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8. 물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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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8. 물질에 관하여


돈 문제에 대하여 어떤 이는 "돈을 보기를 돌멩이 보듯 하라." 가르친 이도 있고, 성 프란치스코는 어떤 기부도 거절하니 누가 돈주머니를 억지로 그의 수도원 창문 안으로 던져 넣은 일이 있었는데, 그는 놀라서 다시 밖으로 내던져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현필 선생같은 이는 일생 손에 돈을 만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김현봉 목사의 입장은 달랐다. 그의 주장은 참된 목자는 돈이 아무리 생긴다 해도 하나님 뜻에 합치하게 쓰는 것이라면서 교회는 교역자에게 돈(물질)을 드릴 수 있는 데까지 풍부히 드려야 한다고 했다.
김현봉 목사는 교회 회계 관리를 자기가 직접 맡아서 했다. 한동안 교회 재정을 회계 집사에게 맡겨 보았으나, 김목사의 눈에 그의 재정 처리가 어딘가 거슬려 보이고, 교회 일 해나가는데 지장이 많아서 사실 김목사의 재정처리가 능숙하고 민첩하여 집사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집사는 회계를 목사께 가지고 와서 "목사님, 맡아주십시오."해서 두말 없이 맡았다.
아현교인 중에 이 일에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괜히 외부의 사람들이 "독재 독재"했다.
교인들은 김목사의 인격을 절대 신뢰했기 때문에, 또는 김목사는 고기도 안 먹고, 자녀 한 사람도 없는 분이기 때문에, 교인 중 여유가 있어 돈을 유용하게 쓰려는 이는 김목사라야 돈을 쓸데 바로 쓴다고 그에게 돈 써 달라고 가져다 맡기는 이들도 많았다.
아현교인들은, 목사님께 돈이 들어가도 사사로이 쓰는 것이 없다는 점을 전교인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김목사는 그 돈 가지고 가난한 교인들이 거처할 허술한 집들을 수십 채나 사서 교인들이 살게 했다. 바른 일 하고 있으니 목사께 수십만원 돈이 들어가도 의심도 않았다.
그의 거실 벽장 속에는 돈뭉치들이 은행 금고같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김목사의 한복 조끼나 저고리 안쪽은 돌아가면서 전부 주머니로 되어 있었다. 저고리 안주머니에는 언제나 30만원 정도의 거액의 돈이 들어있었다.
누가 와서 도움을 청하면 그가 신임 할만한 사람인 경우 김목사는 저고리 안주머니에 자기 손을 넣어 짐작으로 손에 잡히는대로 꺼내 주었다. 그런 경우 돈을 세는 일이 없었다.
교인들이 계를 하는 일은 내용적으로 이자놀이니 하지 못하게 했다. 계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그런 것 하고 있으면 마음이 신앙에서 떠나는 것이라 하여 김목사는 개인의 이자놀이를 금지했다.
성경에서 에스겔 18:13 "변(利子)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정녕 죽을지라"라는 귀절을 인용하여 엄히 금했다.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거액의 자본을 얻어 쓰는 일은 그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더 돈 벌기 위한 것인데, 이런 경우 사업하는 이들이 이자돈 꿔쓰는 일에 대해서는 김목사가 명확한 의견을 말한 것은 없으나, 예배당 짓는 일에 이자돈 얻어서 짓지는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이자 주기도 하고 쓰기도 했으나, 후에 깨닫고는 중지했다. 그러나 은행 이자는 성경에서도 허락되는 줄 알고 받아도 가한 줄 알았다(신 23:19, 15:1-3, 출 22:25).
안모 목사가 김현봉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고 큰 교회를 사면하고 김목사의 아현교회 같은 교회를 해보려고 새로 교회를 개척할 때 돈이 없어서 김목사에게 부탁하니 그때 돈으로 3천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목사가 돈받으러 오라는 날에 정한 시간보다 5분 늦게 갔다. 김현봉 목사는 오후 5시면 취침하여 밤 12시에 기상하는 것이 그의 일과의 철칙인데, 5시 5분에 가니 벌써 자리에 들어 누우시고 사모님이 대신 나왔다.
개척하는 교회일 손수하다가 늦었다고 사과하며 사모님께 전달하니 들어오라고 해서 주무시는 거실에 안내됐다. 옷을 다 벗고 주무시다가 일어나 안목사 보고 앉으라면서 벽장문을 여는데, 드려다 보니 벽장 속에 돈뭉테기가 수두룩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 헐어쓰던 돈다발에서 5천원을 세어 주었다.
그후 사택방을 짓다가 또 돈 구걸을 갔더니, "얼마드는가?" "만원입니다." "그럼 주지!"하고 척 내 주었다.
김현봉 목사가 언제나 강조하고 몸소 주력한 것은, "똑바른 교훈" "구제하는 일에 위주하는 것" "복음 전도 돈을 쓰는 일"이었다. 그가 다루는 많은 돈은 특히 구제와 전도에만 많이 썼다.
가난한 교인이 있으면 자금을 대어 주어 고무신 장사, 소금 장사, 생선 장사를 시켰고, 염리동 일대의 값싼 판자집이 나면 사서 집 없는 교인들에게 거져 주어 살게 하다가도, 저희들끼리 싸움하는 경우는 내쫓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