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김현봉 목사 (좁은 길로 간 사람들 중에서, 엄두석 엮음)
- 목차 -
* 서론
* 주변 이야기들
* 그의 교훈들
* 성생활에 관하여
* 그의 주장들
* 그의 생활에 관하여
* 결혼에 관하여
* 장례에 관하여
* 물질에 관하여
* 예배에 관하여
* 여전도사와 심방
* 그의 책망과 사랑
* 그의 일과에 관하여
* 마지막 사경회
* 그의 죽음과 후배들
* 제 2의 김현봉 목사들
김현봉 목사하면, 얼른 머리에 연상되는 것은 강단에서 파리채 들고 설교하면서 파리잡는 목사를 생각케 된다.
그만치 그는 모든 면에 있어 기인이었다. 작은 키에 땅땅한 몸에, 언제나 검정 무명 두루마기에 고무신 신고 다니고, 머리는 중처럼 빡빡 삭발하고 다녀 별명이 "중목사"였다.
한국교회 인물사에 있어 그런 신기한 인물도 전무후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와 영향력을 끼쳤다.
내가 김현봉 목사를 본 인상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의 나이 80고령에 그로서는 마지막 집회였을 서울 관악산 벧엘기도원에서 여름 집회를 열었을 때의 일이다.
좁은 장소에 자기 교회 교인들이 빈틈없이 꽉 차고, 그를 따라 다니는 목사들도 많았고, 자리가 좁아서 일부는 문을 열어 놓고 마당에까지 앉아서 설교를 듣는다. 언제나 두 시간 세 시간씩 끄는 그의 긴 설교를 지리한 줄 모르고 듣고 있었다.
모인 군중의 모습은 나쁜 말로 거지떼들 모양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머리를 삭발했고 여자들은 파마 머리를 한 이라곤 한 사람도 없고, 검정 무명 치마 저고리에 보따리 안고 있는 모양이 어느 피난민 수용소 같았다.
그때 김목사는 긴 시간 서서 설교하다가 지쳤든지 강대상 성탑 위에 올라가 앉아서 강의를 하였다. 그런 광경은 생전 처음보는 터이라 모두 의아한 느낌에 젖었는데, 이를 보다 못해 이병구 목사가 큰 소리로 "김 목사님! 그렇게 하시면 교인들이 시험 받습니다." 하고 소리질렀다.
당차고 뱃장이 두둑한 김 목사가 그랬다고 순순히 내려 올리가 없었다. 도리어 자기 편에서 기분이 좀 언짢은 눈치였다. 성탑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제단이오? 제단이라면 나는 내려가겠오. 이것은 설교하는데 편리하기 위하여 만든 책상에 지나지 않소. 나처럼 나이 늙은 사람이 설교하다 지쳐 잠깐 이 위에 올라앉아 설교했다기로 시험될 것이 뭐요?"
그 기세에 눌려 사람들은 다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필자는 김현봉 목사를 따라 다닌 사람은 아니지만, 내 목회생활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어른의 생각이 났고,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분의 목회방법을 본받아 보려고 경솔하게 덤비다가 실패도 했다. 그 어른은 필자가 사숙한 필자의 위대한 스승이다.
김현봉 목사가 가장 많이 강조한 교훈은 "자기를 만들어 가라."는 것이다. "자기를 만들어야 남을 지도해 낸다."고 거듭 가르쳤다.
그는 목사라기보다 하나의 도인이었다. 김 목사의 목회와 설교 방법은 마치 어린애 기르는 어머니가 굳은 음식물을 자기 입에 넣어 충분히 씹은 후에 아기 입에 넣어주듯 하였다.
그의 설교는 처음엔 무슨 목적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나 의심나기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좁혀 가다가 마지막에 "노다지" 같은 정신을 교인들 귀에 쑥 넣어 주었다. 그래서 그를 따라 다니는 젊은 목사들끼리 주고 받은 은어는 "오늘 노다지가 있었나?"하는 것이었다.
누가 찾아와서 젊은 제자나 교인들 중에 누구의 비행을 이야기하면, 침통한 표정으로 "아깝지! 되다 말았지!"했다. 김 목사는 이 소리를 참 많이 했다. 안길옹 목사가 미국 가려고 여권까지 다 얻어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역시 "아깝지, 되다 말았지!"하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