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교회 부흥 등 원인 분석 - 고신 기관지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고신] 교회 부흥 등 원인 분석 - 고신 기관지


말만 줄줄 널어 놓는다고 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신도 수요보다 넘치는 대량의 목회자를 공급하고 있는데 목사 급증을 비판하고, 고신도 외부에 자랑하려고 혈안이 되어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데 타 교단의 플래카드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고신의 내면 그리고 고민 그리고 양면과 그 모순에 끼어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를 재삼 재사 돌아 보았으면 합니다. - 관리자
==================================================================================






(요약)

.............................

(목사의 수가 급증)

옛날에는 거리를 지나다가 “사장님!” 하면 서로 돌아본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목사님!”하면 서로 돌아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사의 수가 급증하였다는 것이다. 개척을 하자니 옛날과 전혀 달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이민을 가자니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참 복음이 확산되고 있는 중국에 가서 사역지를 정하려 하니 신분문제가 걸린다. 진퇴양란으로 참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명자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기독교 정신의 빈곤)

어느 기독교 대학에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을 현수막에 새겨서 한 달 동안이나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대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자랑스러울지 모르지만 기독교 대학이라면 자랑의 기준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은밀한 사람들을 누가 알아 주겠는가? 한번쯤 생각해 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목회자 수상자)

대형교회 목회자이거나 아니면 도시에서 소위 말하는 큰 교회를 목회하는 자이다. 농어촌에서 목회하는 자는 아예 선택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으며, 소형 교회에서 목회하며 박봉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가난한 시골 목회자가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면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전도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사셨다면 아마도 똑 같은 대접을 받지 않았겠는가? 실은 대형교회의 목회자의 경우를 보면 같은 교단에서 같은 신학교육을 받았고, 같은 시절을 살았으며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보통의 목사들이다.

부흥하게 된 원인을 보면 이미 대형교회에 청빙을 받았거나 정치적인 수완이 좋았거나 예배당의 위치가 좋았거나 아니면 좋은 시절을 타고 났기 때문이지 남다른 헌신이나 위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면에 농어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 역시 좋은 목회철학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이라는 환경과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과 전혀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흥을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시 시골 두 목사의 실력을 테스트 하면 하나도 차등이 없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거나 수상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형 교회와 도시 교회 목회자만 알아주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서 이탈한 인본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전문)


거리의 목회

[기독교보 2007-04-06 11:19:17]조회 : 584


목사가 되었지만 사역지가 없는 5만 명의 목사들과 복음 전하기로 결심한 전도사들이 힘을 합하여 노숙인과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사회의 극빈층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구제사역을 감당하기로 한 운동이 지난 4월 2일 오후 2시 백주년 기념관 소강당에서 기독교 사회책임 운동본부 주관으로 첫 테이프를 끊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들을 돌보아 줄 선한 사마리아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 거리로 나서 강도 만난 자들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결심한 아름다운 헌신자들을 격려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자랑스럽기도 하다.


한국에 5만여 교회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신학교를 통하여 배출된 사역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그나마도 외국으로 파송된 선교사나 이민으로 출국한 목사가 제외됨으로 말미암아 임지가 없는 목사의 숫자가 줄어 든 것이다.



한 해에 정규 신학교를 통하여 1천여 명의 신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거리를 지나다가 “사장님!” 하면 서로 돌아본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목사님!”하면 서로 돌아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목사의 수가 급증하였다는 것이다.



개척을 하자니 옛날과 전혀 달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고, 이민을 가자니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참 복음이 확산되고 있는 중국에 가서 사역지를 정하려 하니 신분문제가 걸린다.



진퇴양란으로 참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명자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소외계층, 빈민계층, 퇴출이나 퇴임한 계층,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계층, 음란 문화의 노예 계층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일이 아직도 산적하다.



거리 목회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는 못하지만, 외국은 오래전에 구성되어 해수욕장 목회, 유흥지 목회, 콘도미니엄 목회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



늦었지만 한국에도 파라처치(Para-Church-교회가 못하는 일을 도우는 기관)가 생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성교회는 이런 사명자들을 격려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정신의 빈곤


어느 기독교 대학에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을 현수막에 새겨서 한 달 동안이나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대학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자랑스러울지 모르지만 기독교 대학이라면 자랑의 기준이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은밀한 사람들을 누가 알아 주겠는가? 한번쯤 생각해 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목회자 수상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이거나 아니면 도시에서 소위 말하는 큰 교회를 목회하는 자이다.



농어촌에서 목회하는 자는 아예 선택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으며, 소형 교회에서 목회하며 박봉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가난한 시골 목회자가 천대와 멸시를 받는다면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전도된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사셨다면 아마도 똑 같은 대접을 받지 않았겠는가? 실은 대형교회의 목회자의 경우를 보면 같은 교단에서 같은 신학교육을 받았고, 같은 시절을 살았으며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보통의 목사들이다.


부흥하게 된 원인을 보면 이미 대형교회에 청빙을 받았거나 정치적인 수완이 좋았거나 예배당의 위치가 좋았거나 아니면 좋은 시절을 타고 났기 때문이지 남다른 헌신이나 위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면에 농어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 역시 좋은 목회철학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이라는 환경과 도시로 이주하는 경향과 전혀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부흥을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도시 시골 두 목사의 실력을 테스트 하면 하나도 차등이 없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거나 수상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형 교회와 도시 교회 목회자만 알아주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서 이탈한 인본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탈북자, 소외 자, 빈민 자, 갇힌 자, 병든 자, 농어촌에서 수고하는 목회자와 기독교 대학, 기독교의 각종 기관, 성서공회, 찬송가공회 총망라하여 앞세우는 기독교의 정신이 두드러지게 표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