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이 병규 '중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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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이 병규 '중생론'


출간 : 염광 출판사
저자 : 이 병규 목사님
발간 : 1990 년 12 월 1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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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론

一, 중생의 정의

1. 중생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요,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의 찰나적 변동이요, 영적 부활이요, 신생명(新生命)의 시작이다. 곧 죄로 죽은 영이 산적 행위에 의해서 영적 신생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2. 중생과 성화(聖化)는 구분해야 한다.
중생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요, 순간적으로 되는 것이다. 성화는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일생 동안 되는 것이다. 중생은 성화의 역사가 아니며 영의 질적 변화도 아니다. 또한 중생은 영의 어느 부분만의 변동이 아니요 전(全) 영이 살아난 것이다.


二, 중생의 필요성

1. 아담의 자손은 다 죽은 영으로 나기 때문에 다시 사는 것이 필연적이다(눅 9:50; 요5:25; 엡2:1).

2.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하늘 나라를 볼 수 있고(요3:3)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요3:5).

3.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며 순종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요3:3; 5:17; 고전2:14; 갈6:15).
그러나 인간의 영이 허물과 죄로 죽어서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므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중생하는 것이 필요하다.


三, 중생의 요소

1. 요한복음 3:5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였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엡5:26).
㉠ 중생은 말씀의 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약1:18; 벧전1:23).
㉡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의 씨다(눅8:11).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다.

2. 성령의 역사로 되어진다.
㉠ 성령의 특별 공작으로 중생한다.
㉡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시고 죽었던 영을 살려 놓는다(겔11:19; 요1:13; 3:5; 행16:14; 롬9:16).
㉢ 성령의 단독적 역사로 중생하고 사람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四, 중생의 본질

1. 중생은 즉각적 변화이다.
㉠ 생(生)과 사(死)의 사이에 중간 계단이 없음과 같다.
㉡ 순간적으로 되어진다.
사(死)에서 생(生)에 이르는 시간은 순간적 혹은 찰나적이다.

2. 중생은 근본적 변화이다.
㉠ 전(全) 영이 사(死)에서 생(生)으로 변동된 것이다.
㉡ 지(知)? 정(情)? 의(意), 전인격(全人格)이 변화된 것이다.

3. 중생은 잠재의식적 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 인간에게 지각(知覺)되지 않고 하나님의 단독적인 역사로마 된다. 하나님은 중생의 창시자이시다.
㉡ 회심과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도 있다.


五, 중생의 증거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이다.
요한일서 5:1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 “난 자”는 중생한 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로 믿어지는 자가 전부 중생한 자이다. 그 이유는 죽은 자는 자기를 구원한 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 예수님게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택한 백성인 증거요, 중생한 증거다.


六. 중생의 결과

1. 중생한 영은 죽지 않는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 썩지 아니할 씨요 항상 살아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한번 거듭난 영은 다시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 중생한 영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참 포도나무 되는 예수님께 접붙임을 받았다(요 15:1-8). 그러므로 중생은 일생에 한번만 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는다. 중생한 자는 벌써 영생을 얻어 놓은 것이요(요 5:24). 중생한 생명은 다시 상실되지 않는다(요 10:28; 11:26; 6:37,39). 예수 믿는 자는 중생한 영이 살아 있으므로 절대 지옥가지 않고 다 천국에 들어간다(요 10:28; 5:24; 벧전 1:23; 요一 5:13).

2. 중생한 영은 자라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5:13-14에는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다. 또 베드로전서 2:2에는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 중생한 영이 자란다는 뜻.
물체가 자라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 속성들이 자라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실과 거룩과(엡 4:24), 지식과(골 2:10), 지혜(고전 1:30)와 선과 사랑, 능력이 점점 자라난다는 것이다(롬 13:14).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아가며 자라나야 한다(갈 4:19). 성도가 죽을 때는 그 영이 자란대로 하늘 나라에 간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마 5:19). 소요리 문답 제37문답에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고”라고 한 것은 성도가 죽을 때에 부패성과 세상 죄와 싸우는 것을 다 벗어버리고 영이 자라난 대로 하나님의 영광 중에 들어 갈 것을 가리켰을 것이다. 사도 바울 같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고 달려갈 길을 다 간 성도와 일생동안 죄만 짓다가 죽을 때 회개하고 천국 간 사람과 같다고 하면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전 3:1-7; 엡 4:13-15; 딤후 4:7-8; 요一 3:2-3; 계 2:17,27; 3:18)

3.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 항상 살아 있고 죽지 않는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
누가복음 8:11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1:23에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의 씨로 된 영이 어떻게 범죄하겠는가?
요한一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중생한 영을 가리키는데 그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상습적으로 범죄치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실수하여 범한 죄도 죄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윗이 실수하여 우리아의 처와 한번 간음했고 우리아 한 사람을 죽인 것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일과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일은 상습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죄로 인정했다.
중생한 성도(중생한 영이 아님)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의 주장도 잘못이다.
중생한 성도에게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이 있다. 성도가 그 새 사람(중생한 영)으로 살 때는 의를 행하고 옛 사람으로 살 때는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중생한 성도에게는 새 사람과 옛 사람의 싸움이 있다(롬 7:15-23). 박윤선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자의 인격은 성경 말씀대로 보아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곧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 그리스도의 신자라도 혹시 불행히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요소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성경주석 히브리서·공동서신 p.357) 그러므로 거듭난 새 생명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
㉡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의 소행이다.
성경에 옛 사람을 육체의 욕심,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 몸의 행실이라고 했다(막 7:21-22; 롬 8:13; 갈 5:16-17, 19-21; 엡 4:22; 벧전 2:11_.
㉢ 옛 사람은 중생한 영(새 사람)과 늘 싸우고 있다(롬 7:18-25)
베드로전서 2:11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싹스)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다.
㉣ 육체의 원어 (싸스)에 대한 해석 문제 (마 19:5; 요 1:15; 6:53, 55; 골 2:5; 히 12:9)
(싹스)는 죄가 아니고 단순히 육체를 가리킨다. (싹스)가 부패성이라는 해석이 있는데 이 해석대로 하면 예수님이 부패성으로 난 결과가 된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다. 이 육신의 원어가 (싹스)이다. 예수님의 몸이 (싹스)로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고(요 6:55; 롬 1:3; 9:5), 예수님 부활 후에도 그 몸을 (싹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4:39에 “내손과 발을 ····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였다.
로마서 7:20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다.
㉤ 중생할 때 영 전체가 살았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다.
로마서 8:23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다. 몸의 구속이란 성도의 영은 살아 있으나 몸은 아직 죄 하(下)에 있기 때문에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력하여 몸을 죄의 권세에서 건져내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을 중생시킬 때에 일부분만 살렸을 리가 없다. 성도의 영이 만일 일부분만 살고 일부분은 죽어 있다고 하면 성도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영은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니다. 성도의 영은 한 인격체인데 어떻게 두 부분으로 나누겠는가? 성도의 영이 일부(一部)라도 죽어 있다고 말한 성경은 한 곳에도 없다.
에베소서 2:1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였다. 또 요한복음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2:6에 중생한 성도의 영은 하늘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성도의 영이 일부분만 살았고 다른 부분이 죽어 있다고 하면 그 죽은 것이 어떻게 하늘에 앉을 수가 있겠는가?
만일 성도의 영이 일부분이 죽어 있으면 어떻게 성전이 되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실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성경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의 중생한 영은 영 전체가 다 살아난 것이요 그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거하신다.
㉥ 성도가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지는 문제
성도는 “나(我)” 전체 속에 옛 사람(육체의 욕심)과 새 사람(중생한 영)이 있다. 내(我)가 새 사람을 따라 살 때에는 의를 행하고 옛 사람을 따라 살 때에는 죄를 짓는다. 그러나 옛 사람이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같이 탄식하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입어 나가며 구원(성화)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롬 8:2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