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욱의 논문 "아들의 생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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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술을 팔기 시작한 때부터 식당의 종업원들이 갑자기 도둑으로 변하여 자기를 속이고, 그 때문에 직원을 교체하여 보았지만 그들도 또 도둑으로 변하여서 자신이 속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니 음식은 많이 팔려도 돈은 적게 들어왔고, 한 달에 한번씩 결제하던 교사들도 식대도 미루고 잘 주지 않았다. 또 식당 배달원들이 중도에서 돈을 가로채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돈을 버는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겹치자 사람들이 미워지며 삶의 의욕이 상실되어갔다. 결국 식당을 그만두고 신학교도 2년 중퇴하고, 그 길로 금식 기도나 하다가 죽으려는 생각으로 삼각산 제일 기도원 윗 골짜기에 있는 바위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가 1960년도 겨울이었다.
삼각산 바위 밑 굴에 들어가 6개월 동안 머물면서, 방언기도와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속의 악한 마음이 보이고, 초목의 새순이 자라나는 소리와 이름 모를 작은 곤충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음식은 얼마동안 이든지 먹지 않고 있다가 무엇이나 먹고 싶은 생각이 나면, 누구를 통해서 라도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먹게 되었다. 또한 말씀의 은혜도 체험하게 되는데, 성경은 한 절 한 절을 읽을 때마다 환상으로 그림책처럼 파노라마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깨우쳐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며칠씩 먹지 않아도 배고픔도 몰랐고, 몇 날이 지났는지 모르며, 겨울에는 몸을 뜨겁게 하고 여름에는 몸을 차갑게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어떤 분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그런 능력과 그가 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인지도 알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생겼으며,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순식간에 움직여지는 도인과 같은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삼각산에서 제일 큰 기도원인 제일기도원-그 당시 용문산 기도원 다음으로 컸음-에서 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도원에서 총무로 2년간 일하게 되었다. 오전에는 박신출 원장이 설교제목을 주면 거기에 맡는 성경구절을 찾아서 설교원고를 작성하였으며, 오후에는 기도원 전체를 관리하는 일을 하였는데, 기도원의 규모가 대 강단이 120평 정도이고 소강당은 30평 규모이며 숙소 50여개와 30여 평의 원장사택을 포함하여 1000여 평에 달하는 여러 시설의 관리보수와 식당관리, 숙소 배정과 퇴실, 외부손님 접객, 기도원의 개인 집회 승인 결정 등 기도원 전체의 살림살이를 하였으며 저녁에는 7시부터 시작하는 집회를 인도하고, 밤 10시 이후에는 산에 가서 새벽 4시까지 기도한 후 4시30분 새벽기도 인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쁘게 생활하는 중에 어떤 권사님의 요청에 의해서 처음으로 경기도 미금면 이패리 미금 교회를 개척하여 1년 동안 30명 교인으로 목회 하다가 다시 제일기도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와서 6개월 후에 부산 서부교회 시무 하는 백영희 목사님이 삼각산 집회를 제일기도원에서 하게 되어 총무로서 집회 장소를 빌려주면서 집회에 오시는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들었는데 백목사의 설교는 남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평소에 의문 나던 성경의 난해 절에 대하여 질문하였는데 시원하게 해결해주었으며 영안이 열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백목사의 지도 받기를 간청하여 승낙을 얻어서 6개월을 기도원에 있으면서 지도를 받게 되었다. 지도를 받으면서 처음에 한 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연경을 시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경 1장을 읽고 첫째, 그 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제목을 정하고 둘째, 3-4항목의 대지를 정하고 셋째, 그 내용에 대하여 자신이 깨달은 것과 고쳐야할 것을 기록하고 넷째, 같은 방법으로 먼저 쓴 것은 보지 않고 8번 쓰게 하고 다섯째, 8가지를 비교검토 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고에 써서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경을 하루 8장을 하게 하고 구약과 신약을 격주로 하게 하였는데 이 양은 너무나 많은 양이었으나 꾸준히 잘 해 나갔으며, 그렇게 연경을 한 것을 일주일분씩을 모아 백영희 목사에게 보내면 몇 주 분량을 모아서 평가를 해서 보내주었다. 이렇게 6개월이 지난 후에 제일기도원을 그만두고 1963년도 봄에 부산 서부교회로 내려갔다. 서부교회에서도 2년간 주일학교 (학생 600 여명과 교사 40여명의) 전담 전도사로 있으면서 연경을 계속하였다. 처음 6개월은 아침 먹고 산에 가서 연경만 전념 하게 하였고, 6개월 후에는 낮에는 일을 하라고 하여 경남 미술 교재사에 입사하여 한 학기 동안 외판원을 하였다. 그 경험을 살려 경남 미술 교재사를 물려받아 1년간 사업을 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계속 연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