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
환란은 우리의 중심을 주님에게서 옮기지 아니하고 나가는 이것이 제일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30년 동안 준비 생활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았다.
갈릴리는 죄악 세상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찾았다. 베드로 요한 야곱은, 교인의 대표였다. 베드로의 전소망 행복, 쾌락, 기쁨 슲음 생사를 갈리리 바다에 다가 두면서 살았다. 오늘에 인류는 다 이와 같이 전부가 이 죄악 세상을 소망두고 사는자다. 여기에 생사라 전 기쁨을 걸어 놓고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를 주님이 전부를 내어 놓고 찾아 오셨다. 주님이 와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배도 그물도 부모도 가족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갔다. 이것이 기독자의 가는 걸음이다. 기독자는. 부모의 장사도 가족 작별도 주님 앞에 세우지 말라고 했다. 세상에는 실족하기 쉽다. 하나님이 어데 있느냐 학 대항하는 세상이니 미끄럽다. 오늘 기독교의 세력을 과학이 유혹한다. 이것을 가지고 대항한다. 기독자는 성소에 들어가야 세상을 알게 된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어느 정도로 따랐느냐. 내가 주와 같이 죽을 지언정 내가 주를 부인하지 아니 하겠나이다 고 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니 내가 어데로 가겠나이까 하였다. 베드로는 주님을 굳게 맹세하고 따라 가겠다고 했다. 이는 주님의 변화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베드로가 주님을 안 후에 바다로 간 일이 두번 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출발했으나 바꾼 사대관을 세상 것을 잡고 다시 찾아갔다. 세상이 이렇게 좋다 .세상을 버린다고 해도 다 세상이 좋아서 세상으로 돌아간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의 친구들이 따라갔다. 이는 교역자 하나가 미끄러지면 교인이 미끄러짐이다. 이러니 직분자들이 받을 심판이 중대하다. 그런고로 바로서서 바로 걸어가야 한다. 일단 주께 부름을 받은 자는. 주님버리고 세상 따라가면 하나도 있지 못한다. 그런고로 주님떠난 자가 성공하리라고 생각지 말라 일분 후에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 주님없이 이룬 것이 성공이냐. 그것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른다. 그것이 앞으로 큰 해가 될는지 칼이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늘 찾아와서 부르신다. 이 사랑을 말라. 늘 잊지 말라. 베드로가 배에 있을 때 주님이 찾아 왔을 때 베드로가 알지 못했다. 신령한 자가 따로 없다. 주님떠나 세상으로 어두워진 자는 눈이 가리워 진자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 이는 주님이 변화되여 못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가리워진 까닭이다. 은혜가 없는 것은 내가 변태된 까닭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모하고 생명을 걸어놓고 갔지만은 변해지니 주님 몰랐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할 때 없나이다 할 때.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했다. 그때 던졌다. 순종하니 고기가 잡혔다. 이런고로 주님 배반하면 세상 것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순종하니 얻었다. 오늘도 우리가 이와 같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때. 찾아와서 내로라 할 때. 베드로가 따라 갔다. 이것이 참 성도의 회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 와서 따라 오게 하고 떡 굽고 숯불 피워 놓고 먹게 했다. 이것은 주님에게 가면 내게 필요한 것 다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마6:8성도에 구하기 전 있어야 할 것 다 아신다고 했다. 그런고로 주님 떠나지 말라. 주님에게 다 책임 지고 있다. 주님 따라가는 자를 주님이 방관하지 않으신다. 절대 책임지고 있다. 주님 따라 갈 때는 염려치 말라 주님이 다 책임 지고 있다. 베드로가 주님따라 갈라고 할 때 내양을 먹이라고 세번 말씀했다. 이는 주님 따라 가는 것이 양을 치는 것이다. 양을 치라고 했으니 양치는 자가 복이 있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양을 맡겼다.
요21:1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님이 예비하시고 주기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 주님은 주님 따라가는 자에게 주님은 방관하시지 않고 반다시 주님은 필요 적절하고 주신다. 주님은 왜 세번이나 내 양을 치라고 했느냐. 이를 주석가들이 베드로의 사욕과 교만을 뽑고 3번 부인했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3번 말한 것은 주님 따라가는 시선을 돌이키지 않고 돌아서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다. 주님만 따라가는 자에게는 양을 치라고 했다.
요나, 요한의 아들이라고 한 것 가지고도 주석가들이 싸운다. 이것은 상관없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린 양을 먹이는 것이다. 이것 이라야 한다. 주님 사랑하는 것이 양치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이리저리 치우치기 쉽다. 우리가 치우치면 아니 된다. 주님 사랑은 자기의 환경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하며 나가는 것이라야 하고 이것은 이웃을 구원하는 생활이다. 3번 양치라고 한 것은 주님 사랑하는 것이 중대성을 말한다. 주님 사랑하는 것이 양치는 것이요 양치는 것이 주님사랑 하는 것이다.
요일5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지키는 것이요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의 계명대로 살다가 보면 이것이 주님사랑하는 것이요 양치는 것이다. 베드로가 주님에게 말하기를 주님을 내가 사랑하나이다. 했다. 이것은 무엇이냐.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했다. 이 대답이 잘 받은 영감이다. 베드로에게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죽을 것을 말했다. 베드로가 이 말 듣고 깜짝놀랐다. 이 말 듣고 베드로가. 힘껏 일 했다.∴사도행전에 예루살렘에서 성령받을 때. 주동이 되여 성령받았다. 베드로가 주님 판 가롯 유다에게 어떻게 되겠나이까 하고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 인간들의 심리 구조다. 남을 따라 갈라고 하는 마음이다. 기독자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자기는 주님을 따라갈 것 뿐이지 남이 어떻게 될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환경과 분위기에 휩쓸려서 갈 것이 없다. 베드로에게 독보적인 신앙을 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주님을 보고 갈 것이지 시선을 주께서 옮기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