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관목사님: 처음 비판하다 중간에 지지로 돌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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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관 목사님의 글에서 발취 했읍니다.
◎ 박영관 목사
◎ 전남 나주 출생
◎ 광주 고등학교 졸업
◎ 숭실대학교 철학과
◎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원) 대학원 졸업
◎ 미 Atlanta Theological Association(Emory University,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Interdemominational Theological Center)의
I.T.C의 S.T.D통과
◎ 미 Fuller Theological Seminary 대학원
◎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중곡중앙교회 담임목사
◎ 한국기독교이단종파연구소 대표, 한국기독교이단피해상담소 소장
◎ 대신대학교, 총회신학교, 칼빈신학대학교, 그리스도신학대학교,
나사렛대학교, 세계선교신학연구원 등에서 이단종파 역사신학의 교수
(최삼경목사님: 처음 비판하다 지금은 연구 중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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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제73회 졸업생(1980년 졸업)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빛과소금교회 담임인 최삼경 목사는 월간 ‘교회와 신앙’ 발행인이며, 현재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연합단체의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인 그가 오히려 이단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이단척결에 순교정신으로 앞장섰다고 자처하는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 삼신론을 내세워 자신이 속한 총회에서까지 외면당하기도 했다.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최 목사가 “일부 신학자들의 이론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성경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자신의 주장이 정통이요, 이단정죄의 잣대”라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심상용 목사는 그의 저서 ‘종교 마피아적 목사 최삼경 씨의 한국교회 짓밟기’를 통해 “최삼경 씨는 스스로를 삼신론자로 주장해 삼위일체 신앙을 부정하는 ‘악질 이단자’임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단 판단 기준은 장로교 교리가 아니고 정통교리의 기준인데 성경을 기준해서는 안 되며 내가 믿는 교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괴상한 논리를 펴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으면 모두 이단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삼경 목사는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해 양태론적 이해를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다”고 주장하면서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을 양태론적 이단자들로 보았다.
그는 이단을 만들기 위해 언론을 만들고 언론 게임을 하고 있다며, 통합측에서 이단규정하면 모든 교회가 이단으로 인정한다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예장통합측 이단 규정의 총지휘는 최삼경 목사 자신이었다. 그의 발간물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한 이단 기준을 총회에서 형식적으로만 연구한 것으로 하고 실질적인 이단 규정은 최삼경 목사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이로 보건대 예장통합측 총회는 삼신론자 최삼경 목사에게 이단연구를 맡겨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흔들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탁명환목사님: 처음 비판하다 뒤에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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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이면서 현대종교의 발행인이었던 故 탁명환 소장은 이단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이다. 그는 1965년 당시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 장로(당시 한국개신교계는 나운몽 장로를 이단시 함)가 운영하는 복음신보(현재의 복음신문) 취재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신흥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탁명환 소장이 신흥종교운동연구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1965년 신흥종교단체인 ‘영주교’를 목격한 후였다. 연구 초기에는 신흥종교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그 연구배경이 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사와 사진 등을 조작하면서까지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문화일보는 1994년 2월22일자 신문을 통해 탁명환 씨가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를 비방하기 위해 사진을 합성 제작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어떤 교회가 금전적 지원과 협조(현대종교에 광고 게재 등)를 해줄 때는 그 교회에 대해 일절 비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그 교회가 탁명환 소장의 비리나 부정직함으로 인해 그에게 경제적 지원과 협조를 하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단 사이비 시비 논쟁을 일으키곤 했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대성교회와 성락교회이다.
대성교회가 탁명환 씨에게 물질적 지원과 협조를 중단했던 이유는 그가 1978년 9월10, 11일 ‘통일교회에 대한 사과문’이라는 광고를 냈기 때문이었다.(‘신동아’ 1994년 4월호. 358p.)
탁명환 소장을 향해 이단이라 규정된 집단에서 주로 제기하는 문제는 “광고를 줄 때는 말 안하다가 광고를 안 주면 이단이라고 몰아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종교 직원들은 이단규정과 광고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 사회부기자 김동섭 씨는 ‘월간조선’ 1994년 4월호에서 ‘신흥종교연구가 탁명환의 생애, 찬반 엇갈리는 이단 고발자의 비상한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어떤 교회의 경제적 지원과 협조가 있는 동안에는 그 교회에 대한 이단시비 논쟁을 걸지 않다가, 그것들이 끊어진 후에는 그 교회에 대한 이단시비 논쟁을 걸었다.
▲어떤 교회의 물질적 도움이 있던 기간에는 그 교회의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가 원조가 중단된 후 그 교회의 이단성을 발견했다면 이단사이비 종교연구가로서 탁명환 씨의 능력과 자질이 의심스럽다.
▲탁명환 씨가 나중에라도 그 교회의 이단성을 간파했다면 과거 그 교회로부터 받았던 경제적 도움을 되돌려줬어야 했다.
고소 고발의 명수였던 탁명환 소장은 1984년 10월10일 목사와 장로 10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집단 고소하는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고의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탁명환 소장에 대한 이단 연구가로서의 자질 시비는 비단 위에 열거한 사건들 말고도 1990년 12월경 어떤 여인(김모)과 함께 찍힌 사진과 1991년 2월경 김모씨와의 통화내용이 도청된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이 교계에 유포된 사건이 있다. 이후에도 여자문제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를 찌른 임홍천 씨는 “소위 이단사이비 종교를 척결한다는 의로운 사명감은 동인(탁명환)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에 불과할 뿐 사실은 비윤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이라는 생각에 동인을 살해할 뜻을 더욱 굳히고...”라는 내용을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