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자료를 찾다가 늦어져 일단 중단했습니다. 요일3:6, 5:18에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 초판에는 범죄하지 않는 생명의 씨가 있다고 했으며 이후 다시 출간할 때는 이 부분이 현재처럼 변경 되었다는 것을 아주 오래 전에 비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이어서 재확인을 하려 했으나 초판을 찾을 수 없어 자신 있게 소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중생 된 성도에게 범죄하지 않는 생명의 씨가 있다 하면서 이 것을 마음의 한 곳으로 표현했던 기억이며 영으로 따로 지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초판 발간 후에 공회와 중생 문제로 변론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는 오해 소지를 없애려고 아예 이 부분을 없앴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당시 시점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확정하지 못하겠으니 관련 근거를 가진 분들은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바빙크의 영향을 설명하신 분 때문에 기억이 나서 적어 봤습니다. 며칠 사이에 확인 후 다시 적겠습니다.
바빙크의 영향을 이야기 한 것은, 박형룡-박윤선 두분은 정통개혁주의 신학에 충실한 분들이시기에,
박윤선목사님이 "중생에서 죄를 안 짓는 것"에 언급을 하셨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정통신학에서 언급이 되어 있는 부분을 보시고 이야기 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되어져서(추측), 그렇게 적었습니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은 16세기 종교개혁 때부터~ 17세기 개혁파정통주의 노선을 가장 충실하게 잇고, 동시에 20~21세기 여러 개혁주의조직신학에 기초가 되었습니다. 실례로 "벌코프 조직신학"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의 요약본이며 "박형룡 조직신학"의 근간은 "벌코프 조직신학" 입니다.
박윤석목사님도 일제시대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전권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읽으셨기에, 아닐 수도 있지만 위의 내용을 읽어보신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P.522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죄를 짓지 아니함”은 상습적범죄(常習的犯罪)가 없다는 것이고 절대적(絶對的)으로 성결(聖潔)하여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씨”는 기독 신자에게 있는 중생(重生)된 생명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벧전 1:23, 요3:6,7), “조더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것은 헬라 원문에서 직역(直譯)하면, “그가 범죄할 수 없음은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해야 된다. 이 말씀은 위의 상반문(上半文)의 뜻을 좀 더 강화(强化)한 것이다(Greijdanus). 이것은 거듭난 속 사람을 염두(念頭)에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 신자의 인격(人格)은 성경의 말씀 대로 보아 두가지 요소(要所)를 가지고 이씨으니 lrhe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可能性)도 없다. 기독 신자라도 혹시 불행히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요소(要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초판과 수정판의 내용이 달라 진 것은 송용조 목사님이 양성원에서 강의할 때 직접 들었고 당시 양성원에 초판이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초판 발행 때는 박윤선 목사님은 공회와 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 때가 맞고 옳습니다. 그런데 혼란만 가중을 시켰습니다. 범하지 않는 생명이 있고, 우리 마음이 범죄는 하는데, 문제는 마음 또는 영혼은 단일성이어서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교리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셋이 맞고 동시에 하나시니 이 문제를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마무리한 것처럼, 백 목사님은 죄를 짓지 않는데 죄를 짓는 우리를 해결할 때 중생된 영과 물질인 마음으로 명확하게 해결한 것입니다. 1963년경 동성로교회에서 이 문제로 마지막 서로 나뉜 다음에 주석을 다시 고쳤습니다. 이렇게 논점이 된 것을 다시 고치려면 앞에 것을 고친 과정을 적어야 양심입니다.
중생 된 성도에게 범죄하지 않는 생명의 씨가 있다 하면서 이 것을 마음의 한 곳으로 표현했던 기억이며 영으로 따로 지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초판 발간 후에 공회와 중생 문제로 변론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는 오해 소지를 없애려고 아예 이 부분을 없앴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당시 시점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확정하지 못하겠으니 관련 근거를 가진 분들은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일단 바빙크의 영향을 설명하신 분 때문에 기억이 나서 적어 봤습니다. 며칠 사이에 확인 후 다시 적겠습니다.
박윤선목사님이 "중생에서 죄를 안 짓는 것"에 언급을 하셨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정통신학에서 언급이 되어 있는 부분을 보시고 이야기 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되어져서(추측), 그렇게 적었습니다.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은 16세기 종교개혁 때부터~ 17세기 개혁파정통주의 노선을 가장 충실하게 잇고, 동시에 20~21세기 여러 개혁주의조직신학에 기초가 되었습니다. 실례로 "벌코프 조직신학"은 "바빙크의 개혁교의학"의 요약본이며 "박형룡 조직신학"의 근간은 "벌코프 조직신학" 입니다.
박윤석목사님도 일제시대때 바빙크의 개혁교의학 전권을 가지고 다니시면서 읽으셨기에, 아닐 수도 있지만 위의 내용을 읽어보신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可能性)도 없다. - 1956년
성경주석(히브리서/공동서신)
1956년 9월 20일 발행
P.522
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죄를 짓지 아니함”은 상습적범죄(常習的犯罪)가 없다는 것이고 절대적(絶對的)으로 성결(聖潔)하여 하나님처럼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씨”는 기독 신자에게 있는 중생(重生)된 생명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벧전 1:23, 요3:6,7), “조더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것은 헬라 원문에서 직역(直譯)하면, “그가 범죄할 수 없음은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해야 된다. 이 말씀은 위의 상반문(上半文)의 뜻을 좀 더 강화(强化)한 것이다(Greijdanus). 이것은 거듭난 속 사람을 염두(念頭)에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 신자의 인격(人格)은 성경의 말씀 대로 보아 두가지 요소(要所)를 가지고 이씨으니 lrhe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可能性)도 없다. 기독 신자라도 혹시 불행히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요소(要所)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
초판 발행 때는 박윤선 목사님은 공회와 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 때가 맞고 옳습니다. 그런데 혼란만 가중을 시켰습니다. 범하지 않는 생명이 있고, 우리 마음이 범죄는 하는데, 문제는 마음 또는 영혼은 단일성이어서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교리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셋이 맞고 동시에 하나시니 이 문제를 삼위일체로 표현하고 마무리한 것처럼, 백 목사님은 죄를 짓지 않는데 죄를 짓는 우리를 해결할 때 중생된 영과 물질인 마음으로 명확하게 해결한 것입니다. 1963년경 동성로교회에서 이 문제로 마지막 서로 나뉜 다음에 주석을 다시 고쳤습니다. 이렇게 논점이 된 것을 다시 고치려면 앞에 것을 고친 과정을 적어야 양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