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박영돈 교수님의 '성령기독론의 새로운 모델' - 개혁신학과 교회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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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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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박영돈 교수님의 '성령기독론의 새로운 모델' - 개혁신학과 교회 제10호


(문답방에서 거론된 교수님이며 공회의 교훈 세계에서 한번 검토할 분이며 그 주장이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에서 거론된 것은 문의답변방에서 입장을 정리하겠으나 여기서는 또 하나 참고할 것이 있어 소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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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개혁신학과 교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논문집
제10권 제1집, 통권 제10호

초판인쇄 주후 2000년 12월 15일
초판발행 주후 2000년 12월 25일

발행인: 이승미
편집인: 고려신학대학원 출판위원회
발행처: 고려신학대학원

330-150 천안시 삼용동 40번지
(041) 560-5131, Fax. (041)560-1973

Korea Theological Seminary,
Kosin University
40 Samyongdong,
Chonan, 330-150,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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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기독론의 새로운 모델

(박영돈)

공관복음에 묘사된 대로 예수를 성령 충만한 사람, 성령에 의해 영감된 인간으로 보는 관점에서 기독론을 전개하려는 시도는 초기 교부들의 문헌에 이미 나타난다.1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어떤 신학자들은 성경과 초대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론은 성령기독론이며, 로고스기독론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진행된 초대교회의 교의학적 반성의 결과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과 초대교회의 기독론으로 돌아가 성령 충만이라는 측면에서 예수를 이해할 때, 전통 기독론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같이 예수의 온전한 인간 됨에서 출발하는 성령기독론의 "아래로부터의"(from below) 접근이, 예수가 완전한 하나님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로고스기독론의 "위로부터의"(from above) 일면적인 접근이 안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성령기독론은 신학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이와 맞물린 또 다른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성령기독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현대의 종교 다원주의적 요구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독론의 패러다임을 탐구하고 있는 신학자들이 그 효과적인 모델로서 성령기독론을 선호하고 있고, 둘째, 20세기의 성령운동으로 성령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신학자들이 예수와 성령의 관계를 연구하며, 더 나아가 기독론과 성령론을 병합하여 기독론적 성령론과 성령론적 기독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램페(G. Lampe)와 힉(John Hick)에게서, 후자의 경우는 던(James Dunn) 같은 학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본 논문은 특별히 램페와 던의 견해를 중심으로 성령기독론의 새로운 모델들을 간략하게 분석해 보려 한다. 본 논문은 먼저 성령기독론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과연 여태까지 연구되어 온 성령기독론의 옛 모델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점인 입양설의 오류를 극복하였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어서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예수의 신성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예수의 인성을 온전히 밝혀줄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성령기독론과 로고스기독론을 통합해보려는 시도를 검토해 보고, 이러한 노력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탐구해보려 한다.

1.종교다원주의에서 선호하는 성령기독론

캠브리지 대학의 신학과 교수였던 램페(G. Lampe)는 현대의 다원화된 상황 속에서 예수의 적용성과 유일성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종교다원주의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한 현대 성령기독론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그는 획기적이면서도 아주 이색적인 기독론을 펼쳤는데,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그의 글, "God as Spirit"과 "The Holy Spirit and the Person of Christ"에서 그는 전통적 로고스기독론을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복음이 변질된 결과로 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성령기독론의 모델을 제시했다.2

그는 예수를 삼위 하나님 안의 제2위격으로서 영원 전부터 선재하는 로고스로 이해하는 전통적 입장은 결국 예수의 참된 인간 됨을 온전히 밝힐 수 없는 아주 경직되고 추상적인 본질론적 개념으로 왜곡된 기독론으로 귀결되고 만다고 주장한다.3 전통적 기독론의 이러한 경직된 본체론적 형이상학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소유한다고 말하지만, 그가 두 인격체 (hypostasis)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그는 지적하면서 전통적 기독론은 결과적으로 예수의 인성을 비인격적인 것으로 보는 anhypostatic 교리로 치우치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칼세돈 기독론에 의하면 예수는 오직 하나의 인격체 (hypostasis, person)를 가졌고, 이 인격체는 로고스, 신적 인격체 (divine person)이다. 성육신은 신성 (divine nature)을 소유한 이 신적 인격체 (divine person)인 선재하신 제2위 하나님, 로고스가 또 하나의 인적 인격(human person)을 자신의 인격체 안에 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인격체를 구성하는 중심은 신적인 인격이며, 선재하신 로고스가 취하신 인성은 인격체가 없는 인성, 곧 비인격적 인성 (anhypostatic human nature)이 된다. 만약 영원하신 성자께서 성육신을 통하여 비인격적인 인성을 취하셨다면 그는 온전한 의미에서 인간으로 간주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램페는 이러한 전통적인 교리는 예수가 인간적 인격체를 가지고 이씨 않다는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음으로 예수의 완전한 인간 됨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로고스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바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부적절한 기독론적 모델이며, 이는 결국 성경의 "일원론적 신학" (amonistic theology)과 아주 상충되는 일종의 "다신론적 삼위일체론"으로 치우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주장한다.5

그는 이런 로고스기독론에 비해 성령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을 밝히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성령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주체는 한 인간"이란 점에서 출발하며, "그 인격체는 성육신하신 로고스가 아니라 한 인간"이라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선재하신 신적인 중개자가 한 인간성을 취하여 자신의 인격체에 결합시켰다는 정직된 본질론적 개념으로 성육신을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한 인간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힌 다이내믹한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성육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성육신은 세상 속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라는 인간 안에 특별한 형태로 추안하게 내재하시게 된 사건이다. 이러한 개념만이 성육신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설명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램페의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 성령기독론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보전할 뿐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되심을 "부사적으로" (adverbially) 선언한다. 예수 안에 성령의 내주하심과 충만하심의 정도가 다른 모든 인간에 비해 독특하다는 관점에서 예수의 유일성을 설명할 수 있으며, 이 내재하는 성령이 예수를 인도하여 신적으로 (divine) 행동하게 하신다는 점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사적인 서술 형태로 설명할 수 있다. 곧 예수는 본질적으로 신은 아니지만 그 안의 성령의 특별한 내주하심이 예수를 신적으로 살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램페는 이렇게 본질적인 신성 (substantial divinity) 대신에 "부사적인 신성" (adverbial divinity)을 선택함으로써 전통적 기독론이 안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난제들을 피해 보려 하였다.7

교회사에 계속 등장했던 성령기독론 안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예수를 성령의 특별한 기름 부으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단순한 한 인간으로 보는 입양설과 같은 논리적 오류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떻게 이 입양설의 위험을 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신성을 보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성공적인 성령기독론을 개발하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대한 과제이다. 램페는 그의 견해가 예수가 세례 받을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던 것이 아니라 출생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던 사람으로 봄으로써 입양설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극복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입장이 참으로 입양설의 위험을 피하고 예수의 독특성과 신성을 보존하고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물론 램페는 예수가 세례 받을 때 성령을 받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이 점에서 그는 입양설의 오류에 빠진 과거 성령기독론과는 다르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예수는 전 생애에 걸쳐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 안의 성령의 내주는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 안의 성령의 내재에 비해 충만함의 정도가 다른 것이지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것은 예수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누리는 성부와의 본체론적 연합으로서의 내주하심이 아니다. 램페는 예수 안의 성령의 내주하심의 독특성을 단순히 기능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내주하심의 가장 규범적인 형태이다. 그러나 그는 선재하는 로고스로서 성육신하신 예수의 본질론적인 실제와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의 재해석의 틀 속에서는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개념은 성부 하나님과 구별되는 인격체로서의 본질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스스로 신적인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시는 성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 인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일원론적 신학"을 선호한 나머지 하나님 안의 위격적 구분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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