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9. 예배에 관하여
예배드리는 형식도 전혀 달랐다.
김현봉 목사의 아현교회 예배는 주일 오전 예배는 3시간이나 길게 드렸다. 80고령에도 부목사나 전도사도 두지 않고, 원고도 없이 하는 설교를 좌담식으로 하는데, 설교가 그렇게 길었다.
예배 드리다가 중도에 30분 쉬었다가 다시 계속하기도 했다. 오전 예배 본 후 점심은 교회에서 대접했는데, 간단한 밀국수를 모두 먹었다. 그것은 주로 김목사 부인의 봉사로 이루어졌다.
주일날은 엄격하게 지켜서 국민학교 학생들이 주일날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도 가지 못하게 했다.
김현봉 목사는 자기 강단에 다른 목사를 세워 설교시키는 일이 없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던지, 자기가 부흥회를 인도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해마다 여름에 관악산 벧엘 기도원에서 자기 교인들을 총동원시켜 특별 사경회할 때도 그가 세상 떠나기 바로 전 해까지 자기가 혼자서 맡아 했다.
김목사의 설교는 제목 설교는 없었다. 대지 소지로 조직해서 하는 일도 없었다. 언제나 성경 본문을 가지고 해석하면서 차근차근 아이들 훈계하듯 해 내려가면서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는 이가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즉답하기 보다 좀더 생각해 보고 대답하겠다고 했다.
그가 사용하는 성경주석은 중국판의 한문주석만 썼다.
설교해 가면서 강단 위에서 파리채를 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파리를 잡으며 했는데, 그것은 조금도 일부러 꾸며하는 제스쳐가 아니요, 마치 자기 집안 식구들을 앞에 놓고 앉아 가장으로서 차근차근 일러주고 또 일러주려 하듯 한 모양이었다.
설교 도중에 울음이 나와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그럴때면 교인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분명 이 나라의 선지자의 한 사람이었다.
모든 형식을 무시하는 김목사는 위에서 말한 대로 설교를 하다가 너무 지치면 강대상 위에 올라가 앉아서 계속 설교했다.
그에게는 예배당 건물이 신성하다는 관념은 없었다. 김목사는 집회 인도나 설교하는 때가 산에서 혼자 기도하는 때에 비해서 자기 영감이 가장 메마르고 피곤을 느끼는 때라고 술회한 일이 있다.
김현봉 목사가 목회한 아현교회는 한창 부흥하던 시절은 교인 수가 1200명이나 되었는데, 전체 교인의 80퍼센트가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교회재정은 풍부했다.
십일조 바치는 이들 중의 최고 액수를 내는 이는 김목사 부인의 이름으로 내는 것이었다. 김목사는, 연보하는 방법은 목사가 친히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보 광고는 목사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르치지 않으면 신자들이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십일조를 바침으로 축복받는 법을 목사가 친히 가르쳐야 한다. 연보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일은 귀하다."고 김목사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십일조 바치는 방법을 설명하기를, 가령 누가 만원 수입했다면, 그중 10분 1인 천원을 떼어 그 중의 5백원은 봉투에 넣어 "사례금"이라 써서 사례금 함에 넣는다. 남은 5백원으로 가족들이 분배하여 주일 연보를 하도록 했고, 가령 십일조 속에서 다른 감사할 일의 감사연보라든가 구제금을 떼내는 일은 부당하다고 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정신을 강조시켰다. "사례금"이란 것은 목사께 드리는 생활비 연보이니 사례금 함에 따로 넣게 했다.
목사가 사례금 받는 것은 교인들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한 삯을 주시는 것이다. 교인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고, 목사는 하나님께 받는 것이다 라고 했다.
김목사는 받은 사례금을 가지고 다시 양심껏 하나님께 바치고 유익된 일에만 썼다.
목사들이 연보 광고 할 때면 괜히 미안해서 "죄송합니다만...연보를 잘 바치라." 운운 하는데, 연보는 누구에게 내는 것인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운운 하는 말 속에는 "내가 먹으니 죄송합니다."라는 뜻이 내포된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