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순교자들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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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순교자들의 후손


[목사]나의 할아버지 순교자 주기철 목사(19) [[제1173호] 2009년 3월 14일] 조회 : 31





순교자의 후손 책임지신 섭리의 하나님


필자는 지난 호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주 목사님의 후손들의 삶을 통해서도 분명히 이루어짐을 간증하였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후손들에게만이 아니라 주를 믿고 따르는 모든 믿는 이들과 오늘도 함께 하시며, 그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는 자들의 삶속에 역사하셔서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신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주 목사님의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소중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소개하였듯이 목사님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원래는 5남 1녀였으나 어려서 1남 1녀가 병사하였고, 아들 4형제가 성장하였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네 명의 아들을 부르실 때 다음과 같은 애칭을 사용하여 부르곤 하셨다. 그리고 그 애칭과 관련하여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나타난다.




공산정권에 항거하다 순교한

맏아들 주영진 전도사(루터)

먼저 목사님께서는 제일 큰 아들이었던 주영진 전도사를 늘 루터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루터가 누구인가? 그는 중세교회가 타락하였을 때에 교회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면서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중세 교회는 엄청나게 타락하였으나, 동시에 강력한 힘과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는 누군가가 교회의 잘못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 여지없이 그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든지, 단두대에서 목을 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렇게 살벌한 때에 루터는 교회의 잘못을 결연히 지적하며 목숨을 걸고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주 목사님은 당신의 맏아들을 부를 때 늘 루터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신기하게도 목사님께서 루터라고 부르던 맏아들 주영진 전도사는 해방 후 이북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섰을 때, 정권의 잘못됨을 지적하고 항거하다가 대를 이어 순교를 당하였다. 그는 평양 근교의 긴제에서 그 당시 약 500여명이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1948년 이북에서 주일에 실시된 총선거를 끝까지 반대하였고(성수주일을 이유로), 이북 기독교 5도연맹이라고 하는 어용단체에 가입할 것을 반대하다가, 결국 공산당에 의해 수괴반동으로 몰려 6.25전쟁 바로 직전에 끌려가 산채로 매장을 당하여 순교를 하였다.

루터가 목숨을 걸고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듯이, 필자의 백부이신 주영진 전도사는 이북의 김일성 정권의 부당함을 항거하며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고 싸우다 대를 이어 순교의 면류관을 썼다.




어거스틴처럼 뒤늦게 돌아온

둘째 아들 주영만(어거스틴)

그 다음에 목사님께서는 둘째 아들 영만을 향해서는 어거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어거스틴은 누구인가? 그는 나이 30이 넘도록 방탕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필자의 백부님은 젊은 시절에 받은 상처로 인하여 한때 하나님을 떠났다가 뒤늦게 돌아오셨다. 사실 필자의 백부님은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환란의 7년(목사님께서 감옥에서 고난당한 세월)을 보냈고, 결국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였다.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강제적인 신앙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어머니에게 대들기도 하였다.

“왜 우리들을 이렇게 강제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필자의 할머니 오정모 사모께서는 목사님께서 감옥에만 들어가시면 늘 “일주일 금식기도”를 선포하곤 하셨고, 그러면 그 당시 중고등학생으로 한참 사춘기를 보내던 백부님은 어머니의 그런 강압적인 신앙교육에 회의를 느꼈고, 그래서 어린 동생들을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대들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처로 인하여 그는 신앙에 많은 회의를 느끼고 한동안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신앙의 길, 하나님의 향한 믿음의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어거스틴처럼 늦었지만 회개하고 마침내 신앙의 길로 돌아왔다.




영적 계보를 이은 셋째 아들

고 주영해 장로(사무엘)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셋째 아들인 필자의 선친 고 주영해 장로를 향하여는 항상 사무엘이라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누구인가?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를 잇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한 시대에서 한 시대를 잇는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선지자였다. 그의 기름부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이 세워졌고, 그 다음에 다윗이 세워졌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목사님께서 사무엘이라고 부르던 셋째 아들 고 주영해 장로의 후손들을 통해서 영적인 계보가 이어졌고, 영적인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었다.

사실 목사님께서는 늘 셋째 아들인 주영해 장로를 향해 “영해야, 나는 네가 목사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사모님 또한 “영해야, 난 나중에 네가 목사가 되면 늙어서 너와 함께 살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셋째 아들을 통해서 목사님의 영적인 계보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미 필자가 지난 호에서 소개하였듯이 셋째 아들인 고 주영해 장로를 통해서 목사와 전도사가 7명, 그리고 사모가 3명이나 나오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인가?




장대케 되는 복을 받은

막내 아들 주광조 장로(다윗)

그리고 목사님께서는 막내 아들인 주광조 장로를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셨다. 다윗이 누구인가? 다윗은 이스라엘이 가장 창대케 되었던 시절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막내 아들 광조를 향해서 다윗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놀랍게도 필자의 숙부이신 주광조 장로님은 말 그대로 가장 창대케 되는 복을 받으셨다. 그는 영육간에 창대케 되는 많은 복을 받았는데, 극동 도시가스, 극동 셀 석유회사, 그리고 극동건설 등에서 전문경영인(CEO)으로 일하였고, 후에는 극동방송에서 후원회 이사장으로, 상임부사장과 감사로서 오랫동안 복음전파를 위하여 섬기셨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국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당신의 선친이신 주 목사님에 대한 간증집회를 통해서 순교신앙을 전하셨다. 그야말로 그는 다윗처럼 영육간에 창대케 되는 복을 받았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목사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고, 당신의 아들들을 호적 이름 외에 루터와 어거스틴, 사무엘 그리고 다윗이라고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주님의 길을 따라 가기 위하여 피눈물을 흘리면서 자식들을 맡기는 기도를 했을 때, 그 기도를 다 들어주셨고, 그 자식들의 길을 마음의 소원대로 인도하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들에게 나머지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마태 6:33). 이것이 바로 주 목사님의 후손들의 삶을 통해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요, 사랑의 손길이다.




주승중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