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23 //
마2:1-11
박사가 구주를 찾아 만남
별=진리와 영감
1. 박사가 주를 찾아옴.
1) 출발
(1) 때
해롯이 왕노릇할 때 출발지는 동방 파사 혹 갈대아 우르 혹 바벨론이라 함.
(2) 동기
왕자별에 대한 예언을 믿고 기다리던 중에 그의 별이 나타났기 때문에 민24:17 발람 예언에 야곱의 별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인물을 상징한 듯하고 이 예언은 성문에 기록되지 아니한 것으로 유대 중에 있던 것 같다.
①주님이 찾아오심
②예언대망에 확인
③주야 고대하던 중 더욱 어두울 때 고대해야 됨
④상시 계속적으로 됨
⑤별 본 것같이 예언과 영감의 빛을 인하여 발족할 것
(3) 왕자 만날 소망 욕심으로 갈 바도 그 원근도 경험도 불구하고 별을 좇아서 즉시 출발 진리의 빛과 성신 빛 주님 만나는데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함. 아브라함같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야함 금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 영접하기를 원하면 부딪히는 영감과 계시를 깨달음과 즉시 순종하되 미래 운명과 시간 조만간과 고락불고 일심단심 예수님 영접하기만 소망하고 달려야함. 뒤로 미루는 자와 타산자와 안일주의자는 기독자의 걸음 걷기 힘든다.
2) 행보
(1) 그에게 경배하려 그의 별만 따라옴
①목적과 소망이 단순하며
②방법이 이미 정하여있는 것을 확신했다. 별 따라가는 방법 주님 만나는 데는 진리와 영감 외 다른 것은 없음.
(2) 예루살렘에 도달함
① 被從道피종도에 최고 수도인 근거지(영적으로 최고정통이요) 최고 두령들(신학자 교권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② 인도하는 별과 자기 기존지식이 대립 됨, 별은 수도를 통과 하려하고 기존지식은 당시 정치수도요 최고 교권자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있는 곳에 머물기를 주장하며 별을 버리고 자기를 쫓아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③ 찾고 원하든 왕인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 버림받은 이스라엘 정치자 헤롯 생명 떠난 형식만 있는 타락한 교회조직체를 가진 상회 버림 당한 제사장, 서기관 이스라엘 민족(主靈 不動 교역자 신학자 교인 등 이들만 있었고 만났다. 그때 예루살렘에는 계시가 300년에 없던 때다.
④ 입성하여 사람들을 만난 - 크게 해를 만남
a. 정권자 헤롯은 박사에 주장에 대호감이다. 자아 정권 탈실 염려로 주 경배하는 일 협동 같으나 실상은 주님 죽일려 하고 자기는 든든히 하려는 외식자 박해자이다. 박사 不知 금일에도 자기를 주보다 더 사랑하거나 앞세우거나 자기가 권리를 가지려하는 자는 행동은 진리를 대적하는 동기와 결과를 가지게 된다. 이같은 사람들은(목사-하나님 대표자 ,장로- 교회 대표자, 헤롯=정치가, 제사장-교역자, 서기관-신학자 가장 개혁 운동 진리운동을 강조하는 듯이 날뛰고 있는 고로 어리석은 자는 다 속는다. 그들의 목적은 주님 만나는 것이 아니요 자기 의사로 도를 삼아.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하여 그 일에 방해만 되면 무조건으로 끊으려 한다.
b.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성직과 진리 지식은 유익보다 구주를 죽이는 일에 이용되고 말았으니 그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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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3-11
①소망이 세상에 있고 구주에게 있지 아니함. 찾아가지 아니함을 보아.
②로마국권을 입은 정치자를 적대시하는 충절이 없는 고로
③교회와 정치와 속화 교회에 정치를 구별 정치를 구별하지 않거나 또 생명을 아껴 권세에 아부자와 특성직과 특지식은 약구(弱具)가 강적 앞에 날선(利) 칼을 가진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생명된 신앙 위에 진리 지식을 겸하고 진리 지식 위에 확신으로 덮개를 덮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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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왕자 탄생의 소식을 듣고 크게 소동을 하나 주를 찾아가는 자는 하나도 없고. 주님을 찾고 원하는 자가 많으나 참 영원 한 참 생명 자체와 권능 자체와 불의 사랑인 그 자체인 진리 와 영감 내주 충만을 찾는 자 적고 수도(首都) 신자는 참 많다.
(3) 예루살렘 작별함
① 속임도 몰랐으나 왕자 임마누엘 만나기 전에는 견디지 못하는 그 소망의 갈급이 작별 許行(허행)케 함.
갈급 없는 금일 교우들
② 주님 만날 정지식 베들레헴 學(?) 출발. 계시 끊어진지 300여 년 된 때다. 천주교리로는 구원이 없어도 구원 얻을 자는 또 있다. 올바른 신조와 교리가 좋아도 이미 성신 감화와 진리로서 예수님 만나, 거저 예수님 만나기 원하는 자이면 진실된 자에게 예수님 만나 주심. 신앙은 진실로 자기를 삼고 방법 삼고 노력하여야 함. 마23:1
a. 부패한 교회일지라도 옳은 신조와 교리이면 배워야할 것
b. 별에 인도만 하여도 아니 될 바는 아님.
③ 구주 탄생은 미가5:2 예언이 성취이다.
a. 여기서 소식을 얻어야할 뿐
b. 예언 필성이나 반대자 될까 떨고 협동자 되기 위해 힘써 찾아야될 것.
-세상은 하나님의 明文 의지와 성문 의지 예언 확신.
-구약신약 성경의 약속에 확신하여야함. 하나님의 예언 찾아야겠고 또 은밀한 하나님 예언 찾고 거룩한 생활로 됨
④ 城出 하여 갈 새 문득 별 인도함
-기독교 지식 從路 회개하여 學(?) 예언은 있으나 별 따르는 것만 못해 그리워 할 때 별이 나타나 인도.
-별은 감초인 만나 영감의 힘
3) 도달 함
(1)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려 섬. 넘어가지 아니함.
-중심에 주만 待望대망하는 자는. 진리와 영감에 빛이 주님을 바로 만나게 하여주시고 상하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하신다. 주를 만나기를 간절이 소원하는 이 주관이 우리에게 제일 요긴 하다.
(2) 저희가 별을 보고 제일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이 별에대한 많은 학설(星交合說) 있으나 이 별은 자연성이 아니고 초자연 별로 구주를 무난히 만나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다. 금일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소개하여 주시는 진리의 말씀과 영감 만 바라보고 따른 望從者망종자에게는 종전은 허무한 듯 하고從時종시는 피곤도 하다. 순종 후는 희희만만한 것이 기독교이다.
(3)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 박사는 몇 명이라고 수를 정하기 어렵고 누가는 아기를 구유에 누였다고 하였는데 여기는 집에 누였다고 한 것은 상이 한 것 같으나 박사가 온 지는 시간이 얼마 지냈는 고로 집에 들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말씀대로 영감대로 순종하여 주님 계신 지성소만 들어가면 얼마나 기쁘고 만족할까.
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임마누엘 한 분만 만나기 위하여 출발 함.
② 모든 파란곡절 통과 자기 부인타락 교회 지나서 걷고 걸어주를 만났다. 그들은 기쁨으로 만족하였다.
2.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림
이 경배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야 될 것은 초림 메시야는 육신 으로 이스라엘 된 그들이 오늘 우리가 재림 주를 소망으로 기다리는 것과 같이 자신으로 초림하시는 주를 소망으로 기다렸 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유대인들이 육신으로 이스라엘 시기 유대교 시기가 지나가고 세계 각 족속을 막론하고 구원하는 시기 또 예수교 신약 시대 영적 이스라엘 시대에 입교하여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초림으로 탄생하신 임마누엘을 영접 지 못한 자는 육신으로 이스라엘 된 유대교를 믿어 구원 얻은 자가 아니고 유대교로는 실패자요 예수교를 믿어 구원 얻은 자가 아니고 유대교로는 실패자요 예수교를 믿어 구원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유대교인 중에는 구원 얻은 자가 심히 적다. 다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가 소망주 영접 준비에 얼마나 힘쓰며 근신하여야할 것이 보인다.
(해석)
아브라함부터 구원 얻은 두 종류이다. 육신 이스라엘은 초림주 를 기다렸고 영적 이스라엘은 재림주를 기다렸다. 육신으로 이스라엘이 초림주 영접한 자 적고 실패자들이였다. 이방인에게구원이 신령한 이스라엘인즉 그 유대교인들이 예수교로 구원 얻은 자 많다. 이제 주님이 노아 때와 같다하였으니 마음이 떨리는 것이나 이미 법적 구원은 예정대로 믿으려니와 내가 구 원얻은 자에 행동 생활을 할 것인즉 구원얻은 자에 주의할 것
① 택한 자는 반드시 구원 얻을만한 행동이 행위가 있어야하고
② 구원 얻을만한 영감이 내게 오고 믿어지면 내가 택자 이것만 택자의 생활을 못하니 이 택자의 생활하도록 노력하여야한다. 그런즉 택자의 생활 이루어져야 한다.
(주의) 거동
① 생명과 세상을 바친 마리아의 부부
② 제단생활 한 사가랴의 세 가족
③ 하나님의 특사의 연락 받는 특수한 영교가 있는 목자
④ 일편단심 구주만 소망하는 시므온과 안나
⑤ 고와 사를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떠난 동방 박사 들 신령한 예수님 영접은 진리와 영감을 심령에 영접하니 사상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 예수님에 사상을 가지면 마귀는 싫어하니 투쟁이 일어난다. 가족 친구 환경이 예수님을 잘 믿을라면 듣고 일어선다. 일정 시에 주님은 신사참배하지 말라는 예수님이니 그때 예수님만 내어놓을라면. 생명과 세상을 내어놓아야 할 처지였다. 그때 세상과 생명 내어놓지 아니한 자들은 오늘에 머리를 숙인다. 이런 자들은 처녀로서 예수님 못 뵈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 근심은 땅의 근심과 하늘에 근심이니 하늘의 근심은 회계를 일으켜 구원에 일으게 하고 땅에 근심은 탐심이 자라 죄로 죽음에 이름이니 세상부터 수지계산을 맞추어 남은 힘으로 예수님을 믿을라는 자는 예수님을 내놓은 자요. 생명은 주께 달렸나니 생명을 아끼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생명을 받치는 자는 살리라.
(1) 육의 생명 안 줄라고 하면 영생하는 생명 빼앗기고 또 육의 생명 아끼는 자는 날마다 죽겠고
(2) 이제 주께 생명 바치는 자는 평안하다. 생명 내어놓으니 매일 기쁘다. 오늘 땅에는 2대 평강이 있으니 주관적 2대 평강인데 세상을 내어놓고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다. 생명 아니 내어 놓으니 불안하고 생명 내어 놓으니 평안하다. 바울은 부요한 데도 처할 줄 알고 궁핍한데도 처할 줄 아는 자족을 배웠다고 했다.
(3) 사가랴는 제단 쌓다가 세례요한 벨 계시 받고 세례요한 줌으로 예수님 소개자로 오셨는고로. 예수님 모셨다. 성전은 ①하나님 있고 ②제물 있고 ③자기 있는 것이다. 제물은 산 것이 들어가서 죽어 나오는 것이요 또는 바치는 것이다. 아무 데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인줄 믿고 주께 내가 희생하여 바치는 것이 그 순간 제단 생활이다. 이런 제단 쌓을(살) 때에 진리와영감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신다.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 오사 너희께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 신령적 이스라엘도 재림주로 특별히 시대마다 영접하려면 일정시와 6,25시에 주님을 만났으니 이 주님 만나니 권능 얻는다. 엘리야를 따라간 자 엘리사는 권능의 두루마기를 받았나니 이는 요단강 건너가서 회리바람 불 때에 받았다.
(4) 하나님의 특사에 연락 받은 특수한 영교가 있는 목자
이 목자들은 평소에 하나님과 연락 있는 자다. 선지 사도들이성경에 대한 특별한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경을 어떤 때는 환하게 보여지나 어떤 때는 안보여지나니 특사의 연락을 받은 자마 이 특별히 성경의 은혜를 받는다. 목자 는 양을 기루는 자이니 (엘)에는 즐기는 백성들인데 목자는 빈 들판에서 양을 먹이는 즉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목자이다.
① 성경의 특수 은혜
② 성신의 특수은혜
③ 사람의 영혼 구원은혜
이 세 가지가 있으니 특사의 연락을 받고 영교하는데 여기에 주님을 기다리는 자가 되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재림주로 기다려야 하겠는데 주님 기다리지 않은 자 불신죄이다. 인간은 피동물인즉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에 녹아질만한 인간인즉 주님 아니 기다리는 것은 불신죄, 죄악의 마음인즉 우리 마음은 오 주님 어서 오십소서 하고 기다리는데 세상이 괴로워서 어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또 천당이 좋아서 기다리고 싶으나 그보다도 주님과 실컷 사랑해야 주님 품안에 나는 안기고 나는 주님 품 안에 실컷 안기여 사랑을 받기 위하여 어서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한다.
◎ 성경을 잘 알아 신학자가 되는 것이 원만한 것이 아니고 단 한 성구를 알아도 밝히 아는 것이 성경의 특수 은혜이다.
(5) 동방박사들이 주께 경배함은 장기간에 애로와 사지 통과 인 순교적 걸음 끝에 주를 만난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 된 우리가 박사와 같은 걸음을 아무리 걸어도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님은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육신으로 이스라엘 됨이 아니요 영적 이스라엘이니 주 만날 준비에 애로도 주님도 다 영적이요 육적으로 아니다. 그러나 주를 만날 준비와 애로와 재림주로 영접할 기쁨이니 경배는 同意하다. 박사의 신앙 생활에서 뚜렷이 보이는 것은
① 포기와
② 결사와(당시 국경을 넘는 것은 사지다.)
③ 인고와
④ 충실만은 보여짐이다. 신령한 이스라엘은 더욱 그러함이다.
1) 엎드려 경배하고 (:11-)
(1) 엎드려
① 최고의 경배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예배 대상으로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도 일도 많고 그 앞에 낮아져야 할 만한 위험도 권세도 조직체도 인간도 많기는 하나 여하한 과도기 위기 일지라도 무엇을 주보다 높이거나 내가 주께 보다 더 숙이거나 하면 이는 주님께 수치를 줄뿐 아니라 죄감을 가져야합니다. 여하한 혜택자 愛者라도 그러합니다. 직접 주님께 대하여서나 주님께 소속한 간접의 일, 혹 일이나 혹 사람이나 대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자기 일보다 교회 일 등한히 하면 수치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 체 식주의 구주를 변케 아니함.
② 박사의 지위요 장거리의 고행한 그들은 이 표 없이 엎드렸다. 우리도 주님 앞에는 자기 지위나 공로는 기억조차 않는다면 죄송한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③ 신약 중 예수님의 발아래 엎딘 사람 몇 명이 있다.
a. 눅5:8-11 베드로는 권능의 주님 앞에 엎드려 세상을 포기하는 권세와 사람을 낚는 권세를 얻고
b. 눅7:38-50. 죄인 여인은 사랑의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사죄 와 평안을 얻었고
c. 요11:32-44. 마리아는 위로의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의 동정 과 나사로의 부활에 위로를 받았다.
d. 계1:17 요한은 영광의 주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과 천국과교회에 영광을 보았다.
e.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하다고 보여질 만큼 그 중심이 주께 굴복을 당한 그 마음 가지지 못했으면 주의 공로를 모르는 사람이다. 참 겸손은 영광의 앞잡이다.
④해석, 일편단심 구주만 소망한 시므온 안나
안나는 100여 세요 시므온은 구원이 이르기를 원해서 주님보고 죽겠다고 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주님 보았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주님 영접하는 데는 그 기도와 헌신도 귀해도 주님 기다리는 것이 제일 귀하다. 피 흘리신 주님 아니 기다리는 것 얼마나 섭섭하뇨. 마24:에 종 둘이 있는데 하나는 주인을 기다리다가 영접하였고 하나는 졸다가 못 영접했다. 거기는 깨여 기다리는 것이 중점이다 누워 자고 졸고 있다가 주인 만난 자와 하나는 충성하여 있다가 주인 올 때에 졸고 있어나 이것을 주님은 바로본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고대하면서 기다리는데 주인이 아니 오는 날 고대 한 것과 차이는 같다.
그러므로 평소에 깨여 있으나 주님 오는 날 깨여 있으나 황금은 같다. 그러므로 깨여있는 종에게 중대한 것 다 주마고 하였다. 마24:27. 우리가 아무 것이 없어도 주인과 종 사이에 무엇보다도 고대하는 것이 제일 크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주님 믿어도 그날 주님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다. 우리가 주님 오시는 날에는 내가 주 앞에 내 죄는 영영히 이별 된다. 다만 오시기 전에 그 죄를 이별하면 거룩으로 채워주고 고하지 못한 죄는 그날 벗는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택자는 예수님 오시면 좋다. 그러니 내 신앙 없으니 어찌하랴 하는 의심 말고 주님 오시지 아니하는가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공로 없고 의가 없어도 예수님 피 밖에 없다. 내 죄를 대속하여 죄 사유하여 주시고 대신 순종하여 우리를 의인 만들었다 마귀는 어떤 죄든지 들고 나서나 주님 피공로 들고 담대히 서서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의 눈물을 흘리어야한다.
⑤ 동방박사들은 전부를 포기하였다.
이들은 육신으로, 이스라엘 된 그들은 원거리를 걸어와서 만났다. 우리는 신령으로 주님 맞이하는 데는 우리의 생활이 고생스러운 생활하는 것이 장거리 걸은 자와 같다. 걸으면 동방에서 나설 때 거리와 순서를 통해 만난다. 천국 순서가 있으니 신앙에는 반드시 경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믿는다고 단박에 의인 되려고 말고 그만큼 순서가 걸려야 된다. 사람에게 인정받는데도 시간이 걸리니 신앙에는 경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일정 시부터 믿는 신앙이 다르다. 그와 같이 동방박사가 먼 거리를 걷는데 열 발자국만 더 걷지 못하면 못 만나는 것 같이 우리도 단박 예수님 못 만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암흑도 있겠고 성화 된 자 같이도 보여지나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성화 시키는 순서이다. 이는 택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퇴보도 타락도 없다. 우리는 포기하는 것은
① 이때까지 내 것으로 있던 것은 주님의 것으로 알고
② 내가 그것으로 인해 있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있는 것
③ 그것들에게 붙들려서 충성에 대하여 추호도 양보 말 것이다.
내가 주를 위해서는 조금도 방해받지 말 것. 이 세 가지 지장 없이 살림도 가족도 가져야 한다.
(보충)
‘엎드려 경배’
이는 최고 경배인데 오늘 우리는 최고 제일 높이 대접하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아서 주님 앞에 나를 내놓지 않아야한다. 우리가 땅 위에서 존경할 사람 높일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만큼만 조직체 권세만이 있고 하나 우리들은 언제든지 그 앞에 가면 머리 숙이지만 이제 머리 숙일 만한 자만큼만 예수님 앞에 머리 숙이는 것보다 더하면 예수님 수치 준다.
※ 자기의 것 있는 것 만큼 들고 주님 앞에 나가면 적은 것 있는 것이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고 후에는 큰 것으로 가리워진다. 이만큼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고 후에는 큰 것으로 가리워진다. 이만큼 주님과 나 사이에 내 존재와 명예 있다고 보면 잘 가리워진다. 주님 앞에서 나라는 것 내 세운 것 만큼 죄인즉 이미 주님 이 피로 값주고 내 모든 것 산 것인데 다 바치지 못하고 내 것으로 세우는 것만큼은 죄다. 성전기구도 속하지 않고는 쓰지 못했다. 거룩하게 만들고야 쓴다. 우리에게 속한 것만큼 전부가 예수님 피에 팔리운 것인즉 전부를 주님께 드려야 한다.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드릴 라면 불의한 것이니 주님과 나와 가리워지나. 아무리 박사라도 이모든 것을 주께 드려, 바칠 때 주의 것이 된다. 오늘 우리는 조금 일하고 논 내가주의 일을, 이만큼 했는데 한다. 눅17:에 밭과 양을 맡기고 주인 대접 또 하는 것이. 믿음 더하는 방법이다. 종이니 주님의 피에 팔린 종이니 무익한 자라함에 신앙은 자란다. 동방박사 가 수천 리 길을 고행으로 왔으나 어린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 경배했다. 종이 주인 위해하는 것 마땅하건만 제 것 내세울 것 어디 있으리요.
마2:11-12
‘경배는 예수님에게만 하였다.’ 박사들이 주님 앞에 갈 때는 많은 사람을 거쳤다. 그러나 오직 아기에게만 경배했다. 오늘 우리들도 사랑하는 사람 은혜 받은 사람이 많지만 오직 주께만 경배 드리고 주님만 대접하고 아무리 위협해도 제일 숭배하고 존경하고 우리 주님께만 드리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이것 하나만 두어야 하겠다. 주 한 분만 제일 사랑 제일 두려움 제일 존경하고 저하는 마음가지지 아니하면 주님은 노여워한다.
◎마치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왕에게 뽑히어서 공부 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였다. 이 네 사람들이 공부만 하면 대신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이 이들에게 제일 힘쓸 만한 영양음식을 먹이는데 이 음식 먹여 왕을 잘 섬기도록만 하게 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느부갓네살 왕만 섬기고 거기 등용할려고 전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네 청년은 아무리 우리가 잡히워 왔어도, 우리의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이 왕이 먹는 육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채식만 먹겠다 하였다. 이제 이 청년들도 왕에게 좋게 보여 높은 자리에 앉힐라면하나님 앞에 배신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변화산 삼자가 변화하신 주님만을 생각지 않고. 모세와 엘리야에게만 쏠리어서 그만 하나님께서 너희는 그 말을 들어라 했다. 즉 구정을 버리고 신정을 가진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자리에 나가던지 소망에 나가던지 할 때 세상 소망이나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 다니엘은 느부갓네살만 옳게 섬기고 그의 말만 들으면 이는 하나님 잊어버리게 된다. 또 이제까지 하나님 섬기던 처지에 왕에게 곱게 보이고 공부 잘해서 높이 되겠다는 생각하지않았다. 그것 하나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십배 나 주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기도해야겠고 왕에게 살리우려면 기도 아니해야겠으니 왕에게 살기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이 구원 해주실 그것을 확실히 믿었다.
◎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으로 의지해야지 어떠한 입장 어떠한 형편이던지 하나님 제일로 사귀지 않고 열심히 중심에 사랑하고 의지하고 사귀고 존경하는 여기 취미 붙이고 예수님 사랑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배신한다. 택자는 이런 일 만나는 것이 눅5:8-10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베드로가 세상 포기하는 권능 없었다. 우리가 앞으로 일하여 나가는 데는 사전에 생각할 것은 성경 말씀대로냐 주관이냐 꼭 비판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대로냐 내 의사대로냐 객관이냐 주관이냐 베드로 역시 거꾸러진 것은 주의 말씀대로 한 것이 신실함으로 거꾸러 졌다.
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관이냐 객관이냐 하고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② 성공이냐 실패이냐 보고
③ 사전사후 연결시켜
④ 판정내리고 거꾸려져야 한다.
a. 이렇게 되어야 세상 포기
b. 복음 생활 권능 요11:32-34 마리아가 주님 발아래 거꾸러 졌다. 마르다가 마리아에게 와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이제라도 믿으면 산다고 하였다. 영광을 보리라 했다 한즉 마리아는 주님 앞에 와서 나사로의 죽은 것에 대하여는 원통하고 또 주님이 이제라도 살려준다고 하니 주님은 마리아의 원통이 여기는 대하여 주님도 원통이 여기고 마리아가 나사로 살릴것을 바라고 기뻐하는 그 순 소망 그 기쁨을 주님도 가졌다. 내가 열 낭 중 잃어 원통한 것 만큼 주님도 원통히 여긴다. 모든 일의 실패도 있고 부활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들은 실패하였으면 실패하여 원통히 여기는 동정을 얻고 거기서 주님이 다시 살리는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는 그대로 기뻐한다.
◎
우리가 무엇이든지 실패할 때 낙망 가지고 여기 소망 가지여야 됨은 주님이 동정하다. 부활에 소망 준다. 우리가 옳은 일에 실패하여 죄가 되고 불의에 대하여 실패되면 성공이니 우리가 원통함으로 거꾸러지고 소망도 간구도 거꾸러지면 주님이 위로와 소망 준다. 원통한데 동정 눈물 많이 눅7:38-50 주님이 죄사하여주시는 은총 베푸시는 것 감사하여 거꾸려졌다. 눈물로 발을 씻어준 것도, 자기 애정을 기우리고 머리털로 씻은 것은 자기 영광을 받치고 입맞춤은 생명을 기우려 바칩니다. 그저 주님 앞에 거꾸려져야 한다. 주님의 발은 주님 몸 된 교회에 지극히 적은 일에도 교회 적은 일에 내 정을 기우리고 나의 영광을 바치고 생명 내바치고 주님 앞에 나오면 평강 온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살면 교회에서도 업수이 여기고 멸시 한다. 그러나 거기서 사죄를 누릴 수 있다. 주님이 나에게 피 흘려 주었으니 감사 하여야겠다 하면 그럴 때는 반드시 교회에 거짓부리들의 반대가 있습니다.
(2)아기에게
①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장성한 예수님께도 유대인은 경배하지 않았는데 이 동방 박사들은 이성 없는 어린아이께 경배했다. 이것은 그 아이에게 소망을 둔 까닭이다. 오늘 또 참된 소망을 주님께 두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간단한 말씀과 적은 감동에도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참된 소망 을 가진 자는 적은 성구 간단한 말씀에도 경배 드리나 참된 소망에 진실한 마음 가지지 않은 자는 기이한 역사와 특수한 성신 역사와도 같은 예사로 엮이는 것 많다. 우리는 이 적은 말씀에 경배하여야한다.
② 이 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였으나 이 아이가 장성하여 자기에게도 구주가 되고 다른 사람의 구주도 되어졌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적은 한 성구에 순종하여 큰 성공 있는 것 깨달아야한다.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도 오천명 먹이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어라 함은 하나님의 은혜는 많고 적은 것이 없다. 주님이 남은 부스러기를 주어라 하니 12 광주리였으니 이것으로 얼마나 먹이겠느냐. 이는 초자연적 능력이요 성신도 초자연적 능력이요 이 성신 강림은 하나님이 나에게 강림하심이요 높은 말씀을 하면 큰일이 있을 줄 알아도 고넬료집에 들어가서 설교 몇 말씀 안 했어도 성신 충만하여 물세례 주었다. 이 동방박사들이 적은 예수님께 경배함은 진리에 말씀과 성신에 감화인즉 예수님의 신이 없는 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예수님에 화상 그린 것은 추상하여 그린 것이요. 주님은 초상을 그린 일이 글도 땅에 썼다가 뭉개버리고 말았다. 이는 우상시할까봐. 성화도 글도 남겨 놓은 것이 없다. 성경 말씀은 얼마나 권위 있고 능력 있느뇨. 한 말씀에 천지를 지으 셨다. 로고스로 대문자로 쓴 것이고, 소문자로 쓴 로고스가 있 으니 대문자 쓴 로고스가 천지야 있어라 할 때 되어졌다. 천지 만물은 말씀이 창조하였고 주님 명령하니 되어졌다. 우리에게 오신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능력있는 말씀이다.
행20:30 내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거룩한 자 앞에 든든히 세우라 이제 불 탈 창조물이 더 크냐 천지 만물 만드는것이 더 크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만들게하는 큰 말씀이다. 어찌하여 이 성경 말씀을 박대하느뇨? 이 성경은 능력의 말씀이 가득히 들어 있는 말씀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신을 받아야 하건만 어찌 어마어마한데 찾아가리요. 그림만 보고 도를 믿으면 그림이 우상이 되나 오늘은 진리 말씀인 줄 알고 진실하고 사랑인 동시에 자비하신 예수님인 줄을 성신 감화로 받아 드릴 때에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인 것을 신앙사상에 척 들어간다. 이런 인격적 인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예수님을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가 찾는 예수님은 진리와 진리의 신이 우리와 같이 세상 끝날까지 같이 한 시간도 예수님에 영이 같이 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런즉 적은 은혜를 귀하게 간수하면 적은 은혜가 크게 된다. 별스러운 감동이 나올 줄 알고 기기모모한 말씀이 나올 줄 알고 그러나 이 말씀에 권능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3) 경배하고
① 경배는 인격 상대만이 할 수 있다. 이는 희로애락을 다 나와 같이 가지고 있는 자에게만 경배할 수 있다. 임금에게만은 .. 암만 잘 단장해도 거기 절할 수 없나니 인격 없는 데는 절 못한다. 당이나 단체에게 절할 수 없다. 죽은 자에게도 절할 수 없다. 이것은 우상이다. 아주 높은 자라 해서 먼데서 절하면 그는 그 사람을 사람의 자리에 두지 사람의 자리 이상에 평가를 둔 까닭이다. 또 국기에게 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였다. 안된다. 지금 예수님에게 절하면 우상이다. 다만 신령으로 주님께 경배함은 주님을 내가 인격의 대상으로 맞이하여 그에게 모든 것 의논하고 맡기는 것이 경배하는 것이다. 이제 재림 시에는 절할 일이 있을는지 모른다.
② 박사가 주님께 경배함은 아주 뜻이 깊다. 얼마나 자본이 많이 들고 먼 거리 고행으로 온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을 섬김은 수고 적게 들고 돈벌이 많이 하는 것이 좋고 공부를 단박 해놓은 것이 좋으나 박사들은 먼 거리에서 경배해도 좋을 것이나 수고를 많이 하여 경배하는 것이 좋다. 어째건 많이 들고 힘들고 하는 것이 좋다. 동방박사는 하나님 찾아 경배 한번하고 아멘 할렐루야하고 척 돌아가서 안심하고 있다가 천당 같다. 시몬과 안나도 예수님 한번 아듬어주고 구원 얻었고 목자들도 경배 한번하고 구원 얻었고 엘리사벳도 찬송 한번 하고 구원얻었다. 사렙다 과부는 떡 한 개 대접 하고 구원 얻었나니 이 떡 한 개 대접은 오랫동안 주의 종들을 대접하던 나머지였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늘 주님 대접하기를 원하고원하다가 성만찬 차렸다. 그런고로 날마다 돌아다니다가 예수님 오실 때 척 만나는 사람과 오래동안 이상한 구름만 보아도 오늘이나 주님 오실려는가 하고 기대하는 자를 귀하게 믿는다.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인격적이시요 사람 보기에 부흥이 되고 안 된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님을 대접하려다가 못하고 또 대접한대다가 못하고 여러 번 하다가 대접하게 되는 것이 귀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층이 많아도 불편이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그저 낙망하고 불편하다. 다만 성심성의로 주님께 바치는 것만이 할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성공과 실패에 표준을 어디 세우리요. 현재에 삼지 말고 내가 얼마나 주님께 충성했나 아니했나 이것으로 표준 삼지 나타나는 것으로 표준삼지 말라. 동방박사들은 어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 중심하고 돌아간다. 주여 내 생명을 맡기나이다 하고 내 영생 내 부요 내 구원을 맡기나이다 하고 돌아갔다. 구스 내시가 단 한마디 전도의 그는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고국에 돌아가서 예수교를 세웠다. “이도그(000)” 는 가족에 늘 성구를 읽은 열심히 성지도 구경치 않고 가는 이것이 그 한 성구로 구원했다. 나다나엘도 그 은밀한 가운데 기도 한 고로 단번에 주님 만나 바로 구원 얻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이는 데 두지 말고 은밀한 가운데 있는 그 정성을 주님은 보신다. 숨어 있는 공적이 같이 있으니 그것을 주님이 보신다.
2) 예물을 드림
(1) 황금을 드림 - 믿음을 가리킴, 벧전1:에 금같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한 말씀이 있다. 육신으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육신으로 오신 메시야요 육신인 이스라엘인 고로 예물도 물품으로 드렸다. 오늘은 우리 신령적 이스라엘인 고로 우리는 물품으로 드릴 수 없나니 믿음으로 드려야한다.
요1:12, 요6:29, 믿는 것이 하나님 일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만날 때 모든 것 다 가지고 가는 집 가장 기뻐하는 것 믿음으로 다 각양 환경과 주의가 의심할 수 밖에 없는데 서로 의심하지 않은 것이 믿음이다. 이는 가나안 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일생 주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고 더좀 가야 줄 것을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세상 떠날 때 한 말씀은 진동되지 않은 더 좋은 터를 나에게 주라는 것이다 하였다. 이것이 믿음이다. 모세가 홍해를 당도함에도 의심하지 않고 들어갔음으로 홍해는 갈라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할 만한 입장이지만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의심할 자리에 또 믿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의심은 가장 하나님이 미워한다.
◎겨자씨 믿음을 말하였나니 겨자씨는 적어도 땅에 심으면 수분과 온도 비료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썩지 않은 씨가 들어왔구나 하고 수분 온도 비료가 썩히려고 한다. 그러나 씨는 점점 통통하게 불어서 그 속생명은 자라서 움이 나오나니라. 천국은 겨자씨 나무와 같다. 자라서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을 말하였는데 겨자씨 믿음의 수분 오르는 것은 자비 있는 생활 세상사람이 행복이라고 하는, 목마른데 물마시면 시원한 것이 올 때에 생명 있는 믿음은 여기서 더 믿으려고 하지만 생명 없는 믿음은 썩는다.
◎온도는 평안을 말하나니 이제까지 생활 곤란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하니 평안. 국가도 사회도 평안하니 이제 아니 믿는다. 남에게 짓밟히고 핍박 받을 때는 예수님 잘 믿으니 평안하오니 안 믿는다. 그러나 생명 있는 믿음은 이러한 모든 것이 평안 하여지니 더 믿어야겠다 고 하며 더 주의하며 나아가는 것이 겨자씨 믿음이다.
◎이제 비료는 모든 죄 다 이제 아이들이 와서 내 믿음을 떨어트리려고, 친구도 남편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못 믿겠다고 하지만 생명 있는 믿음은 오히려 더 잘 믿으려고 하니 이것은 생명 있는 믿음이니 더욱 나는 영생 취해서 믿어야겠다 한다. 누구는 외동 아들 죽어서 못 믿겠다고 하지만 더 잘 믿는다. 이것이 주 앞에 드리는 믿음이다.
◎동방박사들에게 이제 황금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하나님(000) 여는 황금 길이요 보석이다. 황금이 쓸 때 없나니 우리는 믿음 가지고만 가야한다.
◎그런즉 동방 박사들이 황금덩이를 가지고 오는 데는 이 황금 을 건사하는 데는 생명을 걸고 간수하였을 것이다. ◎먼 거리 국경을 넘는 위협 ◎도적의 위협 ◎굶주림이 있어도 이 황금덩이는 내어놓지 않고 가지고 온 것같이 이제 ◎우리는 온 분위기가 다 나를 공격해도 다만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께 대접하는 것이요 예물이다. 모든 것이 실패되도 의심말자 약속을 믿고 그의 성공을 믿고 의심 말자.
(2) 유향을 드림.
유향은 아라비아에서 나는 감람유인데 이는 몸에 피부병이 나서 그 유향을 바르면 다 낫는다. 또 향기도 나며 동시에 피부병이 났고 속병도 그 유향을 먹으면 낫는다.
그러면 유향은 무엇을 말하느냐.
눅10:30 여리고로 내려가든 여리고 성을 가다가 불한당을 만난 사람에게 그 터진 곳을 술(포도주)와 유향을 발라 나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전체가 상한 것 터진 것이다. 혹 이목구비 전신이 다 병든 자다. 육신의 문둥병은 고치지 못 하는 줄 아나니 곧 영에 문둥병 들면? 어째 고치리요. 다만 인간들의 죄로 인하여 생긴 병은 단지 예수님께서 피 흘려 구속하여 주었나니 이 만신창 같이 되어 있는 자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것이 곧 유향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향은 사랑이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은 부르시며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이 원통하여 이리저리 다니느냐. 네가 이제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하시니 그럼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무엇으로 사랑하며 대접하리까. 주님은 나를 위하여 죽어 셨는데 나는 3번이나 부인했으니 주님을 사랑할 도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요나의 아들 시몬아 내 양을 먹이고 치라 이제 너를 원치 않은 곳에 사람이 띠를 띠워 묶어가리라.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할진데 내 양을 먹이고 치라.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치라 지극히 적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 주 사랑하는 자다. 이것이 유향을 드리는 것이요.
◎예수님 나신 후에 먼저는 시므온과 안나가 만났지만 다음은 목자들이다. 이 모든 것은 목자의 사명감을 가지라 말씀이니 온 세상 끝날에는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되 끝까지 사랑하는 자가 승리한다. 어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억울한 매와 욕을 당해도 그 속에 있는 유향으로 담대하다. 많은 파란을 겪으면서도 가지는 것이 무하다.
◎내 속에 있는 사랑을 깨트리는 것이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회 에서부터 온다. 이것은 한번 치르고 나면 국가에서 온다. 끝까지 이 사랑 안 내어줄라고 하는 자만이 이 환란시험 당한다. 이 시험 극복 할수록 한 계단씩 올라가서 세상 끝날에는 모든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하였지만 국가에서 넘어트리려 해도 아니되면 가정에서 오나니 이 사랑 끝까지 가지는 자 주님 대접하고 사랑하는 자다.
○후란시스는 밤중에 누었는데 쥐들이 달려들어서 밤새도록 뜯어라 이 사람은 형제여 나는 너를 해하지 않는데 어찌 너는 나를 해하느냐고 하였다고 한다. 주님 사랑하는 그 사랑을 상대편에 뭇사람에게 사랑하며 연단받은 사랑을 끝까지 가지고 주 앞에 드리는 자 되어야 한다.]
○가장 사랑을 뺏기기 쉬운 것은 가정에 아이들에게 부부간에 뺏기기 쉽다. 그런즉 우리는 사랑 없는 것 위해 놀기도 하면서 나가면 한 번씩 부닥치는 시험을 이기고 또 이기고 최후까지 대적하는 것이 주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교를 당해도사랑없이 죽이는 자를 미워하면서 순교를 당하면 이는 주님을 입 맞추면서 뺨 때리는 것과 같다.
(3) 몰약을 드림.
◎이 몰약은 감람나무 진인데 몰약의 특징은 썩는 것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다. 사람이 죽었을 때 발라 놓으면 수십 년 이 가도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 이제 몰약은 색이 불고 자색과 그 사이에 색을 가지고 있는데 갈수록 더욱 단단하여 지며 갈수록 빛난다. 그러기에 더 야물어지는 것인 즉 그러므로 소망을 가르킴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랜 세월이 지나감에 없어지리요. 주님의 피로 죄 사유하심 받고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은 나를 구속해주시고 영원한 영광 주시려고 하는 것 소망 은 더욱 굳다. 우리들은 썩을 것 썩지 않은 소망에서 나아가야 하나 좀 기도나 막히면 그만 주님이 날 버렸나보다 하고 또 좀 기도나 좀 잘되고 성경이나 잘 보게되면 주님은 나만 사랑하는구나 하고 기뻐한다. 주님은 낙망치 않으신다. 다만 공연히 우리들이 낙망하나니 우리는 이 몸둥이가 누워도 불타도 소와 같이 잡혀가도 죄를 자꾸 지어도 낙망 말라.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낙망 말고 주여 당신만 믿나이다 할 때 욥에게 베푼 역사를 보아도 욥은 겸손하여 끝까지 소망하였으니 모든 것 배로 주었다.
① 여가 있는 자녀가 있으니 배를 땅에는 많이 주었다. 욥의 소망에 대한 것은 그가 소망을 바라보았음으로 인내가 있었다. 우리들이 소망을 가질 때 낙망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것은 그 몰약을 가치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귀한 선물 주시기 위하여 이런 의심주시는 것이다.
◎ 죄 중에는 불신 의심 낙망이요 의는 믿음 사랑 소망이다. 고전13:13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다. 성경 절수마다 믿음 소망 사랑으로 듣고 보면 전부가 그대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낙망과 의심올 때 대적하는 것이 믿음, 소망, 사랑이다.
마2:12
3. 박사가 고국으로 돌아감
1) 하나님의 지시 받아
(1) 꿈에
① 이 꿈은 하나님의 계시의 꿈이다. 후에 이 꿈이 문서 계시 에 나타난 꿈이다.
② 지금은 이러한 문서 계시에 나타날 만한 꿈은 없다. 이 꿈과 같이 없어서도 안 될 만한 꿈은 없다. 사람들은 옛날 요셉에 꾸인 꿈과 같은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
③ 지금도 영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신이 가리키는 꿈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만한 그런 필요성 있는 꿈은 없다. 벌써 우리에게는 구원 얻는 계시가 완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꿈이 쓸데 없고 또 주관몽이 많고 주사야몽이 많고 악몽도 있다. 이는 마몽이니 이 꿈 가지고 주관하는 자, 주관 하다가 신비주의로 돌아가는 자 많다. 그런고로 꿈과 성경과 합치하여지면 믿어도 그렇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성경 말씀과 합치되어도 나는 꿈 너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보고 믿나니 나는 꿈 너를 버린다하여야 됨. 그러므로 꿈보다 영감으로 진리 지식으로 믿는 것이 완전하다. 꿈을 믿는 것보다 꿈을 부인하는 것이 낫다. 꿈은 유익하게 해석해야 한다.
(2) 헤롯에게로.
① 이 헤롯은 어떠한 헤롯이냐 하면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최고 의 정치 권세 가진 해롯 왕이다.
② 이미 동방 박사들은 대접도 많이 받았고 또 견고한 약속을 맺은 해롯 왕이다.
③ 당시 모든 그 나라에 백성을 임의로 죽일 수 있는 왕이다.
(3)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음
종전 길을 전환하라는 것이니 회개하라는 명령이다.
① 최고 권위 있는 인간의 비위를 맟추느냐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느냐 갈래 길 많은 데서 박사로서는 힘드는 일이다. 이제 이 박사에게 오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하는 것에는 심히 어렵다.
② 사람의 약속을 지키느냐.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느냐 하는 어려운 입장에 세운 명령이다.
③ 왕을 노엽게 하고 왕의 명령을 거스려서 죽음을 받느냐, 하나님의 노를 받느냐 왕을 기쁘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하는 어려운 입장이다. 이것이 동방 박사가 메시야에게 왔다가 이제 메시야를 작별하고 고향으로 출발하는 길이요 메시야를 만났던 최고 절정의 길이요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는 초점이다. 오늘 기독교인은 메시야를 만난 것은 세상을 포기하고 이제 메시야를 만난 것이요 만난 후에는 세상을 찾아 만나려나가는 것이 예수님 믿는 것이다. 고향을 버리고 걷고걷고 나온 최고 종점에 주님 만난 것이 이 말씀이요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초점이다. 종점과 초점은 양 갈래 길을 가지고 있다. 이제 헤롯왕은 당시에 정권을 가진 왕이요 대접을 잘 받았던 이요 한편은 하나님이 계시니 어느 편을 취하겠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향해 떠나는 때의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세상을 버리면서 주를 찾아가며 나중은 주님 만난 후에는 세상을 찾아간다는 것이 세상을 잡고서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첫걸음이다. 즉 인간을 상대 하였느냐 하나님을 상대하였느냐 인간 약속 하나님 약속 인간 기쁨 하나님 기쁨 도움 벌 어느 것을 의지하겠느냐. 이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주님 만나보고 고향 찾아 갈려면 다시 세상을 찾아와서 이제는 예수님 뜻대로의 사람으로 가정도 친척도 예수님 뜻대로 사는 믿음에 어머니가 되어야한다.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하나님 말씀으로 점령해나가야 한다. 이 거슬리는 세대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발족하는 데는 무엇으로, 동방 박사에게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이다. 이것이 예수님 만난 후의 신앙생활의 할 것이다. 예수님 만난 후에는 하나님과人間 인간 사이에 끼어 있다. 그러므로 여인들은 하나님 비위 맞추느냐 주인 비위 맞추느냐 하니 각인마다 하나님 비위냐 자기 비위 맞추느냐, 하나님의 도가 왕도 기쁘게 하고 사람도 좋게 하면 이는 땅 짚고 헤엄치려니와 이것이 아니니 낭패다.
2) 다른 길로 돌아감
종전 길을 전환하여 다른 길로 돌아갔다. 회개 했다. 이것이 생명이다.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를 찾아오는 길은 인간들과 합작 하고 왔지만 이제 돌아가는 길에는 인간과는 합작할 수 없고 하나님과만이 같이 해야 된다.
(1) 포기
① 불의의 인간 교제를 포기 강약 빈부
② 불의의 인간 약속도 다 포기 강약 빈부
③ 불의의 계획을 포기했다 빈부귀천
(2) 취종(取從)
① 하나님의 계시를 굳게 잡고 다른 길로 가라고 계시
② 죽음이 있는 위협지를 건너갔다. 진리와 하나 되어야만 사지에서도 주와 하나 되고 주의 종과 하나 된다. 마리아가 마르다보다 귀한 직분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녹아지지 아니하고 교회 열심히 섬기는 것은 오히려 교회 문제 덩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이 진리의 말씀으로 내 속에 굳게 서야지 일시 감동이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일시 감동으로 받는 것보다 진리 지식이 내 속에 꼭 막혀서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으니까 되는 것이 내 생명된다는 말씀이다. 헤롯 왕이 동방 박사 놓치면 나라 빼앗기니 기어코라도 박사를 기다렸던 것이요 박사들은 그 꿈을 꾸고나니 이것이 분명코 잡히면 죽을 길인 줄 알아서 생명 내어놓고 걸어갔던 것이다.
③ 용기 있게 걸어갔다.
죽든지 살든지 말씀대로 이 계시 말씀대로만 용기있게 걸어감. 고금 불변 중 1은 주님 명령 좇으면 주를 사랑함이 자기 생명 사랑함보다 나아야하고 주를 사랑함이 자기 생명 사랑함보다 나아야하고 주의 명령이 죽음보다 나아야한다.
3. 주님 만나기 전후 차
(1) 주님 만나기 전에는 별을 작별하고 헤롯을 좇아 찾았고 어려움이 없어도 별을 좇지 못했고
(2) 주님 만난 후 꿈 계시를 만난 후 헤롯을 작별하고 하나님을 좇았고 연합하여 죽음을 각오함.
(3) 주님을 사랑함과 회개와 순종이 전후가 차이가 있다. 이것이 신앙이 자라가는 것이다. 또 회개가 더욱 깊어지고 순종하는 것 신앙생활이다.
4. 결론
순종하니 심히 어려워도육도 영도 살고 자기가 알지 못한 범죄도 자행자지했던 실수에 해독도 구속도의 방해도 뽑혀 제거되고 하나님의 뜻 이루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정의 난이를 물론하고 주님의 계시대로 단절과 경건이 강하여야 한다. 버리고 돌아서는 힘이 빠르고 강하여야한다. 옳은 줄 알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인정 못 끊고 얻을려고 한다. 아니면 끊어야한다.세계의 권세라도 대항하여 끊어야한다. 신앙의 시종이 다른 것은 시작은 모든 것 포기요 다음은 모든 것을 굳게 잡아야한다.
*성경공부에 3가지 방법
① 어떤 사람은 단어에서 은혜 받은 사람이 있고
② 그 말씀 전체적 종합하여 조직적 윤곽을 지어서 받는 사람도 있고
③ 성경해석과 본문과 비추어서 본문에서 나왔나 아니 나왔나 비판하여 본문에서 그 진리가 나온 것을 찾아 공부하는 것이 제일 장성한 성경공부이다.
마2:13-15
2. 예수님 피란 (:13-:15)
1) 주의 경고
‘저희가 떠난 후에’
(1) 박사들이 떠난 후에,
① 박사들에게 알려 무익한 것임으로 또 필요 없는 것인 고로 알리지 않음이다.
② 박사가 돌아갈 때 두렵기 쉽고 누설되기 쉽고 그러므로 미래사를 알리지 아니한 것이 사랑이다.
(2)질서정연 처사하시는 하나님
① 무계획 무순서 무유익 처사하시는 하나님이 아님
② 계획적이며 순서적이며 이기주의인 하나님임
(3) 적사 적소 적시 적법으로 예고하시는 하나님
① 전지하사 마귀와 나의 형편을 다 아시고 나에게 유익하고 마귀에게 해롭게 처리하시는 하나님임
② 그러므로 하시나 성도는 一戰 파수군과 같이 귀에 접하는 전화기 눈에 접하는 망원경 경성과 긴장 가져야함. 전화기는 자기 의 깊은 양심이요 망원경은 하나님의 성문의지와 섭리의지
*해석 : 예수님의 피란
① 천로역정에 사자를 좌우에 매여 좁은 길이나 치우치 않으니사자가 소리는 지를 망정 물지는 못한다. 좁은 길은 천국 가는 길이다
°시편91:4-16 여호와의 길을 걷는 자가 누구요. 주님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주님 누구신지 알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고 걸을 자 없다. 천인만인 내 곁에서 우편에서 넘어지나 이 재앙이 네 곁에서 멀지 아니하다 하였다.
°시23: 쉴만한 물가로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은 내가 보기에는 죽고 망하는 길 같으나 인도하시는 대로 가면 샘물가에 시원하고 목마른 데 시원히 물마시듯이 잔잔한 샘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어떤 이는 병들어 기쁨을 못 주나 병이 또 병을 주어도 기뻐할 수 있다.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 함은 우리에게 갈급할 때 더 갈급한 것 같으나 순종하고 나가보면 거기는 잔잔한 시냇물이 있다. 주님은 의로 행하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나니 이대로 가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되여 해 받을 것 같으나 실상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평안. 모세가 홍해를 당도하야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은 책망하셨다. 그 시에 걸어가니 홍해는 대로가 되어 걸어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죽고 멸망하는 길 같아도 가보면 생명 길이다.
°계7:16-17. 나 위하여 생명 버려주신 어린양이 계신 그 곳으로 가면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고가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심이 다 내가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해받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다. 한번 환란 당하면 한번 신앙이 올라가고 점점 올라가나니 주관 강한 자 불쌍한 자요 이는 영혼이 주리지 않고 목마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심령에 만족 없으면 못 산다. 뜨거운 것 어떤 고난이나 해 받지 않는다.
°계14:4. 시온산에 14만4천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구원얻은 사람이요 어데든지 전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이들은 어린양 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님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 오늘에 예수님에 피란에 대해서 요셉 이가 순종했음으로 살았다. 순종치 않았다면 다 죽었을 것이다.
*본문 해설
박사들이 떠난 후에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애급으로 피란가라 했다. 여기서 알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미래사를 알려주시지 않음은 공연히 내 머리만 둔해짐으로 알리워 줄 것만 알리워 준다. 지식에 대하여 탐심을 가지지 말라. 동방박사들이 이 꿈에 소식을 만일 알았으면 더 떨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 알리워주시지 아니하고 공연히 알고 싶어할까 바 알리워 주시지 않으니 주님은 미래사를 알리워 주시지 않으니 사랑이다.
② 질서정연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는 박사가 떠난 후에 계시하는 이렇게 계획적으로 질서정연하게 하신다고 하나님은 계획적 순서적 유익으로만 하신다. 하나님은 절대 이기주의 된다. 이는 당신이 옳기 때문에 진리시기 때문에 이기주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옳게 되고 진리 되고 이기주의 된다. 하나님에게 유익한 때 만물이 다 유익 된다. 그날은 만물이 다 우리도 다 죽는다. 에베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다 통일 한다. 당신의 말씀이 내 생명이요 복이요 기쁨이요 평강이요 행복이다. 하나님 떠나면 반대이다. 그러므로 한번 실패 시켜놓고 성공 시키고 하며 자라게 하나니 주의 말씀 지키면 성공, 주의 말씀 불순종하니 실패다. 그러므로 우리 생활이 탕자다. 갈 때와의 기대가 어그러진다.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니까 볼수록 더 좋고 하나님 말씀 떠나니 죽을 지경이다.
③적사 적소 적시 적법으로 하나님께서 논하신다.
우리의 처지와 형편과 때를 다 아시는 고로 그렇게 적당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마귀의 형편도 아시고 헤롯 우리의 형편도 다 아시는데 마귀에게는 해되게 하고 우리에게는 유익되게 하신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성도는 파수군과 같이 전화기에 자기 깊은 양심에 성신의 감화를 기다리고 있다. 양심 꺽어면 양심 누리고 유전하는 것 죄요 심령이 어두워진다. 죄를 지어도양심 꺾지 말라. 엉큼하게 양심 꺾어면 전화기 부순다. 눈은 망원경을 쓰나니 먼 곳까지 바라본다. 그 일이 임시 닥치기 전에 벌써 준비한다. 하나님의 신구약성경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의지는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것을 하나하나 이루워나가는 것 살펴보는 눈이 있고 지혜가 있어야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보고 살아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또 박사들이 떠난 후에 한 성구는 우리에게 몰라야 할 일은 모르게 하고 적사, 적시, 적소, 적법으로 우리에게 하신다. 우리는 오늘의 하나님의 음성과 보여주는 것 모르면 죽는다. 세상 것에 도취되면 눈이 어둡고 귀가 막히여 온천하를 다스려도 허사이다.
2)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 하여 가라대
(1) 가브리엘 천사
가브리엘 천사인 듯함
①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 한 것 같이 오늘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자가 선지 사도들이 우리에게 말하여 준 신구약 이 있다. 죽음에게서 피해 사는 곳으로 간 그 지시와 같이 오늘 우리에게도 천사 통한 지시가 있다. 오늘 천사 통한 지시가 무엇이냐? 선지사도를 통하여 주신 신구약은 성경은 우리의 지시 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는 영원히 해 받지 않게 함. 계14:4 요셉의 꿈으로 지시한 것 어린양이 인도하는 길은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은 생명샘으로 인도한다고 했다.
② 시기마다 때마다 강단에서 왜 외쳐주시는 말씀은 그때그때 우리들에게 필요가 있어서 주시는 말씀인 줄 알아야함. 참으로성신에 붙들려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 다 같이 하지만은 특별히 대예배 때이나 새벽기도는 나에게 필요 있는 일을 알려주시는 말씀을 하여주시는 것이다. 신앙가들의 간증을 들은즉 전일의 근심과 난제 중에 있는 나의 새벽 말씀에 해결을 받는다 하였다. 하루 새벽도 제단을 쌓지 않고는 살 수 없이 견디지 못하는 그것이 성신이 동행 함이다. 이 말씀에 맛을 붙이지 않은 사람은 살수가 없다고 그 피난에 대한 사고를 하여 주시는 줄 알아야 참고 지시하는 말씀이 온 성경이 아니고 그 중에 있다.
③ 설교가들도 이미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증 거하지만은 66권 중에 이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설교하고 하는 이 문제이다. 주일에는 하나님이 주는 말씀을 주실는지 하는 것이 설교가들의 심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장. 이외 에 그 시간에 말씀을 주신다. 각기 따라서 성신을 통하여 주신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심하여 들어야한다. 강단에서 외쳐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 것이 지혜 있다. 시대마다 회개 일으킬 때는 회개 일으키시고 환란 올 때는 환란 준비 재촉하여 주신다. 하나님이 성화 일으켜주셔야 우리가 성화 받아지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 때는 성화받고 강단에서 주시는 말씀으로 변화 받아야 한다.
(2) 요셉에게 현몽함.
① 각인에게 직접 경고와 책망과 명령하심이 있다. 이는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말씀과 성신 감동이 와서 직접 경고하시고 책망하신다. 한 사람은 이 말씀 저 사람은 저 말씀으로 4명이면 각각 다르게 주신다. 그러므로 각각 깨달음이 다르고 필요 함이 다르나 주여 명령하옵소서 하게 된다.
②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지시할 때가 있다. 요셉에게 나타난 이 지시는 요셉, 마리아, 예수님 세분에게 대하여 대표로 나타난 지시다. 그러므로 온 교회 대표로 교역자, 주교면 대표로 반사에게 나타날 때 있다. 그러므로 만일 잘못 믿으면 자타가 낙망된다.
③ 헤롯의 박해로 애급으로 피하라 하심.
그 성경 볼 때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이며 내게 무엇을 가르키는가 찾아보라.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키는가? 세상이 성도의 피란 가는 영원이 세상이 성도의 피란처요 영원히 세상 장만한 것이 세상이다.
- 하나님의 계시는 똑똑하다. 헤롯이 아기를 죽일라 하니 아기와 모친 데리고 애급으로 가라 이 계시는 베들레헴에 있을 때 요셉만 받았다. 타인은 이 계시 못 받았는데 어찌 요셉만 받았을까? 요셉만 예수님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시지 않은 자는 계시가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받은 영감은 똑똑하다. 혹은 술 취함 같고 미치광이 같이 성신 감화가 옴이 아니고 올수록 똑똑하고 마음이 강하게 붙들린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시해 주심은 정신이 똑똑하게 명확하게 진실해진다. 말씀으로 지시해 주시는 것이다. 성신으로 감동 해지는 것은 생각할수록 더 강하게 뜨겁게 무섭게 경고해 주시니 그 말씀에 붙들려 간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궁극적 인도이다.
- 성도의 박해는 이미 정하여 있고 또 한정이 있는 것이다. 그 박해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워지고 우리의 구원 이루워진다. 이 박해는 일찍부터 예정한 것이다. 예정 되어 있는 박해 가 이루워짐으로 예수님이 자람. 구원이 하나님 뜻 이루워진다. 우리가 박해 당할 때 피한다고 안 이루워 주지 않고 원한다고 되지 않는다. 이미 정한 순서가 이루워지는 것뿐이다.
- 박해를 피하는 것이니 우리도 하나님 뜻 아닌 박해는 피해야하니 몸을 귀하게 보존 하다가 주님이 구하실 때 쓰라.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수 천리 길을 가는 고행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할 고난
-> 하나님의 뜻이 아닌 박해는 받지 말아야하고
-> 하나님의 뜻 인간 해는 받아야 하고, 주님에게 유익 없는박해는 당할 필요 없다. 우리는 혈육적으로 죄 지어가면서 할 수 없다. 죄 없는 데서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고난 이다. 십자가는 귀한 것이요 죽는 자 살리는 것이요 다니엘이 하나님 섬길 때 주님 섬기는 것 외 책잡을 것이 없었다.
-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 이루며 유익 없는 박해는 하나도 당하지 않아야 된다. 만일 당하면 고행주의가 된다. 행26:29, 결박당하는 박해가 좋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 이루고 영광 돌리는 것이니 박해가 귀하지. 박해가 귀한 것이 아니다.
2) 요셉의 순종
(1) 밤에 출발
① 즉시 순종은 평안이요 주님의 뜻 이루워 진다. 환경과 형편을 보아 의심하면 안 된다. 형편을 보아 기다리고 환경을 보아 기다리는 것은 자기 뜻대로 하는 그것은 다 적이다. 연기하라는 주권이 방해한다. 이런 것 물리쳐야 한다. 주의 말씀 순종하여야 된다. 환경이 방해 형편과 연기 주관 이 네 가지는 적이다.
② 더디 순종은 위태하다. 주님의 뜻을 방해하는 일도 되기 쉽고 자기에게 피해도 될 수 있다. 요셉이가 더디 순종하였으면 죽기도 쉬울 것이요 주님의 뜻 방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③ 또 불순종은 사망이요 자타의 구원을 낭패 시켰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주의 말씀 순종 안 하면 이렇게 사망 된다.즉 내 속에 있는 진리와 영감이 삭감된다. 순종하면 진리 지식 과 영감이 자라난다. 그들은 육적인 이스라엘이기로 주님을 모시고 다녔지만 우리는 영적 영적 이스라엘로서 주를 모시고 다녀야 한다.
(2) 말씀대로 다 준행
① 아기 데리고 -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 진리와 영감
② 모친 데리고 - 주님의 양식이 되는 주님 뜻만 이루는 선행
요4:3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
계3:20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 받고 순종 안 하면 정죄이다.
③ 요셉이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 주님과 선행을 가진 사람
④ 애급으로 감 - 애급이 피난처 같이 세상은 주님과 주의 뜻대로의 행실을 겸전한 행실에는 피란처가 된다. 애급은 이스라엘의 피난처도 되고 시련소도 됩니다. 영원한 피난처를 준비하는 곳도 됩니다.
⑤결론
(마2:14-15)
하나님께서 피란하라 예고해 주신 것도 또 피란할 때에 피란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은 예수님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계시말씀과 성령감화와 우리의 행동을 지켜주심은 오직 네 안에 계시는 주님 때문이다. 요셉에 피란한 애급생활은 예수님 읽으면 헛일이다. 이와 같이 성도가 재세에서 고생의 생활하는 것은 예수님 한 분 잘못 모시면 천하를 다 얻어도 다 허사이다. 그러므로 주님만 극히 사랑하고 충만히 모시면 자타에게 성공이요 주님에게 승리 이다. 오늘도 피란하라는 경고는 내리는데 이 3인이 피란 감은 예수님은 진리와 영감으로 모시고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행하는 주님 모시고 또 요셉은 주님 모시고 선행 하는 인격으로 피란하였으니 오늘도 이러는 자는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전능으로 나를 지혜롭게 하시고 나의 생활을 보호하신다. 우리는 주님만 모시면 창조하신 말씀과 직접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들이 애급에 가서 계셨는데 애급에서 예수님 잃었다면 이는 실패다 아무리 오늘 우리들이 아무리 영광이 가득해도 예수님 모시지 않으면 허사다. 다만 예수님 모신 진리가 내 천성이 되면서 진리만 모시기를 배고프면 죽는 것 같이 생각되며 진리로만이 살아야 할 줄 확신 있는 자라야 한다. 진리와 영감으로만 충만케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할 일이다. 아무리 돈벌이가 좋아도 내게 성신에 감화가 적으면 이 자리는 끊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감화가 멀어지면 이는 나와 원수인 것을 깨달아야 하며 우리도 1.환경과 2.형편과 3.연기와 4.주관에 종되지 말라.
(3) 예언 성취
① 세상과 세상에 전개 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명문 예언과 은밀 예언이 있어 이루워진다. 예언 있어 면 예정이 있는 고로 예언함 성공을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예언을 찾아야 한다. 농부가 심을 때 심고 깍을 때 깍는 것이다. 이것을 어기는 고로 사람은 탄식과 고난이다.
a. 모든 물체
b. 활동계가 다 예언 되여 있다.
c. 심령계가 다 예정 되여 있다.
d. 시공계가 다 예정 되여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을 감사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예언 이루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 거역하면서 하나님의 뜻 이룬다. 개인이나 국가 사회의 모든 것이다 예정 되여 있는 것이다.
② 전개 요소는 하나님의 섭리와 악마와 인간과 모든 짐승과 물질 기후 등을 통하여서 되어집니다. 그러면 천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예언대로 되어진다. 오늘 피조물들이 동하여 죽인다해도 성도는 하나님의 뜻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③ 목적 하나님이 예정하신 목적
a.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b. 택자에게 구원을 성립시킴. 하나님의 영광 위해
c. 만사물은 택한 나를 위해서 있다. 택한 나는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결론
우주에 충만한 것은 하나님의예언대로 있고 하나님의 예언 성취하기 위해있다. 성도는 성도답게 애를 써야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말씀을 순종하는 말씀 안에서 부지런히 믿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 중에 제일 큰 영광 사랑의 영광 죄인을 죽기까지하여 구원해주신이 큰 구원해주신이 큰사랑이며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三. 박사들이 자행 한 결과
1. 박사의 회개
(1) 예루살렘 들어감을 후회하고 자행은 재세에 후회하지 않으면 말세에 후회하게 된다. 회개는 과거 종전 하던 것을 후회하고 미래적으로는 자행하는 계획을 깨트리는 것이다.
(2) 헤롯왕과 상약한 일은 천사의 말 듣고 해약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권력가와 계획한 것이라도 어떠한 육신적 세상적 유리한 것이라도 성경적이 아니면 취소해야한다. 우리는 혹 부자와 권리 있는 사람과 장사했다면 사람들은 이면에는 성공하겠는데 어찌 자본을 대주랴 하면서 성경의 뜻이 아니건만 환경에 끌려서 주장하게 된다. 박사들은 천사 말 듣고 헤롯과 약속한 것을 끊었다. 그러므로 성경적이 아니면 즉시 헤롯 종교 정치 마귀 세상과 끊어야 한다.
(3) 헤롯과 약속한 것 포기하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회개는 이렇게 돌아서서 새길 걷는 것이다. 성경은 언제든지 그 속에 내가 들어가서 그 사람이 되어져야 성경 해석 바로 나옴
2. 헤롯이 심히 노해서 악을 행함 (:16-:18 )
1)속은 줄 알고 헤롯이 심히 노함
(1) 마귀는 어느 때나 유혹은 감언으로 하고
(2) 불행시는 위협한다고 마귀는 우리를 죽인다. 죽인다 하다가 아주 죽으면 대 실패다.
(3) 박사들은 속여서 약속함이니 속은 줄 알고 그 약속 지키지 않는 것이 의다. 국법이라고 옳은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가 민주주의 죽이면 옳다고 하나니 우리는 국법을 주장하면 안 된다. 국법이 그러니 하면 안 된다.
(4) 악도는 자기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아니하며 자기 죄까지 남에게 지운다.
2) 베들레헴 성중에 2세 이하 남아 전부 살해함.
(1) 자기 손해 자기 왕권을 보호할 야욕으로 천비(天秘)에 수치인 일을 만들었다. 어린 아이 학살은 너무도 잔인한 것. 이어서 역사적인 그 사실을 부인하는 자도 있다. 왕이 얼마나 비밀로 하였느뇨. 박사도 비밀로 하여 몰랐던 것이다. 역사에 기록 되어있지 않다. 요세보 역사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것 보면 헤롯왕이 얼마나 비밀로 한 것 보인다. 1군에 아이를 다 죽였건만 역사에 기록이 안 되였으니 어찌 기이하게 죽였는지 모른다. 비밀로 죽였다. 여기에서 인간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간접으로 세월을 통해 알리시든지 직접으로 알리시든지 하신다. 대개는 세상에 있을 때 드러낸다. 성도들은 비밀한 미혹에서 속아 들어날 죄악을 아니 드러날 줄 알고 속는다. 요셉의 역사를 아니 드러날 줄 알고 역사에 기록하지 않았 으나 이렇게 극한 비밀이 드러난 것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간섭하신다. 사20:1-살곤 왕은 역사에는 없는데 성경에는 있다. 그런고로 역사에 없어 틀렸다고 하였으나 고고학에서 발명해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음을 알아야함.
(2) 예언한 뜻이 이루워졌다. 헤롯의 수단은 얼마나 좋고 자기에게 유익하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속고 손해 본다. 오늘도 마귀 말은 지혜롭고 유익되고 민첩해도 미련하고 어리석고 손해 본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정반대이다. 2세 이하 죽인 것은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마귀역사를 보여준다.
(3) 이렇게 잔인한데도 신자에게는 먼저 피할 길을 주어 추호 도 해도 받지 않게 하신다. 1개 고을을 싸고 광범위로 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벌써 피란시켰다. 그러므로 원수에 대하는 방법이 큰 것 보고 놀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라
3) 악행의 도화선은 박사들의 자행한 것이다.
(1) 성도의 일시 자행은 사회에 큰 손해를 끼치고 순종은 큰 은혜를 끼친다. 사43:3- 사람들의 생명으로 너를 대신한다. 하는 이 말씀이 여기 들어맞았다. 2세 이하 남아를 전부 학살하는 일이 성도들이 한번 잘못 걸어면 이렇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아들 위해서 하나님이 지은 인간 죽이는 것이 무슨 죄리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면 아무 죄 없다.
4) 라헬에게 위로가 없음
이 예언은 요셉이 애급에 포로 되였을 때에 라헬이 슬퍼하는 것을 다시 재 계시한 일로, 둘째로는 바벨론으로 포로 갈 때에 라헬의 자손 비참한 것을 예언한 것이요. 셋째로는 베들레헴에 모든 아이 죽인 것에 예언이요 예언은 역사적인 사실 이 예언됨도 있고 말로도 예언됨이 있나니 몇 번이라도 이루 워진다. 오늘 저녁 배운 것은 박사들과 같이 성경적이 아니면 즉시 돌아서야 한다. 헤롯과 상의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알 때 즉시 고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이런 일은 고치지 않으면 영벌 받는다.
4. 예수님이 귀향하심
1) 헤롯이 죽은 후
(1) 왕이 37년 간 70세 되던 해 로마 연대 750년에 죽었다.
(2) 生倉器(생창기)와 창자와 버러지가 먹어 죽었다. 자살하려 하여도 못하였다. 이는 요세보 역사에 기록되여 있다.
(3) 잔인한 욕심도 죽었다.
① 잔인하게 얻은 것도 녹고
② 악투 견집도 放(방)
③ 취한 것 전부 잃고 범죄 보응만 잔존
④ -요2:15-17 세상 것을 천국 것과 바꾸라는 권면이 있다.
(4) 유에서 무를 무에서 유를 예측하지 못하면 소경이다.
有대 無로 살고, 無대 有로 사는 것이 참 산 신앙이다. 신앙가들은 이 세상이 없어질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없는 것으로 살고 말세 천국을 이제 올 것이 아니라 현재 천국에서 산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계명 어겨서 악착같이 살라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2) 하나님이 인도 하심
(1) 요셉에게 현몽 하심.
① 일어나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가라. 아이의 생명을 찾던 자가 죽었노라.
② 일어나 이스라엘 나라로 돌아옴.
③ 요셉이 아켈라오를 두려워함
a. 대 헤롯이 죽은 후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명을 내려 삼분하여 헤롯의 3자식에게 줌
b. 아켈라오는 재위 9년 후에 아구스도 명에 의지하야 퇴위함. 위태할 때는 피란하게도 하시고 또 박해자를 제거도 하신다. 하나님은 능소능대하시니 염려할 것 없다. 신자가 두려워하면 천당 못 간다.
④ 꿈에 갈릴리 나사렛에 가서 살라고 지시하심
⑤ 결론, 모든 대적보다 나은 전지전능하신 주가 인도되셨으니 동하는 것과 정하는 것을 무조건으로 명령대로만 순종하면 형통한다 오라 하면 오고 가라하면 가고 모든 것은 형통이다. 무조건 순종이다.
3) 예언 성취
(1) 선지자 예언
원어에는 선지자들이라는 복수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이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2) 나사렛 사람이다, 원어에는 ‘넷치로’라고도 하고 ‘체막에’라고도함
넷치로는 나사렛이란 말이요 체막에는 가지
a. 출15:25-므로바에 쓴 물을 나무가지를 두고 단물을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b. 둥치는 하나님이요 가지는 예수님으로서 모든 하나님 뜻과 하나님 은혜가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날 것을 가르킨다. 사4:2여호와 삭이라 말함.
(3) 예언 완전 성취
①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 조직 안에 있는 우리 곧 그리도도 안에 우리 안심 하고 명령 되로만 복종할 것
② 처음 열매 예수님께서 하심 같이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간섭하시고 지도하시느라고
(4) 결론
① 악인의 모든 행사는 성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촉진 시키고
② 성도의 行止(행지) 일절을 하나님께서 세밀히 간섭하나니 생사 실패를 물론하고 그저 순종만 하면 성공 된다.
③ 고생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재세에 자유를 얻지 못하고 어느 때나 종노릇 한다. 마귀의 수단과 도구는 둘뿐이다 고생과 죽음이다. 이 두 가지 꾀로 수단 부린다. 히12:15-19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를 일생동안 죽음에 종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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