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6. 결혼에 관하여
결혼하는 청년에게는 새 양복을 입지 못하게 하고 보통 입던 평상복을 입고 식을 올리도록 하든지, 아니면 광목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 차림으로 하게 했고, 약혼식은 폐지시켰다.
김목사 정신을 따라서 처녀 총각이 처음 선 볼 때 서로 물어보는 것은, "거듭났습니까?"였다고 한다.
결혼식 때는 청첩장도 조촐히 몇사람이 모인 중에서 신부측 담임목사께 알려 남자 손님 단 2명만 오게 하고 도합 20명도 못되게 모이게 하고는 김목사는 기도실에서 기도하다가 나와서 결혼하는 남녀를 앞에 앉혀놓고 위해 기도해주고는 "잘 살아라."는 한 마디로 끝냈다.
너울이고 드레스고 그런건 절대 못쓴다. 다만, 신부에게 옷 두 벌만 허락했다. 결혼 시간은 정각에 시작하고 5분 전에 도착하여 간단히 끝낸다. 결혼식 마치고 집에 가기까지 전체 30분 이내였다.
한번은 당신 본 교회에서 사경회를 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인데, 오후 1시경이었다. 어느 제자 목사가 보니 김현봉 목사가 강대 곁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앞에 젊은 남녀가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김목사가 그 남녀보고 뭣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결혼식을 하는 중이었다.
사경회 도중에 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처녀는 어느 목사의 여동생인데, 국민학교 교사였다. 신랑 신부 옷차림은 보통 때 입는 옷 그대로다. 드레스고 너울이고는 어디라고 감히 입고 나올 것인가.
"신랑 신부가 있으면 결혼식하는 것이지 돈 있어야 하나?" 김목사는 그렇게 주장했다. 극히 간단한 식을 마치고 나서는 신랑 신부보고 "가시오. 가서 믿음 잘 지키시오!" 했다. 신혼 여행이고, 택시 드라이브고 어림도 없다. 김현봉 목사 식으로만 살면 사람 사는데 돈 몇푼 안든다.
또 한번의 결혼식 때는 신부가 지방에서 올라와 김목사 주례를 받게 됐다. 그런데 오후 3시 반으로 정했는데 기차가 연착하여 신부가 늦게야 도착했다. 김현봉 목사 사행활의 일과는 오후 5시면 취침하는 습관인데, 김목사는 신부를 기다리다가 5시가 되자, 자기 침실에 들어가 취침을 시작했다.
그 후에 신부가 오니 할 수 없이 사모님을 통해 잠자리에 든 김목사께 연락하여 양해를 구하니 김목사는 할 수 없이 일어나 자기 침실에 그냥 앉은채로 이불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신랑 신부를 그 방에 들어오라 명해서 곁에 몇 사람 더 들어와 앉게 하고 기도해주며 "믿음 잘 지키시오." 권면하고는 끝났다.
서울 은광학교에서 누가 결혼식을 하던 날, 그 교회 목사가 따라와 곁에 있었더니, 김현봉 목사는 그 보고 "목사님은 뭐 하려고 왔습니까?"해서 그 목사는 무안해 못 견디었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