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60년대 초반의 보수 교회사 - 박 윤선, 이 인재, 백 영희 관련
박 윤선 목사님에 대한 위치는 한국 보수 교계에서는 절대적이나, 박 목사님 관련 연구는 일반 교계가 그들의 관심에서 진행하였으므로 이 노선이 가지고 있는 관심 내용은 찾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일반 교계에 이 노선과 교훈이 폭넓게 전해 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박 목사님의 신앙 생애 중에서 이 노선과 특별했던 내용을 따로 모아 봤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는 따로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자료로 이 곳에 배치했습니다.
자서전
p.257 연보
1905. 평북 철산군 태생
1931. 평양 숭실전문학교 영문과
1934. 평양 신학교
1936. 웨스트민스터 Th.M
1938. 평양 신학교 원어 강사, 총회 주석 편집부 근무
1939. 웨스트민스터 변증학과 원어 연구
1940. 만주 봉천 오가황교회 목회
1943. 만주 봉천 동북신학교 교수
1945. 만주 안산에서 성경 주석
1945. 귀국하여 고향 거주
1946. 월남
1946.09. 부산 고려 신학교 교장서리
1960.10. 부산 고려 신학교 사임
61.2.-64.4. 서울 서대문 동산교회 목회
1963.03. 서울 사당동 총신 교수
65.3.67.2. 총신 부산 분교 교수 및 좌천동 성산교회 목회
1067.-74. 서울 사당동 총신 교수
1968.6.-73. 서울 노량진 한성교회 개척 목회
1974. 총신 교수 70세 은퇴
1974.-79. LA 성경 주석
1979.3. 서울 총신원장 취임
1980.11. 수원 합동신학원 원장
1988.7. 소천
p.39 "하나님 지식‘
누가 만일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에 있는 도서관들을 다 돌아다니면서 성경 이외의 다른 책들을 모두 다 읽는다 해도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기대할 수 없다.
p.58 "평생 친구‘
방지일 목사와 김진홍 목사는 평생 가까운 친구요 동역자로서 많은 충고로 나를 도와주곤 했다.
p.75 "사람 연구‘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있는 동안 틈틈이 화란어를 자습하였다. 삼대 칼빈주의 학자 중 두 사람(카이퍼, 바빙크)이 화란 사람이니, 그들의 신학 체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란어를 고 d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화란어 주석과 교리학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곧, 카이퍼, 바빙크, 크로솨이데, 크레다너스, 스킬더 등의 저서들을 접하게 되었고, 특히 바빙크의 개혁 교리학을 애독함으로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p.82 "영적 해석‘
영적 해석이란 것은 문자적 해석을 하는 가운데서 종합적 해석을 하게 되고, 그 본문이 정확하게 의미하고 있는 진리를 바로 찾아낼 때에 그것이 영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p.95 "사색‘
신학은 성경을 교리적으로 사색하는 학문이다... 신학의 근거와 규준은 성경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자들 중에는 신학을 말함에 있어서 인간의 철학에 근거하는 이들이 있다. 성경은 성경의 원리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리적인 사색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p.108 "서울 동산교회 목회‘
1961 년 1 월에 서울 서대문 동산교회에 부임하여 3 년 동안 목회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에 굳게 서는 교 회를 이루게 되었다. 이 교회는 나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위로와 사랑의 산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그 교회가 개척 교회이니만큼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목회하는 동안 나 자신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산교회를 목회하면서 탈고한 성경주석은 15권인데 이것을 세 권으로 편집하여 발행하였다.
p.111 "침묵정진‘
박윤선 휘호
p.135 ‘고신 사임 후 형편’ - 방지일
필자는 몇 년 후에 그가 고려신학교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부산 어느 교회의 집회에 들렀다가 박 목사님이 계신 데를 찾아갔다. 그가 동래 어느 골목의 작은 초가집에 거처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그는 여상한 나다나엘이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다. 그가 나와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중에 어느 여신도 한 분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와서 그 곳에 내려놓고 가는 것이었다. 살펴보니 쌀이었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하는 심정에 나는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p.136 "강단 교류‘
한국 교계처럼 폐쇄된 교계도 없는 것 같다. 물론 함부로 개방하자는 것이 모두 다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자신이 맡은 강단에 자신이 믿을 만한 강사를 청할 수는 있어야 하는데 한국 교계는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졌는지라 그렇게 되지 않는 많은 경우가 있다. 교단이 다르면, 청하고 청함을 받는 그 일에 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목사님은 고려진영, 필자는 통합진영이었다. 물론 평양시절과는 다른 점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필자는 당회에 제의하여 박 목사님을 청하기로 결의를 보았다. 박 목사님을 청하니, 그는 ‘거기에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계속 강하게 요청했더니 허락하셨다.
문제의 인물이 집회를 인도한다고 하여 고려진영, 합동진영, 타교단의 목사들까지, 목사만도 40여 명이나 참석했다.
p.137 "소속, 교회법 탄력 적용‘
필자가 아직 제주도에 있을 때에 서울에서 오신 분이 ‘박 목사님은 동산교회에 부임하셨습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필자가 돌아오자 박 목사님께서 찾아오셨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박 목사님의 말씀이, ‘교회는 중립도 좋지만 목사는 소속이 없으면 치리회의 제약을 받지 않게 되므로 그렇게 되면 안돼요. 목사는 반드시 치리회에 소속이 되어야 해요’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목회자를 기르는 신학자로서의 귀한 교훈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사는 강단생활이 없으면 생명력이 약해진다. 실로 옳은 말이다. 그리고 목사는 치리회에 속해서 반드시 치리회의 제약을 받아야 된다는 말씀도 지당한 말이었다. 목사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된다. 치리회가 없다면 목사가 과오를 범했을 때에 누가 그의 허물을 심문하겠는가? 과연 지당한 말씀이다. 이는 신학도를 길러내는 신학자의 옳은 경해이다.
하루는 박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동산교회 장로 취임식을 하게 되었으니 나더러 참석해 달라는 청원을 하셨다. 이 대에 필자는, ‘상회도 없는데 중립 교회에서 어떻게 장로를 세울 수 있을까? 만일 단독으로 장로를 세우려면 교단을 선언하면서 신앙고백을 해야 될 것 아니요?’ 하고 반문했다. 박 목사님의 대답은, 장로를 선출해서 상회의 고시를 거쳐 안수하는 일이 아니고, 이미 안수받은 모 장로의 취임예배를 드리는 것뿐이니 안수는 아닌고로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외롭게 시작한 교회라 나는 참석하였다.
그렇게 하고도 나는 그 일만은 잘 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당회를 구성하려면 상회의 시인이 있어야 한다. 다른 교회의 장로는 그 교회의 장로였을 뿐, 그의 항존직은 그에게 영구히 있겠지만 그의 장로 시무는 그가 안수받은 그 교회에 국한할 뿐이다. 동산교회 장로가 되려면 당연히 동산교회에서 삼분의 2 이상의 투표를 받아야 하고, 또 노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상회 없는 교회에서 장로 취임식을 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필자는 오늘까지도 그 일에 대하여 장로회 치리법에 의하면 공범죄를 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에 나도 동참한 것이었다.
엄격한 의미에서 지교회는 중립으로 오래 있어서는 안되고, 중립 교회는 임시 예배위원의 이름으로 해야 타당한 것이다. 그 후에 동산교회도 치리회에 속한 지교회가 된 고로 바로 되어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장로교 목사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오랫동안 중립으로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장로교 목사로서 상회 없이 목회할 수 있을까? 목사가 안수 받은 해노회 앞에서 서약한 것을 집어 던져도 좋은가? 어떤 신앙적 질서와 교회의 화평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상회 출석을 보류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이 장기간 계속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신앙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면 신앙고백을 따로 하고 교단 선언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p.145 "총회신학교 교수‘
1963 년에 총회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64 년도에는 윤번제 교장직을 맡았었고, 65년 3월에는 총신 부산 분교에서 교수하게 되어 부산으로 이사하였다. 67년 2월까지 2년 동안 교수하면서 이 기간에 부산 수정동에 있는 성산교회를 담임하여 설교를 전담하였고, 이 때에 틈틈이 붓을 들어 시편 주석 증보 작업을 마쳤다.
67년 3월에 다시 상경하여 사당동 총회신학교 교수를 계속하였다. 담당하였던 과정들을 분류해 보면, 1학년은 성경해석학, 신약석의(요한복음), 2학년은 신약석의(공관복음 로마서 바울서신), 복음사, 사도사, 3학년은 신약석의(목회서신 요한계시록의 교회론 및 말세론), 신약신학, 사도사였다. 특별히 동양철학 비판과 신약개요를 대학부 4학년 학생들에게 몇 년 동안 가르쳤다.
한편 뜻이 있는 몇몇 성도들과 함께 68년도 여름에 상도동에서 ‘한성교회’를 개척하여 수 년간 목회하였다. 73년도에 이르러 한성교회에 짐진택 목사를 추천하고, 나는 매월 첫주일 낮 설교를 하는 것으로 협력하였다.
p.147 "영음사‘
나의 모든 저서들은 영음사에서 발행하였고, 지금도 계속 발간하고 있다. 영음사는 나의 저서를 발행하기 위하여 설립된 출판사이다.
p.147 "칼빈주의
나의 교수 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불타는 가슴으로 학생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칼빈주의 신학이다. 그 이유는, 칼빈주의 신학이야말로 성경을 그대로 믿는 말씀의 신학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 말씀의 단맛을 체험했으므로 후학들에게 나의 깨달은 바 성경 진리를 전해 줌에 있어서 나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많은 시간동안 가르치고 싶었고, 개강 중 공휴일이나 다른 이유로 인해 휴강하였을 경우에는 되도록 보강하려고 힘썼다.
그뿐 아니라, 나 자신은 부족하면서도 신학도들에게는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에 진실해야 된다고 항상 강조하였다. 그리고 또 신학생 시절에 참되이 노력하여 실력 있게 졸업해야만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진실한 일꾼이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별수 없이 외식하는 자가 되어 한평생 자타를 속이는 불쌍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였다.
p.148 "교수와 목회‘
신학자는 신학 교수뿐 아니라 반드시 목회도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신학 교수들도 목회를 알아야 된다. 즉 교수가 목회 경험이 있어야만 신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방법과, 신자들을 영혼 상대로 접촉하여 성경 말씀을 먹여 주는 일을 바로 하도록 학생들을 도와 줄 수 있다. 신학 교육은 지식 전달과 함께 생명력 있는 교육이 이우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단순한 지식 전달로 족한 어학시간에도 교수가 생명력 있는 강의를 해야 된다. 목사 후보생을 키우는 신학교 교수는 자신도 목사이니만큼, 목사는 목회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교수들의 목회를 강조해 왓다. 나도 어디에서 신학 교육을 하든지 목회를 하려고 힘썼고,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일마다 교회 강단에서 말씀 전하는 일을 거의 쉬지 않고(건강이 허락된 한) 계속한 것으로 기억한다.
확실히 나의 목회 경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p.162 "연경과 가족‘
나는 성경 연구에 몰두하여 가족과 함께 소풍 한 번 간 적이 없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로 자녀 가운데는 나의 기대대로 되지 못한 안타까운 일도 있어서 나로서는 기도할 뿐이다. 기도는 헛되지 않다고 나는 믿고 있다.
p.163 "롬7장과 두 자기‘
온 세상 사라들이 성경을 안 믿어도 나는 믿겠고, 나 자신이 성경을 안 믿어도 나는 더욱 믿겠다. 나 자신이 성경을 안 믿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부패성 때문인 줄 확실히 아는 고로 나는 나의 부패성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p.167 "산 기도‘
나는 주택을 구할 때에도 산 가까이 위치한 집을 원한다. 그것은 내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기 위함이다.
p.182 "하나님 사랑의 심장부‘
그것은 순결성이다. 아켐피스는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참되이 사랑하려면 깨끗이 사랑해야 된다. 즉,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지 이 세상의 어떤 유익이나, 내 마음의 위안이나, 혹은 영원한 보상을 기대하지 말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무한히 선하심과 존귀하심으로 인하여 그를 사랑해야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함의 구체적 방법은 ①내 손에 있는 성경을 먼저 사랑할 것 ②나 자신을 바로 취급할 것 ③나를 장식하지 말 것 ④하나님의 진실을 심을 것, 하나님은 그의 진실성을 복음으로 나타내셨다. 우리는 내 이웃, 내 민족에게 진실함으로 복음 진리를 심어야 한다. - 1988.2.11. 합동신학교 제8회 졸업식
p.187 ‘개혁교회 목사상’
개혁교회는 개신교회라는 말과는 좀 다르다. 개혁교회는 칼빈주의 교회 혹은 개혁주의 교회를 의미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또 한 번 종교개혁을 하는 교회라는 말은 아니다. 16세기에 루터와 칼빈을 비롯하여 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이루어서 우리들에게 전해 준 그 유산을 지키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개혁’이란 것은 이미 성경대로 이루어 놓은 개혁 교회를 그대로 잘 지키자는 교회 운동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하면, 오늘날은 비참하게도 교회 교리가 불신임을 당하고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혁운동이 교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교리를 문서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교리를 수호하지 않는 교회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 교회들은 동서양을 물론하고 좋지 못한 유사점이 있으니, 그것은 참 교회의 세 가지 표지 가운데 하나,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바로 전해야 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미급한 형편이라고 생각된다. 목회자들은 그 자신이 성경을 바로 깨닫고 바로 전하는 성경 중심의 목회를 하려고 계속 힘써야 된다.
그뿐 아니라, 권징 시행을 바로 하는 것이 참 교회의 표지인데, 오늘날 교계에는 권징 시행이 거의 없는 실정이 아닌가!
교권주의라는 것은 교회론에 있어서, 일찍이 종교개혁자들이 순교하면서까지 성경대로 주장하여 이루어 놓은 그 교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 교리들 중에서 특히 ‘만인 제사장’ 교리는 거의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p.199 "바른 신학
⑴개혁주의 신학의 주요 원리는
①하나님의 주권
②개혁주의 성경관 - 성경의 권위, 성경의 필요성, 성경의 명백성, 성경의 충족성
⑵개혁주의 인생관
①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그리스도 외에는 어떤 매개도 용납하지 않는다.
②영웅숭배 사상을 배척한다.
p.214 "바른 교회‘
교회는 성결해야 됨
①성령으로 성화되어감 - 육체적 행복보다 성경을 더 귀하게
②성별을 힘쓸 것 - 진리와 비진리를 섞지 아니함이며, 하늘 나라의 것을 세속화하지 아니함이다.
③교회는 화평을 유지해야 됨
④교회는 증인 단체가 되어야 함 - 교회는 세상 나라의 특권계급이 아님, 교회는 정치운동에 직접 가담할 수 없음
p.240 "현 한국 교회 개혁 과제‘
①물량주의 폐단 - 목사의 대량 배출
②사제주의 부당성
③사역상 평등의 원리 상실
④교회 행정의 부조리
⑤교회보다 교회조직을 과대평가 - 총회의 위치
⑥교회의 문제성
⑦신자들의 진리지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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