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well의 이분설에 대한 몇가지 지적
1.교리는 문법적 접근에서 간단히 해결되는 차원이 아닙니다.
Buswell이 히4:12의 본문을 분사와 전치사라는 문법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으나, 교리 논쟁에서 문법이란 대개가 하나의 가능성만을 가지는 정도일 뿐입니다. 이분설이 옳다는 선입관을 가진 학자라면 문법적 논리 전개가 당연히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분설이 옳다는 선입관을 가진 학자 역시 히4:12의 본문 문장을 영과 혼을 따로 구분하는데 문법적 근거가 없어서 못하지는 않습니다. 단어 하나가 가지는 뜻은 여러 개, 때로는 수십 개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 단어가 앞뒤 문맥과 어우러질 때는 어떤 제 삼의 뜻으로 나갈는지
그렇게 기초 수학의 수리 답안같이 명확할 수는 없습니다.
조직신학에서 집중하고 있는 교리들은 성경 전체를 통한 성경적 연구가 최선이며, 문법적 연구는 성경적 연구의 결론을 최소한에서 따라가는 위치여야 한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2.어느 시각에서 보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전 5:23의 영과 혼과 몸을 인성의 3가지 요소라고 한다면 눅10:27의 마음, 목숨, 힘, 뜻을 다하라는 성구는 인성의 4가지 요소를 말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삼분설을 비판하는 이분설 학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반복하며 앞세우는 논리이지만, 이것이 이분설을 정확한 교리로 삼분설은 틀린 교리로 단정하는 근거는 전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분설이라는 용어도 또한 삼분설이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인간의 요소는 둘이라고 보는 사람이라면 그는 인간에 관계된 모든 표현을 전부 이 이분설에 맞추어 나갈 것이고,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인간은 3가지로까지 분류할 내부적 구별 가능한 요소들이 있다고 확정 지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간의 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이 그 3가지로 나누어 정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정리가 되기 때문에 삼분설을 주장하게 되었을 것이고, 또 2가지로 나누어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이분설을 주장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이분설 학자들의 비판과 같이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인간의 요소가 3가지로 표현되어 있는 성구, 즉 살전5:23을 만나자 얼른 그 성구에 있는 3가지 인성 표현을 붙들고 그것을 근거로 삼분설을 주장한 정도의 양심으로 몰아 세운다면, 그 정도의 철없는 장난을 할 수준으로 몰고 가는 정도라면 올바른 연구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살전5:23을 근거로 삼분설을 주장하면 눅10:27을 근거로 사분설이 되는 논리도 나올 것은 불신자라도 예상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살전5:23을 근거로 삼분설을 주장하게 될 때에는 눅10:27과 기타 성구들에 기록된 모든 인성들을 다 고려해도 인간은 3가지 요소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그 결과가 셋으로 나왔을 수도 있으니 삼분설을 비판할 때는 그 삼분설을 주장하는 논거를 먼저 파악한 다음이라야 할 것입니다.
백영희 삼분론은 인간이 죄로 죽었던 부분을 가졌고, 또 중생으로 새로 살려 가진 부분이 있으니 이것은 비 물질적인 요소인 영이며, 마음은 짐승에게도 있는 것이니 이는 물질적인 요소라고 단정을 해야 함으로 마음을 비 물질적인 인간만이 가진 요소로 보는 것은 구원론 등 성경 전체를 보지 못한 연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3.델리취 등 다른 삼분설과 삼분설 학자들에 대한 입장
여기서 논하는 삼분론은 백영희 삼분론이지 다른 삼분론이 아니기 때문에 Buswell 이 거명하고 비판하는 다른 삼분론에 대하여는 더 이상 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실은 백영희 삼분론은 기존의 삼분설과는 그 논리 전개의 시작과 과정 전체가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존의 이분설과 삼분설은 논리만을 위한 논리로 치우친 점이 많다고 보며, 물론 신학의 기초적 사변을 넓힌 면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이 이분적 요소를 가졌느냐 삼분적 요소를 가졌느냐는 문제를 알아야 될, 논리해야 될 실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4.인간은 삼위일체를 반영하였고, 그래서 삼분설이 옳다고 한다면
삼분설로 보는 분들은 삼위일체적 반영이라고까지 하여 삼분설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고 싶을 것이고, 또 이분설 학자들은 삼위일체적 반영이 되면 안되기 때문이 아니고 삼분설이 틀렸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전제 아래에서 삼분설 일각에서 제기되는 삼위일체적 반영은 무조건 반대해야 할 필요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 같습니다. 상대 이론의 주장에 하나라도 반론을 하지 않으면 그 부분은 인정이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부분을 근거로 주장된 이론은 옳은 것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적 반영이라는 부분은 주장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인성의 구성요소를 연구하는데에는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