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레위기 13장, 14장 문둥병(나병)에 대한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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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레위기 13장, 14장 문둥병(나병)에 대한 이견



레위기 13장 “피부에 정결함을 통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함의 특징”? 수요예배 / 행복나눔교회 이야기

2013/07/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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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3장 “피부에 정결함을 통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함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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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1장부터 15장까지는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정결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1장은 음식에 관한 법, 12장은 출산에 관한 법, 13장과 14장은 피부병에 관한 법, 15장은 성적인 것과 관련해서 남자와 여자가 부정하게 되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문둥병은 흔히 나병이라고도 하는데, 나병은 나균(癩菌)이라는 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난치병이라고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피부에 살점이 불거져 나오거나 반점 같은 것이 생기고 그 부분의 감각이 마비되고, 눈썹이 빠지고 손발이나 얼굴이 변형되며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나병을 옮기는 나균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레위기 13장과 14장에서 언급되는 질병이 과연 오늘날 말하는 한센병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문둥병’으로 번역되어 있고,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나병’으로 번역되는 이 질병은 히브리어로 ‘차라아트’라고 합니다. 이 질병이 오늘날 한센병이라고 부르는 문둥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차라아트라는 질병은 곰팡이 종류와 비슷해서 사람뿐만 아니라 건물 벽이나 옷에서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한 ‘칠십인역’ 성경에는 레프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레프라 역시 오늘날의 문둥병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레프라라는 단어를 다양한 피부병을 일컫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에서 진짜 문둥병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습니다. 엘레파스 또는 엘레판틴아시스라는 단어가 오늘날의 문둥병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합니다.



레위기 13장은 그 장이 다루고 있는 병이 문둥병인가 피부질환인가를 구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결함의 특성을 그 병을 통해서 우리는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11장의 내용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음식규례의 정결함이 음식의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부정함의 근거가 되는 여러 가지 특성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레위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병 중에서 왜 피부병에 대한 규례를 따로 정하셨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피부병에 대한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13장을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의사가 아닌 제사장에게 맡아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모세 오경에는 특별히 병을 고치는 의사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진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제사장에게 보고되고 결정됩니다. 제사장은 단순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역할 뿐만 아니라 진영에서 이루어지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서 보고받고 판단하고 규제해야 합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문둥병은 육신이 썩어 들어가는 무서운 병으로서 영적으로는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영성만을 강조한 불완전한 해석입니다. 레위기의 규례는 영성과 더불어 이스라엘 자손의 진영에서 다루어지는 실제적인 실정법입니다. 따라서 레위기 13장의 일관된 문맥의 흐름은 “사람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딱지가 앉거나 색점이 생기면 문둥병의 징후로 생각하고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한글번역에서는 문둥병이라고 했지만 NIV영어 성경은 ‘전염성이 있는 피부질환’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이들을 진찰하고 피부병이 발생한 환자를 칠 일 간 격리 수용한 후 또다시 7일 동안 격리 수용하여 그 경과를 확인합니다. 3절에서 6절을 살펴보면 ①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②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③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가 보기에 그 환부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이레 동안을 가두어둘 것이며 ④ 이레 만에 제사장이 또 진찰할지니 그 환부가 엷어졌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피부병이라 제사장이 그를 정하다 할 것이요 그의 옷을 빨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①의 내용으로 나병(전염성피부질환)이라고 진찰되면 제상장은 환자에게 “부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②의 내용으로 피부의 색점은 희나 우묵하지 털이 희지 않으면 일단 그 환자를 격리합니다. 그리고 7일후에 다시 진찰합니다, ③의 내용으로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않으면 다시 7일을 격합니다. 제사장은 ④의 내용으로 7일 후에 환부가 엷어지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않으면 피부병이라고 하고 ‘정하다’합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을 정리하면 ‘부정하다’고 판단되는 나병은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함”의 여부에 따른 구별입니다. 일단 피부병이 걸리면 그 병이 나병인가 아닌가를 구별합니다. 나병이면 부정하다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진찰을 계속합니다. ‘정하다’판단된 피부병이라도 다시 7절-8절에 피부에 퍼지면 ‘부정하다’고 제사장은 말합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이해하면 나병은 ‘부정한 것’이고 피부병은 ‘정하다’는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사람에게 나병이 들었거든 그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제사장은 진찰을 하는데 ⑤ 피부에 흰 점이 돋고 털이 희어지고 거기 생살이 생겼으면 오랜 나병이라고 ‘부정하다’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미 부정하였으즉 가두어두지 않고, 제사장이 보기에 나병이 그 피부에 크게 발생하여 그의 전신에 퍼졌으면 그 환자를 “정하다”합니다. ⑥ 아무 때든지 그에게 생살이 보이면 그는 “부정하다”합니다, ⑤와 ⑥은 이미 나병에 걸린 사람의 상태 즉 생살의 여부에 따라서 부정하다 정하다가 결정됩니다.



15절 이후에는 피부의 종기, 피부가 불에 데었을 때, 남자나 여자의 머리에나 수염에 환부 옴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퍼지는’ 것과 ‘종결한 것’의 구별에서 ‘부정하다’과 ‘정하다’의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레위기 13장의 부정함과 정함을 영적인 죄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나타내줍니다. 나병이 걸리면 모두가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히 나병에 걸려 오래된 자는 정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제사장에게 보내진 환자들은 어떠한 조치를 받을까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그들은 격리되어서 무슨 처방을 받을까? 그것이 정결함의 제사가 될 수 있고, 혹은 요양이 될 수 있고, 혹은 치료의 기간이 되지 않을까 조심이 의견을 제시합니다. 분명한 것은 제사장이 ‘부정하다’혹은 ‘정하다’라고 판단한 병이 걸린 자들이 병에 대한 판결 후에 그 병으로 인해 ‘정죄 받는 것’이 아니라 격리되어 후속 조치를 받거나 혹은 다시금 증상의 완화에 따라 ‘정하다’는 판결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장에서는 적극적인 제사를 통해 치료적 대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부정결의 규례를 살펴보면 정하고, 부정한 것은 병의 ‘전염’여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설령 나병이 온몸에 모두 퍼져 더 이상 퍼질 수 없다면 그 정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병에 걸린 자들을 죄를 지은 자들이라고 해석하는 성경해석은 불완전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병에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을 건강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서 부정하다 정하다고 판단하여 그 후속 대책을 세워 이들이 정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십니다. 우리는 피부에 대한 정결 규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규례를 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 규례로 인해서 이스라엘 자손은 어떠한 생활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한 이스라엘 백성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정함이 부정함이 될 수 있는 일들이 말씀의 피부질환처럼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 그들을 치료하고 그들의 병이 진영의 다른 사람에게 퍼지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그런 결과에 대해 하나님은 다시 정하다는 치유와 회복의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정결함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들을 이끄는 제사장의 삶을 사는 목회자들이 오늘의 규례를 마음 속에 새겨 그들을 치료하고 그 병을 퍼지지 않게 노력하는 실천에서 ‘부정하다’ 판결된 사람들은 ‘정하다’판결되는 사람으로 그 수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 노력이 없다면 모두다 ‘부정하다’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들을 색출해서 그들을 격리시켜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부정한 자들을 관심 갖고 이해하고 치료하는 노력을 통해 ‘정하다’ 회복시키는 것을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