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박옥수, 애양원, 죄사함 - 2007년 8월호...[1]
애양원교회 윤성화 목사님 - 제4대, 1970-1983.
애양원교회에서 집회를 해주십시오
내가 나환자촌에 가서 나환자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고 집회를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참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나환자촌을 다니며 집회했는데, 그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집회 하나가 여수 애양원교회 집회였다.
한번은 영천 서광원에 있는 교회에 가서 나환자 목사님들과 교제를 나누었는데, 낯선 목사님 한 분이 계셨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윤 목사님이신데, 어느 교회에 계시냐고 물어 보니까 여수 애양원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다고 하셨다. 애양원교회는 성도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까, 1000여 명 된다고 하셨다. 애양원교회의 손양원 목사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윤 목사님이 애양원교회 목사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관심이 많이 갔다. 그래서 다시 “목사님, 그러면 교회에 거듭난 분은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 목사님은 한참을 헤아리시더니, 네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목사님, 목사님이 거듭나셨는데 성도들 가운데 4명만 거듭났다니, 말이 됩니까? 목사님, 왜 복음을 전하시지 않았습니까? 거듭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셔야지요.”
그 해 여름에 전화가 왔다. 윤 목사님이셨다.
“박 목사님, 저희 교회에 와서 집회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해 여름에 집회를 하러 갔는데, 애양원교회가 아니라 지리산 뱀사골에서 갖는 집회였다. 애양원교회의 장로님들 집사님들이 참석했는데, 그 집회에서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뻤다.
집회를 마치고 대구로 돌아왔는데, 그 해 가을에 윤 목사님이 다시 전화를 주셨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서 집회를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 집회에 갔다 온 분들이 거듭나고 놀랍게 변해서, 교회에 지리산파가 생겨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모두 ‘지리산에 갈걸’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교회에 와서 다시 한 번 집회를 해주십시오.”
성령이 충만한 분위기로 변해 갔다
윤 목사님의 요청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여수 애양원교회에서 한 주간 집회를 할 수 있었다. 애양원교회는 주로 나환자들이 중심이 되어 모이는 교회였는데, 어느 시대나 그랬겠지만 나환자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나환자들끼리 함께 모여서 살기에 그들의 마음은 세상 어느 사람들보다 겸비하고 순수했으며, 아름다웠다. 그들이 병들고 마음에 쉼이 없어서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어떻게 거듭나는지, 어떻게 죄 사함 받는지를 몰라서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참 많았다.
집회 첫날 저녁, 설교를 마치고 거듭나기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100여 명이 손을 들고 나왔다. 나도 개인적으로 상담을 하고, 같이 갔던 형제에게 그 100여 명을 모아 놓고 복음을 자세히 전해 주라고 했다. 둘째 시간에도 역시 100여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고 나왔다. 당시 집회에는 애양원교회 성도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여수 주변과 순천 일대에 있는 목회자들도 많이 참석했는데, 한 주간 집회를 하는 동안에 참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거듭났다.
구원받은 후 장로님들, 집사님들 입에서 간증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장로님은 옛날에 교회 옆에 살다가 집안일을 좀 하려고 교회 괭이를 가져와 쓰고 갖다 놓지 못했는데, 교회에 ‘누가 교회 괭이를 훔쳐갔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괭이 도둑으로 몰릴까 봐 그 괭이를 숨겨 놓았다가 결국은 두려워서 땅에 묻어버렸다고 했다. 그 후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기물을 훔친 그 죄 때문에 평생을 죄 속에서 고통당했다고 했다. 기도하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훔친 죄!’ 하고 정죄가 일어나서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했는데, 이번 집회 때 죄 사함을 받았다고 기뻐하면서 지난 죄를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또 어떤 분은 나병에 걸려 도망가야 해서 바닷가에 있는 배를 훔쳐 타고 도망왔다면서, 그 배는 그 주인의 전 재산과 같은 것인데 훔쳐 타고 온 죄 때문에 늘 고통 속에 있다가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났다며 기뻐하면서 간증했다. 애양원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시간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 받기 위해 일어났고, 죄를 사함 받고 기뻐했다. 교회가 성령이 충만한 분위기로 변해 갔다.
저 기쁨을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주실까?
나는 윤 목사님 사택에서 지냈는데, 그 사택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환자촌에서 조금 떨어진 애양원교회에 가는 입구에 있었는데, 정원에 무화과나무, 감나무 등 과일 나무가 있고, 참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사택이었다. 새벽에 말씀을 전하고, 아침을 먹고 오전 성경공부를 하고 난 뒤 오후에 시간이 나면 나는 그 감나무 아래서 성경을 읽었다. 마침 단감이 익는 계절이어서 감을 따먹어 가면서 성경을 읽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했다.
집회 중에 새벽부터 밤까지 수많은 나환자들이 구원을 받고 주님 앞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집회를 마음에서 일평생 잊을 수 없는데, 집회 마지막 날 ‘그 교회에 나병이 심해 몸이 너무 흉측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고 스피커로만 말씀을 듣는 성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에 집사님들의 안내를 받아서 그분들만 모여 사는 곳에 가보았다.
나병은 정말 잔인한 병이었다. 예쁜 얼굴을 다 앗아가고, 손과 발을 빼앗아가고…. 그분들은 참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는 기쁨이 차 있었다. 특히 나병은 눈을 상하게 해서 눈이 좋지 않은 분들이 많았는데,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어떤 분이 소리쳤다.
“박옥수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모두 기뻐하면서 내게로 모여들었다. 그분들이 간증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는데, 어떤 분이 저쪽 방에서 건너왔다. 그분은 안타깝게도 두 다리가 없었다. 그래서 바둑판 같은 나무 밑에 바퀴를 달아서 마치 아이들이 썰매를 타듯 그걸 타고 나에게로 왔다.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예, 뭡니까?”
“목사님, 나는 지금까지 죄가 기억나면 그 죄가 사해지지 않은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설교를 들었습니다. 내 죄가 기억나지만 그래도 사해진 것이 맞죠?”
그 질문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나도 옛날에 어떤 목사님이 ‘죄가 사해지면 기억이 안 난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내 죄가 자꾸 기억나서 죄가 사해지지 않은 줄로 알고 고통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해서 죄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 병이 다 나아도 병들었던 때의 기억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병들었던 기억이 나도 병이 나은 것처럼, 내가 범한 죄의 기억이 나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사하셨으면 우리가 사함 받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 죄가 사해지면 우리는 기억해도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 죄를 기억합니다.”
그분이 정말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두 다리가 없고, 나병에 걸려서 가족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이런 곳에 격리되어 살면서 저런 기쁨을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주실까? 저런 평안을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주실까?’
정말 그분에게는 기뻐해야 할 조건이 전혀 없고, 감사해야 할 조건도 하나도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죄 사함을 받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에도 너무 감사했다.
나병은 그들에게 저주가 아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자주 나환자촌에 가서 집회를 했다. 나환자 분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순수했고, 더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들이 몸이 병들어 육신은 불편했지만, 건강한 사람보다 나환자들 가운데에서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 나병은 그들에게 저주가 아니라 잠깐 왔다 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도구였다. 나병이 그들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겸비하게 해서, 하늘나라 가기에 더 가깝도록 그들을 이끌어 주었다. 그래서 나병 자체는 싫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다면 그것이 결코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