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10 "영"은 사람의 영인가, 성령인가 - 중생 교리 관련
유상섭 교수님
총신대 신약학. 현 서울창신교회 담임 목회자, 잠실동교회 부목 역임
로마서 8장 10절의 “영”(pneu"ma)에 대한 해석
1. 들어가는 말
한글개혁성경은 로마서 8장 10절을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
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번역한다. 이 보다 좀더 정확한 헬라어 번역은 “그러나 그리스도
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한편으로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
이다”(eij deV CristoV" ejn uJmi"n toV meVn sw"ma nekroVn diaV aJmartivan toV deV pneu"ma zwhV diaV dikaiosuvnhn).
이 구절은 로마서 8장에서뿐만 아니라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에 하나일 것이다. 특히 이
구절의 해석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부분은 10절 하반절의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란 부분이다. 여
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 언급된 영(pneu"ma)이 의미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있는 신자들의
영이냐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성령이냐 하는 것이다. 10절의 해석은 이 두 해석 사이에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어떠한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부분의 해석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본 논문은 이 구절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검토하고 좀더 구체적인 논의에 근거하여 필자의 주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논문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10절에 언급된 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해석하는
지배적인 견해를 배격하고 이를 중생한 신자의 영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입장과 번역본들의 주장을 지
지하는데 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로마서 6-7장에서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진술해 왔기 때문에 이를 명
확하게 선언한 10절의 의미를 놓치면 저자의 의도를 놓치게 되고 이로 인하여 그가 주장하는 강조점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본 글은 인간의 영이라는 전통적인 해석,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새로운 해석, 전통
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구체적인 논의와 10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의 순서로 전개될 것이다.
2. 전통적인 해석: 인간의 영이다
10b절의 전통적인 해석은 프뉴마를 중생 한 신자의 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이해는 크게 두 방면
에서 나타난다. 하나는 모든 역본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역본들이 인간의 영으로 번역하고 있
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이전에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먼저
역본들이 어떻게 번역을 하고있는지 보자.
NAB: the spirit is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1)
NASB: yet the spirit is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2)
NIV: yet your spirit is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3)
RSV: your spirits are alive because of righteousness.4)
ASV: but 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5)
NJB: but the spirit is alive because you have been justified.6)
TLB: but your spirit will live, for Christ has pardoned it.7)
Vulgate: spiritus vero vita propter iustificationem.8)
1) New American Bible
2)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 역본은 성령을 가리킬 때 대문자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소문자로
사용된 영(spirit)은 인간의 영을 가리킨다.
3) New International Version
4) Revised Standard Version
5) American Standard Version
6) New Jerusalem Bible
7) Today Living Bible. 이것에 근거하여 새롭게 번역한 NLT(New Living Translation)도 이와 유사하게
“your spirit will live because you have been made right with God."로 번역한다.
8) Latin Vulgate 역시 성령은 대문자 Spiritus로 표기하고 인간의 영은 소문자 spiritus로 표기한다. 또한 이
와 유사하게 Latin역의 Vatican 본문은 보어로 사용된 명사“생명” 대신 “살다”는 동사를 사용한다(spiritus
vero viv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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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성경: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개역개정판: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표준새번역: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현대어: 여러분의 영혼은 살 것입니다.
공동번역: 여러분의 영을 살아있습니다.
아가페 쉬운 성경: 여러분의 영은 의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위와 같이 대부분의 역본은 영역본이든지 한역본이든지 10b절의 영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영으로
간주하여 번역했다. 이와 같은 번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영” 앞에 2인칭대명사 추가하던가(NIV,
RSV, TLB, 현대어, 공동번역, 아가페 쉬운 성경) 명사로 사용된 보어 “생명”(zwhV)을 살아있다(alive)로
번역하는 사실에 잘 나타난다(NAB, NASB, NIV, RSV, NJB).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말 역본은 한결
같이 영을 인간의 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역본의 증거는 이들 번역자들이 10b절의
영을 9-11절에 반복적으로 사용된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이란 표현에도 불구하고 10a절에 등
장한 인간의 몸과 대조되는 인간의 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그릇된 전제를
가지고 본문을 대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번역이 나왔는지 아니면 이러한 번역이 본문에 대한 바른 이해
를 반영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인간의 영으로 이해
하고 있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주석가들은 10b절의 영을 중생 한 신자의 영으로 이해하는데 전통적인 견해를 같이한
다. 우리가 모든 학자들을 다 열거할 수 없으나 그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이 사실을 잘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에 벤겔(Bengel)은 별다른 논의 없이 인간의 영으로 이해한다.9) 하지(Hodge)는 성령께서
내주하는 인간의 영은 영의 불멸과 복된 존재를 보장하는 생명의 원리를 소유한다는 의미로 바울이 영
은 생명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본다.10) 메이어(Meyer)는 일찍이 Chrysostom, Theophylact, Calvin,
Grotius등이 10b절의 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했다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배격하고 중생 한
신자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그는 중생 한 신자의 영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그의 영은 영원히 살아있다는 의미로 이 문장을 이해한다.11)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싸이어(Thayer)의
영어-헬라어 사전은 이 구절을 인간의 영을 지시하는 구절로 열거한다.12) 이로부터 약 10년 후에 초판
된 로마서 주석에서 샌데이(Sanday)와 헤드람(Headlam)은 10b절은 인간의 영이 앞으로 소유하게 될 생
명을 말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13) 1958년에 할데인(Haldane)은 영이 생명이란 말은 “영혼 속에 있는 하
나님의 생명”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중생 때에 신자에게 제공하는 새롭고 영원한 생명으로 해석한다.14)
같은 해에 하밀톤(Hamilton)은 앞서 언급된 하지와 샌테이와 헤드람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바울은
신자의 영이 영생을 소유했다는 뜻으로 영은 생명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5) 고뎃(Godet)은 하나
님의 영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 본성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바울이 영
은 생명이라고 주장한다.16) 맥크레인(McClain)은 10b절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영 속에 생명을 가지고
9) John A. Bengel, Romans-Revelation, trans. C.T. Lewis and M.R. Vincent, Bengel"s New Testament
Commentary 2 (Grand Rapids: Kregel Publications, 1981), 92.
10) C. Hodge, A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New York: Hodder and Stoughton, 1882),
259.
11) H. A. W.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Handbook to the Epistle of Romans, Meyer"s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New York/London: Funk & Wagnalis, 1884),310-311.
12) Joseph Henry Thay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American Book
Company, 1886), 520.
13) W. Sanday and A. C. Headlam,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Edinburgh: T. & T. Clark Ltd., 1980, 초판 1895년), 198.
14) Robert Haldane, The Epistle to the Romans (London: The Banner of Truth Trust, 1958), 344.
15) F.E.Hamilton, The Epistle to the Romans: An Exegetical and Devotional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1958), 129.
16) F. L. Godet,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Zondervan, 1969),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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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며 그의 재림 때에 몸에도 생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17) 데니(Denney)는 10
절의 영을 인간의 영으로 보고 인간의 영이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태어나게 하시고(중생) 그가
친히 지탱하시는 생명으로 해석한다.18)
아주 최근의 주석가들도 이와 같은 이해와 맥을 같이 한다. 보이스(Boice)는 10b절을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19) 피츠마이어(Fitzmyer)는 성령께서 죽은 인간
을 살리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의 영이 살아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구절을 읽는다.20)
마우스(Mounce)는 Williams역을 사용하여 이것을 신자들의 영들이 심지어 지금 “생명을 누리고 있다”
고 본다.21) 코트렐(Cottrell)은 10b절의 영(pneu"ma)을 인간의 영으로 간주하는 NIV의 번역이 아주 적절
한 번역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 구절의 의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인
정한다.22) 다시 말하면 이것을 성령으로 볼 경우 생명이신 성령께서 신자의 영혼에 생명을 주시는 것은
암시적인 진리가 되고, 반면 인간의 영으로 볼 경우 이 진리는 표면에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23)
위에 제시된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로마서 8장 10b절에서 영은 인간의
영을 의미한다. 둘째로, 이러한 해석은 10a절에 언급된 몸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에 아주 문맥에 적합하
다는 것이다. 셋째로, 이러한 견해에 근거하여 영이 생명이라는 것은 바울이 신자의 중생을 염두에 두고
한 진술로 이때 신자의 영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
지만 애석하게도 대다수의 학자들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좀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해석이 성령 안에서 신자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못한다.
3. 새로운 해석: 하나님의 성령이다
이 해석은 10b절에 등장하는 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인 견해만큼
이나 오래된 것은 사실이나 최근에 들어서 더 많은 학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를 찬동하는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해당 단어를 인간의 영으로 이해하는 영역본들의 오역을 지적하
고 또한 이러한 입장이 문맥적으로 문법적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제시하는 역본들과
학자들의 주장을 상세하게 보자.
KJV,24) NKJV,25) YLT,26) Webster: but 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
TEV: the Spirit is life for you because you have been put right with God,
even though your bodies are going to die because of sin.27)
REB: yet the Spirit is life because you have been justified.28)
NRSV: The Spirit is life because of righteousness.29)
17) A. J. McClain, Romans: The Gospel of God"s Grace (Chicago: Moody Press, 1973), 167.
18) James Denney, “St.Paul"s Epistle to the Romans," in The Expositor"s Greek Testament 2, ed.
W. R. Nicoll (Grand Rapids: Eerdmans, 1988),646.
19) James M. Boice, Romans 5-8 (Grand Rapids: Baker, 1992), 816.
20) Joseph A. Fitzmyer, “The Letter to the Romans," in 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90), 491; ..., Rom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B 33 (New
York: Doubleday, 1993), 853.
21) Robert H. Mounce, Romans, NAC 27 (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5), 179.
22) Jack Cottrell, Romans I, The College Press NIV Commentary (Joplin, Missouri: College Press,
1996), 472.
23) Ibid.
24) King James Version
25) New King James Version
26) Young"s Literal Translation
27) Today English Version
28) Revised English Bible
29)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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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by: but the Spirit life on account of righteousness.30)
ICB: then the Spirit gives you life, because Christ made you right with God.31)
Lutherbibel Erklart: der Geist aber ist Leben um der Gerechtigkeit willen.32)
Die Bibel in heutigem Deutsch: aber weil Gott euch angenomen hat,
schenkt sein Geist euch das Leben.33)
La Bible: mais l"Esprit est votre vie a cause de la justice.34)
La Bible de Jerusalem: l"Esprit est vie en raison de la justice.35)
위에 제시된 바와 같이 역본들은 한결같이 10b절에 나오는 영(프뉴마)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번역
한다. 인간의 영으로 해석하는 역본들은 영역본, 라틴역과 한역본에 국한 된데 반하여 하나님의 성령으
로 취급하는 해석은 영역본과 독일어 역본과 불어 역본에 좀더 폭넓게 나타난다. 한가지 흥미 있는 사
실은 NRSV의 경우이다. 이 역본의 이전 판 RSV는 앞서 보았듯이 10b절의 영을 인간의 영으로 보았으
나 NRSV는 이러한 입장을 철회하고 이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프뉴마를 인간의 영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있는 상황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본
이 제시하는 해석에 근거하여 성령이 생명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어
려우나 일부의 경우에 성령께서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로 풀어서 해석한다(ICB, Die Bibel).
이러한 역본들의 해석에 동조하는 주석가들의 주장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이 범주에 속하는 학자
들은 최근에 들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칼빈은 바울이 10b절에서 성령
을 생명이라고 진술한 것은 “그가 우리 안에 사시고 통치하시기 때문만이 아니라, 죽을 육신을 멸하심으
로 그가 우리를 완전하게 새롭게 할 때까지 그의 능력으로 우리를 살리기 때문이다”고 표명한다.36) 대
표적인 영어-헬라어 사전인 바우어(Bauer) 사전은 10b절의 영을 육신이란 의미로 사용된 몸과 대조된
것으로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한다.37) 발레트(Barrett)는 바울이 인간의 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10b절의
영을 의도했다면 “영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대신 “영은 살아있다(alive)”고 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38)
브루스(Bruce)는 10b절의 영을 성령으로 간주하고 앞으로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을 수여할 것이란 의미
로 “성령은 생명이다”는 문장을 해석한다.39) 이와 비슷하게 크랜필드(Cranfield)는 발레트의 입장에 찬동
을 표하면서 10b절의 영이 성령을 가리킨다고 보고 성령이 생명이라는 말은 신자들이 마침내 죽음으로
부터 일으킴을 받을 것이란 보장으로써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임재를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한다.40)
머레이(Murray)는 비교적으로 소상하게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들어 10b절의 영(프뉴마)이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고 역설한다. 첫째로, 9절부터 11절 사이에 언급된 프뉴마는 모두 성령을 가리킨다. 만
30) Darby"s Literal Translation
31) International Children"s Bible
32) 이것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성령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
33) 이것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희를 받으셨음으로, 그의 성령이 너희에게 생명을 주신
다.
34) 이것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의로 말미암아 성령은 너희의 생명이니라.
35) 이것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성령은 정의를 인하여 생명이다.
36)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Calvin"s
Commentaries 19 (Grand Rapids: Baker, 1993), 291.
37) Walter and Arndt Bauer, W. F and Gingrich, F. W,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835.제 3판은 제 2판의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다(677쪽).
38) C. K. Barrett, The Epistle to the Romans, Harper"s New Testament Commentaries (New York:
Harper & Row, 1957),159.
39) F.F. Bruce, The Letter of Paul to the Roman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Revised ed.,
TNTC (Leicester/Grand Rapids: IVP/Eerdmans, 1990,초판 1963),155.
40) C. E. B. Cranfield, Romans: A Shorter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85),182;....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Edinburgh: T.& T.
Clark, 1975), 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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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바울이 10b절에서 이 단어를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면 이를 밝혔을 것이다.41) 둘째로, 생명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11절 초반부에 소개된 사상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11절의 핵심 주제인 육체적인
부활의 확실성에 가장 적절한 것은 신자 속에 내주하는 성령이 생명이라는 것이다.42) 셋째로, 10절에 언
급된 죽음은 단지 육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자의 영을 이러한 죽음과 대조된
것으로 보는 것은 이상하고 오히려 생명으로써의 성령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43) 넷째
로, 10절의 핵심 사상은 비록 신자들이 죽어 분명하게 몸의 소멸을 경험하겠지만 그래도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내주하시기 때문에 생명을 주시는 성령은 소멸의 능력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생명
으로써의 성령에 대한 언급은 이러한 사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44)
이와 유사하게 해리슨(Harrison)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프뉴마가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불
가능하다고 지적한다.45) 첫째로, 바울은 일관되게 프뉴마를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갑
자기 인간의 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없다. 둘째로, 바울이 “살아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생명”
이라고 기술하는 것은 인간의 영보다는 하나님의 영에게 더욱 적합하다. 셋째로, 바울에게 몸이란 단어
는 인간 전체를 가리키지 인간의 한 부분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리스(Morris)는 해리스가 제시
한 첫 두 이유와 유사하게 9-11절에서 프뉴마란 단어는 모두 성령을 가리키고 바울이 생명과 관련하여
사용하는 단어는 형용사 “alive"가 아니라, 성령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생명(life)이란 단어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이 아니라고 본다.46) 이 두 사람의 주장과 동일하게 건드리(Gundry)는 9절과 11절에서 프뉴마
는 일관되게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에 10절을 육체적인 몸의 죽을 운명에 반대하여 신자의 인간 영속에
있는 생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47)
피(Fee)는 10절에 신자의 몸과 신자의 영 사이에 대조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육체적인 부활을 언급
하는 11절의 핵심에 비추어 볼 때 10절에 언급된 영은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주장한다.48) 그는 아주 확
신 있게 10절에 사용된 헬라어 멘(mevn)과 데(dev)를 사용한 대조는 죽게될 운명을 가진 신자의 몸과 생명
으로서의 성령이며 바울은 여기서 “이미와 아직 아니다”로서의 신자의 존재를 논하는 것이라고 본다.49)
던(Dunn)은 10b절의 영을 인간의 영으로 간주하는 것은 옛 견해라고 보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현대 주석가들의 강력한 의견일치라고 역설한다.50) 그가 제시하는 두 이유는 근접 문맥에서 성
령이 일관되게 사용되었다는 점과 신적인 프뉴마와 생명사이에 연결이 너무나 견고하게 확립되었기 때
문에 본 쟁점에 대한 어떠한 실제적인 의심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현대 영역본
들은 이러한 견해를 아직 반영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51) 무(Moo)역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10절의 프
뉴마를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52) 첫째로, 프뉴마는 8장 전체에서 성령을 가리키
고 10b절을 설명하는 11절에서도 그러한 의미로 보인다. 둘째로,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절 속에 있
는 다른 단어들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53) 이들 외에도 10b절의 프뉴마를 하나님의 성령
41) John Murray,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68),289.
42) Ibid.
43) Ibid., 290
44) Ibid.
45) Everett F. Harrison, “Romans,"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10 (Grand Rapids:
Zondervan, 1976), 90.
46) Leon Morris, The Epistle to the Romans (Grand Rapids: Eerdmans, 1988), 309.
47) Robert H. Gundry, S.ma in Biblical Theology with Emphasis on Pauline Anthrop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76), 46.
48) Gordon D. Fee, God"s Empowering Presence: The Holy Spirit in the Letters of Paul (Peabody:
Hendrickson, 1994), 550-51.
49) Ibid.
50) J. D. G. Dunn, Romans 1-8, WBC 38a (Dallas, Texas: Word Books, 1988), 431.그의 이 같은 입장
은 최근에 출판된 그의 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Grand
Rapids: Eerdmans, 1998],479, 480).
51) Ibid. 그의 최근 책에서 그는 NRSV가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성령으로 교정한 사실을 환영한다(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423, 각주 63).
52) Douglas Moo, Romans 1-8, The Wycliffe Exegetical Commentary (Chicago: Moody, 1991),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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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다.54)
이상의 주장들을 종합해 볼 때, 10b절의 프뉴마를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주장하는 주목할만한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로, 이것은 흔히 지적되는 내용으로 넓게는 로마서 8장 전체와 좁게는 9-11절에
서 프뉴마는 한결같이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에 10절에 등장하는 동일한 단어도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만일 바울이 인간의 영을 염두에 두고 “영은 생명이다”고 말을
했다면 이 표현은 인간의 영에 사용되기에는 너무나 강한 표현으로 인간의 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이다. 오히려 이 표현은 성령에게 적절한 표현이며, 바울이 인간의 영을 유념했다면 그는 명사 “생명”보
다는 “살아있다”(alive)는 형용사를 사용했을 것이다. 셋째로, 11절은 10b절의 “영은 생명이다”는 말씀의
의미를 아주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b절의 “영이 생명이다”는 말씀
은 내주하는 성령께서 앞으로 죽게될 몸을 죽음에서 부활시킬 것을 염두에 두고 바울이 이 말씀을 했다
는 것이다.55)
4. 전통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구체적인 논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10b절의 영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보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인 듯하다. 필자
는 인간의 영으로 10b절을 이해한 학자들이 좀더 구체적인 증거하여 이 주장을 펴지 못했을 뿐이지 그
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 보지는 않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보는 해석이 겉으로 보기에도 더욱 설득력
있고 문맥의 흐름과 본문의 핵심 사상과 일치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본문의 의도를 도외시한 해석이란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해석하는 근거를 반박하고 뒷부분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영으로 보는 견해의 타당성을 밝히고자 한다.
4.1. 단어 pneu"ma가 일관되게 사용되었다는 주장 반박
앞서 진행된 논의에서 다수의 학자들은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특히 9-11절에서 프뉴마(pneu"ma)가
일관되게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별도의 암시가 없이 이 단어로
인간의 영을 지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빈약하다. 9
절-11절에서 6회 등장하는 프뉴마는 한번도 단일한 방식으로 사용되지 아니했다. 9절에서 프뉴마는 전
치사 ejn과 함께 관사 없이 영 안에(ejn pneuvmati), 하나님의 영(pneu"ma qeou"))과 그리스도의 영(pneu"ma
Cristou")으로, 각각 한번씩 등장한다. 10절에서는 관사와 함께 영(toV pneu"ma)으로 나온다. 11절에서는
모두 분사구의 수식을 받아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자의 영(toV pneu"ma tou" ejgeiranto"
toVn Ihsoun ejk nekrw"n)과 내주하는 그의 영(tou" ejnoikou"nto" aujtou" pneuvmato")으로 등장한다. 이들 중
에서 프뉴마의 지시 대상을 파악하기가 비교적으로 수월한 것은 분사구나 소유격의 수식을 받는 경우와
전치사와 함께 사용된 프뉴마이다. 나머지 하나는 10절에 사용된 관사와 함께 사용된 프뉴마이다.
주석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만일 저자가 독립적으로 사용된 10절의 프뉴마를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
키는 것으로 분명하게 하기를 원했다면 문맥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
란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했을 것이다. 9절에서 아무런 수식어 없이 전치사구에서 프뉴마가 사용된 것
은 4절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육과 영의 대조 속에서 그 의미가 명백하게 되기 때문에 이해가 된다.
반면 10절의 경우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그 이유는 전치사구를 제외하고 5회의 프뉴마 사용 중
53)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론적으로 해석할 경우 생명이란 단어는 형용사로 취급되고 소유의 의미를
가진 소유 대명사 “당신의”를 보충해야 한다(Ibid., 각주 107).
54) B. M. Newman and E. A. Nida, A Translator"s Handbook 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Helps for
Translator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73), 151; Herman Ridderbos,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trans. J. R. De Witt (Grand Rapids: Eerdmans, 1975),67, 539; Ernst Kasemann,
Commentary on Romans, trans.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Eerdmans,1980),224; Paul J.
Actemeier, Romans, Interpretation: A Biblical Commentary for Teaching and Preaching (Atlanta: John
Knox Press, 1985),135; Craig S. Keener,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New Testament
(Downers Grove: IVP, 1993),429; 이한수, [로마서 1:1-8장 주석](서울: 이래서원, 2002), 636.
55) 물론 성령이 현재 신자에게 생명을 수여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극소수
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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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10절만 단지 관사와 함께 그 영(toV pneu"ma)으로 나오고 나머지 4번은 분명하게 그 뜻을 명확
하게 하는 수식어와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왜 바울이 유독 여기서만 영을 수식어와 함께 사용하는
일관적인 유형에서 벗어나 단지 “그 영”이라고 표현했는가? 바울의 의도가 이 프뉴마를 성령으로 밝히
고자하는 것이었다면 이것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혼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프뉴마 앞에 사
용된 관사는 그것이 9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을 지시하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같은 단순한 설명은 대조를 형성하고 있는 단어 몸(sw"ma)이 동일하게 관사의 수식을 받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타당성이 의심된다. 이 같은 사실은 바울이 10b절의 프뉴마를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더해준다. 만일 바울이 이러한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다른 대
안은 그가 이것을 신자의 영으로 이해했다는 것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더욱 주목할 사실은 로마서 8장에서 프뉴마의 사용에 관한 것이다. 8장에서 이 단
어는 무려 22회나 나온다. 이 단어가 로마서 전체에서 34회 등장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 수치는 아
주 많은 횟수이다. 바울이 8장에서만 이 단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신자의 삶에 있어서 성령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10절
을 제외하고 프뉴마가 분명하게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 경우는 2회밖에 되지 않는다(1:9; 8:16). 이것은
프뉴마가 신약의 다른 곳에서와 같이 원칙적으로 인간의 영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
을 보여준다. 두 곳에서 프뉴마는 인칭대명사의 수식을 받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의 영을 가리키고 있음
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0절의 경우는 이 같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염두에 둔 것이
성령인지 인간의 영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프뉴마의 절대 다수의 용례가 하나님의 성
령을 의미하니 10절의 영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보는 것은 문맥 자체의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타당하지 않다. 앞에 언급된 내용과 이 사실은 10절의 프뉴마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킨다고 주장의 설
득력이 빈약함을 보여준다.
4.2. 단어 생명은 인간의 영에 부적합하다는 주장 반박
10b절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근거로 학자들은 인간의 영에
생명이란 서술어를 사용하는 것은 앞서 보았듯이 적절하지 않다고 자주 주장한다(Barrett, Morris,
Harrison).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생명이란 단어 대신 형용사 “살아있다”(alive)가 사용되었다면 10b절의
영이 인간의 영을 가리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가? 크게 두 가지 면
에서 이 주장의 정당성은 크게 의심된다. 첫째로, 신약성경에서 인간의 영이 명사 생명의 형용사적인 의
미에 가까운 “살아있다”는 단어와 사용된 경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헬라어 생명(zwhv)과 관련
된 형용사는 존재하지 않고 자동사 “산다”(zavw)와 타동사 “살게 하다”(zw/opoievw)만 있다. 여기서 타동사
는 고려의 대상에서 논의된다. 관심의 대상인 동사 zavw의 현재분사는 두 곳에서 서술어로 사용되었다
(히 4:12; 계 1:18). 그러나 이 동사가 주어 프뉴마와 함께 사용된 경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사실
은 바울이 인간의 영을 염두에 두고 표현을 하고자 했다면 “살아있다”는 형용사를 사용해야 했다는 주
장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바울이 하나님의 성령을 염두에 두고 “영은 생명이다”고 진술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8장에서 이미 성령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절에 등장하
는 “생명의 성령”(toV pneuvma th"" zwh"")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는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
으로 이해된다. 6절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는 말씀 역시 성령과 생명과의 관계를 잘 보여준
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도하는 생각을 할 때 신자가 종말론적인 생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6:4에 사용된 "생명의 새로움"(ejn kainovthti zwh"")과 7:6에 사용된 “성령의 새로움”(ejn kainovthti
pneuvmato")의 비교는 생명과 성령이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더 나가서 생명의 역
사는 성령께서 신자에게 베푸시는 역사임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이 같은 사실은 바울이 명백하게 “성
령은 생명이라”고 진수하지 않아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임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정이 이와 같
기 때문에 바울은 10b절에서 “영은 생명이다”고 말할 때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염두에 두고 말할 수밖
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56) 그렇다면 바울이 굳이 10b절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다른 구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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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성령과 생명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
한 질문은 역으로 바울은 성령을 염두에 두고 10b절을 진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진술이 더욱 필요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4.3. 11절이 10b절의 구체적인 설명이라는 주장 반박
10b절의 “영은 생명이다”는 진술을 생명을 수여하시는 성령의 활동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의 대다수
는 미래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는 앞으로 신자들에게 육
체적인 부활의 생명을 주실 것이란 의미에서 성령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령이 신자들
에게 생명을 주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11절의 진술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서 내주하시는 성령을 말미암아 마침내 죽을 몸에 생명을 수여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식은 문제가 있다. 사실 11절은 10b절의 구체적인 진술이기보다는 10a절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란 문장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이것은 세 가지 점에서 그렇
다. 첫째로, “몸은 죽은 것이다”란 표현과 “죽을 몸”이란 표현은 거의 동의어에 가깝다. 둘째로, 10a절과
11절에 여러 공통적인 단어들이 등장한다(너희, 그리스도, 몸, 형용사 “죽은”[nekro"]). 셋째로, 11절은
앞으로 신자의 몸에 피할 수 없는 육체적인 죽음의 운명이 지금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지만 앞으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 곧 하나님께서 내주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까지도 궁
극적으로 해결하실 것을 천명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10-11절을 아래와 같이 ABA"의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A: (10a)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이 사실이라면,
한편으로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B: (10b) 다른 한편으로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니라.
A": (11) 만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자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자가
너희의 죽을 몸들도 너희 안에 내주하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릴 것이다.57)
위에 구조에 대하여 좀더 설명해보자. 10a절에 언급된 “(너희의) 몸은 죽은 것이다”는 서술에 대한
거의 일치된 해석은 신자는 아직 육체적인 죽음의 운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58) 바로 이 점에
서 신자에게 시작된 구원의 완성은 미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시작과 그 완성 사이에 놓여
있는 신자의 몸은 여전히 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신자의 몸은 죄의 몸이며
(6:6), 죽을 몸이며(6:12; 8:11), 사망의 몸이다(7:24). 신자들의 지체 속에는 죄가 거하기 때문에(7:23) 언
제든지 그 지체가 죄의 도구로 불의에 드려질 수 있다(6:13). 그래서 신자의 몸이 죄에서와 궁극적으로
는 육체적인 사망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전에는 몸의 구속은 신자의 종말론적인 기대로 남아있다(8:23).
신자가 바라는 것은 몸으로부터의 구속이 아니라 몸과 몸의 지체들이 죄의 도구로 사용되는 데서부터의
구원이다. 이와 같이 아직 구원을 받지 입지 못한 신자의 죽을 몸이 앞으로 예수님의 죽었던 육체에 나
타났던 부활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을 11절이 분명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1절은 곧 10a절에 묘사된 신
자의 육체적인 사망의 운명이 마침내 하나님께서 내주하는 성령을 통하여 몸에 베푸실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극복될 것임을 명확해준다.
11절에서 주목할 표현은 “너희의 죽을 몸들” 앞에 사용된 접속사 kaiV이다. 이 접속사는 언뜻 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같이 너희들의 죽을 몸들도 살릴 것이란 의미를
56) J. D. G. Dunn, Romans 1-8, 431.
57) 이태릭채로 된 것들은 10a절과 11절 사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
58) 극히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을 신자의 몸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육체적인 죽음의 운명을 말하는 것
으로 이해하지 않는 신자가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것으로 이해한다
(Barrett, The Epistles to the Romans, 159; Kasemann, Commentary on Romans,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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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게 하는 것같이 보인다. 물론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렸다는 표현이 11절에 두 번 등장하
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이 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 접속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10b절의 내용과 대비하여 이해할 때 저자가 여기서 말하
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10b절의 진술이 신자의 영이 생명, 곧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수여 받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본다면, 11절에서 목적어 앞에 접속사 kaiV의 사용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영에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부여한 것과 같이 신자의
죽을 몸에도 동일한 생명을 수여할 것이란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접속사를
사용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란 표현은 10b절의 영이 이미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
는 것으로 보인다.59)
4.4. 10절에서 신자의 몸과 영의 대조
10절의 언급된 몸이 신자의 몸을 가리킨다고 하는데는 대체적으로 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몸이 인간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the whole person)를 지시한다고 주장하여 이 속에 인간의 영도 암시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10b절에 언급된 영은 인간의 영이 아니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60) 학자들은 설사 10a절이 신자의 몸을
가리킨다고 해도 이것은 자동적으로 10b절의 영이 신자의 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이 타당한가에 대하여 여기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10절의 구문론 구조에 비추어 생
각해보자. “만일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것이 사실이라면”은 문장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 조건절에
해당되고, 대조의 접사 meVn과 deV의 수식을 받고 있는 구절은 귀결절에 해당된다. 귀결절의 내용 해석은
구문 구조상 조건절에 지배를 받게 된다. 이것을 귀결절에 적용해보자. 조건절의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
희 안에 계신 것이 사실이라면”을 이어받는 귀결절의 상반부에서 “그 몸”(toV sw"ma)은 조건절의 인칭대
명사 너희에 의하여 제한된다. 이 점에서 그 몸은 단순한 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시는 너희의 몸이
란 의미를 가진다. 또한 귀결절의 하반부 그 영(toV pneu"ma)은 몸과 대조를 형성하고 있는 너희의 영이란
의미를 자연스럽게 가진다. 관사가 경우에 따라 인칭대명사의 기능을 대신하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것
은 무리되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61)
이와 같은 주장에 힘을 더하는 것은 단어 sw"ma와 pneu"ma가 같은 문장에서 사용될 때 두 단어 모
두 인간의 구성요소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고전 5:3의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ejgwV
meVn gavr ajpwVn tw"/ swvmati parwVn deV tw"/ pneuvmati)란 문장은 로마서 8:10과 같이 meVn과 de의 대조를 가지
고 있다. 여기서 몸과 영은 인간의 두 구성 요소이다. 고전 7:34의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
되”(i{na h/ aJgiva kaiV tw"/ swvmati kaiV tw"/ pneuvmati)란 문장도 롬 8:10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
만, 몸과 영이 롬 8:10에서와 같이 각각 관사의 수식을 받는다. 그래서 몸과 영은 막연한 몸과 영이 아
니라 문장의 주어인 처녀의 몸과 그의 영이다. 살전 5:23의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란 구절에서 영과
몸이 인간의 구성 요소로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약 2:26의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
이”에서도 역시 몸과 영은 인간의 두 구성요소를 가리키는 용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바울은 공동체로서
몸(교회)을 말할 때 두 단어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는 있어도(고전 6:19; 12:13) 개별적으로 인간의 몸과
59) 이러한 주장의 설립 가능성은 고전 4:10의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도 우리 몸에 나타내게 하려함이라”(i{na kaiV hJ zwhV tou" jIhsou" ejn tw"/ swvmati hJmw"n fanerwqh"/) 말씀
속에 보인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표현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내려 한다는 목적절이다.
Gundry가 잘 입증하듯이 여기서 몸은 다른 곳에서와 같이 인간의 육체적인 측면을 의미한다(S.ma
in Biblical Theology, 31-32). 그렇다면 이것은 아직 신자의 몸에 예수님의 생명, 곧 그의 부활생명이
주어지지 아니했다는 로마서 6-8장에 나는 주장과 일치한다. 동시에 이 구절 속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신자의 영혼에게는 주어졌다는 암시가 전제되어 있다.
60) Gundry는 이러한 주장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이 주장은 10a절과 11절에 각각 언급된 몸 사이에 완
전한 단절이 있다면 가능하지만 단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완강하게 거부한다(S.ma in
Biblical Theology, 38-43).
61) Daniel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An Exegetical Syntax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1996),215-216.
하나님의 성령을 같이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롬
8:13에서 신자의 개별적인 몸과 성령이 함께
언급되었지만 이것은 영이 육신과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성령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
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롬
8:10에 언급된 몸과 영은 몸이 그리스도의 내주함을받
는 신자의 몸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영도 동일한 신자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인다.
4.5. 로마서 6-8장의 문맥적인 고찰
우리는 여기서 10b절의 영을 중생 한 신자의 영으로 간주하는 해석을 지지하는 문맥적인 고찰를
하고자 한다. 여기서 논의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신자의 삶을다루는 로마서 6-8장 중심으로 전개될 것
이다. 6-8장에서 공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바울이 신자의 삶을다루는 가운데 신자의 몸과 지체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된 관점은 바울이 아직
신자들의 육체에 주어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그들의 영에게는 주어졌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야기한
다. 바울은 6장에서 그리스도와 세례로연합한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신자가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수 없음을 주장한다(1-4절). 세례를 통한 신자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
사지냄과부활에 나타난다. 그의 죽으심과 장사지냄과부활은 신자의 죽음, 장사지냄과부활이다. 그런
데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으로 그에게 단번에 완전하게 나타났는데 비하
여(4-5, 9-10절) 그와 연합한 신자에게는 이미 완성된 부분과 아직
성취되지 아니한 부분으로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그와 연합한 신자의 몸에 나타나지 아니한 사실을 강조
한다. 이 점을 보여주는 내용들은 5절의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절에 언급된 아직
진멸되지 않고현존하는 “죄의 몸”, 8절의 “그와 함께살 줄을 믿노니”, 12절의 “너희 죽을 몸” 등이다.
이러한 내용들과 함께 몸의 사욕이란 표현(12절)과 신자의 몸의 지체들이 여전히 죄의 병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가 친히경험한 육체적인 부활의 생명이 신자의 육체에는 아직
수여되지 아
니했음을 분명하게 해준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지금 현재
전혀참여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
된다. 만일 그렇다면 신자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말 것이고 이는 곧
바로 신자는 전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아니했다고 주장으로 나가게 될 것
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바울은 신자의 몸에 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전혀
주어
지지 아니한 것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신자의 영에게는 적용하지 아니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자는 현재
생명의 새로움속에 존재한다(4절). 여기서 생명의 새로움은
신자가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말한다. 6절은 신자의 죄의 몸이 진멸되기
위해서 그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처형된 사실을 밝힌다. 신자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 사실
이라면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새 사람은 살아난 것을 전제하거나 암시한다. 이러한 전
제는 12절의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는 권고에 나타난다.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은 옛
사람이 이미 죽었기 때문
이요 하나님께서 대하여 산 것은 비록
신자의 몸은 아직
죽음을 벗지 못했으나 그의 새 사람(영)은 죽
음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13절의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라”는 표현은 권고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가 부활
생명에 제한적인
의미에서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자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그의 새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죄에게서 결정적으로 해방되고 의의 종
혹은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다(18, 22절). 바울은 신자의 몸은 한편으로 아직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신자는 그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이중적인 진술을 하면서 아주 간단하게 신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으나 신자의 중생 한 영은 이미 그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바울은 몸의 처신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권고를 내리면서 영의 처신에 관하여는
아무런 권고를 내리지 않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비록
바울이 명백한
10
11
언어로 노골적으로 신자의 영이 중생을 하여 예수님의 부활 생명에 참여한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그의
의식 속에는 신자의 영이 부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7장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접한다. 7:14-25에서 심각하게 갈등하는 “나”의 존재를 어떻게 해
석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아직도 논쟁되고 있는 과제이다.62) 나의 정체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취하든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죄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은 선을 원하는 자아 자체에 있지 않고 그의 지체 속에 죄
가 거하는데 있다(17, 23절). 여기서 “나”란 존재는 다양하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21절), “속 사
람”(22절)과 “마음”(23, 25절)으로 표현된다. 동시에 이러한 존재는 자신의 몸으로 자신이 친히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자신 속에 거하는 죄에 있다(17, 20절). 이
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죄가 자신의 지체 속에 거하는 것으로 표현된다(23절). 선을 자신의 마음 중심으
로부터 원하는 자신의 지체 속에 죄가 거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속 사람과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망의 몸을 벗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란 존재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24절). 이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의 근
본적인 고민의 원인은 그 사람의 자아 자체에 있지 않고 그의 몸과 지체가 죄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
하고 있다는 데 있다.
8장에서 육의 영역에 속한 사람, 곧 불신자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이중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 불신자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의 문제뿐만 아니라, 굴복할 수도 없
는 무능의 문제를 벗지 못하고 있다. 반면 7장에 등장하는 “나”는 이러한 불신자와 대조적으로 마음 중
심으로부터 선을 원하고 이를 행하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다. 사실상 그가 행하기 원하는 선은 문맥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선한 것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다(12-13, 16절). 다시 말해서 그가 원
하는 선(19, 21절)과 선한 것(13, 16절)은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결코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자연인일 수 없다. 만일 이 사람을 신자로 보는 전통적인 해석이 옳다고 인
정한다면 우리는 7장에서도 6장에서와 같은 동일한 핵심을 주목하게 된다. 이 사람에게 변화된 마음
(nou"")과 속 사람이 있다는 것은 중생을 말미암은 영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죄를 벗지 못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생명이 아직 그의 몸에
주어지지 아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와 비슷하게 8장에서 바울은 신자의 윤리적인 삶과 관련하여 영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신
자의 영은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되어 신자가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한다(16절). 신자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몸의 그릇된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13절). 여기서 몸은 10절과 11절에 언급
된 아직 죽음을 벗지 못한 육체를 말한다. 이 몸은 동시에 죄에게 이용당할 수 있는 죄의 몸이며(6:6),
사망의 몸이다(7:24).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권고 속에는 포괄적으로 영의 그릇된 행실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지는 않다. 23절에서도 신자의 고민은 그들의 몸이 아직 구속을 받지 못한데서 발
생하는 고민이다. 몸의 구속이라는 표현은 신자의 영이 이미 구속을 받아 예수님의 부활생명을 소유한
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바울은 신자의 영이 구속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결코 가지고 있지 않지 때
문에 몸의 구속만 언급한 것이라고 하거나 몸이란 표현은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이므로
영도 여기에 포함한다고 말할 수 없다.63) 바울이 왜 8장에서 영에 대한 언급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는 이미 6-7장에서 신자의 영이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에 전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간접적
으로 암시했고, 또한 8:10b에서 아주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내주함을 받는 신자의 영은 생명이라는 뜻으
로 말씀했기 풀이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바울이 8:10b에서 “(너희의)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는 놀라운 선언은
62)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중생한 신자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 본인의 입장이나 여기서는
논문의 범위 밖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입장이 타당한 것으로 전제하고 심도 있게 논하지 않는다.
63) Gundry는 몸을 인격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Bultmann의 인간론에 절대적인 영향으로
말미암아 학자들 사이에 만연한 사상을 그의 책에서 체계적으로 잘 논박하면서 바울에게 몸(sw"ma)은
인간의 육체적인 측면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S.ma in Biblical Theology,
32-33, 36-37,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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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로마서 6장부터 간접적으로 밝혀온 암시적인 진리를 표면위로 명백하게 떠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진술로 보는 것이 옳다. 바울의 의도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6-7장에서 신자
의 중생한 영이 예수님의 부활생명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고 암시해왔는데 바로 이 암시적인 진리를 10b
절에서 명백하게 공개한다”라는 취지로 “(너희)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고 선언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5. 10절에 대한 간략한 설명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주장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10절의 해석을 좀더 명백하게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조건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것 이 사실이라면”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바울은 이미
9a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속에 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너희는 육신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고 성
령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밝혔다. 바울은 9b절에서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소개하면서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그의 사람, 곧 그리스도의 사
람이 아니라고 천명한다. 그리고 10a의 조건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란 표현을 뛰어
넘어 “만일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라고 그의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킨다. 하나
님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신자 속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신자 속에
게 거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이 문장 속에 들어있다.
귀결절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내주함을 받는 신자의 이중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신자
의 몸은 한편으로 죄로 인하여 죽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상태이고, 그의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라는
것이 두 번째 내용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설명하지 아니했던 “죄를 인하여”란 표현은 신자의 개별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의 최초 원인으로 작용했던 아담의 죄(불순종)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반적
으로 이해된다. 바울은 5장 12-21절에서 두 아담에 관한 논의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죽다”(nekrov")
형용사인 서술어는 11절에 실명사로 두 번 사용된 “죽은 자들”과 같은 형용사이다. 너희 몸이 죽었다는
것은 이미 죽어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죽음의 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표현한 말이다.
바울은 신자의 육체가 아직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수여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 부활의 때에 몸이
구속을 받기 전에는 신자들에게도 육체적인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지
만 이러한 죽을 운명은 하나님께서 신자 속에 내주하는 그의 성령을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해결하실 것
이기 때문에 잠정적인 것이다(11절). 그 이전까지 신자의 육체는 죽을 몸, 죄의 몸이란 칭호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구원의 미완성 상태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신자의 영은 죽을 육체와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10b절의 “(너희의) 영
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는 말씀은 앞선 다양한 논의에서 다루어졌다. 10a절에 언급된 “죄를 인하여”와
병행구를 형성하는 “의를 인하여”란 전치사 구는 마지막(둘째) 아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신자
에게 주어지는 의를 인하여 란 의미를 가진다. 로마서 5장에서 첫째 아담과 연결된 단어들은 죄(불순종)
와 정죄와 사망이나(16-17절) 마지막 아담 예수님과 연결된 것들은 의(순종)의 행동과 칭의와 생명이다
(18-19절). 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신자의 영이 생명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구속 성취로 말미암아 신자
의 영이 생명을 수여 받게 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생명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 생명이다. 저자는 여기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으나 신자의 영이 예수님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게 된 시점은 그들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중생을 했을 때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와 골로새서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 또는 살리심을 받았다 말할 때
신자의 중생으로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엡 2:1, 5; 골 2:12-13; 3:1). 이때 신자의 죽었던 영은 예수님
의 부활 생명을 수여 받아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사람)가 되었다(골 3:10). 따라서 신자는 그들의 영 속
에 주어진 생명이 아직 그들의 죄의 몸 또는 죽을 몸에도 나타나도록 성령의 주권적인 인도를 받아 몸
의 죄악 된 행실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8:13).
로마서 8장 10절은 신자가 이와 같이 구원의 종말론적인 긴장사이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영이 중생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 생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실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참여
하지 못하고 있어 죄의 몸과 죽을 몸으로 특징지기 때문에 종말에 가서야 완성될 구원의 실제에 놓여있
다. 따라서 신자는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한 구원의 실제사이에 살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신자는 그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몸의 모든 지체가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의 삶을 살아야하는 명령을 요구받는다(6:19). 이미 시작된구원의 완성을 하나님
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부활을 통하여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8:11) 그날
곧
몸이 죄의
지배와 죽음의부패에서 완전하게 구속받는 날이 오기까지(8:23) 몸의 죄악
된 행실을 죽이며
살아야
할
윤리적인 당위성(명령법)을 부여받는 것이다. 64)
나가는 말
지금까지 본 논문은 10b절의 “영은 의를 인하여 생명이다”는 문장에서 영(프뉴마)의 의미를 규명
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 글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논의를 전개했다. 첫째로, 여기에 언급된
영을 중생 한 신자의 영으로 보는 역본들과 주석가들의 주장을 검토했다. 그 결과 우리는 많은 영역본
과 한역성경이 해당된 영을 인간의 영으로 이해하고 있음을보았다. 둘째로, 이러한 전통적인 주장과 입
장을 달리하는 역본들과 주석가들의 주장에 대하여 토의를 했다. 이 토의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학자들
이 무슨
근거로 10b절의 영을 왜
인간의 영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성령으로 이해하는지 점검했다. 그
결과 학자들은 몇
가지 공통된 이유를 들어 성령으로 보는 견해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것을 확인했다.
셋째로, 필자는 전통적인 입장을 단순하게 반복하지 않고 좀더 새롭고 구체적인 증거에 근거하여 인간
의 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 주장했다.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전통적인
견해에 반대하여 제기하는 핵심 요소들을 언급하면서 하나씩
반박을 했고, 뒷부분에서는 긍정적으로 문
법적인 고찰과문맥적인 고찰을 통하여 인간의 영으로 보는 것이 바울의 입장을 바로 파악하는 것이라
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10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통하여 인간의 영으로 취하는 입장의 윤리적인 의
의를 간략하게 논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본 논문은 10b절의 영은 중생의 신자의 영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해석이 문
법적인 고려와 단어의 용례등을 포함한문맥적인 흐름에 비추어 볼
때타당하며, 11절을 10b절의 확대
된 설명으로 간주하는 것이 부당함을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해석은 10b절의 진술을 바울이 로마서 6-8
장에서 지금까지 암시적으로 제시했던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확증한다.
64) 이와 관련하여 유상섭, “바울 신학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의 관계”, 총신대논총
제19호(2000):
331-335를 참고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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