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천주교회의 교리에 관한 성경적 비판(1) - chongkong.org 인용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교리] 천주교회의 교리에 관한 성경적 비판(1) - chongkong.org 인용


*소개

아래 소개하는 글은, 부산공회(2)에서 천주교에 대하여 1차 자료로 직접 분석한 다음 총공회 신앙노선으로 비판한 글입니다.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이단이나 타 종교에 대한 비판도 중요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곳은 그들에 대한 자료를 직접적으로 수집하거나 요약할 수 있는 시간과 실력이 부족하여 아쉬웠습니다.

홈의 이름에서부터 밝혔듯이, 이곳은 백영희신앙노선에 대한 연구를 집중하는 대신 성경 외곽 또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신앙연구 관련 주제에 대하여는 그 기초 자료의 제공 연구 분석 등 일체가 부실하기 그지 없음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이런 면을 잘 보충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소개드리며 혹 비슷한 시각과 자세로 신앙외적인 문제를 살피고 있는 글이 있다면 이곳에 소개 또는 추천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인용: 부산공회(2) 홈 chongkong.org/chngyng)
--------------------------------------------

전언(前言)

천주교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의 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질문자께서 천주교의 교리적 이단성으로 한정해 주시므로 의제는 매우 명료(明瞭)해졌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질문자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크리스챤들은 그렇게까지는 알고 있지 아니하고 그저 막연히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의 다른 형제 교파, 심지어는 우리 개신교의 모태로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본 홈페이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열려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상기(上記)한 제목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원만하고 겸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본 논변(論辯)의 중요성을 상기(想起)하는 뜻으로 약간의 배경설명을 하겠습니다.


1.개신교와 천주교, 그리고 오늘과 내일

(1)개신교와 천주교

천주교인들은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간 열교(裂敎)이다" "천주교는 큰 집이고 개신교는 작은 집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은 천주교에 관한 실체를 똑똑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마귀가 쳐 놓은 장막(帳幕)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영원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도(道)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정하시고 이를 위하여 영계와 우주의 영원을 단번에 예정하시고, 예정대로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선악과 먹는 죄를 범하므로 타락하였고, 타락 즉시 예수님을 보내어 인간을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후 아브라함을 세워 새로이 구속역사의 기초로 삼으시고 동 역사를 예표, 예약적으로 계속하시었읍니다.

때가 되매 구주 예수님이 오셔서 예표, 예약적으로 계속되어 오던 구속을 실상으로 완성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활(死活)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 시발된 기독교는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이방세계를 향하여, 특히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로 불길같이 번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좁은 길이었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특히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황제들은 수없이 많은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고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계속해서 흥왕해 갔고, 로마황제 콘스탄틴 대제는 마침내 기독교를 국가의 공인종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주후313년)

그것은 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니, 이때를 기하여 세상정권과 결탁한 사람들이 성경과는 많이 동떨어진 천주교를 만들어 순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순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 막강한 교권을 갖기 시작한 천주교는 이후 성경대로 믿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참된 기독교도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종교재판이나 무력등을 통해 수 없이 죽였읍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 달에 십만명을 죽였다고 하며 이렇게 해서 천주교에게 순교 당한 전체 숫자는 약5천 5백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천년을 넘게 계속되면서 종교적 암흑을 가져왔고, 천주교는 점점 더 성경과 멀어져 갔읍니다

그러다가 16c 초에 마침내 우리가 잘 아는대로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물론 그 전에도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개혁가들이 있었음) 성경을 바로 깨닫는 데에서 천주교의 엄청난 잘못을 알고 본래의 기독교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읍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이 복귀 운동을 우리는 통칭 종교 개혁운동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인하여 새로 시작된 교회를 개혁교, 혹은 개신교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체 역사를 두고 관조(觀照)해 볼 때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고, 천주교가 본래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요, 개신교는 하나님에게서 시발된 기독교가 여러 변하는 환경속에서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계속되다가 소위 종교개혁시기에 새로운 힘으로 계속하게 된 그러한 도(道)인 것입니다.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는 것과 천주교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바로 이해하는 데에서 우리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천주교형제들을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오늘과 내일

얼마 전에 감리교 신학교에서 있었던 종교다원주의 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에는 기독교 통합을 넘어 종교 통합이 주창되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종교통합 운동이 힘있게 일어나고, 역사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94년3월29일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로마카톨릭간에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교도들의 연합(Evangelicals and Catholies Together=E.C.T)"이라는 타협성의 공동선언문이 체결된 것이나 그 외에 우리가 익히 들은 바 있는 1990년도 초반에 시작된 "빈야드 운동"이나 "오순절 주의"같은 은사주의 운동도 성질상 통합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고, 요즈음의 뉴 에이지 운동은 종교 비 종교의 통합주의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성질의 통합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세력 있게 활동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자체가 우리에게는 마지막을 준비케 하는 의미 있는 일들이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종교통합운동의 배경에 혹은 중심에 누가 서 있느냐? 천주교가 서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그 통합운동들은 천주교 중심의 통합을 향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시작되고 일어나고 있는 운동에서 그것을 실감하도록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뒤로 두고, 우리나라 종교와의 경우를 비교적 단순하게 살펴봅시다.

지금 천주교회는 석가가 태어난 날에 종을 치며 축하해주고 있고, 불교사찰의 상량(上樑)법회에 추기경이 참석해서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제례(祭禮)하는 곳에 가서 추기경이 절을 하는 모습이 방영된 것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또 우리 개신교와는 "분리된 형제"라 하여 친근히 하고 있고 실제로 성경을 공동번역까지 하니 아니했습니까?

천주교 외에 어느 유력한 종파도 이렇게까지 활동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본란의 주제가 아니므로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종교 통합의 중심에 천주교가 서 있다는 것을 이러한 몇가지 (예)로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종교통합운동이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기독교 통합에서 종교통합으로, 종교통합에서 종교와 이방세계와의 통합으로, 마지막에는 어린양과 그에게 속한 진실한 자들만 남긴 전세계세력의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고 여기에 수많은 형제들이 휩쓸려 갈 것은 (계시록17장)의 계시에 비추어 자명한 일입니다. 이것은 많은 성경학자와 선지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며 故 백영희 목사님도 설교 중 그런 예감을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설교록#90,199족)

진실하고자 하는 신자로서, 주님의 양을 책임지고 있는 자로서 이 사실은 매우 큰 두려움과 깨우침을 갖게 하는 바 있습니다. 우리가 천주교를 주목하고 확실히 알아야 하는 필요를 더욱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본란에서 한 장(章)을 할애하여 밝혀두는 바입니다.

2.판단의 최종권위

(1)판단의 최종권위

우리가 어떤 주제에 관하여 논변(論辯) 혹은 논쟁할 때에 그것에 관한 확실한 판단을 위해서는 최소한 양 당사자가 자기 논리의 최종권위로 삼는 것이 동일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 논의는 평행하여 달리고 있는 기차 레일과 같아서 접점을 찾는다거나 객관적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밝힌다는 것이 다소 무망(無望)한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신교에서는 모든 교리 논변의 최종권위를 오직 신구약성경66권에만 두고 있는데 반하여 천주교에서는 자기들 교리의 최종권위를 성경에만 두지 아니하고 성경과 함께 성전(聖傳)(=여러 시대를 통하여 전수된 가르침들), 교회의 교도권(=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증된 해석을 부여하는 것) 이 셋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동등하다고 합니다(1994년판 카토릭 교리문답서 계시헌장제10항)
그렇다면 동일한 것에 관하여 이 세 가지 다른 권위의 가르치는 바가 서로 맞지 아니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 때는 당연히 교회의 교도권이 제일 우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나 성전에 대한 해석임무나 권한은 로마카토릭 교회에 최종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천주교 교리의 최종권위는 성경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고 현재 천주교회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성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의 명문 계시를 교리의 유일 무이한 최종권위로 믿는 개신교와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최종권위로 믿는 천주교와의 교리논변이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회의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도 교리를 세울 때에나 선파할 때에 가능한한 성경적 근거를 의거(依據)하려고 애를 써왔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천주교회의 태도만을 상대한다면 교리에 관한 토론도 가능 할 것입니다.
본란에서는 이러한 범위에서 천주교 교리에 관하여 논증(論證)하므로 그 교리의 비성경성을 밝혀 보려고 합니다.

(2)몇 가지 원칙

본란의 논리전개의 원만한 이해를 위하여 부득이 몇 가지 원칙을 밝힙니다

(가)먼저 본란의 주제가 천주교의 교리의 성경적 비판이므로 천주교회의 행위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중심하여 논증할 것입니다.

(나)또한 사적인 논쟁이나, 개교회의 가르침에는 상황에 따라 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아니한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주관이 개입될 수 있으므로 천주교에서 공적으로 발표한 것을 중심하여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비판코자 하는 것은 성경의 명문에 명백히 위배된 점에 대해서입니다.

(라)성경의 옳은 깨달음에 명백히 위배된 것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옳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함은 역사적으로 보편 타당한 깨달음을 중심해서 말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더 설명할 필요가 있으므로 구체적 항목을 논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천주교에서 성경을 근거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전승(傳乘)에 따라, 혹은 교회의 일방적인 깨달음에 따라 그것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가르치는 것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본론

1.비판의 방향

(1)순교하신 백 영희 목사님은 설교 중에 종종 천주교의 잘 못된 점을 말씀 하셨는 바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가)교황 무오를 주장하니 틀렸다. 이것이 천주교가 타락하게된 근본 윈인이다.
(목회설교록#177, 567쪽)

(나)성경보다도 교파(주:교회의 가르침)를 위에 두니 타락한 것이다.
(78년3월 공의회 설교)

(다)천주교는 사진이나 동상에 절하는 우상종교이다.(#90, 199쪽)

(라)자기교파, 자기교회에만 구원이 있으므로 천주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된다고 주장하니 틀렸다.

(마)성경을 못 읽게 하다가 이제야 읽게 하나 해석권을 교회에만 두고 있으니 잘못 되었다.

(바)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인정, 숭배하고 있으니 성경에 위배된다.

(2) 처음에 이 글을 쓸 때에는 천주교 전반을 고찰, 비판해 보고자 하였으나 위의 백목사님이 지적하신 항목을 중심해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천주교의 잘못됨을 알기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본인의 실력이나 여건상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3)논변(論辯)의 순서는 해당항목에 관한 천주교의 공적주장(교황의 지시에 의해1992년 발행한 카톨릭교회 교리서-약400년 만에 새롭게 발행된 것임)을 먼저 소개하고, 이에 관하여 비판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비판 할 때에는 기독교 측의 기존의 비판에 대한 천주교회의 반론을 포함하여 논해야 할 것입니다. 혹 본 졸론(拙論)에 관하여 천주교인의 반론이 있으면 그에 응해서 더 상세히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2.敎皇無誤謬(교황무오류)에 관하여

(1)천주교의 주장

"주교단의 으뜸인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無謬)성을 향유한다..........이러한 무류성은 하느님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다"(교회헌장제25항,한국판교리서 제1편 344쪽)

이 교리에 따르면 로마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언제나 전혀 잘못이 있을 수 없는,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2)비판

첫째로, 이 주장은 성경적으로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셨다.(로마서3:10,23,예레미야17:9)

물론
우리가 천주교회 교리를 원만히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위의 교리는 인간 교황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교회의 머리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무오류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천주교회에서는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성경에 위배되는 것은 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인간은 중생되어 구원 받은 후에도 자유성을 가지고 성령을 배척하고 마귀의 종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서6:12-14, 7:18-23, 에베소서4:19-24)

그 증거로
예수님 당시 베드로(천주교회에서 제1대 교황으로 여기는 사람임)도 그가 성령에 충만했을 때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바로 알고 바로 발표하였지만, 잠시 후에는 사탄의 종이 되어 틀린 주장을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마태16:13-23)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교리를 선포할 때"라고 해서 어떻게 무오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성경이 주지 아니했기에, 하나님도 줄 수 없는 무오의 권위를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이는 명백히 성경에 위배되는 교리이다.

둘째로, 실제에 있어서 맞지 않는 교리이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할 때는 틀린 교리를 옳다고 주장할 때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도 자기들은 성령으로 틀림이 없는 올바른 교리를 깨달아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히 성경에 맞지 아니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귀에게 주장을 당해서 그렇게 깨달은 것뿐이다.
이렇게 인간은 교리를 깨달아 선포할 때에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교황을 여기에서 예외 시키는 것은 천주교의 인위적 설정이지, 성경 적 근거가 전혀 없는 아주 잘못된 교리이다.

결론적으로

교황이(교황제도의 옳고 그름은 나중에 논하기로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교리를 선포할 때에는 무오류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 때는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인들이 그가 교리에 대하여 무오하기를 소망할 수는 있으나
교황은 무오하다고 단정하여 교리화 한 것은 명백히 성경에 위배되는 이단적 사상이요,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컨데**

교황 무 오류라는 이 잘못된 교리가 천주교 타락의 근본 윈인이고 그것 때문에 오늘까지 천주교가 이렇게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교황이 틀린 것을 주장하여도 아무도 다른 것을 주장할 수 없고 고칠 수가 없으니 타락할 것은 너무도 자명하지 아니한가?

또한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앉아 있는 것으로, 성경에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하신 그 일 중에 하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하면 교황은 적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사실
교황을 "Holy Father!(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나, 그의 "절대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나 그에게(사제들 포함) "죄를 사하는 권세"가 주어졌으므로 그를 통하여만 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며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이라"하는 것으로서 "적 그리스도"로 규정해도 마땅하다고 보여진다.

이러함에도
천주교회에서는 오랜 세월 교황의 교리서나 요령 집이나 공의회의 결정으로 이를 더욱 공고히 해오고 있고, 그것으로 장구한 세월 교권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있으니 심히 가증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기독자라면 심각히 생각할 점이 있다.(요한복음17:11, 마태23:9, 마태복음24:15, 요한2서2:7, 데살로니가후서2:3-4, 계시록13:6, 막복음2:7,이사야1:18-20,요한1서1:9)

2.우상숭배(그림이나 동상을 향하여 십자를 긋고 절하는)문제에 관하여

(1)천주교회의 주장

(가)"...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백하게 결정한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 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다시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
벽과 화판에, 그리고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천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모친이신 동정 마리아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제2차 니케아 공의회,교리서 제2편 438쪽)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분들을 공경한다.(교리서제2편 448쪽)

(나)여기에 대한 천주교회측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첫째, 성경에 물상의 제작을 무조건 금하지 아니했다. 천사의 모양인 그룹을 만들라고 하셨고, 모세도 놋 뱀을 만들어 불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봄으로 살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성경은 우상으로 경배하기 위해 물상을 제작하는 것만을 금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그림이나 동상에 절하고 경의를 표하고 그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 물상 자체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표상하는 분(사람, 천주)에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글을 보고, 말을 듣고, 그 분들을 생각하며 하는 것보다 더 직감적이지 아니한가?

(2)비판

(가)구약성경에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하는 행위나, 지성소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천사모양의 그룹을 세워놓고 속죄 제를 드린 것이나,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놓고 뱀에 물린 자로 하여금 그것을 쳐다보므로 구원받게 한 것은 전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한 모형적이요, 상징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완성되었고, 그 이후로는 당연히 폐지된 것이다.(히브리서9:1-28)
실상이 이러한데 신약시대에 와서도 그러한 형상을 만들고 그것들을 통한 어떠한 형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을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신약성경에는 그렇게 한 일이 없고, 또 그런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사도행전14:8-18, 15:10-21)


성경이 금하는 것은 우상으로 섬기기 위해서 물상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이는 맞는 말이요, 천주교회에서도 그러한 경우는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사실 천주교회에서 그림이나 동상을 제작하는 본 의도가 무엇인가?
그것을 집이나 성당에 모셔놓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에게 절하고, 그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서이지 무슨 장식품이나, 관람용이나 기타의 용도로 제작하는 것이 본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으로 섬기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그림이나 동상을 제작하는 것은 그 발상이나 행위 자체가 십계명중 제2계명의 명문을 범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나)천주교인들이 그림이나 동상에 경배하는 것은 그 물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물상이 표시하는 사람이나 천주에게 하는 것이요, 이는 다른 경우보다 더 직감적이요, 효과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이 설명은 명백히 성경의 명문을 범하고 있는 죄요, 교인들을 우상숭배의 구렁텅이로 더 깊이 인도하고 있는 실상에 대한 양심적 성찰이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

(ㄱ)천주교회의 설명은 이방종교(불교나 유교등)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어떠한가? 사람이 만든 하늘과 땅과 땅아래의 아무 형상에게도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명문으로 엄금하셨다. 이 말씀을 어기고 분명히 절하며 섬기고 있으면서 무슨 다른 설명을 한다는 말인가?(출애급기20:4-5)

(ㄴ)실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신령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우리들이 어느 그림이나 동상을 모셔 놓고, 매주 혹은 매일 그것을 소중히 여겨 간수하고, 바라보고, 그 앞에서 기도하는 행위를 반복할 때, 과연 우리 심령을 차지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주님이 실존적으로 더 강해지겠는가? 보이는 형상이 더 실존적으로 강해지겠는가?
보이는 형상이 더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차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본 의도야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할 소망이나, 의지나, 믿음을 가로막고 그 형상으로 향하도록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실상적인 우상숭배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열왕기하18:4)에 보면 유다 히스기야 왕 때에 모세가 만든 놋 뱀을 사람들이 우상으로 섬기므로 부셔버렸고, 예수님도 그의 육신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글씨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다가 우상이 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8:3-9)

이것이 인정이 안된다면 천주교인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러한 형상을 다 치워버리고, 보이지는 않으나 더 확실하게 실존하시는 하나님과 마주 앉아 보라! 처음에는 무엇인가 허전할 것이고, 그렇게 얼마를 계속하다 보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더 강하게 하나님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서 보이는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다고 하는 일이 우상숭배요, 스스로 속는 일임을 체험 할 것이다.

(ㄷ)보이는 형상들을 통하여 주님을 대하는 것이 더 직감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주교회가 빠진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다. 그 속성의 깊이나 넓이나 능력적으로 무한하신 분이다. 이러한 분을 유치하고 제한된 그림이나 동상을 통하여 접하도록 하는 것은 무한하신 분을 제한된 물상에 고정시켜 버리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형상이란 것을 앞에 놓고 "천주님이시여!"할 때 그 사람의 심령에 무엇이 뚜렷이 자리하겠는가? 앞에 있는 형상이 아니겠는가? 많이 노력한다고 해봐야 그 형상과 오버랲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니 그 형상은 결국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아 유한으로 제한시켜 버리는 것이요, 흐리게 하는 마귀 역사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이 어떠하신 분임을 성경으로 기록하여 나타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성경대로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한다. 다른 성경인물들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일은 할 수 없다. 또 집이나 성당에 두는 것도 안 하는 것이 좋다. 우상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우에도 안 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도 않은 예수님의 모습이나 신앙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림이나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경배하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이나 신앙인물을 접하도록 한다는 것은 성경대로의 주님이 아니라 화가, 혹은 조각가, 혹은 신자 각자의 상상대로의 주님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당에 설치 되어 있는 그림이나 동상과 같은 모습의 주님이요, 신앙인물이라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물상을 설치해 놓고 그것에게 경배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것이 표상하는 주님이나 인물을 접하도록 한다는 것은 성경대로의 주님을 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인간 상상대로의 조작된 주님을 상대하게 만드는 큰 죄임을 알아야 한다.

**생각컨데**

구약교회는 유치한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면을 주로 하여 상대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실적 느낌은 신약의 우리보다 더 강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영적이고 신령한 면을 주로 하여 우리를 상대하고 계시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의 깊이나 넓이나 높이 적으로 구약성도는 신약성도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신약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을 신령한 면으로 아는 일에 더욱 자라가야 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확신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회는
그림이나 동상같은 물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직감적으로 섬기도록 한다 하나
실은 첫째로, 명문적으로나, 실상적으로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둘째로, 주님을 성경대로의 주님으로 대하는 것을 가로막고, 인간 상상대로의 조작 된 주님으로 상대하게 만드는 것이요,
셋째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치한 물상으로 제한시킴으로서 신약성도를 향
한 하나님의 인도를 방해하고 있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