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된 영에 대한 교리
I. 사람의 구성요소에 대한 이론
1. 사람의 구성요소- 영, 혼, 몸, 육
2. 사람의 구성요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이분설, 삼분설
3. 백영희 목사님의 영육 이분설
II. 영의 존재
1. 영의 창조
2. 영의 특징
3. 영과 마음의 구분
III. 중생한 영(중생론)
1. 중생의 의의
2. 중생의 특징
3.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4. 중생한 자의 이룰 구원
5. 중생한 영의 성장
교리는 성경 계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이다. 교리는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신적 권위에 근거해서 교회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표현한 명제이다. 교리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 진리이다. 진리의 바른 정립 없이는 기독교는 성립되고 유지될 수 없다. 교리는 교회가 구원 진리를 이해한 것을 신앙조항으로 고백하며 그 진리를 지키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진리이다. 이 교리의 고백과 순종이 교회를 교회로 유지하며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한다. 교리는 교회 존립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교회의 신앙고백이므로 한 개인의 일이 아니고 전 교회의 일이다. 교리는 계시 진리의 이해가 깊어짐에 다라 수정과 확장이 가능하다. 삼위일체 교리는 신론의 입장에서 기독교 전체를 대변한다. 기독론의 교리는 구원자 입장에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부 드러낸다. 이신칭의 교리는 구원의 획득 방식에 있어서 기독교를 드러낸다.
‘중생된 영’ 교리는 구원의 확실성을 알려주는 교리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교리와 함께 구원의 과정을 설명해주는 핵심적인 교리이다. 우리는 이 교리 위에 든든히 서서 자유주의와 신 정통주의로 인해 기독교의 본질이 흔들리며 종교다원주의로 흘러가는 현대교회를 감당하는 진리의 깃발을 힘차게 들어야 하겠다.
I. 사람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이론
1. 사람의 구성요소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었으며 육은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사는 영으로만 되어 있고 다른 피조물은 물질로만 되어 있지만 사람은 영과 육(물질로 심신)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1) 영
영은 헬라어 프뉴마(πνε?α, spirit), 히브리어 "루아흐"(????)이다. 영은 사람의 비물질적 요소로 중생한 신자들의 속사람(the inward man)을 가리키기도 한다(롬 7:22; 고후4:16; 엡 3:16). 영은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따라서 하나님 외에는 이 영을 다스릴 수도 없고 이용할 수도 없다. 하나님만이 영을 관계하며 하나님만이 영을 다스릴 수 있다. 영은 오직 하나님께만 피동되는 것이다.
영은 위로 하나님과만 관계를 가지고 아래로는 육을 다스린다. 육은 영의 다스림을 받아 만물을 다스리게 된다.
2) 혼
혼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킨다. 혼은 신비한 물질 곧 마음을 가리켜 말한다. 신비한 물질이라 하는 것은 소리나 전파와 같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에 속한 것이 아닌 물질에 속한 것을 가리킨다. 혼의 기능과 작용에 따라 정신. 마음. 양심. 의지 등 상이한 명칭들을 사용한다. 혼은 헬라어로 ‘프쉬케’(ψυχ?; soul)이며 이는 히브리어 네페쉬; ????? ; soul)이다. 혼은 사람의 신비한 물질인 마음을 가리킨다. 혼을 가리키는 헬라어 프쉬케가 영과 결합된 영혼을 나타낼 때는 속사람(the inward person)을 가리킨다(눅21:19; 마10:39; 벧전 2:11; 요삼 2).
3) 몸
사람의 물질적 요소는 몸(body; 육체)이다. 성경은 사람의 물질적 요소들은 살, 피, 뼈(flesh, blood, bones)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다. 몸에 관한 용어는 일반적으로 ‘소마’(sw"ma, body)를 가리키지만 때에 따라서 육을 뜻하는 ‘사르크스’(σαρξ; flesh)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두 단어는 동일한 의미의 상이한 표현들로 사용된다. 몸의 주체는 마음이다. 마음에 따라 몸이 피동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슬픔이 있으면 그 몸에 슬픔이 나타난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몸에 기쁨이 나타난다. 두려움이 있으면 몸에 두려움이 나타난다.
4) 육
육(사르크스, σαρξ; flesh)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마음과 몸을 가리키지만 중생 된 영에게 다스림 받지 아니하는 옛사람에 속한 심신을 성경에서 육이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 즉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 에 피동될 때 는 일반적인 몸을 가리키는 헬라어 ‘소마’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육 즉 ‘사르크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르크스’는 특히 죄의 몸을 가리킨다. 죄의 몸이란 죄의 성질이 있는 몸을 가리킨다. 죄의 성질이 있는 몸을 베드로후서 2:18, 요한일시 2:16에서는 육체의 정욕이다. 죄의 몸은 죄에 속한, 죄의 성질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 또는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몸을 가리킨다.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2. 사람의 구성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사람의 구성 요소는 무엇이며 사람은 어떤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일반적으로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분설과 몸. 영. 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분설이 있다. 이분설은 혼과 영을 동일한 실체(entity)로 보고 기능적 구별을 하며, 삼분설은 혼과 영을 각기 달리 존재하는 실체들로 본다.
1) 이분설
역사적으로 이분설은 사람이 영혼과 육체(비물질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의 두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다. 터툴리안과 어거스틴, 루터와 칼빈 등 대개 서방신학자들이 지지하였다. 이분설자들은 신구약 성경에 영과 혼이 교대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결국 하나의 실체임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께서 “지금 내 마음(프쉬케, soul; 영혼)이 민망하니”(요 12:27) 하신 다음에 “심령(프뉴마티, spirit, 영)에 민망하여”(요 13:21)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는 “‘내 영혼(프쉬케)’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프뉴마)’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나이다.”(눅 1:46, 47)고 하였다.
죽어서 천국 또는 지옥에 가는 사람들을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프뉴마시; to spirits), 또는 옥에 있는 "영들" (프뉴마티, spirits) (벧전 3:19)이라고 하였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혼들" (프쉬카스, souls, 계 6:9),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혼들" (프쉬카스; sou1s) 이라고 하였다. 성경은 죽음을 영(구약에서 루아흐, 신약에서 프뉴마)이 떠난다고도 하고 혼(구약에서 네페쉬, 신약에서 프쉬케)이 떠난다고 말한다. 전도서 기자는 사람이 죽을 때 ""신(루아흐,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전 12:7)고 하였고, 다윗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대로 ""나의 영 (프뉴마)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시 31:5; 참조 눅 23:46)라고 기도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프뉴마)이 떠나시다"" (마 27:50)라고 했고, 요한은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프뉴마)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고 했으며, 스데반도 임종 시에 ""주 예수여 "내 영혼" (프뉴마, spirit)을 받으시옵소서""(행 7:59)라고 하였다.
이분설자들은 성경에서 사람을 영혼과 몸 둘로 구분하고 있다고 한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분설 자들은 성경은 인간의 혼과 영은 두 개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질 뿐 한 실체라고 주장하며 사람의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 요소인 몸과 영혼, 이 두면은 논리적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또한 분리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 비물질적 영혼은 보이지 않는 영역인 천국 또는 악한 자의 죽음의 장소(지옥)로 들어가 있다가 부활 시에 그의 몸과 재결합한다는 것이다.
이분설자들은 영의 실존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과 혼을 동일한 실체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영과 혼은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분리된다면 두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영과 혼이 결합된 상태를 영혼이라 한다. 영은 혼을 입고 활동한다. 혼이 영과 별도로 움직일 때는 영의 지배를 받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영의 지배를 받을 때는 영과 결합하여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을 영혼이라고 부를 때도 많다. 영혼이라 함은 영만을 말할 때도 있고 영과 혼을 결합하여 영혼이라 부른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이다.
2) 삼분설(Trichotomy)
삼분설에 의하면 사람은 몸(body), 혼(soul), 영(spirit)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몸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며 동물은 혼(soul)만 가지고 있으며 사람은 영과 혼을 다 가지고 있으므로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한다. 영은 비물질적, 불가견적, 불가사적이다.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한다고 한다. 몸과 영은 혼을 방편으로 상호 연관성을 가진다고 한다.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몸은 세상과의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혼이 영과 관련될 때에는 영이 주격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되고, 혼이 몸과 관련될 때에는 몸(육신의 부패성)이 주격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삼분설자들은 영이 혼보다 우월하며, 영과 혼은 몸보다 우월하다. 혼은 상상. 기억. 이해 등을 영은 이성. 양심. 의지 등을 포함한다고 한다.
삼분설자들은 불신자들은 단지 몸과 혼만을 갖고 있는 반면에, 신자들은 몸과 혼은 물론 성령에 의하여 창조된 영을 갖는다고 하였다. 삼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방 교회의 이레니우스(Irenaeus),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오리겐, 닛사의 그레고리와 같은 신학자들과 19세기의 델리취(Delitzsch)등이다. 델리취는 살전 5:23; 히 4:12 등을 들어 삼분설을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감리교, 오순절파(하나님의 성회), 성결교, 장로교의 일부가 삼분설을 지지하며 이는 가장 많이 지지를 받는 학설이다.
삼분설자들은 다음 성구들을 인용한다.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삼분설 자들은 "영과 혼과 몸"을 각각 구별된 실체로 보고 사람은 영. 혼. 몸의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영과 혼은 원문에도 영은 프뉴마(πνε?μα)로 혼은 프쉬케와(ψυχ?)라는 상이한 단어를 사용하여 상이한 개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삼분설자들은 고전 2:14-4:4을 해석하며 육에 속한 사람을 몸(사르키코스), 신령하지 못한 사람을 혼(프쉬키코스), 신령한 사람을 영(프뉴마티코스, spirit)으로 해석하여 혼과 영이 상이한 실재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은 신령한 사람, 신앙이 성숙한 사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 중생한 영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삼분설자들은 고전 14:14 말씀을 통해 삼분설을 주장한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나의 영 (πνε?μα; spirit)과 나의 마음(누스 νου?; mind; 정신, 혼)은 별개의 존재이고, 우리의 생각은 영이 아닌 혼의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 백영희 목사님의 영육 이분설
이상에서 인성의 구조를 이분설과 삼분설로 나누어 보았다. 성경에는 영혼과 몸이라고 말씀한 곳도 있고 영, 혼, 몸이라고 말씀한 곳도 있다. 그러므로 삼분설이나 이분설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영과 혼(곧 마음)은 구분된 실체이므로 이분설자의 주장보다는 삼분설자의 주장이 더 성경적으로 맞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구조가 어찌 되었는지 나열하고 있는 생물학적 해부서가 아니다. 성경은 중심의 주제를 "구원"에 맞추고 있다. 따라서 삼분설자의 주장대로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하는 것보다도 혼과 몸을 하나로 결합하여 육으로 묶어서 영육 이분설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혼 또는 마음은 영과 달리 신비한 물질이므로 영과 같이 묶는 것보다는 몸과 함께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은 단일체이지만 마음은 몸과 같이 복합체이다. 육 곧 마음과 몸이 범죄하여 사람에게 사망이 왔을 때 영은 단번에 죽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지만 육은 서서히 죽는다. 구원을 이루어갈 때도 영은 단번에 중생되었지만 육 곧 마음과 몸은 점진적으로 건설구원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영과 같이 묶기 보기보다는 몸과 같이 묶어 영육 이분설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롬 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영육 이분설은 우리 구원의 과정을 잘 설명해 준다. 영의 구원은 중생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며 이는 기본구원이라 한다. 육 곧 마음과 몸의 구원은 중복적으로 이루어지며 심신의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화구원이다. 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며 믿음의 행위를 건설해가는 건설구원이다. 기본구원은 주님의 대속 은혜로 값없이 받은 구원이지만 건설구원은 주님의 대속 받은 자가 일평생 힘써 이루어가는 구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사람의 구성요소를 영과 육(혼과 몸)으로 분리하나 그것을 사람 안의 이중주체로 보지 않고 유기적 단일체(A Single Entity)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마다 사람 전체의 행동이니, 육이 범죄 하였어도 사람이 범죄한 것이라 한다. 육이 범죄하였어도 육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이 주격 책임을 지고 육과 함께 죽었던 것이다. 사람이 몸으로 무슨 선을 행하여 상급을 받을 때 선을 행한 사람이 상급을 받는다고 하며, 반면에 범죄로 인한 형벌도 사람이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영과 육 또는 영과 마음과 몸을 구분하는 것은 좋지만 각각 별도의 인격으로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신성과 인성으로 구분되어 계셨지만 한 인격으로 존재하셨다. 이를 신인양성 일위라고 한다. 그런데 하물며 인성으로만 된 사람이 영과 마음과 몸으로 구분된다고 해서 각각 다른 인격처럼 분리시키면 큰 혼란이 생기고 심각한 오류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II. 영의 존재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며 사람의 인격의 주체이다. 따라서 영은 사람의 구성부분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본 장에서 영의 기원, 특징을 살펴보고 영과 마음의 차이를 살펴봄으로 영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한다.
1. 영의 창조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고 영과 육으로 된 특수 피조물로 지으셨다. 다른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말씀만으로 하셨지만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이 있었다( 창 1:26).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로 계시며 삼위 하나님이 인간 창조와 구원을 이루실 때 성부가 계획하시고 성자가 성취하시며 성령이 적용하시기 때문에 항상 삼위가 함께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의 영을 지으신 후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산영이 되었다(창 2:7). 자존하신 하나님은 자존자이시고 완전자이시므로 홀로 계셔도 부족이나 외로움이 없으시므로 자 충족하신 분이시다. 당신의 기쁘신 뜻에 의해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지 우리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창조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당신을 닮은 존재를 만들어 그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며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신 것이니 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하나님의 선택이라 또는 예정이라 한다(엡 1:4).
우리는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아가질 "영"이 있어야겠고, 이 영이 곧 사람의 주격이며, 이 영을 수종들고 만물을 상대할 물질로 된 육이 있는 것이다.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불어넣으신 것이다.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영을 창조하신 것이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속성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영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지음 받아 그 속성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움직이는 생령이 된 것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은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이름을 지음으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역을 시작하였던 것이다(창 2:19). 곧 하나님과 연결된 영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자기의 마음에게 감동시켜주고, 마음은 자기 영이 자기에게 감동시켜주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몸을 통하여 발표하니 아담의 짓는 그 이름이 아담 단독의 주관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된 행동이었다.
아담의 영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셨지만 각 사람의 영은 어떻게 지음받았는 가에 대해서 선재설, 유전설, 창조설의 세 학설이 있다.
선재설(The pre-Existence Theory)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영은 하나님이 영원 세계에서 한꺼번에 창조하신 후, 태어나는 각 사람의 육체 안에 각각의 영을 넣어 준다는 것이다. 필로(Philo), 오리겐(Origen) 그리고 일부 알렉산드리아의 교부들도 주장하였다. 선재설은 영이 역사세계에서 계속 돌고 돈다는 윤회설(transmigration)로서 플라톤(Plato; B.C. 429-347)의 철학과 힌두교, 불교 등에서 지지하는 이교사상이다. 유전설 (The Tradition Theory)은 사람의 영은 출생 시에 몸과 함께 부모로부터 받는다는 사상이다. 즉 인류의 조상인 아담 안에서 영과 육이 직접 창조를 받았고, 이후 자연적 출생에 의하여 아담 이후의 모든 영들에게 유전적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부모에 의하여 기원되었다는 견해는 부모를 일종의 창조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부모에게서 영이 분리된다면 유출설이 되는데 이는 창조론에 위배되는 것이다. 비물질적인 영이 물질적인 몸에게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영의 단순성과 독립성을 무시한다.
창조설(The Creation of Theory)은 생명체가 시작되는 "수정순간에" (at the moment of conception) 하나님께서 직접 영을 창조하여 육체와 즉각적으로 결합시킨다는 사상이다. 창조설은 영과 육, 각기 상이한 두 존재가 연합하여 한 사람을 구성한다는 성경의 교훈과 일치한다. 창 2:7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영의 창조와 몸의 창조를 분명히 구별하여 창조하신 것이 나타나있다. 영과 육은 각각 상이한 기원과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흙에서 유래한 반면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유래한 것이다(히 12:9).
2. 영의 특징
1) 영의 단일성과 불멸성
영은 단일성으로 존재한다. 단일한 존재이므로 해부가 불가능하다. 마음은 영과 같이 무형의 존재이지만 복합체로 되어 있어 양심이나 욕심 생각 등 수많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영이 단일성이기 때문에 육인 심신(心身)이 범죄할 때 단번에 죽었다. 또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영이 중생될 때 단일성인 영은 단번에 중생한 것이다. 반면 우리의 육인 심신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그 대속을 입는 성화는 중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루는 문제와 관련된다.
인간의 영은 또한 영원불멸한 존재이다. 타락으로 영이 죽었지만 이는 영의 존재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2) 하나님만 사용하시는 영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므로 하나님 외에는 어떤 피조물도 사용할 수 없다. 만일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면 즉시 생명이 끊어지고 활동이 멈추어버리는 것이지 우리의 육신처럼 악령에게는 이용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3) 육의 주격이 되는 영
영은 심신으로 된 육의 주격이다. 심신은 영의 소유격으로 영의 지도를 받아 살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주체는 곧 "영"이다. 심신은 영의 소유격으로 영의 지도를 받아 움직인다. 하나님의 뜻을 영이 마음에 비추어주면 마음이 사고하고 판단하며 몸이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3. 영과 마음의 구분
1) 성경의 예
영은 다음 성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음과 구분되는 실체이다.
①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Zw"n ga;r oJ lovgo" tou" qeou" kai; ejnerghv" kai; tomwvtero" uJpe;r pa"san mavcairan divstomon kai; dii>knouvmeno" a[cri merismou" yuch"" kai; pneuvmato", aJrmw"n te kai; muelw"n, kai; kritiko;" ejnqumhvsewn kai; ejnnoiw"n kardiva":
이 본문에서 ‘영’(프뉴마토스, pneuvmato")은 ‘마음’(혼, 프쉬케스, yuch"")과 구분되는 실체적 요소임을 가르쳐 주는 성구이다. 본문에서 "관절과 골수"( 하몬 테 카이 뮈엘론, aJrmw"n te kai; muelw"n)는 몸인 신체의 구체적 부분을 예시한 것이고 "혼"과 다른 존재인 "영"이 있음을 보여준다.
② 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Aujto;" de; oJ qeo;" th"" eijrhvnh" aJgiavsai uJma"" oJlotelei"", kai; oJlovklhron uJmw"n to; pneu"ma kai; hJ yuch; kai; to; sw"ma ajmevmptw" ejn th"/ parousiva/ tou" kurivou hJmw"n jIhsou" Cristou" thrhqeivh.
본문에서 사람의 실체를 영과 혼과 몸(토 프뉴마 카이 헤 프쉬케 카이 토 소마)pneu"ma kai; hJ yuch; kai; to; sw"ma)으로 세 구분함으로 마음과 구분된 영의 실체를 분명히 보여준다.
③ 롬 8장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aujto; to; pneu"ma summarturei" tw"/ pneuvmati hJmw"n o{ti ejsme;n tevkna qeou".
본문에서는 성령(토 프뉴마, to; pneu"ma)께서 중생한 우리 영(토 프뉴마티 헤몬, tw"/ pneuvmati hJmw"n)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에크나 데우, evkna qeou")인 것을 증거한다(쉼마르튀레오, summarturei)고 하였다.
여기서 ‘함께 증거한다’의 동사 쉼마르튀레오(summarturevw)는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계속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과 우리 영이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자녀됨을 계속 증거함으로 구원의 확신을 주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격려하는 말씀이다. 이 본문은 우리 인성의 구조를 영과 심신으로 구분해주고 있다. 중생한 영은 우리 안에 있으면서 심신과 구분된 존재로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④ 고전 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eja;n ga;r proseuvcwmai glwvssh/, to; pneu"mav mou proseuvcetai, oJ de; nou"" mou a[karpov" ejstin.
이 본문에서 나의 영(토 프뉴마 무, to; pneu"mav mou)과 나의 마음(누스 무, nou"" mou )을 구분함으로 영과 마음은 다른 실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2) 영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이렇게 영이 분명히 마음과 구분되어 있는데도 사람이 영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은 마음을 입고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 정. 의를 입은 인격이 있다. 이 인격은 영이 죽은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영이 살아 있을 때는 영이 마음을 입고 인식하지만 영이 죽으면 마음만으로 인식한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의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이다. 영이 죽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 그러나 영이 죽었어도 얼마든지 마음으로도 학문이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우리의 죽었던 영도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면 다시 살아나는 중생하게 된다.
3) 성경에서 영과 혼이 교대로 쓰여진 이유
성경은 인간의 영과 혼이 구별된 실체로 말하면서도 왜 교대로 사용하였을까? 그것은 사람이 죽을 때 마음이 영과 함께 천국과 지옥으로 가고 몸은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마음도 몸과 같은 물질적 요소이지만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신비한 물질이므로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영과 함께 떠나며 영이 마음을 입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즉 영과 혼은 구분된 실체이지만 함께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몸은 가견적 존재요, 영과 혼은 불가견적 존재이다.
그래서 죽음을 영이 떠난다고도 하고 혼이 떠난다고 말하는 것은 영과 혼이 함께 떠나기 때문에 교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 ‘혼’ 또는 ‘영’은 때로는 생명, 목숨(life), 마음(heart), 정신(mind) 등으로도 번역하기도 한다.
생명을 말할 때는 영과 영혼이 같은 낱말로 쓰인다. 솔로몬이 죽음에 대하여 말할 때,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전 12:7)고 하였다. 또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을 아버지께 부탁하셨고(눅 23:46), 스데반이 그의 영을 그리스도께 부탁했다(행 7:59).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죽일 수 있는 실재가 있는데 그것을 ""몸"" (body)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죽일 수 없는 실재가 있는데 그것을 ""영혼"" (soul)이라고 하였다.
스데반도 순교하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 7:59)하고 기도하였다. 영과 혼이 몸에서 떠나면 죽은 사람이다. 생명은 육체에 있지 않고 영혼에 있기 때문이다.
빌 1:21-24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신자가 죽을 때, 영혼은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다.
고후 5:8, “우리가 담대히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 육체를 하나의 장막(tent)으로 비유하고, 영혼이 우리 몸을 떠나면 그리스도와 함께 거할 것을 분명히 가르친다.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이 없는 몸" (소마 코리스 프뉴마토스; body without spirit)은 "죽었다" 는 말씀은 곧 영혼이 있는 몸은 산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영혼이 사람 생명의 근원이요 주체임을 가르친다. 영혼이 몸에서 떠나면 몸의 감각과 활동이 정지되며, 몸은 즉시로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흙의 먼지로 돌아간다. 산 사람의 구성 요소는 영과 혼과 몸이다.
영과 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죽은 몸이 부활하여 영과 혼이 함께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도 영혼을 말할 때 영과 혼의 결합체를 말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4장 2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되, 이성적이며 불멸의 영혼을 주셨으며
제32장 1조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음을 본다. 그러나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 있어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직접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그 때 온전히 거룩해져서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몸의 온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리고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운 바 되어 고통과 극한 흑암 가운데서 남아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기다린다. 육신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서 마련된 것은 이 두 장소 외에 다른 것을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다.
III. 중생한 영(중생론)
사람은 범죄로 인해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서서히 죽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으로 만세전에 선택하신 자녀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우리의 죄를 구속하시고 성령으로 우리 죽었던 영을 살리셨으니 이것을 중생이라 한다.
그런데 중생한 영이 범죄하는가 않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어왔다. 중생한 영은 다시는 범죄하여 죽지 않는 완전 중생인가? 아니면 중생 후 다시 범죄하여 죽을 수 있고 또 믿음으로 중생하게 되는 반복적인 불완전한 중생인가? 하는 문제이다.
백영희 목사님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발표함으로 영론과 구원론을 명확히 정립하였다. 그의 중생관은 요일 3: 6-9 등의 말씀을 근거하여 영은 단번에 중생되고 중생은 그 자체가 완전하고 영원한 것임을 밝혔다.
1. 중생의 의의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라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은 중생된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루어진 우리 구원이 우리 개인에게 적용되는 것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중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중생이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이 죽은 영이 예수님의 사활 대속과 성령과 진리의 역사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것을 중생이라 한다(엡 2:1, 요 3:5-7).
이 중생은 단번에 이루어지며, 한번 중생된 영은 단번중생, 완전 중생, 영원 중생되었으므로 다시는 범죄치 않고 따라서 다시 죽는 일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받은 천국 가는 기본구원은 절대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이 중생한 영과 육이 하나 된 사람을 ‘새사람’이라고 한다.
2. 중생의 특징
1) 중생은 평생 한번이다.
죽었던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두 번이나 세 번으로 반복할 불완전한 대속이 아니며 완전 대속 단번 대속 영원 대속으로 대속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두 번 세 번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힐 대속이 아님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원히 다시 죽지 않을 영생으로 받은 것이다.
2) 중생은 즉각적이다.
영은 단일체이므로 범죄하면 바로 죽고 중생되면 바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이 우리 마음속에서 활동을 다시 시작한 중생 이후에도 우리의 물질인 마음과 몸은 반복하여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심신은 죄를 지었다 의를 행했다 평생 동안 계속 반복을 하는 것이다.
3) 중생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성화구원은 일생동안 이루어진다.
중생은 단번이지만 중생에 이어지는 성화는 점진적이며 반복적인 과정으로 평생을 이어간다. 심신은 단번에 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중생 후 평생토록 거룩한 삶으로 변화받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3.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중생한 사람이라도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은 중생한 사람의 마음과 몸 곧 육이 짓는 것이지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 본문을 살펴보자.
1)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단번인 것처럼 중생도 한번밖에 없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oujde;n a[ra nu"n katavkrima toi"" ejn Cristw"/ jIhsou".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토이스 엔 크리스토 예수, toi"" ejn Cristw"/ jIhsou) 곧 예수를 믿어 중생된 신자는 자기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단번에 완전히 해결되었고 이 대속은 영원토록 불변이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우덴 카타크리마, oujde;n katavkrima). 예수님이 해결하지 못하고 빠뜨려 놓은 죄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 죄 값으로 성도의 죄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해결하신 죄는 어떤 죄를 말씀하는가? 로마 천주교처럼 예수 믿기 이전에 지은 죄만 다 해결하셨다면 예수 믿고 나서 지은 죄를 위해서 다시 예수님이 도성 인신하셔서 십자가 대속을 하셔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은 신자의 믿기 전 과거의 죄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 대한 전체적 대속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에 살다간 사람, 재림 때까지 믿을 전 택자들의 전 죄에 대한 대속이다. 중생된 사람은 그의 과거지은 죄 뿐 아니라 중생 후 지을 죄값까지 중생시키는 그때에 전부 단번에 대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 후 우리 심신은 범죄하지만 그 책임은 과거 중생 때 완전 해결 본 것이니 다시 심신 범죄에 대한 정죄로 죽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중생한 영은 죄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심신은 중생 후에도 연약하여 죄를 짓는다.
2) 죄를 짓는 영이 아니라 심신이다.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eij de; o} ouj qevlw ejgwv, tou"to poiw", oujkevti ejgw; katergavzomai aujtov ajlla; hJ oijkou"sa ejn ejmoi; aJmartiva.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원치 않는(우 델로, ouj qevlw) 죄를 짓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죄짓기를 원치 않는 나(에고, ejgw;) 곧 바울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사도바울의 영이다. 그럼에도 죄를 짓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사도바울의 심신(心身)이다. 본문에서 죄를 짓는 자는 중생된 영 자기가 아니라(우케티 에고, oujkevti ejgw;) 자기 속에 거하는 죄성(헤 오이쿠사 엔 에모이 하마르티아, hJ oijkou"sa ejn ejmoi; aJmartiva)이 심신을 미혹함으로 심신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바울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3)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므로 범죄할 수 없다.
요일 3:6, 9; 5:18
중생 된 영이 범죄 할 수 없는 것은 자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범죄 할 수 있겠는가? 중생 된 영은 하나님께 나서 하나님 안에 거(居)함으로 범죄 할 수 없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존재이다.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pa"" oJ ejn aujtw"/ mevnwn oujc aJmartavnei: pa"" oJ aJmartavnwn oujc eJwvraken aujtovn oujde; e[gnwken aujtovn.
예수믿고 중생된 성도는 이제 예수님 안에 사는 자(호 엔 아우토 메노, oJ ejn aujtw"/ mevnwn)니 이들은 범죄하지 아니한다(웈 하말타네이, oujc aJmartavnei)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중생 후에도 여전히 범죄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평생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요일 1:9). 심신은 분명히 범죄하는데 범죄하지 않는 "나"가 있으니 이 "나"가 바로 중생된 영인 것이다.
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
Pa"" oJ gegennhmevno" ejk tou" qeou" aJmartivan ouj poiei", o{ti spevrma aujtou" ejn aujtw"/ mevnei: kai; ouj duvnatai aJmartavnein, o{ti ejk tou" qeou" gegevnnhtai.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파스 호 게겐네메노스 엨 투 데우, Pa"" oJ gegennhmevno" ejk tou" qeou")는 바로 영이며 죄를 짓지 않는다는 헬라 원어는 하말티안 우 하말티안 우 포이에이(aJmartivan ouj poiei) 로서 현재 능동태 직설법이다. 이는 절대적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본문을 대개 현재 동사로 상습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이것은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부분적으로 해석하는 모순에 빠진다. 참고로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존 머레이 교수는 이 본문을 확정적 성화 부분으로 해석하여 거듭난 속사람은 절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Oi[damen o{ti pa"" oJ gegennhmevno" ejk tou" qeou" oujc aJmartavnei, ajll j oJ gennhqei;" ejk tou" qeou" threi" aujtovn, kai; oJ ponhro;" oujc a{ptetai aujtou".
이 본문에서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호 겐네메노스 에크 투 데우, oJ gegennhmevno" ejk tou" qeou") 곧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호 겐네데이스 에크 투 데우 oJ gennhqei;" ejk tou" qeou")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앞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 ‘게겐네메노스’는 완료 분사형인 반면에 ‘나신 자’는 ‘겐네데이스’는 부정 과거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 "나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보아야만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요17:12, 15; 벧전1:5; 유1:24). 그러므로 악한 자(oJ ponhro;") 곧 마귀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범죄하지 않는 자를 중생한 영이라 하지 않고 중생한 사람이나 심신이라 하면 엄연히 범죄하고 있는 우리 심신을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말 것이다.
중생이란 이렇게 단번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거듭난 것인데 이 중생을 영이 아닌 마음에 해당된다고 잘못된 적용을 하였으므로 모순이 되는 것이다. 중생된 사람이 중생 후에도 수없이 죄를 짓는 현실을 볼 때 이 성구를 중생한 영이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중생은 단번이며 중생 이후는 영생으로 이어지며 다시 죽는 일이 없다. 우리는 영의 구원은 이미 받아 놓았으니 안심하고 심신인 육의 구원을 힘써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4. 중생한 자의 이룰 구원
우리의 영은 예수님의 대속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기본구원을 얻었다. 이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은 건설구원이다. 영이 거듭났으니 육의 기능을 살리는 것이 건설구원이다.
육은 영과 달리 복합체요, 심신으로된 소유격으로서 섬길 주인인 자기 영에게 피동되지 않고 자유의지로서 악령에게 미혹받아 피동됨으로 죄를 지은 죄의 행위자이다.
따라서 육을 살리는 육의 구원은 , 먼저 주격인 영을 하나님께서 살려놓으면 주격인 영을 통해서 육인 심신을 살리도록 역사하신다. 따라서 먼저 살아난 영이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의 역사로 주격인 영이 소유격인 심신을 성화시켜가는 것이다.
그런데 단일성인 영이 단번에 살아난 중생과 달리 육은 복합체이기 때문에 심신의 각 요소가 현실을 통해서 중복적으로 개별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한다.
또 구원의 방법에서 영은 하나님의 단독역사로 중생되었지만 육은 순종이라는 행위가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말씀하셨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 심신의 기능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움직이는 기능이 되어서 영원한 사망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대속 공로를 베풀어 주셔서 심신의 기능이 살 수 있는 법적 권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다. 중생한 나는 영이 주체가 되어 육을 다스리는 새 사람 나이다. 이것이 참 자아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하는 나요, 사망에 자유하는 나요, 마귀에게서 자유하는 나요,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자유하는 하나님과 완전히 화친된 나요, 진리대로 사는 나요, 영감대로 사는 나이다. 영은 완전히 자유함을 얻었다. 그러나 육이 문제이다. 마귀가 와서 심신의 육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옛 사람의 세력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 우리를 넘어드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옛 사람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고 피와 성령과 진리를 따라서 살면 그 현실에 관련된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며 우리의 건설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다.
영은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심신 속에 있는 육의 기능이 아직 살아나지 못하였다. 따라서 심신의 기능이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힘입어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싸워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 자유 함으로 다시는 영원히 죽지 않는 기능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영이 거듭난 것을 중생이라 하고 심신의 기능이 거듭나는 것을 성화라 한다.
따라서 중생된 영은 심신의 기능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롬 8:23
"우리까지도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중생한 영이 주체가 되어 심신을 다스려야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한 참 자아의 주체성을 바로 깨닫고 중생한 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5. 중생한 영의 성장
중생한 영은 날마다 성장해 간다. 사람은 출생하여 일정 시점까지 성장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장한다. 예수님도 성육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후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셨다.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신체적 성장은 육신의 양식을 먹어 성장하고 정신적 성장은 지식과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성장한다. 또한 범죄아래 있는 인간은 죄성도 자라간다. 죄악의 성장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점점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중생한 영도 성장한다. 중생한 영은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대속의 피의 공로를 먹고 성장한다. 중생한 영이 성장해야 육인 심신을 잘 다스릴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한다.
엡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신체의 성장과 정신적 성장은 일정시점까지만 자라고 그 이상은 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퇴보하지만 영적 성장은 무한히 자라가는 것이다.
우리 겉 사람은 점점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이 땅에서 영의 실력이 자라갈수록 무궁한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실력을 날마다 우리 현실에서 길러가야 한다.
영의 실력은 육인 심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육을 다스려서 육을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육이 현실에 피동되지 않고 영에게 다스림받아서 만물을 다스릴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육이 영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현실과 환경에 피동되면 죄를 짓고 심신의 기능이 절단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영적인 삶을 사는 나라이다. 세상에서는 영과 육이 있지만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육을 중심으로 살고 세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살아간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느끼고 하는 오감과 그 기능으로 세상을 즐긴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그러한 육으로 사는 나라가 아니다. 영으로만 사는 나라이다. 영의 실력이 없고 심신의 기능이 없으면 허무한 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을 가치로 두지 말고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피의 능력의 사람으로 날마다 힘써 살아가야 한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금은 사람의 영에 대해 주력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는데 노아의 때는 사람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만 살아 홍수로 멸망하던 때입니다.
마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시대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취한 데 있다(창 6:2).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체로 살았다는 말씀이다.
창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 시대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며 육체의 정욕과 쾌락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도 모르고 당장에 눈에 보이는 땅의 것이 전부인 줄 알고 땅의 것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하늘의 복음을 땅의 복음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가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이러한 때에 영에 대한 교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영론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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