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목사님은 개명교회 청년 중 3명(이재순 최재현 등)을 진행강좌에 파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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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둘째줄 오른쪽 부터 이경석, 다음 이인재, 왼쪽 네번째 황철도 목사, 옆에 김차숙 사모, 첫줄 왼쪽 두번째 이경석 목사 사모, 오른쪽 네번째 박인순, 왼쪽 일곱번째 김복주이, 맨뒷줄 오른쪽 세번째부터 이장수, 남영환 목사, 왼쪽 첫째 김응도 목사)
고려신학신학교 설립 기성회는 신학교 설립의 전지작업으로 1946년 6월 23일부터 8월 10일까지 만 6주동안 진해에 해군 훈려소로 사용되었던 건물에서 박윤선 목사를 강사로 신학강좌를 열었다. 당시 이건물은 강주선 목사가 시무하던 진해교회가 예배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이때 강의한 과목은 성경신학, 조직신학, 창세기, 시편, 로마서, 히브리서, 계시록이었다. 당시 수강생은 63명이었으며, 수강이 끝난 후 수강증서가 주어 졌다. 이 강좌에 참석한 분들 중에는 신설되는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목사가 된 분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잘 알려진 분들이 손명복, 이인재, 황철도, 최성봉, 이경석, 홍반식 목사 등이다. 이 진해 신학강좌가 고려신학교의 신학교육과 연결된 셈이며 고려신학교 설립의 준비작업이었다.
진해신학강좌가 계속되는 가운데 1946년 7월 9일 진해읍교회에서 경남47회 임시노회가 열렸다. 주남선 목사가 노회장에 추대되고 과거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의 전통을 계승할 개혁주의 신학교의 설립이 시급한 상황에서 출옥한 주남선, 한상동 목사가 제기한 신학교 설립을 크게 환영하고 설립을 인가하였다. 또 신학교 기성회가 경남노회의 원조를 요청했을 때, 이를 쾌이 허락하고 학생추천과 지원도 약속하였다.
평양장로회신학교의 신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바른 신학운동을 위해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목사와 함께 " 고려신학교"를 1946년 9월 20일개교하였다. 박윤선 목사를 교장서리 하고 부산진에 있는 금성중학교(구일신여학교) 교실하나를 빌려 개교예배를 드렸다.
참고문헌: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출판국, 2002. p.321
허순길저.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영문, 1996.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