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파를 넘는 복음주의
새로운 용인 시대를 준비하며(1)…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꿈
입력 : 2006년 09월 13일 (수) 13:37:53 / 최종편집 : 2006년 09월 13일 (수) 13:37:53 [조회수 : 1248] 전성민 ( sungminchun )
한국 신학의 미래,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이 2007년 1학기에 용인의 동백지구로 캠퍼스를 옮깁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펼칠 본교의 비전을 ‘새로운 용인 시대를 준비하며 -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
(1) 교파를 넘는 복음주의 (박찬호, 총장, 조직신학)
(2) 하나님의 온 백성을 위한 신학 교육 (권연경, 신약학)
(3) 세계로 뻗는 한국 신학 (신현우, 신약학)
(4) 통합 연구의 산실 (김광건, 리더십)
(5) 교회와 사회를 향한 바른 목소리 (김형원, 기독교윤리)
(6) 개혁의 신실한 종 (김성욱, 역사신학)
(7) 건강한 교회를 바라는 꿈 (권문상, 조직신학)
(8) 성경에서 성경으로 (이필찬, 신약학)
(9) 치열하고 친밀한 학문 공동체 (김근주, 구약학)
(10) 학생 맞춤형 커리큘럼 (이풍인, 신약학)
기독교 신앙은 하나이지만 그 전통에 따라 여러 교파가 존재한다. 교파 또는 교단(denomination)이라고 하는 것은 신앙의 칼라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다른 교파에 속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모습 속에서 우리 기독교 신앙의 풍성함과 다양함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속한 교파만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할 때 다른 교파를 배척하게 되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내가 속한 교파에 대한 자부심은 좋은 것이요, 필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교파를 배척하는 교파주의적인 신앙의 행태는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교파주의의 실제적인 예를 필자의 경험 가운데 두 가지 들고 싶다.
필자가 어느 지역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 그 곳에서는 장로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감리교를 거의 이단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 후 또 다른 지역 상황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곳은 반대로 감리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에 장로교를 거의 이단시하는 듯한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극단적인 예 같지만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일반적인 듯하다.
두 번째 실례는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에 선교사로 나가 있는 후배 전도사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선교 훈련을 받는 가운데 강사로 나선 분(아마도 선교사이거나 선교사 출신의 목회자)이 “나는 호적은 바꿔도 교단은 못 바꾼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교파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니면 교단에 재정적인 능력이 있기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극단적인 교파주의의 실례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위에서 실례로 든 두 가지 교파주의적인 모습이 우리나라에 팽배되어 있음과 동시에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성결교회나 침례교회, 그리고 순복음교회까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그런 말도 듣는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별로 다르지 않으면서 다름을 강조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것이다. 실상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비록 교파는 다르지만 많은 부분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파주의적인 마음은 삼가야할 마음의 태도이다.
초교파(interdenomination)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교파를 반대하고 교단에 적대시한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 초교파라는 것은 교파 자체를 배격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파 내지는 한 교단 안에만 갇혀 있지 않고 다른 교파의 장점을 통해서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경우 교단에 대한 반감으로 ‘우리는 아무 교파 교단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고 보면 결국 그 또한 하나의 교단으로 고착되는 경우를 본다. 그러므로 초교파란 반(反)교파적인 분파주의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초교파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신학 전문 대학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예장(웨신) 교단과 협력 관계에 있고 한독선연(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초교파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신학 전문 대학원이다. 본래는 개혁신학 즉 장로교 전통 위에 세워진 학교이지만 이미 장로교 교단을 뛰어넘어 다양한 교파와 교단에 속한 분들이 공부하고 있다. 오늘의 교회의 모습은 교단적인 색체가 점점 엷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되리라 생각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웨신 교단이나 한독선연으로 갈 수 있으며 (즉, 안수 받을 수 있으며), 그 외 다른 교단으로도 갈 수 있다. 이런 모델은 조금은 특이하지만 그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트리니티신학교가 바로 스웨덴 계통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교단과 협력 관계에 있으면서도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근본주의와 동의어로 쓰이던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근본주의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된 조금은 전투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이다. 복음주의는 자유주의도 배격하지만 근본주의의 배타적이고 편협한 태도도 배격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다분히 현대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음주의는 현대에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 그 영적인 유산을 믿음의 선진들에게서 이어받고 있다.
‘복음적’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 말기 교회의 형식적인 신앙생활보다 더욱 성경적인 신앙과 생활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가톨릭 저술가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520년대에 ‘복음주의적’이라는 말은 종교개혁 초기의 논쟁적인 저작들에서 현저하게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530년대에 와서는 프로테스탄트라는 단어가 더욱 중요하게 사용되었는데, 이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가 복음주의자들에게 붙인 이름이었으며, 복음주의자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중반에 와서 프로테스탄트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점차로 원래의 복음주의적이라는 말을 대체하게 되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복음주의의 사상적 연원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종교개혁이요, 둘째는 청교도운동, 그리고 셋째는 경건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복음주의가 이신칭의 교리와 오직 성경의 원리 등과 같은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를 확고히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복음주의의 초점과 결정적인 표준으로서 복음주의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 비록 청교도 운동이 건전한 신학과 윤리적 삶에 관심을 두는 다소 이론적이고 도덕적인 운동으로 묘사된다 하더라도, 최근의 학술적 연구는 청교도가 ‘종교적 감성’을 강조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으며, 18세기의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이 17세기의 청교도운동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경건주의는 17세기 후반 루터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당시의 루터교 정통주의는 지성적인 면에 서는 탁월하였지만, 따스한 종교적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하나의 이론적 체계에 불과하였으며, 경건주의는 이에 대한 하나의 대응이었다.(<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 18~25쪽)
1940년대 이래로 영어권에서 종교개혁의 계승자들은 원래의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회복하고 복원하기 위하여 확고하고도 성공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42년 미국에서 전국복음주의자협회(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가 조직된 것은 나름대로 ‘복음주의자’를 ‘근본주의자’와 구별하려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복음주의는 특히 미국의 빌리 그래함, 칼 헨리, 헤롤드 오켕가 등과 관련된 새로운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그 용어를 좋아하지 않는 듯하였다. 그러나 점차 복음주의라는 용어보다 더 나은 단어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1960년대 초에 이르러 복음주의라는 용어와 그와 관련된 주제들이 널리 수용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로이드 존스나 존 스토트, 그리고 제임스 패커 등도 복음주의자로 불리고 있다.
지금 미국에는 트리니티신학교, 고든-콘웰신학교, 풀러신학교 등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가 있으며, 얼마 전 우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한 바 있는 평신도 신학의 권위자 폴 스티븐슨이 재직했던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젠트 칼리지도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를 나온 목회자들이 장로교나 감리교 등의 소위 주류 교단에서 활동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들리는 말로는 교단 신학교를 나온 사람에 버금가는 숫자의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이 함께 안수를 받고 목회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초교파 복음주의 신학교 출신들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는 미국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교파 내지는 교단의 장벽이라고 하는 것은 높은 것이다. 하지만 배타적인 교파주의적 태도는 적어도 미국에서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교파주의의 파고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점차 상황이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교파 복음주의는 그런 면에서 한국 교회 갱신의 한 측면임에 분명하며 이것이 한국 교회 개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우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신학적 지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