은 신자라도 전혀 회개하지 않고 거룩을 위한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마음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져서 아무런 영적 투쟁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해서 그 지경까지 갔을 지 모르지만 만약 그 사람이 참으로 구원받은 신자라면 그 안에 성령께서 계속해서 깨닫게 하시고 역사하고 계실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전혀 회개하지 않고 영적 투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도 그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계속해서 부딪혀 오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나름대로는 영적 갈등과 투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완전한 거룩함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거룩함을 위한 추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신자라면 거룩함을 위한 추구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거룩함의 추구가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을 판단할 수 있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거룩함을 위한 추구를 어느 정도 해야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것에는 어떠한 기준도 없습니다. 성경이 그런 것을 말해 주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 열심히 거룩함을 추구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덜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볼 때 좀 더 열심히 거룩함을 추구한다고 보여지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고 ‘이정도 하지 않으면 넌 그리스도인이 아니야. 구원이 가짜라서 그래’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거룩함을 위한 추구를 덜해도 상관없다 라고 거룩함에 대한 추구함이 없는 것을 정당화 하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자기의 열심 없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 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의 열심이 탁월하다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짜다 말하는 그 자세 역시 거룩함을 추구한다는 사람이 보여주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행동 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늘 삶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판단하며 삽니다.
성경을 기초로 하여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무엇이 잘 못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진짜와 가짜도 판단할 수 있고 이단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판단하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는다고 말하는 참 신앙 안에 있는 자들은 서로의 구원의 문제 있어서 이렇게 해야 참으로 구원 얻은 것 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을 얻고 난 이후에 나타나는 행위들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 행위로 구원의 진실 여부를 역 추 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서로의 구원의 진실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가 거룩함을 위한 추구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채찍질을 행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그들이 부족하고 죄를 짓는 모습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기다리고 참아주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가는 것이 진정한 거룩함을 추구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성경은 분명 우리는 판단하는 재판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 4:11-12) 오직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법 아래서 법을 지키는 준행자이지 기준을 만들고 사람을 판단하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려하는 교만입니다. 위대한 선구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도 자신이 그렇게 뛰어난 영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거룩함을 위한 추구가 탁월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기다림이 풍성해지지 독설과 비판이 거세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큰 믿음 교회의 형태를 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그 분은(변승우 목사) 구원 얻은 신자는 참 회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구원 얻은 신자는 참으로 회개합니다. 그런데 그 참 회개의 수준과 정도는 어떤 정도인지 정해진 기준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잘 들어보면 더 나아가 그런 참 회개가 없는 신자는 참 구원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마 큰 믿음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 안에서 참으로 회개하려고 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 모습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아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 정말 맞구나라고 하면서 아주 대단한 지지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면에는 구원받은 신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왠지 모를 압박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참 신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성화의 자세가 아닙니다.
바른 성화의 자세는 내가 구원받았다는 확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받고 부름 받았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이제부터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나오는 것이 성화이지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은 바른 성화의 자세가 결코 아닙니다.
이렇게 출발 자체가 다른 성화는 그 결과 역시 진정한 성화의 열매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산출 하게 되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소위 참 회개라는 것을 하면 할수록 자신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일종의 자부심으로 충만해지고 거기에다가 신령한 무슨 체험 같은 것 한번 경험하게 되면 이제는 완전히 구원받은 신자로 도장 꽉 찍어 놓는 것이 되 버립니다.
이것이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면 무엇을 의지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입니다. 구원이 가짜라서 그렇다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식이 되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정말 그렇게 독설적이고 비판적이라면 정말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 오히려 나을 정도입니다. 이것은 잘 못된 출발 자체가 나은 당연한 결과 입니다. 그런데 또 이 분은 자신의 이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성경 해석에 있어 유일하게 신적 은사를 받았다라고 주장합니다.
결국 자신이 하는 말은 오류가 없기 때문에 다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본인은 이런 은사를 받았다는 것을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하고 본인도 그것을 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결국 본인은 그런 은사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 옛 위대한 신앙의 선구자들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물론이요 그런 신앙의 인물들도 무시하는 분이 지금 주변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야 어디 들어오겠습니까?
큰 믿음 교회 성도들이 교회에서는 성도들 안에 거룩한 열심들이 생기지 그리고 목사님은 신적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지 그리고 무슨 신령한 은사 같은 것 경험해서 진짜 구원받았다(?)는 증거도 얻었지 그러니 자기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큰 소리 치는게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이 얼마나 자기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까?
아무쪼록 구원받은 신자로서 그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추구하시면서 날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싸움을 싸워 가시며 승리하시되 미혹되지 마시고 다른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 2009/05/25 (20:26) 댓글.
【성경이 증언하는 구원 진리는 예수 믿음>칭의, 거듭남(구원)>행함(성화)이지, 예수 믿음>칭의>행함(성화=구원)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마땅히 행위를 수반하나 결코 인간 행위가 구원(의롭다함 얻음)의 조건(근거)이 될 수 없습니다. 변 목사는 바로 후자를 주장하는 자, 행위(성화)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행위구원론 자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완전대속을 부인해버리는 인간중심 구원론이며, 예수 믿음 의지하지 않고 인간 행위를 의지하게 해서 결국 십자가 완전대속 은혜를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간교한 사탄의 교묘한 미혹이며 이단입니다(롬 9:30-10:4, 갈 5:4, 벧후 2:1).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어느 누구도 예수 십자가(하나님의 의) 외에 그 어떤 것(자기의 의)으로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은혜로 마땅히 의롭게 살아야 하지만, 신자는 비록 죄를 지어도 십자가 대속의 은혜 때문에 결코 정죄함(지옥심판)이 없으며(롬 8:1-2,33-34), 또 은혜로 의를 행할지라도 그 행위로 결코 의롭다함을 얻지 못합니다(고전 4:4, 빌 3:6,9). 오직 유일하신 의인이신 예수 십자가(하나님의 의)만이 우리의 자랑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 가진 의입니다(고전 1:29-30)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교만하고 남을 정죄하는 자는 아직도 자신이 무능한 죄인된 존재라는 것과 십자가 복음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기독교이단대책협회
2009-05-31 16: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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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계에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비롯하여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등의 공회 교리의 인용이나 사용 자료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