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7.인간지식을 가지는 범위는
VII.인간지식을 가지는 범위는?
인간지식을 종으로 붙들어 가져야 복되다는 것은 확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인간지식을 복되게 가지는 것은 어떤 면으로 살펴야 하겠는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기준에서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진리와 영감을 어기며 가지는 지식은 필연코 복없는 지식이 된다.
성경과 신앙양심을 통하여 역사하는 영감을 어기면서 가지는 인간지식은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시작부터 위치를 잘못 가지는 복없는 인간지식이 된다. 시작에 잘못된 지식은 반드시 후회할 지식이 된다. 혹 생각하기를 이 인간지식을 가진 다음 후에 사용할 때는 종으로 붙들어 쓰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드시 자기에게 복없게 사용되어진 지식임을 본인이 후회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지식을 취할 때는 지식자체와 위치도 바로 알아야 하지만 받아들이는 범위도 반드시 성경과 영감의 범위 안에서 가져야 한다.
2.하나님의 지식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져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1천명의 군사를 거느릴 실력의 왕은 군사가 1천명 이내라야 자기에게 필요한 군사가 된다. 자기 실력을 넘어서는 군사의 숫자는 반드시 자기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또 신하의 실력도 자기가 자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실력을 가진 신하라야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만일 자기의 실력을 능가하는 신하라면 이도 역시 자기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경우다.
따라서 인간지식을 받아들일 때는 내 속에 주격으로 있는 하나님지식의 실력과 통제 범위내에서만 받아들여야 한다. 만일 인간지식을 배우다가 인간지식의 양과 정도가 하나님지식의 통제 범위를 넘어가게 되면 즉시 중단을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지식을 더 보강한 다음 인간지식을 계속 취하던지 아니면 인간지식 이상의 하나님지식을 동시에 계속 보충을 하던지 어쨌던 한번 주격의 위치가 흔들리면 이에 대한 만회는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야할 일이다.
3.왜 신앙의 학생들이 자랄수록 신앙에서 멀어지는가?
세상 학교의 학년이 올라가고 진학이 거듭될수록 학생들의 도덕과 태도는 점점 점잖아지는 것 같고 철이 들어 예의 범절은 알아가는 것같은데 속에 있는 믿음은 가속도로 죽어지고 힘을 잃는 경우를 허다히 보고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일 것이다.
1)속화 1기
어릴 때 전적 순전함으로 순종해오던 신앙이, 또 불같이 타오르던 학생들의 신앙이 어느새 새 힘을 잃어버리는 데에는 이미 그들 속에 스며들어가는 인간지식이 점점 세력을 모아 이제 하나님지식을 흔들어 버린다. 이때가 바로 말없는 가운데 자기 속에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때이다.
> 이때 부모들의 입장은 자세는 어떠한가? 제법 신앙의 부모라 해도 어린 자식의 신앙은 의례껏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세상지식을 가르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밀어붙이고 있다. 두 지식의 위치나 인간지식의 위험성, 인간지식을 가지게 하는 범위에 대하여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2)속화2기
여기서 점점 더 진행하게 되면 내적으로는 인간지식이 완전히 주격의 위치를 차지해 버린다. 그동안 믿어오던 습관이 있어서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표는 얼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내적으로는 신앙에 선을 그어 버렸다. 이때가 되면 부모들은 자식의 신앙이 눈에 띄게 흐미해지는 것을 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공부해서 대학이라도 들어가면 그때 가서 못 다 한 신앙생활은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또 어릴 때 신앙은 철없는 철부지의 멋모르고 다니는 신앙정도로 생각한다. 물론 신앙생활도 잘 하면서 공부를 잘하면 좋겠지만 학년이 높아갈 수록 학교 공부시간에 쫓겨서 사실상 하나님지식을 주격위치에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조처는 알더라도 일부러 외면해 버린다. 신앙은 뒤에 기회가 있을 줄로 간단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3)속화3기
이제 대학이나 졸업이라는 활동의 자유가 주어지는 때가 되었다. 대학을 들어간 학생이면 그때부터 대학의 초강력 인간 고등지식이 물밀듯 밀고 들어간다. 이미 주격위치는 내적으로 확보한 상태에서 강력한 후속부대가 들이 닥치니까 그때까지 믿어온 신앙은 하루아침에 스러져 버리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제 도덕의 종교, 수양의 종교, 습관의 종교 정도이지 자기의 영생을 좌우하는 절대성의 신앙이라는 것은 아예 거리 먼 신앙이 되었다.
졸업후 사회로 나가는 경우도 그러하다. 대학으로 간 학생들이 인간고등학문의 세력에게 유린을 당하고 있는 반면 사회로 나간 학생들에게는 물질로 우상이 되어 하나님의 자리를 물질이 차지하고 있던지 아니면 직장이, 직장의 상사가 아니면 사회에서 사귄 친구가 하나님지식의 주격자리를 이미 빼앗고 있던 인간지식을 응원하는 후속 보강 부대가 되어 인간지식이 부동의 주격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4) 속화4기
이제 예배 참석의 횟수가 줄어져도 걱정만 하고 있던 부모에게 어느날 담배꽁초가 발견되면 그런 도덕적 타락에 접해서야 부모들은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세상 도덕 수준의 타락에 기준을 둔 걱정이기 때문에 주격다툼의 이 지식 싸움의 본질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미 대세는 끝난 전쟁이다. 탈환의 전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탈환의 전투는 단언코 처음 주격위치를 가졌을 때 그 자리를 지키는 전투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전투가 된다. 거의 불가능하다 할 만한 전투라는 것이 신앙의 경험이다. 그렇게 내버려둔 그 심정, 그 신앙으로는 어림없는 강하고 억센 인간지식이다.
5) 결과
이제 하나님이 어릴 때의 그 신앙을 기억하시고 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구원역사를 착수하기까지 십년, 혹은 수십년의 세월도 그냥 흘러 가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길 찾아 나간 둘째 아들의 마지막 결산이 완전 실패로 끝나듯이 하나님의 사랑이 그래도 그를 붙드시고, 또 뒤에라도 애통하고 가슴치는 부모의 기도가 있으면 이 기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더 일찍 끌어 탕자된 그에게 역사하게 된다.
돌이키는 길에는 많이 배우고 고급을 배우고 세상 성공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많이 맞고 많이 깨져서 돌아온다. 이렇게 돌아 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원하여 피 흘려 주시니
믿습니다. 믿습니다. 구주 믿습니다."
"믿음의 근원 되신 주 나 바라봅니다.
주 구원하지 않으면 영 멸망합니다.
내 죄를 씻기 원하여 피 흘려 주시니
믿습니다. 믿습니다. 구주 믿습니다."
지나간 수십년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니 부모로서 자식을 신앙으로 바로 기르지 못한 후회뿐이다. 세상까지 결국은 다 실패를 했다. 차라리 1, 2 년 공부가 늦어질 망정 신앙의 때를 놓치지 말 걸 . . . ,차라리 일류대학 대신 이류대학을 가게 하고 그대신 신앙의 사람으로 계속 되게 할 걸 . . . , 공부에 여간 지장이 있더라도 신앙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간과 정성은 계속되게 할 걸 . . .
이것이 수십년 경험해 본 신앙의 가정들에 결론이다.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원인이 어디 있었던가? 신앙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관심이 적었던 것일까? 실은 자식이 우상이 되었던 것이다. 실은 물질이 우상되고 세상이 좋았던 것이 깊은 속의 원인이었다.
4.속화예방법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복있는 학생이라면 스스로 두 지식의 위치와 관계를 늘 관리할 것이요, 자기 자식이 어린 신앙이라 여기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면 부모가 옆에서 관리를 할 것이다. 학년이 높아갈수록 세상 공부의 도수가 높아갈수록 이를 통제하고 이를 종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하나님지식을 더 붇돋우고 이면에 신앙교육을 늘 게을리 말 것이다.
일주일에 6일을 하루에 7-8시간 학교공부와 3-4시간의 자습이 따라가야 하는 고학년의 공부를 어떻게 어느시간에 무식한 부모가 관리할 것인가? 또 유식한 부모라도 얼굴도 맞대기 어렵게 바빠지는 고학년의 자식들, 그기다가 10대의 반발심까지 곁들이는데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 사람으로서는 자유하지 못할 지식 부자도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 했으니 분명히 힘쓰면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다. 또 유모 시절 요게벳이 남의 눈을 피해가며 어린 젖먹이 모세의 귀에다 새겨 놓은 하나님지식은 40년간 애굽 왕국 왕궁의 최고 학문이 모세에게 밀고 들어 와도 늘 종으로만 소유격으로만 받아 들이게 되어 능히 인간지식을 발아래 밟는 모세가 되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특히 인간지식이 하늘까지 찌르며 올라가는 이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교훈인 것이다.
자기가 먼저 바른 지식관을 가지고 인간지식에 대하여 바르게 살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신앙의 자식, 신앙의 후배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른 지식관으로 자라도록 인도하는 이 면이 말세 이 세대를 사는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새길 신앙의 면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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