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양용근 순교 전기집 => 2.1. 추가
<신풍교회 홈에서 - 10.1.28.>
여러 면에서 특이한 책을 하나 접하게 되었습니다.
1. 도서 소개
저자 : 진병도 (장로님)
제목 : 섬진강 - 순교자 양용근 평전
발행 : 2010.1.25.
분량 : 909 페이지
가격 : 30,000 원
* 입금 : 농협, 051-01-449204 (진병도)
2. 양용근 목사님
양 목사님은 1937년 3월에서 39년 4월까지 애양원교회에 계셨고, 평양신학교 동창인 손양원 목사님이 바로 후임자였습니다. 구례 중앙교회 시절 신사참배로 순교한 분입니다. 제가 순교자로 인정하는 분은 많지 않으며 호남 지역의 순교자는 평소 손양원 목사님 1 명으로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번에 이 순교 전기집으로 호남의 순교자를 1 명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3. 진병도 저자
며칠 전에 도서 출간을 하였고 기증을 하겠다고 저자가 직접 "신풍교회"의 주소를 부탁하여 대화가 있었습니다. 기증 된 책을 받고 보니까 아마 애양원교회로 가야 할 책이 우리 교회로 온 것 같았습니다. 책을 잠깐 훑어 본 결과 값을 내고 구입할 책이었고 그 내용은 우리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증을 원했던 저자의 뜻을 고려하여 3 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성의 표시를 했습니다.
우리 교회로 전화가 온 이유는 저자는 "애양원교회"의 옛날을 연구하고 책을 내다 보니까 예전의 애양원교회는 원래 "신풍교회"였고 책에서 원래의 교회 이름을 계속 사용하다 "애양원의 신풍교회"로 책에도 적었고 본인도 그렇게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평일에 "신풍교회"로 애양원 문의가 많습니다. 전화국에는 "애양원교회"가 없습니다. 애양원 주소를 통해 114 안내를 받으면 우리 교회가 나옵니다. 제가 애양원교회에 오래 전 여러 차례 정중하게 "애양원교회" 이름으로 전화 한 대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애양원교회"라는 의미도 특별하고 또 문의하는 분들에게 편리한 안내를 제공하는 배려도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선의의 연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애양원교회는 "애양원교회"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가지는 것을 아주 곤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생각과 인식은 그렇지 않은데 본인들이 먼저 선입견을 많이 가진 것 같았습니다.
4. 도서의 특징
- 보수 신앙
최근 기독교의 각종 도서들은 사회복지 도서이거나 사회주의 운동권 홍보지 수준인데, 이 번 도서는 최근에 나온 도서라는 점에서 너무 신앙적인 면이 강하여 반가웠습니다. 모처럼 추천할 만한 도서였습니다. 그 내용이 우리 "신풍"에 관련 된 것이어서 또 반가웠습니다.
- 저자 소속
저자는 종앙중앙교회 장로님이며 장로교에서 "개혁"측이라고 보수 성향이 강한 교단 소속입니다. 교단이 그러 해도 본인의 신앙은 다를 수 있는데 도서의 전반적 흐름에서 신앙에 철저한 분으로 파악이 되어 반가웠습니다.
- 교리 입장
이 번 책에는 "기본구원" "건설구원" "성화구원"이라는 표현들이 곳곳에 나오고 있습니다. 저자는 "개신신학대학원"의 이사장을 지낸 분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우리의 교리 입장이 이렇게까지 반영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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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전체를 통해서 다음 내용들은 일관 되게 나오는데 일부만 참고로 소개합니다.
p.165
제1차 구원인 기본구원을 아브라함이 받은 것은, 여호와께서 스스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부르신 데서 시작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나 공로에 의해 부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의 뜻으로 스스로 불러서 구원해 주신 것이다. 즉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기에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였다. 그러니까 기본구원은 얻은 구원이다. 즉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한 것처럼 "영생을 얻었고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완료형 혹은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에베소서2장5절에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완료형 혹은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기본구원이다. 이 기본구원을 받은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예수님을 주로 부르게 된 자이다. 그런 구원을 받은 자로 아브라함을 계시의 거울로 삼아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p.167
거기서부터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2의 구원, 즉 성화(혹은 행위, 건설 구원) 역정의 사작을 볼 수가 있다. 성화구원인 제2의 구원은 완료형이나 과거형으로 성경에 설명해 놓은 구원이 아니라 미래형으로 설명해 놓은 구원이다. 즉 이미 얻은 구원은 기본구원이고, 앞으로 얻어야 할 구원은 성화구원이다. 그 성구를 찾아 보자.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과거형) 또 건지시리라(미래형)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미래형)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1:10).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미래형, 빌2:12).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미래형, 딤후4:18).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미래형, 고전3:15). 위에 열거한 성경구절에 나타난 구원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육과 영이 합쳐진 채 살아가는 동안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을 성화시켜 가면서 이루어 가는 구원을 의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육적인 노력만으로는 결코 성화시킬 수가 없고 기도를 통해, 또 깊은 회개를 통해서만 중생한 영이 육신을 쳐서 날마다 성화되어 갈 수가 있는 거 ㅅ이다.
기본구원은 단회적이다. 즉 단 한 번밖에 없다. 그러나 성화구원은 계속 진행되어 간다. 기본구원은 진리와 영감이 영을 감화시킴으로 믿게 되어 중생하게 된 것이다. 중생은 단 한 번만 한다. 그렇게 중생한 자가 성령과 중생한 영으로 이성과 육을 성화시켜 가는 것이 성화구원이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영접할 때 기본 회개인 완전한 회개를 했고, 그 다음 중생한 후에 중복 회개를 해가면서 성화구원을 이루어 갔다.
p.370
양 목사는 계속해서 기본구원과 성화구원에 대해서, 그리고 원죄와 자범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대행 대속의 은혜와 구원은 행위에 의하지 않고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 등을 설명하였다. 그들은 더 자세한 설교를 들은 다음 모두 기본구원의 은총을 체험하고 예수를 믿게 된 기쁨에 흠뻑 젖었다.
p.400
오늘 우리가 꼭 알아 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민족이나 우리 국가의 해방만을 위하여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억울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신앙을 붙들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에 동참하다가 쓰러지거나 감옥에 들어가는 것이 민족과 국가만을 해방시키기 위한 쓰러짐이나 감옥살이보다 더 바르고 가치 있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후자보다 더 영원하고 고귀한 가치를 가진 신행이기 때문입니다.
p.401
양용근 목사는 위와 같은 설교를 자주 하였다. 사회참여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이라는 것이었다. 일제로부터 주권을 회복하는 운동보다 구원운동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p.409
중생한 자는 죄와 허물이 없어졌으므로 천국백성이 되었으니 기쁜 일임을 절감하도록 여러 가지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벗은 자로 발견도지 않기 위해서 덧입어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즉 중생한 성도는 성화되어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자가 죽임 당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나 인성이 신성에게 삼켜진 것이다. 인성이 신성에게 삼켜지면 표면적으로는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나 필연적으로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것은 인성이 죽임을 당한 것이고 3일 만에 살아난 것은 죽임을 당한 후 신성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신성을 입고 살아난 인성은 시공의 자연법칙의 치리권에서 일탈하여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다는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p.415
교사는 제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양 목사의 교사관의 하나였다. 우선 학생의 가정을 알고 교우관계 소속 학교에서의 생활 성경 지식 신행 등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연구하도록 하였다. 주일 예배 후에 교사가 가르치게 되어 있는 성경공부는 교사가 교재 내용을 반드시 암기한 상태에서 다양한 교수형태를 활용한 교육을 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주일 아침에 받는 교사 교육의 내용은 그 다음 주일에 실시할 성경공부의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그 내용에 관하여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 그 내용을 기도를 하면서 암기하고,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학생들 영혼에 침투시킬 수 있는 교수학습 자료의 제작과 방법을 연구하고 모색하도록 훈련시켰다. 조직신학적 학습 내용을 통해 전통적 보수 신앙으로 교사들을 무장시켰다. 그런 결과 교사들은 철저한 보수 신앙을 가진 신자가 되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그 보수 신앙을 그대로 침투시켰다.
p.428
우리 인간은 회고적 영감의 감화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이 있고, 현재적 영감의 감화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유형의 인간은 가치 있는 인간형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마땅히 미래적 영감의 감화에 사로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p.429
교회가 정치와 야합하면 파멸이 옵니다. 교회가 어떤 세속적 정권에 아부하고 그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가장 가증스러운 부패이며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는 다만 세상을 지도해야 할 순수한 특성만 가지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p.451
기본구원은 하나님께서독권적으로 계획하시고 아무 공로가 없어도 사랑으로 선택해서 거저 주십니다.
p.482
십자가는 외면적으로 보면 고통의 십자가이다. 그러나 내면적 십자가는 다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운명은 표면적으로는 시간과 소유와 건강과 생명까지를 죽음에게 모두 빼앗긴 것으로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중에서 최종적으로 남는 것이 목숨인데, 어떤 죗값으로 죽는 죽음이거나 병사나 혹 자연사였다면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 되었겠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새 생명에게 삼켜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값진 것이었다.
영에게 온전히 생명까지 투자한 것이었다. 투자를 하면 필연적으로 계속해서 수입이 생기는 법이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에 보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햇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핏방울이 땅에 떨어져 가니육의 생명은 점점 내버린 것 같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육의 생명을 당신의 생명으로 삼지 않고 참 생명을 당신의 생명으로 삼고 살았기 때문에 그때 육의 생명을 영의 생명에게 삼켜져 가게 하고 계신 상황이었던 것이다. 즉 육의 생명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게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p.485
죽음이 오기 전에 투자해 놓아야 한 빼앗기는 것이 된다. 주여, 나에게 그렇게 생명을 투자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할 것이다. 외적으로 빼앗겨야 내적으로 영원히 소유할 수가 있다. 그러니 여러분, 영적으로 빼앗긴 자로 살지 말고 빼앗기지 않은 자로 살아가기 바란다. 진리와 소유가 대립이 되면 그것은 진리를 영유케 하려고 된 사건임을 알기 바란다. 목숨도 그와 같다. 표면적 환난과 고난은 천국을 내게 주겠다는 천국 위임식이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것은 큰 대목장이 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p.489
예수님의 십자가는 은혜 구원을 가진 십자가였고, 우리들의 십자가는 시간 경제 정력 등을 투자해서 성화(건설)구원을 성취할 가치를 지닌 십자가(현실)인 것이다. 그렇게 복잡한 현실 속에 무한하고 다양한 은사(건설, 성화)구원을 이루는 데 필요한 가치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경속에 또는 실패라는 사건 속에도 그 은사 구원의 가치가 들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치(목적)를 붙들고 지고 가신 십자가였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그십자가는죽음이라는 최악의 현실이었지만 그 역경을 구원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에게도 친구와의 사귐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수와의 시달림에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순경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역경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때뚜렷한 목적과 가치 그리고 진리와 결합되었고, 생명과 결합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만능의 능력을 가지고 걸어가셨다. 우리도 그와 같이 우리의 힘만 의지하지 말고 진리와 생명이신 성령님에게 피동 되어 성화 구원이라는 목적과 가치의 구현을 위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정진하기 바란다.
p.513
이것을 칼빈은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했어요. 또 영원불변의 은혜라고도 했지요. 그러니 낙용 군은 기본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앞으로는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성화구원 혹은 건설구원(또는 은사구원)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본질에서 구원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인데 그분게는 진리와 사랑이 충만했어요.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요 본성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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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4007
* 이름:슬로한 (dlwjdeo3@yahoo.co.kr)
* 2009/10/8(목) 16:27 (MSIE6.0,WindowsNT5.1,SV1) 118.32.61.124 1024x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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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근 목사는 전남 광양군 진월면 오사리에서 출생하였다. 호적상의 이름은 용환이라고 되어있으나 교회에서 용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양용근 새 시대를 열어갈 열망에 부푼 꿈을 안고 신학문에 대한 동경에 순천 매산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이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게 되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이리하여 일본의 니혼에서 법률을 전공하였다.
그런데 왜 법률 계통에서 꿈을 실현하리라는 본래의 의도를 꺽고 왜 신학을 입학하였던가?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라는 것이 그가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 소위 관동 대지진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1923년의 일이었다. 일본 현지 토오쿄오(동경)와 요코하마 일원에 걸쳐 대지진이 일어났다.
간악하기가 이를데 업는 일본 위장저들은 이 큰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수습할 계책을 꾸며 한국인을 그 제물로 사용하기로 한 끔직스러운 대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인들의 이곳에 6천여명의 우리 교포에게 무차별 대학살을 자행하는 소름끼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대폭동을 일으켜 방화하였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와 같은 참변을 당하게 만들었다. 마치 네로 황제가 로마의 대화재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화범의 허물을 씌워 기독교를 박해하던 일이 금세기 일본에서 일어났는데 이 화를 우리 민족이 당하게 되었다. 여기서 지진 사건 자체도 자체려니와 여기에다 교포 대학살 사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된 양용근은 내 생명을 구해 주신 하나님께 남은 생을 주께 바치기로 서약하고 여기서 일생을 목회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이것이 동기가 되었다.
1930년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하나님과의 서약을 지키기 위하여 평양에 있는 장로회 신학교에 1933년에 입학을 하게 된다.
목사가 되면서 그의 고향인 광양읍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첫 목회에 짐을 풀었다. 그후에 여수에 있는 해양원교회로 옮겨 시무하였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복음인 이 사랑을 가난한자와 약한 자들을 위하여 재산을 털어 오사학원을 열고 교육에 투신한 바가 있었는가 하면, 이번에는 병들고 소외된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애양원교회에서 성역을 감당하다가 다시 고흥에 있는 길두교회에 거쳐서 구례읍 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이때에 일제는 그 말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민족교회들을 들볶고 못살게 굴었다. 이러는 중에 제일 못할 일은 제1,2,3계명을 모두 범할 이른바 신사참배를 강요였다. 우리 교회가 일본의 잔인한 박해를 받아온 역사는 일본의 이 신사참배 강요에서 그 절정에 달하였다.
그들은 일본 저희 왕이나 무사들의 영을 섬기는 신사에 전 국민을 참배하게 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그 충성을 시험했고 이같은 의례를 통하여 저들 군국주의의 정신적 단결을 도모하려는 간악한 야심의 소행이었다.
순천노회가 여기 첫 희명을 울렸다. 이로써 순천노회는 1941년에 2차에 걸쳐 목사,장로를 구속하였고 또 거기에 순천 중앙교회를 중심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모임인 원탁회 사건이 발생하게 되자 순천노회 소속 목사와 장로들이 모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 뜨거운 신앙심과 민족의식이 남달리 투철했던 양목사는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의 인면수심의 극악한 만행을 목격한 그로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가는 곳마다 이를 역설하던 중에 1940년에 고흥 지방의 연합 도사경회에서 이 신사참배 반대를 주장하였다. 이것이 결국 반일사상과 불경죄로 체포되어 광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1943년 차가운 12월 5일에 신절을 끝까지 지키면서 영광스럽게 생의 최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