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4. 그의 죽음과 후배들
생전에 김현봉 목사는 자기 건강에 지나친 자신을 가졌었다. 어느 좌석에서 자기는 120세까지는 살 수 있다고 농삼아 장담한 적이 있었다.
그런고로 그는 아마 자기가 그렇게 빨리 세상 떠나리라 짐작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이 80세가 됐어도 자기 후계자를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가 뜻밖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교회 뒷수습이 혼란해지고 말았다.
평생 심혈을 다해서 애써 그렇게 특별한 교회로 길러 놓은 아현교회는 사실상 4분 5열이 되고 말았다. 세상 떠날 때가 가까와졌을 때 김목사는 자기 정신을 바로 이해하는 이가 없는 일과 교회 앞날을 염려하여 탄식하면서 "하나님, 나를 불러 가옵소서."하며 기도하신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후배를 기르는 일에 무척 애썼다. 그의 감화를 받고 그를 따른 이는 많았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신학교를 졸업한 K씨는 처음 김현봉 목사를 만나 봤을 때 키는 작은 몸에 검은색 한복 입고 삭발한 그 모양이 중 같기도 하고 몇 세기 옛날 늙은이 같은 인상이었으나 그 설교를 들어 본 후 다른 교회는 못 다니고 김목사의 충실한 제자가 되고 말았다.
B 목사는 부산서 교회봉사 하면서 김현봉 목사께 서울 가고 싶다고 하니 "본 교회 목사가 서운해 할걸..." 한 마디 하시더니, 얼마 후 편지 오기를 "오구 싶으면 올 것이지..." 한마디 써 보내왔다. 서울에 상경하니 김목사는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 없었다.
벌써 방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대학원 다니는 것도 다 집어 치우고 김목사를 따랐다.
김목사의 정신이 특별했기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목사들도 많았고 김목사는 젊은 목사들이나 청년들을 일꾼으로 기르기 위해 자신의 온갖 정력을 다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 중 다수가 자기 고집대로 하고, 김목사 정신을 바로 안 배우고, 바로 안 따르니 김목사는 실망 속에 그런 기도를 한 것이라 본다.
이 말은 김현봉 목사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이의 증언이다. 김목사는 임종하기 얼마 전에도 "하나님께서 자꾸 나를 징계하시는데 이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시험) 될런지?..."하며 걱정하였다 한다.
평소에 김현봉 목사는 이기주의로 예수 믿는 것은 죄악이라고 강조했다. 자기를 위해 믿지 말고 남을 위해 믿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어느 교회가 분규가 있을 때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말로도 행동으로도 대항치 말라고 명했다. 교역자가 아무리 나빠도 그를 내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교인들이 할 일은 못된다고 교인들을 훈련시켰다.
김목사가 살아있는 동안은 제자들이나 교인들은 목사님을 신 같이 여기고 그의 말은 신의 말씀같이 여겨 절대 순종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 김현봉 목사는 지혜있고 엄격한 분이었다. 김목사 스스로가 자기를 그렇게 우상화 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한 번 김현봉 목사가 세상 떠나자, 즉시 교회는 분열하고야 말았다. 그가 평생 애써 가꾸어 놓은 교회는 네 조각으로 갈리고 말았다.
먼저 600명이나 이OO 목사를 따라 나가 버리고, 남은 교인들이 또 안OO 목사, 이OO 목사 등으로 몇 번이나 갈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