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과 전망 1
2006.10.12 17:39 여행자(coeljh) http://cafe.naver.com/coelcc/74
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과 전망1
이글은 계간지 새길이야기 2003년 가을호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카나다와 미국의 이민사회의 구조와 특징이 상이한점은 있지만 이민교회라는 큰 맥락안에서 보면 우리에게 생각하게하는 점이 많을 것입니다.
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현실과 전망
한성수(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
돌아보며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이 가슴아픈 구절은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뉴욕한인교회가 1991년 12월에 발간한 70년 역사책의 이름이다. 1960년대 미국이 이민의 문호를 열기 전까지는 뉴욕 지역에 있었던 교회는〈뉴욕한인교회〉하나뿐이었기에, 그 서러움의 실타래를 허드슨 강물에 풀며 "강변에 앉아 울었던" 한인 기독교인들의 정서를 잘 나타낸 말이다. 시편 137편 1절,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는 현재 프린스톤 신학교의 이상현 교수가 1970년대 한인 이민의 신학을 말하면서 인용한 구절이기도하다.
한국 이민의 패러다임은 출애굽이 아니라 바빌론 포로의 경험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들에 설득력이 더 실린 이유도 고난의 경험 때문이다. 이민 초기 1903년 1월 13일 겔릭(Gaelic)호를 타고 인천항을 떠나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02명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든 혹은 사진결혼을 한 신부들이든, 점보제트기를 타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요즈음 이민자들이든, 일단 뼈아픈 눈물을 흘리는 상당한 세월의 세례를 받아야 비로소 스스로 이민자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못할 짓 하고 돈 싸들고 미국으로 도망쳐와 몸을 숨긴 채 골프장 신세나 지는 사람들일지라도, 눈물을 흘린 세월의 감회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경험을 하지 않은 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인 이민자로 보아줄 수 없다.
이민교회의 존재 근거는 바로 이 "강변에 앉아 우는" 가슴을 안고 찾아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많은 세월을 이역에서 살아온 지혜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여전히 뒤돌아볼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교회, 거기에 이민교회의 위상이 있다. 단순히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눈물만이 아니라 뼈 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이 자아내는 존재 위기의 눈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는 뉴욕 지역에서도 한 복판인 만하탄에 자리 잡은 까닭에, 비교적 이민 온지 오래된 사람들, 안정된 삶에 이른 사람들, 그리고 상당한 지식인들이면서도 무언가 상실감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러기에 유난히 조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강변에 앉아 우는 마음은 조국을 그리는 마음과 통한다.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 돌아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 애잔한 소망들이 합쳐진 복합심리를 띠고 있다.
뉴욕은 전 미국에서도 가장 인종 편견이 적고 이른바 "세계 도시인"으로 살아가는 국제 감각이 앞선 도시여서 우리 한국인들이 살아가기에 상대적으로 편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내 나라, 내 조국이 아니라는 느낌이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에 혼동을 더하는 것은 세월과는 관계없는 이민자들의 가슴에 스며 새겨진 한(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종 편견은 미국에서 살아온 300년의 역사를 등에 지고도 여전히 성난 항거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변함없는 거센 음조에 실려 있는데, 이제 겨우 한 세기도 채 안 되는 이민 역사에서 한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인종차별이 어찌 없겠는가? 교묘하게 위장된, 그래서 정확히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아픔은 배운 사람들일수록 견디기 힘든 자존심의 상처로 깊이 박힌다. 조국을 등지고 태평양을 건넌 사람들의 마음은 죄의식, 뻔뻔함, 원망, 오기, 희망에 부푼 기대 등 별의별 요소들이 뒤섞여 있겠지만, 이역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 일세들이 그 모든 상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의 목표로 지향하는 것, 그래서 가장 힘을 써서 삶의 중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아마도 자녀교육일 것이다. 그 바닥엔 자기가 받은 인종 편견에 대한 오기어린 복수심이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이 곧 바로 그들의 인생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부모로서 어떤 고생이나 모욕도 참으면서 마침내 자녀들을 백인 중산층 혹은 상류층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미국 동부의 명문이라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는 것은 그것으로 맺힌 한의 일부가 풀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입시철만 되면 교회 앞에 "대학입시를 위한 백일기도"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야단스럽게 극성을 떨지만, 미국에서도 새벽기도의 주요 제목은 자녀들의 명문대학 입학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집 자녀가 명문 대학에 입학하면 한국어 신문에서는 다투어 보도하지만, 교회에서는 일체 이런 일을 함부로 알리지도 못한다. 다른 부모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샘의 정도를 넘어 이민자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상이며, 사실 자신의 과거 모습에 대한 한풀이의 변형이기도 하다. 교회의 새벽기도가 사업의 성공, 식구들의 건강, 자녀들의 학업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 한국 교회의 신앙 행태가 여기서도 여전히 성행하는 현실이다. 실로 나와 내 가정 만에 몰두하는, 마치 여호수아가 여리고 침공하듯 하는 정신만 강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열린 가족, 예수 안에서 확대된 가족으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의 능력을 독점해서라도 나와 내 가족의 이익을 보증 받으려는 사유화의 욕망으로 내닫기 쉬운 현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사람됨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의 성공을 통하여 신앙의 수준이나 질적 내용이 검증 받는, 그리하여 실용주의적 가치의 기반으로 신앙이 전락한 것은 사실 한국에서부터 배우고 지녀온 유산이다. 아니, 미국에서 건너가 한국에서 증폭되어 다시 미국으로 넘어온 "수단으로서의 종교"이다. 거기에 오늘의 한국인들이 지닌 천박한 기독교 신앙의 특성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을 식별하기란 어렵지 않다. 나는 이런 점을 비교적 오래된 이민자들, 1970년대 이전에 미국에 온 사람들과 1970년대 이후에 이민 온 사람들의 신앙 행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에 한국에서 온 사람들일수록 교회에 열심을 내는 정도에 비하여 그 신앙은 주로 물질적, 가시적, 효용적 측면에 대한 확인에 조급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가난과 질병과 고난의 현장에서 익숙해진 하느님에 대한 의존적 태도야 굳이 나무랄 일이 아니라 해도, 사랑보다는 믿음의 힘을 강조하는 몰가치적 현실 종교, 아니, 미래의 영생까지도 현실에서 확인하고 안심하는 그런 조급한 욕망 성취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고난을 몸으로 입증한 역사는 극히 일부의 "기현상"일 뿐이고, 대부분은 세속적 욕망 성취를 쟁취하는 원동력을, 혹은 이미 누리는 자의 불안을 달래며 평안케 마사지(massage)하는 메시지(message)에 우리는 반세기 동안 젖어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국식 신앙의 격렬한에너지를 자랑삼아 이민 생활의 성공을 쟁취하려는 것이다.
1920∼30년대 미국 이민교회는 단순한 실향민이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이 자아 모멸에 이르도록 따돌림 당한 경험에서 치솟아 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금에 온 교인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한 눈물겨운 기록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 사진결혼 신부들이 모두 조국 광복과 독립의 투사들이요, 광복어머니회원들이 된 숙연한 역사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에 비하여 1970∼80년대의 한인 이민교회들 가운데 조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이나 사회정의의 깃발을 내건 곳은 전 미주를 통 털어도 가물에 콩 나듯 극소수였다. 눈앞에 굴러다니는 동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저 언덕 너머 동터오는 새벽의 기운에는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극히 소수의 기독인들이 〈목요기도회〉나 항의 데모에 나서면, 언제나 돌아온 것은 빨갱이 무리, 혹은 반정부 인사들, 아니면 누군가에 등을 기댄 정치꾼 정도로 폄하되기 예사였다. 지금은 북한 드나들기를 건넛방 가듯 하는 목사들도, 옛날엔 입을 모아 반공 구호에 핏대 세우며 선구자들을 온갖 험구로 비난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북미기독학자회〉가 해마다 북한의 조선기독교연맹 인사들을 초청했던 일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지만, 그때는 상당한 용기와 선견지명이 필요한 처사였기에 거기 참여했던 사람들은 돌아가 자기 교회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빨갱이 무리라는 엉뚱한 누명을 쓰는 난감한 입장에 처한 적이 많았다.
일반 교인들도 적어도 1990년대 이전에는 생존이 급해서라기보다는, 물질적 풍요의 땅에서 현실적 욕망을 잠재울 수 없는 다급함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교회도 고통당하는 이민자들을 위로한답시고 예수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위로와 격려에만 급급하다가 정작 버릇없는 교인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나라보다는 나의 문제가 급선무요, 동족들이 당할 멸시보다는 나의 은행구좌가 선결문제였기에, 어찌하든 돈만 벌면 되는 물신숭배의 정신이 기독교 복음의 내용으로 둔갑된 지난 40년을 되돌아보면 탄식을 금할 수 없다. 고생하는 이민자들에게 복음이라는 명분으로 어설픈 위로를 퍼붓고는, 그들의 땀의 결정인 막대한 헌금을 거두어들여 자체의 몸 불리기에 급급해 온 교회가 아닌지 이민교회들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어찌 이민자들을 위로하시고 복을 주시는 예수님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우리는 이민교회라는 게토를 이루고 그 안에서 상처를 서로 핥는 퇴행적 위안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한인 이민교회들은 먼저 자리 잡은 자들의 텃세에 눌려 이른바 미국 주류 사회의 현장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여백 지대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니 "변두리 신드롬"이라고 할 보상 심리가 교회 내에서 신자들로 하여금 "계급제도"에 유난히 민감하게 만들었다. 장로니 권사니 집사니 하는 일종의 종교계급이 횡포를 부리고, 미국 사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특권과 명예를 교회에서 사고 파는 보상제도가 지배하다 보니 교회마다 이 장로 제도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다. 온갖 천대를 감내하는 이민살이의 설움이 교회만 오면 졸지에 명예와 존경으로 둔갑하는 자리, 그것이 장로라는 자리다. 그러나 장로는 여전히 목사 아래라, 사는 형편이 좀 펴고 나면 그 흔한 이민 신학교 야간반이라도 졸업하고 어느 사이에 어제의 장로가 내일의 목사로 둔갑하는 일이 종종 생겨난다. 목사란 자리는 교회 내 신분 상승의 정점이 되었다.
예수의 혁명적 메시지는 다 어느 바위틈에 스며들어 지하수로 잠적했고, 바울의 십자가 신학이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면죄부로, 험로를 뚫고 복을 받는 축복의 징표로 홍수처럼 흐르는 현실이 이민교회 신학의 주류가 되었다. 십자가 보혈이 축복의 복덕방망이로 둔갑한 이런 교회가 과연 무슨 재주로 미국의 역사 속에 역동적인 정의의 목소리로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합류하는 날을 볼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탈역사, 탈정치, 탈문화, 탈사회적 보루에 나약한 이민자들을 폐쇄시키는 반동세력이 되고 말았다. 동포 사회에서 무슨 연합운동을 하려 해도 자기 교인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목사들의 밴댕이 소갈머리에 가려서, 목사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게 단속하는 통에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 여성들은 여전히 순종하고 조력하고 뒤에서 희생하고 그러면서도 목소리를 죽여야 하는 억압과 유교적 가치관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장소가 교회다. 남녀평등이 절대로 안 되는 교회가 한국 이민교회다. 도전적인 여성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도 이단으로 정죄받고 매도당하여, 뭔지도 모르면서 마귀의 신학으로 타도 대상이 된 것은 한국이나 이민교회나 마찬가지다. 목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학은 일체 이단이고 마귀고 죄악의 자식들이다. 여성은 교회를 돕는 존재들이지 교회가 도와야 할 존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이민 물결의 물길을 터놓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국제 결혼한 여성들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은 줄잡아 20만으로 추정되며 아직도 그 숫자는 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신음할 때 못난 나라의 고난을 어깨에 지고 역사의 칼을 맞아 온몸에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그들이다. 가난한 가정을 푼돈이라도 돕자고 고난의 행군을 한 사람들 가운데 국제 결혼한 여성들보다 더 신산한 과거를 지닌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미국에 정착하기가 바쁘게 친정 식구들을 가족 초청으로 줄줄이 이민 대열에 올린 사람들이었다. 초기에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음식, 취직알선 등으로 극성스럽게 도움을 주었지만, 그들이 학위를 따고 나면 철저히 관계를 외면당하였고, 교회를 개척한 후에 영주권을 따고 나면 어김없이 떠나간 철새들이 또한 목사들이었다.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열등한 목사라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빠르게 그녀들을 떠나는 것이 소망인 목사들에 의하여 버림 받았던 것이다. 가족들조차도 살 만큼 안정을 얻으면 놀랍게도 그녀들에게 출입금지령을 내리기가 일쑤라, 국제결혼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족들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미국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그들은 억척스러울 정도로 교회에 헌신하는 열성적인 기독교인들이 되어 지난 날의 상처와 한 맺힌 사연들을 접고 예수의 해방의 메시지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려는 사람들이다. 미국 이민교회들 가운데 국제결혼한 여성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교회가 과연 몇이나 되리요만, 그들은 교회 안에서도 차별을 받은 일이 부지기수며,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경제적 착취, 성적인 유혹과 학대를 받거나 악용된 예도 미국 전역에 널려 있을 정도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인교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소위 지도급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수 근본주의로 중무장하고, 예수의 빛나는 혁명적 메시지와 자유를 퇴행시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 야곱의 믿음을 강조하는 구약 중심의 신앙, 유대교적 율법주의로 변질시키고도 어찌 예수를 믿거나 따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민교회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사회 속에서 출세와 성공 지향의 욕망을 부추기는 반시대적, 반신앙적 메시지의 소굴이다. 다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많은 수의 교회가 그런 고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거대한 한인 이민교회들이 속속 그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우리는 그런 교회당 안에만 들어가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 없다. 이역만리에 세운 우리들의 헌신과 노력에 감격해서이고, 동시에 그런 교회당 벽돌 한 장, 유리창 한 장마다에 스며든 이민자들의 한 맺힌 땀방울 눈물방울을 눈물어린 시선이 아니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베드로 성당의 위용과 화려함에 눌려서 감탄만 하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먼 사람이다. 이민교회가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외로운 영혼들에게 가슴을 여는 대화의 장을 제공한 긍정적 측면을 어찌 무시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을 이용하여 타락의 길로 치닫는 부정적 측면이 압도적이라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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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한인교회도 어려운가봐요.
ewsn115566 2008.05.19 12:40
답변 3| 조회 538
2008년 모 기독교기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주한인교회의 주일예배 평균 출석성도는
‘50명 미만’(46.4%), ‘51명-100명’(27.7%), ‘101명-200명’(13.3%), ‘201명-500명’(7.2%) 등으로 나타났다. 또‘501명-1,000명’은 3%, 1001명 이상은 2.4%로 조사됐는데 이는 네 교회 중에 세 곳(74.1%)이 100명 이하의 성도가 출석하고 있는 것으로 ‘100명 이하’의 교회는 2001년 50.8%에서 2005년 63.6%로, 그리고 이번에는 74.1%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50명 미만이 출석하는 교회가 거의 과반에 달해 미주한인교회 상당수가 미자립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미주한인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이민생활의 외로움’(23.3%), ‘이민사회의 중추적 역할감당’ (18.8%), ‘기도에 열심’(16.6%), ‘모이기에 힘씀’(15.7%), ‘목회자의 리더십‘(10.2%), ‘교회개척에 열심’(9.3%) 순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미주한인교회 목회자들은 이민목회 사역의 가장 큰 어려운 점으로
‘목회자와 교인 간 갈등’(23%)을 꼽았다. 이어‘자체 교회당 없음’(18.4%), ‘교육 스텝진의 부족’(15%), ‘어려운 재정’(14.1%), 등으로 조사됐다.
질문>
미국한인교회가 꽤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쯧쯧쯧
1. 이처럼 미국한인교회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미국한인교회와 같은 교포 사회에 신경을 써는 것도 힘들텐데, 중동 선교니 뭐니 하여 문제 소지가 많은 것에
보다 신경을 쓰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