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재건 교회와 분리 주의 - 논문과 반론
최덕성교수의 소논문에 대한 반론 스크랩
2009/07/1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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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덕성교수의 소논문에 대한 반론
관리자 2007-12-20 21:39:28, 조회 : 1,378, 추천 : 180
최덕성교수의 소논문 “칼빈의 교회관과 신사참배거부운동”에 나타난 재건교회에 대한 신학적 반론
이번 2004년 순장-재건측 목사재교육에서 고신대 교회사 교수인 최덕성 교수의 강의와 책들을 통해서 필자는 많은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시대적 요청에 부합하지 못한 우리 교단의 부끄러움도 깊이 통감하였다. 친일파 전통을 우리사회와 교회 안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노력에도 게으르고 무능하였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또한 미래의 재건교회를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짐케 한 점에서 감사드린다. 그러나 재건신앙운동이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과 재건신앙공동체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을 해 본다.
재건신앙운동 당시, 재건교회 교회관은 도나투스적 분리주의로 시작하였는가?
최덕성 교수는 그의 소논문 “칼빈의 교회관과 신사참배거부운동”에서 재건교회가 시작할 당시를 중세종교개혁시대에 이단으로 단정된 도나투스적 분리주의 교단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견해를 칼빈의 교회론적 관점에서 강조하고 있어서 보다 신학적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4권에 교회가 분리해서는 안 될 잘못된 경우 여덟 가지 교리를 설명하면서 특히 네 번째 교리 설명에서(기독교강요 IV.1.15;그의 소논문p.8) 재건교회는 현대판 도나투스적 교회관을 같고 있다고 명백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재건교회가 해방 후 독자적으로 분리하지 말아야 할 교회와 분리하였고 신학적으로 완전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고 최훈 목사의 저서 한국재건교회사 94쪽을 그의 논문 각주 3번에서(p.9)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강조하고 있다. “재건교회는 광복 후에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하고서 다른 교회와 교제를 금했다. 고신파 신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조차 ”동참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여 엄금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 후 다음 쪽(p.10) 맨 윗부분에 재건교회 고(故) 최종규 목사가 세례를 집행하는 그 당시 사진을 첨가한 후 그 밑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재건교회의 세례식(최종규목사). 재건교회는 도나투스주의 운동의 교회관과 유사한 교회관을 가지고 출범했다.”
이러한 오해는 재건신앙운동과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최덕성 교수가 최훈 목사의 논지를 인용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상 최훈 목사는 그의 책 한국재건교회사에서 재건교회가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그의 견해는 재건교회의 초창기 지도자들의 신사참배반대운동에 대한 신학적 차이가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신학적 개념인 재건신앙운동의 노선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pp.92-93). 재건교회의 초창기 지도자들(한상동,이기선,김린히,최덕지등)이 희미한(온건한) 신앙노선을 취하는 자들과는 구별되게, 강경한 재건운동 노선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신사참배로 실패한 자들에게 요구하는 회개의 조건 등에서 구분 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들은 보다 강경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를 갖고 있음을 비교 대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재건교회에서 고신이 분열할 수밖에 없었던 견해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최덕성 교수의 문제되는 견해는 재건신앙운동과 신사참배거부운동을 같이 인식하려는데 있다. 최훈 목사는 재건신앙운동은 보다 포괄적인 개혁운동으로 여기고 있다. 신사참배거부운동 만이 잘못된 교회에서 분리해야 된다는 신학적 강조점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건신앙운동이 신사참배만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임을 박윤선 목사의 신학적 입장에서 증명한다. 신학자 박윤선 목사의 견해로 보면 신사참배만이 죄가 아니라 동방요배, 강요된 묵도, 강요된 국가경례, 강요된 국민서사, 강요된 근로봉사에 주일성수를 하지 못한 것 등등은 명명백백한 죄라고 분명하고 자세히 규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재건교회는 독자적으로 분리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재건신앙운동은 진리운동이었다. 단순히 신사참배만을 죄로 단정짖고, 나머지 잘못들은 양심의 문제로 보는 인정어린 도덕적 정화운동이 아니었다 (김남식 목사는 재건신앙운동을 강경파적 신사참배거부운동으로 보면서 진리운동이라기 보다 정화운동쪽으로 결론짖는다, "신사참배 수난 후 한국교회 재건양태연구" 신학지남 2003년 여름호, pp.358-362). 재건교회의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자는 모토는 중세종교개혁당시 진리의 횃불을 높이들고 순교를 각오한 순교의 정신과 같은 맥락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만으로는 그 당시 진리운동에 전폭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고신교회가 분리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최덕성 교수의 논문의 시발점은 고신을 분리주의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는 고신대 교회사 교수인 이상규의 저서들을 겨냥한 것으로 안다. 그의 소논문 첫 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상규,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와 저항”(서울: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1997; 기독교사상연구 4 (고신대학교, 1997).
재건과 고신이 헤어진 것은 도나투스적 완전주의 입장에서 그러했을까?
칼빈의 교회관 중 교회가 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 네 번째는 “교회가 의무를 게을리 한다고 하여 떠나는 것도 잘못이다”이다. 그 당시 재건교회 교회관을 도나투스적 완전주의로 보는 신학적 오해는 최덕성교수의 칼빈의 교회관에 대한 잘못된 적용이다. 앞에서 박윤선 목사의 신학적 입장을 언급했지만, 일제강정기 곧 한국교회 수난시대에 일어난 여러 가지 죄악들은 교회가 의무를 게을리 하는 정도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모세의 언약의 증거로 주신 십계명의 잣대로 정확하게 그 당시의 잘못들을 재어 보면 신사참배 뿐 아니라 동방요배와 그 외에 여러 가지 행동들은 언약공동체가 하나님께 위배한 근본적인 문제들이다. 일본이 세계정복의 야심을 꿈꾸며 일본 왕을 하늘에서 인신된 천왕으로 종교화하여 그들의 뜻을 펼치려는 죄악 된 의지의 반영이었다(최덕성교수의 강의 중에서도 언급하였음). 교회와 성도들이 그들의 거센 함정에 넘어간 것은 핑계 될 수 없는 명백한 하나님께 대한 언약 위반이다. 고신의 초창기 지도자 한상동 목사는 자신이 동방요배 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한다면 (최훈, 한국재건교회사 p.91; 최종규, 한국기독교재건운동사,p.32; 강의 후 최덕성 교수와 담화하면서 이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현재 고신교회는 동방요배를 죄로 여기고 있다고 말함), 그 분은 동방요배의 숨어있는 그들의 심층의도를 정말 몰랐겠는가? 그렇다면 신사참배한 자들이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내가 일본나라 인간 왕에게 절한다고 해서 그가 신이 되겠느냐는 논리로 핑개 한다면 한상동 목사님은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재건과 고신이 하나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신의 지도자들은 목사들이었다. 물론 재건의 지도자들도 그들과 같은 평양신학교 출신들이었지만 말이다. 재건교회가 고신과 분리된 후에 지금까지 말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칼빈의 교회관 입장에서 분리하지 말아야 할 8가지 요소 모두를 지닌 체 갖은 수모와 어려움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재건교회 지도자들이 신사참배하지 않은 교회들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용어를 쓴 것도 사실이다. 고신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그러한 태도를 보인 것은 고신이 재건신앙운동에서 미온한 태도를 보이며 그들이 어느 정도 죄에 물든 상태라는 점, 철저하게 회개하지 못한 점에서 취한 행동으로, 그 당시 입장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자세가 그 이후에도 간간히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다든지 아니면 신학적 부제로 인해 개인적 사정으로 이용된 점에서는 극단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신사참배 뿐 아니라 동방요배 등에 대해서 죄라고 인정하는 자들과는 대화하고 서로 강단교류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서로 알고 있다. 오늘날의 고신교회의 도덕적 해이와 그들의 분열의 문제는 같은 맥락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교회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왜곡된 체 떠 밀려가는 것은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바른 역사해석은 오늘날과 그 당시에 놓여있는 두 지평 사이를 바로 분석하고 좁혀나가는데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오늘의 입장에서만 과거를 해석할 수 없다. 오늘날 재건교회의 현재 모습이 부족하다고 과거의 위대한 역사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원칙을 무시할 때 역사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뒤 틀릴 수 있다. 성경해석 방법에서도 역사 비평적 방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주관적 관점이 선이해로 합리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당시 입장에서 해석하고 현제 안에서 적용해야 한다. 이는 두 지평사이에 여러 가지 다른 문화와 환경의 조건들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역사가가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그 당시 객관적 사건 내지는 사실을 해석한다면, 어느 정도는 편협적인 역사해석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신교회의 정체성에 금이 갈지라도 바르게 인식시켜야 한다. 당시에 미온적 신사참배 거부운동자들이어서 강경한 재건신앙운동자들과 함께 일할 수 없어서 분리하였다고 말이다.
우리는 서로 위대한(great concept) 역사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에 물량적 우위의 개념(big concept)으로 과거의 역사를 보고 있다면 현재의 교회 모습은 틀림없이 도덕적 해이와 부패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고 말 것이다. 부족하고 약한 교회를 제물로 삼는 일은 더 이상 없길 바라며, 좋은 믿음의 전통은 함께 이어나가고 부족함과 잘못들은 계속해서 개혁(재건=그 당시의 입장에서의 개혁의 개념)하는데 서로 도우며 나가야 할 것이다.
김영호 목사 (2004.07.20 08:43)
[출처] 최덕성교수의 소논문에 대한 반론|작성자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