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21세기찬송가 문제점 - 뒷표지 내면의 '십계명'
그리스도의 열두계명 적절
모세 우위 모습, 예수 우위로
이 문제는 물론 21세기찬송가에 처음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니고
처름부터 내려온 문제점이다.
한국교회 찬송가에는 앞표지 내면에는 주기도 본문과 사도신경 본문이 수록되어 있고
뒷표지 내면에는 십계명을 두 면에 걸쳐 수록하고 있는 바 이 편집체제는 그 세가지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잘한 기획이라 생각된다.
이 3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가장 중요한 3대 지침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주기도대로 모범적인 기도를 하고, 사도신경대로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십계명을 잘 지키는 생활을 하도록 특별히 배려한 중요한 기획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찬송가에 수록된 "십계명"란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크게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왜 "십계명"이란 표제 아래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사랑의 두 계명을 실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이 준수해야 할 실천사항으로서의 생활규범은 결코 구약의 십계명만이 아니고 신약의,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두 계명까지를 포함해야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합당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기록한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그 "십계명"이란 표제와 그 다음에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맨 끝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은 결코 그 제목대로의 십계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 내용을 다 서술하려면 제목을 바꾸어 "그리스도교의 계명" 또는 "그리스도교의 열 두 계명"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둘째, 그 표제를 "그리스도교의 계명"이라 한다면, 그 배열의 순서로서, 먼저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을 수록하고, 다음으로 구약의 십계명을 수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중요성으로 볼 때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은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 전체의 강령이라 한 그대로 구약의 십계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22:40의 "강령"이란 말은 헬라어 krematai(매달리다)라는 동사에 유래한 것으로서, 구약의 모든 율법(십계명 뿐 아니라)이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에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구약의 십계명은 가지인데 대해서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은 뿌리와 같은 것이다.
구약의 십계명을 예수의 사랑의 계명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모세를 예수보다 더 존귀하게 보는 유대교의 관점이지 예수를 모세보다 더 존귀하게 보는 신약의, 그리스도교의 관점은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를 모세보다 더 존귀한 분이라고 말한 것은 그 때문이다(히3:1-6).
셋째, 만일 신약의,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과 구약의 모세의 십계명의 중요성의 격차를 글자의 크기로 나타내고자 한다면, 지금의 글자와는 반대로, 전자를 더 큰 글자로 나타내고 후자를 작은 글자로 나타내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을 "십계명"이란 제목 아래에, 그 끝에 그나마도 작은 글자로, 별도의 제목도 없이, 마치 십계명의 연속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을 전적으로 재편성하여, 전체의 제목을 "그리스도교의 열 두 계명"이라 하고,
먼저 예수의 사랑의 두 계명을 큰 글자로 싣고, 그 다음으로 구약의 십계명을 조금 작은 글자로 싣는 등, 전체의 표제와 그 내용의 순서와 글자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새로 21세기 찬송가를 내면서, 유대교적인 모습으로부터 그리스도교적인 모습으로, 모세 우위의 모습에서 예수 우위의 모습으로, 율법행위 우위의 모습으로부터 사랑 우위의 모습으로 쇄신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나채운 찬송가공회 가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