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칼빈주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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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칼빈주의연구원


[신학단체 대표에게 듣는다] “칼빈 제대로 알 때 신앙정체성 확고”
⑤ 한국칼빈주의연구원 정성구 목사

2008년 09월 11일 (목) 11:02:15 노충헌 mission@kidok.com


방대한 자료 확보로 연구기틀 마련…내년 칼빈대와 공동 대축제



총신대학교 총장, 대신대 총장과 신대원장 등을 역임한 정성구 목사가 공직에서 퇴임하고 그의 학문적 보금자리인 경기도 분당 한국칼빈주의연구원으로 돌아왔다. 칼빈주의 연구의 선구자요 대가인 정 목사에게 칼빈과 연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편집자 주〉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은 어떤 곳인가.
=칼빈주의연구원은 종교개혁자 요한 칼빈과 그 후학들이 이룩한 칼빈주의사상을 연구 발전시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공헌하기 위해 1984년 창립한 순수한 학문연구 기관이다. 현재 미국의 헨리미터 센터와 남아공의 칼빈연구원과 더불어 세계 3대 칼빈주의 연구원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또 칼빈, 커버넌트,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캄펜신대 등과 더불어 국제기독교고등교육협의회(IAPCHE)의 정회원 등재되어 있는 세계적인 기관이다. 연구원에서는 일정한 과정, 즉 10번의 훈련프로그램을 마치고 논문 제출과 구술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디플로마학위도 수여한다.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은 서적과 필름, 시디 등 1만 여종이 넘는다. 지금까지 전 세계 칼빈학자 300여명이 방문했고 전 세계 석학 강의, 그리고 아시아 각국 학자들이 방문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칼빈주의 연구원 소장 자료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연구원 지하 1층에 마련된 칼빈박물관에 있는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16세기에 인쇄된 초대 교부들의 원전(폴리갑에서 어거스틴)들이 있다. 이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 교부들의 글들을 최초로 활자화한 것들이다. 보는 사람들마다 “진짜냐?”고 수없이 묻는데 진본이다. 이 자료들을 숙지한다면 교부신학을 심도 깊게 연구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16~19세기의 희귀 칼빈자료들, 칼빈 및 칼빈주의 사상 자료책 3000여권, 논문 3000여권, 칼빈주의 신학자 및 사상가의 강연녹음 테이프 2000여종, 종교개혁 시대의 각종 자료와 마이크로필름, 한국교회사료 3000여종 등 1만 여종에 이른다.

▲소장한 자료가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칼빈 연구를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자료라는 점을 재차 말하고 싶다. 또 1차 자료를 확보하고 연구하는 것은 학문연구의 기본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원전을 찾기 보다는 영어 자료와 최신 글들을 많이 의존하지 않는지 생각한다. 원전을 찾고 또 해당 분야의 서적과 논문들을 시간을 가지고 탐구해야 한다.

박물관에는 칼빈을 그린 초상화들이 70여종이 있다. 그런데 그림을 어느 나라에서 그렸느냐에 따라 칼빈의 인상은 달라진다. 심지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오늘날 많이 볼 수 있는 날카롭고 마른 얼굴은 제네바에서 그린 것들이다. 그러나 화란 독일 등에서 그린 그림들은 살이 찌고 후덕한 인상을 보이고 있다. 흥미 있기도 한 이런 차이점은 다양한 자료를 충분히 검토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아니겠나?

▲왜 칼빈은 연구하는가.
=내가 칼빈의 위대함을 높이고 예찬하기 위해 40년 동안 이렇게 글을 쓰고 자료를 수집한 것이 아니다. 칼빈은 세상에서 가장 병약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기관지 천식, 신경통, 위장병, 각종 합병증에 시달렸다. 결혼 후 아들과 아내가 차례로 죽은 뒤 홀로 평생을 살았던 불행한 가정사의 소유자다. 그러나 신구약 66권을 거의 주석했고 거의 강해했고 불멸의 명작인 〈기독교강요〉를 27세에 집필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했고 남은 설교만 2050개다. 내가 칼빈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렇게 연약한 자를 들어 쓰신 하나님이 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해서이다. 칼빈을 높이려는 속셈이 아니다. 그게 내 본심이다.

성도라면 어떤 직업, 어떤 영역에 있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해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업 속에서 펼쳐야 한다는 사상을 가르쳤다. 칼빈의 사상은 신학생만 아니라 모두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종교다원주의가 성행하고 일부에서는 서양의 최신 부흥운동의 흐름을 좇기에 급급하다. 칼빈을 제대로 알 때 우리 개신교 신앙의 정체성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다.

▲칼빈탄생 500주년 관련해서 준비하는 것은.
=내년 500주년을 맞아 칼빈대학교와 연합으로 해외석학 초청, 전시회, 그리고 300여명의 교수 목사 평신도를 초청한 칼빈 대축제를 벌일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감사하게도 대신대 총장과 신대원장으로 6년 사역하고 이제 퇴임했다. 그리고 짐을 싸서 분당으로 왔다. 그런데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접한 칼빈대학이 나를 석좌교수로 발탁했다고 했다. 강의나 보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감사히 여기고 협력할 것이다. 금년이 목사 된지 40년이다. 그동안 30권짜리 전집을 비롯하여 50여권의 책을 내고 수많은 설교와 집회를 인도했다. 이제 칼빈주의연구원 활동에 더 힘쓸 것이며,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가서 강의나 설교를 할 것이다. 나는 프리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